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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역사) 잿더미에 핀 꽃글 고물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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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역사) 잿더미에 핀 꽃 -2-
17-01-10 16:45
 
 

유럽인이다...!”

정말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조선왕조실록 가나가별지에 따르면, 5일 뒤 함경도에 당도한 카나카의 유럽인들은 선교사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그는 자신들과 똑같이 붉은 수염이 있었으며 궁정보편 프랑스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고백을 들으시러 이 자리에 보이지 않게 계십니다. 수줍어 말고 두려워 말고 아무것도 숨기지 마십시오. 불신이 범한 모든 것을 숨김없이 고백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를 받으십시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은 가장 먼저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요구했다. 이는 정치적인 의도도 숨어있었다. 고해성사는 반드시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되어야 한다. 성직자는 신자의 비밀을 엄격히 지켜야 하며, 어떠한 이유로든 고백자의 비밀이 외부에 퍼지면, 그 성직자는 카톨릭 세계에서 자동파문된다.

게다가 고해성사소에는 명나라 황제의 칙서가 붙어있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밀회였다.

그 누구든 엔리코 신부와 카나카인의 미사를 방해하면 엄벌에 처하라.

그 고해성사소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신부의 기록에서도, 카나카인들의 기록에서도 아무 기록이 없다. 그러나 자료들의 앞뒤 맥락으로 추측할 때, 아마도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고해성사가 끝났습니다. 개인적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하셔도 좋습니다. 마조비아의 참된 공주님이시여.”

엄마와 할아버지는 천국에 있을까요?”

“7년이 지났군요. 총독과 대제사장은 중죄가 없었으니 하느님께서 돌보고 계실 겁니다.”

...”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사셨을지 이해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극복할 수 있는 시련만 내리십니다.”

극복... 지금이 그 때인가요?”

그건 와카 가문의 의지에 달렸습니다. 순명하는 자에겐 손을 내미실 겁니다.”

하느님께선 전쟁을 원하시는 걸까요.”

하느님께선 어린 양의 패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필연인가요?”

운명입니다.”

잠시 침묵이 일었다.

카나카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이 죽었다면서요?”

많이 죽었습니다.”

왜 주님께선 그걸 직접 해결해주시지 않나요! 딸을 위해 선물을 고르려던 착한 사람이 불한당에게 습격당해 죽었다면, 하느님이 그걸 책임져야 하지 않나요?!”

7년 동안 마침내 참았던 말이 폭발했다. , 착하고 마음 약한 사람들은 늘 상처받고 사는 건데요? 단 한 명의 고통이라면 하늘이 그 사람에게 내린 시련이겠지만, 만 명의 고통이라면 얘기가 달라요. 이미 하늘의 권세가 다한 거 아니에요? 성직자는 조용히 눈을 감고 타마라의 머리에 손을 대며 말했다.

총독의 죽음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치적 문제일 뿐이지요.”

잔인하시네요?”

모든 것은 주님 안에서 결정된 문제입니다.”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요?!”

전부 과정이며 시련입니다. 의인들은 고통을 겪으며 타인에 대한 이타심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고난을 겪고서 그 분 자신의 영광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제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고요? 그것은 또 다른 죄가 아닌가요?”

하느님의 이름만 믿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을 겁니까? 그것이 더 큰 죄입니다. 하느님이 일일이 사람들을 변호했던 시대는 오직 에덴동산 시대 뿐입니다

타마라는 더 이상 자신의 신앙을 부정할 자신이 없어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몇 시간 후, 가신단과 타마라는 회의를 시작했다. 신부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었다. 엔리코 신부의 공식적 소속은 교황청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도 명나라의 녹봉을 먹는 신하였다.

명재상 코드키에비츠가 입을 열었다.

지금 즉시 명나라로 탈출해야 합니다. 조선에 남아있으면 우리 모두 암살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명나라로 가면 황제 알현 후 하이난 섬의 지배권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아까 신부와 얘기가 끝났습니다.”

하이난?”

카나카 바로 위에 있는 섬입니다.”

그냥 봉토를 준다고요? 말이 안 되지 않나요?”

유럽의 기술을 주는 대신 땅을 얻는 겁니다. 왕족들은 하이난으로, 저희 가신들은 명나라 수도에 남습니다.”

황제는 7년 전 총독이 준 유럽 시계에 여전히 넋을 잃고 있다고 합니다.”

갑자기 타마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국가 간의 일은 체스처럼 필연의 수가 있다고 하셨잖아요. 분명히 조선은 반발할 거예요. 명은 건주여진을 이용해 조선을 건드릴 거고요.”

조선인들이 여전히 불쌍하십니까?”

조선인 병사들의 식사를 담당하는 걸로 그들의 호의를 보답할 순 없을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저도 한 명의 왕족이에요.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위신을 얻고 싶어요.”

타마라가 주먹을 꽉 쥐며 결의를 보이자, 갑자기 엔리코 신부가 끼어들었다. 그는 지도를 펼치며 명과 조선 사이의 툭 튀어나온 요동반도를 말없이 가리켰다.

다시 보니 용감한 공주님이군요.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

그 말 이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코드키에비츠와 신부끼리는 통하는 바가 있었다. 그는 신부를 보며 살짝 미소지었다. 신부도 미소로 답했다.

“23안도 미리 다 준비하셨군요.”

그렇죠.”

공주님, 이제 우리는 다 같이 요동으로 갑니다.”

...?”

조선과 만주의 전쟁을 중재하여 위신을 얻을 것입니다.”

어떻게요...?”

소비에츠키가 작게 웃으며 대신 대답해주었다.

칼을 차고, 말을 몰아서.”

신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카나카인들은 용감하게 전장 사이에서 싸움을 말렸다는 위신을, 조선과 여진은 서로 물러나지 않고 힘겨루기를 하려 했다는 위신을 얻는다.”

묘책이다. 카나카는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군대를 빌려주겠다는 뜻인가?”

가신들은 하나같이 신부를 바라보았다. 필기를 마친 신부가 이번에는 그 누구든 신부와 카나카인의 미사를 방해하면 엄벌에 처하라는 황제의 칙서를 가리켰다.

이것이 동양에서 얼마나 절대적인 문서인줄은 아시죠?”

알고 있소.”

저는 황제가 두 나라는 싸움을 멈추라는 칙서를 쓰도록 설득하겠습니다.”

이번엔 노장군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걸 펼치며 전장으로 뛰어가면 되겠군! 그나저나 우리는 시계 만들 줄 모르는데 어쩌지.”

코드키에비츠가 자기 턱수염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우리에겐 총과 비누 말고도 법과 철학이 있지요.”

그렇다, 우리 가운데는 대장장이도 있고.”

그나저나 역시 동양은 웃기네요. 천자가 싸움을 만들어놓고, 천자가 다시 말리고.”

“200년 전의 교황청도 그랬는데, .”

왕족들과 가신들은 조공 마차에 숨어 타고 신부의 비호 아래 요동으로 향했다. 국경 근처에서 3번의 검문이 있었지만, 엔리코 신부는 그 때마다 천연덕스럽게 황제의 칙서를 내밀었다.

그 누구든 엔리코 신부와 카나카인의 미사를 방해하면 엄벌에 처하라.

이것도 미사의 한 과정입니다.”

이렇게 7년 만에 조선 땅을 벗어나자, 이번에는 그 백전노장 소비에츠키마저 코를 훌쩍였다.

냉철한 코드키에비츠는 생각보다 더욱 큰 호의를 베푸는 것 같다.’ ‘그래서 명이 최종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하고 질문하고 싶었지만, 신부가 말을 아끼는 눈치여서 결국 물어보지 못했다. 신부는 카나카인들을 계속 관찰하는 것 같기도 했다.

*****

상황은 가신들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조선은 왜 우리의 신하를 마음대로 뺏어 가느냐며 초한지의 장자방의 예를 들어 불만을 제기했고, 명은 보고하지 않고 중요 기술을 독점하려 한 것은 역심이 아니냐라며 전국시대의 월나라의 예를 들었다. 여기서 조선은 우리를 아먄인에 비유하냐며 크게 분노했다.

조선 놈들, 생각보다 거친 표현을 쓰는데.”

저 놈들은 애초에 북진할 생각이 있었던 겁니다.”

버릇없는 오랑캐에게 혼쭐을 내줘라.”

명과 건주여진간의 밀서가 오가며, 다량의 군자금이 건주여진에 유입되었다. 전쟁 도발은 건주여진 쪽이 먼저였다. 국경에서 약 10명의 조선군이 기습으로 사망했다. 카나카인들이 탈출한지 불과 3주 만에 조선의 북방에는 전운이 돌고 있던 것이다. 조선은 주전파와 주화파가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주화파가 모두 참수당하는 일을 겪었다. 여러 장수가 겁쟁이의 오명을 쓰고 죽었지만, 국력이 안정적인 국가여서 국방을 하기에 무리는 없었다.

건주여진도 나름 자신이 있었다. 그들은 당대 최강의 기병대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신기오로 가문은 그들의 옛 땅인 함경도를 회복할 야심을 품고 있었다. 사서에 따르면, 양국 국경에서는 3일간 밤낮없이 긴 신경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여진족인 우리가 진정한 고구려의 후손이다. 평양을 내놔라.”

우리는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의 후손이다. 만주를 내놔라.”

이 회담 마지막에 조선은 계략을 쓴다. 잠시 긴장을 풀 겸 서로에게 술을 권했는데, 여진인이 취하자마자 무명의 조선 장수가 뛰어들어 외교관과 작전참모를 죽였다.

[더러운 오랑캐 주제에 입을 함부로 나불대지 마라!]

원칙대로라면 즉결 참수감이었겠지만, 의외로 민심은 장수의 편이었다. 조선 왕은 고심 끝에 그에게 기병 1000기를 지휘하게 하였다.

그 후 일주일 간, 조선은 만주로 빠르게 진격하였다. 조총이란 새로운 무기와 3열 장전 방진(方陣)이란 새로운 전술이 만든 결과였다. 가장 앞에는 방패수가, 두 번째 열에는 명사수가, 세 번째 네 번째 열에는 장전수가 배치된다. 측면 양익에는 기병대가 배치되었고, 후미에는 조총을 든 기마병이 있었다.

[조선군에게 가까이 갈 수가 없다...]

[가만히 있으면 기마병이 화포를 쏘고 도망간다...]

게다가 어이없이 총사령관을 잃은 건주여진은 제대로 된 싸움조차 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게다가 조총이 만드는 연기와 폭음은 그들의 기병대를 겁먹게 만들었다.

[조선인의 활과 화포를 조심해라!]

[놈들은 말 위에서 화포를 쏴댄다.]

이 조선의 진격은 갈라져있던 여진 3부족을 일시적으로 뭉치게 만들었다. 순망치한이라고, 건주여진이 무너지면 나머지 야인여진과 해서여진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었다.

[형제들을 구하라...]

여진족들은 새로운 깃발을 들었다. 바야흐로 몇 백년 전에 사라진 숙신(肅愼) 연합의 재건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두 세력은 만주의 길림성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한 쪽은 나라를 잃고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과 분노가, 한 쪽은 만주를 재패하고 여진 3부족의 땅을 얻겠다는 야심에 차 있었다.

바라고 있던 국력 대 국력의 대결이 되자, 조선 명종은 흡족하였다.

[여진족 오랑캐를 잡아서 노비로 만들자. 그리고 조선의 노비들은 승전 후 양인으로 면천시키자.]

고토 만주, 특히 건주여진의 수도 길림성의 존재감은 동아시아에서 무척 컸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승부였던 것이다. 명종의 이 파격적인 칙령으로 두꺼운 솜옷과 창 하나를 잡은 조선 노비병들의 북진이 시작되었다. 여진족도 노인부터 여자까지 전부 무장하고 조선군에 맞서니, 양측의 병력은 총합 10만이 넘었다.

[조선인들이 우리 동포를 죽이고 있다.]

[저 놈들, 생각보다 강하다.]

물론 명나라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즉시 요동에 병력을 파견하며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확실히 생각보다 강하다...]

그렇게 탐색전에 가까운 1차 회전이 시작되었다. 첫 돌진은 여진족 측이었다. 굶긴 소의 머리에 창검을 묶고 꼬리에는 불을 붙였다.

조선군은 이를 두고 처음에는 역시 오랑캐라며 비웃었다.

[1열 사수 발포하라!]

미친 듯이 뛰어가는 황소들이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황소들은 맹렬히 돌진하고 있었다. 방패로 막을 수 없는 기세였다. 다급해진 1열의 명사수들이 2열의 조총을 잡고 다시 발사했다. 황소의 반 이상이 죽었지만 아직 전열이 위험했다. 마침내, 3열의 조총까지 받아 전부 발사했다.

[제기랄...!]

조총 재장전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여진족이 노린 것은 그 틈이었다. 꽹과리 소리가 나고, 숲에서 방패가 달린 수레가 나타났다. 조선군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검차(檢車)!]

고향을 잃은 성난 여진족들이 조선군을 향해 돌진했다. 활을 쏘았지만, 검차를 저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마침내 조선인들은 자신들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깨달았다.

조총에만 힘을 쏟느라 돌격 기병을 소홀히 한 것이었다. 게다가 조총에 쓸 불씨를 지키기 위해 보병 거의 대부분이 갑옷을 간소하게 입고 있었다.

[전부 칼을 뽑아라.]

[전부 칼 뽑으랍신다!]

[제길, 제기랄...!]

먼저 방패수들이 몸으로 검차를 저지했지만, 거의 모두가 큰 부상을 입었다. 방패가 없어진 조총수들은 여진족들의 칼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아 아 아 아 아!]

조선군이 최대한 피하려고 했던 육박전이 시작되고, 여진족 기병대가 정면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이 전초전으로 조선군은 약 500명이 사망하고, 여진족은 3명이 부상을 입는다. 여진족들은 첫 승리에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우리가 드디어 이겨봤어...!]

[조선인들을 몰아내자.]

조선 명종은 이 첫 패배에 격노하여, 전투 중간에 도망친 현장 지휘관을 죽인다.

[오랑캐들은 매우 억센 놈들이니, 길림성을 포위하여 물 한 모금도 주지 마라!]

조선은 뭉쳐진 7만이었지만, 숙신 연합은 산개된 3만이었다. ‘손자병법에도 나온 대로 이런 상황은 당연히 조선 측이 유리했다. 지휘계통의 통일 문제도 있지만, 1만 건주여진의 세력은 길림성 안에서 고립무원 상태였고, 나머지 2만 야인여진과 해서여진은 강 건너에 포진하여 함부로 돌진할 수 없었다. 강을 넘는 사이에 조총에 맞아 전멸할 것이 뻔했다.

모든 보고를 받은 명 천자는 불안해했다.

이제 슬슬 우리가 나갈 때가 아닌가?”

이 상황에서 제후국 어느 하나의 편을 들어 군대를 몰게 되면, 천하를 다스리는 위신에 금이 갈수도 있습니다. 고작 오랑캐를 구제하기 위해 천자의 군대를 움직이실 생각이십니까? 주변 이민족 국가가 우리도 대명에게 침략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천하의 평화가 깨지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

아직은 둘 다 자멸할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

아니면...”

저번에 요동에 배치된 유럽 오랑캐들 말이지...”

오랑캐는 오랑캐로 잡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칙서가 필요합니다.”

*****

고립무원의 길림성에 찬바람이 불었다. 얼마 전의 승전은 온데간데 없이 절망과 피로감만 가득했다. 건주여진의 족장마저 불을 아끼기 위해 생쌀을 씹어야 했다. 게다가 성 안에는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성을 포위한 조선인들이 투석기를 이용해 인분과 썩은 황소의 시체를 발사했기 때문이다.

[저 놈들의 화살촉을 만지지 마라...]

[만지면... 질병에 걸린다...]

농성측인 건주여진도 성 밖에 인분과 쓰레기를 던지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질병에 걸린 사람의 시체도 발사했다. 하나 둘 쓰러지는 여진인들이었지만, 조선인에 대한 증오는 나날이 커져갔다.

성 안의 어린 아이들은 평화를 부르짖었다. 어린 시절의 타마라 공주처럼 조그만 소리에도 크게 울었다.

[늙은이들이 일으킨 전쟁에 왜 우리가 죽어야 해!]

성 밖의 조선인들도 똑같은 말을 주고받았다. 특히 징집된 노비들이 그랬다.

타마라는 높은 언덕에서 길림성을 보며 눈물을 보였다.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지 예상은 하고 있었다. 카나카의 자국민을 지키기 위해 다른 나라 사람을 죽여야 한다니, 어린 소녀의 가슴에 천둥이 울리고 있었다.

[가신들은 들으라!]

드디어 타마라는 공주로서의 첫 명령을 내렸다. 하이난 섬의 행정 인수인계를 받는 아버지의 대행이었다.

[, 공주님.]

[와카 가문의 후계자이자 카나카 총독의 대리인으로서 명한다. 싸움을 중재하라!]

카나카인들이 노도와 같이 달려 나간 것은 그 때였다. 옆에는 엔리코 신부 개인의 호위병이 딸려있었다.

싸움을 멈춰라! 황명이다.”

소비에츠키가 칙서를 펼치고 고함치며 말을 몰았다. 양측 군대는 난생 처음 보는 독수리 깃발과 대명 천자의 깃발을 보고 움찔했다. 활시위를 당기던 궁수들은 황제의 깃발이 보이자 바로 활을 거두었다.

, 쉴레지아의 소비에츠키는 대명국 황제와 카나카 공주의 명령을 받았다.”

소비에츠키는 위풍당당했다. 그는 전신을 판금으로 감싸고 있었으며, 등에는 커다란 두 날개를 달고 있었다. 그것은 오스만 제국이 그토록 무서워했던 폴란드 정예병의 상징이었다.

카나카? 공주?”

카나카의 타마라 공주다.”

, 그 배신자 남만공주 말이지.”

그러나 소비에츠키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타마라의 정식 호칭을 읊었다.

카나카의 적법한 후계자이자 마조비아의 계승자, 하이난 섬의 여공작이며 폴란드의 고귀한 혈통을 타고난 타마라의 명령을 받았다. 양측은 즉시 군대를 물려라.”

그 계집이 뭘 했다고 이름을 들먹이느냐?”

황제의 칙서를 못 보는 네 놈은 장님이구나. 양국이 화해하는 조건으로, 명의 천자는 조선의 독자적 연호사용을 허락한다. 또한 대왕의 칭호를 사용하는 것을 허락한다. 그러나 압록강과 두만강 주변에 군인을 배치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그 칙서는 거짓이 아니냐? 가까이 와봐라.”

네가 이 쪽으로 와라.”

늙은 오랑캐 놈아, 죽을 준비는 했느냐? 그 년이 여진족을 충동질했지? 기생집 창기처럼 말이다.”

조선인 장수가 소비에츠키에게 활시위를 다시 당기며 외쳤다.

가까이 와서 다시 말해봐라. 내가 무섭나? 너는 창녀만도 못한 비겁한 놈 아니냐! 게다가 칙서에 흠집을 내면 조선 자체가 멸망당할지도 모른다!”

소비에츠키는 코웃음치며 그 조선인 장수를 도발했다. 그 때, 어떤 여진족 장수가 소비에츠키에게 조선어로 떠듬떠듬 말했다.

내가 죽인다, 저 선봉장은 비겁자다!”

저 놈이 술을 먹이고 칼부림을 한 놈인가?”

그렇다! 우리 장군을 비겁하게 죽였다.”

소비에츠키는 칙서를 말에 매어놓고 칼을 뽑으며 조선 진영에 외쳤다.

들었나? 너도 남자라면 정정당당히 싸워봐라. 기병대장이면 기개를 보여라!”

조선군이 우리 대장은 이런 모욕을 참고도 싸우지 않는가?’라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오랑캐 자식아!”

치마저고리를 입고 다녀야 할 놈이, 왜 칼을 차고 다니는가?”

듣다 못한 조선인 장수가 단기필마로 뛰쳐나왔다. 동시에 여진족 진영에서도 한 거인 장수가 뛰어나왔다.

나는 두만강 너머 사는 투르케다. 우리 고향을 박살낸 조선놈은 칼을 받으라!”

네 이웃들은 꽤나 예쁘장하더구나.”

개자식!”

벼락같은 기합소리와 함께 창과 칼이 부딪혔다. 두 날붙이는 때로는 번뜩였고, 때로는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이 대결을 보는 가운데 여진족 전사의 겨드랑이에서 피가 분수쳤다.

개자식, 개자식...!”

갑옷 맞출 돈도 없었나?”

그건 너희들이...!”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여진족 장수의 눈에 창끝이 크게 들어왔다. 한 많은 장수는 비통한 비명을 지르며 말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여진족은 크게 동요했다.

우리 쪽 가장 강한 전사가 죽었다...”

오랑캐 놈들 꼴 좋다!”

조선인들이 춤을 추며 즐거워하기 시작했다.

호오. 생각보다 실력이 있는데.”

다음은 너다, 남만 오랑캐 자식아...!”

조선인 장수가 이번에는 편곤과 철퇴를 들고 소비에츠키를 향해 돌진했다. 그는 자신만만했다. 자신은 두정갑을 입고 있었고, 소비에츠키의 갑옷은 왠지 얇아보였다.

편곤과 칼, 리치가 짧은 소비에츠키는 첫 정면충돌을 피했다. 소비에츠키는 손목을 비틀며 우선 한 합을 막아냈다.

, !”

이 폴란드인 백전노장은 말을 급하게 선회시키며 조선인 장수의 등을 잡아냈다. 조선인 장수가 아연실색하여 등 뒤로 철퇴를 휘둘렀으나, 이미 소비에츠키의 칼날이 조선인 장수의 뒤통수를 찌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당장 죽지 않고 입에서 거품을 내며 버티고 있었다.

비겁자 주제에 그럭저럭 싸울 줄 아는구나.”

, 새끼...”

나는 이마에 화살을 맞고도 싸운 적이 있다.”

소비에츠키가 이번에는 그의 손목을 내리쳤다. 큰 출혈이 일어나며, 조선인 장수는 말 위에서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결정타는 목 베기였다. 조선인 장수는 그 일격 이후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했다.

피를 뒤집어 쓴 독수리 기사의 모습은 모두를 전율케 했다. 전장 사방이 조용해졌다.

또 덤빌 놈은 있느냐? 카나카는 숙신 연합의 독립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또 덤빌 놈은 있느냐?”

그만, 그만 합시다.”

대명 천자의 명을 어기고 멸망을 당할 거냐, 아니면 지금 양측 모두 군대를 물릴 거냐!!!”

벼락같은 호통에 조선 장수들이 뒷걸음질하기 시작했다. (만주가 없는) 반도의 국력만으로는 명 같은 통일 왕조와 방어전을 치루는 것도 버거운데,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신흥국가와 적대하면 끝장일 거란 예감이 들었다. 기세가 오른 여진인들이 마음껏 고함치기 시작했다.

침략자, 개자식들아!”

너희들이 먼저 우리 쪽 경비병 10명을 죽여서...”

입 닥쳐!”

훗날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라고 불리는 한 여진족 10대 청년이 눈물을 흘리며 침략자들에게 돌을 던졌다.

한 젊은 조선인 장수는 상부의 지시를 어기고 부하들에게 후퇴를 명령했다. 그로 인해 한동안 백의종군의 치욕을 당했으나, 아직까지도 그의 이름은 세계사에 찬란히 빛나고 있으니... 조선의 수호자, 민족의 성웅은, 이 날 여진족 마을의 잿더미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

화가 난 명종은 백제의 후예를 자처하는 일본의 오우치 가문과 동맹을 맺고 다시 만주를 침공하려 했으나, 오우치는 집안 사정도 바쁘다며 거절하였다.

신생 국가인 숙신 연합은 며칠간 내부 혼란을 겪었다. 국가 통합의 필요성은 느꼈지만, 어떻게 누구를 최고 지도자로 할지가 문제였다. 이에 타마라 공주가 지나가듯 답하길,

어머니의 고향 폴란드는 지금 투표 군주정을 하고 있어요.”

투표 군주정...?”

귀족 가문 사람들이 한 표를 행사하는 거예요.”

이에 1차 회전에서 용맹을 떨친 누르하치가 1대 국왕으로 선출된다. 선대 아이신기오로가 농성중에 화살을 맞고 사망하여 후계자가 대신 지목된 것이다. 새로운 국명은 이었다.

그리하여 동아시아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다만 대대로 이어지는 증오만이 흉터처럼 남았다.

 

 
+ 작가의 말 : 조선이 악역일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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