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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 1챕터 피드백 일자는 편집부 사정상 이번주 목요일(11월 14일)까지 작성됩니다.
늦어지게 된 점 죄송하게 생각드리며, 수정을 위해 3주차 마감을 다음주 월요일(11월 18일)로 연장합니다.
피드백을 받은 뒤 이미 작성된 글을 수정하셔도 무방하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검토는 최종 수정 원고가 기준이 됩니다.

 
사랑의 'The End', 알고 싶습니다.글 아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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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챕터
13-10-23 23:13
 
 

아침. 정확히는 7시 몇 분 전.

뭔가 기분 나쁜 꿈을 꾼 듯 마음이 매우 어지럽다. 곧 있으면 시끄러운 알람이 울릴 텐데 빨리 정신 차려서 끄지 않으면..

“잘 주무셨습니까, 현성아. 벌써 아침이라구. 어서 일어나지 않으면 준비에 늦어요, 오빠.”

“.....또 어떻게 들어온거야아아....”

게다가 그 괴상한 말투는 또 뭔데에..

순식간에 팔에 집중했던 힘이 빠져버렸다. 알람보다 더 신경 거슬리는 목소리에 슥슥 눈을 비비고 정면을 쳐다봤다. 어제 봤던 그 웬수의 얼굴이 보였다. 저 녀석이 남자였다면 바로 미련 없이 얼굴을 날려버렸을텐데..

입고 있던 옷은 어째선지, 검정과 하양 베이스에 레이스가 풍성한 전형적인 메이드복이었다. 쉽게 볼 수 없는 옷차림에 약간 황당했다.

“아직 현성님의 취향을 모르는 관계로 약간의 베리에이션을 넣어봤습니다만, 어느 쪽이 마음에 드시나요.”

“난 당장 네가 맘에 안 들어.”

“네, 알겠습니다. 세안을 도와드릴까요?”

“가볍게 무시하지 마!”

아침부터 고성을 지르게 하는 녀석이다.

그녀는 내 외침에도 아랑곳 않고 이쪽을 무표정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그녀의 머리에 있는 헤어핀에 태양빛이 반사되어 자연스럽게 눈이 찌푸려졌다.

“분명 문까지 잠궈뒀는데 어떻게 들어온 거야?”

“텔레포트입니다.”

“진짜?!”

“사랑의 힘으로 안 되는 건 없다고 배웠습니다.”

“그런 초차원적인 힘이 발휘될 리 없잖아!”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약간 갸웃했다.

“하지만, 사랑의 힘은 위대한데요.”

“그게 무슨 이유가.. 후우.. 됐어, 이젠..”

이렇게 말만 계속 늘여봤자 시간만 헛되이 갈 뿐이다. 등교하기 전 아침이란 숭고한 시간을 말싸움으로 낭비해선 안 된다. 가만히 서있는 그녀를 내버려두고 밖으로 나갈 채비를 시작했다.

“...세안, 도와드리겠습니다.”

“따라오면 다시 내쫓을 거야.”

“내쫓으면 다시 들어오겠습니다.”

“.....후우.”

아무래도 내 말이 더 이상 협박으로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하아,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사건이 벌어진 건 어제 방과 후, 내 기숙사실에서였다.

부실에 잠깐 들렸지만 오늘이 부 활동 날이 아닌 걸 기억하고 바로 기숙사 쪽으로 몸을 옮겼다. 나를 제외한 부원들 모두가 각자의 사정으로 바쁘단 걸 알고 있으니, 부실에 멍하니 혼자 있는 것보단 기숙사로 돌아가 숙제라도 하는 게 더 이익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다들 부활동 한창이라 그런지, 기숙사는 전체적으로 조용했다. 이게 폭풍전야란걸 눈치채기엔 내 미래예지 스텟이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게 문제였다.

철컥,

방문을 열고 바로 확인한 건, 뭔가 향기로운 냄새였다. 남학생 둘이 사는 방에서 나는 냄새라고는 믿지 못할, 그런 향기가..

“......어?”

반사적으로 시선을 줬던 화장실 쪽에서,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아직 열기를 머금은 듯한 실루엣에, 몸을 덮은 새하얀 목욕가운, 그리고.. 약간 탁한 분홍색의 긴 생머리. 어째선지 무표정으로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였다.

확실히 여자였다.

그것도 목욕을 막 마친 듯한 여자의 몸이...

털컹!!

사고회로가 끊기기 전에 빠르게 문을 닫고 호수를 확인했다. 108호. 그리고 이쪽은 남학생 기숙사. 절대로 틀릴 리 없다.

학교 오른편, 도서관 바로 옆. 창문 밖으로 보이는 광경도 평소랑 다름없다.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뇌가 쓸데없이 이성적으로 돌아간다. 재빨리 남학생 기숙사에 여자가 있을 이유를 생각해낸다.

재빨리......생각해낸다........

‘....아무 생각도 안 나잖아?!’

이성적 뇌로 도출 가능한 결과가 아닌 모양이다. 그만큼 비현실적인 얘기다.

아, 그건가. 여자를 데려온 건가? 룸메인 승범이가 여친을 데려왔단 얘기구나. 음, 그거라면 충분히 현실적이다. 있을 법하다.

...........

“말이 안 되잖아!”

혼자서 헛웃음을 짓고는 허공에 태클을 걸었다. 지금이 부 활동시간 후가 아니라서 다행이지, 누군가 이런 모습을 봤다면 난 쪽팔려서 죽어버렸을 거다.

그렇게 (정말 쓸데없이)이성적인 뇌가 혼자서 오작동을 하고 있을 무렵, 바로 뒤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옷 벗고 있는 여자를 혼자 오래두는 거, 비매너.”

“.......네?”

“어서 들어오지 않으면, 이 상태에서 비명을 질러버리겠습니다. 하나, 둘..”

“어, 얏! 잠깐..!”

진심으로 비명을 지를 준비를 하는 그녀를 막으려고 한 건 좋았으나, 준비자세가 그리 좋지 않았다.

턴을 하는 순간 바로 발이 꼬이고, 몸은 그녀를 막으러 앞으로 돌진하는 모양새였다. 상하체가 따로 논다는 얘기가 바로 이거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째선지 내가 그녀를 진심으로 덮치는 듯한 모양이 돼버렸다. 그것도 남자 기숙사, 내 방 현관에서.

‘.....?!’

넘어진 그녀는 어째선지 목욕가운이 걸쳐져 있지 않았고(왠지 넘어지면서 일부러 날려버린 느낌이 들었지만?) 어째선지 살색으로 가득했고, 어째선지 아까 맡았던 향기로운 냄새도 가득하고.. 어째선지, 어째선지........

아, 상황파악은 더 이상 무리.

“...이게 말로만 들었던 현관합체군요. 상당히 부끄럽습니다.”

“저, 전혀 부끄러운 게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녀가 무표정이었기 때문이다.

“자, 그럼 저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대로 몸을 만져져서 기분 좋은 비명을 지르면 됩니까? 아니면 너무 기분 좋아 말도 못할 정도로 읍, 읍거리며 신음소리를 내면 되는 겁니까?”

“나한테 묻지 마! 그런 걸 생각할 시간에 그냥 일어서라고!”

“싫습니다.”

묘한 곳에서 단호한 그녀였다. 그렇다면 나라도 이 자세에서 일어서면 되는 거...

응? 몸이 제대로 안 움직여..?

‘...어라?’

자세히 보니 내 등 뒤로 그녀의 손이 묶여있었다. 이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듯 힘도 어느 정도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이거 뭐야?! 빨리 손 풀어!”

“싫습니다.”

“아까는 이런 자세 부끄럽다며!”

“네. 당신이 부끄럽습니다.”

“너 한국말 제대로 못 하는 거지?!”

그녀의 힘이 생각보다 강해서 자세를 바로 할 수가 없었다. 뭐야 이 무지막지한 힘은?! 아니면 내가 힘이 약한 건가? 좀 더 제대로 힘을 줘서..!

“흐앗..! 크으으...!”

“그, 그렇게 힘을 주면.. 하읏..! 흐앙..!”

“이상한 소리 내지 마! 것보다 무표정으로 그런 신음소리는 반칙이라고!”

“아, 가버린 표정이 역시 좋은 건가요.”

“너 입이 아주 시궁창이구나?!”

누군 미쳐 돌아가시겠는데 저 여자는 무덤덤하게 에로한 말을 가벼이 쏟아낸다. 보면 볼수록 대단하.. 아니 그보다 팔에 힘부터 풀어주라고..!

“너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당황함을 넘어 억울함까지 느낄 것 같다. 하지만 내 필사적인 말에도 그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초면에 욕설에다 반말이라니, 비매너의 표본이시군요.”

“쓸데없이 말 돌리지 말고!!”

“사랑합니다.”

“.....뭐?”

“강현성, 사랑합니다. 저에게 사랑의 끝을 알려주세요.”

“.......”

힘주는 걸 멈추고 그녀를 멍하니 쳐다봤다.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무표정.

하지만 아까 그 말에 진심이 담겨있다고 무심코 생각해버렸다. 정말로, 무심코 말이다.

“임팩트 있는 첫인상. 이걸로 완료일까요.”

“그게 무슨..”

그 순간, 등에 느껴진 압박이 사라지더니, 나는 힘이 풀린 채로 옆으로 쓰러졌다. 그제서야 나는 현관문이 제대로 닫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행히 아까의 그 난리는 밖으로 생중계되지 않았단 소리다.

그리고 나서 다시 확인한 그녀의 모습은.. 아까의 살색 가득한 모습과는 다르게 제대로 옷을 갖춰입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 학교 교복이다.

“제 이름은 피니스. 지구 밖에서 온 러버노이드. 그리고, 이레귤러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강현성.”

“.....”

뭘 어떻게 말해야할지 몰라 입을 다물고 있는 나에게 그녀는, 슬며시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나니, 그녀는 내 몸을 손으로 털며 슬쩍 중얼거렸다.

“방금의 무례는 사과드리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상황극. 시츄에이션.”

“......왜.”

“네?”

“왜. 어째서..?”

나는 넋이 나간 듯 그녀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고, 세차게 흔들며 소리 질렀다.

“어째서어어어어어어!!!!!!!!!”

....물론, 아까의 난리가 상황극이라는 사실에 절망한 외침이 아니라고 못을 박아두고 싶다. 정말 그런 게 아니다. 거센 부정은 긍정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건 거센 부정이다.

난 어디까지나 평화로운 일상의 망가짐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거다.

내가 있는 힘껏 흔드는 와중에도,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그 후로 내가 설움을 폭발시켜 거세게 따질 때도, 내쫓을 때도, 그녀는 무표정을 유지하며 나에게 말했다.

“사랑합니다. 현성님.”

그런 말을 듣고 있자니 더욱 미쳐간다는 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난리가 있은 지 하루 뒤, 현재 그녀는 내가 씻고 있는 모습을 화장실 밖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들어오지 않은 건 최소한의 자비일까. 어찌됐든 계속 느껴지는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너, 도대체 뭐야? 어제부터 계속..”

“저는 러버노이드. 현성님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로봇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아니 인간.”

“와, 그것 참 기쁘지 않은데.”

“칭찬은 속삭여주시는 편이 더 좋습니다.”

아무래도 비꼬는 말을 칭찬으로 듣는 기능이 달려있는 모양이다. 엄청 성가시다.

대충 씻는 걸 마치고 나가니, 그녀는 멀뚱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를 기다리는듯한 모습이었다.

“뭐, 뭐야. 할 말 있으면 하라고.”

“어제 감지했던 심각한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 성가시지 않습니까?”

그걸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냐.. 아니, 사람이 아니랬나.

나는 수건으로 대충 머리를 닦아내가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사실 엄청 성가셔. 하지만 쫓아내봤자 너, 다시 들어올 거잖아. 그런 데에 쓸데없는 데에 힘쓰기는 싫으니까.”

“...그것 참, 매우 귀차니즘한 반응이군요.”

“실용적이고 합리적이라 말해주면 고맙겠는데.”

그녀의 말대로 남이 보기엔 내 모습은 그저 한없이 게으름뱅이에 가까운 느낌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을 참으로 실용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뭐라든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거에 신경 쓰는 것도 바보 같다고 생각하니까.

“그럼, 저를 받아들이는 건가요.”

“아니, 전적으로 거부하고 있어.”

“머리를 말려드릴까요?”

“아니... 어, 가능하면 고맙겠는데..?”

그녀는 나에게 드라이기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금방 찾아가지고 왔다. 그러더니 옆구리 부분에 코드를 연결하여 작동시켰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슬쩍 말을 꺼냈다.

“손에서 바람이 나온다던가, 그런 거 아니었어?”

“..조금 이상한 데에서 실망하시는군요. 현성님은. 저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로봇일 뿐. 만능은 아닙니다.”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론 옆구리에 콘센트가 있는 건 설명이 안 되는데.”

“그건 금칙사항입니다.”

지금은 한물 가버린 유행어를 무표정으로 하는 그녀를 보면서, 약간은 귀엽다고 생각했다.

‘딱히 물리적으로 해를 입히는 것도 아니고.. 음..’

이 정도로 적응을 해버린 나를 보며 새삼 놀라게 된다. 주변에서 조금 별나단 얘기를 듣긴 했지만 이런 상황이 금세 편하다고 느껴버리다니.. 진짜 이상한 건가..

“아, 그러고 보니 듣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내 머리를 대충 휘적거리며 말했다.

“뭐를?”

“오늘 아침에 했던 인사의 답 말입니다.”

“...아침에 했던 인사?”

아, 그 뭔가 복합문적인 아침인사 말인가.

“그래서, 현성님은 어느 쪽이 취향입니까. 메이드? 동급생? 여동생?”

“음.. 딱히 어느 쪽도 아닌데.”

“재미없는 인간이군요.”

“재미없어서 미안하게 됐네.”

“아뇨, 맘에 듭니다. 제 취향입니다.”

“.....”

어, 어라? 약간 고마운 느낌이 드네..? 이래도 되는 건가..?

이렇게 그녀에게 맡긴 헤어 드라이가 슬슬 끝날 때쯤, 약간 곤란한 일이 생겨버렸다. 아니, 다시 말하면 조금 귀찮은 일이..

“어이! 준비 다 끝났냐!”

문을 벌컥 열며 나타난 그 녀석은, 보기 거북할 정도로 상쾌한 웃음을 머금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벙찐 표정을 지었다.

아.. 젠장.. 저 녀석은 왜 이런 타이밍에 오고 난리야..

“여, 여자...? 그것도 메이드복에 미인... 코스프레?! 양다리?!”

“이상한 결론을 도출하지 마! 양다리는 갑자기 뭐야!”

“네놈이 더 이상하다고! 내가 없던 사이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아아, 젠장. 저 바보한테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저 소프트 모히칸은 누구인가요.”

슬쩍 묻는 피니스에게, 나는 단답했다.

“신승범이라고.. 사실 여기 같이 사는 룸메이트. 아.. 젠장. 귀찮게 됐네..”

저 녀석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난감해하고 있는 도중에, 내 뒤에 있던 피니스가 일어서서 현관 쪽으로 다가갔다.

혹시 나 대신 상황을 정리해주려고 그러나? 이것 참 고마운...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부터 현성님의 연인인, 피니스라고 합니다.”

성가심...!!!!

“여, 연인..! 게다가 외국 이름..! 야, 현성이 너, 너...”

“잠깐. 둘 다 더 이상 지껄이지 마. 나 미치는 꼴 보기 싫으면..”

잠깐 동안 너한테 느꼈던 편안함 따위 리셋이다. 역시 피니스 네 녀석은.. 내 인생에 매우 귀찮은 걸림돌이 될 여자인 듯하다..

“...연인이 맘에 안 드신다면, 부인도 괜찮습니다만.”

“응, 내가 널 부인하고 싶어지니까 안 괜찮아.”

어쨌건 그녀의 입을 봉쇄해두고, 굳이 지금, 이 시간에 찾아온 룸메 승범이에게 어제의 일을 내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했다. 어제 있었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됐잖아! 하는 이상한 귀차니즘이 발동했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녀석은 그저 내가 다른 녀석이 룸메인 건 어색하다고 해서 끌어들인 피해자에 가까우니까. 집도 근처인데 일부러 나를 위해 같이 기숙사를 잡아주겠다고 한 고마운 녀석이다. 그러니 나는, 설명의 귀찮음을 눌러죽이면서도 최대한 설득시킬 수 있도록 말을 해줬다.

물론 어제의 현관합체(합체는 안했지만)에 대한 건 말하지 않았다.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내 그런 필사적인 항변을 들은 승범이의 대답은, 생각 외로 차가웠다.

“어. 믿어. 아니, 믿어주세요.”

“싫은데.”

입꼬리를 씩 올리고, 간결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은, 내가 알고 있는 표정 중에서...

제일 짜증나는 표정이었다.

“아~ 이 사실을 누구한테 알릴까? 일단 남자 기숙사에 여자가 있단 사실부터 시작해서 현성이 너한테 새로운 여친이 생긴 것 같다고 이윤이에게 말하는 것까지... 이야, 말할 거리가 장난 아니게 많은데?”

“....워, 원하는 게 뭐야?!”

이윤이에게 말한다는 사실은 생각치도 못했다. 만약 진짜로 이 말이 이윤이 귀에 들어간다면....

내 앞에 펼쳐진 건 지옥불이거나 헬파이어거나 아마겟돈이다.

“이윤이랑 데이트하게 도와줘.”

“....의외로 간단해서 놀랐다.”

“간다안? 아, 그래. 너한테야 그렇지.. 난 절대 아니거든?!”

진지하게 따지는 승범이의 모습에 약간 놀랐다. 뭐 이 녀석이 이윤이를 좋아한다는 거야 예전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 이윤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갑자기 피니스가 중간에 끼어서 말했다. 무표정이었지만 궁금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모습에 약간의 불안감을 느꼈다.

“응? 아, 이윤이라고. 현성이 반의 반장인데 사실 이 녀석을 무진장 좋아...흡.”

“더, 더 이상 말하지 마..”

급하게 그의 입을 막았다. 이 이상의 정보가 그녀에게 들어가면 분명 귀찮은 일이 벌어진다. 100퍼센트가 부족할 정도의 확률로...

하지만 내가 입을 막은 보람도 없이, 피니스는 정리한 정보를 간결하게 쏟아냈다.

“다시 말해, 현성님의 걸프렌드. 라는 거군요.”

“음, 음.”

“끄덕거리지 마, 멍청아!!”

입을 막아도 진행되는 의사소통에 나는 절망했다. 불안한 모습으로 피니스를 보고 있었지만, 그녀는 예상과는 다르게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무반응, 무표정.

“그 정도의 시련은 예상한 바입니다. 자, 그럼 갈까요. 전장으로.”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옷을 우리학교 교복으로 바꿨다. 옷을 입었다거나, 착용했다거나 그런 표현은 어울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변신하듯이 쨘. 이런 느낌이었다.

“오오.. 신기하네.”

“저는 최첨단 로봇, 러버노이드. 의상 체인지는 기본 소양입니다.”

내가 입막음을 풀었던 승범이가 놀라며 말했다. 너도 참 별난 녀석이구나.. 이런 게 금방 익숙해지다니..

“그.. 피니스라고 했나? 로봇이라면 로켓펀치 같은 것도 가능해?”

“처음 보는 애한테 뭘 시키는 거야?!”

“네, 물론입니다.”

“가능한 거야?!”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그녀를 쳐다봤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말하면 아무래도 조금은 기대하게 되잖아?!

그녀는 양팔을 앞으로 쭉 뻗더니, 무표정으로 외쳤다.

“로켓~ 펀치!”

펑, 하는 폭발음과 함께 그녀의 양팔에 연기가 일어났다.

....그게 다였다.

“....뭐야? 그게 다야?”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는 연기가 나는 팔을 자연스럽게 싱크대 물로 씻으며 말했다.

“인간은 볼 수 없는 속도입니다. 방금 현관문을 뚫고 학교를 한 바퀴 돌아 다시 현관문의 철판을 붙이고 제 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0.2초.”

“오오, 대단하다..!”

“대단하긴 개뿔!!”

나보다 키가 큰 녀석의 등을 치며 정신 차리라고 말했고, 피니스를 향해서는 가볍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외쳤다.

처음부터 느낀 사실이지만, 이 여자.. 상당히 뻔뻔하다.

‘아아.. 피곤해.. 아직 교실에도 제대로 도착도 안 했는데..’

이런 식으로라면 앞으로 있을 수업 몇 교시도 못 버티고 쓰러질 것만 같다. 아, 그러면 또 이윤이한테 잔소리 듣는데.. 뭐야 이거, 불행해.

딱히 삐죽머리에다가 오른손에 능력도 있는 건 아닌데 불행해 미칠 것만 같다.

 

 

...참으로 믿기 힘든 이야기다.

로봇이 갑자기 기숙사를 쳐들어왔어! 란 것도 누구한테 말하면 웃어넘길 것 같은데 그 후의 얘기는 더욱 더 파란만장하다.

그녀, 피니스는 이미 전에 다니던 학교(외계일까..?)에서 전학처리가 되어있으며, 교환학생이란 명목으로 우리 반에 들어왔고, 마침 바꿔진 학생이 어째선지 기억도 잘 안 나는 짝꿍이라는 이야기다. 그녀에게 기억조작장치가 있는 게 분명하다. 이건 확신에 가까운 추측이다.

심지어 1달 전에 남남, 여여짝꿍이었던 제도가 남녀짝꿍으로 바뀐 것마저 이것의 밑밥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까지 하게 된다.

어쨌든, 그녀는 완벽히 이 반에 녹아들게 됐고, 나와 같은 2학년 8반 학생이라는 호칭을 갖게 됐다. 경사로세, 경사로세.....

“말도 안 돼!”

“가끔 말이 됩니다.”

내 뜬금포 태클도 그녀는 무표정으로 자연스럽게 되받아쳤다. 생각해보니 아까 인사할 때라던가 선생님과 대화할 때 웃는 표정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녀에게 물어보니 무슨 바보같은 소리를 하냐는 듯 가볍게 말했다.

“접대용 스마일은 0원입니다.”

“그걸 나에게 안 보여준단 건 나한텐 공짜도 아깝단 소리냐?”

“현성님에게 보여주는 미소는 약 100억이니까요.”

“뭔가 고마운 말인지 안 좋은 말인지 알 수가 없어졌어..”

그것보다 현성님이라는 칭호.. 계속 신경 쓰이는데..

“어차피 같은 학생이면, 님 이라는 칭호는 안 붙여도 되지 않아..?”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말하니, 그녀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호칭의 자유화.. 가능한 겁니까?”

“...어?”

그녀의 말투가 좀 놀란 듯한 말투였다. 약간 이상하게 느꼈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해줬다.

“솔직히 오늘 아침부터 거슬렸어. 그런 호칭, 부담스럽거든.”

“노예에게 호칭의 자유화를 인정하다니, 참으로 마음편한 주인이군요.”

“노, 노예?! 게다가 내가 주인이라고?!”

처음 들어보는 얘기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건 좀 이상한 사고방식 아닌가..? 계약관계로 따지면 난 순전히 네가 갑이고 나는 을인줄 알았는데 말이지..

“어쨌든, 부담스럽다면 그렇게 하죠. 현성아, 이런 걸로 괜찮은 겁니까.”

“어, 어.. 맘대로 해.”

“고맙습니다. 현성아.”

....뭔가 우스꽝스러운 말투가 되어버렸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그녀였다. 뭐, 내버려두면 알아서 고쳐지겠지. 일일히 따지기도 귀찮다.

“헤에, 아침부터 만담이라니. 초면인데 너무 사이좋은 거 아니야?”

들려온 목소리에 시선을 정면으로 돌리니, 약간 어색한 웃음의 이윤이가 있었다. 척 봐도 어색한 웃음이었다.

“뭐, 처, 첫인사잖아. 너무 어색한 것도 안 좋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친한 것도 안 좋다고 생각하는데에?”

“.....”

그녀의 말투에 순간 주눅이 들었다. 이미 본질을 파악한듯한 이윤이의 말투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말하면 말하는 대로 꼬투리를 잡힐 것 같은 느낌이기에..

주눅든 나를 뒤로 하고, 그녀는 대화 상대를 바꿨다.

“음.. 피니스? 라고 했던가. 잘 부탁해. 나는 이 반의 반장인 진이윤. 현성이하고는 오~래된 소꿉친구야.”

...어째선지 이상한 부분을 강조한 느낌이 든다만.

“아, 안녕하십니카. 처, 처는 미쿡에서 온 휘니스라고 합미타.”

“아까 현성이랑 대화 잘 하던데 왜 갑자기 그러는 거야?”

“쳇, 들켰습니까.”

너는 또 뭘 아쉬워하는 거야.

“어쨌든, 학업에 대해 곤란한 일이 생기거나 할 때엔 언제든지 말해. 그리고 모처럼 현성이 짝꿍이니까, 현성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학업 문제보다 더 빨리 말해.”

“그게 지금 전학생에게 반장이 할 소리냐.”

내 말은 신경 쓰지 않는 듯 그녀는 안경테를 검지로 살짝 들어 올리며 상쾌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상황을 봐서는 그저 가볍게 인사의 의미로 지은 미소겠지만, 매우 자연스러운 웃음으로 보이는 게 그녀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그나저나 슬슬 더워지는 날씨여도 마이에 넥타이까지 제대로 챙겨 입는구나.. 학생의 모범이 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구만..

“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거야? 옷에 뭐라도 묻어있어?”

“아, 아니 그냥. 참 모범적이다. 싶어서.”

“응? 여기가?”

그녀는 갑자기 양손으로 가슴 밑을 받치며 나를 엄마미소로 쳐다봤다. 그녀의 돌발행동에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머, 멍청아! 거기를 말하는 게 아니잖아!”

“아, 아닌 거야..?”

“뭐야, 그 아쉬움이 철철 묻어나는 말투는?!”

한 학급의 반장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사고방식을 가진 이윤이었다.

“큭.. 아쉽게도 저는 작은 편에 속하는 걸까요.”

“자연스럽게 받아치지 마!”

남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슴 토크라니, 도대체 둘 다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진이윤 씨라고 하면.. 아까 현성아의 친구가 말했던 걸프..”

“성가심 차단!”

책상 위에 놀고 있던 오른손으로 급하게 피니스의 입을 막았다. 이걸로 충분히 차단 완료.!

“걸프렌드 아니냐고?”

“실패다..!!”

어째서 입막음을 해도 이렇게 자연스러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거냐고?! 이래선 입막음이란 말이 부끄러워 얼굴도 못 들거야!

“걸프렌드... 그렇네. 하지만 비공식이란 느낌?”

“비공식..말입니까?”

피니스의 물음에 이윤이는 내 쪽을 일부러 강하게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응. 아무리 해도 남자 쪽이 인정해주질 않거든. 눈치가 없는 건지, 내가 싫은 건지, 어느 쪽이든 가끔은 그냥 죽어버렸으면..하고 생각해버릴 정도라니깐.”

어느 쪽이든 가볍게 목숨을 위협받는 현재의 나였다.

“그, 그건 내가 어느 쪽도 아니니까.”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네. 하지만 여자를 계속 기다리게 하는 남자는 꼴불견이란 걸 현성이가 잘 알려나 모르겠네.”

“그렇군요. 현성아는 여자를 기다리게 하는 남자였군요. 어제도 말입니다...”

“자, 잠깐! 둘 다 다른 화제로 가면 안 되시렵니까?”

이래저래 매도당하는 느낌이라 몸 곳곳이 쿡쿡 찔린다. 게다가 피니스가 저 화제에 대해선 더 이야기해선 안 되고. 방금도 이윤이가 피니스에게 주의를 기울였다면 어제의 그..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한창 토론이 또 벌려졌을 테니까..

이윤이는 내 말을 듣고 잠시 눈을 위쪽으로 올려 생각하는 듯하더니, 바로 다른 화제를 떠올린 모양이다.

“음.. 그러고 보니 오늘 부활동 하는 날이지?

“어? 어, 그러게. 오늘 맞네.”

“뭐야, 부장이나 됐으면서 좀 제대로 관리하지?”

“몰라, 귀찮아. 어차피 제대로 하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

이렇게 이윤이와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피니스가 내 교복 옆자락을 당겼다. 뭔가 말할 게 있는 듯했다.

“부활동? 그런 것도 있습니까?”

“어? 알고 있는 거 아니었어?”

그녀는 머리를 양옆으로 붕붕 돌렸다. 로봇도 저렇게 자연스럽게 돌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저는 그저 이 학교의 교복과 주요 간부 목록들 외엔 다른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흠, 그래..? 그냥 간단히 설명하자면..”

“잠깐! 그런 거라면 나한테 물어봐야지!”

갑자기 이윤이가 끼어들었다. 대신 설명해준다면 나야 상관없다. 오히려 이쪽이 좀 더 설명을 잘하기도 할 것 같고..

“피니스, 우리 학교에 대해선 대충 알고 있어?”

“음.. 특성화고교. 라고 하더군요.”

“응, 맞아. 그것도 다목적이지. 우리 학교는 취업에 필요한 기술부터, 취미로서의 간단한 스포츠, 문화 활동 등등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지원해주고 있는 학교야.”

이윤이는 설명에 열을 올렸다. 피니스도 그에 집중하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했다.

“4교시 후,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4시간 동안 각자 자기가 정한 부 활동에서 활동을 해야 해. 우리 학교에서는 이걸 의무 부활동이라고 해. 부 활동을 하나를 집중해서 하든, 여러 개를 나눠서 하든 그건 자신의 선택이고.”

아, 그걸 의무 부활동이라는 이름으로 하고 있었어? 처음 듣는 사실이구만.

하지만 이런 소리를 실없이 했다간 이윤이에게 혼날 게 뻔하니, 그저 난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 외에도 학교 자체에서도 지원해주는 활동들도 있고, 봉사, 외부업체 지원 등등 매우 다양한 활동들이 있지. 의무 부 활동으로 주어진 4시간 외의 시간도 자신이 조절해서 더 하는 것도 가능해. 어때? 이 정도면 설명이 됐으려나?”

“...네. 세세하게 아시는군요. 이윤 씨는.”

“에헴, 반장이잖아.”

녀석이 반장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생각은 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새삼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요즘 이렇게 책임감이라는 걸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현성아는 지금 어떤 부에 속해있는 거죠?”

“음.. 고연부.”

“하나, 말입니까.”

“....어. 문제 있냐.”

피니스는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왠지 한심하단 느낌으로 쳐다보는 것 같았다. 왠지 이 녀석, 무표정이면서 감정전달이 쓸데없이 확실해..

“어쩔 수 없어. 현성이는 선천적 귀차니스트거든.”

“무슨 병같이 얘기하지 마..”

“네. 어렴풋이 알았습니다. 참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어째 화제가 바뀌어도 궁지에 몰리는 이 상황은 뭐야!”

억울하다. 실용적이고 합리적으로 산다는 게 도대체 뭐가 나쁜 거야!

“이윤 씨는 어떻습니까?”

“응? 나? 나는.. 고연부 외에도 두개 더 하고 있어. 주로 공부에 관련된 쪽.”

“흠, 그렇군요.”

피니스는 어째선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뭐, 뭐야.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지 마..”

“이건 일종의 아이 콘택트입니다만, 별 의미는 없습니다.”

“거짓말.”

“네.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임을 당당하게 밝히는 그녀였다. 분명 아까의 눈짓도 한심함의 아이 콘택트 비스무리한 거였겠지.

“아닙니다, 입부 희망의 아이 콘택트였습니다.”

“머, 멋대로 남의 생각 읽지 마!”

“가끔 멋대로 발동합니다.”

“후우...”

오늘만 해도 벌써 몇 번의 느낌표 말투인지 모르겠다. 평소 분량의 배는 쓴 느낌이다. 이젠 점점 지쳐간다..

“응? 피니스도 고연부 입부하려고?”

바통 터치를 하듯 이윤이가 피니스의 주의를 돌렸다. 나이스 타이밍.

“네, 현성아가 있다면야 저도.”

“음.. 뭐, 상관없지만. 그런데 아까부터 그 현성아, 라는 호칭은 뭐야?”

“친구끼리라면 가볍게 불러야 한다고, 아까 현성아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헤에, 그렇구나. 현성이는 초면에 전학생에게 저런 낯부끄러운 호칭을 강요했단 거구나. 헤에~”

“가, 강요한 적 없어! 그냥 하나의 예였을 뿐이라고!”

“그럼 나도 그렇게 부를래.”

이윤이는 나를 쳐다보며 당당히 말했다. 그녀의 스트레이트 눈빛이 조금 부담스러워 고개를 약간 돌리며 말했다.

“맘대로 하던가..”

“에헷, 허락받았네. 고마워라.”

에헷, 이라는 웃음이 너무나도 인위적이었지만, 정말 자연스럽게 보인다. 그래서 더욱.. 부담스럽다.

“...현성아는 걸프렌드에게 잡혀 사는 인생이군요.”

“아직 잡히지 않았어.”

“걱정 마. 곧 잡을 거야.”

“이윤이 너도 그렇게 가볍게 말하지 마..”

아무래도 이 둘과 있을 때는 나에 대한 화제를 꺼내는 건 좋지 않을 것 같다. 그게 내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삶을 위해서도 이로울 듯하다.

이내 울리는 1교시 시작종에, 교과서를 꺼내서 피니스 쪽으로 건네려고 했으나, 피니스는 자연스럽게 책상 밑에서 교과서를 꺼내더니, 나를 멀뚱히 쳐다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교과서를 건네려던 내 손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니 아까 쉬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반 애들이 전학생(어디까지나 설정)인 피니스에게 다가오지 않은 걸 보면, 이 녀석은 이미 반의 일부로 녹아든 게 아닐까. 왠지 그녀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역시 로봇답다. 라는 느낌인가.

문득 다시 피니스의 옆모습을 바라보니, 머리에 꽂아진 헤어핀이 햇빛을 반사에 반짝거렸다. 오늘 아침에도 머리에 차고 있었던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무슨 별자리 모양 같은데..?

‘음... 저게 무슨 별자리지?’

아쉽게도 별자리에 크게 관심 없는 나로선 알 수 없었다. 모르겠다. 나중에 직접 본인한테 물어보면 되겠지. 더 이상 필요 없는 일에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 이미 충분히 지쳤다..

 

 

충분히 지쳤다고 생각하긴 했었는데, 아무래도 내 몸은 정말 지쳤던 모양이다.

피니스와 이윤이의 말을 종합해보면, 나는 4교시 중 3교시 정도를 내리 수면을 취했다고 한다. 나도 1교시 국어 수업만 기억이 날 정도니 아무래도 진짜인 듯하다. 평소에도 주변에서 잠이 많다고는 들었지만 이번 일은 내가 생각해도 심하다.

“나 참, 어쩔 수 없네. 수학 노트는 오늘 부활동 때 보여줄 테니까 알아서 베껴.”

“그럼 저도 어쩔 수 없이 국어 노트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국어는 필기할 내용 없어.”

게다가 뻔뻔하게 이름도 안 써진 새 노트를 들이밀면서 보여주겠단 말 하지 마.

이윤이의 배려를 감사히 받아들이고, 나는 식사 후 바로 부실로 향했다. 우리 반에서 바로 위층, 구석에 있는 약간 외관이 허름한 교실이다. 사실은 그냥 안 쓰는 교실이었지만, 고문 선생님에게 매일 청소하겠다는 조건으로 받아낸 곳이다. 정당한 대가다.

이윤이는 잠시 할 일이 있다며 나중에 온다고 했고..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도록 할까.

“근데 너는 왜 슬금슬금 뒤를 따라오는 건데.”

“나란히 사이좋게 걸어다니면 다른 학생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습니까.”

“너 분명 오늘 아침까지 나를 사랑한다, 뭐다 말하지 않았었냐?”

“아직, 정보 부족. 인겁니다.”

“...그런 거냐.”

그래서 아침에 이윤이랑 대화할 때도 일부러 티를 안 냈었던 건가. 나는 네가 그런 말 하면 어떻게 대처할까 속으로 내심 걱정했는데 말이지.

주머니에 넣어둔 열쇠를 꺼내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아직 아무도 없는 상태라 창문에서 살짝 비쳐오는 햇빛만이 교실을 비추고 있었다. 벽에 있는 전등 스위치를 키고 아무 책상에나 가방을 던져놓고 앉았다. 피니스는 내가 앉은 자리를 확인하고는 바로 옆자리에 바른 자세로 착석했다.

그리고는 가볍게, 나에게 말을 건넸다.

“사실 현성아가 잠들어 있을 때, 이윤 씨와 얘기를 좀 나눴습니다.”

“....아, 그래?”

별로 관심 없는 듯 말했지만, 사실은 매우 신경 쓰였다. 뭔가 헛소리는 하지 않았겠지? 제발 나를 좀 더 곤란하게 만들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윤 씨는 현성아에게 몇 번이나 고백했다고 들었습니다만.”

“.....”

피니스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현성아, 듣고 있는 겁니까?”

“...안 듣고 있어.”

“왜 이윤 씨의 고백, 안받아주고 있는 겁니까?”

피니스가 나를 무표정으로 쳐다본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일부러 피하며, 창문 밖을 바라봤다. 스포츠를 하는 애들의 함성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피니스가 내 쪽을 바라보는 것을 그만두고, 나와 같이 창문 쪽을 보며 살짝 말했다.

“정보 부족. 인겁니다.”

아까와 같은 말. 그녀는 그 뒤에도 알 수 없습니다. 라고 중얼거렸다.

“현성아, 제가 저번에 말했던 현성아를 사랑했던 이유, 알고 있습니까?”

“....있었던가, 그런 게?”

이건 일부러 모르는 척을 한 게 아니다. 정말 기억이 안 나서 그렇다.

“저는, 사랑의 끝을 찾고 있습니다.”

“사랑의 끝..?”

“저는 아시다시피, 러버노이드. 누군가의 연인과 아내 대행. 혹은 불특정 다수에게 사랑을 주는 로봇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녀는 시선을 움직이지 않은 채, 그대로 창문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저는 이레귤러. 저는 외계에서 사랑을 주는 활동을 하다가, 문득 생각해버렸습니다. 내가 어째서 이렇게 사랑을 주어야 하는 지를.”

“.....”

나는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라기보단, 딱히 내가 말할 타이밍이 없었다.

“그러다 저는, 어떤 주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사랑의 목적을 알려주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나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게 되어 나는 다시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현성아, 그 주인과 당신은, 닮았습니다. 뭐라 말하기 힘들지만, 정말로 닮았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나한테 이런 얘기를 꺼내는 이유가 뭔데.”

“그냥 문득. 말하고 싶어져서.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다시 시선을 돌려 바라본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그걸 보고 있는 나는, 도저히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게 돼버렸다.

“어쨌든 저는, 사랑의 끝을 알고 싶습니다. 그걸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교실 앞쪽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람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언제나와 같은 약간 올려진 생머리에, 햇빛에 더욱 빛나는 금발. 거기다가 조금은 글래머인 모델 느낌이 나는 몸매까지. 보자마자 바로 여신혜 선배란 걸 알았다.

“아, 현성이 먼저 왔네? 안녕. 그리고 이윤이도...응? 처음 보는 애네?”

신혜 선배는 이쪽으로 성큼성큼 오더니, 피니스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나와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서 선배의 향수 냄새가 풍겨왔다. 약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현성아, 이 얜 누구야? 신입부원? 새 여자친구?”

“시, 신입부원이에요.” “새 여자친구입니다.”

“...응? 어느 쪽이 맞는 소리야..?”

신혜 선배는 나와 피니스를 번갈아가며 보며 어정쩡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피니스를 곁눈으로 째려보며 다시금 말했다.

“이번에 제 반에 온 전학생이고, 신입부원이에요. 이름은 피니스.”

“....신입부원인겁니다.”

“그렇구나. 신입부원이었구나. 반가워. 나는 3학년인 여신혜라고 해. 잘 부탁해!”

신혜 선배는 활기차게 피니스에게 손을 건넸고, 피니스는 무덤덤하게 앉은 상태로 그 손을 잡고 악수했다. 선배가 여자친구라는 말에 크게 반응을 하지 않았단 건 다행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윤이는 아직 안 왔어?”

“아, 네. 조금 일이 있다고 해서..”

“흐음, 그래? 승범이도 안 오고.. 그동안 뭐하고 있을까..”

그렇게 말하던 선배는 방향을 다른 쪽으로 돌리다가 그만,

“앗.”

하는 짧은 말과 함께 앞으로 넘어졌다. 도중에 세워진 의자를 어중간하게 잡으려다 같이 넘어져서 쿠당탕, 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 선배?!”

“아야야야....”

신혜 선배는 옆구리 부분을 만지며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덤덤하게 일어나서 교복을 털고는 주변 정리에 들어갔다. 나는 선배가 넘어지자마자 일어나서 바로 주변 정리를 도왔다.

“으으.. 고마워, 현성아.”

“아뇨.. 그것보다 선배, 항상 조심하라니깐요..”

“그게 맘대로 잘 안되네, 헤헤...”

뭐에 걸려 넘어진 것도 아니다. 그냥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꼭 앞으로 넘어지는 버릇이, 선배에겐 있다. 주변 말로는 가슴 무게 때문에 넘어진다거나 하는 말도 있을 정도로 1일 1넘어짐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선배다. 하지만 어디를 다친다거나 하는 일이 없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일까...? 응?

“...어라?”

주변 정리를 하고 있는 선배를 보자니, 어딘가 위화감이 생겼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응? 현성아. 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거야?”

“음....”

“옷에 먼지라도 묻었.....아.”

“아.”

동시에 눈치챘다. 그리고는 잠시 동안 얼어붙었다.

신혜 선배의 블라우스 첫번째 단추가.. 풀려있었다. 아니 풀려있다기보단.. 떨어져나갔다..?

............

잠시 동안의 정적. 그리고 그 정적을 깬 건...

“꺄아아아아아!”

신혜 선배의 단말마였다.

나도 달아오르는 얼굴을 손으로 급히 감싸고 시선을 뒤로 휙 돌렸다. 하지만 이미 봐버린 건 머릿속에서 계속 리와인드. 멈추지 않는다.

‘신혜 선배의 가슴골.....’

뭔가 출렁했어. 아니 그것보다 뭔가 탱탱.. 아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진정하자, 진정하자... 그러니까 지금 어떻게 해야.. 어, 어..

‘가슴골이...’

뭘 생각하는 거야아아아앗?!

그 순간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교실 앞쪽 문이 열리더니,

“나님 도착! 아직 안 늦었...다?”

매우 귀찮은 존재가 튀어나왔다..!!

“꺄아아아! 승범아, 이 쪽 보면 안돼에에에!!!”

“네, 네엡!!”

신혜 선배의 두 번째 비명과 함께 골치 아픈 녀석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 녀석은 즉시 내 쪽으로 달려오더니,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 물었다.

“나, 나도 몰라, 이 멍청아!!”

안 그래도 지금 뇌내망상, 가슴골, 아니 폭주하는, 가슴골, 으아아아아!!!

“선배, 이쪽으로.”

“에? 으, 응..!”

뒤쪽으로 피니스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그 후로 내 앞에서 승범이가 계속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던 것 같기도 한데.. 뭔가 기억이 붕 뜬 듯, 잘 떠오르지 않는다.

‘후우.. 진정... 진정...’

그렇게 내 뇌내망상의 폭주가 끝나갈 즈음, 선배가 있는 곳을 바라보니, 교실 구석지에 앉아서 어색한 웃음으로 나와 승범이가 있는 쪽을 보는 선배와, 신혜 선배의 블라우스를 손보고 있는 피니스의 모습이 있었다.

이럴 때는 확실히, 냉정하게 사태를 처리하는 피니스의 모습이 대견해보인다.

“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데?”

앞에서 허둥대는 몸뚱이만 더럽게 큰 바보와는 다르게 말이지..!

“벼, 별일 없었어.”

“신혜 선배가 저런 반응 보이는 거 처음 보는데. 별일 없는 게 아니잖아.”

“아냐. 별일 없는 거야. 너는 그냥 얌전히 자리에나 앉으면 돼.”

“아, 혼자서만 재미 보기냐? 알려 달라고 이 쨔샤!”

흘긋 선배 쪽을 쳐다보니, 선배는 나에게 눈으로 ‘말하면 죽일 거야.’ 라는 엄청난 눈총을 보내고 있기에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무언 상태를 이어갔다.

나, 오늘따라 주변에서 자꾸 살해당할 것 같네.. 하하하..

“신혜 선배가 넘어져서 교복 단추가 우연히 풀려서 떨어졌다.”

‘....!!!!’

사실을 가볍게 말하는 승범이를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자 녀석은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슬쩍 찔러봤는데.. 정답이구만?”

“아, 아닌데..!”

“표정부터 숨기고 그런 말 하든가.”

그렇게 말한 승범이는, 선배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싱긋 웃으며 말했다.

“선배! 저는 안 봤으니까 괜찮아요!”

“야, 이..!!”

너, 미..미쳤냐?!

“응? 선배 이런 방면으로 쿨하잖냐?”

“아, 그래 자신의 실수엔 쿨한 성격 맞는데..! 니가 그러면..안 되지!”

“응? 뭐가?”

승범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멀뚱히 쳐다봤다. 나는 그런 모습에 기가 차서 더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리고 슬쩍 시선을 돌려 본 신혜 선배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승범이 저 자식..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긴 할까..?!’

눈치가 없어도 저렇게 없을 수 있을까.. 같은 테니스부에서 2년이나 가까이 있음 좀 느끼면 안 되냐? 신혜 선배가 평소에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나는 그 멍청한 녀석을 노려보며 마음속으로 온갖 욕설을 쏟아 부었다. 신혜 선배가 그렇게나 어필하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저 녀석이 너무나도 바보 같고 또 너무나도..

부러웠다.

‘......멍청이.’

그리고 그 사실을 서슴없이 승범이에게 말하지 못하는 내 자신에게도 질타를 했다..

승범이는 잠시 그렇게 서있더니, 이내 피니스 옆쪽 자리에 들고 왔던 스포츠 가방을 내려놓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다 주변을 살펴보고, 나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이윤이 아직 안 왔어?”

“어. 무슨 일 있다고 좀 늦는다 그러더라.”

“아, 맞다.”

승범이는 뭔가 중요한 게 떠오른 듯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을 이어갔다.

“나, 피니스에 관한 일 절대 말 안했다? 약속 꼭 지키는 거다?”

“....그런 약속도 있었지, 참.”

이윤이랑 데이트 도와달라는 거... 였었나..

‘하아.. 참..’

어째서 이런 관계가 되어버린 건지..

“참으로, 재밌는 관계군요. 현성아.”

“으와, 깜짝이야!”

약간 생각에 빠지려는 찰나, 갑자기 피니스가 옆쪽으로 앉으면서 말을 건넸다. 선배는 옷매무새를 추스리고는, 반대편 쪽 책상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까의 일이 좀 충격적인 모양이었다..

“신혜 선배란 사람은, 승범 씨를 좋아하고 있고. 승범 씨는 이윤 씨를 좋아하고..”

“.....”

“그리고 현성아는.. 신혜 선배를 좋아하는 거죠?”

“......”

그녀의 추론에 어떠한 반론도 할 수 없었다. 사랑에 관계된 로봇이라 그럴까. 누군가에게 호감이 오가는지에 대해서 금방 알 수 있나보다. 정말.. 성가신 녀석이다..

“왜 현성아가 이윤 씨의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약간 이해가 가는군요.”

“...멋대로 사람 마음을 추리하지 마.”

“네, 알겠습니다. 어쨌든 다시금 말하겠습니다.”

그녀는 무표정인 눈을 다시 나에게 향하면서, 간결히 말했다.

“어쨌건 저는 현성아를 사랑합니다.”

“.....”

그만 해..

왜 어째서.. 이런 관계를 파악했으면서도 그렇게 가볍게 말하는 거야..

나를 무표정으로 바라보는 피니스의 모습이, 새삼 짜증나게 느껴졌다.

 
+ 작가의 말 : 갑자기 청춘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습니다. 그런 계절이여서 그럴까요.

가렴 13-10-24 03:39
답변  
잘 읽었습니다.
음... 어렵네요. 저는 만담개그를 하는 장르나 청춘물같은 쪽에있어서는 꽤 약해서^^;;;
 
일단 제가 느낀 점을 간략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아래 쓸 내용은 제 감상일 뿐이므로 이러한 감상도 있다라는 수준으로 가볍게 보고 넘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먼저 묘사가 상당히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라노벨을 보는 이유가 뭘까요? 재미있는 사건과 흥미있는 전개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으로 라노벨은 케릭터 소설입니다. 케릭터가 살지 않으면 본질적으로 소설이 살기 힘들어요. 최소한 삽화없어도 케릭터가 머릿속에 떠오를 정도는 되어야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과한 묘사는 글을 늘어지게 하고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도 하지만 아카토님의 글은 현재 전반적으로 묘사(그것이 주변 배경이든 인물이든)가 상당히 부족합니다. 사건은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편인데 왠지 글이 앙상하고 많이 마른 느낌이군요. 어, 이해 가시나요?

예를 들어, 가끔 등장인물의 행동이 당위성없이 휙휙 전개에 맞춰 행동하는 듯한 구간이 보였습니다. 이를테면 승범이가 피니스를 보고 제반사정을 듣게되고 믿게되는, 그런 일련의 과정을 좀 더 재미있고 긴박하게 쓸 수도 있었을텐데요. 너무 어물쩍 넘어가는 듯한 기분이들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이런 글을 써봐야지'라는 발상의 단계에서 구성의 단계를 거치고 작문의 단계로 이르게 되는데 구성의 단계를 쏙 빼버린 느낌입니다.
구성의 단계는 말 그대로 소설의 모든 요소를 구성하는 단계입니다. 글의 흐름과 사건의 발전과정(뭐 이거야 발상의 단계를 발전시키기만 하면되니까 가장 쉬운 부분에 속하죠), 그리고 인물의 프로필, 배경의 구체화가 모두 이 시기에 일어나게 되는데 인물과 배경을 구체화하는 것은 말보다 상당히 어렵습니다. 뭐, 여기서 구체적으로 들어가기에는 너무 글이 길어지니 결론만 말씀드리면, 그래서 아직 글쓰는데 길이 들지 않은 작가분들은(아, 물론 아카토님 말하는거 아네요~) 발상만으로 바로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되서 글이 삼천포로 빠지게 되는겁니다. 인물의 성격이 일관성을 잃기도 하고, 배경의 설정이 휙휙 바뀌기도 하고... 아카토님도 잘 알고 계실겁니다. 지금 아카토님이 올리신 글 또한 본질적으로 이 분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실수를 하신겁니다. 사건을 중요시하셨지만 인물과 배경을 조금 소홀이 하셨어요. 반대의 입장에서, 독자의 입장이라면 사건은 이해가 되는데 배경이 상상이 잘 안되고(묘사가 없으니까요) 인물의 생김새가 상상이 안되면(역시 묘사가 없으니까요) 마치 하나의 인형극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생생한 묘사란 중요한 것입니다. '모에'라고 하죠? 그림과 글이 섞였을 뿐인 라이트노벨에 그런 재미를 부여하는 힘은 삽화도 있지만 이런 생생한 묘사도 한몫하는 겁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만담이 상당부분 반복되는데 이게 재밌는 부분도 있지만 재미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재미없는 부분. 왜 쓰나요? 독자분들에게 즐거움을 주거나, 앞으로의 전개에 영향을 미치거나, 설정을 설명하는 글이 아닌 한 소설 속에서는 영양가 없는 부분일 뿐입니다. 필요없을 뿐만 아니라 있어서도 안됩니다. 저는 만담류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고, 전문도 아닌지라 여기에대한 언급은 되도록이면 피하도록 하겠습니다만, 본인이 봤을 때 재미없었다고 생각이 들면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고 여기지 말고 주저없이 쳐버리는 결단력을 기를 것을 권장합니다. skt의 작가인 김철곤 님은 책한권 쓰는데 네권어치 종이를 버렸다고 하지 않습니까? 또한 무협작가 중 한분은 하루 종일 타자를 두드려 30페이지를 채우고는 그 중 5페이지를 제외하고는 del시키는 패기넘치는 짓거리를 몇년째 반복해오는 분도 있습니다. 어... 극단적인 예시를 들었습니다만, 만담 중 재미있는 부분도 많으니 열심히 발전시키신다면 꽤 재미있는 럽코물을 쓸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글이 만담밖에 없으면 근데 이것도 조금 곤란합니다. '만담으로 사건이 진행'되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만담은 글을 재밌게 해주는 데코레이션이지 만담의 비중이 너무 많아지는 것도 지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건 좀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마지막 결론부분이 좀 걸리더군요. 거기서 짜증을 내는 것은 개인적으로 뜬금없는 전개라고 생각이 들어서요. 진지한 장면이고 이제까지 분위기 좋다가 갑자기 여주가 집요하다고 짜증을 내는게 너무 갑작스런 변화라는 생각을 접을 수가 없더군요. 이는 위에 썼던 행동에 당위성 없다는 부분과도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요약하자면 1. 묘사 너무 없다. 2. 만담 너무 많다. 3. 당위성 없는 전개는 지양하자. 가 되겠습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지금까지 제가 쓴 글은 제안에 불과합니다. 받아들이시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키토님이니 심사숙고하셔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제 글이 모두 옳다고는 저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지 않으니 소신껏 자신이 생각하시는 것을 밀고 나사시길.

그럼 남은 기간도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NW노아 13-10-25 08:16
답변  
엄마야, 제가 할말을 가렴님이 다해버렸네요. 노아입니다. 감평해야할 작품이 넘쳐나서 곤란해요. 엉엉
아직 1주차가 올라오지 않아서 진심으로 다행입니다. (농담)

묘사가 부족한 점도 조금은 있지만, 그것보다는 캐릭터의 감정이 제대로 독자에게 전달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이 독자에게 전해지지 않아 작품의 전체적인 굴곡이 없어지고, 심하면 작품이 지루해지기까지 합니다. 이 작품은 만담 덕분에 그정도까지는 아닙니다만, 주의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캐릭터들이 누구가 누구를 좋아한다. 라는 서술이 여러번 나오는데 그런 모습이 명확하게 나오질 않아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당위성없는 전개라는 건 저도 하고 싶은 말이였습니다. 말이 조금 어려우니 쉽게 풀어쓰자면, 캐릭터의 생각과 행동이 부자연스럽습니다. 아니면 적응력이 단백질 공급원을 찾아다니는 누구처럼 높던가요. (설마 그런 설정은 없겠죠)
작품의 전개를 위해서 캐릭터들의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는데, 생각보다 이게 중요한 부분입니다. 요것만 잘해도 재밌다, 나쁘지 않은 글이다. 라는 평가를 받기가 쉬워지거든요.

마지막으로, 감정 전달이 부족한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당황하는 모습이 굉장히 평탄한 느낌입니다. 예를 들면 현관합체(!)미수사건이라던가 블라우스단추실종사건 같은 거요. 원인은 실제로 그런 상황에 처해보신 적이 없으셔서 경험부족(?) 때문인 것 같네요. 엉엉.
하지만 이것과 위에서 말씀드린 아쉬운 부분만 해결하셔도 감정전달의 대부분은 해결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작품의 캐릭터성, 그리고 만남은 나쁘지 않은 느낌이였습니다. 이윤이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마음에 드네요 헤헤
1주차 나오면 다시 보러 오겠습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결론 : 어 뭐야 가렴님이 뭐라고 하시는지 하나도 모르겠네

……? 어째 결론과 주제가 다른 것 같네요. 에라 모르겠다.☆
수고하셨습니다. 건필!
노블B 13-10-31 00:51
답변  
해당 작품은 1주차 중단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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