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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 1챕터 피드백 일자는 편집부 사정상 이번주 목요일(11월 14일)까지 작성됩니다.
늦어지게 된 점 죄송하게 생각드리며, 수정을 위해 3주차 마감을 다음주 월요일(11월 18일)로 연장합니다.
피드백을 받은 뒤 이미 작성된 글을 수정하셔도 무방하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검토는 최종 수정 원고가 기준이 됩니다.

 
알바 탐정은 오늘도 수습 중글 라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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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믿지 마 #04
13-11-18 22:17
 
 
다음날 일요일 오전, 우리의 의뢰인이 납시었다.
보통 일이 없는 일요일은 점심 무렵까지 늘어지게 잤지만 이날만은 일찍 일어나 면도도 하고 샤워도 하고 평소 안 뿌리던 향수까지 뿌렸다.
“얼씨구. 보고 싶은 님이라도 기다리는 거냐?”
소운은 책상 위에 다리를 올려놓고 흘겨보며 구시렁거렸지만 가볍게 무시하고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입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마침내 나타난 그녀는 가슴 쪽이 꽤 파인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다. 과연 자신의 장기를 잘 살릴 줄 아는 패션 센스를 갖추고 있구나! 더구나 선물까지 갖고 왔다.
“쿠키를 구워봤는데 많아서 좀 갖고 왔어요. 맛은 없겠지만……”
“아유, 뭘 이런 걸 다.”
나는 얼른 달려가 촌지 받는 교사처럼 굽신거리며 과자를 받아들었다. 게으른 돼지 아니 고양이놈이 냄새를 맡았는지 내 다리 근처에서 어슬렁거렸다.
“쉿, 쉿! 저리 가! 이건 의뢰인께서 주신 소중한 음식이라고. 너 따위에게 줄까 보냐!”
헛발길질을 하며 쫓아낸 후 얼른 커피를 끓여서 쿠키와 함께 가져왔다. 그 사이에 처음 온 날처럼 책상을 사이에 두고 소운과 마주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쩐지 불안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었다. 소운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자꾸 시선을 이리저리로 옮겼다. 반면 소운은 아주 지그시, 날카롭지 않은 시선으로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비는 아이를 대하는 어머니와 같은 표정이었다.
“그럼 1차 보고를, 듣고 싶은데요…….”
겨우 침묵을 깨고 입을 여나 싶었는데 다시 입을 다물었다.
“1차고 뭐고 필요 없습니다. 대충 다 알았으니까요.”
소운은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는 투로 말을 꺼냈다. 녀석의 나쁜 버릇이랄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기색을 늘 겉으로 드러낸다.
조그맣고 촉촉한 입술에서 단호한 목소리가 칼바람처럼 새어나왔다.
“의뢰하신 대상자 강기진은 바람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뭐어어어어어어어어?!
모르긴 몰라도 그 자리에서 가장 많이 놀란 사람은 바로 내가 아니었을까.
우리 둘이 놀라서 표정관리도 못하고 있는 동안 소운은 작게 콧노래를 부르며 쿠키를 집어먹었다.
“흠흠, 이번 건 더 맛있네요. 아몬드를 갈아 넣었군요?”
“아, 네. 호두랑 아몬드를……”
“겉에 설탕 옷을 좀 더 발랐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튼 맛있어요.”
“잠깐만 기다려!”
보다 못한 내가 결국 끼어들었다. 소운은 누가 자기 말에 끼어드는 걸 싫어하지만 그만큼이나 나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는 게 싫었다.
“강기진이 바람피운 건 너도 알고 나도 알고 하늘도 알고 땅도 알잖아! 어젯밤에 여자애랑 웃고 손잡고 연애질 할 거 다 했다고! 근데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니 그게 무슨 한겨울에 찬물 샤워하고 재채기하는 소리야?!”
소운의 눈썹 끝이 치켜 올라갔다. 입술 사이로 작은 송곳니가 살짝 나왔다가 들어갔다. 몸은 그대로인 채 눈동자만 잠깐 내게로 향했다가 다시 쿠키로 돌아갔다. 그때 문득 나는 실수를 깨달았다.
혹시 녀석은 의뢰인이 받을 충격을 생각해서 사실을 감추려 했던 게 아닐까?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하면 그럴 리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소운의 평소 성격과 탐정이라는 자부심을 감안하자는 말이다.
일단 남소운이라는 녀석은 세심함과 배려심, 남을 헤아리는 측은지심 같은 게 선천적으로 결여된 인간이다. 평소 나한테 대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여자애 주제에 옷을 아무데나 벗어던져 놓질 않나, 지 침대까지 내가 정리해야 되지, 지겹게 잔소리를 해도 분리수거는 죽어도 안 하고, 이제는 아예 고양이 밥 주고 대소변 치우는 것까지 내 일이 되었다.
그런 소운에게 의뢰인이 상처 입을까봐 거짓말을 하는 마음씀씀이를 기대할 순 없다. 따라서 이 가설은 기각.
뿐만 아니다. 수수께끼를 풀고 진실을 밝히고 범인을 잡아내는 게 탐정의 의무이자 사명이자 보람이다. 소운이라고 이를 모를 리가 없다. 이제 와서 의뢰인을 달래기 위해 진실을 감춘다는 건 소운의 성격과도 맞지 않고 탐정의 자격에도 맞지 않는 짓이다.
그렇다면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터다.
이대로 소운의 입술만 바라보고 있자니 애가 탔다. 내가 모르는, 혹은 내가 눈치 채지 못한 걸 소운은 알고 있다. 그게 무얼까?
쿠키를 두 개나 먹고 커피를 반쯤 마신 후에야 소운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말을 이었다.
“아직 헤매고 있는 조수도 있고, 내가 어떻게 알았는지 의뢰인께서도 모르는 듯하여 친절히 해설을 해드리죠. 의뢰인이 처음 한 얘기부터 돌아갑시다.”
소운은 손바닥을 쫙 펴서 정면으로 내민 후 엄지를 접었다.
“첫째, 의뢰인은 내가 다니는 학교를 확인했다.
왜 그랬을까요? 내가 만약 같은 미진고에 다녔으면 의뢰를 포기하고 돌아갔을 겁니다. 학교에 아는 친구들이 많으면 상대방의 신원을 더 빠르고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어서 검지부터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가면서 설명을 했다.
“둘째, 의뢰인은 자기 이름을 더듬었다.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란 건 알겠지만 자기 이름도 제대로 말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더듬은 이유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죠. 세상에 자기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까요? 그 이유는 잠시 후에 말씀드리죠.
셋째, 수사 조건을 제시했다.
의뢰인은 수상하다며 두 사람의 용의자를 제시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수사의 폭을 줄이고 우리가 그 둘에게만 집중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였죠. 결정적으로 우리가 조사하기를 원하지 않는, 용의자에서 빼고 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죠. 강기진에게 자신이 조사를 의뢰했음을 알리고 싶다고 말한 이유도 마찬가지였던 거고요. 우리가 기진에게 의뢰에 대해 밝히면 기진은 선영에게 확인해볼 텐데, 그건 의뢰인이 원하지 않은 일이 되겠죠.
넷째, 시간을 제한했다.
우리가 1주일을 제안하자 이틀만에 조사를 마쳐달라고 억지를 부렸죠? 이 역시 수사의 폭을 줄이기 위함입니다. 특히 미진고는 학생들이 명찰을 달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학교입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학생을 찾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죠. 여기에 하나 덧붙일 게 있어요.
다섯째, 의뢰인은 불완전한 정보를 제공했다.
강기진, 신나희, 정정아는 학년과 반을 다 알려줬으면서도 정작 자신인 김선영의 정보는 2학년이라고만 하고 반을 알려주지 않았어요. 왜 그랬을까요? 우리가 김선영을 찾아서 만나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시간도 이틀밖에 없고, 둘째 날에는 기진의 공연이 있었으니 사실상 김선영을 찾아서 만날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사항을 종합하면 결론은 이렇습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강기진의 뒷조사를 의뢰하면서도 김선영에 대해 알아내길 원하지 않았어요. 김선영을 만나는 것도 포함해서요. 그러면서 이름까지 더듬고, 또 누군가를 교묘하게 수사선상에서 제외하려 했었죠.
왜냐하면 당신은 김선영이 아니기 때문이죠.
이름을 더듬은 이유는 바로 자기 이름이 아니어서 그랬던 겁니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야 나도 진실을 알았다.
처음 만난 날 보았던 의뢰인의 태도는 수줍음이 아니라 거짓을 꾸며대는 사람의 조급함과 불안함이었던 것이다.
더듬고 우물쭈물하던 말투는 거짓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랬구나. 어젯밤 기진과 만나 데이트를 했던 사람이……”
“맞아, 걔가 진짜 김선영이야.”
소운은 이제야 내게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앞에 앉아 있는 이 사람은 누구지?!
내 표정을 읽고 질문을 알았다는 듯이 소운은 손가락을 다 접어서 주먹처럼 된 손을 거두고 커피를 마셨다.
“그럼 당신이 누구냐 하는 문제가 남았군요. 전술했듯 당신은 수상하다는 두 사람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그 외의 다른 사람을 살펴보지 못하도록 만드려는 의도였죠. 시간 여유도 없앴고요. 이렇게 당신이 필사적으로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만든 사람이 바로 당신이었던 겁니다. 스스로 김선영이라 주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겠죠.
그때 당신은 친구가 봤다는 둥 친구가 알아봤다는 둥 말을 했지만, 실은 본인이 직접 보고 알아냈던 겁니다. 당신은 강기진이 김선영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목격하고 둘이 사귀는 거라는 의심이 들었죠. 또한 신나희, 정정아와도 보통 사이가 아닐지 모른 거란 추측을 한 거죠.
즉, 당신이 우리에게 한 의뢰는 이 세 사람 중에 강기진과 사귀는 사람이 있는가? 기진은 이 여학생들과 어떤 사이인가? 그걸 알려달라는 의미였어요.
여기에 이르면 당신의 진짜 이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기진과 만났을 때 언급한 사람 중에 당신이 빼놓은 이름이 있거든요. 실수라고 생각할 수 없군요. 의도적인 거였어요. 강기진의 팬클럽을 만든 중심인물은 두 사람의 2학년생. 한 사람은 정정아,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네, 저예요. 제가 오유화예요.”
우리의 의뢰인 오유화는 이제야 처음으로 이름을 밝혔다.
선생님께 꾸중 듣는 아이처럼 고개를 숙였지만, 표정에는 슬픔과 죄의식에 더해 일말의 후련함이 섞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의뢰하신 사건에 대한 저희의 답은 이렇습니다. 강기진은 김선영과 사귀는 사이가 맞습니다.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이 정다웠고 밴드 멤버들이 선영을 ‘애인’이라고 호칭했을 때 부정하지도 않았거든요.
또한 기진은 신나희와 정정아와 깊은 관계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더 깊이 파고들진 못했으나 이틀간의 조사로는 강기진이 바람을 피웠다는 증거를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강기진은 바람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이상.”
깔끔한 결론이었다. 미심쩍거나 찜찜한 구석은 없었다. 정작 의뢰인이 김선영이 아니라는 것만 빼고.
소운은 다시 내가 평소에 알던 꼬맹이로 돌아가 콧노래를 부르며 쿠키를 맛나게 집어먹고 있었다. 유화는 굳어진 것처럼 주먹 쥔 손으로 허벅지를 누르며 고개를 숙인 채였다. 나 역시 소운의 책상 옆 벽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그런 유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직 마오만이 쿠키 냄새를 맡고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움직일 뿐이었다.
유화는 창백한 얼굴에 핏기가 돌아온 다음에야 허둥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아, 알았어요. 돈은 여기 있어요. 그럼 전……”
은행 이름이 찍힌 종이봉투를 꺼내어 책상 위에 놓았다. 어쨌든 사건을 해결했으니 유화는 계약대로 비용을 지급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다만 이번 사건은 의뢰인이 원하지 않는 부분까지 밝혀내고 말았으니 만족했는지는 모르겠다.
소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봉투에서 돈을 확인하더니 과장된 인사를 건넸다.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민이나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캐터포일 탐정 사무소〉를 찾아주세요!”
글쎄 어떨까. 내가 유화라면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을 것 같지 않는데.
도망치듯 사무실을 나가는 모습을 보자 어쩐지 마음이 아팠다. 소운의 해설을 듣고 수수께끼는 풀렸을 텐데, 무언가 내가 놓쳤다는 기분이 여전히 들었다. 시합에서 이기고 승부에서 진 듯한 느낌이었다.
사건의 해결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그건 경찰이 하는 일이다.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붙잡아 단죄하는 것. 이를 위해 경찰이 있고 법원이 있고 판사가 존재한다.
그럼 탐정은 왜 존재할까? 경찰의 손이 모자라니까? 개인적 복수나 심부름을 해주는 존재?
탐정은 그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만 했다.
의뢰인과 사건으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것, 그게 탐정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다.
“잠시만요!”
나는 문을 벌컥 열고 계단을 내려가는 유화를 불러 세웠다.
돌아보는 커다란 눈에는 눈물이 어려 있었다. 맑은 호수 위에 잔잔한 물안개가 낀 것처럼 보였다.
“저기,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유화가 고개를 돌렸다. 무시하고 가려는 건가 싶어 한 마디 더 하려는데, 소매로 눈가를 얼른 닦고는 다시 나를 보았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탐정 사무소가 있는 건물 1층에는 〈카페 모르그〉라는 이름의 커피숍이 있다. 뭔가 모르고 지은 이름 같았지만 혼자 운영하는 주인 누나는 추리소설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했다. 취미가 비슷해서인지 소운과는 꽤 친한 모양이었다.
나는 유화를 여기로 데려와서 커피를 시켰다. 누나는 깜짝 놀라더니 갑자기 나를 구석으로 끌고 갔다.
“어쩜, 어쩜, 어쩜! 언제부터 사귄 거야?”
“그런 거 아니거든요.”
“소운이는 어쩌고! 하긴, 보니까 소운이하고는 딴판이네. 그렇구나. 네 취향은 키도 크고 가슴도 크고 온순하게 생긴 아이였구나.”
“그런 거 아니라고 했잖아요! 애초에 여기로 데려온 것부터 보면 모르겠어요?”
소운이와 누나는 늘 만나 수다를 떨었으니 내가 진짜로 사귀는 애를 데려오면 소운이 20분 안으로 알아차릴 게 뻔했다.
“아, 그렇네, 정말.”
“우리 의뢰인인데 좀 이야기할 게 있어서 온 것뿐이에요. 그러니 방해하지 말아줄래요?”
“알았어……. 제삼자는 빠지라 이거지? 나이 먹은 사람이 주책없이 젊은이들 얘기하는데 끼지 말라 이거 아냐? 알았다니까, 사라져주면 되잖아…….”
누나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순순히 커피를 내주었다. 혼자서 침울 모드에 빠져든 누나는 좀 안 되어 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또 달래주면 좋다고 달라붙어서 자꾸 끼어들고 따지고 훼방을 놓을 게 뻔하니까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된다. 냉혹하게 쳐내야 한다.
어차피 여기는 좁은 커피숍이라 목소리만 높이면 다 들리는 곳이다. 누나는 인정 많고 좋은 사람이지만 둘이서 나누는 진지한 대화에 참여시키고 싶진 않다.
겨우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방금 쿠키와 커피를 대접했을 때도 그랬지만 유화는 한 모금도 입에 대려 하지 않았다. 살짝 숙인 고개로 나를 올려다보며 데려온 용건을 묻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남자의 보호 본능을 갈퀴로 긁어대는 눈빛이었다.
말을 꺼내려니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았다. 난 정말 조리 있게 설명하는 능력이 부족한 모양이다. 소운 녀석에게 핀잔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
“음, 저기, 갑자기 불러서 미안해요.”
“괜찮아요.”
또 침묵. 아 젠장.
“사실 전 몰랐거든요. 그쪽이 김선영이라고만 생각했죠. 직접 강기진에게 김선영과 사귀냐고 물어보니까 발뺌을 하는 거예요. 다음날 공연 마치고 내가 처음 보는 여자랑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는 바람을 피우는 거라고 확신을 했죠. 그쪽을 김선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
“근데 알고 보니까 녀석은 밴드 보컬을 하고 있고 인기 관리를 위해 김선영과 사귄다는 사실을 감추고 있었을 뿐이었어요. 딱히 바람을 피우는 건 아니었죠. 정정아와 그쪽에 대한 얘기도 했어요. 극성스럽지만 그래도 중요한 팬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
“생각해봐요. 강기진을 좋아한다는 건 알겠어요. 잘생기고 노래도 잘 하니 좋아하는 것도 이해 가는데, 녀석이 지금 좋아하고 사귀는 상대는 김선영이죠. 당신은 그저 팬으로 여길 뿐이에요. 한번 스스로 생각을 해봐요. 강기진을 정말 좋아하는 건지 어떤지.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사귀고 싶은 남자로서 좋아하는 건지 판단을 내려보는 게 어떨까요?”
“…….”
“그냥 멋있어서 연예인처럼 좋아하는 거라면 강기진의 연애도 인정하고 받아들이세요. 녀석이 진짜 연예인도 아니고 평생 팬의 사랑만으로 먹고 살 순 없잖아요? 그 녀석도 사람인데 누군가를 좋아도 하고 싫어도 하면서 살겠죠. 제대로 연애도 결혼도 못하면서 나이가 든 연예인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 있어요? 난 있는데.”
얘기가 좀 엇나가는 것 같아서 생각도 정리할 겸 커피로 마른 목을 적셨다. 유화는 여전히 꾸중듣는 자세였다. 보는 내가 다 불안할 지경이었다. 차라리 반론도 하고 따지고 좀 인간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게 말하는 나도 편할 텐데 말이다. 설마 듣는 척만 하고 속으로는 무시하고 있는 거 아닐까? 그런 불안까지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만약에 정말 좋아서 사귀고 싶다면, 그래도 일단 현재의 상태는 인정해야 해요. 강기진이 김선영을 버리고 자신에게로 올 수 있을지 냉정하게 따져봐야죠. 그 녀석에게 고백한 적은 있나요?”
유화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그렇지.
“마음을 전달하지도 않았는데 강기진이 알아줄 리가 없죠. 팬클럽 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좋아해주겠어요? 녀석은 그저 팬으로만 여기고 선을 긋는 눈친데. 그래도 정 좋다면 솔직하게 털어놓고 사귀어달라고 해요. 내가 볼 땐 십중팔구 거절당할 걸요. 어제 강기진이 데이트하는 모습을 훔쳐봤는데 열 받아서 못 봐줄 정도던데요. 커플들은 다 폭발해버려~!”
나도 모르게 흥분하여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카페 안에 다른 손님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덕분에 누나가 달려와서 캐묻기에 프라이버시 운운하며 쫓아버렸다.
“……충고 고마워요.”
유화의 눈에 다시 눈물이 맺혔다. 이거 휴지를 뽑아줘야 하나, 역시 손수건? 근데 난 손수건을 갖고 다니는 센스있는 남자가 아닌데 어쩌지.
“말씀하신 그대로예요. 전 기진 오빠를 좋아하지만 제 마음이 어땠는지 스스로도 몰랐어요. 연예인처럼 좋아하는 건지 남자로 좋아하는 건지…… 이제야 좀 정리가 되는 것 같아요.”
결국 유화는 자기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고는 웃어 보였다. 억지로 짓는 미소처럼 보여서 내 마음은 한층 슬퍼졌다.
“내가 나희 언니나 정아였으면 좋았을 텐데. 나희 언니도 기진 오빠를 좋아하지만 친한 친구로서 좋아하는 거였죠. 정아는 팬클럽 활동으로 만족하고 있고요. 근데 전 친구도 팬도 다 싫었어요. 특별한 관계가 되고 싶었지만 한 걸음 나아갈 용기는 없고…… 그러다 봤던 거예요.”
“강기진과 김선영이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했군요.”
“나희 언니나 정아였으면 그 정도로 놀라고 화가 나진 않았을 거예요. 제가 아는 한 오빠와 가장 친한 사람들이니까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 있는 셈이죠. 그런데 처음 보는 여자애랑 손을 잡고 웃고…… 그 웃음은 공연할 때 보여주는 과장된 웃음이 아니었어요. 친구들이랑 떠들 때 보이던 밝은 웃음도 아니었어요. 부드럽고 온화하고…… 세상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던 그런 표정을 그 여자에게만…… 그날 밤엔 정말 잠도 못 자고……”
유화는 다시 고개를 숙여 눈물을 닦았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유화는 탐정 사무소를 찾았다. 강기진의 여자관계를 파헤쳐달라는 의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자신의 정체도 드러나게 된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던 유화는 탐정을 속일 계략을 꾸몄다. 그 여자의 이름을 알아낸 유화는 자신을 여자친구 김선영으로 가장하고 의뢰를 했다. 탐정이 기진을 조사하다보면 선영과의 관계가 가장 먼저 드러날 걸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거기까진 예상대로 되었다.
하지만 소운은 감추고 싶던 자신의 정체까지 밝혀내고 만 것이다. 초과 성과를 이뤘다고 해야 하는 건지. 의뢰인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성과인 셈이지만.
“내가 주제넘은 충고를 한 건지도 모르지만 잘 생각해봐요. 우선 강기진과 김선영의 관계를 인정하고, 그 사실을 알고 난 다음 자신의 마음에 변화가 생겼는지를 생각하는 거예요. 대답은 그 다음에 나올 거예요.”
어쩐지 그럴싸한 마음을 늘어놓은 스스로가 창피하기도 해서 얼른 일어났다.
내 주제에 무슨 멋진 소리냐. 얼굴이 다 화끈거리네.
도망가자, 도망.
“누나! 커피값 달아놔~!”
나는 누나에게 장난스럽게 한 마디 하고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잠시만요!”
누나의 애정 섞인 투덜거림에 섞여서 유화의 한 마디가 들렸다. 놀라서 돌아보니 유화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전화번호 좀 알려주시겠어요?”
“저, 전화번호……요?”
“또 상담 드리고 싶은 일이 생길지도 몰라서요.”
“유화는 미소를 지었다.”
“탐정이라면 애프터서비스도 확실히 하셔야죠?”
어쩐지 유화가 웃는 모습을 처음으로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부드럽고 온화한, 세상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을 듯한 그런 미소였다.

* * * * *

이 사건은 그렇게 완전히 끝났다. 더 구차한 뒷이야기가 필요할까 싶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덧붙여본다.
그날 소운은 사건을 해결했으니 피자를 시켜먹자고 칭얼거렸지만 밀린 사무실 임대료와 전기, 수도, 가스 요금을 제시했더니 깨갱했다. 풀이 죽은 녀석은 친구들이랑 약속했던 수족관으로 놀러 갔다.
“보수 공사가 끝나서 면적도 커지고 어종도 늘었대.”
소운은 자랑하듯 말하면서 부리나케 나가버렸다. 저녁은 어쩔까 물어보니 대답도 안 하고. 모르겠다. 알아서 친구들이랑 사먹고 오겠지.
혼자 사무실을 지키며 마오를 빗으로 빗고 물도 먹이면서 시간을 보냈다.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였다.
저녁에 뭘 먹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평소 문자를 주고받는 상대라곤 소운밖에 없어서 깜짝 놀랐다. 좀 전에 번호를 교환했던 유화에게서 온 문자였다.
나는 쫓기는 사람처럼 사무실을 나섰다.
미진고에서 조금 떨어진 아파트 단지에 있는 놀이터 겸 공원, 거기에 기진과 유화가 마주보고 서있었다. 나는 평소 솜씨를 살려 둘에게 들키지 않고 최대한 가까이 다가갔다.
유화가 기진과의 만남을 알린 이유는 무얼까.
오면서 잠깐 고민했지만 역시 끼어들지 않는 편을 택했다. 유화는 내가 그저 그 사실을 알아주기만을 원했던 게 아닐까.
이렇게 몰래 엿보는 것까지 원했는지 어떤지, 내가 옳은 행동을 하는 건지 판단할 자신은 없었다. 그래도 이러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탐정이기 전에 유화의 일이 궁금한 사람일 뿐이니까.
집음 마이크를 두 사람 쪽으로 내밀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것, 둘만의 대화를 엿듣는다는 죄책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어떤 의미로 이 자리는 유화가 초대한 게 아닌가.
“……앞으로도 전 오빠의 팬으로 있을 거예요.”
유화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치만 더 이상 귀찮게 굴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세요.”
“어, 그래, 고맙다.”
“대신 오빠도 하나만 약속해줘요.”
“뭔데?”
“김선영과 사귄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거예요. 공연장에서 당당하게 말을 하세요.”
“안 돼! 그럴 순 없어. 지금 공연 오는 애들이 몇인데……”
“그 정도로 실망하고 안 오는 애들이라면 진짜 팬이라고 할 수 없죠. 그저 오빠가 잘생겼다고, 언젠가 사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어설픈 기대감을 품고 오는 애들이에요. 오빠의 공연, 음악, 노래, 이런 게 좋아서 공연에 오는 애들이 아니에요.”
“그래도…… 너 알잖아, 우리 밴드가 거기서 정기 공연할 수 있는 것도 고정 팬들이 있어줘서 그렇다는 걸. 걔들이 반만 빠져도 우린 공연을 유지할 수 없을지 몰라.”
“오빠는 그 조그만 클럽에서 주 1회 공연하는 데에 만족하고 있는 거예요?”
기진은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여기서 봐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정말 음악이 좋고 밴드로 성공하고 싶으면 밑바닥부터 음악만으로 승부를 걸 수도 있잖아요? 한 줌도 안 되는 여자애들을 팬으로 거느리고 만족하실 거예요? 오빠 앞에는 훨씬 큰 꿈과 포부가……”
“그게, 실은 그렇지가 않아. 밴드 형들도 다 오래할 생각까지는 없는 모양이야. 군대 갖다오고 대학 졸업하고 그러면 그만두겠지. 나도 일단 특기생으로 대학만 갈 수 있으면……”
짝.
해지고 어두운 공원에 뺨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 참 찰진 소리였다. 기분이 상쾌해졌다.
기진은 놀란 얼굴로 손으로 뺨을 감싸쥐었다. 녀석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던 모양이다. 늘 꼬리를 살랑거리며 말 잘 듣던 애완견이 어느 날 더는 네 밑에서 참고 살기 싫다면서 배에 칼침을 놓을 때 보일 법한 주인의 반응 같다고나 할까.
“오빠의 음악에 대한 마음은 고작 그 정도였군요.”
유화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분노한 표정이었다.
“덕분에 제 마음도 잘 정리가 되었어요.”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도망치듯 달려갔다. 나는 마이크를 거두고 기진의 모습을 조금 더 지켜보았다. 녀석은 혼자 드라마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손으로 뺨을 쓰다듬다 하늘을 보고 앞을 보다가 옆을 보고 ‘허! 참!’ 같은 작은 감탄사를 몇 번 내뱉은 다음 유화와는 다른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유화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탐정은 왜 존재하는 건지 다시 한 번 자문자답했다.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잡는 건 경찰의 일이다.
탐정은 의뢰인의, 그리고 사건에 얽힌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
모두가 행복해지도록 내 능력을 보탤 수 있다면, 나도 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거다.
어쨌든 이렇게 끝난 줄 알았던 사건은 다음날 월요일 저녁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유화가 또 찾아왔다.
이제는 가명을 쓰지도 않았고, 불안하고 두려운 기색을 보이지도 않았다.
깨끗한 교복 차림에 단발머리에선 고추장 냄새가 아니라 샴푸 향기가 났다.
흐뭇하고 여유롭기까지만 미소가 얼굴에 가득했다.
직접 구운 쿠키를 선물로 준 것만은 지난번과 똑같았다.
“어, 어서 오세요.”
이상하게 어색한 느낌이 들어 나는 고개를 숙였다. 유화도 똑같이 공손한 태도로 인사를 나눴다.
“실은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뒤에서 소운이 목소리를 높였다.
“오오! 또 의뢰를 하시러 오셨나요? 웰컴, 웰컴! 이리 오세요!”
“아뇨, 이분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유화는 부드러운 미소를 내게로 향했다.
“죄송하지만 사건의 의뢰가 아니에요. 전화나 문자로 하면 실례가 될 것 같아서 직접 말씀드리려고요.”
소운에게는 안 들릴 작은 목소리였다.
“그럼 무슨……?”
“이번 주말에 저랑 수족관에 같이 가주실래요?”

-〈남자를 믿지 마〉 끝-
 
+ 작가의 말 : 이대로 정말 끝내도 될 듯한 내용;; 1챕터라기보다 단편 한 편이군요. 취지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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