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마이페이지
 
Q&A
[공지] 노블엔진 홈페이지가 …
[꿈꾸는 전기양과 철혈의 과…
《노블엔진 2017년 4월 2차 …
[리제로 10 + 리제로피디아] …
[Re :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
 
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 1챕터 피드백 일자는 편집부 사정상 이번주 목요일(11월 14일)까지 작성됩니다.
늦어지게 된 점 죄송하게 생각드리며, 수정을 위해 3주차 마감을 다음주 월요일(11월 18일)로 연장합니다.
피드백을 받은 뒤 이미 작성된 글을 수정하셔도 무방하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검토는 최종 수정 원고가 기준이 됩니다.

 
Under. Stand글 아풋사
공모전
 
 
첫회보기 관심
목록 이전 다음
 
 
Page. 1 장난전화
13-10-29 02:47
 
 

  아주 예전에 있었던 일은 아니다. 초중고를 불문하고 대한민국 전역에 ‘분신사바’라는 놀이가 번진 적이 있었다. 난수는 당시 어린 나이였지만, 무슨 놀이인지는 들어본 적 있었다. 분신사바는 쉽게 말해 귀신을 부르는 놀이다.

  연필이나 볼펜에 손을 모은 뒤, 도화지 위에 얹어두고 ‘분신사바, 분신사바, 오이데 쿠다사이’라고 주문을 외우면 귀신이 찾아와 질문에 대답해준다는 내용이었다. 대체 산사람이 지천에 깔렸는데 뭐더러 죽은 사람까지 불러서 귀찮게 굴었는지는 몰라도, 아마 분신사바가 정말 효험이 있는 놀이였다면 귀신 여럿 귀찮았을 것이다.

  어쩌면 너무 귀찮은 나머지, 누구 한 명 본보기로 죽였을지도 모른다.

  “우리 셋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어.”

  선지가 헛기침을 하면서 화두를 던졌다. 친구. 난수는 청아와 서리를 보고 새삼 납득했다. 세 사람 모두 개성적이다 못해 넘치는 수준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친구처럼 보였다. 아마 이 셋은 다른 평범한 아이들 사이에 있으면 친구가 아니라 그 그룹의 리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다들 장난을 잘 쳐서 혼 많이 났지. 그래도 고등학교까지 계속 같은 학교다 보니까, 이렇게 간간이 만나서 수다나 떨고 있어.”

  “그런데 말이야.”

  시큰둥하게 지켜보던 청아가 선지의 말을 끊었다. 청아는 옆에서 생긋생긋 웃는 서리를 불만스럽게 째려보다 볼을 부루퉁하게 부풀렸다.

  “며칠 전에 나랑 잘 아는 언니와 만날 기회가 있었어. 넷이서 같이 밤늦게까지 노래방에서 놀다가 돌아오는데, 그 언니가 이상한 얘기를 꺼내는 거야.”

  ‘얘들아. 우리 재밌는 놀이 안 할래?’

  선지는 대범했고, 청아는 과감했으며, 서리는 태평했다. 세 사람은 만장일치랄 것도 없이 그 선배를 따라 근처에 있는 빈 집으로 들어갔다.

  “아니, 왜 하필 빈 집이야?”

  “그 편이 있어 보이잖아.”

  있긴 뭐가. 귀신이? 난수는 기가 막혔지만 지금은 잠자코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로 마음먹었다. 빈 집에 사나운 귀신이 살지 않아도, 결국 버려진 곳은 인적이 뜸해진다. 사람은 귀신만 아니라 같은 사람도 조심해야 하는데, 이쯤 되면 겁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단순히 생각이 없지 않나 싶다.

  “넷이서 둘러앉은 다음에, 언니가 핸드폰을 꺼냈어. 가운데에 놓고 ‘지금부터 전화를 걸겠습니다.’ 그러더라고. 분신사바 같은 거라고 그랬어.”

  “무슨 주문 같은 것도 외웠어?”

  난수가 급하게 물었다. 세 사람은 서로의 눈을 마주보았다가 짜기라도 한 듯 난수를 돌아봤다. 의문과 약간의 놀라움을 버무린 다섯 개의 시선이 꽂히자 소년은 진저리를 쳤다.

  “아니, 짚이는 구석이 있어서 그래. 계속해 줘.”

  “흐응.”

  청아의 말은 길었지만 요지는 간단했다. 네 사람이 돌아가면서 번호를 하나씩 고른다. 열한 자리의 전화번호가 완성되면 전화를 걸어 질문을 던진다. 처음 세 번까지는 걸리지 않고, 네 번째부터 연결이 된다.

  “혹시 번호가 뭐였는지 기억나?”

  “몰라. 난 두 번째부터 따분해서 대충 눌렀어.”

  콧방귀를 뀌는 대신 서리가 창틀에서 내려서며 대답했다.

  “444-4444-4444야. 다른 번호는 몰라도 마지막은 기억나.”

  “그런 번호로 걸린단 말이야?”

  “걸렸으니까 우리가 널 부르지 않았을까?”

  서리의 뜻 모를 미소와 마주하자 난수는 갑자기 아랫배가 욱신거렸다. 그는 배를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통을 느끼자마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왜 그래?”

  “미안. 대충 어떤 얘기인지는 알겠으니까 생각 좀 정리해볼게.”

  난수는 선지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음악실을 뛰쳐나갔다. 낡은 미닫이문을 세게 닫은 소년은 가쁜 숨을 헐떡거렸다. 꽉 다문 입속에 침이 가득 고여 있었다.

  ‘정말일까?’

  ‘그런 일이 있을까?’

  세상에는 때때로 믿기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고는 한다. 하지만 그런 현상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마주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그 현상이 정말 저 세 사람에게 일어났다면?

  ‘좋아.’

  난수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음악실을 나와서 바깥공기를 들이마시니 복통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소년은 심호흡을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청아의 째지는 목소리가 가장 먼저 그의 귀를 낚아챘다.

  “야, 너 뭐야? 사람이 한참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뛰쳐나가고. 설마 너 겁먹었어?”

  “쟤 그런 얘기 안 무서워 해.”

  선지는 흥흥 코웃음 치는 청아를 다독이고서 진지한 눈으로 난수 앞에 섰다. 평소에도 여자치고는 훤칠하다고 여겼지만, 이렇게 마주서니 정말 커보였다. 운동으로 단련한, 하물며 사람을 상대로 숱하게 시합한 선수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팔짱을 낀 선지가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사람이 죽었어.”

  “야! 선짓국! 그건 그냥 사고였어!”

  청아가 발칵 언성을 높였다. 사고, 그리고 청아가 언니라고 부를 사람. 난수의 머릿속에서 흐트러졌던 퍼즐조각이 맞아떨어졌다. 난수는 음악실에 돌아온 뒤로 바싹 마른 입술을 힘겹게 열었다.

  “그 오토바이 사고?”

  “너, 당장 꺼져.”

  청아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사람 잡아먹는 맹수나 가질 시선과 이런 곳에서 마주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난수는 방금 전 힘껏 들이마셨던 숨으로 배에 단단히 힘을 줬다. 사고건 아니건 간에 사람이 죽은 이상 가만히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아니, 못 가.”

  “뭐?”

  눈썹을 꿈틀거린 청아가 시뻘게진 얼굴로 핸드폰을 집어던졌다. 난수의 콧등을 정확히 맞춘 투구였다. 떨어진 핸드폰이 요란하게 분해되었다. 난수가 코를 붙잡고 비틀거리자 선지의 눈에 불이 붙었다.

  “청아, 너 진짜!”

  “너도 서리도 그만해!”

  치맛자락을 꽉 움켜쥔 청아가 비명을 질렀다. 선지는 청아의 일그러진 얼굴에서 엿보이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아랫입술만 질근거렸다. 사람이 죽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졸음운전 중이던 트럭에 부딪쳐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죽은 사람은 같은 학교 3학년 선배였다.

  “민지 언니 얘기는……꺼내지 마.”

  “나도 고인 운운하면서 낄낄거릴 생각 없어.”

  난수는 아직도 얼얼한 코를 부여잡고 먹먹하게 대답했다. 여태까지 간신히 참았던 설움을 터뜨린 청아는 그 와중에도 뻗대는 난수가 어지간히 기막혔다. 대체 저 새끼가 무슨 깡으로 저렇게 버티지? 난수는 청아와 눈을 마주친 채 코를 흥 풀었다. 엉긴 코피가 소매를 적셨다.

  “하지만 이미 이야기를 들은 이상, 난 너희를 돕고 싶어. 아니, 도와야 해.”

  소년은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서리를 곁눈질하다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너희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해서이기도 해.”

  난수는 괴담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체험한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는 정말, 정말이지 끔찍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떠올리려고 하면 구역질이 나왔다.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그 대신 난수의 마음속에는 커다란 강박관념이 들어앉았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살 수 있다.’

  이기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그저 운 좋게 얻은 삶을 두 번 다시 허무하게 잃고 싶지 않았다. 소년은 그 뒤로 괴담을 탐닉했다. 등줄기가 쭈뼛거리고 식은땀이 흘러도 괴담을 수집하고, 파헤치려 애썼다.

  “이 머리카락도, 그 때 색이 빠졌어. 그럼 나도 내 이야기를 털어놨으니 시작해도 될까?”

  이견은 없었다. 그만큼 소년에게서 절실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작은 음악실 안을 한 바퀴 돌아본 소년은 삐걱거리는 교단 위로 올라갔다.

  “너희들이 말한 장난전화는, 몇 가지 관점에서 봤을 때 아주 위험한 장난이었어.”

  자기가 던져놓고 흠집 생겼으면 책임지라며 큰소리 떵떵 치던 청아도 얌전해지자, 고민을 마친 난수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소년은 소녀들의 이목을 끌며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첫째. 장소. 외딴 곳은 위험해. 남들의 눈이 닿지 않고, 남들이 발을 들이지 않는 곳에는 가지 않는 편이 상책이야. 사람이 없으면 귀신이건 뭐건 간에 머물 수 있어. 물론 그렇지 않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그랬다면 굳이 장난전화가 문제가 아니야.”

  “둘째. 숫자야. 사람도 넷이었고, 숫자도 넷이었어. 횟수도 네 번째였지.”

  “4가 세 번이나 들어갔네.”

  선지가 손가락을 굽혀보다가 신기했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세 번이 문제야. 4는 꺼리는 숫자인 반면에, 3은 예전부터 ‘완전성’을 상징해. 자, 4가 죽음을 뜻하는데 완전해졌어.”

  난수는 칠판에 커다랗게 두 글자를 적었다. 필사(必死). 다소곳하게 손을 모은 채 듣던 서리가 이름대로 서리 내릴 만큼 차갑게 뇌까렸다.

  “셋째. 사실은 이게 제일 큰 문제야. 너희는 지금 불안해하고 있어.”

  “불안해? 내가? 보자보자 하니까 지금 사람이 물로 보이냐?”

  청아가 발끈했지만, 정곡을 찔린 탓인지 핸드폰은 날아오지 않았다. 난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 번만 더 그렇게 맞으면 코뼈가 부러질 정도였다. 쪼그만 게 무슨 힘이 그렇게 좋은지 원.

  “적어도 제삼자인 내가 보기에는 그래. 불안은 제일 큰 독이야. 너희, 평소에 미신이라거나 잘 믿는 편은 아니지? 그런데도 나를 부르는데 수긍했잖아.”

  청아가 앓는 소리를 내며 구시렁거렸다. 그녀 또한 성질을 부려도 막상 선지가 난수 얘기를 꺼냈을 때 지푸라기도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찬성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세 가지 이유로 조건은 완전해지네.”

  “……아, 응. 그래. 맞아.”

  서리가 손가락으로 칠판에 적은 ‘3’을 가리켰다. 사실 이유를 꼽는 데 별 생각이 없었던 난수는 서리의 지적을 듣고 얼떨결에 긍정하고 말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소년은 침을 꼴깍꼴깍 삼키면서 스스로를 다그쳤다. 번지르르하게 설명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두려움에 떠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

  “혹시 오늘 친구 집에서 잘 수 없는 사람, 있어?”

  난수가 터뜨린 뜬금포가 짦은 정적을 불러왔다. 가장 먼저 눈치를 챈 청아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비웃음을 흘렸다.

  “뭐야. 너 우리한테 관심 있어? 아니면 선짓국?”

  “서, 선짓국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멍청아!”

  잔뜩 몰입해서 이야기를 듣던 선지가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멍청아’라는 별명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청아도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누가 멍청해, 멍청하긴! 너도 저번 모의고사 성적표는 비둘기 소리만 냈으면서!”

  “그러는 넌 시험도 안 보고 자빠졌잖아!”

  두 소녀가 꺅꺅거리면서 싸우자 팽팽하게 당겨졌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느슨해졌다. 그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서리가 교탁에 선 난수에게 배시시 웃었다.

  “그러면 선생님, 오늘밤은 어디서 보낼까요?”

  머리 까진 50대 선생님이라도 얼굴을 붉힐 만큼 교태가 묻어나왔다. 같은 나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달콤한 목소리에 난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소년은 안경을 올려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 애썼다. 하지만 다음에 꺼낼 말이 더 부끄러웠다.

  “우, 우리 집으로?”

  “뭔 개소리야?”

  “너, 너, 너, 너희 집?”

  “어머, 생각보다 과감하네.”

  세 사람의 엇갈리는 반응이 난수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

  사람은 살면서 용기를 내야 할 때가 있다. 좋아하는 소녀에게 고백할 때, 친구들에게 떠밀려서 수련회 마지막 날 무대에 섰을 때,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여자애를 집으로 불렀을 때. 난수는 자신의 신세를 자각하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삼키기 힘들었다.

  “야, 변태안경. 너 꽤 한다? 다시 봤어.”

  방금 전까지 물어뜯으려고 안달을 내던 청아가 히죽거리면서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나, 난수. 너. 진심이야?”

  반면에 옆에서 걸어가는 선지는 아까부터 딸꾹질이라도 나오는지 말만 꺼냈다 하면 더듬거렸다. 청아가 단골 룸살롱에 나타난 아저씨마냥 능글맞게 웃으면서 선지의 팔에 달라붙었다.

  “야, 선짓국 좋겠다. 좋겠어.”

  “우, 울고불고 난리친 주제에.”

  “누가 울고불고 난리쳤다는 거야?”

  선지는 빨개진 얼굴로 청아를 떼어내고서 같이 걷는 난수를 힐끔거렸다. 하지만 난수는 소녀의 복잡한 눈빛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 알아차렸어도 지금은 애써 외면했을 것이다. 방금 전, 세 사람의 이야기에서 듣지 못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뭘 물어봤을까?’

  정말 전화가 걸렸다면 세 사람, 아니, 네 사람은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통화가 됐다고 가정한다면 그 내용이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살갑게 구는 청아가 언제 돌변할지 걱정이었다.

  ‘우선은 오늘밤부터 조용히 넘기자.’

  난수가 세 사람을 집에 초대한 데에는 다른 엉큼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사춘기 소년이 가진 엉큼함은 이동식 하드디스크에 꽁꽁 봉인해뒀다고 자신하는 난수였다. 세 사람이 비록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예쁘긴 해도, 한 명은 유도선수 지망생에 또 한 명은 학교에서도 포기한 날라리 선두주자니 이 기회에 어찌해보겠다는 생각이 들 리 없었다.

  ‘서리라고 했지? 저 안대도…….’

  난수는 한 발짝 떨어져서 사뿐사뿐 걷는 서리를 말없이 주시했다. 솔직히 말해 위험인물이었다. 알기 쉬운 성격인 선지와 청아는 부득이한 상황만 아니라면 잘 다독일 수 있겠지만, 서리처럼 속모를 사람은 상대하기 고약했다. 게다가 서리를 두고 고민할 때마다 복통이 슬금슬금 도지려고 했다.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난수는 안경을 고쳐 쓰면서 간절히 소망했다. 역시 가장 좋은 결말은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다. 가장 나쁜 결말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습니다.’겠지만.

  “그런데 변태 안경, 너 이래도 돼?”

  선지의 애타는 심정을 흔들기 싫증났는지, 생각에 잠긴 난수에게 청아가 대뜸 딴죽을 걸었다. 난수가 멀뚱히 돌아보자 청아는 제 가슴을 때리며 윽박질렀다.

  “부모님 안녕하시냐? 너 같으면 오밤중에 여자애 셋을 데려오는 자식 놈한테 무슨 말이 나오겠냐?”

  “아, 그거.”

  난수는 난처하게 뺨을 문질렀다. 다른 두 사람도 청아의 지적에 흥미가 생겼는지 난수를 빤히 쳐다봤다. 불안한 듯 입술을 꿈틀거리는 선아가 과히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괜찮아. 나 혼자 살고 있어.”

  “어? 진짜?”

  그러자 오히려 질문한 청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마치 이 세상에 산타클로스 같은 건 없다고 선고당한 다섯 살배기 어린아이 같았다. 체구야 잘 쳐주면 중학생 정도지만, 이럴 때면 얘가 정말 그 선생님들도 포기한 불량아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왜 그렇게 놀라?”

  “아니, 생긴 건 꼭 부모 등골 빼먹게 생겨놓고 혼자 산다니까 그러지.”

  “…….”

  부모님 등골 빼먹는 건 너도 마찬가지 아닐까? 난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질문을 간신히 삼켰다. 지금은 정의보다 콧등의 안전이 중요했다. 교문을 나선 뒤로 청아의 손에서 굴러다니는 핸드폰에 싫어도 계속 눈이 갔다.

  “난수야. 집이 어딘데?”

  “학교에서 가까워. 조금만 더 걸어가면 돼.”

  선지에게 대답한 난수는 저만치 떨어진 아파트를 가리켰다. 청아가 탄성을 터뜨렸다. 학교 근처인데다 대로변에서 가깝기 때문에 난수가 가리킨 아파트 앞을 지나간 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를 조성하지 않고 건물은 한 채뿐인데, 입구에 험상궂게 생긴 경비원이 24시간 지키고 서있었다.

  “다시 봤어. 변태 안경. 너 의외로 부잣집 아들이었구나.”

  “의외가 뭐야. 의외가.”

  보다 못한 선지가 청아를 걸고 넘어졌다. 청아는 대답 대신 혀를 날름 내밀었다. 가만히 걸음을 맞춰가던 서리가 문득 손가락을 튕겼다.

  “그렇구나. 어차피 혼자 사는 집이라 부담도 없고, 저런 아파트라면 만에 하나 외부인의 출입도 막을 수 있으니까 안심할 수 있겠네. 모두가 함께 있으면 불안감도 덜 수 있고. 역시 선생님다워.”

  “언제까지 선생님이라고 부를 생각이야?”

  난수는 평소 해맑은 표정으로 청춘을 구가한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열일곱 살에 선생님 소리를 들을 만큼 구태의연하지는 않았다.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선생님 아닐까? 우리는 무서운 이야기를 잘 몰라. 그러니 난수는 괴담 선생님. 어때?”

  “귀신의 팔이라도 달고 다닐 것 같잖아.”

  난수는 쓴웃음을 흘렸다. 괴담 선생님이라, 서리야 가볍게 생각하고 말했겠지만 난수에게는 순순히 받아들일 여력이 없었다. 또다시 괴담에 엮였다고 하자니 숨이 턱턱 막혀왔다.

  ‘무서운 이야기’는 두려움을 주기 때문에 무서운 이야기다. 해명되고, 해결된 이야기는 으스스할지언정 무섭지 않다. 대담한 누군가는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일 때 희열을 느낀다고 하지만, 난수는 제발 자기만큼은 그런 일에서 빼줬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난수야. 그 애들은 누구니?”

  다부진 체격의 경비원이 난수 뒤를 따라온 여학생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곳은 여느 아파트 단지처럼 나이 지긋하신 분들을 경비원으로 쓰지 않았다. 사측에서는 최고의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뜻으로 경호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고용했다.

  “아, 그러니까…….”

  미처 난수가 해명하기도 전에 청아가 검지와 중지 사이로 엄지를 빼내 수줍게 내밀었다. 노골적인 제스처가 민망했는지 경비원 청년은 다시 봤다는 표정으로 문을 열어줬다.

  “네가 이런 녀석일 줄 몰랐다.”

  “아니, 아니거든요! 절대 아니거든요! 그냥 사정이 있어서 하룻밤 묵을 뿐이에요!”

  “하루가 이틀 되고 이틀이 사흘 되는 게 남녀 사이야. 그래도 세 명이라니, 부디 살아남길 바란다.”

  청년은 엄지를 세우며 환한 미소를 지어줬다. 이미 납득시키기에는 단단히 글러먹었다. 난수는 순식간에 십 년은 늙어버렸다. 문이 닫히기 무섭게 청아가 배를 잡고 깔깔거렸다.

  “청아 너! 우리 애늙은이한테 무슨 짓이야!”

  “우리? 우리? 뭐라고요? 잘 못 들었는데요?”

  귀까지 빨개진 선지가 청아의 멱살을 잡고 탈탈 흔들었다. 괜히 깐죽거리다가 탈수기에 들어간 빨래 꼴이 된 청아는 서리가 말려주고 나서야 두 다리로 설 수 있었다. 휘청거리면서 벽을 부여잡은 소녀가 헛구역질을 하면서 투덜거렸다.

  “아까 복수야. 선짓국. 하여튼 여자애가 힘만 더럽게 세서는…….”

  “청아야. 아무래도 때를 잘못 고른 것 같은걸. 다음에는 좀 더 은밀하고 과감하게 해 봐.”

  옆에서 타이르지는 못할망정 부추기는 서리 탓에 선지의 가슴은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벨이 울리자 폭삭 늙어버린 난수는 세 사람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앞으로 무슨 낯으로 집을 오갈지 울적해진 난수가 부쩍 지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 집이 좀 특이하게 생겼어. 어차피 하루니까 신경 쓰지 말고 지내.”

  승강기가 멈추자 널찍한 복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 사람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난수는 주춤주춤 현관문을 열었다. 최선의 선택이긴 하지만, 최선이란 언제나 그렇듯 ‘최고’가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좀 더 나은 선택지가 있다면 주저 없이 바꿀 수 있을 텐데.

  “들어와.”

  결국 문을 연 난수가 세 사람을 안으로 안내했다. 가장 먼저 집 안을 기웃거린 청아가 흠칫 굳었다. 뒤따라 들어가려던 선지가 조바심을 내려던 차에 현관문에 붙은 자물쇠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보던 서리만이 두 친구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속삭였다.

  “왜 그래?”

  “어……그러니까……문화공격?”

  “문화충격이겠지.”

  청아의 말을 정정한 서리도 마지못해 들어가는 두 사람을 따라 별세계에 발을 들였다.

 
+ 작가의 말 : 1챕터 1주차입니다.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휴문의 이용약관 개인정보보호정책
주소 : 인천광역시 부평구 평천로 132 (청천동) TEL : 032-505-2973 FAX : 032-505-2982 email : novelengine@naver.com
 
Copyright 2011 NOVEL ENGIN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