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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 1챕터 피드백 일자는 편집부 사정상 이번주 목요일(11월 14일)까지 작성됩니다.
늦어지게 된 점 죄송하게 생각드리며, 수정을 위해 3주차 마감을 다음주 월요일(11월 18일)로 연장합니다.
피드백을 받은 뒤 이미 작성된 글을 수정하셔도 무방하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검토는 최종 수정 원고가 기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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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주인공의 직업과 학생의 본분에 관하여
13-10-23 23:57
 
 

0. 주인공의 직업이란

그러니까, 15세기쯤? 우리 선조님들이 아직까지 바다 건너에 서양인이란 인종들이 있는지도 모르고 계실 무렵에 한 흡혈귀, 본토에서는 뱀파이어라고도 부르는 괴물 녀석이 이 조선 땅에 발을 내딛었단다.

물론 괴물이라고 하면 다들 막연히 강하고, 특이한 능력도 가지고 있는 데다 왠지 모르게 인간한테는 적대적인 녀석들을 떠올리지만…… 지금 말하는 녀석은 흔히 생각하는 그런 괴물들과는 뭔가 다른 점이 있는지, 밀입국을 한 이후에도 별로 큰 사고는 치지 않았던 모양이다. 본인 말로는 그저 편하게 놀면서 지낼 곳을 찾아왔을 뿐이라나.

그렇다고 그가 다른 녀석들 눈치나 보면서 피해 다니는 그런 허접한 녀석은 아니고, 당시에도 강하기로는 전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꽤나 유명한 뱀파이어였다고 한다. 진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지금 내가 보기에도 당시에도 원했다면 자신이 있던 곳을 피바다로 만드는 것쯤은 간단했을 레벨일 거라고 판단되니까. 편하게 놀고 싶었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겠지.

다만 세상은 그 녀석을 원하는 대로 편히 지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원래 신화시대를 기준으로 해서 동방에서는 인간 아닌 종족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였다고 한다. 나야 그 시대를 안 살아봐서 모르지만, 당사자인 그 녀석에게 직접 들어본 바로는 동서양 인간들의 전투력의 차원이 달랐다고 하던데. ……, 지나가던 선비가 간단하게 요괴를 때려잡고 이름 없는 스님이 염불 몇 마디로 유령을 성불시키던 곳이 바로 이 땅이었다고 하니까.

하여튼, 그런 지옥 같은(?) 삶을 살던 괴물들에게 있어 갑자기 나타난 강력한 동족은 하늘이 내려주신 구원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세계에서 손꼽히는 전투력을 지닌 이 뱀파이어에게 의지하였고, 녀석도 생존을 위해 자신에게 몰려드는 동족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결국 동방의 이 인간 아닌 종족들은 신화시대의 종결 이후 근 천 년이 훨씬 넘는 시간동안 지나가던 선비니 이름 없는 스님이니 하는 강력한 인간들에 의해 고통 받다가 드디어 등장한 외국산 뱀파이어를 구심점으로 뭉치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지금 내가 소속되어 있는 동방야회東方夜會의 시작이 되었다.

 

……인간이잖아.”

당황스러움, 약간의 분노, 어이없음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한마디. 아무도 없던 뒤쪽에서 갑자기 들려온 사내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순간 균형을 잃고 말았다. 손에 들고 있던 참고서와 펜을 떨어뜨리고, 곧이어 나도 앉아있던 곳에서 떨어지려는 순간…….

, 뭐하는 거야?”

다행히 방금 말을 꺼낸 녀석이 급히 몸을 날려서 내 뒷덜미를 잡아 위로 끌어올렸다. , 하고 시야가 뒤집히더니 정신 차릴 틈도 없이 바닥에 구르기 시작했다. 어이쿠.

그렇게 몇 바퀴를 구르고 일어나 보니 웬 사내가 나와 비슷한 모양새로 반대쪽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아마 떨어지려는 날 붙잡으려고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다가 나하고 같이 신나게 구른 것 같은데……. 고마운걸.

나는 사내의 모습을 살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옷에 묻은 먼지를 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새 저쪽도 정신을 차렸는지 뒤쪽에서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

고개를 돌려보니 날 째려보는 녀석의 시선이 정면으로 날아와 꽂힌다. 구해주고 저렇게 째려보는 건 또 뭐람. 날 끌어올리다가 엎어진 게 기분이 나쁜가본데.

?”

침착하게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면서 대답하니 날 째려보던 녀석의 눈매가 한층 더 가늘어진다. 나 기분 나빠졌소,를 한층 더 강조하는 그런 모양새.

평범한 학생이 이 시간에 이런 곳에서 공부하고 있을 학생이 있을 리는 없고. 네가 동방야회에서 나온다는 심부름꾼이냐?”

그 말을 듣고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까지 내가 앉아있었던 난간 아래로는 수십 미터 높이의 까마득한 야경이 펼쳐져 있고, 거기서 불어오는 바람은 간담이 서늘하게 내 앞머리를 날리고 있다. , 확실히 이런 곳에 걸터앉아서 핵심정리에 밑줄이나 긋고 있을 정신 나간 고등학생은 별로 없겠지.

아냐?”

별로라고 말한 건 우연히도 내가 그 케이스에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물론 눈앞의 녀석이 말한 대로 내가 잘나신 동방야회의 회주가 시킨 일 때문에 여기 나와 있는 건 맞지만, 동시에 내일 당장 시험이 있는 고등학생인 것도 사실이니까. 나는 별 대답 없이 옷에 묻은 먼지는 다 털었는지, 어디 흐트러진 부분은 없는지 확인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 서 있는 사내는 주렁주렁 달린 피어스와 여기저기 드러나 보이는 문신들이 그야말로 불량한 놈이라고 주장하는 듯했다. 이런 부분도 전해들은 그대로, 아마 이 녀석이 오늘 만나기로 한 뱀파이어가 맞으리라. 확인을 끝낸 나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야회의 입회심사관인 한유진입니다. 안녕하세요.”

뭐야, 정말 네 녀석이 심부름꾼이었냐. 그보다 구해준 건 그냥 넘어가고?”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 재미없는 놈.”

자기가 인사를 하라고 해 놓고 뭐가 재미없다는 거냐. 녀석은 혀를 차면서 맨바닥에 털썩 주저앉았고 나도 그나마 깨끗한 곳을 찾은 후 녀석을 마주보며 바닥에 앉았다.

 

이 녀석의 이름은 마크 리. 몇 달 전부터 꾸준히 담당자를 귀찮게 하던 녀석이다.

보통 동아시아에 자리 잡고 있는 인간 아닌 종족들은 어지간하면 동방야회에 적을 두고 있기 마련인데, 이 마크라는 뱀파이어는 무슨 이유인지 몇 달 전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는 자신도 동방야회의 회원이 되고 싶다며 가입을 요청해왔다. 새로운 지역을 찾아온 뱀파이어가 새로운 보금자리를 원한다……. 어떻게 보면 이상한 구석은 없지만, 그렇다고 수십, 수백 년을 사는 종족이 그렇게 쉽게 터전을 옮기는 일도 잘 없기 마련이라. 야회에서는 앞뒤 관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이 녀석의 가입을 허가하기 전에 사전 조사와 함께 간단한 면접을 진행하기로 하였고, 그 담당자로 뽑힌 내가 여기서 이 녀석과 마주앉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

너는 뭐가 잘나서 야회에 들어가 있는 거지?”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를 보면서 나는 이게 익숙한 상황임을 느꼈다. 아무래도 야회의 특성 상…… 아니 특성까지랄 것도 없이, 기본적으로 괴물들의 모임인 야회에서는 무슨 일을 맡든 상대하는 녀석들은 다 같은 종류의 괴물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녀석들 앞에서 내가 야회의 심부름꾼이라고 소개를 하면 십중팔구는 인간인 네가?’ 라는 눈빛이 돌아오기 마련이고, 그 중에서는 단순히 의문의 눈빛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듬뿍 담아서 나를 대하는 놈들도 꽤나 많은 편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이 녀석도 인간에게 감정이 꽤나 있는 편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잘났다는 평가를 받으니 이러고 있겠죠. 동방야회의 입회에 제한은 없다지만 운영에 관여할 수 있을 정도라면 일단은 실력으로 평가를 받으니까.”

, 그 유명한 동방야회도 알고 보니 별 거 아니군. 모두가 입만 열면 그놈의 동방야회 타령이길래 얼마나 대단한 녀석들인가 했더니. 고작 인간 따위가 위로 치고 올라올 정도면 안 봐도 알겠군. 이래서야 야회에 들어갔다고 해서 별로 나아질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으음, 이런 타입은 좀 귀찮은데. 차라리 초면에 대놓고 싸움을 거는 녀석들은 어떻게 설득하거나 힘으로 찍어 눌러서 해결할 여지가 있는 편인데, 이런 식으로 살살 속을 긁는 녀석들은 어떻게 하더라도 자기 합리화로 빠져나갈 녀석들이라 끝을 보기가 힘든 타입이다.

어쩌냐고?

그냥 무시해야지…….

, . 그만하고 용건으로 돌아가죠.”

뭐야. 인정하는 거냐.”

인정하고 자시고 동방야회가 그렇게 허접해 보이고 마음에 안 들면 지금이라도 저랑 이야기하는 거 관두고 여기서 떠나면 되잖아요. 아니면 쓸데없이 시간 버리지 말고 입회심사에 집중하고요. 제가 이러고는 있지만 나름대로 학생이라 내일 있을 시험 준비도 해야 하는 몸입니다. ?”

꽤나 성깔 있어 보이기는 한데, 혹시 정말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녀석은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내더니 잔뜩 인상을 구기곤 입을 다물었다. 눈앞에 있는 내가 어지간히 싫은 모양이지만 그래도 말하는 것처럼 동방야회가 허접해서 안 들어가겠다, 그런 마음은 아닌 모양이었다.

좋아요. 그럼 간단하게 몇 가지만 질문할게요.”

다시 한 번 자세를 가다듬고 말을 꺼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 기분이 좀 나쁜 것 같긴 하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의 의사는 확인했다고 봐야지. 나는 윗선에서 그에 대해 정리해서 내게 건네준 서류를 꺼내들었다.

이름은 마크 리. 뱀파이어가 된지 약 60……. 출신은 동아시아라고 적었네요. 뭐 이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니 패스하고.”

그리고?”

여기 오기 전에는 연고가 없었다고 되어있네요? 클랜이나 어디에 들어갔다거나 그런 건 빼더라도, 당신을 뱀파이어로 만들어 준 이들도 없었어요?”

없어.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렇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을 땐 벌써 혼자였거든. 버려졌다고 해야 하나……. 나중에 듣기로는 우리들은 동족의식이 강해서 그런 일은 별로 없다던데.”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조심스레 내 눈치를 살폈다. 확실히, 이런 인간 아닌 종족들은 인간에 비해서는 숫자도 적고 또 현대 사회에서 대놓고 살아갈 수도 없다는 점 때문에 의외로 동족의식이 강한 면이 있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어디의 집단이든 적대적인 세력의 일원이거나 특별히 사고를 치고 다니는 녀석이 아닌 이상 갈데없는 동족은 받아주는 게 관습처럼 되어있을 정도다.

그리고 이 말은, 혼자서 근 60년을 살아왔음에도 아는 구석 하나 없다고 말하는 놈은 충분히 의심스럽다고 여길 구석이 있다는 거다. 눈앞의 녀석이 내 눈치를 살피는 것도 그런 부분을 이미 생각하고 있다는 거겠지.

……. 확실히 그렇긴 하죠. 그럼 그렇다고 치고.”

, ?”

거기에 대해서 추가적인 질문 없이 넘어가는 게 이상했던지 녀석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동방야회의 입회 조건에 제한은 없는 편. 게다가 동족의식이 강하다는 게 여기라고 예외는 아니니 어지간히 사고를 친 녀석이 아니면 나 혼자서 따지고 드는 것보단 그냥 믿어주는 게 낫다. 위쪽에서 모아준 자료를 봐도 특별히 의심할 만한 구석은 없어 보이고…….

왜요. 방금 질문에 대해 더 할 말 있어요?”

, 아니. 없어. 그래, 다른 이야기 하자.”

별로 다른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혼자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넘기는 녀석을 보며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녀석, 이걸로 상황 반전이다. 보아하니 자기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꽤나 당황한 것 같은데, 아까 나한테 툴툴대던 것과는 영 다른 모습이군. 이거 생각보다 어수룩한 놈일지도 모르겠다.

처음 입회신청을 한 게 약 여섯 달 전인데……. 그동안 사고 친 거 있어요? 사람들을 다치게 했다거나, 피가 모자라서 병원을 털었다거나.”

, 중간 중간에 사람들을 덮쳐서 피를 빤 적은 있었어. 하지만 흔적을 안 남기려고 일부러 노숙자들이나 술 취한 녀석들만 고른 데다 죽이진 않았으니까.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을 거야.”

그렇군요. 그 정도야 굳이 처리하려고 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묻힐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고, 그리고 다른 사항이…….”

계속해서 서류를 뒤적거렸지만 그밖에 특별한 사항은 보이지 않았다. 아까 전처럼 노골적으로 인간을 싫어하던 모습만 참 좋아하는 타입인걸. 사고도 안 치고 그 때문에 심사하기도 편한 녀석.

……없네요. 그러면 일단은 큰 문제는 없는 것 같고. 위에서 알려준 자료랑 본인의 이야기도 얼추 맞아 들어가니 의심스러운 부분도 없다고 보고 입회심사관의 판단으로 당신의 입회를 승인합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서류에 서명을 해서 그에게 넘겨주었다.

, 이거 잃어버리지 마세요. 이게 있어야 당신이 회원임을 증명할 수 있으니까. 그럼 이걸로 끝.”

……? 이게 끝?”

오히려 녀석이 의아한 표정이다. 뭔가 다른 거라도 기대한 모양인데.

아까 말했잖아요. 동방야회의 입회에 제한은 없다고. 무슨 잘나신 분들이 모여서 어두운 장소에서 분위기 잡고 새로운 가족을 환영한다~ 이런 거창한 장면이라도 기대했어요?”

, 아니……. 그런 삼류 영화 같은 장면을 기대한 건 아닌데. 다만 이렇게 간단하게 회원 자격을 줘도 되는 거야? 내가 생각해도 나란 녀석이 그렇게 믿음직한 놈은 아닌데…….”

나는 이 한심한 뱀파이어를 보며 피식 웃었다. 뱀파이어가 되고도 아는 구석 없이 혼자서만 살았다더니, 진짜로 이렇게 아는 게 없을 줄이야. 동방야회에 대한 건 인간 아닌 종족들 사이에서는 거의 일반 상식처럼 되어있을 텐데.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오늘 제가 허가해준 건 일반회원이에요. 그거 그냥 동방야회라는 이름만 달고 있는 수준이라서 별 의미는 없으니까. 실제로 동방야회의 이름을 달고 있으면서도 자기들끼리 세력을 이루고 치고 박는 녀석들도 많고요. 집단 안의 집단이랄까.”

그럼……, 나는 동방야회에 든다고 해서 지금하고 뭐 달라지는 게 없는 건가? 계속 이렇게 혼자 살아야 하나?”

그건 아니에요. 일단 죽느니 사느니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도움을 줄 거고요. 그것 말고도 혹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건 해당 지구의 담당자에게 물어보세요. 참고로 이 지역의 담당자는 Jaywax그룹이라고, 해외기업의 한국지사인데 거기 비서실로 찾아가면 됩니다.”

, …….”

쏟아지는 설명에 녀석은 멍한 얼굴로 내 말을 듣고만 있었다. 이 녀석이 어수룩하다는 내 추측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을지나 모르겠네.

그거 말고도…….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다면 상급회원이 될 수 있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 자세한 건 지금 말해줄 수 없지만, 일반회원으로 지내다가 이름이 알려지면 담당자에게서 자동으로 연락이 갈 겁니다. 그때는 당신이 기대하는 좀 복잡하고 그럴듯한 절차를 경험하게 될 거에요. 이제 망상에 대한 만족스런 답변이 됐나요?”

, 아니. 망상이라니. 그런 상상은 안했다고! 나는 그냥……, 뭐랄까…….”

얼굴이 붉어진 채 손을 내젓는 녀석을 보면서 나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참고서와 펜들을 줍기 시작했다. 아까 저 녀석 때문에 놀라서 떨어뜨렸던 것들이다. 다행히 건물 아래로 떨어진 것들은 없어서, 시험을 하루 앞두고 참고서를 새로 사거나 하는 귀찮은 일은 겪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렇게 차근차근 짐 정리를 하고 있으려니, 뒤에서 녀석이 쭈뼛거리며 말을 걸었다.

저기…….”

. 말하세요.”

, 고마워. 사실 아까 너한테 인간이 어쩌니 하면서 시비를 걸 때는 이렇게 간단하게 넘어갈 줄은 몰랐는데……. 입회도 간단하게 처리하고 이런저런 설명도 친절하게 해 주고.”

…… 그다지 시비 거리도 안 되던데요. 다짜고짜 덤비는 녀석들에 비하면.”

, ?”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순진하게 고맙다고 고개를 꾸벅 숙이는 녀석을 보면서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수룩하다 못해 순진하기까지 하군. 이래서는 편하게 살기 힘들 텐데. 떨어뜨렸던 책과 함께 가방을 다 챙긴 나는, 떠나기 전에 이 순진한 뱀파이어에게 마지막 선물을 남겨주기로 했다.

이유 없이 인간을 미워하지 말아요. 동방야회의 회주는 사랑과 평화를 좋아하니까……. 위쪽 눈에 잘 들려면 아까와 같은 태도는 버리는 게 좋을 거예요. 충고입니다.”

?”

당황해하는 녀석을 뒤로 하고 나는 잽싸게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마, 지금 녀석은 어떻게 내가 그렇게 금방 사라졌는지도 알아채지 못하겠지.

 죽을래

여전히 짧다 못해 쿨한 느낌이 팍팍 드는 메시지를 보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앞뒤 자르고 이런 내용의 메시지를 받았다면 의아해할 사람도, 협박을 받았다며 무서워할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다. 이 한 마디가 왜, 어떻게 날아왔는지를 잘 알고 있으니까.

금방 갈게

나는 재빨리 답장을 보냈다. 늦으면 누나가 더욱 화를 낼 테고, 그러면 나는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잔소리 때문에.

누나가 화를 내는 이유는 예상 가능하다. 아무래도 내가 야간학습을 빼먹은 걸 알아챈 모양이겠지. 학년도 다른데다 교실도 꽤나 먼데, 언제 또 슬쩍 확인하고 간 건지. 이래서 야회에서 맡기는 심부름을 할 때마다 곤란해지는 것이다. 오전이야 당연히 안 되는 거고. 그렇다고 저녁에 야간학습을 빼먹자니 우리 걱정 많으신 누님이 이 동생을 내버려두질 않으니.

빨리 와

다시 한 번, 짧은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리고 난 그걸 보면서 더욱 속도를 높였다. 핸드폰 액정 속의 글씨에서도 냉기가 풀풀 느껴지니, 속 편하게 걸어갈 여유 따윈 없을 것 같다.

 

앞만 보고 달려가던 내 발을 잡아챈 것은 주변의 이상한 분위기였다.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기 위해 평범한 사람답지 않게 달려가고 있었기에, 조금 돌아가더라도 인적이 없는 길을 골라서 달리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느껴지는 이 이상한 분위기는…….

잠깐, 이상하게 보지 마라. 이래봬도 소속과 직업이 있는 만큼, 나란 놈은 직감이나 분위기 같은 어중간한 단어에 대해서 꽤나 민감한 편이란 말이다.

우선 자리에 멈춰선 다음, 감각을 확장시켰다. 뭐가 보이는가. 뭐가 들리는가. 뭐가 느껴지는가. 그리고 또……

피 냄새?’

주위에서 희미하게 피 냄새가 느껴졌다. 아슬아슬하게 내 후각에 잡히는 게, 그리 큰 문제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또 장소가 장소인데다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공원이란 게 걸린단 말이지.

누나……가 또 무슨 잔소리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피 냄새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착한 시민으로서, 누군가에게 문제가 생겼으면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겠어.

 

문제가 되는 장소를 찾아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동방야회에 소속되어서 입회심사관을 맡고 있는 몸. 종족은 인간일지 몰라도 능력치는 온갖 괴물들에게서 인정받고 있는 몸이시다. 굳이 자기자랑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한번 감각에 잡힌 건 금방 쫓아갈 수 있다는 얘기지.

그리고 눈앞에 잡힌 건, 생각보다 엄한 광경이었다.

?”

웬 여자아이가 아저씨를 덮치고 있었다. 연하다 싶은 금발에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하얀색 원피스. 고급스런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아가씨가 쓰러진 중년의 남성 위에 올라타서 당황한 표정으로 갑자기 등장한 날 돌아보고 있었다.

아니……. 이런 장면이면 사실 상황은 뻔하겠지. 내가 일반인인 것도 아니고 게다가 방금 전까지 순진한 뱀파이어 하나 붙잡고 입회 인터뷰를 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 녀석의 앞에다 피 냄새 풍기는 곳에서 쓰러진 남자 위에 올라탄 금발의 아가씨를 들이대면 질 나쁜 불량배 아닐까요.’ 같은 순진한 소린 안하겠지. 게다가,

, 어떻게 왔어요? 인식장애 걸어놓은 것도 확인했는데…….”

아아, 그 꺼림칙한 분위기는 인식장애 처리 때문이었나.

거기다……. 어린 외국인 아가씨가 한국말도 아주 유창한 게 의심스럽다. 어릴 때부터 한국에서 살았던 게 아니라면 이런 경우는 대부분 마술의 도움을 받았거나, 나이가 엄-청 많은 경우이다.

, ……. 흡혈 중인가요?”

어쨌거나, 나는 소속이 소속인 만큼 흡혈을 위해서 사람을 덮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더라도 그게 큰 문제가 아니라면 덮어두고 지나간다. 이럴 경우 문제는 오히려 저쪽이지. 보통 이럴 땐 목격자를 어떻게든 처리하고자 할 테니.

그렇게 생각하고 잔뜩 긴장하고 있으려니, 갑자기 그 여자아이는 예상외의 행동을 했다. 마찬가지로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어둠 속으로 도망가 버린 것이다. 쫓아야 할 이유도 없으니……. 내가 멍청한 얼굴로 그녀가 사라진 곳을 보고 있으려니,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유진이 너, 죽었어.’

아까보다 약간 길어진 누나의 메시지였다.

 
+ 작가의 말 : 7기때 작품...계획서 쓰면서 뜯어고쳐서 들고왔슴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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