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感想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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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는 이중적이다. 감상(感傷)적이기도 하고 기계적이기도 하다. 음들은 서로 단절되면서 이어진다. 이렇게 똑똑 끊어지는 까닭에 피아노는 때로는 좀 오버해서 음들을 빗줄기처럼 쏟아내고, 때로는 무언가 기계가 박자에 맞춰 작동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피아노에는 바이올린이나 첼로가 뽑아내는 그 연속된 떨림이 없는 것이다.

이 이중성은 피아노곡마다 달리 표현되곤 한다. 모차르트가 지은 피아노 협주곡 20번, 그중 제 1 악장: 비극적이면서도 고개를 떳떳이 들고 있다. 귀족적인 자살. 피아노는 유치해지거나 맛탱가리 없어질 수 있고, 그 두 면모가 전혀 새로운 음색으로 합쳐질 수도 있다. 사티가 작곡한 짐노페디(Gymnopedie)는 후자이다. 이 곡은 어떤 광경을 언뜻 비추고 있을까.

이야기되는 것은 침묵이다. 단순한 정적과는 다르다. 그러면 어떤 침묵인가?―시각은 밤이다. 널찍한 벌판. 공터 가운데엔 장작불이 타오른다. 신을 기리는 제전이다. 어린 남녀가 장작더미를 둘러싸며 원무를 추고 있다. 그들은 모두 옷을 벗고 있다.―고대 스파르타에서 벌어진, 젊은 남녀들만의 작은 축제. Gymnopedie라는 낱말이 유래한 제전이다.

한 남자가 그 축제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가끔 튀는 불똥에 언뜻 아이들 얼굴의 윤곽이 보이기도 한다. 원무가 이어지고 이어지면서 이윽고 남자의 귀는 먹어버린다. 그는 조용히 지켜본다. 시계침의 시간과는 또 다른 시간을 그 광경은 뽑아내고 있다. 박자를 맞추며 발걸음을 내딛는 아이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발자국들은 꼭 고동처럼 그에게서 울리는 것 같다. 공기는 구심점을 잃고 흩날린다. 정지. 적막감. 시간의 발가벗음. 한 남자의 관조(觀照).

많은 사람이 관조를 세계와 나의 일치로 이해한다. 도덕주의자, 혹은 낭만주의자의 관조이다. 하지만 시인, 혹은 지친 자의 관조도 있다. 세계와 나의 단절에서 움트는 관조이다. 남자의 시간축과 일상의 시간축이 서로 갈라진다. 남자에게는 그러나 두 시간축의 갈라짐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는 타인과 더불어 살고 있긴 해도 타인과 함께한 적은 없다. 그는 이미 스스로에게 타인이기도 하다. 나 자신조차 아닌 사람이 누군가를 타인으로 맞이할 수나 있겠는가. 남자는 벌레처럼 세계에 의태하고 있다.

그런 벌레에게도 허락된 쾌락이 있다.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기. 벌레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말은 그에게 낯설고 불쾌한 것이다. 말은, 이미 두 쪽이 나버린 자신을 일상의 한면으로 억지스레 봉합시킨다. 마찬가지로 그에겐 완전한 적막 역시 불쾌하다. 아무것도 없는 시야는 자신이 마치 고고한 귀족인 듯한 착각을 심어준다. 남자는 자신이 벌레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되새기기 위해 일상을 시야에 담을 필요가 있다. 관조는 유일한 선택지이다. 아하, 지금 불똥이 한번 더 튀겼다. 벌건 불빛이 부드러운 살결에 일렁이고 있다. 새하얀 목덜미와 어깨. 아이들 그림자가 남자의 발끝까지 길게 뻗어 있다. 동경(憧憬).

그는 함께 원무를 돌기엔 조금 늙어버렸다. 그래도 한가닥 흐뭇함이 있다. 마음의 물줄기가 살짝 불어난 것 같은. 짐노페디에서 피아노의 이중적인 선율은 소란스러움과 적막함, 아이들과 남자, 달콤함과 씁쓸함을 자아낸다.

사티는 이 곡을 스물세 살 때 그린다.

드뷔시는 짐노페디를 듣고 뭐라 대답해주고 싶었다. 그는 곡의 순서를 바꾸었다. 3번 2번 1번 순으로 연주한 것이었다. 사티는 드뷔시의 편곡을 사보하면서 수정을 가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조금 수준 높은 장난을 친 것 같아서 재밌어했다. 하지만 사티는 1번과 같은 종막을 분에 겨워했을지 모른다.

사티는 근대예술과 현대예술의 한 도랑을 메꾼다. 세잔느와 로드코 사이에는 숨 막히는 계곡이 파여 있다. 로드코의 색면회화와 짐노페디는 이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