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생각지도 않게 모 시드노벨사의 콘셉 공모전에 도전하면서
기획서를 쓰다가 상당히 헤맸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정확하게는 각 항목이 뭘 뜻 하는지 이해를 잘 못해서 상당히 헤맨건데
그걸 제 나름대로 해석해서 작성해 봤더니 괜찮았고
이번에 연재를 위해 다시 한 번 그대로 기획서를 써보면서
이 방식대로 만들면 되겠다 싶어서 배운 것들을 복습할 겸 글로 남겨봅니다.
-1. 기획서가 뭐지?
1) 기획이란, 목적을 위해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렇게 실행하겠다는 일련의 계획이다.
2) 기획서란 위 계획을 문서화한 것이다.
기획이 뭔지는 기초는 공부했고 희미하게 알고 있었는데
막상 작성하려다 보니 개념이 희미해져서 지금은 저렇게 변환해서 생각하고 있어요.
즉, 기획을 계획으로 치환해서 계획서를 작성한다는 감각으로요.
(물론 기획과 계획은 용법이 다르지만......)
계획서인 만큼 글을 쓰기 전에 만들어야겠죠?
특히,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해요.
제가 이렇게 생각해된 계기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노블엔진 1챕터 5기 심사평에서 '기획서는 설계도이지 설명서여서는 안 된다는 조언'이었구요.
다른 하나는, 직접 기획서를 써보니 정말 심사평처럼 그랬다는 점이었어요.
기획서를 작품보다 먼저 쓸 때와 나중에 쓸 때, 기획서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그때서야 괜히 심사위원님이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구나 하고 깨달았지요.
이제는 단편을 쓰더라도 기획을 먼저 하고 있어요.
0. 기획서 작성시 주의사항.
1) 기획서는 머릿속의 구상을 정리한 문서이다.
2) 기획서는 타인에게 보여주는 문서이다.
3) 기획서는 깔끔하고 간결하게 쓴다.
4) 기획서는 핵심을 먼저 쓰고 부연설명을 뒤에 쓴다.
기획서는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드는 문서예요.
그러니까 본인 머릿속에 작품 계획이 확고하게 잡혀있고
남에게 보여줄 일이 없다면 굳이 기획서는 만들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물론 본인이 보거나 작품 구상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본인을 타인과 동일시하면 받아들이기 편해요.
타인은 대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에요.
비지니스 세계라면 한창 일을 하고 있을 사람이죠.
그들에게 중요한 건 무엇보다 시간이에요.
바쁜 사람에게 알아서 기획서를 꼼꼼히 읽어서 이해해달라고 하면 실례죠.
그러니 간결하게 적어야 해요. 반드시 핵심을 먼저 적어야 하고요.
예를 들어,
"내가 사정이 이러이러한데 돈 좀 빌려주라." (x)
"돈 좀 빌려줘. 내가 이러이러 해서 돈이 필요하거든." (o)
바빠 죽겠는데 겨우 돈빌려 달라는 한마디 들으려고
몇 시간이나 귀를 열어줄 사람... 별로 없겠죠.
또 부연설명을 먼저하면 전체 내용이 무슨 뜻인지 헤깔릴 우려도 있어요.
특히, 부연설명이 길어질수록 내용이 점점 흐려져서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워지죠.
……
여기까지가
기획서를 만들기에 앞서 명심해야 할 사항이에요.
특히 핵심을 먼저 간략하게 적는 건 일반회사에서도 기획 관련으로 기초교육할 때 가르치는 내용이에요.
물론 위 주의사항도 제가 배운 그대로 적은 거죠. ㅎㅎㅎ
이 아래부터는 실제로 기획서를 만드는데 도움될 개념을 적어봤어요.
참고로 양식을 시드노벨 것으로 예시를 들었는데
이유는 제가 시드노벨 기획서를 만들면서 배웠기 때문이에요.
충분히 구상이 됐다면 노블엔진 기획서로 치환하는데 큰 무리가 없을 거예요.
(머릿속으로 캐릭터만 노블엔진 양식으로 옮겨봤는데 대부분 금방 채워지더라구요.)
시드노벨과 노블엔진 기획서의 가장 큰 차이는 역시 항목인데요.
시드노벨은 항목 수가 적은 만큼 각 항목별로 핵심을 잘 보여줘야 하니 정리하는 기술이 필요해요.
노블엔진은 반대로 정리를 항목이 대신해주고 있으니까 핵심을 명확히 정해야 하고요.
1. 컨셉과 장르
1) 컨셉
: 핵심 - xxx한 주인공이 어떤 목적을 이룬다. / 평범한 주인공이 xxx를 이용해 목적을 이룬다.
: 부연설명 - xxx(=아이디어or소재)와 목적이 고유 설정일 때 이해를 위한 간단한 설명을 덧붙여서 컨셉을 구체화시킨다.
2) 장르
: 컨셉에서 어떤 부분을 중점으로 이야기할 것인가. (연애? 청춘? 액션?)
컨셉이 뭔지 찾아보다가 어디서 LTE 광고 컨셉을 예로 들어 설명한 글을 보고 만든 정리예요.
(LTE의 빠름을 알리기 위해 자동차를 소재로 광고를 만들었다는 한 예시를 보여주더군요.)
창작품으로 예를 급조하면 [평범한 소녀가 마법 소녀로 변신해 악당을 물리친다]이 정도랄까요?
그런데 문장은 이해가 가지만 '마법 소녀'와 '악당'이 너무 추상적이군요.
부연설명에 추가 설명을 덧붙임으로써 컨셉을 좀 더 구체화 시켜줘야겠어요.
더불어 주인공의 특징도 간단히 설명하면 더 좋고요.
예를 들면 이렇게 말이죠.
[바보지만 밝고 건강한 소녀는 어느 날 신비한 요정과 만난다. 요정은 악당에게 쫓기고 있었고 악당은 요정세계는 물론 소녀가 사는 세계까지 파괴하려는 야망을 드러낸다. 소녀는 요정과 마을을 지키기 위해 요정에게서 마법을 부리는 힘을 받아 변신하고 그 힘으로 악당을 물리친다.]
장르는 뭐 다들아시다시피 컨셉에서 중점으로 다룰 내용을 정하고요...
요새는 배경이나 분위기도 들어가는 것 같더군요.
장르를 [연애, 판타지]로 정한다면 위 컨셉은 십중팔구 요정과 연애질을 한다고 봐야겠죠.
아무튼 급조한 예를 실제로 문서화 시킨다면 저는 이렇게 적어요.
1. 컨셉과 장르
1) 컨셉
평범한 소녀가 마법 소녀로 변신해 악당을 물리치는 이야기이다.
바보지만 밝고 건강한 소녀는 어느 날 신비한 요정과 만난다. 요정은 악당에게 쫓기고 있었고 악당은 요정세계를 물론 소녀가 사는
세계까지 파괴하려고 한다. 소녀는 요정과 마을을 지키기 위해 요정에게서 마법을 부리는 힘을 받아 변신하고 그 힘으로 악당을 물리친다.
2) 장르
판타지, 액션, 연애
컨셉과 장르 순서는 상관없구요.
여기서 '목적'이란 1챕터 따위의 중간 목표가 아닌 이야기의 최종 목적이에요.
2. 메인 아이디어
즐길거리를 제시한다.
'이 이야기에서 제일 쓰고 싶은 이야기란 이런 것이다'를 적어주십시오. (A4 반 페이지 이하)
라는 부연설명이 시드노벨 기획서에 붙어 있더군요.
저는 처음에 이 항목이 대체 뭘 뜻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 부연설명을 통해서 추리를 했죠.
제일 쓰고 싶은 이야기 -> 작품 내내 두드러질 부분 -> 독자가 중점으로 볼 부분 -> 재미있는 부분(!)
그런데 재미라는 단어가 또 걸렸어요.
단어가 추상적인데다가 재미는 어떤 것을 접하고 난 후의 '느낌'이거든요.
접하는 것을 만들어야 하는 입장인 작가에게는 적절한 단어가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생각한 끝에 대체한 단어가 '즐길거리'
작가가 가장 신경쓰는 부분 -> 독자에게 제공하는 즐길거리 -> 독자가 이 부분에서 재미를 느낌(!)
1) 액션을 시원하게 묘사한다.
- 마법은 점차 화려해지며 주인공의 부상도 불사한다.
2) 조금 야한 묘사도 겻들인다.
- 변신 레벨이 올라갈수록 노출도가 증가한다.
등등 이렇게 작품에서 중점으로 드러낼 부분을 생각해서 적는거죠.
이로서 이 작품의 즐길거리는 [액션]과 [야함]으로 결정났어요.
마왕처치라는 서사는 그저 이것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고
작중에서 비중있게 다뤄선 안 되게 됐어요.
물론 대체 역사물처럼 이야기 자체가 즐길거리일 수도 있죠.
이 때는 서사의 어떤 점을 강조한다고 적으면 돼요. (정세나 암약, 배신과 배신 등등)
그런데 컨셉과 메인 아이디어를 잘보면 서로 상호 보완 관계를 이루고 있어요.
즉, 컨셉 자체가 흔해빠진다 해도 메인 아이디어가 이를 보완해 줄 수 있다는 거죠.
고로 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위 컨셉과 메인 아이디어예요.
이 두 가지로 작품의 전체 인상이 결정나고 먹히느냐 마느냐를 가늠하죠.
컨셉과 장르, 메인 아이디어를 노블엔진 기획서로 변환하면 작품 개요에 해당하겠군요.
충분히 작품을 구상했다면 어느 기획서로든 빈 칸을 채우실 수 있을 거예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특정 요인으로 인해 좋은(?) 컨셉과 메인 아이디어를 내밀어도 먹히지 않을 때가 있어요.
이능력 배틀물을 기획했더니 금서목록이 평정해서 힘들다는 소리가 나올 수 있죠.
이 상황이 염려된다면 추가 자료를 기획서에 덧붙여서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어필하면 좋아요.
이능력 배틀물에서도 요런 틈새 시장이 있다고 설득도 가능하고
금서목록은 현재 하향새이고 독자는 대체 작품을 찾고 있다고 증거 자료를 제시해도 좋아요.
과감하게 내 작품은 이러이러한 부분이 다르다는 차별화 전략도 있고요.
아무튼 외부 요인으로 기획이 통과될지 의심이 든다면
본인 나름의 추가 자료를 확보해 덧붙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3. 등장인물
1) 만들기
: 특징 하나를 정한다. (외형, 성격, 인물관계 등)
: 특징에서 드라마(사연)을 만든다.
: 목적을 정한다.
2) 기획서 정리
: 컨셉 -> (키 등 신상명세가 와도 무방) -> 컨셉과 관련된 특징 -> 캐릭터의 목적
캐릭터 작법은 오쓰카 에이지의 [캐릭터 소설 쓰는 법]에서 배워서 쓰고 있어요.
이 양반은 캐릭터 공식을 y = f (x) 로 정리했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x 채우기 노하우를 뒤에서 설명하군요.
바로 예로 들어가서 서브 히로인을 리얼타임으로 구상해 볼게요.
주인공의 소꿉친구 -> 어렸을 때 주인공에게 상처를 입힘 -> 사과의 뜻으로 매일 도시락을 챙겨 줌
-> 요리를 잘함 -> 연애감정을 품고 있지만 죄책감과 뒤섞여서 깨닫지 못함
# 이름
- 컨셉 : 주인공에게 매일 도시락을 챙겨주는 요리가 특기인 소꿉친구
- 어렸을 적 주인공에게 낫지 않는 상처를 사건에 대해 죄책감이 있음.
- 주인공이 점심을 굶자 매일 도시락을 싸주기로 결정했고 덕분에 요리실력이 상승함.
- 주인공을 좋아하고 있지만 죄책감에 가려져 있음.
- 목표 : 주인공을 잘 챙겨주기.
- 프로필 등등
캐릭터 컨셉을 이 정도로 정하면 행동방식, 인물관계도 등이 추가로 유추 가능해져요.
주인공에게 연애감정이 숨어있으니 다른 히로인이 주인공에게 접근하면 질투할 확률이 높죠.
다른 히로인이 팬티로 어필한다면 소꿉친구는 손을 슴가에 묻을지도 몰라요.
요리가 능숙해질 정도로 노력파이자 행동파니까 충분히 예상 가능하죠.
또, 요리를 잘하지만 주인공을 위한 요리니까
주인공이 좋아하는 음식만 잘하거나 다른 사람 입맛에는 전혀 안 맞을수도 있고요.
작품 외적인면에서 보면, 주인공이 없으면 존재 가치가 없어지는 조력자 캐릭터에 가깝구요.
이렇게 기본 설정으로 행동원리를 유추해가면
노블엔진의 캐릭터 시트를 충분히 채울 수 있어요.
4. 세부설정(세계관)
1) 독자가 살고 있는 세계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시대 배경을 적는다.
2) 주인공과 깊이 연관있는 설정을 적는다.
3) 설정은 요약해서 적으며 상세자료가 필요시 따로 첨부한다.
가상현실게임이라면 게임의 세세한 설정보다는
주인공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중심으로 적는 거죠.
완벽하지 않아서 이따금 버그가 일어나는데 어느 날 한 번 죽으면 재시작이 안 되는 버그가 일어난다던가...
게임 시스템을 누군가가 임의로 조작할 수 있다던가...
기획서를 누가 보는가 생각한다면 세세하게 적을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해요.보는 사람 입장에서 작품의 전체적인 인상만 파악 가능하다면 나머지는 어찌됐든 상관없을테니까요.
그 이상은 단순한 호기심이거나 쓸데없는 정보에 불과하죠.
왜냐하면 편집부는 어디까지나 관리자이지 실제로 글을 써 나가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관리자(편집부)가 몰라도 지장없는 내용까지 적어서 시간을 뺏지 않도록 않도록 최소한으로 적자 이거죠.
1챕터 5기 심사평에도 있듯이 이 문서는 설명서가 아니니까요.
또, 일부에서는 기획서에 분량 제한을 걸기도 하니까 간략하게 적는 공부를 해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결국 기획서와 자료집(설정집)은 분리해야 옳다고 봐야죠.
5. 스토리 & 플롯
컨셉과 메인 아이디어에 걸맞는 이야기를 간략하게 적는다.
솔직히 이 항목은 출판사마다 분량 제한 등 여러가지 규정이 있어서 딱히 이렇게 해야겠다!고 못하겠어요.
다만, 기획서의 개념과 기획서를 볼 사람을 생각했을 때 이 항목은,
1~4까지의 기획(구상)을 토대로 실제 어떻게 구현되는지 보겠다는 의미에 가까우니까
그에 걸맞게 요약하면 적절하다고 생각해요.
즉, 게임으로 치면 실제로 구현되는 모습을 그리는 개념이죠.
컨셉을 많이 만들어 봤으면 스토리 요약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컨셉 자체가 작품의 핵심을 적어놓는 개념이니까요.
살만 덧붙이면 만사 OK 아닐까요. ㅎㅎ
두서없는 글 읽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
P.S1> 이대로 기획서를 만들어본지 두 번 밖에 안 된다는 게 함정.
P.S2> 기획서 쓰는 법만 배우고 정작 글은 형편없다는 게 또 함정.
P.S3> 신나게 적고나서 국어사전 디벼보니 즐길거리는 없고 재밋거리가 있어서 좌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