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마이페이지
 
Q&A
[공지] 노블엔진 홈페이지가 …
[꿈꾸는 전기양과 철혈의 과…
《노블엔진 2017년 4월 2차 …
[리제로 10 + 리제로피디아] …
[Re :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
 
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엑스트라 클래스
글쓴이: grioz
작성일: 12-10-31 23:59 조회: 4,735 추천: 0 비추천: 0

‘사람들을 도우려 하지 말거라.’

아버지의 유언이었다. 평생 타인을 도우며 살아가던 아버지의 마지막 말은 스스로의 일생을 부정하고 있었다.

퇴마(退魔)를 평생 업으로 삼고 전국을 돌며 악한 존재와 맞서던 아버지의 말로는 처참했다.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병마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마지막, 한걸음 내딛기도 힘든 몸을 이끌고 퇴마행에 나섰다.

아직도 기억한다. 그로부터 벌써 2년이 지났지만 미라처럼 말라버린 아버지의 모습이, 그럼에도 굳건하게 보였던 그 등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의 손보다 가늘고 약해보여서 조금이라도 힘을 쥐면 유리처럼 부서질까, 잡은 손에 한껏 주의를 기울였었다. 그렇게 손을 잡고 당도한 시골 마을에서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웠다. 싸우는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 아버지는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퇴마술을 행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지금 생각해도 그 존재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건 분명 기분 나쁜 기운을 한껏 뿜어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아버지는 퇴마에 성공해 적을 쓰러트리셨지만, 얼마 가지 못해 당신도 쓰러지셨다. 의사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고, 병원에서 아버지에게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그리 많지 않았다.

원인을 모르는 병.

이제 나는 안다. 아버지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그저 허락된 힘보다 많은 힘을 사용한 대가를 치룬 것이라는 사실을. 마지막 밤 아버지는 유언을 남기며 생을 마감했다. 다음날, 또 그 다음날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찾아오는 손님은 양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화가 났다. 아버지는 이런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되었다. 그동안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평생을 걸쳐 선행을 쌓은 아버지의 가치는, 장례식이 진행되는 3일 동안 충분히 증명 되었다.

멍청한 짓거리. 무가치.

발인이 지나고 입관을 하는 동안 내 생각은 아버지의 유언에 닿아있었다. 자신의 일생이 이런 식으로 평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인가. 어쩌면 아버지라면 가능하셨을 지도 모른다. 마지막순간 미래를 내다보았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것 없었다. 그 정도로 뛰어난 분이셨으니까. 그러면 분명 세상에서 당신을 욕하는 소리도 들은 것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퇴마를 행한 마을의 사람들은 아버지를 사기꾼으로 몰았다. 돈 벌려고 별짓거리를 다한다고 욕하고 심지어 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가짜 퇴마사 행세를 해 천벌을 받은 거라고도 했다. 역겨웠다. 볼일이 끝나자 안면몰수 하는 사람들이 혐오스러웠다. 비난하는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여러 감정이 섞여있었다. 불안, 탐욕, 초조함 그리고 언뜻 날 향해 비치는 공포. 그들은 우리가 사이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진짜 퇴마행위를 보게 되면 아무리 일반인이라도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분명 그들도 그걸 알았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겐 사람의 도리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때는 너무 어려 정확히 그 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이제는 확실히 알고 있다.

그 당시 마을은 시에서 행하는 개발 지역 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문제는 그 마을 이외에도 개발이 필요한 곳이 두어군데 있었고 이 경우 작은 소문도 개발 우선순위를 바꾸는데 작용을 할지도 모른 다는 점이었다.

도리와 이익을 두고 저울질 하던 사람들은 ‘귀신들린 마을에 사는 정직한 사람들’과 ‘개발예정지에 사는 배은망덕한 사람들’ 이라는 선택지 중에 후자를 택했다. 일이 일파만파로 커졌다. 지역 신문에 가십거리로 기사가 실리고 인터넷에 퍼지면서 잠시지만 아버지는 전국적으로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그 때부터 학교에서 나를 타겟으로 한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해가 넘어가고 친척이 사는 서울로 올라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괴롭힘은 없어졌다. 연고가 없는 곳의 좋은 점은 아무도 나에 대해 모른 다는 것이다. 나는 조용히 학교생활을 해나 갔다. 어차피 친구를 사귈 생각도 없었다. 그저 기계처럼 등하교를 반복했다. 어제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어제까지는.

오늘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반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모이는걸 보고 직감했다. 내가 원하는 학교생활은 끝났구나.

“어이 김준호.”

구석에서 키득거리던 녀석이 책상에 걸터앉은 채로 내 이름을 불렀다.

“왜.”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한껏 인상을 쓰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걸어왔다. 비웃음을 얼굴에 띈 채로 나를 한번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매일 조용히 있어서 우리 반엔 갖고 놀만한 게 없는 줄 알고 매일 옆 반으로 원정 다녔잖아. 응? 왜 빨리 말 안했어.”

교실을 한번 둘러보았다. 무관심 한 듯 보이는 몇 명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은 나를 향해 기분 나쁘다는 눈초리나 제스처를 취하며 킥킥 대고 있었다.

“허, 지금 한눈 파냐? 뭐 여기 어디 귀신이라도 보여?”

남자애들은 웃었고 여자애들은 소름 끼친다는 듯 팔을 감싸 쥐거나 작게 비명을 질렀다. 갑자기 화가 났다. 난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었다. 아버지도 잘못한 게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도움을 준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고 손가락질 받았고 난 학교에서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

엿 같았지만 참았다. 어차피 친구들도 아니다, 그러니 아버지처럼 배신당한 것도 아니다, 삼촌 댁에 신세를 지고 있는 입장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참아야 하는 수많은 이유가 머릿속을 지나갔다.

“후우.”

여전히 앞에서 실실 대는 놈을 지나쳐 내 자리로 걸어갔다. 잘 참았다. 참는 게 답이다. 괜히 말썽 피우지 말고 무시하면 되겠지. 그러면 흥미가 떨어져 더 이상 관심을 안 가질 수도 있다. 어쩌면, 예전처럼 조용히 학교생활을 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퍼억

갑자기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어디서 들린 소린지 몰랐지만 잠시 후 알싸한 느낌이 뒷머리에 퍼지면서 그 것이 내 머리에서 발생한 타격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통증도 제대로 느끼지 못할 만큼 흥분상태에 있었구나 하는 것 역시 깨달았다.

“아 진짜 어이없네. 너 내가 우습냐? 사기꾼놈 자식새끼가 실실 거리면서 말하니까 사람 우습게보네. 사람들 등쳐먹고 살았으면 미안한 줄 알아야지 뻔뻔한 새끼가.”

‘사람들 등쳐먹고’란 말이 인내심을 모두 갉아먹었다. 중학교 때가 떠오른다. 친구였던 놈들이 하나같이 등을 돌린 게 생각난다. 그때는 친구들이, 우정이 내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라 생각했기에 우정을 구걸하고 다시 돌아 갈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었다. 괴롭힘 당하는 동안 나는 그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했다. 저항하지 않았고 ‘친구니까’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담은 채 ‘친구잖아.’라는 말을 애원하듯 읊조렸다. 진심을 담으면 알아 줄 거라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마지막 까지 그들은 날 장난감으로 여겼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아, 나한테 친구는 없었구나.

그 명쾌한 깨달음을 얻은 뒤 난 누군가 친하게 지내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어차피 사람은 똑같다. 필요할 때 찾고 쓸모없으면 버린다. 타인을 어떤 방식으로 부르든 타인일 뿐이다. 그리고 내 인내심이 다한 지금 나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상대를 배려할 필요는 없었다.

안 참아! 라고 생각하자 기분이 편해진다. 어쩐지 후련한 느낌에 몸을 돌려 녀석의 두 눈을 바라봤다.

“노려봐? 노려보면 어쩔 건데. 왜, 저주라도 거시려고?”

빈정대는 놈의 얼굴을 보고 웃어주었다. 그리고 답했다.

“아니.”

“그럼 뭘 어쩔 건데?”

“주먹으로 치려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먹을 뻗었다. 그대로 재수 없는 면상에 틀어박힌 주먹을 거두며 반대쪽 다리를 들었다. 얼굴을 감싸 쥐며 뒤로 물러나는 놈의 옆구리에 무릎이 꽂혔다.

“크억.”

충격에 그대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이야기의 필요성을 느낀 나는 녀석과 시선을 맞추기 위해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니까…너, 이름이 뭐냐.”

“커억,허억 허억.”

“내가 우습나 보네. 대답도 안하고.”

“허억 최, 최 허억, 현,현민 허억.”

“그래 현민아. 나 좀 그냥 둬. 그냥 지금까지처럼 조용히 학교나 왔다 갔다 할 테니까 너도 나한테 신경 끄라고.”

“허억, 아,알았…”

“그래, 알아들었다니 다행이네.”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시선을 피했다. 결과적으로 날 보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간단 한 것을! 이로써 난 다시 아무 관심도 받지 않는 학교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아니면 적어도 조용한 학교생활이거나. 뭐, 이러쿵저러쿵 해도 결과적으로는 같다. 내가 꺼려져서 아무도 다가오지 않든지 존재감이 없고 사교적이지 못해서 무시 받든지 간에 귀찮고 신경 쓸 일이 없다는 건 매한가지다.

내 자리로 가니 책상이 가관이다. 이런 저런 욕설과 그림이 가득했다. 주위를 한 번 더 둘러보았다. 아무도 날 보고 있지 않았다. 누가 이런 거냐고 지랄발광을 떨 수도 있었다. 난 그 대신에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이깟 낙서쯤, 내가 조용히 학교생활 하는덴 문제되지 않으니까.


---------------------------------------


미리 말하자면, 조용한 학교생활에 대한 내 기대는 너무 성급한 것이었다. 모든 문제가 해결 된 듯 보였지만 아니었다. 1교시 국어 수업 때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니 얼굴도 생소한 놈이 와서 시비를 걸었다. 다른 반 녀석이었는데 아마 내 과거에 대한 소문은 들었어도 아침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듣지 못한 듯했다. 어쩌겠나, 이미 그 난리를 쳤는데 지금 와서 조용히 있을 수는 없으니 주먹으로 몇 번 두드려주고 다시 엎드렸다. 솔직히 말해서-자랑은 아니다-내가 싸움을 좀 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싸움이 아니라 몸을 쓰는 법을 안다. 아버지는 유불도 그리고 민간 신앙을 가리지 않고 퇴마에 관련된 기술을 갖고 있었다. 그 만큼 깊이는 없었지만 긍정적으로 보자면 가리는 대상이 없었다. 다시 말해 대상이 마(魔)라면 그게 무엇이든 퇴치가 가능 했다. ‘허어, 저놈은 불교 쪽 악귀라서 잡기가 좀 힘들구만.’ 같은 말을 할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에 관해 실체가 있는 대상을 퇴마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때를 대비해 무(武)와 접목시킨 퇴마기술도 여럿 익히고 계셨다. 그리고 그중 몇 가지를 배운 내가 이런 애들 싸움에서 질리는 없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건 자랑이 아니다. 국사 선생이 한국사 연표를 외우고 있다고 자랑하지는 않는다. 당연한 거니까. 마찬가지로 이건 내 과거 생활환경에서 보자면 당연한 것이었다. 근데 불행은 이런 당연한 사실을 이 학교 학생들은 모른 다는 것이고, 그 말은 계속해서 날 귀찮게 할 거라는 이야기가 된다. 사내놈들 대 부분은 그 대상이 효도르나 크로캅이 아닌 이상 붙어봐야 결과를 안다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그런 내 예상은 적중해서 다음 쉬는 시간에도, 그다음 쉬는 시간에도 줄줄이 누군가를 때려눕혀야 했다. 초반에는 괴롭히려는 생각으로 찾아오는 야비한 놈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교시가 지날수록 날 찾아오는 놈들이 싸움을 원하는 마초들로 바뀌기 시작했다.

‘김준호, 한번 신명나게 겨뤄보자.’

이게 내가 오늘 하루 종일 들어본 말 중에 제일 오그라드는 말이었다. 점심시간 때 들었는데 5교시가 지날 때 까지 손이 펴지지 않는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인가. 단 하루였다. 아니 하루도 아니라 점심이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학교생활은 단 반나절 만에 내가 원하는 방향과 정반대로 질주하고 있었다. 그렇다. ‘질주’하고 있었다. 자동차 밖 풍경이 쉭쉭 지나가듯 갑자기 주변 풍경이 한시가 다르게 바뀌어 가고 있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날 찾아오는 이유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싸우자 라는 것도 귀찮은데 이제 반에서 괴롭힘 당하던 놈들이 찾아와 하소연을 한다. 한참을 날 붙잡고 떠들어대도 요지는 언제나 같았다.

너도 괴롭힘 당한다는 기분을 알듯? 그럼 우리 기분 알지? 알면 좀 도와줘.

물론 대놓고 도와 달라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친하게 지내고 싶다, 괴롭힘 당해 죽고 싶다, 등등의 말 저변에 깔려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난 기분이 나빠졌다. 과거가 고개를 든다. 아쉬울 때만 손 벌리며 도와달라는 작자들, 정작 아버지 장례에는 얼굴도 비치지 않고 사기꾼으로 몰아가던 인면수심의 인간들, 사람을 돕지 말라는 아버지의 유언이 떠오르고 더욱 기분이 다운된다.

“싫어.”

한참을 떠들어 대던 그들에게 내가 한 한마디 말이었다. 표정을 굳히고 단호하게, 너희와 나는 상관없다는 듯이 내뱉었다. 당황 한 듯 보였지만 나한테 어떤 비난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겁먹은 얼굴로 돌아갔다. 도움을 바라고 온 모두가 그렇게 돌아갔다.

마지막 교시가 끝나고 종례도 받지 않은 채 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왔다. 더 이상 학교에 있을 수가 없었다. 과거 아버지를 배신한 사람들한테서 느꼈던 시체가 썩는듯한 악취가 학교 사방에서 진동하는 것 같았다.

도망치듯 나와 길을 걸었다. 머리를 식힐 겸 평소 이용하는 전철역을 지나쳐 계속 걸었다. 11월이 다가와 해가 짧아져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캔커피를 사들고 근처에 보이는 공원으로 들어갔다. mp3플레이어로 노래를 들으며 캔커피를 마시고 이제 사람이 드문드문 보이는 공원의 풍경을 감상했다. 마음속 분노를 죽이듯 시간을 죽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와 감정의 울렁임이 사라져갔다. 공원 벤치에 몸을 기대 그렇게 스스로의 감정을 컨트롤했다.

“후우”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음이 차분해진 걸 느끼며 시간을 보니 벌써 시침이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삼촌이 걱정 하실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근처에 지하철역이 없어서 버스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는 금방 왔다. 시간이 늦어서 승객은 5,6명이 다였는데, 왠지 버스가 무겁게 느껴졌다. 기분이 완전히 가라앉은 건 아닌가, 생각하며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얼마가 지났는지는 모르겠다. 갑자기 움직임이 없어서 눈을 떴다. 주위는 텅 빈 공간처럼 어두웠다. 버스에서 나오는 빛을 제외하고 어떤 빛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확실히 신호에 걸려서 버스가 선 것은 아니었다.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부분의 승객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버스내의 형광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뭐야? 기사아저씨, 갑자기 왜 멈췄어요. 형광등은 왜이래? 진짜.”

웅성거리던 사람을 대신해 누군가 외쳤다. 그리고 운전기사는 대답대신 손가락을 움직여 버스의 앞문을 열었다.

바람빠지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어둠속에서 올라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난 이상함을 느꼈다. 버스에서는 빛이 발생하니 주변이 어느 정도는 보여야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나만 이런 사실을 깨달은 것인가, 주위를 둘러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버지를 따라 퇴마행에 함께 했을 때 종종 느꼈던 기운이 버스 정문에서 뿜어져 나왔다. 강력한 존재감. 마지막 걸음을 디디며 버스위로 올라온 사내는 검은 중절모를 쓰고 코트의 깃을 세우고 있었다. 마(魔)의 존재라는 걸 난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것은 실체가 있는 마귀 -

“식인귀!”

뒤에서 외침이 들렸다. 반사적으로 돌아보자, 웬 여자 한명이 낭패한 얼굴로 서있었다.

“실례되는 발언이군요.”

코트 깃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손을 뻗어 운전수를 잡았다. 운전수는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다. 사내가 보란 듯이 끌려온 운전수의 목을 잡고는 힘을 주기 시작했다. 뼈가 부러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 건 힘을 주기 시작한지 채 몇 초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때 까지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던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나가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창문을 열고 뛰어 내리는 사람도 있었고 강제로 뒷문을 열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마귀는 운전기사의 목을 잡은 손에서 힘을 풀지 않았고 마지막에는 목이 터지듯 피를 뿜어 댔다.

“으,으아악”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탈출을 했고 버스 안에는 나와 사내만이 남아있었다. 가방속에 손을 넣어 부적을 만지작거렸다. 할 수 있을까. 실제로 부적을 써본 적은 몇 번 되지 않는다. 그것도 벌써 2년전이 마지막이었다. 이길 수 있을까. 그때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도망쳐! 멍청아. 도망치라고!”

뒤를 돌아 보자 아까 소리쳤던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아까 저 사내를 향해 식인귀라는 말을 내뱉은 여성이었다.

“저게 뭔지 알아?”

내가 물었다. 내가 알기로 저건 실체를 얻은 마귀였다.

“빌어먹을 도망가라고.”

답을 원했는데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 했다. 저 소녀티를 갓 벗은 것 같은 여자도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다.

갑자기 바람이 부는 듯 했다. 그리고 다음 장면은 여자가 웬 칼을 들고 마귀와 싸움을 시작 하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휴문의 이용약관 개인정보보호정책
주소 : 인천광역시 부평구 평천로 132 (청천동) TEL : 032-505-2973 FAX : 032-505-2982 email : novelengine@naver.com
 
Copyright 2011 NOVEL ENGIN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