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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고 탐정클럽
글쓴이: 헌기의
작성일: 12-07-31 23:50 조회: 2,722 추천: 0 비추천: 0

점심식사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와 보니, 아까 전까지만 해도 내 책상이었던 물건이 어째서인지 잔업에 찌들은 직장인의 책상처럼 변해 있었다. 구겨진 종이 뭉치들, 찌그러진 스태미너 드링크 캔, 뭔가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 메모들, 그 한 가운데에 엎어져 혼절한 인간 신문부, 정나리(고등학교 2학년, ).

네 자리로 돌아가.”

아래로 내려 묶은 밤색 양갈래 머리를 한 손에 하나씩 붙잡고 쭉쭉 잡아당기자, 으으으 하는 피로에 찌든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손잡이를 당기면 내장된 음성이 재생되는구나. 좋은 주크박스다.

그만……. 그만 해…….”

마침내 고개를 든 그녀의 눈 밑에는 쌓인 피로의 상징, 팬더 분장이 두껍게 축적되어 있었다. 자리가 멀어서 오전 수업 시간 동안에는 미처 몰랐는데, 이건 상태가 꽤 좋지 않아 보인다.

얼굴이 왜 이 모양이야? 밤 샜어?”

……. 취재 좀 하느라…….”

다시 힘없이 푹 엎드리면서 나리가 대꾸했다. 근데 그거 내 자리인데 좀 돌려주지 않으려나.

밤새 학교 건물을 다 뒤지고 돌아다녔더니 죽을 것 같아…….”

정나리가 이마를 책상에 부비면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이 아이와 알고 지낸 것도 1년이 조금 넘다 보니, 이 패턴에도 이젠 꽤나 익숙하다. 이건 자기 취재활동의 중간보고를 들어 달라는 거다. 내 자리를 되찾는 것은 일단 보류하고, 내 책상 앞자리 녀석의 의자에 걸터앉았다. 앞자리 주인에겐 미안하지만, 세상은 원래 의자 빼앗기 게임 같은 거라 생각하며 관대하게 넘어가 주기 바란다.

역시 문진무……. 이렇게 내 이야기를 순순히 들어주는 건 이 학교에 너 뿐이야…….”

정나리가 감동받은 듯한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다룰 만한 소재가 심히 한정적이라 매체로서의 입지 자체가 애매한 교내신문을 만드는 집단의 일원이다. 거기다 적당주의인 타 부원들과 달리 저널리스트로서의 자존심이 어쩌고 하면서 굳이 일거리를 만들어 내는 타입이라, 가뜩이나 입지가 애매한 곳에서 자기 자신의 입지마저 애매하게 만드는 중이라고 들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식으로 자기 활동을 들어주기만 해도 기쁜 모양이지.

그래서, 이번엔 또 뭘 하려고?”

가만히 내버려 두면 하려던 이야기는 잊어버린 채 언제까지고 빤히 서로 쳐다보기만 하게 될 것 같아 이야기를 재촉했다. 정나리는 그새 정신줄을 반쯤 놓고 있었던 것인지, 잊고 있던 것이 딱 기억났다는 듯이 이마를 탁 치고선 책상 위에 놓인 노트를 뒤적이며 말했다.

탐정 클럽.”

이윽고 그녀가 내뱉은 말은, 요즘 나에게 꽤 익숙한 명칭이었다.

진무 너도 소문은 들어본 적 있지? 탐정 클럽 얘기. 회원들끼리도 서로 정체를 모를 정도로 철저한 익명제 게릴라 클럽. 학교의 승인을 받지 않았는데도 교내 어딘가에 아지트를 두고 활동하면서, 어떤 사건이든 순식간에 해결하고 바람처럼 사라진다……. 뭐 그런 얘기 말야.”

이야기를 늘어놓는 정나리의 눈매는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과 같은 흉흉함을 어필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눈 주변에 잔뜩 낀 팬더 서클아니 기미 탓에 뭐라 하기 미묘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중이었지만.

그 아지트를 찾으려고 어제 집에 안 들어가고 밤새 건물 안을 다 뒤져본 거야……. 근데 쥐뿔도 안 나오는 거 있지……. 으으…… 내 시간과 수고가…….”

맥이 풀렸는지 다시 책상에 풀썩 쓰러지는 정나리였다.

"그야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었으면 아지트라고 안 했겠지. 아니, 그보다도 근본적으로 그게 진짜로 있는 건지부터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니야?"

적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반론을 제시해 보았더니, 정나리는 발끈해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정말이야!! 이건 틀림없어. 목격담도 잔뜩 있고 증인도 확보했다구. 이제 확실한 물증만 잡으면 탐정 클럽의 존재를 밝혀낼 수 있어!"

"알았으니까 너무 열내지 말고 앉아. ……, 이게 아닌데."

일단 진정시키려고 꺼낸 말이었는데, 다시 내 자리를 털썩 차지하고 앉는 그녀를 보자 실언을 했구나 하는 후회감이 들었다. 내 자리 돌려줘.

두고 봐……음냐내가 꼭탐정 클럽 르포로 대히트를 쳐서…… 퓰리처상은 내 거다…….”

결국 원대한 포부를 밝히는가 싶더니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아이고야.

나는 한숨을 푹 쉬며 정나리가 너저분하게 늘어둔 쓰레기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내버려 뒀다가 오후 수업 시작할 때쯤에 깨우면 되겠지. 그러고 나면 아마도 항상 그렇듯이 체력과 추진력을 모았으니 다시 강행취재다!’ 같은 소릴 하지 않을까. 다시 한숨이 나온다.

버려도 무방해 보이는 것들을 대강 다 정리하고 나자, 나리가 방금 전에 책상 위에 펼쳐 놓은 노트가 눈에 들어왔다. 탐정 클럽에 대한 소문, 얼굴도 이름도 드러내지 않는 자칭 만능 탐정을 목격했다는 증언, 실제로 도움을 받았다는 학생의 인터뷰 등 상당한 자료가 정리되어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넘치는 의욕과 실행력만큼은 알아 줘야 한다. 이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탐정클럽의 실체가 만천하에 공개된다 하더라도 그다지 놀랍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이 녀석이 탐정에 가까운 거 아닌가……?”

나는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노트를 덮고 잠든 정나리의 얼굴 밑으로 밀어넣었다. 잠에서 깨어날 때쯤이면 소중한 정보가 가득 담긴 노트가 침으로 범벅이 되어 있겠지. 소소한 견제구다.

견제구도 던졌겠다, 이해를 돕기 위해 미리 밝혀두도록 하겠다.

사립 우왕고등학교의 게릴라 동아리, 탐정 클럽. 어느 누구도, 심지어는 클럽의 회원들끼리도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탐정들의 집단. 신출귀몰하게 나타나고 사라지며 어떤 사건도 명쾌하게 해결하는 기인들.

그 소문의 주인공, 얼굴도 이름도 목소리도 불명인 만능 탐정이자 ? 우왕고 탐정클럽의 회장. 그것이 바로 나, 문진무다.

#1 Introduction

미리 말해두자면 탐정 클럽의 아지트는 실존한다.

그러나 정나리가 아무리 시간과 수고를 들여 학교 건물을 샅샅이 뒤진다 한들, 우리의 아늑한 본거지를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탐정 클럽 아지트는 엄밀히 말해 학교 건물 안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놀라지 마시라, 우리의 거점은 다름아닌 체육관 지하의 비밀 공간에 자리 잡고 있다. 그것도 체육관 내부를 통해서 드나들 수는 없고, 건물 외벽에 숨겨진 비밀 문을 찾아 열어야 비로소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나타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거점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둘씩 풀어놓다 보면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질 테니 일단은 이 정도로만 밝혀 두겠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정나리가 이 아지트를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글쎄, 과연 그럴까.”

낙관적인 예측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휴대용 게임기에 코를 박은 채 끊임없이 쳐들어오는 지저제국 군단을 화려한 콤보로 잡아 죽이는 데 여념이 없는 고고 선배(고등학교 3학년, )였다(참고로 본명이다).

과연까지 갈 것도 없이 그냥 그럴 겁니다. 여기가 무턱대고 찾는다고 쉽게 발견될 만한 곳도 아니고, 애초에 학교 건물 안에서만 찾아다니고 있으니 이 근처로도 못 올 걸요.

아까 전에 정나리에게 그랬듯이 적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반론을 해 보았다. 그러나 고고 선배는 게임기 화면에서 눈을 뗄 생각도 하지 않고 니힐한 말투로 대꾸했다.

여태까지 몇 번이고 이야기했던 거지만, 다시 한 번 말해주지. 세상은 똥이다. 이깟 비밀통로, 밀고자 한 명만 나오면 금방 뽀록날텐데 어떻게 그렇게 무턱대고 긍정적일 수 있는지 모르겠군. 멍청해서 그런가?”

항상 그렇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사람 성질을 박박 긁는다.

밀고라뇨, 우리 중에 그럴 만한 사람이 있어요? 아지트 위치가 공개되어봤자 이득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구요. 거기다 여기 드나드는 건 세 명 중에 두 명은 여기 있잖아요. 그럼 남은 오조연이가 배신이라도 때린다는 건가요?”

그렇다. 경위야 어찌 되었건, 현재 탐정 클럽에 드나드는 세 인물 ? 나와 고고 선배, 이 자리에는 없는 오조연(고등학교 1학년, ) - 들은 모두 이 거점에 애착을 가질 만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우리들 중에 스스로 나서서 이 아늑한 공간을 팔아넘기는 바보 같은 짓을 할 사람은 틀림없이 없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손님이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실례합니다! 신문부에서 나왔는데요!”

말씀드리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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