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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쓴 자를 공격하지 말라
글쓴이: 팔척뛰기
작성일: 12-07-31 23:49 조회: 2,450 추천: 0 비추천: 0

- ?월 ??일

그러고 보니 그런 규칙이 있었다.

[공고]

ㆍ모든 초능력자는 반드시 한 세력에 속한다.

ㆍ초능력자는 이적행위를 할 수 없다.

ㆍ규칙을 어긴 자는 이유를 막론하고 죽는다.

1.

초능력자의 존재를 믿는가?

상식에 사로잡히지 말라. 깊고 신중하게 보라. 그대가 무심코 지나친 담벼락 너머, 그곳에 초능력자는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세계는 비밀에 쌓여있고 우리의 눈에 그 진실이 닿지 않도록 꼭꼭 감추니까.

여기서 단언하겠다.

초능력자는 있다.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한 사람을 봐버렸다.”라는 눈빛으로 슬금슬금 멀어질 수도 있다. 아니, 나도 그렇게 할 거다. 그러니 함부로 그러지 마라. 믿어주는 사람에게만 하면 된다. 진실을 공유하는 건 신뢰가 쌓이고 난 후에 하도록. 인생을 살기 편하게 만들어주는 덕담이니 꼭 기억하길 바란다.

얘기가 새버렸으니 다시 한 번 단언한다.

초능력자는 있다.

이 말을 증명하는 어떠한 논리적인 근거는 필요 없다. 요구하지 마.

왜냐하면 내가 초능력자이고, 내 적이 초능력자이기 때문이다.

괜히 복잡하다 여길 수도 있지만 참고 들어주길 바란다. 지금부터 설명을 하겠다.

초능력. 그것은 곧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힘’을 말한다. 몸에 닿는 모든 벡터를 자유롭게 조종하거나 세 미녀(각각 여제, 여왕, 여신)를 필두로 만들어진 초능력자 세력이 비 초능력자 세력과 팽팽하게 맞서는 미래를 볼 수 있다면 그건 훌륭한 초능력이다. 재채기 한 방으로 여자애 치마를 뒤집거나 친구의 죽음을 본 순간 근육이 어마어마하게 성장하는 것도 초능력으로 치부한다. 그래, 말도 안 된다 싶은 일이 일어난다면 초능력으로 여겨도 무방하다.

믿을 수 없겠지만 초능력을 가진 사람은 의외로 우리 주위에 많다. 정말 많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반에만 해도 30명이나 있다. 너무 많다고 시비 걸지 마라.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건 내가 원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야.

이런 기상천외한 힘을 가진 초능력자들이 모여 사회에 공헌한다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초능력자가 사회에 들어나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손에 손 잡고 희망찬 미래를 열 생각은 않고 자기들끼리 당파를 나눠 피 터지도록 싸우기 때문이다. 통탄스러운 일이다.

초능력자는 두 세력으로 나뉜다.

‘가’군과 ‘나’군이다.

당신은 가군인가? 그렇다면 나군을 공격하라.

당신은 나군인가? 그렇다면 가군을 공격하라.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우리는 싸우기 위해 태어났다. 도대체 싸워 이겨서 뭘 얻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무언가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초능력자는 그 보물을 얻기 위해 싸운다. 호카게나 원피스 같은 장대한 떡밥은 아니고 정말 얻을 수 있다. 의심하지 말고 싸워라.

단, 초능력자도 그들만의 사회에 속한 구성원이다. 교양 있는 현대 초능력자라면 무식하게 다짜고짜 들러붙어 싸울 순 없다. 그러니까 초능력자는 필히 공고한 ‘룰’을 숙지하고, 규칙에 따라 싸워야 한다.

자, 그럼 전쟁을 시작하자.

2.

나는 나군에 속한 초능력자다.

자랑스러운 나군 초능력자는 규칙에 따라 수많은 밤을 보내며 가군 초능력자를 공격했고, 마침내 전쟁은 끝을 향해 달려간다. 그래, 드디어 가군 초능력자는 ‘최후의 한 명’만을 남겨놓았다. 한 명만 처치한다면 전쟁은 나군의 승리로 끝난다.

물론 쉽게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다. 그동안 동료 또한 수 없이 죽어나갔다. 결국 이 최후의 전장에 서있는 나군 초능력자도 둘 뿐이다.

아니, 뭐. 슬프진 않아.

결국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승리한 후 얻을 보물을 위해서이고, 이 보물이란 게 한정된 자원이다 보니 가지려는 사람은 적을수록 좋다. 동료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적의 수를 줄이고 죽어주는 게 가장 이상적인 결과다.

“갑자기 뭘 회상하는 얼굴이야!”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적이 보인다. 그의 이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일단 그는 살아남은 가군 최후의 한 명이지만, 어차피 덫에 걸린 사냥감이다.

지나온 얘기를 할까 한다. 이것은 승리를 앞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영광된 순간이다. 과거를 떠올리며 시간을 끌수록 승리의 쾌감은 보다 진해진다.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승자의 특권이란 것이다.

지난 5월의 허리에 우리는 전쟁을 시작했다.

처음 전쟁이 시작될 때 나군은 분명히 불리했다. 개개인의 능력도 낮았고 수적으로 부족했다. 그렇지만 전쟁은 그것만으로 판가름 나기엔 변수가 너무 많이 존재하는 게임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나군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저 머릿수의 하나로 셈할 수 있는 일개 초능력자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낭중지추라고 비범한 자는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다. 나는 가냘픈 소녀의 청원을 듣고 분연히 일어났다. ‘최후의 날’을 인식하고 소녀의 보조를 받아 적극적으로 전장에 뛰어들었다. 애초에 내가 개입한 순간 게임이 안 된다. 난 너무 뛰어나다. 종횡무진하며 활약한 나는 보름도 안 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이다.

그 과정을 일일이 거론했다간 그야말로 자화자찬이 되기에 겸손하게 생략하지. 훗,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니까!

분명히 좌절을 겪은 때도 있었다. 간담이 서늘한 적도 있었고, 가슴이 찢어진 것처럼 아팠을 때도 있다. 그러나 수많은 역경을 넘어 마침내 나는 개화한 것이다. 소년이 어른이 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는 영웅이 되었다.

그래. 그러니까,

“네 이놈, 라스트 보스! 내 검을 받아라!”

“너한테 검이 어디 있어? 젠장, 죽일 거면 빨리 죽여.”

“…… 분위기를 맞춰주지 못하는구나.”

실망스럽다. 몹시 실망스러운 놈이다.

나는 관대하게 용서하기로 했다. 아니꼽기도 하겠지. 분할 테지. 그만큼 내 눈앞의 악당은 너무나 승리에 접근했기에.

그는 스스로 무덤을 팠다. 자신의 힘을 과신하고, 홀로 날뛰었다. 오만했던 것이다. 물론 그 오만함이 용납될 정도로 규격 외의 힘을 가진 초능력자였지만,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닌 법이다. 난 수많은 동료를 제물카드로 삼아 이 자리에 왔다. 멍청한 놈, 팀 게임은 아무리 한 명이 잘 해도 다른 누군가 똥을 싸면 질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전설의 리그에서 배우지 못했던가.

궁리하여 지혜를 짜내고 타개책을 내어 협력 끝에 이곳에 살아남은 나는 당당하다.

그리고 이 승리의 주역은 나 혼자가 아니다. 내 옆에 선 아름다운 소녀, 김명의 협력이 있기에 가능했던 업적이다.

“고수민, 뜸들이지 말고 목을 쳐. 지금 네 행동을 적을 모욕하는 거야.”

김명의 말도 맞다. 숙적을 처단한다는 생각에 흥분했던 것 같다.

“윽, 눈이…….”

성큼 적에게 다가갈 때, 김명이 작게 소리 질렀다. 돌아보자 그녀는 눈이 간지러운 듯 하얀 손등으로 부비고 있었다.

키가 작고 동안인 그녀가 그런 행동을 하니 귀여움이 한층 강조되어 무시무시한 공격이 심장을 강타했지만 나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눈에 뭐가 들어갔니?”

“으응, 날벌레 같아.”

당찬 목소리도 갑작스러운 사태 때문에 숨었는지 애교 있다. 나는 이때다 싶은 기회에 슬며시 접근하여 스킨십을 시도했다.

“어디 봐, 그렇게 부비지 말고.”

김명의 안경을 치우며 볼에 손을 댔다. 보들보들한 게 아기 피부 같다. 여자들이 괜히 피부에 돈을 퍼붓는 게 아니다, 진짜. 피부가 좋으면 먹고 들어가는 거야.

너무 방심했음인가.

그 순간, 우릴 주시하던 ‘감시하는 자’가 뛰어들었다.

깜짝 놀라 돌아보았으나 이미 늦었다.

그래, 늦어버렸다.

이미 감시자는 냉정하고 잔인하게 선언했다.

나는 죽었다.

- 5월 29일

진정해라. 진정하고 협상을 하자.

[공고]

ㆍ초능력자 세력은 ‘가’군과 ‘나’군이 있다.

ㆍ첫 종이 울려야 전쟁이 시작되며 마지막 종이 울리면 전쟁이 끝난다.

종소리가 건물 안에 울려 퍼졌다. 피를 부르는 서글픈 음색이다. 누구나 알고 있다. 종소리가 울리면 무엇이 시작되는 지. 울리기 바란 자도, 울리기 바라지 않은 자도 결국 예정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강제하는 소리.

개시 신호다.

“좋아, 오늘 밤에야 말로 기필코!”

포부가 가득한 목소리가 있다.

“으으, 근육통이…….”

힘겨운 일정에 신음하는 자도 있다.

“후, 새드. 어디로 가야하지.”

절망에 젖은 비탄이 있다.

“크크크, 사냥 시작이다.”

광기를 주체 못하는 목소리가 있다.

제각기 다른 뜻을 품었으나 결국 시작을 받아들이는 말이었다. ‘첫 종’을 들은 학생들은 저마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건 당연히 따라야만 하는 규칙이었으며 동시에 스스로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한 의지이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하늘은 점차 어둠에 물들고 있다. 초저녁, 기이한 열기를 담은 바람이 구름을 떠민다.

나는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차분하게 이성을 유지하고 교실을 떠나는 등을 바라본다. 그 등은 동료의 것도 있고 적의 것도 있다. 당장 서로 칼을 겨누고 대혼전이 일어난다 해도 규칙상 문제는 없지만 암묵적인 합의를 통해 첫 종이 울리고 약 5분간은 정비의 시간이 주어진다. 합의를 떠나 그것은 언제 규칙으로 편입되어도 이상할 게 없는 필요한 절차다.

인간 군상의 흐름을 지켜보며 잠시 시간을 보내자 이내 ‘교실’은 허전해졌다. 뭐라고 해도 최고의 격전지는 교실이니까, 오히려 이 순간 학교 건물에서 가장 정적을 만들어내는 곳 또한 교실이다. 교실에 우울한 공기가 맴돈다.

뒤늦게 일어나 신중하게 기척을 살피며 뒷문을 열었다. 모두 뿔뿔이 흩어져 복도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활기찬 소년이 장난스럽게 치고 간 것인지 슬쩍 본 문패는 흔들거린다.

1-1

1학년 1반 교실을 의미한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미정고등학교 1학년 1반 교실이다.

미정고등학교. 밖에서 보기엔 모난 곳 없는 고등학교다. 굳이 꼽을 특이사항이라면 작년에 설립되어 재학생은 1학년뿐인 신설 고등학교라는 것, 입학 성적이 상당히 높게 책정된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라는 것, 아직 새내기 학교라는 걸 자랑이라도 하려는지 건물 디자인은 세련되고 설비는 타 학교에 비해 탁월하다는 것 정도다.

나도 입학 하고 처음 설비를 봤을 때 무척 감탄했다. 전교생에게 지급된 학생증은 학생의 신분 증명 외에도 다른 용도를 겸임하는데 그 용도는 바로 통행증이다. 미정고등학교 교문은 교사가 지키지 않는다. 지하철 개찰구에 보이는 기계 설비가 있다. 학생증을 통해 문을 지날 수 있고 입출을 관리한다.

너무 평범한 중학교 출신인 나는 이 현란한 시설에 전율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도 낮에나 통하는 이야기다.

밤의 미정고등학교는 결코 시설 좋은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가 아니다.

전화가 치솟고 탄피가 굴러다니진 않지만, 이곳은 전장이다.

“아지트로 바로 가는 것보다…….”

둘러가며 상황을 살피는 게 좋겠다. 5분의 정비 시간이라고 해도 규칙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에 성질 급한 누군가가 복도를 걸을 때 덮쳐올지도 모른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 생존의 법칙.

벽을 따라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1학년 교실은 건물 4층에 있다. 학교에 1학년밖에 없으니 그냥 2층 교실을 사용하게 해주면 좋으련만 그런 융통성은 없었다. 이걸 비극이라 하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이 비극이냐.

“이리로 올 줄 알았어.”

“읍!”

아래층에 내려오자마자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서 순간적으로 비명을 지를 뻔 한 걸 겨우 참았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서 아플 정도다.

“부실장, 뭐해?”

부실장, 이름은 김명. 나와 같은 나군 소속 초능력자로, 우리 반 부실장이기도 하다. 체구가 작은 편인 여학생인데, 귀여운 생김새로 제법 인기 있는 듯 하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호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부실장은 그다지 사교적인 성격은 아닌 고로 1학기 중반을 넘어가는 지금도 별로 친해지진 못 했다.

“널 기다리고 있었어. 요 며칠 계속 이리로 지나다니잖아.”

“과연. 주의할게. 고마워.”

부실장이 내가 행동방식을 꿰뚫어봤다면, 또 알아차린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게 아군이라면 문제없지만, 적일 경우 매복하고 있다고 습격해올 수도 있지.

“일단 아지트로 갈 거지?”

“응. 조를 짜기로 했으니까.”

갈수록 전투가 격해지며 우리 나군은 나름대로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군은 전반적으로 가군에 비해 신체능력이 뒤쳐진다. 그러므로 개별적인 행동은 패배의 지름길이나 다름없다.

특히 어제 그렇게 각개격파 당한 아군이 두 명. 전쟁 시작 이후 제법 유리하게 이끌던 전황이 단번에 좁혀졌다.

“꽤 적극적인데?”

“부실장은 그렇지 않아?”

“아니, 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부실장은 말을 흐렸다. 표정이 나빠서 왜 그러냐고 물으려는 순간 포위당했다. 그렇지만 이번엔 눈치 채고 있어서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실장, 부실장! 얼른 와!”

“어, 정우. 다 모여 있어?”

“너희만 오면 총원 12명, 집합 완료야!”

이 녀석, 목소리가 너무 커. 빈 복도가 쩌렁쩌렁 울린다.

나군 동료, 손정우의 재촉에 따라 최대한 빨리 걸어 아지트인 ‘5반 교실’로 들어간다.

5반 교실은 우리 나군의 ‘아지트’다. 이 아지트라는 건 그냥 편의상 거점으로 삼은 곳이 아니라 규칙에 따라 정해진 장소다. 아지트에 있으면 가군 초능력자는 우리를 죽일 수 없다. 그렇기에 전투 초반, 전략을 가다듬기 좋은 곳이며 중간에 휴식을 취할 때도 적극 이용한다. 물론 가군도 아지트가 있다. 아마 지금쯤 2반 교실에서 복작복작 모여 있지 않을까.

우선 나는 교탁으로 향했다. 이래봬도 1반 실장이고, 가군에서도 자연스럽게 대표를 맡고 있다. 그렇다고 특별한 권한은 없지만 일단 회의를 주관한다.

“정우야, 현재 상황을 보고해줘.”

“그러니까 현재 아군은 총원 12명. 그리고 가군도 12명이지! 그러니까 우린 적 4명을 척살했고, 동료 2명이 살해당했어!”

그래, 16 대 14의 불리한 전투. 그렇게 시작했는데도 불구하고 현재 스코어는 대등하니 나쁘지 않은 결과다. 그렇지만 간과할 수 없는 게, 어제만 해도 우린 전원 생존하고 있었단 거다.

“알고 있겠지만 어제 동료 두 명이 죽었다.”

내 말에 모두 침묵했다. 죽은 동료를 떠올리며 숙연해지는 건 어쩔 수 없지. 그러나 감상에 빠져있을 여유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교착 상황에서 야금야금 이득을 취해왔으나 어제 가군의 맹공으로 두 명이 죽은 거지. 그렇다면 원인은 무엇일까. 부실장?”

“아군은 개별적으로 교사를 누비던 것에 반해 적은 단체로 움직이며 하나씩 습격했어.”

다 대 일의 전투 상황을 유도한 것이다.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래, 그래서 우리는 어제 조를 나누기로 했지. 적이 단체로 똘똘 뭉쳐 다닌다고 우리도 하나로 뭉쳐 다녔다간 행동이 불편해질뿐더러 이점이 없으니까.”

객관적으로 봤을 때 12 대 12의 상황이면 우리가 불리하다. 그래서 어떻게든 짜낸 계략이 조별 행동이다. 조로 다닐 경우 한 명을 상대하면 확실히 강하다. 문제는 적 전체와 마주쳤을 때 선물세트처럼 한 번에 여러 명이 죽어나갈 수 있다는 것인데 그래서 우리는 각 조에 연락 담당을 따로 두고 원활한 정보 공유를 통해 최대한 전면전을 피하고 ‘끊어먹기’를 시도하려는 것이다.

초능력자라도 인간, 화장실에 가는 인간도 있고 한 눈 파는 잉여도 있기 마련이다. 개중에는 한심할 정도로 협동심이 없어서 따로 행동하는 별종도 있겠지.

“서기, 어제 죽은 두 사람의 능력은?”

“그러니까 보자…… 김태진은 ‘꽝’이라고 해도 무방한 능력입니다, 보스. 그는 음성을 확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물론 사용하기에 따라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겠지만 당장 가시적인 큰 손실은 아닙니다.”

서기, 김호석은 원래 1반 서기는 아니다. 그러나 나군에서 편의상 직책을 준 것이다. 그런데 감투를 쓰고 흥분한 건지 내게 존대를 해서 곤란하다. 딴에 캐릭터를 만드는 것 같지만 웃기다. 자제해줬으면 하는데 말을 안 듣는다.

“그렇지만 이순창을 잃은 건 큽니다. 그는 초능력 ‘구운몽’의 사용자였으니까요.”

그렇다. 이순창, 그의 능력은 구운몽이다. 구운몽이라고 하면 다들 어느 정도는 알고 있겠지. 교과서에 나오는 그것이 맞다. 꿈을 꾸며 아홉 명의 여자와 만나는 그 즐거운 소설이다. 그렇다고 이순창이 딱히 9다리를 걸치는 기형 문어인 건 아니고.

이순창의 능력은 ‘부활’이다. 그는 9명의 적을 부활시킬 수 있다.

이 부활의 이득은 말할 것도 없이 크다. 슈팅게임하면서 남은 목숨이 9개라고 생각해봐라. 아무리 컨트롤을 못해도 끝판에 갈 수 있다.

우리가 초반에 적을 상대로 유리했던 건 전적으로 이 구운몽에 의지했기 때문이다. 4명을 죽이면서 희생자가 없었을 리 없지.

이순창이 부활시킨 수는 총 6명이다. 다시 말해 그는 앞으로 3번 정도 더 부활을 사용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안타깝게도 구운몽은 본인에겐 사용할 수 없었지만.

이미 죽어버린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실을 말하고,

“우리가 얼마나 큰 손해를 입은 건지 모두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

최대한 겁을 줘 긴장하게 만들면 된다. 초반 이득 때문에 다들 너무 풀려있는 감이 있으니 적당한 자극이 되겠지. 그래서 굳이 이미 파악하고 있는 사항이지만 서기의 입으로 말하게 한 것이다. 사전에 서기와 말을 맞춰 과대포장하게 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믿고 힘을 합치면 충분히 이겨나갈 수 있어. 알겠지? 파이팅!”

“파이팅!”

내 구호에 맞춰 모두 외친다. 좋은 분위기다.

서기와 부실장에게 조를 짜는 걸 맡기고, 나는 다시 한 번 적을 생각한다.

가군 초능력자가 가진 초능력 목록을 생각하며 어떤 상황을 유도하는 게 좋은지 생각한다.

“보스, 조를 다 만들었습니다.”

“수고했어, 서기. 난 누구와 한 조야?”

“저와 부실장, 손정우입니다.”

서기의 손이 많이 닿은 것 같은 조로군.

그렇지만 밸런스는 나쁘지 않다. 부실장의 능력은 방어에 특화되어있고 서기는 아주 공격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정우와 내 능력은 상대를 방해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 이정도면 둘…… 아니, 셋까지는 덮칠 수 있다.

“좋아, 모두 조를 나눈 것 같네. 그럼 가자, 나군 초능력자들아!”

“오오!”

적의 동정을 살피며 아지트를 벗어난 우리 조는 곧바로 계단을 통해 2층으로 내려갔다. 3개조로 나뉜 아군은 각자 2층, 3층, 1층을 맡기로 했다. 4층에서 움직이는 건 솔직히 위험하잖아. 쟤들은 열두 명이 한 번에 움직일 확률이 크니까.

우웅

진동이 울린다.

“뭡니까, 보스.”

셋 다 궁금한 얼굴인데 서기가 대표로 말했다.

“2조의 보고야. 적은 2층에 있다나봐. 남자 화장실에 숨어서 확인했대. 그리고 보이는 적은 총 10명!”

다시 말해 2명은 따로 행동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거야말로 바라던 바이다. 이렇게 깔짝깔짝 수를 죽여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니.

“실장, 그럼 어디로 이동해?”

“일단…… 3층을 수색하고 난 다음 4층으로 올라가자.”

복도는 조용하다. 거기다 전력을 아끼기 위해 미등만 켜놓아서 음산한 분위기다. 밤의 학교는 신축이건 말건 무섭다.

앞장선 정우가 손전등으로 복도를 이리저리 비추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챙강!

복도 끝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정우가 반사적으로 향한 불빛에 한 명의 인영이 아른거리며 보였다. 틀림없다. 적이다.

거리는 제법 멀었지만 괜찮다. 믿는 구석이 있다.

“손정우!”

그렇게 부른 순간, 내 믿음을 배신하지 않고 정우는 놀라운 반사속도로 즉각 능력을 사용했다.

“찰지구나!”

정우의 기합과 함께 능력이 발동되었다.

“녀석을 쫓아! 내 초능력을 맞았으니 얼마 가지 못 할 거야!”

마치 준비해온 듯 정우가 무서운 대사를 던졌다. 알겠으니까 부끄러운 대사는 자제하자. 이러다가 적이 성정체성을 깨달으면 위험하다.

힘이 빠진 적을 쫓아 곧바로 4층으로 올라갔다. 워낙 정우의 능력이 강한 탓에 적은 겨우 10미터 정도 앞서고 있었다.

4층은 3층과 달리 복도에도 환하게 불이 켜져 있어서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 잘생긴 낯짝은 가군 초능력자 중에서도 이름 높은 임형준이다!

착하고 잘 생겨서 인기 있는 임형준이 정우의 초능력을 맞았다는 것에 살짝 쾌감이 들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불쾌하다.

뭐지?

하지만 그런 불쾌함만으로 놓치기엔 너무 아까운 기회인 것도 사실이다. 적과 아군의 수가 같은 상황에서 한 명의 적을 죽이는 것은 그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임형준의 능력은 공격력이 강하나, 현재는 정우의 초능력에 당해서 이동능력을 상실한 것과 다름없는 상황! 장차 큰 위협이 될 테니 지금 잘라내야지.

힘이 빠져 느려진 임형준은 황급히 코너를 돌아 여자화장실로 들어갔다.

“잠깐!”

“응? 뭐야, 실장!”

손정우는 불만을 숨기지 않으며 외쳤다.

그렇지만 침착해라. 이건 공명의 함정이다.

우리가 조별로 나뉘어 목적한 사냥감은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제멋대로 행동하는 찌질이다. 그리고 임형준은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그럴 리 없는’ 남자다. 이게 처음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다.

“임형준은 ‘여자화장실’로 들어갔어.”

“아!”

내 말에 부실장이 무언가 깨달은 듯 감탄했다.

그렇다.

학교에 존재하는 곳곳의 장소엔 저마다 신비로운 ‘규칙’이 있다. 그건 여자화장실도 예외는 아니다. 임형준이 정말 혼자 행동하다가 우리를 피해 도망간 것이라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으로 숨은 것이라면 아무 교실로나 도망치는 게 타당하다. 왜냐하면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이상 남자가 자연스럽게 여자화장실에 들어갈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형준은 한 발 앞서 나가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교실로 들어간 게 아니라 여자화장실로 직행했다.

어째서냐? 설마하니 임형준이 여자 화장실에 흥분하는 변태인 걸까? 그럴 가능성은 높지만, 일단 배제한다. 그렇다면 임형준이 사실 남장 여자였다는 전개는 어떨까? 아니, 이건 가능성이 낮다. 분명히 임형준은 잘 생겼지만, 그는 꽃미남이라기 보다는 호남형이다. 이렇게 잘 생긴 아이가 여자일 리 없어!

그렇다면 이것은 바로 노림수!

남자화장실에서 서로 다른 세력의 초능력자는 초능력을 교환할 수 있다. 여자화장실에서 같은 세력의 초능력자는 초능력을 교환할 수 있다.

불길한 생각이지만, 가능성은 높다.

“깔깔깔! 멍청하게 따라왔구나!”

그리고 내 불길함이 정답이었다는 걸 외치는 웃음소리.

…… 여자 화장실에서 가군 초능력자, 정미희가 등장했다.

“이런, 도망쳐! ‘퍼거스의 손’이다!”

“깔깔, 늦었어!”

외치며 뒤돌아 선 순간, 정미희가 외쳤다.

“으아악!”

정우가 걸걸한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너무나 장렬한 비명이 안타깝다. 너, 비중 있을 줄 알았는데 순식간에 당하는구나.

친구의 죽음이 슬펐지만 지금은 물러나야한다. 부실장의 방어능력은 몹시 강력하지만 그 능력을 발동할 수 있는 상대는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정미희는 능력을 발동할 수 없는 상대다.

“보스, 제가 나서는 게…….”

바쁘게 걸으며 서기가 말해왔지만 허락할 수 없다. 교실이라면 모를까, 복도에서 어설프게 덤볐다간 양패구상이다. 서기의 능력은 정말 강력한 만큼 함부로 낭비할 수 없다. 그게 아무리 상대가 전율스러운 ‘퍼거스의 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내 친우, 정우가 당해버렸다고 해도!

“1반으로 가자!”

가까이 있던 정미희는 순식간에 당했지만, 임형준만큼 기동력이 없는 정미희라면 충분히 거리를 벌릴 수 있다.

문제는…… 임형준이 전혀 움직일 수 없는 건 아니라는 거다.

“실장, 죽어줘야겠어.”

여자 화장실에서 나온 임형준이 스산한 얼굴로 나를 부른다.

뭐지? 뭐냐고.

정미희의 초능력은 아직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가군 초능력 열여섯 가지를 떠올린다. 그 중 가군 사망자가 가지고 죽은 게 확실한 능력 세 가지를 지운다. 그리고 원래 임형준이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 정미희가 소유한 ‘퍼거스의 손’을 지운다. 그렇다면 남은 건 열두 가지. 만약 회복 계열 능력이었다면 굳이 정미희가 퍼거스의 손을 가지고 나오진 않았겠지. 그럼 두 가지를 제외할 수 있다. 그리고 나를 죽이겠다는 선언에 따르면 살상이 가능한 능력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할 수 있어.

고민에 고민을 더하던 순간, 내가 잠시 경계를 돌린 그 순간…….

“텔레포트!”

임형준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내 목숨을 쥐려고 날아오는 손.

너무 가깝다. 급히 몸을 돌려보지만 피할 수 없다. 이걸로, 내 전쟁은 여기서 끝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포기해버린 순간, 내 예상을 넘는 움직임이 있었다.

“어딜. …… 이 변태!”

부실장이 임형준의 몸을 쳐내고, 서기가 파고들어 한 순간에 임형준을 공격한다. 완벽한 합공이었다.

이걸로 가군과 나군, 각각 11명.

정미희를 무사히 피한 우리 셋은 일단 아지트로 복귀했다. 연락을 해놨기에 다른 조도 곧 5반 교실로 돌아왔다.

“…… 손정우가 당했다니.”

“흥, 괜찮아. 어차피 그 놈은 송사리. 우리 중에 가장 약한 녀석이지.”

“결과적으로 임형준을 제거했잖아. 그러면 최소한 손해는 아니지.”

“트레이드한 게 손정우인 걸 생각하면 이득일지도.”

어쩐지 가차 없구나.

거듭해 나가는 전쟁으로 다들 감성이 메말라 버린 걸까. 동료의 죽음에 눈물 흘리는 자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나도 감상을 떨치자.

이럴 때가 아니다. 내 잘못을 반성하고 반격해야지.

“…… 완벽하게 당했어.”

“보스, 무슨 말씀이십니까.”

서기, 넌 좀 빠져라.

부실장이 기운 잃은 내 대신에 설명한다.

“우리가 조를 나눠 끊어먹으려 한다는 걸 예상한 거야. 그래서 오히려 미끼를 던진 거지.”

“나, 낚였다는 말이야?”

“응. 낚시, 성공.”

그 말대로다. 완전히 퍼덕퍼덕.

임형준을 미끼로 던져서 이쪽의 정신을 쏙 빼놓은 거다. 여자 화장실에 정미희가 대기하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 이쪽의 상태 이상 공격에 대한 대비도 확실히 했던 게 아닐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보스?”

“그게 문제야.”

섣불리 끊어먹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결국 우리도 뭉쳐 다녀야 한다는 건데. 그렇게 될 경우 전면전에서 역시 우리가 불리하다.

…… 전면전에서 우리가 불리하지 않도록 다듬을 수밖에 없는 건가.

분명히 신체적으로 뒤쳐지는 건 사실이지만, 어차피 우린 초능력자다. 까놓고 말해 총 든 것보다 강력한 살상능력을 가진 초능력자도 있다. 그렇다면 굳이 신체 능력에 연연할 것은 없다. 보다 깔끔하고 효율적으로 초능력을 사용한다면 전면전에서 박살을 내버릴 수도 있을 텐데.

문제는 그게 쉽지 않다는 거다.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통제가 쉬울 리도 없고 말이지.

“실장.”

부실장이 나를 불렀다.

“궁상은 그만 떨고 저길 봐.”

뭐지? 얼마 전부터 느낀 거지만 부실장의 말이 점점 아프다.

기분 탓이겠거니 넘기고 가리킨 곳을 보자, 가군이 도열해 있다.

교실 밖.

총 11명, 전원 모여 있다.

“무슨 일이야?”

일단 대표인 상황이니 앞문 근처로 가서 묻는다. 신중하게 거리를 잰다. 아지트에서 한 걸음만 밖으로 나가는 순간, 협공 앞에 난 순식간에 죽을 테니까. 부끄럽지만 확실하게 손이 닿지 않는 거리를 벌려놓아야지.

“어이, 수민아. 너무 숨어있는 거 아니냐.”

“시끄럽다. 백우성.”

백우성. 내 불알친구. 그러나, 이제는 적일뿐인 ‘가’군의 지도자.

감정에 흔들리는 걸 막기 위해 단호하게 말한다. 그러자 우성은 넉살 좋게 웃고만 있다. 웃기지마! 나는 네놈이 웃으며 이순창을 죽인 걸 잊지 않았다고!

“너희, 너무 숨어있다고. 어차피 어느 한쪽이 다 죽기 전엔 끝나지 않잖아? 이길 맘이 없거든 모두 접시 물에 코 박는 게 어때?”

여전히 웃으면서 냉혹하게 말한다.

“어쩌자는 거야?”

“우린 지금부터 1반 교실로 갈 거야.”

“필드로?”

“그래. 그러니까, 와라. 제대로 싸워보자. 선전포고다, 고수민.”

그렇게 말하고 우성은 돌아섰다. 그 등은 결코 우리가 대등하지 않다고 말한다. 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 저건?

하지만, 확실히 도발로는 효과가 있다. 분해서 이가 갈린다.

“보스, 가죠.”

“이런 도발에 피하면, 진짜 남자로서 끝이네.”

서기와, 정말 어쩐지 아픈 부실장의 부추김이 등을 떠민다.

1반 교실. 그러니까 일상의 상징이라 할만한 낮의 시간을 보내는 곳. 그러나 밤이 되면 1반 교실은 ‘필드’가 된다. 아무런 제약도 없이 마음껏 전력을 다해 싸울 수 있는 공간. 그곳에서 기다린다는 건 어떤 잔재주도 없는 정면 승부를 걸어오는 것이다.

그러나 망설이는 자는 없다.

모두 우성의 도발에 당한 건지, 씨근거리며 칼을 간다.

“먼저 진입하는 건 명수랑 유정이.”

둘 다 강력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 전원이 1반 교실로 들어가고 난 뒤 함성을 지르며 맞붙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비열한 가군 놈들이 그렇게 할 리 없다. 말로는 좋게 선전 포고해왔지만 틀림없이 우리가 교실로 들어가려 하면 병목현상을 이용해 선발대를 공격할 거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대비를 세워야지.

“그리고 바로 뒤에 원거리에서 공격이 가능한 진규와 상석이가 따라가.”

이것저것 지시를 하며 5반 교실을 벗어난다.

복도는 조용하다. 오와 열을 맞춰 걸으며 주위를 살핀다.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없다고, 이 잉여놈들! 가군 초능력자 놈들이 그렇게 정정당당하게 덤벼올 리가 없잖아! 틀림없이 뭔가 수작을 부릴 거라고. 그렇게 안 해주면 안 되지!

“보스, 뭔가 이상합니다?”

“무슨 소리야, 서기. 이상한 건 너야.”

“아냐, 실장. 귀 좀 파고 살아. 1반 교실이 소란스러워.”

…… 레알 아프다.

그렇지만 그 말대로.

1반 교실이, 이상할 정도로 소란스럽다. 만약 예상 외로 정말 1반 교실에서 우리를 기다린다면, 전열을 가다듬고 대기할 터인데. 마치 이미 전투를 시작한 것처럼…….

“설마!”

“크크크, 그 분인가!”

앗! 첫 종이 울릴 때부터 뭔가 이상한 또라이 기질을 보이며 ‘크크’거리던 애가 앞서나갔다. 몰라. 뭐야, 저거. 무서워. 흑화했나 봐.

하지만 나도 짚이는 건 있다. 눈짓으로 애들에게 신호하며 서둘러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열려있는 뒷문으로, 보인다.

피비린내가 물씬 감돈다.

“으아악!”

“아, 안 돼!”

“왱알앵알!”

비명, 혼란.

전투라고 할 것도 없다. 이것은 그런 게 아니다. 긴장도 없다. 그런 게 생길 틈이 없다. 이건 그냥, 학살이다. 사마귀를 라이터로 태워 죽이는 것처럼 무자비한, 그냥 심심풀이일 뿐이다.

‘가’군이 비명을 지른다.

‘가’군이 죽는다.

초능력자로서 경천동지할 능력을 지닌 그들이 손쉽게 죽어나간다.

“이것이…….”

“마, 마, 마.”

“마왕!”

그래, 마왕이다.

우리를 불러낸 가군이 대기하던 교실을 ‘마왕’이 급습한 것이다.

마왕.

죽지 않고, 어떤 초능력도 통하지 않고, 그런 주제에 손쉽게 적을 죽이고, 무자비하게 죽이는 그런 존재. 마왕이 나타난 것이다.

“실장, 어쩔래?”

“무슨 말이야, 부실장.”

“튈 거야, 말 거야. 빨리 결단을.”

“…….”

대답하지 못한다.

사실 이건 아주 좋은 상황이다. 가군을 동정해줄 건 없다. 마왕은 자연재해나 마찬가지인 존재다. 그리고 그들은 불행하게도 그 자연재해에게 습격당한 것이다. 가군은 적이고, 이 상황은 손도 안 데고 코를 푸는 것과 같다.

아마 여기서 덮친다면 가군을 일망타진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도, 마왕에 대한 공포로 입을 열 수 없다. 발을 움직이지 못한다.

자연재해는 그들에게만 해를 입히는 게 아니다.

“크크크! 다 죽여! 죽여 버려!”

이건 누가 봐도 글렀다 싶을 정도로 정줄 놓고 있던 녀석도 어느 새 마왕에게 당해 죽었다. 이걸로 우리도 10명이 되었다. 그렇지만 쟤는 ‘-1’이었으니 어떻게 생각하면 이득이군.

졸지에 냉정해졌다.

자, 이제 어쩔까.

그걸 느긋하게 생각하려던 찰나, 마왕이 우릴 돌아본다.

“…… 오마이갓.”

마왕이 다가온다.

“여러 분, 일단 최선을 다해 마왕을 막아 봐. 그동안 난 도망칠 테니.”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을 때, 이미 아군은 나를 빼놓고 전력으로 도망치고 있다. 의리가 없는 것들이다.

그 잠깐 사이, 마왕이 내 앞에서 웃고 있다.

“진정해라. 진정하고 협상을 하자.”

“혀어어업사아아앙?”

“그렇다. 협상이다. 나는 나군의 지도자. 산 제물을 준비하겠다.”

“산 제물?”

“그래. 두 명이다. 두 명은 어떤가.”

“쫌 적은데?”

“세 명…… 아니, 네 명을 준비하지. 네 명이다!”

“네 명? 흐음?”

“이런 젠장, 욕심도 많군.”

“문답무용!”

으악! 실언했다.

황급히 주저앉으며 마왕의 공격을 피한다.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마왕의 손을 올려다보자 소름이 돋는다. 이 빌어먹을 여자는 손버릇이 너무 나쁘군.

십년감수했다.

“작은 하마 같은 자식!”

그렇게 말하며 등 돌리고 도망간다.

좋아, 어디 해보자. 마왕이여, 모두에게 배신당한 자의 원한이 얼마나 무서운 지 보여주마! 인중여포 마중적토, 그리고 초능력자 중엔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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