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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과 용사의 파티세션
글쓴이: 이그란스
작성일: 12-07-31 23:47 조회: 1,835 추천: 0 비추천: 0

마왕.


인간들은 말한다.

세계의 제 1의 악이자, 가장 극악무도한 존재이며, 악마라는 존재에서 가장 최상위의 위치에 서있는 왕이라고.

더더욱 인간들은 말한다.

그가 마음만 먹고 한 번만이라도 손을 휘두른다면 천지가 요동치며, 세상 하나 없애는 것쯤은 누워서 떡먹기라고.

하지만 알까.

그런 그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존재라는 것을….



제1장 마왕의 수명은 이미 절반을 넘어섰습니다.



“크, 크, 크아아아아아악!”

오늘도 5M나 되어 보이는 거대한 몸집이 거대한 탑이 무너지기라도 하랴 순식간에 쿵! 하고 쓰러졌다. 너무나도 힘없게 쓰러지는 그의 모습은 보는 이도 고달프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는 초라하게 쓰러지고 나서도 누군가를 바라보며 크르릉, 울부짖지만 전부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이걸로 마지막이야.”

보통 소녀와는 달리 미의 음성을 지닌 이질적인 그녀.

그녀는 기운이 빠진 듯 한 보폭으로 털썩, 털썩 걸어오더니 그의 앞에 당도했다.

“또 이걸로 두 번째일까…미안.”

그는 그녀의 시퍼런 검이 들려지는 것을 보자 울부짖는 짐승의 소리를 더욱 강력히 냈다. 뭐라도 말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몸에 입은 타격이 너무 커 이야기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해서.

젠장ㅡ하고 살점이 깊게 파이는 우둑한 타격이 생생히 들려왔다.

마왕은 오늘도 용사에게 사냥 당했다.



1

?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어둠 속.

이 연우는 머릿속을 강력히 울리는 여성적인 기계음에 심취하고 있었다.



[현재까지 올려놓은 당신의 레벨을 1로 감소시킵니다.]

[지니고 있는 모든 스킬들 중 일부를 제외하고 초기화합니다.]

[지니고 있는 모든 아이템들 중 일부를 제외하고 초기화합니다.]

[남은 라이프는 1입니다.]

[용사에게 한 번 더 사냥당할 경우 현실세계로의 귀환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면 이게 무슨 개소리야? 하고 지나갔을 법하지만…연우에게는 그러한 게 통용되지 않는다.

‘남은 라이프가 1….’

후회와 긴장, 그리고 절망. 연우는 속속히 생겨나는 어두운 감정들 때문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완벽한 어둠 속에서 연우의 눈꺼풀 사이로 빛이 들어올 때쯤.

후회와 허무함 때문일까ㅡ연우는 처음 이 온라인 게임을 시작했을 때를 떠올렸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정체불명의 온라인 게임을 의심도 가지지 않고, 오직 직업이 마왕이라는 것에 들떠서 헤헤 벌레 펄쩍뛴 것을 말이다.

“그때 당장 로그아웃을 했어야했는데….”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새어나온 말이었지만 명답이었다. 이런 추악한 온라인 게임에서 들뜨지 말고, 당장 로그아웃을 해서 현실로 귀환했어야만 했다.

그러면 가족들의 얼굴ㅡ잊어버리는 그러한 불상사가 일어나지는 않았을 텐데….

사상 최초로 공개된 가상 현실 게임.

어도비사가 만든 ‘퀘스트 온라인 게임’에 온 지 어언 2년.

2년이라는 시간만으로 가족들의 얼굴을 잊어버린다는 건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마왕인 자신이 용사에게 한 번 사냥 당하는 시간은 거의 1년.

사냥 당하면 돌아가지 못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1년을 고통 속을 헤매며 살았다.

겪어보지 않는 이상, 그래 이 온라인 게임에 갇힌 사람들이 아닌 이상 아무도 모를 것이다.

엄청난 레벨 업을 해도 안심이 되지 않고, 강력한 아이템을 구해도 안심이 되지 않으며, 막강한 스킬을 배워도 안심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심정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산에서 불이 번지는 것처럼 커져만 갔다.



ㅡ용사가 언제 올까.

ㅡ용사가 나를 죽이면 어떻게 되는 거지?

ㅡ아니야, 그럴 리는 없다고 판단하자.

ㅡ용사에게 잡혀 내가 현실세계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ㅡ악몽이야. 그럴 순 없다고.



상상하기도 싫다.

누구나 꿈이라도 이런 꿈은 꾸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연우의 머릿속은 2년 전부터 이러한 게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이질 않고 있었다.

돌고, 돌고, 돌아서 이제는 오직 이 게임의 클리어에만 신경 쓰는 것이다.

그리고 말 그대로 ‘퀘스트 온라인’이라서 그런지 클리어 조건은 의외로 간단했다.

어떠한 수를 써서라도 용사에게 사냥 당하지 않고, 역으로 용사의 목숨을 취할 것.

“그것도 이젠 마지막이야.”

라이프가 1이다. 그건 다른 게임에서 비교하자면 목숨이 하나 남은 것과 같은 것. 용사에게 사냥 당하면 이제는 그것으로 정말 마지막이다.

용사와의 전적은 0승 2패.

패배밖에 없는 전적이라, 암울하지만 그렇다고 용사를 피해 다닐 수는 없었다.

도망만 가자고 생각하면 절대로 이 세계에서 나갈 수 없었으니까.

무슨 비열한 방법을 써서라도 용사를 격파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비열한 방법.

생각을 끝마친 연우는 환하게 눈을 떴다.

“후우ㅡ처음부터 다시 시작이야.”

장식품이라곤 도저히 보이지 않고, 짙은 어둠만이 존재하는 이 마왕성을 보니 그 현실감은 배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현재 위치는 볼 것도 없이 아스트란 대륙의 외딴 섬일 것이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나, 인간들은 거친 폭풍 때문에 다가가기도 힘들어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할 정도의 장소.

그래도, 이런 곳이라도 후에 태평히 들어올 수 있는 녀석이 있다니….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 연우는 방금까지 앉고 있던 옥좌에서 당장 일어났다.

“마수 모드가 풀린 건가.”

전과는 다른 높이의 시야가 보이자 연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스킬이 초기화되어서 처음 스킨, 즉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능력치는 보나마나 하향되어 있겠구나….”

쯧, 혀를 찬다.

“사역마 있나.”

조용히 말했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고, 캄캄한 탓인지 크게 들려왔다. 그런 웅장한 소리도 잠시 치지직~ 전깃줄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오더니ㅡ위에서 푸른 박쥐가 내려와 펑! 하더니 인간 형태로 변했다.

“부르셨습니까.”

늙은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는 공손히 연우에게 예를 올렸다. 2년간 제법 사역마를 다룰 줄 알게 된 연우는 느긋이 입을 열었다.

“전에 있던 나와 바뀐 것이 뭐지?”

그것을 물어볼 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노인은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속성입니다.”

“속성?”

“저번에는 불의 속성을 지니고 계셨습니다만, 이번엔 완벽한 어둠의 속성을 지니셨습니다. 이거라면 마왕의 특성을 잘 살려내 용사를 격파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아시다시피 어둠은 빛에 약합니다. 그리고 빛은 어둠에 약하지요.”

무언가 모순이 되는 말이지만 연우는 설명을 끝까지 들었다.

“어둠의 속성을 지니시게 됐으므로, 용사의 천적으론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마왕님의 어둠속성이 용사의 빛 속성보다 약하다고 판정이 될 경우….”

노인은 말을 잇지 않았다.

“먹힌다는 건가?”

“네. 반대로 용사의 빛 속성보다 마왕님의 어둠 속성이 강대할 경우.”

이길 수 있다.

연우는 한순간이지만 승리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이기고 싶다는 욕망이 가득한 연우는 얼른 사냥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역마, 아포피스의 사용을 허락해라.”

노인은 네라고 간단히 말하더니 알 수 없는 언어로 주문을 외웠다. 대략 20~30초 정도 시간을 허비하더니 손에는 보기만 해도 악기가 가득한 대검이 들려져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보다도 더욱 검게 칠해져 시커먼 칼날.

마왕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아포피스였다.

노인은 아포피스를 두 손으로 연우에게 바쳤다. 연우는 아포피스의 손잡이에 손을 넣고 끼더니 감각을 익히기 위해서 허공에다가 휘둘렀다.

“역시 이 검은 좋아.”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바람을 가른다. 예전의 연우라면 하지 못할 행동이었지만 과거와는 바뀐 것이 너무 많았다.

연우가 몇 번 아포피스를 휘두르고 있을 때였을까.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노인이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마왕님. 제안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제안?”

연우는 칼질하는 것을 잠시 멈췄다. 그러고 의미 모를 웃음을 입가에 가득히 담고 있는 노인을 바라봤다.

“이번엔 꼭 승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좋은 수가 있습니다. 이번엔 용사도 어찌하지 못할 좋은 수가 말입니다. 쿠쿠쿡….”

사역마는 주인을 닮는다고 했는데…노인의 사악한 미소를 보니 연우는 갑자기 자신의 심리상태가 두려워졌다. 나중에 현실로 나갈 수 있다면 병원에라도 가봐야 할 것만 같았다.



2



연우는 용사를 물리치기 위해 열심히 사냥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역마가 말하는 것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어서 무시할까ㅡ생각도 해봤지만 나중에 생각하니 사역마가 명답을 내어준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은 사역마가 말한 대로 우선 외딴 섬에서 빠져나왔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 싸여 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거친 폭풍까지 일어나고 있는 곳을 어떻게 빠져나왔냐고 하면…의외로 간단했다.

마왕만이 탈 수 있는 전용 게이트가 있었다니….

“그런 거 몰랐다고….”

하기야 마왕성에서 죽치고 사냥하기만 했으니 모를 만도 했다. 그러고 보니 마왕성 외의 다른 대륙에 발을 디딘 건 처음이 아닐까.

문득 든 회의감에 연우는 사방을 살폈다.

푸른색으로 펼쳐져 있는 넓은 초원. 시원스럽게 밀려와 머리카락을 간질이는 바람. 기분 좋은 바람의 행동이 촉각으로 확실히 전달되었다.

“…생각보다 그래픽이 엄청나잖아.”

가끔가다 초원의 몬스터들도 보이지만 연우는 무시하고 지나갔다. 다행히도 아직 초보자의 마을이라 선제공격의 몬스터가 없었기 때문에 별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리 마왕이라도 레벨 1의 마왕은 무지 약하다는 것을 연우는 2년간 쉽사리 깨우쳤다.

그렇게 몇 십 분을 걸었을까ㅡ연우는 어느 한 마을에 당도했다.

방벽이라곤 허름한 나무뿐이라 몬스터의 침입을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이는 마을.

“드디어 다 왔어.”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는 초보자 마을을 걸어서 오게 되다니…감탄이 절로 나온다. 동시에 용사 죽이기라는 퀘스트에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을 받으니 쾌감까지 발출되었다.

그래, 이제부터 시작이야.

용사에게 접근해, 사냥해서 나오는 용사의 아이템을 은근슬쩍 빼앗고, 용사의 약점에 대해서 알아보는 작전.

일명 용사 죽이기 스타트다.

“이…런 망할….”

마을에 들어온 연우는 입에서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다름이 아니라 용사 찾기에 열심히 돌입하고 있어도 도저히 누가 용사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쉽게 생각했나….’

게임의 NPC인지, 진짜 플레이어인지 구분도 가지 않는데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용사를 찾는다니…물론 용사의 인상은 2번이나 보았기 때문에 낯이 익어ㅡ찾으면 좋겠지만….

이런 사람들 틈에서 찾는 건 불가능한 주문 아닌가.

바깥에서 볼 땐 자그마한 마을이었지만, 들어오니 플레이어가 넘쳐나는 이런 마을을 보자 연우는 낙담에 빠졌다.

그리고 용사 찾기라는 수색을 그만둘 때쯤 사역마의 목소리가 연우의 고막을 강타했다.

“저에게 용사 수색 스킬이 있습니다만, 사용해보시겠습니까?”

어디야? 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런 스킬이 있으면 얼른 써! 라는 소리가 먼저 튀어나왔다. 그것 때문인지 지나가던 플레이어나 NPC들은 마치 미친 사람을 보듯 슬쩍 연우를 쳐다봤다. 연우는 목에서 이마까지 붉은색으로 달아올랐고, 조용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빨리 써.”

“쓰긴 쓰겠습니다만,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신 겁니까?”

“뭔 후회?”

“마왕님의 사역마인 제가 이 스킬을 사용하게 된다면 마왕님은 크게 데미지를 입으실 겁니다.”

“얼마나?”

“영구적으로 체력의 절반이 줄어든다고나 할까요.”

…체력의 절반. 그것도 영구적으로….

개나 갔다 줘.

안 된다.

만약 체력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레벨 업 할 때, 올라가는 체력도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런 엄청난 대가를 주고서라도 용사를 찾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보류해라.”

그렇게 말하고 연우는 다시 용사 수색에 들어갔다. 분명 눈에 띄는 외모라 보일 법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날이 저물어가는 데에도 용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혹시 초보자 마을에서 시작하지 않는 게 아닌가? 그것도 아닌 듯 싶었다.

메뉴를 터치해 게임의 가이드북을 열어 상세히 읽어보지만 초보자는 초보자 마을 외에 시작할 수가 없었다. 게임의 시작점은 마왕이 아니고서야 전부 초보자 마을에 등록되어 있다고 나와 있는 것이다.

“제기랄….”

용사를 찾아서 골탕 먹이기는커녕 렙차만 더 벌어졌을 것만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연우는 근처의 분수대로 가서 앉아 새로운 방책을 찾기로 했다.

그렇지만.

“뭐, 이런 거지같은 일이 다 있지….”

분수대에 앉으니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나오라는 방책은 나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한숨만 더 늘어난 느낌인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1년 내내 수련에 매진하고 싸워도 이기기 힘든 상대를 하루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주어버린 것이 너무 컸다.

“땅 꺼지겠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거야?”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긴…용사…응?”

순순히 대답하려다가 연우는 누구지? 하고 올려다보았다.

붉은색??? 아니다.

뒤에서 강렬히 빛나고 있는 석양에 비춰져 연한 갈색 머리카락이 한층 더 아름답게 보일 뿐이었다. 애초에 이목구비가 선명해서 남자에게 인기가 있을 타입인 것 같았지만….

복장은 갈색으로 치장된 전신 플레이트를 입고, 등에는 초라한 대검을 끼워 넣은 상태.

그리고 연우는 확실히??이 소녀를 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본 적이 있다.

“…찾았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지만 소녀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기보다는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를 찾았어?”

반말을 사용해 접근해오지만, 어색하다거나 그러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반대다. 왠지 모를 포근함과 친근함이 느껴져 적대 관계만 아니라면 바로 친구 권유를 하고 싶은 스타일이었다.

“으, 아무것도 아니야.”

“이상한 녀석이네.”

고개를 갸웃거리는 소녀를 보며 연우는 판단력이 흐려졌음을 직감했다. 용사를 찾으면 어떻게든 파티를 유도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해야 할 터인데, 막상 일이 닥치고 보니 해야 할 행동들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연우의 얼굴색이 급격히 어두워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인지 소녀는 볼을 긁적였다.

“아까는 큰 한숨을 쉬더니, 그렇게 낙담하지 말고 나한테라도 사정을 이야기 해보는 게 어때? 설령 당장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마음에 꽁꽁 묻혀두는 것보다는 누군가에게 한 번 사정을 말해보는 것이 분명 마음에 안심을 되찾아줄 수도 있을 거야.”

“그, 그런가?”

“당연하지.”

연우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소녀를 보았다.

“왜 그래?”

갑자기 얼굴을 불쑥 내미는 소녀를 보자 연우는 몸을 약간 뒤로 내뺐다.

“아, 아니…. 왜 나한테 말을 건 건지 알고 싶어서….”

“음? 말을 건 이유?”

“그래….”

“몰라서 묻는 건가? 너 죽을 것처럼 한숨 쉬었잖아.”

연우는 그게 어쨌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소녀는 그런 연우에게 보충설명이라도 해주려는 것일까. 아담한 입술을 또다시 열었다.

“나도 이 게임을 시작하고 너처럼 그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거든. 그래서 걱정이 되어 와본 거뿐이야.”

…뭐? 걱정이라는 대답에 연우는 당황했다. 용사가 남을 생각하는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판단되니 자신의 목표를 이룰 자신감이 약간씩 사라져갔기 때문이었다.

용사와 마왕.

퀘스트 내용을 미루어 봐도 둘 중 하나는 죽는다. 명백히 둘 다 산다는 선택지는 없다. 틀림없는 베드엔딩 확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심성이 착한 여자아이를 죽이고 자신이 살 수 있을까. 산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선 상상도 하지 못할 죄책감이 밀려올 것만 같았다.

아마??이 기분을 이미 소녀는 느끼고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은 놓쳐선 안 되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용사의 복장을 보면 누구라도 사냥하고 왔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을 터. 그렇다면 보지 않아도 레벨 차이는 이미 벌려져 있을 것이다.

하루 종일 사냥에 매진하고 레벨 업을 하면서 아이템을 모아도 용사를 이길 수 없었다.

그런데 하루라는 엄청난 시간을 주고 이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지금의 기회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기회.

‘그렇지만….’

눈앞의 적이 용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현실에선 소녀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가족들이 있고, 그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커온 소녀.

그리고??그런 녀석을 어떻게 죽여…? 연우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못한다. 할 수 없다.

그래도 살고는 싶다. 죽고 싶지 않다.

여러 차례의 번민과 고뇌를 겪고 있을 때 소녀가 또다시 연우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래서 고민이 뭐야?”

“그, 글쎄….”

“글쎄가 뭐야. 제대로 말해. 말하면 그나마 편해진다니까?”

말하는 것이 꺼림칙한 연우는 잠시 생각할 틈을 갖기 위해 소녀에게 말했다.

“내일 여기로 다시 와주지 않을래? 그때라면 말할 수 있을 거 같아.”

내일이라고 하자 소녀는 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끝내 수긍했다.

“그럼 내일 올게. 내일 봐.”

몸체가 서서히 작아지며 사라지는 소녀를 보고 연우는 피가 날 정도로 세게 주먹을 쥐었다.

내일?내일은 말해야 해.

꼭.






는 살고 싶었다.

현실세계에서 슬퍼할 가족들을 남겨둔 채로 죽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발버둥 쳤다.

발버둥 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용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소녀와 피터지게 싸웠지만 이길 수가 없었다.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아이템, 레벨은 대등했다고 쳐도, 스킬, 필드 활용 능력, 주어진 몬스터 활용, 모든 면에서 우월했지만 도저히…이길 수가 없었다.

어째서?

이렇게 추궁하면 답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 저 멀리 이동해버렸다.

아니, 모순되겠지만 이미 답이라면 알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누구보다도 잘 알아서 영영 용사를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이것이 마지막.

이번에??진다면 모든 게 끝이다.





연우는 스믈스믈 눈가로 들어오는 빛 때문에 눈을 떴다. 보이는 건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만들어진 넓은 창공. 너무 넓고 눈이 부셔서 연우는 눈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아…침….”

이런 아침을 갖는 것도 게임의 시간으로 2년만일 수도 있었다. 마왕성에는 낮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고, 오직 어둠만이 가득한 밤이라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연우는 자리에서 탈탈 털고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여긴….”

주변을 살피니 금방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어제 소녀와 헤어지고 나서 고민을 하고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든 장소. 분수대였다.

연우는 소녀가 떠오르자 턱, 하고 앞길이 컴컴해지는 효과를 느꼈지만 곧 마음을 다듬었다.

“말할 수 있어, 말할 수 있어, 말할 수 있어….”

자기 자신한테 주입이라도 시키는 것처럼 연우는 혼잣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한 10분 정도가 흘렀을까. 쓰윽, 하고 연우의 어깨 위로 누군가의 손이 올라왔다.

“말할 수 있다니, 뭘?”

한 가지 일에 몰입하고 있었기에 전혀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던 연우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마냥 펄쩍 뛰었다.

“이번엔 또 뭘 그렇게 놀라는 거야.”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려오고, 소녀가 모습을 드러내니 그제야 상황판단이 선 연우는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수수하게 흰 원피스를 착용한 소녀를 보더니,

“오늘은 갑옷을 착용하지 않았네?”

“응, 오늘 사냥은 7시부터 할 거거든.”

“7시?”

연우는 속으로 많이 놀랐다. 사냥하는 시간이 너무나도 늦은 시각이었기 때문이다.

“사냥을 하루에 몇 시간 해?”

소녀는 입가에 검지를 올리더니,

“음, 3~4시간 정도일까?”

무, 뭐마마맛…. 너무나도 적은 사냥 시간에 연우는 너무 당황해 뒤로 자빠질 뻔했다. 설마 이런 녀석한테 2연패나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연우의 사냥 시간은 보통 20시간.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한 번도 쉬지 않는 타입이다. 그런데 단순히 3~4시간만 사냥하는 용사한테 2번이나 지다니…있을 수 없다.

있을 수 없다고 몇 번이나 내리깠지만 현실은 졌다 에서 변하지 않는다.

“저기 있잖아. 오늘 고민 말한다고 하지 않았어?”

“아, 맞다….”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니라 고민을 들어주러 온 거였지, 하고 연우는 몸에서 힘을 완전히 제거했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들은 전부 백지로 만들어 놓고??되새겼다.

?추해도 말해, 비겁해도 말해, 이기려면 말해, 지지 않으려면 말해, 현실로 돌아가고 싶으면 말해, 죽고 싶지 않으면 말해??말해야 해!

연우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선.

질렀다??포효하듯 외쳤다.



“나와 파티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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