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마이페이지
 
Q&A
[공지] 노블엔진 홈페이지가 …
[꿈꾸는 전기양과 철혈의 과…
《노블엔진 2017년 4월 2차 …
[리제로 10 + 리제로피디아] …
[Re :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
 
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달바라기 여왕의 묘한 묘애(猫愛)
글쓴이: 소마녀
작성일: 12-07-31 23:33 조회: 1,805 추천: 0 비추천: 0

제1장 고양이 끈끈이

고양이는 쪽지를 물고 나를 바라봤다.
육교 앞 아스팔트 도로에서였다. 내가 다가가기도 전에 그 하얀 고양이 쪽에서 먼저 앞발을 내디뎠다. 처음에는 차를 피하기 위한 행동인 줄 알았지만, 인도로 올라오고도 고양이는 계속해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몇 걸음 앞에 멈춰 서서는 쪽지를 바닥에 내려놓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엔 자기 발을 핥았다.
다 핥고도 그 고양이는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무릎을 굽히고 살짝 쭈그려 앉았다. 아무래도 고양이는 눈을 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해는 멀어질 대로 멀어졌고, 특히나 길거리 고양이라면 이 시간에는 분명 허기가 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너도 슬슬 먹을 걸 찾으러 가야 하지 않을까? 네 생각은 어떻지?
그런 눈빛으로 대여섯 분간 쳐다봤지만, 고양이는 석상처럼 굳어 있을 뿐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나한테 뭔가 할 말이 있는 거 아니었나? 쪽지에 뭔가를 적어놓기라도 한 거야?
설마 네가 먹고 싶은 음식목록을 적어놓은 것은 아니겠지. 그래서 나한테 먹을 걸 요구하려고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은 아니겠지?
“야아옹.”
고양이는 대답하듯 그렇게 울었다.
그 대답이 무슨 뜻인지는 내가 알 리 없었다. 다만 성당의 가고일처럼 잠자코 앉아 있던 고양이가 몇 분인가만에 드디어 무언가 행동을 하기에 나섰다. 또다시 “야아옹.” 하고 울면서 고양이는 쪽지를 머리로 쓱쓱 밀어 내게로 가지고 왔다.
“야아옹.”
세 번째 울음이었다.
쭈그려 앉은 내게 완전히 다가온 고양이는 다시 한 번 자기 손을 핥았다. 그리고 내가 쪽지를 집어 들자 잠시 하던 행동을 중단하고, 이번에는 그 쪽지를 펴자 그제야 안심하고 몸 이곳저곳을 기분 좋게 핥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쪽지를 펼쳐서 살폈다.
짧은 글귀가 쓰여 있었다.
딱 한 문장으로, ‘숙주는 동료를 원한다’ 라는 글귀였다. 한눈에 볼 수 있을 만한 짧은 길이다.
그렇지만 나는 국어를 워낙 못하기로 유명한 몸이시다. 다른 과목은 잘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그 탓인지, 그 글은 보고 보고 또 봐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글이었다. 누가 이런 글을 썼지?
알 리 없을뿐더러 추측할 엄두는 더더욱 안 난다.
숙주는 동료를 원한다.
숙주가 누구야.
동료는 또 누구야.
무얼 원한다는 거지?
결국, 누가 이 글을 썼지?
물론 고양이가 썼을 리는 없다. 하물며 이 고양이가 처음부터 내게 주려고 이 쪽지를 물고 왔을 리도 없고. 이건 추리라고 할 것도 없이 누구나 생각할 만한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우연히 이 쪽지를 썼고….
그걸 또 고양이가 우연히 발견해서 덥석 물었다가, 우연히 발견한 내가 단지 친숙해 보였다는 이유로 이 쪽지를 건네주었을까?
과정이 있었다면 그쪽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확신할 가능성은 아니다.
나는 다시 생각했다.
숙주는 동료를 원한다….
누군가가 어느 누구에게 하고 싶었을 말이다. 물론 그 누가 처음부터 내가 되었을 리는 만무하다. 백의 하나 확률만큼도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쪽지는 역시 사람을 잘못 찾아온 게 아닐까?
도착지를 잘못 찾은 걸 것이다. 고양이는 사람만큼은 영리하지 못한 생물이니까. 그저 내가 마음에 든 것일 뿐이었겠지.
그런 생각으로 쪽지를 접어 도로 고양이에게 건네주었다.
“야아아옹.”
고양이가 거부하듯 입을 꾹 다물었다. 세모 모양으로 다물었다.
억지로 열려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쪽지를 받기가 싫은 건가?
“흐음….”
고양이의 의사를 알 만큼 현명한 내가 아니지만, 고양이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 쪽지를 계속 네가 가지고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버리거나 돌려주지 말아 주면 좋겠다고 표현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 계속 나한테 쪽지를 미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고양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이 쪽지를 고양이가 주지 않았으면 한다. 그 마음을 드러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 살짝 뒷걸음질을 쳐봤다.
“야아옹. 야아옹!”
그러자 고양이는 내가 쪽지를 두고 돌아설까봐 안달이 난 듯싶었다. 세우지도 못하는 몸을 애써 세우려 애태우며 바둥바둥 두 팔을 흔들어댔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그만 풉 웃고 말았다.
결국 쪽지를 줍기로 했다. 고양이를 위해서라도, 아니면 나를 위해서라도 그러기로 했다.
그 결과는 좋았다. 고양이가 안심한 듯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날 보며 눈을 감았다가, 활짝 떴다. 그리고 그 순간은 눈 깜짝할 새에 다음 장면으로 바뀌었다. 나는 단지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허리를 숙였을 뿐인데, 고양이는 어느새 나를 지나쳐 육교를 오르는 중이었던 것이다.
“어…….”
그 순간엔 뭔가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바람이 확 불었다. 멍해진 정신이 순간 확 깨었다.
방금의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그때 눈치챘다.
내가 그 사실을 자각했을 때, 고양이는 계단을 다 건너고 또 이미 다리의 중앙을 건너고 있었던 것이다. 한없이 느릿느릿 우아하게, 완만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맹수도 한달음에 다다르지 못할 거리를, 고작 작을 뿐인 고양이가 단 두 번의 순간 동안 마법처럼 거리를 이동했다.
그리고 내가 보고 있는 지금은 네 발로 걷고 있을 뿐이다.
“…….”
무슨 일인지 전혀….
전혀 알 수 없다.
잠시 후 다리의 거의 끝에서 마지막으로 보인 고양이의 얼굴은, 마치 ‘안심하고 가도 되겠지 냥?’ 이라고 말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정말로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만, 일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인사하듯 눈맞춤을 하고 고개를 돌린 고양이는 또 한순간에 육교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이미 거의 다 다리를 건넌 뒤였다.
하얀 고양이.
어지간해서는 거리에 혼자 있는 모습을 보기 어려운 동물이다. 길고양이라는 느낌은 왠지 ‘줄무늬 고양이’ 아니면 ‘주황색 고양이’ 로 한정되어 있어서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역시 보호소에서 빠져나왔거나, 어쩌다 주인에게서 떨어진 아이가 아니려나?
아니면 정말로 쪽지를 전달하기 위해 찾아온 심부름꾼일지도 모른다.
주인의 쪽지를 전하기 위해 길을 걷는… 아니, 잠깐. 내가 지금 무슨 망상을 하는 거지? 얼굴도 모르는 고양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리는 없다고. 하물며 그런 일을 시킬 주인도 없을 테고 말이야.
또 내가 이런 내용의 쪽지를 받아야 할 이유도 없잖아. 순식간에 육교로 이동한 것도 아마 내 착각이었겠지. 내 머리가 잠깐 어떻게 됐었나 보다.
잠시 후, 나는 육교로 몸을 돌리고 쪽지를 주머니에 쏙 넣었다. 그리고 다리를 완전히 건넌 뒤 도로 너머에서 쉬고 있던 하얀 고양이를 보았다.
조금 전의 그 고양이.
끝까지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쪽지를 주머니에 넣음과 동시에 뒤돌아 사라졌다.
“으흠….”
집착이 강한걸.
나름 귀엽게 생긴 녀석이지만 저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무서워지는데…. 이미 사라졌어도 또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고. 설마 집 안까지 쫓아와 날 괴롭히지는 않겠지?
물론 이것도 망상의 일종일 뿐이다. 설사 고양이 떼가 들이닥친다 해도, 집 안으로 들어오는 건 불가능하니까. 고양이의 왕이 군림하고 있어도 그런 건 불가능하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갔으려나.”
그래서 결국, 지금 중요한 건 이거다.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갔는지 모를 하얀 고양이가 준 쪽지 한 장.
이 쪽지를 버려도 되느냐 마느냐.
버리면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간직하자니 너무 소심한 게 아닐까?
그렇게 고심하던 끝에 기어코 집 앞까지 다다르고 말았다.
“…….”
망상 속 일이 기대되었다.


01

고양이 대군을 꿈속에서 보았다.
진주광택의 황홀한 자갈밭이 지평선에 닿도록 넓게 이어져 있는 공간이었다. 군데군데 오아시스 같은 작은 호수와 나무 한 그루가 만들어져 있었고, 그 아래가 곧 고양이들의 쉼터가 되었다. 대군은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 대여섯씩 모여 나무를 차양 삼아 햇빛을 피하고, 오아시스를 풀장 삼아 느긋이 가지고 놀았다. 그 수를 헤아리자면 시작부터 셈하기가 무섭고 끝도 없는 듯했다.
그러는 사이 벌써 몇몇이 언덕 위를 보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것이었다.
나는 눈을 흐릿하게 떴다.
한 고양이로부터 시작해, 머지않아 시야 속의 모든 고양이와 눈맞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하양부터 검정까지 가지각색의 단장으로, 크기는 이도 저도 다를 게 없지만 저마다 뚜렷한 개성이 돋보였다. 그중에는 이성에게서나 느껴질 법한, 보고 있으면 유난히 가슴이 설레는 고양이도 있었는데, 그런 아이들은 개성 속에도 개성이 박혀 있는 아이들이었다.
귀엽거나 예쁘거나 관능적이거나. 그런 아이들이었다.
아마 저 가지각색의 고양이들 사이에 끼면 굉장히 즐거울지도 모른다. 나무 그늘에서 편히 누울 수도 있고, 풀장에서 다 같이 물장난을 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도 피할 수는 없었다. 고양이 하나하나가 아닌 전체 대군을 통틀어 보자면, 이것은 오히려 두려워해야 마땅한 일이 아니냐고.
저들은 나를 단순히 응시하고만 있지만 그것이 쏘아보는 건지, 아니면 호기심에 보고 있는 건지 나는 모른다. 알 길이 없다.
내가 여기서 한 발짝만 내디뎌도 저들 모두가 도망칠지도 모르고, 아니면 떼로 모여들어 나를 물어뜯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저들이 먼저 다가오게 하거나, 아니면 서둘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뭘 하니?”

툭.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나는 뒤에서 다가온 손에 목덜미를 잡혀버렸다.
그 순간에는 고개를 틀지도, 몸을 움직이지도 못했다. 이것은 나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었다. 움직이려 하면 할수록 손톱이 더 깊게 파고들었고, 까딱하면 그것이 목 안의 신경까지 닿는 느낌이 들었다. 손가락조차 움직일 수 없다.
목소리가 말했다.
“너도 저들을 먹으러 온 거니? 저 맛있어 보이는 고양이들을 뿌리까지 파먹으러 온 거야?”
“그게 무슨….”
“그렇다면 나눠줄 생각 없는데.”
음산한 여자 목소리가 더 싸늘해졌다.
그 여자의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아마도 혀로 내 목을 핥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목에 흐르는 피 맛을 음미하기라도 하는지 끈적한 타액 흐르는 소리를 내고 있었으며, 그럴수록 나는 점점 기운을 잃어갔다. 위기의식과 동시에 마음이 급해졌으나 그만큼 기운도 같이 빠져나갔다. 온몸이 싸늘하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무능하진 않지만 이래서야 그런 것이나 마찬가지다. 몸을 움직이거나 소리를 칠 수도 없으니까.
단 한 차례의 공격에 온몸을 내준 셈이다. 간신히 신음을 내는 정도가 전부일까….
“아아…….”
한편 고양이들은….
고양이들은 이쪽의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내가 한동안 조용하자 아예 관심을 끊었는지, 이제 여기를 쳐다보는 고양이는 한 마리도 없었다. 나무와 그늘, 바람을 즐기며 그들만의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내 뒤의 존재를 못 본 것이었다.
못 보고 있는 것이었다.
뿌리까지 파먹는다는 이 여자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평화를 얕보고 있다.
“고양이는 전부 내 거야.”
마지막 그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꿈속에서의 나는 기절했거나, 혹은 사라졌다. 더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목을 습격한 정체 모를 여자에 의해 그런 결말을 맞이한 것이다.
직후 잠에서 깨었을 때에는, 무언가 짜릿한 느낌이 손끝과 양 발끝을 기습해 나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하아, 하아….”
벌떡 일어서다 못해 가쁜 숨을 쉬다가, 이윽고 숨을 한 번 크게 몰아쉰 나는 고개를 돌려 방을 둘러보고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한쪽 팔을 이마 위에 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꿈… 인 게 당연하겠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머리가 텅 빈 느낌이었다.
꿈속에서의 감정은 절실하고 무서웠지만, 어느새 말끔히 순화되어 사라진 뒤였다. 나는 현실에서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안정을 되찾으면서 잠시 누워 있었다.
그때였다. 열린 창에서 찬 바람이 날아와 몸에 닿았고, 그렇게 땀이 식으면서 추운 날씨도 아닌데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나는 혹 감기에 걸릴라 꺼려진 마음에, 따뜻한 물로 샤워라도 한번 하려고 속옷 차림으로 방을 나갔다.
“하암….”
방을 나오면서 하품하는 행위는 이제는 몸에 밴 습관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입을 늘어지게 벌리고 방을 나오자, 집 안은 고요했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일찍 외출하신 모양이었다.
다만 여동생은 있었다. 나보다 세 살 어린 여동생 연지는, 가벼운 흰 티 차림으로 베란다에서 무릎 굽혀 앉아 뭔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화분이라도 보고 있는 건가? 등으로 가려져 있어 뭐가 함께 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단, 무언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배고파? 이 시간부터 배가 고프다니, 먹보구나 너.”
말을 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친구와 통화 중인 모양이었다.
주말인데도 이렇게 아침 일찍 일어나 통화까지 하다니, 여자아이들은 뭔가 다른 걸지도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악몽만 안 꿨으면 아마 세 시간은 더 잘 수 있었을 것이다. 점심 약속이 없으면 거기서 더 뒹굴어댈 것이고, 그러다가 얼마간 기다리면 여동생이 살짝 화난 얼굴로 “잠보 오빠!” 하고 날 깨워오겠지.
연지가 아침은 몰라도 점심은 꼭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그렇다. 점심을 제때 안 먹으면 힘이 안 난다며 여동생은 항상 말하곤 한다.
오늘 같은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면 아마 칭찬까지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대충 우리 남매의 관계는 이런 식이다.
“어 오빠, 여기에 있는….”
“됐어. 씻은 다음에 먹을 거야.”
연지는 놀란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고 말했다.
“먹을 거야…?”
그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내가 아침을 먹는다는 말은 여동생에게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놀라운 말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등을 축 숙이고 말했다.
“어… 왜?”
“아니, 아무것도.”
한참이나 눈을 마주치고 있다가, 급기야 연지가 불안한 얼굴로 침을 삼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고 할 말을 잃었다는 듯 쭈뼛쭈뼛 하던 일을 이어 하기 시작했다.
뭐야… 고작 아침을 먹는다는 게 그렇게 충격적이란 말이야?
“흠….”
일단 연지가 그리하니 나도 똑같이 하던 일을 계속하기로 했다.
악몽 탓에 아침부터 맥이 빠진 상태라 실용적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눈이 뜨일 듯 말 듯한 몽롱한 정신으로 엉금엉금 욕실로 걸어갔다. 속옷을 벗어다 바구니에 던져 넣고 그다음엔 곧바로 욕실 문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열리지가 않았다.
“?”
다시 한 번 힘을 줘봐도 마찬가지였다. 욕실 문은 안쪽에서 단단히 잠겨 있는 듯 끄떡도 안 했다. 내 팔만 아파져 올 뿐이었다.
“이거… 왜 이래?”
그 뒤로도 몇 번이나 시도해봤지만,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시도한 만큼 힘만 빠졌다. 이렇게 끄떡도 안 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욕실 안에 있는 누군가가 문을 잠근 모양이라고 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누군지는 나도 모른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외출하셨고, 연지는 베란다 쪽에 있는데. 이렇게 세 사람 외에 다른 누가 있던가?
그럴 리 없다. 내 정신은 이제 멀쩡하다. 그런 걸로 헷갈리지는 않아.
게다가 안에서 딱히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귀를 대보아도 한없이 고요한 상태였다.
“…어떻게 된 거야?”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새벽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문일 텐데. 그런 문이 갑자기 뜬금없이 잠기는 기이 현상이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야, 이것은 필시 연지의 장난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그 어린 여자애가 대체 무슨 수로 이 문을 잠글 수 있지? 통하는 곳이라곤 이 잠긴 문과, 안쪽의 작은 창문밖에는 없는데.
결국,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 나는 도로 거실로 나왔다. 그러나 베란다로 통하는 문만 열려 있을 뿐 그곳에 연지는 이미 없었다. 어디로 간 걸까 생각하는 사이에, 연지의 방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문 앞으로 다가가, 어째서인지 잠겨 있는 문고리를 덜컥덜컥 돌려댔다.
“이봐, 성연지. 왜 잠가놓은 거야? 역시 네 장난이 맞지?”
아무래도 내가 소리를 쳐서 당황한 모양인지, 연지는 머뭇거리다가 말을 더듬으면서 대답했다.
“아, 아니야! 난 단지 오빠가 먹는다고 해서… 역시 그런 건 안 된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무슨 소리야. 또 문은 왜 잠갔어? 어서 열어봐.”
“그게 그게…. 앗! 뭐, 뭐야?”
“?”
문을 두드리던 차에 갑자기 연지가 소리를 질렀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지?
“자, 잠깐. 거긴 안 돼 야옹아…! 기다려 봐!”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우당탕 난리를 치는 소리에 나는 방 안에 뭔가가 함께 있음을 깨달았다. 방문을 마구 두드렸지만 부질없는 짓 같아서, 이내 서랍에 있는 비상 열쇠를 꺼내 들었다. 열쇠를 구멍에 집어넣어 돌리자, 방문이 열리고 정리된 상황에서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은 연지가 눈에 보였다.
연지는 열린 창가를 바라보면서 멍하게, 아니 마치 멍하게 보이듯 가만히 앉아 몸을 떨면서, 급한 호흡으로 나를 불렀다.
“…오빠.”
“왜 이렇게 말썽이야, 갑자기? 너, 주말 아침이라서 심심하다는 핑계로 이런 장난을 치면….”
“아니, 그런 게 아니야.”
연지는 여전히 창가를, 바람이 들어오는 투명한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커튼이 있으면 하늘거릴 법한, 그러나 어딘가 익숙지 않고 평소보다 가까워진 듯한 하늘이었다. 공허하다기보다는 나무가 구름과 맞닿아 있어 평상시보다 꽉 차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의 배경 앞에서 연지는 입을 열었다.
공허한 눈빛으로 말했다.
“고양이가… 떨어졌어.”
나는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연지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고양이… 고양이라니,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여동생은 고개 한 번 까딱하지 않았다.
보고 있자니 아직도 숨소리가 급했다. 나는 어딘가 불안해하는 연지의 손을 꼭 잡아줬다. 그러자 연지는 숨을 한 번 크게 몰아쉬고, 그런 다음 내 눈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오빠가 데려온 고양이…. 베란다에 있던 고양이가 갑자기… 창가로 뛰어들었어. 아…. 그러니까 여기가… 13층. 12층인가…? 아무튼 높잖아. 무지 높잖아! 어떡해!”
여동생은 기어코 내 팔을 붙잡고 일어서지도 못하는 채로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을 글썽이며 좀처럼 내 팔을 놔주려 하질 않았다. 나는 어깨에 손을 얹어줬다.
고양이.
연지는 그렇게 말했다.
우리 집에 고양이가 있었다고…. 그리고 방금 창문으로 뛰어들었다고.
믿고 싶지 않은 말을 했다.
솔직히 믿기지도 않지만, 나는 연지의 얼굴을 봐서라도 되묻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았다. 연지의 말이 사실이라면 고양이는 조금 전 13층에서 떨어진 것이 되는 셈이다. 지금은 그걸 먼저 생각해야 할 때다.
아무리 고양이라도 13층 정도의 높이는 무리이니까. 다리가 부러졌거나, 혹은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연지의 몸을 이불로 감싸주고 냉큼 거실로 뛰어가 옷을 입었다. 그리고 곧장 현관 앞에서 신발을 신었다. 고양이가 간신히 숨이 붙어 있다는 가정하에 쉴 틈 없이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지 너는 그거 덮고 진정하고 있어. 오빠가 내려가 볼 거니까 창문 밖으로는 보지 말고.”
연지에게 그런 말을 남기고, 나는 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엘리베이터가 여간해서는 내려올 것 같지 않아 주저 없이 계단을 택했다. 두 칸으로 모자라 거의 한 번에 세 칸씩 건너뛰어 전력을 쏟아부었다.
숨까지 참아가며 조금의 사이도 없이 1층으로 내려가, 사람들 사이를 가로지르고 아파트 뒤편으로 향하자….
그곳엔 다 자란 풀과 군데군데 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그러나 잎이 부족하고 가지만 무성해 떨어지는 물체를 받아줄 순 없을 듯싶었다.
무엇보다 나무에는 어떤 흔적도 없었다.
바닥도 마찬가지였다.
피라든가 고양이, 둘 중 하나는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둘 다 없었다. 쓰러진 고양이도 없고 고양이의 상처로 말미암은 피도 보이지 않았다. 수풀 사이를 뒤져봐도 변한 점은 없었다.
붉은 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 이상했다.
“하…….”
또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었으니 쉽게 자리를 뜰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적어도 고양이가 살아 있다는 것에는 안심이 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고양이와 얽히고 있다는 생각만은 떨어지지가 않는다.
우연이라고 믿고 싶지만, 연지가 한 말을 떠올려보면 또 그렇지도 않다.
13층의 높이. 누구도 고양이를 데려오지는 않았고, 고양이는 내가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있었다. 그리고 연지와 함께 있던 방에서 난데없이 창문 밖으로 뛰어들어 어마어마한 높이에서 떨어졌다.
그 뒤부터는 보이지 않는다.
수직 낙하를 했음에 분명할 텐데도.
“…….”
결국, 알아내지 못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이불을 감싸고 있던 연지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연지가 한 말은 이거였다.
“오빠가 데려온 아이 아니었어?”
“내가 왜 말도 없이 고양이를 데려오겠냐. 절대로 아니야. 그보다 고양이가 있었던 건 확실한 거야?”
“나도 거짓말 아니야! 아침에 베란다에서 발견했단 말이야. 하얀 고양이였는데… 정말로 밖에 아무것도 없었어? 요만큼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지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아침부터 우리 집에 고양이는 있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연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모님께서 데려다 놓았을 리도 없다. 어제 내가 들어왔을 때 부모님 모두 계셨고, 잠도 내가 제일 늦게 잤으니 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양이는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말은 다했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베란다로 들어가 창문을 열었다. 보기만 해도 짜릿한 수직 풍경을 내려다봤다.
“설마 여기를 혼자 올라왔을까?”
내가 한 말이지만 참 정신 나간 말 같았다.
연지도 당연히 고개를 저었고, 입술을 삐죽 내밀어 잔뜩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으음…!” 하고 머리 아픈 듯 눈살을 찌푸린다.
“오빠야, 고양이가 하늘을 날 수 있을 리는 없겠지?”
“글쎄….”
하늘을 난다라.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그러면서도 대충 넘길 만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뭐라 명확한 해답을 내릴 수 없는 지금은 ‘하늘을 나는 고양이’ 같은 농담 아닌 농담이 차라리 믿어질 정도니까.
“아니, 아니. 하늘에 고양이는 없으니까 아마 없을 것 같아 오빠. 그러니까 그만둬, 설마 아직도 내 엉뚱한 질문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거야?”
나는 턱을 쳐들었다.
“아니, 그게 아냐.”
“그럼 왜 그런 표정을 지어? 아앗! 설마 아직도 고양이를 먹을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각오하는 게….”
“쉿. 그건 오해야. 지금은 조용히 해보라고. 부엌에서 소리가 들렸어.”
“소리?”
연지는 자기도 한번 들어봐야겠다는 듯 어깨를 축 늘이고 손바닥을 귀에 둘렀다.
나 역시 눈을 감고 신경을 소리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그럴 필요도 없었다. 소리는 너무나도 크게, 그리고 또렷하게 들려왔으니 말이다.
접시가 떨어지는 소리와 잠시 후 이어지는 고양이 울음소리. 이것만으로도 더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정말 무슨 소리가 들려.”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고양이가 더 있는 모양인데.”
“어쩌면 그 아이일지도 몰라.”
연지가 고개를 척 들었다.
“내가 한번 가볼게.”


02

생각했던 대로였다.
부엌으로 돌아간 우리를 맞은 것은 고양이 한 마리였다. 털이 하얀색인 그 고양이는 조리대 위에서 경계도 하지 않고 느슨하게 앉아 있었다. 제법 친하다고 생각했는지 연지가 먼저 다가가 똑같이 하얀 손을 내밀었다.
“착하지, 야옹아. 얌전히 있어야 돼. 나쁜 짓 하는 사람 아니야.”
고양이는 눈을 반쯤 감고 우리를 훑어보기만 할 뿐, 물러서지도 연지가 내민 손에 다가가지도 않았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연지의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너와 친하지 않은 모양인데. 아까 본 그 고양이 맞아?”
“응…. 아까는 손을 핥아줬는데 지금은 그러질 않네.”
“잠깐. 그럼 창가로 뛰어들어서 여기로 살아 돌아왔다는 말이 되는 거잖아?”
“그치만 정말 그 애가 맞아. 걔도 얘처럼 목에 주머니를 달고 있었단 말이야.”
“…….”
생각해보니 어제 내가 만난 고양이도 목에 주머니를 달고 있었다.
하얗고 방울이 달린 주머니. 털과 색깔이 똑같아서 언뜻 보면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 나도 방울 소리 때문에 알게 됐었으니까.
“혹시 그 주머니에, 집 주소라든가 주인의 전화번호 같은 게 적혀 있지는 않아? 저런 게 달린 걸 봐서는 분명 주인이 있다는 걸 텐데.”
“어디…. 내가 한번 살펴볼게.”
연지는 조금 전보다 팔을 더 길게 뻗어서 고양이의 턱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얼굴도 가까이 내밀어 고양이에게 거의 손 한 뼘 사이만큼이나 접근하더니 주머니를 살펴봤다. 고양이는 여전히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다.
“음. 그런 게 적혀 있지는 않아.”
“그럼 다른 건?”
연지는 주머니를 만져보기도 하고 일부러 벌려보기도 하면서 샅샅이 그곳을 뒤졌다. 그리고 잠시 후 나온 대답은 이거였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정말 그랬다.
고양이가 나를 의식하는 것 같아 처음에는 가까이 가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접근해보니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사람이 키우던 고양이는 맞는 듯했다. 다만 그 증거가 될 만한 정보는 보이지도 않았다. 이쯤 되면 슬슬 고양이에게 직접 물어보는 쪽이 더 효율적이지 않나 싶을 정도다.
“아니면 고양이를 밖에다 데려다 주면 알아서 집에 찾아가지 않을까? 가출한 아이는 보통 도로 찾아간댔어.”
연지가 천진하게 말했다.
“그래서 그 주인을 찾아 이 고양이가 하늘을 날 수 있는지라도 물어보자 이거야?”
“어차피 주인은 찾으려고 했으니까. 오빠가 물어보고 싶으면 덤으로 물어보든지.”
연지는 이제 고양이가 얌전하다는 걸 알았는지 그 아담한 아이를 품 안으로 쏙 끌어안았다. 그러다가 고양이와 얼굴을 맞비비면서 대뜸 내게 물었다.
“맞다. 고양이한테 줄 만한 먹이 혹시 있어? 아까 보니까 배고픈 것 같아서 옥수수 몇 알을 주기는 했는데.”
“그런 건 없어. 아무거나 주면 탈 날지도 모른다고.”
“그래도 뭐라도 줘야지. 옥수수는 잘 못 씹더라. 내가 직접 씹어다가 부드럽게 만들어줘야겠어.”
“하늘 날아서 오느라 목마르실 텐데 물이나 알아서 잡수시게 내버려두지.”
그렇게 말하자 연지는 나를 흘끗 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신경 쓰지 마. 내가 뭐라도 주고 싶어서 그래.”
그러더니 한쪽 팔로는 고양이를 받치고 다른 쪽 손으로 식탁에 있는 옥수수를 집어 들었다. 한 알을 물고 깨작깨작 씹어 바닥에 뱉어놓으니, 정말로 고양이가 알아서 바닥으로 내려와 그 낱알을 주워 먹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흐뭇했는지, 연지는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고양이에게 먹이를 먹였다.
“어때? 잘 먹지.”
“별로 더럽다는 생각은 못하고 먹는 것 같네….”
“그럼. 당연하지. 내가 얼마나 깔끔한 아이인데.”
‘내 안의 것은 모든 것이 깨끗해.’ 라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 같은 억양이었다.
연지는 그렇게 우쭐해서는 옥수수 한 알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고, 혀를 내밀어 타액이 묻은 그것을 두 손으로 집는 행위를 반복했다.
그리고 고양이는 그것을 그대로 주워 먹기만 했다. 이런 장면이 수 분간 이어지고, 내 표정은 점점 일그러졌다.
물론 연지야 자기가 씹던 거라 상관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옆에 있는 사람이 보기에는 조금 껄끄러운 것이 사실이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오빠, 표정이 이상하네. 고양이를 위해서 이 정도 해주는 것도 이상한 거야?”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순수한 여동생의 이미지에, 막상 이런 것을 접목해보니 신선했다고나 할까. 크게 신경 쓰는 부분은 아니다.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됐는지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볼 만하다.
“그런데 그 고양이, 목도 마르지 않을까?”
“글쎄. 오빠가 한번 물 좀 줘봐.”
나는 지켜보기만 하기 뭐해서, 결국 고양이를 위해 식수를 좀 따라다 주기로 했다.
그러려고 일어서서 냉장고 문을 열려고 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힘을 줘도 문이 열리지가 않았다.
안에서 잠긴 듯 끄떡도 안 했다.
아까의 욕실 문과… 마찬가지였다.
“이게 또… 왜 이래?”
“뭐가?”
연지가 뒤를 돌아봐 도리어 물었다.
그러나 나는 대답할 상황이 아니었다. 문이 안 열린다는 것을 연지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감도 잡히지 않았다. 설마 내 팔심이 갑자기 약해지기라도 한 것일까? 정말로 그렇게 느껴질 정도로, 냉장고 문은 위압적이었다.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오빠, 왜 그렇게 끙끙대? 거기 뭐라도 붙어 있어?”
“아니… 네가 일로 와서 이 문 좀 열어줘. 갑자기 머리가 아파서.”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정말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건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연지는 옥수수 세 알을 한꺼번에 씹어다 뱉어놓고는 내 옆에 와 얌전하게 섰다. 나를 미심쩍게 쳐다보더니, 잠시 후 아무 말 없이 냉장고 문을 잡고, 당겼다.
“어, 어라?”
반응은 같았다.
연지라고 다를 점은 없었다. 여동생은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체중을 실어 쭉 잡아당겨 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나만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열리지 않네…. 오빠가 장난친 거야?”
“이런 장난이나 칠 나이는 지나도 너무 지났어. 아니, 오히려 이런 장난을 치기에는 너무 어릴지도 모르겠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연지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집히는 구석이 있는지 입을 열었다.
“냉장고 문만 이런 거라면, 아마 전기 같은 것에 문제가 있다거나….”
“아니야. 욕실도 이랬다고. 설마 또 다른 데도 이러려나?”
의심하면서도 왠지 그럴 거란 확신이 들었다. 연지와 나는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 각자 반대 방향으로 서서 나는 부엌에 달린 다용도실을, 연지는 내 방의 문고리를 잡았다.
내가 먼저 당겨봤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 아니었다. 열리지 않았다. 나는 연지 쪽으로 다가갔다.
“잠깐 오빠…. 이쪽은 살짝 무거운 정도야. 세게 밀면 열릴 듯 말 듯해.”
“그럼 둘이서 한번 밀어보….”
그때였다. 옥수수를 먹던 고양이가, 나와 연지 사이로 뛰어들어 우리 둘을 물러서게 하더니 문 앞에서 “야아옹.” 하고 울었다. 우리가 문을 열려고 하자 그것을 방해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한 가지 확신이 들었다.
“아~ 알았다. 네 녀석이 범인이구나!”
내가 고양이를 지목하며 말하자, 연지가 옆에서 곧장 반론을 제기했다.
“바보잖아 오빠! 쟨 고양이일 뿐이야. 저 작은 아이가 뭘 하겠어?”
나도 지지 않고 말했다.
“그러는 너야말로 바보라고. 넌 아까부터 의심은 하나도 안 했지? 세상에 어떤 고양이가 13층에서 떨어지고도 살아 돌아오겠냐? 그것도 저렇게 바보같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평하게.”
“그야… 움….”
“그리고 저걸 보라고.”
이번에는 손가락으로 아까 조금 열린 문틈을 가리켰다.
나도 거의 방금 안 사실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 문틈 안에는 반짝이는 실 같은 것이 마치 거미줄처럼 쳐져서는 강력한 끈끈이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게 보인다. 그렇게 문과 문틀 사이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저것 때문에… 이러는 거야?”
“아마 그렇겠지.”
욕실과 냉장고 문이 열리지 않았던 것도 다 저 끈끈이 탓임이 틀림없다.
그렇게 보자면, 이쪽은 아마 저 끈끈이가 쳐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무르익지 않아서 조금이라도 열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또 이것 말고도 더 있어. 저 고양이는 내가 어제도 봤던 녀석이야. 분명 뭔가 알면 싱거워지는 비밀이 있을 거라고. 내 말이 맞지? 이 수상한 고양이 녀석!”
나는 고양이를 손가락으로 지목하며 크게 소리쳤다.
내가 말한 비밀이라 함은, 어째서 고양이가 창밖으로 떨어졌는데도 부엌으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느냐와, 그리고 저 끈끈이를 말하는 거다.
저게 고양이의 어디서 나왔는지, 조그마할 뿐인 고양이가 언제 어떻게 저것을 설치했는지.
알아내서 좋을 게 뭐 있겠느냐만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는 낫다.
평범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니까.
“…잠깐 기다려 오빠. 고양이가 지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뭐라고?”
연지의 말에 놀라 고양이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고양이는 서 있는 상태 그대로 고개만 푹 숙여, 얼굴을 집어넣고 주머니 속을 뒤지고 있었다. 그 움직임에 따라 방울 소리가 딸랑딸랑하고 울린다.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휴문의 이용약관 개인정보보호정책
주소 : 인천광역시 부평구 평천로 132 (청천동) TEL : 032-505-2973 FAX : 032-505-2982 email : novelengine@naver.com
 
Copyright 2011 NOVEL ENGIN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