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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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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대괴도의 저주(가제)
글쓴이: 케이투
작성일: 12-07-31 23:29 조회: 2,239 추천: 0 비추천: 0

4호선 전철을 타고 안산시에 있는 중앙역에서 내리면 번화가가 보인다. 번화가라고는 해도 서울에 비하면 많이 지저분하지만 대형마트가 두개나 있고 영화관, 식당, 술집, 노래방 같은 것들이 늘어있으니 번화가라고 할 만하다. 역을 중심으로 아파트 단지나 단독주택가, 초, 중, 고등학교 등이 대략 30분 정도 걸으면 도착할 만큼 배치되어있다.
지금 내가 향하고 있는 성산고도 마찬가지다. 정식명칭 '사립 성산 탐정 고등학교' 줄여서 성산고, 성탐고 등으로 불리는 고등학교는 예전 대도둑과 싸웠던 전설의 명탐정 유성산이 설립한 사립 고등학교다.
세상이 멸망할 거라며 떠들석 했던 10년 전,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대도둑. 자칭 '괴도 바로미'는 마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도둑이었다.
부자들의 집에 예고장을 보내어 수많은 포위망을 뚫고 돈이나 각종 보석 등을 훔쳐낸다. 그래놓고 훔친 돈이나 보석등은 가난한 사람들의 집 앞에 놓고가는 둥.
마치 현대에 나타난 홍길동 같은 이야기지만, 웃을 수도 없는게 소문으로는 그를 쫓던 경찰들에게 싸이코키네시스를 써서 날려버렸다던가 순간이동을 하는 걸 봤다던가 하는 이야기마저 있다.
그런 그를 쫓던 것이 탐정 유성산으로 그는 몇 번이나 대도둑을 아슬아슬하게 몰아 넣었고 마침내 경찰과 힘을 합쳐 대도둑을 포위하는데에 성공했다. 포위당한 순간 대도둑은 유성산에게 패배를 인정하더니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뒤로 그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그의 행동에 반한 몇몇 이들이 스스로를 괴도라 칭하며 나타났고, 이런 괴도 붐에 대응하여 4년 전에 유성산은 탐정을 길러내는 학교를 설립했는데 그것이 성산고다.
뭐 괴도 붐이라고 해도 성산고가 설립될 쯤에는 어느정도 잠잠해지기도 했고, 탐정을 길러낸다기보단 그냥 유명한 사립고 같은 느낌이 되버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당시엔 탐정이란 직업이 꽤 인기 있었다. 괴도붐의 대항하는 그런 느낌이었나, 아무튼 탐정을 키워낸다는 말에 혹한 많은 청소년들이 성산고에 입학했고 그런 청소년이 커서 된 것이 바로 나다.
아 참. 소개가 늦었다. 내 이름은 반달. 성산고의 졸업생으로 스스로 말하기도 뭐하지만 탐정 겸 대학생이다.
뭐 탐정이라곤 해도 특별한 건 없다. 가끔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시시한 일이나 남편의 뒷조사를 해달라는 씁쓸한 의뢰들 뿐이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본업은 학생이라 탐정일은 거의 아르바이트라는 느낌으로 하고 있다.
학교에선 꽤 신기한지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지만 특별히 대답해줄 게 없는지라 매번 난감할 따름이다.
이렇게 써놓고보니 정말 곤란한 직업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도 탐정을 꿈꾸는 아이를 만나면 이런 꿈도 없는 현실을 주구절절 읊어주고 싶을 정도다.
아무튼 그런 꿈도 희망도 없는 탐정 일을 하는 내가 모교인 성산고를 향하고 있는 것은 의뢰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10년 전, 현대에 나타난 전설의 대도둑이 남긴 저주에 대한 의뢰.
그 저주는 몇몇 이들만 알고 있는 비밀이다. 귀찮은 일이 될 거 같단 생각을 하며 모교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학교에 도착한 건 대충 12시 쯤으로 4교시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교문에 들어서자 곧바로 핸드폰이 짧게 울리더니 학생상담실로 오라는 문자메세지가 와있었다.
학생상담실로 가면서 영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기억하기론 학생상담실은 주로 여러가지로 상담이 필요한 불성실한 학생들이 자주 불려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젠 고등학생도 아니고 애초에 성실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나로써는 불려가기가 왠지 억울한 곳이다.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하며 학생상담실에 도착했다. 별 생각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헉!"
우선 문을 열자 엄청난 향이 흘러나왔다. 꽃향기? 그것보다도 인공적으로 만든 방향제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상담실 내부는 너무나도 화사하게 꾸며져 있었다. 좁은 공간 곳곳에 레이스가 달린 천이 달려있고 벽엔 흰 바탕의 분홍색의 꽃무늬 벽지가 도배되어 있었다. 비싸보이는 테이블 위에 비싸보이는 책상보가 펼쳐있었고 그 양 옆엔 비싸보이는 큰 소파 두 개가 각각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었다.
뭐라고 해야하나,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상담실이라기보단 고급 카페?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 상상이 저절로 떠올랐다.
"거기 서서 뭐해?"
문득 누군가 옆에서 내게 말을 걸었다. 돌아보니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여자-유수원의 모습이 있었다.
"아 그게.. 아무도 없길래 여기가 맞나 싶어서."
그말에 그녀가 아..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너한테 전화하고 바로 온 거라.. 아무튼 빨리 들어가자."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쫓아 화려한 상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찬장에서 비싸보이는 티세트를 꺼내며 전기 스토프에 물을 받아 끓이기 시작했다.
"커피랑 홍차, 어느 쪽으로 할래?"
"커피."
얼떨결에 그렇게 대답했지만 사실 별로 커피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단지 커피랑 홍차라 하면 그나마 익숙한 쪽이 커피라서 그렇게 대답했을 뿐이다.
잠시 뒤, 그녀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커피를 따르더니 컵 두 개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뜨거운 커피향이 상담실 내부에 퍼졌다.
"..왜 아직도 서있어?"
이상하다는 듯 물어보는 그녀에게 소파가 비싸보여서 부담됬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유수원은 나와 같이 작년에 성산고를 졸업한 동창생이다.
여자애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외모에 기품있는 행동은 부잣집 아가씨같은 인상을 주었는데 실제로 그녀는 이 학교의 설립자인 탐정 유성산의 조카딸이다.
탐정의 조카라서 그런건지 그녀도 학교의 탐정수업을 들었었는데 우연히도 첫 수업을 들을 때 그녀의 옆에 앉았단 인연으로 지금까지 그럭저럭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
그렇다곤 해도 솔직히 거북하다. 뭐라고 해야할까, 부담된다고 해야하나. 나름 친하게 지내긴 했지만 책에서 그대로 꺼내온 듯한 아가씨는 평범한 남학생에게 있어서 두근거림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실의 벽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뭐 지금이야 괜찮지만 당시엔 그런 피의식도 있어서 어느정도 선을 긋고 지낸 감도 있다.
"...."
그래서 그런걸까. 오랫만에 만났는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아니, 말을 꺼내기가 왠지 어색한 분위기다. 1년 만에 본 그녀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른스러워져있고, 마침 상담실 내부도 너무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어서 괜히 긴장이 되었다.
"1년 만이네."
결국 말을 먼저 꺼낸 것은 수원이었다.
"그러게.. 이렇게 만나는 것도 1년 만이구나."
졸업할 무렵 그녀가 학교에 남아 교직원으로 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그녀로부터 학교의 의뢰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땐 별로 놀라진 않았다. 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학교에서 일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애초에 그녀는 선생으로 일하는 것도 아니니..
"여자친구 생겼어?"
"..그렇게 보여?"
"아니."
딱 잘라 말하는 걸 보니 조금 씁쓸했다.
"뭐 그래도 잘 지내나봐."
"뭐 그렇지. 탐정 일은 거의 없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평범한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어."
"그래."
거기까지 말하고 또다시 대화가 끊어졌다. 그녀는 그저 묵묵히 커피를 마실 뿐이었고, 나도 침묵을 견디지 못해서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나랑 대화하기 싫어?"
"우풉."
마시던 커피를 가볍게 뿜었다.
"아아, 비싸보이는 식탁보에 얼룩이..!"
"그런 건 상관없어. 그것보다도 지금 내 말.."
"아? 응. 물론."
조금 고압적으로 된 그녀를 제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듣고 있어. 응응.
"1년 만에 만나는 건데 아까부터 아무 말도 안하고 있어."
"아니.. 그 뭐냐. 너무 오랫만이라서.."
"오랫만이니까 더더욱 할 말이 있는 거잖아."
그렇게 말은 했지만 딱히 짜증이 난 건 아닌 듯 했다. 나를 보면서 살짝 웃는 것이 마치 날 시험하고 있다고 해야하나. 반응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미안. 솔직히 상담실이 생각보다 너무 화려해서 나도 모르게 긴장됬나봐."
"그래? 난 이정도가 딱 적당하다고 생각했는데.."
"..못 본 사이에 씀씀이가 화려해졌네."
"후후. 탐정이 되도 그 소심함은 변하지 않았구나. 조금 그립네."
그러면서 그녀는 눈을 감고 으음- 하며 즐거운 듯한 미소를 지었다. 남의 소심함을 가지고 멋대로 추억에 빠지다니..
"뭐 아무래도 좋지만 슬슬 본론에 들어가줬으면 하는데. 설마 불러놓고 실컷 놀리기만 하다 보내려는 건 아니지?"
"..1년 만에 만난 친구에게 안부조차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 일 이야기라니 그런 섭섭한 탐정에게 시킬 일은 없다고 생각해."
여전히 부드럽게 웃으면서 내게 말하는 그녀. 이 녀석. 설마 진짜로 화난 건가?
그렇다면 정말 누가 누구보고 소심하다고 하는 건지..
"미안하다니까. 째째하게 그러지 말고 좀 넘어가줘. 이제 어른이잖아? 예쁘게 화장까지 했으면서.."
"화장 따위 안해도 외모엔 자신있는데.."
"아니 그런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말하면 코웃음 쳤겠지만 이 녀석이 말하니 객관적인 평가로 들린다. 아니, 아마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내린 평가가 맞겠지만.
"너.. 예전엔 화장같은 거 안한다하지 않았냐? 싫어했잖아."
"별로.. 이제 어른이니까. 화장 정도는 해야지."
조금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하며 그녀가 말했다.
그런가. 그렇게 싫어했으면서 지금은 이렇게 꾸미다니 역시 시간이 지나면 다들 변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안녕하세요오오오오오오오오오-!!"
갑자기 상담실 문이 힘차게 열리더니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저, 저, 4교시 끝날 무렵에 상담실로 오라고 해서, 그래서 왔는데요!"
뭐지, 이 쓸때없이 힘찬 얘는..
키는 엄청 작다. 내 어깨보다도 밑이다. 한 150cm 쯤 될까? 어린애 같은 앳된 얼굴에 어린애 같은 양갈래머리를 한 어린 여자애였다.
물론 내가 양갈래머리는 꼭 어린애만의 것이다-같은 치우친 생각을 가진 건 아니고 전체적으로 인상이 어린애란 것이다. 아마 이 얘가 긴 생머리를 하고 있었다면 어린애같은 긴 생머리를 하고 있다고 했겠지. 일단 성산고의 교복을 입고 있는 걸 보면 고등학생인 거 같긴 한데..
"이제야 왔군요. 강나루 학생. 상담실 내에선 목소리를 낮추세요."
"네에-!"
수원이가 여자애를 조심스럽게 타이르자 여자애가 대답했다. 참 힘이 넘치는 아이였다. 이름이 강나루 인가?
그나저나 수원이 녀석.. 학생들을 상대할 때 존댓말을 쓰는구나. 예상대로라면 예상대로인가.
"이제 사람도 모였으니 본론에 들어가지요."
수원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학생 앞에선 나에게도 존대를 할 생각인 모양이다. 뭐 어울리니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어라? 선생님. 갑자기 왜 존댓말을 하셔요? 평소엔 안그러셨으면서!"
"..윽."
"그러고보니 왠일로 화장까지 하셨네요? 평소엔 안그러셨으면서!"
"강나루 학생. 조용히하세요?"
"네에-!"
....
이건 무슨 콩트인가?
웃음이 나올 거 같아 손으로 입을 틀어막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그건가? 수원이가 지금 내 앞에서 고상한 척 학생에게 존댓말을 쓰다가 망신당한 거야?
"풉.."
정신을 차리니 수원이가 이쪽을 흘겨보고 있었다. 얼굴이 조금 빨개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 안되, 이럴 땐 친구로써 수원이가 민망하지 않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넘어가야..
"근데 선생님, 상담실을 언제 이렇게 꾸미신 거에요? 어제까지만해도 지저분했더으아아아아아아아"
"강나루. 조용히 안할래?"
"아아아아자모해써여-!!"
웃는 얼굴로 여학생의 얼굴을 붙잡고 잡아당기는 수원이의 모습을 보니 내 안에 있던 그녀의 이미지가 무너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본의 아니게 긴 시간을 기다리게해서 미안하구나, 호적수여.
허나 어쩔 수 없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그대와의 승부를 계속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그대가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때면 벌써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나와 그대의 새로운 대결이 시작됬음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그대의 앞에서 사라진 후, 나는 죽는 순간까지 그대와의 승부를 계속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나는 이 땅에 어떤 주술을 거는 것이 성공했다.
그대가 이 편지를 읽는 시점부터 108개의 사건이 일정 기간을 두고 차례차례 일어날 것이다.
그것은 죽은 나의 의지가 일으킨 것이나 나와는 다른 존재임으로 그대는 놀라지 않길 바란다.
사건은 생전 내가 늘 그랬듯이 도난 사건이다. 살인은 절대 일으키지 않는다. 그것은 내 미학에 반한다.
도난 당한 물건이 있는 마을이 속한 시에 사는 주민 중에 범인이 있다.
범인에겐 내 의지가 들어간 인격이 생성되고 본래의 인격은 자신이 범인임을 자각하지 못한다.
범인의 인격은 생전 내가 그랬듯이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허나 걱정마라. 그것은 내가 사용했던 것들 중 하나의 능력밖에 사용할 수 없다.
훔치는 물건은 그 시 내에서 가장 가치있는 물건이다. 금전적인 가치일 수도, 그 밖일 수도 있으나 잘 판단하길 바란다.
그대에게 어떤 형태로든 시작의 알림이 전해지는 순간부터 시작되고, 범인이 물건을 훔쳐 15일 동안 잡히지 않으면 나의 승리. 물건을 훔치지 못하거나 15일 내에 잡힌다면 그대의 승리다.
범인이 달아나면 그가 가진 본래의 인격은 사라지게 된다. 새로운 괴도의 탄생이 되는 샘이지. 허나 걱정마라. 범인을 잡으면 그 인격은 사라질 테니까.
이건 게임이다.
자네와 나의, 더 넓게 보면 괴도와 탐정의 게임이다. 서로의 지혜와 힘, 그 밖의 모든 것을 겨루는 아름다운 승부를 계속하기 위해 만들어낸 나의 최후의 걸작이다.
이걸로 나는 좀 더 즐길 수 있다. 그대와의 승부를 말이다.'

10년 전, 괴도 바로미는 탐정 유성산에게 패배를 인정하고 모습을 감추었다. 세간에 알려진 바로는 그러하다.
허나 그 이야기엔 사실 감춰진 부분이 존재한다. 아니, 정확히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라고 해야하나.
"이것이 5년 전 큰아버지께 도착한 편지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수원이가 내민 종이엔 저러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여기 적힌 내용은 사실입니다. 실제로 지금까지 54건의 사건이 일어났으니까요."
54건의 사건이 이 이야기를 증명하고 있다는 건가.
아니, 애초에 나는 그 54건의 사건 중 하나에 휘말렸었기에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기묘한 이야기네요."
이야기를 듣고 어린애..가 아니라 강나루라는 이름의 여고생이 말했다.
"탐정님에 대한 괴도의 집착이 너무 지나친 거 같아요. 반하기라도 한 걸까요?"
"괴도가 게이라는 거야?"
"아뇨, 그게 꼭 남자라는 법도 없잖아요?"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걸 보니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긴, 대도둑에 대해선 밝혀진 것이 거의 없다. 그가 남자인지도, 여자인지도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확실히 어린 여고생의 말대로 괴도가 탐정에게 반한 걸지도 모르겠다.
일단 편지에 적힌 말투는 노인네 같지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지요."
수원이가 이쪽을 노려보며 말했다. 왠지, 아까부터 계속 고압적이다. 내가 너무 오랫동안 웃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몇 일 전, 큰아버지께 '알림'이 왔습니다. 어떤 형태인지는 구지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아무튼 중요한 건 사건이 이미 시작됬다는 거지요."
"범인이 훔쳐갈 물건은 알아낸 거야?"
"네. 여러가지로 추측한 결과 어떤 물건을 노리는지는 알아냈습니다."
수원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미 도둑 맞아 버렸지만요."
"도둑 맞아?"
"네. 저희가 알아낸 바로 다음 날에."
일이 귀찮게 됬다. 물건이 무사하다면 지키기만 하면 되는 건데 이미 도둑맞았다면..
"도둑맞은 물건이 뭐지?"
"000 박물관에 전시된 000 입니다."
"000? 그게 뭐야?"
"고대 유물입니다. 자세히 밝혀진 것 없는 물건입니다만, 그 가치를 말하자면.. 글쎄요, 돈으로는 환산하기 힘든 귀중한 자료라고만 말해두죠."
과연, 그 도시에서 가장 가치있는 물건이라 할 만 하다.
"에에에에에에에!?"
갑자기 작은 여고생- 강나루가 놀란 듯 큰 소리를 냈다.
"000 박물관의 000 라면, 어제 저희 학년이 가서 본 그거잖아요!?"
"네. 맞습니다."
어제 봤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일까.
내 의문에 대답하듯 수원이가 설명했다.
"어제 000 박물관엔 저희 학교 1학년 생들이 현장학습을 갔었습니다. 아마 나루 학생은 그때 000를 봤었을 겁니다."
"네! 정말 미끌미끌한 물건이었어요!"
작은 여고생이 힘차게 웃으며 말했다. 보면 볼 수록 활기찬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까 그 때 경비원 아저씨들이 유난히 많이 보였던 거 같았는데 그게 그래서 그랬던 거였군요!"
도둑맞기 바로 전 날에 물건을 파악했다면서 바로 다음 날 경비를 강화한 건가? 생각보다 대체가 빠른 편이다.
"아뇨, 그 날 경비가 삼엄했던 건 그 때문이 아닙니다. 애초에 괴도의 저주같은 오컬트적인 이유로 경찰을 움직이게 할 순 없으니까요."
"그것도 그렇군."
"그 날 경비가 유난히 많았던 건 이것과는 다른 이유입니다."
다른 이유? 또 뭐가 있다는 건가?
"그 전 날, 괴도 xx로부터 000를 훔쳐간다는 예고장이 왔었으니까요."
....
괴도 xx(더블액스)..란 말이지.
"괴도 xx가 뭐에요?"
여자애가 처음 듣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수원이에게 물었다.
"괴도 xx는 3년 전부터 활동을 시작한 도둑입니다. 그 수법은 흡사 괴도 바로미과 유사한 꽤 골치아픈 도둑이죠."
"확실히 골치아픈 녀석이긴 하지."
고개를 끄덕이며 수원이의 말에 동의하자 갑자기 발에 아픔이 느껴졌다. 수원이가 내 발을 밟은 것이다.
"아악!"
"탐정님께선 궁금하신 거 외엔 잡담은 하지 말아주시지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나를 노려보았다. 역시 아까 웃은 거 때문에 화가 난 건가. 그나저나 정말 아프군.
"어째 타이밍이 좋네요. 마침 저주의 대상이 된 물건을 괴도 바로미과 비슷한 도둑이 노린다는게."
여자애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단순히 활기차기만 한 게 아니라 나름 날카로운 점도 있다.
"괴도 xx 는 늘 그러니까요. 어떻게 된 건지 늘 '저주의 대상이 된 물건'만을 노리고 있습니다."
"엑. 그거 이상하잖아요? 매번 그런 우연이.."
"그 말대로 입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이 저주에 대해 아는 것은 제 큰아버지를 비롯한 이 학교의 몇몇, 경찰 내의 몇몇, 그리고 범인 뿐입니다."
"범인.. 그렇다면 괴도 xx 라는 건 설마.."
"저주로 나타난 범인들이 스스로를 괴도 xx 라고 칭하고 있다.. 라는 견해도 생각할 수 있겠죠.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요."
아무튼, 하고 수원이가 나를 쳐다보았다.
"짐작하셨겠지만, 탐정님께선 이 사건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이것은 저희 학교 측에서 하는 의뢰에요."
뭐 그 말대로 짐작이야 했지만..
"헌데 원래 이 저주는 스승님.. 유성산 탐정님이 하는 거 아니었나?"
"큰아버지께선 연세가 있으시니까요. 이제 슬슬 물러나실 때가 되셨다고 요전에 말씀하셨어요."
"그럼 네가 하면 되잖아? 너라면 스승님의 뒤를 이을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저에겐 따로 부여 된 역할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까지 말하고 그녀는 손에 컵을 들었다.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내려놓으며 그녀는 말을 이었다.
"당신은 현 졸업생 중 가장 뛰어났고, 당신이라면 이 일을 맡길 수 있다고 큰아버지가 말하셨어요. 물론 그건 저도 동의하고요."
"허허."
이거 참. 쑥쓰러운 소리를 들어버렸군. 나도 모르게 손으로 뒤통수를 긁었다.
"굉장해..!"
거기에 더해 옆에서 활기찬 여고생이 눈을 빛내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탐정님의 제자에! 유탐정님과 수원쌤에게 인정받고! 현 졸업생 중에 가장 뛰어나신 분이라고요!?"
"아니 뭐, 일단 그렇다고는 하는데.."
"우와, 굉장해요! 선배님! 선배님의 성함이 뭔가요!? 아니, 성함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제 이름은 강나루에요! 부디 나루라고 불러주세요! 그리고 부디 사부로 모시게 해주세요!"
"아니 갑자기 그렇게 말을 해도.."
"뭐 상관없지 않을까요? 강나루 학생은 뛰어난 인재니까요. 이곳에 부른 것도 탐정님의 조수로 일하게 할 생각으로 그런 거니까요."
"그런 거였어?"
어쩐지, 아까부터 얘가 왜 여기 있나 싶었는데 그런 거였군. 뭐 활기차서 좋기야 하다만..
"와아! 와아! 정말인가요? 제가 스승님의 조수로 일한다고요? 힘낼게요! 저, 반드시 도움이 되겠습니다!"
..너무 활기찬 것도 부담스럽구나. 아니, 단순히 내가 너무 가라 앉은 걸까.
"아무튼, 강나루 학생은 이제 돌아가세요. 점심 시간이 끝나기 전에 식사는 해야하잖아요?"
"네! 그럼 이만 갈게요오!!!!"
그렇게 말하고 강나루 학생.. 나루는 그대로 상담실을 뛰쳐나갔다. 쿵-하고 문닫는 소리가 울리고 동시에 상담실 내에 정적이 왔다.
"정말, 활기찬 애네."
"그러게 말이지."
휴우, 하고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수원이도 나랑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나루에게 지치는 건 나만이 아닌 듯 하다.
"의뢰는 받아드릴께. 너랑 스승님이 맡기셨다면 싫어도 어쩔 수 없지."
"그래준다니 고맙네. 보수는 네 통장 계좌로 들어갈 거야."
수원이가 불러준 보수는 나쁘지 않은 액수였다. 나에겐 필요없을 정도로 많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큰 일을 하는 거니 이 정도는 받는게 맞는 걸까.
"그래. 그럼 슬슬 돌아갈까."
볼 일도 끝났으니 오래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다. 의뢰를 받아드린 이상 빨리 가서 일을 해야하기도 하고, 일단 집에 가서 느긋히 생각을 정리해볼까.
"잠깐 기다려."
"응?"
일어서려는 나를 갑자기 수원이가 불러세웠다.
"선금은 받고가야지. 조사하는데에 이런저런 쓸 곳이 있을 거 아니야?"
"그것도 그렇네. 깜빡했군."
사실 선금같은 건 받을 필요도 없지만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도 없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돈은 많을 수록 좋으니까.
"그런데 조금 곤란한 일이 있어."
곤란한 일?
"내가 깜빡하고 선금을 집에 두고 왔거든. 가질러 가야될 거 같은데.."
"뭐 상관없잖아? 어차피 너네 집 학교에서 가까우니까."
"응. 그렇긴 하지.. 그럼 이렇게 된 거 같이 가질러 갈래?"
"그러지 뭐."
갑작스럽게 찾아가는게 되지만 뭐 괜찮겠지. 수원이네 부모님을 뵈는 것도 1년 만인가? 오랫만에 가서 인사드리는 것도 괜찮겠네.
"음, 마침 점심시간이니까 가는 김에 우리 집에서 밥이라도 먹고 갈래?"
"괜찮아? 미리 연락도 안했는데 갑자기 찾아가서 밥까지 얻어먹는 건 좀.."
"상관없어. 이미 준비해놨으니까."
마치 처음부터 나를 집에 데려올 생각인 것처럼 말하는군.
"그래? 그럼 신세 좀 질게."
"응. 얼마든지."
그렇게 나는 수원이의 뒤를 쫓아 상담실을 나섰다.
계속 그녀의 뒤를 쫓기만 해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뭐 아무래도 상관없으려나?

수원이네 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내가 간 곳은 경찰서다. 안산 시청 옆에 위치한 그 경찰서에서 나는 누군가와 만나기로 약속을 잡아놨었다.
"어, 왔나?"
경찰서 입구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검은색의 여성용 정장과 치마라는 단정한 복장을 했음에도 큰 키와 씩씩한 표정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그녀가 단순한 직장 여성이란 생각을 주지 않았다.
"오랫만이에요. 상록 선배."
"그래. 한 2년 만이지?"
그녀의 이름은 최상록. 나보다 한 살 많은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에 알고 지내던 친한 선배다. 졸업 후 곧바로 형사가 됬다는 말은 들었을 땐 '형사라는 직업이 보통 고등학교 졸업 후에 바로 될 수 있는 직업이었나?'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좀 전에 만난 수원이도 졸업하자마자 학교의 교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현직 탐정이다.
의외로 찾아보면 주위에 이런 경우가 많을 지도 모른다.
"부담되는 일을 맡았네? 도와줄테니까 뭐든 말만 하라고."
"고마워요."
"뭘, 이게 내 일인데."
그렇게 말하는 선배가 너무 듬직하게 느껴졌다. 키가 커서 그런 걸까? 선배는 175cm 라는 여자치곤 큰 신장을 가졌는데(참고로 내 키는 174cm. 미세하게 선배보다 작다.) 꼭 키를 떠나서 이 선배는 원래부터 듬직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다.
나보다 키가 크니까 의지가 된다니, 그런 건 절대로 아니다.
"그나저나 선배, 안이 시끄러워 보이는데 무슨 일 있나요?"
닫혀있는 건물 입구 안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사람이 떠드는 소리도 들리고, 쉬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도 말이다. 얼마나 소란스럽냐면 닫힌 문이 자꾸 들썩거리는게 언젠가 폭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선배는 닫힌 문 쪽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뭐긴, 도난 사건 때문이지. 그런 귀한 물건이 도둑맞았으니 난리도 아니야."
귀한 물건이라, 솔직히 별로 귀하다고는 생각되진 않는데 말이지.
"저런 분위기에 있으면 머리 아프다니까.. 마침 네가 온다기에 머리도 식힐 겸 나왔지. 에휴.."
선배가 정말로 힘빠진다는 듯이 과장된 큰 한숨을 쉬었다. 근데 선배는 알고 있을까? 한숨을 쉬면서도 웃고 있다. 에너지가 너무 넘쳐서 내겐 도저히 지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 그렇군요."
일단 말로는 동의를 했다.
"저 안에선 대화하기도 힘들 것 같네요."
"흠, 뭐 그렇지."
지극히 당연하다는 듯, 선배가 내 말에 끄덕였다.
"그러니까 안에 들어가지 말고 밖에 있도록 하자."
....
이 인간이?
"..선배, 농땡이 부리면 안됩니다."
예전엔 그렇게나 성실했던 선배가 이젠 사라진 모양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듬직했던 선배가 이젠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수원이도 그렇고 불과 2년 사이에 사람이 참 많이도 바뀌는구나.
"뭐라고?"
허나 안바뀌는 것도 있나보다.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농땡이라니?"
"서, 선배?"
갑작스럽게 바뀐 선배의 분위기에 나는 당황했다.
"사람에겐 각자 주어진 역할이 있고, 난 그걸 제대로 수행하고 있어. 적어도 너랑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다는 시점에선 말이지!"
"네, 네에.."
선배에 기백에 눌린 나는 그렇게 긍정할 수 밖에 없었다. 게을러지긴 했어도 선배는 선배였다. 쉽게 달아오르는 성격 만큼은 옛날 그대로다.
허나 선배의 말은 분명 일리가 있다. 적어도 선배가 나를 상대하는 이상은 그녀는 제대로 맡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순순히 사과했다.
"미안해요, 선배. 제가 말을 잘못했네요."
그러자 선배가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면 됬다. 그럼 갈까?"
그렇게 말한 선배는 그대로 내 손을 붙잡고 걷기 시작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신세가..
"..잠깐, 어딜 가시는 겁니까?"
"카페간다."
카페? cafe? 그 비싼 커피를 파는 그 곳?
도대체 어떻게하면 방금하던 대화에서 카페를 간다는 걸로 이어질 수 있는 거지.
어떻게 되먹은 대화의 흐름이냐.
"너는 나에게 들을 이야기가 있어. 보통이라면 경찰서 내에서 했겠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저렇게 난장판이라서 말이야."
나를 끌고가는 선배가 내 생각을 읽은 것 마냥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오랫만에 만난 반가운 후배를 밖에 세워두는 건 내가 용납을 못한단 말이지."
말하는 동안 선배는 내 쪽을 전혀 바라보지 않은 채 걸어가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뒤통수밖에 볼 수 없었다.
"근데 마침 이 근처에 꽤 괜찮은 카페가 있단 말이야? 거기라면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딱 좋다고 생각되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어떠냐고 자시고 이미 끌고 가고 있잖아!
"에휴.. 맘대로 하세요. 전 상관없으니까."
한숨을 쉬며 선배의 말에 끄덕였다. 선배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니까. 사건의 내용을 듣는데는 꽤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차근차근 잘 새겨둬야하는 점도 있다.
그런 점에서 아까같은 분위기의 경찰서는 안된다. 선배의 말대로 카페라면 이야기를 하는데 딱 적당한 곳일 것이다.
"그래? 그럼 가서 뭘 먹지? 거기 메뉴 중엔 분명 맛있는게.."
신이나서 떠들기 시작하는 선배.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아서 무슨 표정을 짓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 뒤통수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농땡이잖아.

사건이 일어난 건 4월 23일 월요일, 즉 어제였다고 한다.
방범카메라를 보니 오후 3시 경, 박물관 관장 김씨가 직원 한 명을 데리고 000가 보관된 방에 들어가서 갖고 나가는 것이 찍혀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다른 직원들에게 물어본 결과 그 때 김씨가 물건을 더 안전한 곳에 옮기기로 했다며 물건을 들고 어디론가 가버렸다고 한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난 김씨에게 직원들이 어떻게 된 일인지 묻자 김씨는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실제로 그는 그 시간, 당일 물건을 훔치겠다고 예고장을 보낸 괴도 XX에 대한 대책을 어느 아름다운 여형사(라고 선배가 말했다.)와 의논 중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뒤로 000는 종적을 감추었다.
"000가 보관된 방 문은 2중의 최신 기계 보안 장치가 되어 있어."
첫번째는 ID카드다. 기계가 ID카드를 인식하면 겉의 문이 열려서 방의 내부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특수한 방탄 유리로 되어있는 그 벽은 전혀 뚫을 수 없다, 라고는 못하지만 어지간히 튼튼해서 적어도 경비원들이 달려올 때 까지는 충분히 버틸만한 강도다. ID카드는 직원들에게만 배급된 것으로 돌아다니면서 수시로 물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엔 지문 인식 장치가 있다. 센서가 지문을 인식하면 내부의 유리벽까지 완전히 열려서 안에 들어가 물건을 가져나올 수 있다고 한다. 지문은 오로지 박물관 관장 김씨의 지문만을 인식하며 그 이외의 방법으론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묘한 상황이네요."
그 안에서 물건을 갖고 나오는 것이 가능한 사람은 오로지 김씨 뿐이고, 실제로 000를 갖고 나온 건 김씨였다.
허나 그 때, 김씨는 다른 장소에서 그 날 밤에 침입할 괴도에 대한 대책을 논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같은 시간에 김씨가 두 명 존재했단 이야기인데, 실제론 불가능한 이야기다.
아니, 불가능한 이야기긴 하지만..
"괴도의 저주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선배가 눈을 빛냈다. 그녀 또한 저주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말했다.
"괴도의 저주로 발생한 범인은 이중인격. 즉, 자신의 범행사실을 모르지. 그러므로 김씨가 범인이여도 아귀는 맞아."
경찰에다가 괴도의 저주같은 오컬트 이야기를 믿어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실제론 그들도 이 저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건 사실이다. 어찌됬건 54건의 전례가 존재하니까. 그래도 공식적으론 발표할 수 없어서 높으신 분들이나 몇몇 이들만이 그 사실을 알 뿐 대다수는 모른다.
선배는 그런 몇몇 중 하나로, 자신의 직업을 이용해서 성산고와 경찰 사이를 이어주는 일종의 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뇨. 전혀 맞지 않아요. 그 시간에 김씨는 두 명이 존재했다고요. 자신의 범행 사실을 아느냐 모르냐는 적어도 지금 시점에선 관계 없어요."
"그도 그렇네. 그치만 그건 그거면 되지 않아? 범인의 초능력."
"뭐 분신이라도 만들었다는 겁니까?"
"그런 거지. 꼭 분신이 아니라도 초능력이라는게 나온 이상 상상할 수 있는 추리는 매우 많아."
"저건 단순한 변장일 뿐이고 능력은 다른 것이 아닐까요? 가령 기계를 조작해서 자동문을 연다던가.."
"아, 그건 아니야. 카메라에 김씨랑 직원 한 명을 데리고 있었다고 했지? 그 직원에게 물어보니 김씨가 자기에게 문을 열라고 했다. 박물관 관장이 직원에게 일을 시키는 거야 뭐 드문 일도 아니잖아? 그래서 그가 자기 ID카드로 문을 열었다..고 하더라."
"기계를 조작할 수 있다면 그런 번거로운 짓은 할 리가 없단 말이군요."
"그렇지. 목격자만 늘릴 뿐이잖아?"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졌다. 선배의 말대로 초능력이란 걸 사용하는 범인이기에 행할 수 있는 방법이 너무 많다. 최소 어떤 능력인지만 알 수 있어도 좋겠지만, 그것도 이렇게 범위를 줄여나가는 수 밖에 없다.
"아무튼 제 생각엔 분신은 아니에요?"
일단 생각한 것을 꺼내보자란 생각으로 선배에게 말했다.
선배가 '어째서?'라며 되물었다.
"그도 그럴게 이번에 도난당한 물건은 000 박물관의 000 잖아요. 만약 김씨가 범인이라면 자기 박물관의 물건을 자기가 훔친게 된다고요.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범인은 그 물건이 있는 도시의 주민 중 아무나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론 약간의 법칙이 있다. 그 법칙이란 대개 저주의 대상은 물건을 훔치기 쉬운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선 위치란 사회적이나 기타 조건적인 위치를 말한다. 마침 그 물건이 있는 옆집에 산다던가, 물건의 소유주랑 친하게 지낸다거나.
허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김씨가 범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자기 물건을 자기가 훔치는 샘이다. 그런 건 이미 도둑질이라고 할 수 없다.
"듣고보니 그렇군."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동안 우린 서로 아무 말도 주고 받지 않았다.
이것저것 말하긴 했지만 결국 어느 것도 아니라는 것만 알았을 뿐이다. 무수한 가능성들 중에서 아닌 것들만 확실히 아니라고 말이다.
물론 이것도 진전이긴 하지만 너무 조금 나아갔다. 천 리 길도 한 걸음 부터라지만 우린 아직 반 걸음도 못간 샘이다.
"그럼 역시 그거밖에 없겠군."
침묵을 깨고 선배가 입을 열었다. 좀 전과는 반대로 이번엔 내가 '그거요?' 라고 선배에게 물었다.
"변장, 아니 이건 변신이라고 해야하나? 지문까지 동일하게 변할 수 있는 능력이지."
....
아니, 확실히 그렇게 하면 앞뒤가 맞긴 하지만..
"솔직히 그건 저도 생각했지만 너무 시시하다고 생각해서 관둔건데.."
"현실은 원래 시시한 법이야."
"아니 뭐, 그 말이 맞긴 하지만."
초능력이란 소재까지 나왔는데 이렇게 시시한 결론은 좀 그런 거 같은데.
"애초에 시시하고 자시고 할 이야기가 아니라고.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면 여러 문제점이 해결되잖아?"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 너무 단순해서 꺼림칙하다. 오히려 범인이 일부러 그렇게 생각하게끔 유도했단 생각이 들 정도다.
"좀 더 생각해보면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까요? 초능력이라는게 상대인 이상 무슨 짓을 해도 이상하지가 않을 상대라고요?"
"아니, 난 이번 사건을 좀 더 단순하게 봐야한다고 생각해."
"단순하게?"
선배가 눈을 번뜩이며 설명했다.
"괴도의 저주에 의한 사건들은 엄청 화려해. 초능력을 이용해서 상상조차 하기 힘든 트릭을 만들고 범인은 사건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지."
그에 비해 이번 사건은 수수하고 엉성하다. 카메라에 물건을 가져가는 모습이 찍히고, 직원이라는 중요한 목격자도 만들어 버렸다. 범인으로 생각되는 김씨는 그 시간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다. 그 결과 형사와 탐정이 한 두시간 정도 머리를 맞댄 것만으로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이번 사건은 기존 것에 비하면 화려하지 않아. 이것보다도 훨씬 교묘하고 생각하기 힘든 사건이 나와야한다는게 내 의견이야."
"그렇다면 범인은 어떠한 이유로 급하게 물건을 훔쳤어야됬다..라는 건가요?"
"바로 그거야."
그렇기에 본의 아니게 이전과 다른 흔적들을 남겼다는 건가.
선배의 설명을 들으니 그 말이 맞는 거 같았다. 내가 겪었던 사건만해도 이것보단 훨씬 복잡한 사건이었다. 게임으로 친다면 최고난이도겠지. 그에 비하면 이번 건 제일 쉬운 난이도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난이도가 낮아진 건 역시 범인에게 어떤 사정이 있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 사정이란게 대체..
"으음.."
다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어라, 벌써 시간이 6시네."
선배가 문득 그런 말을 해서 시계를 보니 그 말대로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있었다. 슬슬 집에 가야했다. 그래도 이만큼이나 생각했으니 다행인가? 앞 일을 생각하면 여전히 골치가 아프지만. 좀 전엔 난이도가 낮다고 말했지만 역시 어려운 건 어려운 거다.
초능력이 허용 된다는 건 정말 반칙이다.
"그럼 슬슬 일어나야겠네요. 선배도 이제 돌아가셔야죠?"
"흠, 그렇네. 슬슬 나도 퇴근할 시간이고 말이지."
기지개를 피는 선배를 보며 이 사람이 아직 근무 중이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근무 중에 농땡이치고 카페에 와서 수다나 떨다니.. 뭐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수사겠지만.
"그나저나 너, 시간 있냐?"
속으로 선배를 열심히 비난하고 있는데 문득 선배가 그렇게 물었다. 시간이란 건 지금부터의 시간을 말하는 건가? 일단 집에가서 저녁이나 먹을까 생각했지만..
"딱히 바쁘진 않아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 별 건 아니고.."
드물게도 선배가 말을 흐렸다. 머뭇거리고 있는 건가?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만난 것도 2년 만이잖아? 기왕 이렇게 된 거 저녁이나 같이 먹을까 하고.."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죠. 뭘 그렇게 어렵게 말하셔요."
"그래? 그럼 당장 가자!"
기세좋게 일어난 선배는 내 손을 잡더니 아까처럼 끌고가기 시작했다. 선배에게 끌려가면서 나는 대체 선배가 왜 이러나 생각했다.
다행히랄까, 그 의문은 금방 풀렸다. 아무래도 선배의 지갑엔 돈이 남아있지 않았던 모양이라 내게 밥을 사달라고 말한 것이었다.
"알겠어요, 사드릴테니까 좀 천천히 가요!"
끌려가면서 그렇게 호소해도 선배는 멈추지 않았다. 신이 난 듯 걸어가는 선배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카페에 들어왔을 땐 돈이 부족하지 않았던 거 같았는데 설마 여기서 다 쓴 건가?
기억 상으론 밥값 계산 못하고 돈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역시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 변하는 모양이었다.

눈을 뜨니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거주한지 3개월 정도 된, 매일 아침마다 보는 한 칸짜리 자취방의 천장이다.
창문으로는 이제 막 뜨기 시작한 해가 옅게 보였다. 느껴지는 두통을 참으며 알람시계를 찾았다.
오전 6시.
평소라면 자고 있을 시간이거늘 어째서 깨어난 걸까. 분명 머리가 멍한게 술을 잔뜩 마신 직후라서 더 자야되는게 맞는게 아닐까. 그러고보니 어쩌다가 술을 마셨더라. 분명 낮에 학교를 갔다가 경찰서에 갔다가 선배랑 만나서..
"아."
기억났다.
선배와 저녁 식사 후, 그대로 헤어지려는 찰나 선배가 또다시 날 데리고 둘이서 술을 마시러 갔다. 거기에 수원이까지 불러 2차, 3차까지 간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으음..
더 이상 기억이 안난다. 분명 술을 마시러 간 거 까진 기억이 나지만 그 뒤의 내용이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이렇게 자취방에서 눈을 뜬 걸 보면 어떻게 잘 오긴 한 모양이지만..
"수원이나 선배는.. 잘 들어갔으려나?"
일단 전화라도 한 번 해볼까. 잘은 몰라도 어제 엄청 마신 건 확실한 모양이니까. 나는 그렇다쳐도 그 둘이 제대로 들어갔는지가 걱정이다.
아니, 그렇긴 해도 전화걸기엔 조금 이른 시간인가? 으음, 그래도 뭐 두 사람 다 오늘은 출근할테니 지금 쯤 일어났을 것이다. 아직 자고 있다면 뭐.. 모닝콜 대신이라고 하면 되겠지.
그래, 우선은 수원이부터.. 라는 생각을 하며 핸드폰을 찾았다. 찾았는데..
바닥에 굴러다니는 핸드폰이 어째서인지 3개였다.
"...내가 이렇게 핸드폰을 많이 갖고 있었나?"
그럴리가 있나.
핸드폰을 3개나 갖고 있을리가 없잖아. 탐정이라도 핸드폰을 3개나 갖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그럼 저것들은 대체 누구꺼지?
한참을 보고있자니 분명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었다.
분명, 선배랑 수원이랑 번호를 교환할 때 꺼냈었던 것과 똑같은..
혹시나해서 두 사람의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역시 두 핸드폰은 각각 전화벨을 울렸다.
볼 것도 없이 하나는 선배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원이의 것이었다.
"..으음."
어째서 두 사람의 핸드폰이 내 방에 굴러다니는 걸까.
술마시다가 내 자취방까지 온 건가? 그제서야 방을 자세히 둘러보니 여기저기 맥주캔이나 쓰러진 소주병 등이 보였다. 기억은 안나지만 아무래도 4차까지 간 모양이다. 장소는 물론 이곳이고.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이걸 나 혼자서 정리해야하는 건가? 이 인간들..
"엣취!"
갑자기 재채기가 나왔다. 이불 밖으로 나오자 찬 공기가 닿아 으슬으슬했다. 이 자취방은 유난히 공기가 쉽게 차가워져서 지금처럼 팬티차림으로 있다간 아무리 여름이라도 감기걸리기 쉽상이..
그러고보니 왜 난 벗고 있을까. 집이 추워서 평소엔 꼭 옷을 입고 자는데. 술마신 직후 몸에 열이 나서 벗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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