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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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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백색 퇴마사(가제)
글쓴이: 케이투
작성일: 12-07-31 23:15 조회: 1,915 추천: 0 비추천: 0

이것으로 마지막이다.
눈 앞의 상대를 보며 다짐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시작된 싸움. 모든 것은 내 목에 이 족쇄가 걸렸을 때부터 시작 됬을 것이다.
내게서 자유를 빼앗고, 기억을 빼앗고, 생명을 빼앗은 이 족쇄가 아직도 내 목을 조이고 있다.
허나 이 족쇄 때문에, 족쇄 덕분에 만날 수 있었던 인연이 있었다. 종도, 성별도, 살아온 시간 조차도 나와 다른 그 녀석.
내 모든 것을 빼앗아간 족쇄가 아직까지 내 목을 조일 수 있는 건 그 녀석과 만나게 해줬기에, 그 녀석과 이어져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여기까지 걸어와준 내 최고의 파트너.
그렇지, 용?
녀석이 내게 열쇠를 넘겼다. 나는 그 열쇠를 족쇄에 가져갔다. 원래 꽂혀있던 나의 열쇠를 뽑아, 녀석의 열쇠를 다시 꽂는다.
족쇄를 통해 파트너가 빨려들어온다. 하나의 육체에 서로 다른 정신이 깃든다.
이것으로 마지막이다.
모든 것을 끝내겠다.
눈 앞의 상대를 보며 우리는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띵-동-'
일요일 아침은 매우 조용하다.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평일 아침과는 달리, 이 날은 휴일이다. 평일 동안 움직이느라 지친 사람들이 쉬는.. 물론 그 중에는 일요일 조차 쉬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무튼 대다수의 사람들이 쉬는 날이다. 아마 많은 이들이 늦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띵-동-띵-동-'
그런 일요일 아침, 아까부터 누군가가 계속 초인종을 누르고 있었다. 수면을 방해하는 그 초인종 소리는 민폐라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이런 휴일 조차 일을 하니까. 쉬지 못하는 사람이다.
물론 그 만큼 평소에 손님이 없어서 거의 쉬는 것처럼 생활하니 상관없지만.
그래도 일요일인데 이런 식으로 깨어난다는 거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기에 난 원래 아침에 약하다. 저 초인종이 짜증나게 울리지만 않으면 이대로 점심 때 까지 푹-
'띵동띵동띵동띵동띵동띵동띵동띵동"
"..아 짜증나."
별 수 없이 일어나서 인터폰을 보았다. 흐릿한 화면엔 왠 여자가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아, 됬다. 저, 한성진 교수님이 보내서 왔는데요.]
"아아, 잠시만요."
대답한 나는 인터폰을 끄며 생각했다.
한성진 교수는 내 지인으로 예전부터 간간히 신세를 지곤 했다. 요 전에도 나는 그에게 어떤 물건의 수선을 맞겼었는데, 아마 교수님이 보냈다는 저 여자가 온 이유도 그거 때문이겠지.
"그렇다면 좋겠지만.."
간단히 옷을 입은 나는 현관으로 나갔다.
문을 열자, 아까 화면으로 보였던 여자가 서있었다.
왼쪽으로 묶어 길게 늘어뜨린 긴 머리에 몸에 걸친 긴 백의는 깔끔하지만 계절을 생각해봤을 때 너무 더워보이는 복장이었다. 백의 밑에 입은 정장은 주름치마나 디자인 때문에 어쩐지 교복을 연상시켰고, 얼굴도 앳되보여 과학자 흉내를 내는 학생같은 인상을 주었다.
"교수님이 보내셨다고요? 먼 길을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네? 아, 아니에요."
"좀 놀랐어요. 평소엔 늘 교수님이 직접 가져오시는데 이런 예쁘신 분이 오실 줄은.."
"예, 예쁘.. 헤헤, 부끄럽네요. 하긴 제가 좀.."
조금 당황한 듯이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그게 교수님께서 보내신 물건인가요?"
그녀가 양 손에 들고있는 종이 가방을 보며 물었다.
"아, 네. 자, 여기 물건.."
"그건 천천히 주시고, 들어 오세요. 날도 더우니까 물이라도 드릴게요."
"그래도 되나요? 헤헤, 그럼 실례 좀 할게요."
신난다는 듯이 웃으며 그녀가 현관으로 들어왔다.
"꽤 사무실이 깨끗하네요. 여기서 생활하시는 거 맞죠?"
"뭐 그렇죠."
대답을 하면서 현관문을 잠궜다.
"남자 혼자 사신다고 생각되진 않네요. 아, 그러고보니 분명.. 꺅!"
신발을 벋던 그녀의 입에서 갑자기 새된 비명이 나왔다.
"움직이지마."
한 손으론 그녀의 양 손을 뒤에서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론 벽에 밀어 눌러 제압했다. 간신히 고개를 돌린 그녀의 얼굴에서 당황한 듯한 시선이 내게 보내졌다.
"이게 무슨.."
"조용히 해."
"켁.."
밀어붙히는 손에 힘을 주자 그녀가 괴로운 듯이 소리를 냈다.
"묻는 말에 대답해. 누가 널 보냈지?"
"그, 그러니까 교수님이.."
"거짓말하지마."
다시 손에 힘을 주자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일부러 아까보다 더 강하게 힘을 주었다. 그녀가 괴로워하며 나를 노려보았다.
"솔직히 말하겠다면 고개를 끄덕여라."
"그..러니까, 난 교수님이.."
아무래도 대답을 들으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거 같다.
속으로 한숨을 쉬고, 혹시 모를 만약을 위해 나는 그녀의 소지품을 체크했다.
"에, 꺄악! 어, 어딜 만져.. 켁!"
몸수색을 하자 저항이 심해졌다. 미안하지만 이 쪽은 그런 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기에 얌전히 있으라는 뜻으로 더 강하게 누를 뿐이었다.
"특별히 위험한 물건은 없는 모양이군.."
"하.. 하아.. 하아.."
거친 숨을 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난동을 부릴 때마다 눌러댔던 탓에 숨을 쉬기 곤란했던 모양이다. 힘이 빠진 눈은 나를 노려보고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말했듯이 그녀가 가진 물건 중엔 위험해보이는 물건은 없었다. 숨길 만한 부분도 구석구석 다 뒤져봤으나 휴대폰 말고는 가진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저 가방인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가방을 보며 생각했다. 교수가 나한테 넘겨주기로 했다는 가방. 그 안에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에잇!"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그녀가 갑자기 나를 밀쳐냈다. 그리고 현관문으로 향해 가려했으나 그 전에 내가 그 팔을 붙잡았다. 그대로 잡아당겨 그녀를 엎어뜨린 후, 그 위에 앉아 그녀를 제압했다.
"흑.."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고였다. 한순간 조금 마음이 약해졌지만, 아마 연기일 가능성이 높기에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미리 주머니에 넣어뒀던 끈으로 그녀의 양 손목을 묶고, 이어 발목도 묶기 시작했다.
끈을 다 묶었을 때 쯤, 갑자기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최신 가요인듯한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고 나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집었다. 액정에 표시된 번호는 내가 잘 아는 사람의 번호였다. 그리고 그 번호 위에 써있는 '우리 아빠'라는 글자.
"..아빠?"
그걸 보고 나서야, 나는 사태가 어떻게 된 것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자, 여기 물."
"....흥."
컵에 물을 따라 소파에 앉아있는 그녀에게 내밀었다.
"뭐야, 목마르다고 하지 않았나?"
"..지금 물이나 마실 기분이 아니거든요?"
입을 삐쭉거리며 말한다. 목소리가 떨리는게 화를 참고있는 모양이다.
"그런가? 그럼 내가 마시지."
"어? 어어, 잠깐만! 내놔!"
컵을 빠르게 낚아채며 그녀가 소리쳤다. 급하게 낚아채는 바람에 물이 조금 흘러넘쳤으나 그녀는 개의치 않고 컵을 단숨에 들이킨다.
그럴 기분이 아니라면서..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이름은 한승희. 한성진 교수의 딸이다.
한성진 교수는 아까도 말했듯이 내 지인으로, 간간히 도움을 받고 있다. 이 건물도 그가 소유한 것으로 덕분에 난 편하게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무튼, 그런 한교수에게 나는 요전에 어떤 물건의 수선을 맞겼다. 그리고 수리가 끝난 물건은 그가 내게 전달할 예정이었을 터나..
"정말 다짜고짜 그런 짓을 당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
한승희가 나를 노려보며 시끄럽게 소리쳤다. 컵을 쥔 손이 부르르 떨리는게 당장이라도 집어던질 기세였다.
"어이가 없군."
보다보다 짜증나서 그녀에게 말했다.
"물건은 언제나 교수가 직접 가져오기로 되어있었다. 아까 전화로 들은 바로는 네가 멋대로 물건을 들고 나온 모양이군."
"으읏.."
한승희가 허를 찔린듯 신음했다.
나는 계속해서 그녀에게 말을 퍼부었다.
"교수, 혹은 교수가 보낸 이랑 접촉을 할 때는 언제나 뒷문을 이용하기로 되어있다. 혹시 모를 습격자나, 뭐 그런 걸 대비해서 말이다."
"그런 거, 내가 알리가.."
"그래. 네가 알리가 없지. 내게 관심이 있는 자들은 많으니까 언제나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말이다. 그러니 아까의 일은 네가 멋대로 행동한 대가라고 생각해라."
그렇게 말하고 나는 그녀의 맞은 편 소파에 앉았다. 그녀는 할 말이 없는지 컵을 입에 댄 채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도 그 정돈 알고 있다구.."
컵을 입에 문 채 그녀가 중얼거렸다.
"살아있는 강시.. 강시제작법으로 몸을 개조당했으면서 여전히 살아있는 특이케이스인 당신을 노릴만한 사람이 많다는 것 정돈 알고 있어."
"너, 나에 대해 알고 있나?"
"전부터 궁금했었어. 아버지의 지인 중 그런 특이한 사람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아무리 부탁해도 도저히 소개시켜주지 않았으니까. 근데 마침 당신한테 전할 물건이 있어서.."
"..정말로 어이가 없군."
정말로 나를 노리는 사람이었다. 아까의 대처는 적절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용무가 끝났으면 돌아가. 다음부턴 다시는 이러지 말고.."
"아니, 그게. 실은 부탁이.."
돌아가라는 말을 듣고 그녀의 태도가 바뀌었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오더니 옆에 앉아 나를 쳐다보았다.
"부탁이라니?"
"저기, 당신의 몸을 좀.."
"거절한다."
"꺅!"
거리를 좁히는 그녀를 단숨에 밀치며 말했다. 한승희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굴렀다.
"갑자기 밀면 어쩌자는 거야!? 당신 진짜 난폭해!"
"사람을 멋대니 실험대에 세우려는데 더한 짓도 못할까."
"실험대라니! 조금 조사만 할 뿐이야! 뭐 어때!? 닳는 것도 아닌데!"
"그거야 무슨 짓을 하냐에 따라 다르겠지."
정말로 몸이 닳을 수도 있고, 어쩌면 더 심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설마 내가 아버지의 지인에게 그런 짓을 할까봐? 내가 정말 그렇게 나쁜 사람으로 보여?"
"내 몸에 그런 짓을 하려는 거 자체가 납득이 안간다는 거야."
"그럼 이렇게 하자. 당신, 아까 나한테 심한 짓 했지? 느닷없이 덮치고 더듬고 묶고 그랬지? 그러니까 그거랑 쌤쌤이로.."
"뭐 상관없잖아. 닳는 것도 아닌데."
"크으..!"
방금 그녀가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하자 그녀가 막힌 듯 신음했다.
보는대로, 그녀는 꽤 다혈질인 모양이다.
"나라고 좋아서 그런 짓을 한 줄 아나? 다 네가 멋대로 물건을 갖고 와서 그런 거잖아."
"으.. 확실히 그건.."
"자업자득이라고. 애초에 난 너같은 중학생에겐 흥미 없어. 어린애를 상대해봤자 피곤할 뿐이야."
"주, 중학.."
"남자의 몸에 흥미가 있을 나이긴 하지만, 그런 건 서점에 가서 인체 드로잉 책이라도 사보면 어때? 중학생이라면 그거로도 충분하다고 생각되는데?"
"..날 뭘로보고."
한승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일어선 그녀가 나를 내려보았다. 이만큼 놀려댔으니 화만 잔뜩 내고 돌아가겠지. 다혈질인 그녀라면 분명 그럴 것이다.
"..후."
허나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를 보며 말했다.
"당신이 화를 낼 만도 하네. 멋대로 실험 대상으로 취급했으니까."
"어?"
"사과할게. 그리고 물 좀 더 주지 않겠어? 화를 참았더니 속이 답답해."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다시 내 앞의 소파로 가서 앉았다. 고개를 젖히고 이마에 손을 얹은채 끙끙거리는 모습은 조금 뜻밖이었다.
한교수는 상당한 인격자인데, 그 딸인 한승희도 나름 그런 면모를 물려받은 걸지도 모른다.
"..참고로 난 올해 20살이야."
"그래.."
그거야 물론 보면 안다. 솔직히 고등학생 쯤 되어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중학생 정도는 아니다.
아무튼, 나름 스스로를 절제하는 그 모습을 보니 내 안에서 그녀에 대한 평가가 올라갔다. 어차피 심심하기도 하고 잠깐 동안의 말상대로는 괜찮을 거 같다. 그 녀석 이외의 잡담을 나눌만한 상대는 꽤 오랫만이기도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컵에 물을 따라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러고보니 안보이네."
아까처럼 단숨에 컵을 들이킨 그녀가 문득 그런 소리를 했다.
"뭐가 말이지?"
"아버지한테 들은 바로는 당신에겐 파트너가 있다고 했는데. 분명 용이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지 그녀가 머리를 감싸며 눈을 감았다.
"..그 녀석에 대한 것도 들은 건가."
나에 대한 것도 그렇고 한교수는 생각했던 것보다 입이 가벼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자기 딸에게 유난히 약하거나.
"그래서, 그 파트너는 어딨어? 당신에 대해서도 궁금했지만, 난 그 파트너 쪽도 궁금했단 말이캭!"
"시끄러워."
눈을 빛내며 다가오는 한승희의 얼굴을 밀어낸다. 그러고보니 그 녀석, 내가 일어났을 때도 보이지 않았는데 어디있는거지?
"나라면 아까부터 여기 있다만?"
그 때였다.
등 뒤에서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내 손에 밀려나던 한승희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 어느 틈에!?"
그녀가 갑자기 소리친 탓에 그녀의 얼굴을 밀어내던 내 손바닥에 침이 잔뜩 튀었다. 내가 그대로 손바닥을 그녀의 얼굴에 문지르자 괴로운 듯이 얼굴을 찡그리며 읍읍거리는 한승희의 모습은 정말로 안쓰러웠다.
그 안쓰러운 얼굴로부터 고개를 돌려 내 등 뒤에 있는 나의 파트너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나타나니까 손님이 놀라잖아. 왜 평소에 안하던 짓을 하는데?"
"조금 장난쳤을 뿐이다. 느닷없이 덮치고 위협하고 더듬고 묶고 그러는 거보다야 낫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소파를 훌쩍 뛰어넘어 내 옆 자리에 앉았다. 소파에서 가볍게 끼익-하고 소리가 났다.
"그 때부터 보고 있던 거야?"
"물론. 나름대로 여기 계신 뜻밖의 손님을 경계했거든. 몸을 숨긴채 여차하면 당장이라도 뛰어들게 말이다."
당장이라도 할퀼 수 있다는 듯 그녀가 손을 보이며 말했다. 웃고 있긴 하지만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건 당연하다.
"저.. 그 얘가?"
"그렇다. 네가 찾던 이가 바로 나다."
자신만만하게 끄덕이는 내 파트너를 한승희는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조금 의외네.."
어깨를 조금 넘게 기른 하늘색 머리카락. 어른용 흰 티셔츠를 헐렁하게 입은, 중학생은 고사하고 아무리봐도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그것이 내 파트너의 모습이었다. 한승희가 그런 말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찌됬든 소개하자면, 이 녀석의 이름은 용.. 아니, 지금은 무기로군. 성은 내껄 붙혀서 정 무기야. 지금 모습은 영체용 인형에 빙의된 상태니까 너무 신경쓰지마."
"인형? 아아.. 그렇구나."
설명을 들은 한승희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영체용 인형이란 말 그대로 영체가 사용하는 용도의 인형으로 영적인 힘이 없는 이들도 그들과 접촉하기 쉽게끔 만들어진 물건이다.
뭐, 무기가 빙의한 인형은 영체의 정보를 바탕으로 해서 인간 형태를 만들어내는 최신형으로, 이렇게 어린 아이의 모습이란 건 지금 무기의 힘이 그 정도 밖에 안된다는 걸 의미한다.
과거 그 싸움에서, 용으로써의 힘을 잃고 이무기로 전락한 그 증거가 이런 어린아이의 모습이란 것이다.
"으음, 그렇구나. 저기, 무기야. 잠깐 이리 와볼래?"
"제대로 존대해라. 이래뵈도 너보단 훨씬 오래살았으니까."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무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승희의 옆으로 갔다. 자기 곁에 무기가 다가가자 한승희는 즉시 무기를 잡아 자기 무릎 위에 앉히고 무기의 양 팔을 잡은채 이리저리 흔들으며 꺄-꺄-거렸다.
무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시선을 내게 보냈으나 나 역시 모르겠는건 마찬가지다.
"아 귀여워. 정말, 생각했던 거랑은 다르지만 귀여우니까 아무래도 좋아!"
"뭔진 몰라도 나를 좋게 봐주니 나쁘진 않다."
"엉뚱한 소리말고 정신 사나우니까 당장 멈춰."
그렇게 말했으나 한승희는 멈추지 않았다. 무기는 무기대로 좋은지 같이 웃어댔다. 아무리봐도 애 취급하고 있거늘, 제대로 존대하라고 한 주제에 잘도 저러고 있구나.
그런 어이없는 소란이 한동안 계속되었고, 그러다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집 안에 울려퍼졌다.
띵-동-
시끄러운 두 여자들에게 조용히하라고 한 뒤, 인터폰을 보며 수화기를 들었다. 흐릿한 화면에 보이는 건 이번에도 여자였다.
"저, 의뢰 때문에 왔는데요-"
알겠다고 대답한 뒤, 문을 열러가려는 내게 뒤에서 한승희가 물었다.
"저 여자도 막 덥치고 그러실 건가요?"
....
첫 인상이란 참으로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름은 정 현. 직업은 퇴마사로 퇴마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얼핏 보기엔 수상한 인간이겠지만, 이 지역의 사정을 아는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3년 전, 시市 내에서 느닷없이 이상한 사건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귀신이나 요괴같은 영체들이 일으킨 거라는 걸, 당시 그것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사건들은 이어지고 있다. 물론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최근에 제거했으니 이후 점점 줄어들거라 생각되지만 그렇다고해도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걸 대처할 능력이 있을리가 없다.
그렇기에 퇴마사무소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그걸 운영하는 것이 바로 나.
꽤 괜찮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돈 벌이가 안된다는게 단점이지만, 정 급할 땐 고양이 찾기라도 하면 된다.
뭐, 그렇다고 이번 의뢰가 고양이 찾기라는 건 아니지만.
"저, 이상한 일이 있을 땐 여기에 와보라고 들어서.."
의뢰인의 이름은 박 지수. 30대 초반의 여성으로, 최근에 이곳으로 이사왔다고 한다.
"저희 남편을 좀 찾아주세요."
이사오기 전, 그녀의 남편은 보석상을 운영했는데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사업을 접고 남편의 고향인 이곳으로 와 시부모가 운영하는 식당을 물려받게 됬다고 한다.
아무튼, 그녀의 의뢰는 남편에 관한 것이었다. 한 달 전부터 그녀의 남편이 식당 일도 돕지 않고 어딘가를 돌아다니기만 한다고 한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면 화를 내며 경계하고,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평소에도 하던 일이 안되서 고향에 돌아온 것을 속상해했기에 그거 때문인가 하고 그녀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허나 이틀 전, 밤 늦게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그녀는 이상한 광경을 보게됬다. 방의 문 틈으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살짝 들여보니 그녀의 남편이 서있었는데 그 주위엔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많은 금괴들이 놓여있었다. 더욱 놀라운 건 그녀의 남편의 행동이었는데, 그는 주위에서 번쩍거리는 금괴를 하나씩 집어 입으로 가져가 그것을 우적우적 씹어먹고 있던 것이었다.
놀란 그녀는 급히 집 밖으로 한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해가 뜰 때 쯤에야 겨우 진정이 되서 조심스럽게 집으로 들어가보니 방 안에 있던 금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고 그녀의 남편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뭐에 홀린 건가 싶어서 시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이곳에 한 번 가보라길래.."
"그러셨군요."
그녀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바람피는 남편의 뒷조사라도 부탁하는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제대로 된 건 인듯 했다.
"그럼 지금은 사모님께서 혼자 가게를?"
"최근엔 시부모님께서 도와주시고 계셔요. 원랜 남편과 같이 했지만 지금은 그렇다보니.."
그녀가 대답하며 말끝을 흐렸다. 아까부터 말하는 내내 불안한 표정을 짓는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남편의 일이 많이 걱정되는 거겠지.
"대단하시네요."
"네?"
"아니, 사모님네 식당은 유명하니까요. 이 근방에서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껄요?"
그녀의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은 꽤 유명하다. 싼 가격과 좋은 서비스, 적절한 음식맛 등으로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나는 아직 가본 적이 없지만 멀리서 지나가다 본 적이 있는데 가게의 크기가 작은 편은 아니었다.
그런 가게를 가족끼리 운영한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됬다.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멋쩍은 듯이 웃었다.
"아뇨, 대단할 거 까진."
"거기에 이렇게 젊으신대다가 미인이시고, 이런 아내를 걱정시키다니 남편분도 참 못되신 분이네요."
"그, 그런 거 아니에요."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계속되는 칭찬에 아무래도 쑥스러운 것이겠지. 허나 실제로도 그녀는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이는 미인이라 입에 발린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렇게 쉽게 쑥스러워하는 점이 의외랄까. 그녀의 외모를 생각하면 외모에 대해 자주 칭찬받았을거고, 식당일을 하다보면 더더욱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텐데 생각보다 칭찬에 대해 내성이 없다. 조금 별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거야 어찌됬든...
"사모님."
"네?"
내가 부르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방금 전의 대화 덕인지 불안해하던 그녀의 얼굴이 조금은 나아졌다.
"이곳에 오신게 정답이셨네요. 남편 분에 대해선 맡겨주세요."
"아.. 감사합니다."
그녀를 돌려보낸 뒤, 나는 곧바로 밖을 나섰다. 일단 그녀의 남편을 찾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그에 대해 물었다.
그의 행방을 아는 이는 없었다.
"흐음.."
뭐, 그럴거라고 예상했다. 금을 먹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미 그 정체에 대해선 짐작이 갔다. 내 짐작이 맞다면 그가 이런 시내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을 리가 없다.
좀 전의 탐문 수사는 내 짐작이 잘못되지 않았나하는 일종의 확인 작업이었다.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짐작은 아무래도 맞은 듯 했다.
그렇다면, 일단은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 건가.
"헤, 전부 꽝이시네."
....
옆에서 한승희가 비웃으며 말했다.
"사모님, 사모님 거리면서 불륜 로맨스를 찍더니만.. 참 무능하시네요."
"아까부터 시끄럽군. 그리고 불륜은 또 뭔 소리지?"
"의뢰인이 예쁜 미인이니까 아주 신사적이고 부드럽더군요. 저한테 대했던 거랑은 완전 다르네요."
"난 왠만해선 다 친절하게 대해. 의뢰인이면 더더욱."
"그 사람, 아까 돌아갈 때 넘어질 뻔한 걸 당신이 받아주니 얼굴이 빨개져서 도망쳤던거 기억하죠?"
아까 의뢰인이 돌아갈 때, 갑자기 넘어질 뻔했던 걸 말하는 것이다. 내가 받아줘서 넘어지진 않았지만, 그녀는 내 얼굴을 보곤 황급히 인사를 하고 나갔다.
"민망해서 그랬겠지. 남이 보는 앞에서 넘어지는 걸 창피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꽤 많아."
"..아 예. 그러시겠죠."
한승희는 아까부터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혹시라도 내 행동을 감시하다보면 조금이라도 그녀가 원하는 바를 얻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그녀의 끈질김을 봤을 때 어차피 거절해도 몰래 쫓아올 거 같아서 짐꾼 이라는 명목으로 같이 다니기를 수락했다. 그랬더니 아까부터 내 비난이다.
아직도 내게 앙금이 남아있는 건가?
"계속 말하지만, 아까는 너 스스로가 수상한 행동을 했으니까 그에 맞춰 대응했을 뿐이야."
"그럼 이젠 친절하게 대해줘요. 더 이상 수상할 게 없잖아요?"
....
데리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나름 고맙게 생각해줬으면 한다.
"아무튼, 이제 어쩔 거에요? 어떻게 그 사모님 남편을 찾을 거에요?"
약올리는 듯이 한승희가 물었다. 무시할까 생각했지만, 특별히 지금 할 것도 없다. 냅둬봤자 시끄러울 뿐이니 간단히 설명해주는게 좋을 것이다.
"최근, 이 지역에 있는 건물 세 곳이 무너졌어."
폭발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지진이 일어난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원인 불명.
마른 하늘의 날벼락처럼, 멀쩡하던 건물이 느닷없이 가라앉는 사건이 3번이나 일어났다.
"건물이 3개나 이유없이 무너질 리가 없잖아요."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수상하다고 생각해서 조금 조사해봤지."
조사해본 결과, 무너진 건물들에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하나는 건물 잔해에서 금속 물품이 유난히 적다는 것.
또 하나는 보석상이 있다는 것.
"보석상?"
뭔가 떠오른 듯 한승희의 표정이 변했다.
아마 그녀도 나와 같은 인물을 떠올렸겠지.
"하지만 어떻게?"
"마지막 공통점은 붕괴한 건물의 근처에서 괴물의 목격담이 있다는 거야."
세 가지 공통점으로부터 추측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의뢰인이 말했던 금을 먹는 남편의 모습.
의뢰인의 남편은 금을 먹는 괴물에게 빙의 당했다.
그것이 결론이다.
"금을 먹는 괴물. 그것의 정체는 아마도.."
그렇게 말한 순간,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는 사무소에 있는 무기로부터 온 것이다.
"위치를 찾았다. 놈의 정체는 불가사리였다."

늦은 오후.
뜨거운 여름 해는 저녁이 되어가도록 기세를 멈추지 않고 거리를 내리 쬐었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것과 동시에, 공해로 인해 탁해진 공기가 퍼져있다. 이것이 거슬리지 않는다는 것은 나도 인간사회에 많이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거리는 한적했다. 별로 이용되지 않는 길이기 때문이다. 쭉 늘어진 건물들. 죄다 빈 곳인 이유는 아마 이곳이 인간들에게 인기없는 땅이어서 그럴 것이다.
그런 건물들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보통 키의 중년 남성. 꽤 마른 편이. 복장은 다른 인간들과 다를 거 없는 평범한 것이었다.
외형에선 특별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허나 그 내면.
인간과는 별개의 또 하나의 흐름이 느껴진다.
그건 그가 일반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증거.
"슬슬 도착하나."
현이의 흐름이 느껴졌다. 근처까지 온 모양이다. 같이 있는 또 한 명은 아마도 아까 왔던 그 여자다.
이윽고 현이가 내 쪽으로 왔고, 이어서 아까 봤던 그 여자가 쫓아왔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현이에 대조적으로 여자는 죽을 거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 평범한 인간보단 현이가 체력이 뛰어난 건 사실이다.
"찾은 거야?"
"모르겠다. 난 인간의 얼굴은 잘 기억하지 못하니까."
내 대답을 들은 현이는 사진을 꺼내 그 특이한 인간을 보았다.
"맞군. 언제부터 저러고 있는 거지?"
"내가 오기 전부터다. 저 상태로 계속 움직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그 인간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서있었다. 그 인간은 어느 건물 앞에 서있었는데 주위에 누가 와도 신경쓰지 않았다. 덕분에 숨길 필요 없이 편안하게 감시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어째서인지 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왜 그런가?"
현이가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 건 드문 일이라 조금 당황했다.
"너 그거만 입고 여기까지 온 거야?"
손으로 나를 가르킨 현이가 물었다. 시선이 그 손 끝을 따라 자연스럽게 내 몸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무슨 문제있는가?"
아까 집에서 입고 있던 옷 그대로다. 현이의 옷을 한 번 입었더니 이 천쪼가리는 생각보다 움직이기 편해서 계속 입고 있다.
"티셔츠 바람으로 길거리를 돌아다닌거냐. 맙소사.."
현이가 고개를 숙였다. 머리를 감싸며 신음하는 그를 옆에서 아까 그 여자가 안쓰러운 듯이 바라보았다.
"저기, 무기야. 혹시 길에서 아는 사람.. 마주친 사람 있어?"
"그 누구랑도 마주치지 않았다."
"다행이네. 아무도 못봤다니까 고개 좀 들어요."
고개를 숙인 현이의 어깨를 여자가 두들겨줬다. 위로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로썬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음.. 잘은 몰라도 내가 잘못한건가? 그렇담 미안하다."
"아니, 괜찮아.. 있다 돌아갈 때 입을 걸 사줘야겠군."
내가 사과하자 현이가 대답하곤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내 복장이 문제인 것 같았다. 어쩌면 현이의 옷, 남성복을 여자인 내가 입은 것이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허나 그게 그리 심각한 문제인가? 남성복이던 여성복이던 내가 보기엔 그게 그거던 거 같던데.
인간은 참 복잡한 생물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대단하네. 어떻게 저 아저씨가 있는 곳을 알아냈어?"
옆에서 여자가 웃으며 물었다. 음, 분명 이름이 승희라고 했던가? 아까 분명 내 쪽이 연상이니 존대를 하라 했는데도 계속 이런 말투다. 어차피 말해봐야 소용 없을테니 더 이상 언급해봤자 입만 아플 것이다.
그녀를 상대하는 현이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귀찮을 거 같으니 짧게 설명해주고 떨쳐내야겠다.
"물을 이용한 것이다."
"물?"
"하늘이던 땅 속이던 물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 정확히는 습기지. 그것이 있는 한 나는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전부 알 수 있다."
"우와, 굉장하네! 수분 레이더 같은 건가?"
감탄하는 여자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이 능력은 용이 됬을 때 생긴 것인데 내가 약해진 뒤에도 남아 있었다. 이무기로 추락하고, 이런저런 봉인까지 당해 이 몸에서조차 자유롭게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가능한 얼마 안되는 재주다.
단지 감지되는 것이 너무 많아서 대상을 구분하는데에 많은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 상태로는 특정한 정보가 없는한 인간과 특이한 인간, 인간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정도가 한계다.
그렇기에 이번 의뢰에서 얻은 정보는 컷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대상을 추리하고, 추리를 바탕으로 감지한 덕분에 찾아낼 수 있던 것이다.
"일단 불가사리라고 말하긴 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아니다. 저것은 불가사리의 잔해다."
잔해란 말 그대로 생물 등이 소멸하여 사라졌을 때 남는 것이다. 백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생전 원형이 같던 특징을 이어 영체가 되어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이른바 귀신이란 것들의 대다수가 잔해인데 불완전한 그것들은 산다는 것에 집착이 강하여 다른 이에게 쉽게 빙의를 하곤 한다.
"대화는 안통한다는 건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말에 현이가 한숨을 쉬었다. 잔해는 자아라는 것이 없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들이다. 가령 말을 하는 것들도 있는데 그건 생전의 본체가 하던 행동을 흉내내는 것에 불과하므로 실제로 그들과 의사 소통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나저나 정말 안움직이네. 당신, 어쩔거에요?"
"글쎄. 뭐든 일단 말을 걸어봐야겠지. 너희 둘은 잠깐 여기서 기다려봐."
여자의 질문에 현이가 대답하며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그 태평한 걸음걸이를 여자가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봤지만 그러면서도 불안한 듯이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나 역시도 그 남자로부터 눈을 떼지 않았다.
이윽고 현이가 그 남자의 앞에 섰다. 현이가 그에게 뭐라고 말하자 그의 주위에서 거친 흐름이 느껴졌다. 거의 동시에, 현이가 몸을 뒤 쪽으로 뺐다.
남자는 괴성을 질렀고, 그의 몸이 부풀어 오르면서 길고 작은 쇳덩어리 여러개가 솟아나왔다. 마치 쇠로 만든 커다란 밤송이 같았다.
"참으로 간단하게도 폭발하는군."
현이가 중얼거렸다. 이쪽으로 오는 현이를 따라서 상대의 시선도 이쪽을 향했다. 그러자 당황한 듯 여자가 허둥댔다.
"이 쪽 봤어! 당신 저리가!"
"시끄럽다."
"그, 그치만.."
겁먹은 듯 바라보는 여자. 귀찮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나 현이는 저런 걸 자주 상대하지만 그녀는 익숙치 않을 것이다.
남자의 몸은 쉽게 말해 거대해진 인간의 몸에 쇳조각들이 솟아난 모습이었다. 키는 두 배 정도로 커졌고 굵어진 팔다리엔 길고 잡은 쇳조각들이 날카롭게 솟아나있다. 어깨나 몸통 등에도 쇳조각이 솟아나있고, 이마엔 유난히 거대한 쇳조각이 뿔처럼 솟아있었다. 눈은 흰자위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나마도 핏줄 때문에 새빨갛게 보였다.
"부인이 걱정하며 찾고있다는 말을 했더니 저렇게 됬어. 아무래도 스트레스 때문에 자극을 받은 모양인데."
현이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의뢰인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씁쓸할 것이다. 그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뻔하다.
"어찌됬건 빨리 어떻게 좀 해봐! 무섭단 말이야!"
"시끄럽군. 알았어. 무기, 가방 열어봐."
아까 여자가 갖고 왔던 가방을 열자 안엔 여러 물건들이 있었다. 그 중, 나로썬 꽤 오랫만에 보는 물건도 있었다.
"그거 있지? 줘봐."
딱히 지칭하진 않았지만 현이에게 필요한게 무엇인진 알고 있다. 나는 가방에서 '족쇄'를 꺼내 현이에게 던졌다.
'족쇄'를 받은 현이는 그것을 목에 걸었다.
"자, 그럼 오랫만에 해볼까."
현이에게서 느껴지던 흐름이 변했다. 동시에 목의 '족쇄'로부터 수 많은 흰색 띠가 뿜어져 나와 그 몸을 감쌌다.

5cm 쯤 되는 빨간 색깔의 얇은 쇠막대 6개가 얇은 철사로 길게 이어져있다. 한 쪽 끝 부분의 막대엔 작은 열쇠 구멍이 있다. 이렇게 생긴 물건을 '족쇄'라고 부르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할 지 모르나 본래의 기능을 생각해봤을 때 적절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집는 건 약 일 년만이다.
원래 강시의 힘을 제어하여 의식 없는 몸을 조종하는 것이 목적인 '족쇄'.
허나 내겐 어째서인지 의식이 남아있었다. 의식이 남아있는 나는 이것을 통해 내려지는 명령에 저항할 수 있었다. 정신적으로 상당히 부담되는 일이긴 하지만 이젠 명령을 내리는 이들이 없으니 상관없다.
있다고 해도, 한 교수에게 부탁해서 그 기능을 제거해달라고 했으니 아무런 문제 없다.
이젠 단순히 내가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허나, 아무런 지배도 받지 않고 평범하게 생활한다고 해도 이것을 사용하는 한 내가 강시란 사실을 깨달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선 이것은 아직까진 내게 족쇄라고 할 수 있겠지.
"후우.."
족쇄를 목에 걸었다. 목 앞에 열쇠 구멍이 오도록 이으니 헐렁한 목걸이 처럼 보이기도 한다.
눈 앞의 불가사리.. 랄까, 온 몸에 쇳조각 등이 잔뜩 솟아난 괴물은 가만히 이쪽을 응시하는 거 같았다. 견제하는 건가. 거의 본능으로 움직이는 것이 잔해일텐데 조금 뜻밖이었다. 아니면 뭐,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다던가.
어찌됬건 상관없다. 나는 열쇠를 꺼냈다. 까만색 손잡이에 열쇠엔 컴퓨터 부품같이 빛나는 녹색 선 여러 개가 그어져있다.
"자, 그럼 오랫만에 해볼까."
열쇠를 구멍에 넣고 돌린다. 철사로 이어진 쇠막대들이 붙어지며 목을 조이고, 완전히 딱 붙어 이어진 족쇄는 여러 개의 흰색 띠를 뿜어냈다. 흰 색 띠들은 서로 교차하고 이어지며 내 몸 위를 감싸더니 긴 코트로 변했다.
"우왓, 변신했다!?"
옆에서 한승희가 당황하여 소리쳤다. 크게 뜬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니 조금 부담스러웠다.
"변신이라니, 그냥 제어장치를 사용했을 뿐이야."
"무슨 소리야. 갑자기 옷이 만들어졌잖아! 머리카락도 길어지고!"
한승희가 내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말대로 내 머리는 평소보다 훨씬 길어져있었다. 여자들의 긴 생머리보다도 더 긴게 바람이 불면 휘날리고도 남을 정도다. 이 족쇄를 발동시키면 신체능력이 급속도로 상승하면서 머리카락도 순식 간에 자라난다는데 솔직히 나도 그 원리가 이해가 안간다. 다른데는 멀쩡한데 머리카락만 그런다.
나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 여자에게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애초에 설명이나 해줄 정도로 한가한 상황도 아니니 귀찮더라도 그냥 무시해야겠다.
"혹시 마법소녀 같은 건가? 그런 원리인가?"
"혼자서 뭔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야?"
"그렇잖아? 갑자기 옷이 생겨나고 머리 모양도 바뀌는거 마법소녀잖아!"
"알까보냐. 애초에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마법소녀 같은 소리를.."
내 말은 거기서 이어지지 않았다. 느닷없이 불가사리가 포효하더니 이쪽으로 커다란 쇳조각들을 쏴댔기 때문이다.
날아오는 쇳조각들을 손을 휘둘러 쳐낸다. 비록 크기는 하지만 별로 단단하진 않았다. 가볍게 쳐냈는데도 깨져서 날아간 것들도 있을 정도다. 쇳조각들은 우리에게 조금의 피해도 입히지 못하고 주위에 떨어져 쿵 소리를 냈다.
"갑자기 왜 공격하는 거지?"
"..당신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마법소녀 같은 소리를..'이라고 해서 그런거 아니야?"
한승희가 설마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럴 리가 있나. 허나 만약 내가 한 말이 정말로 저 남자를 자극해서 그런거라면.. 평소 의뢰인이 스트레스 좀 받았겠군.
어찌됬든, 후딱 깨부숴서 처리해야겠다. 내버려뒀다간 다른 피해가 생길지도 모른다.
"한승희. 위험하니까 가만히 있어라. 제발 가만히 있어라."
"왜 두 번이나 말하는 건데?"
"무기야. 이 여자 감시 좀 잘해라."
"알았다."
무기의 대답을 들은 나는 괴물을 향해 달렸다. 그러자 그것도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대로 부딪힌다면 덩치가 있는 자기 쪽이 유리할 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본능으로 움직이는 것 치곤 괜찮은 판단이었다. 허나,
"드그아아악!"
부딪히려는 순간 내가 뻗은 주먹이 그것의 몸에 들어갔다. 돌진은 멈추었다. 그것은 기묘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크기에 비하면 별 거 아니군."
계속해서 나는 그것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것이 나를 향해 손을 휘두르던 발을 휘두르던 상관없다. 여유롭게 그것의 공격을 막아내며 커다란 몸 이곳저곳에 주먹에 꽂아넣었다.
"그아아!"
계속해서 밀려나던 그것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허나 오히려 아까보다 더 기세가 약해졌기에 가볍게 발로 밀어버렸다. 뒤로 날아가 넘어진 그것은 등에 솟은 쇳조각들이 땅에 박혀 일어나지도 못한채 바둥바둥 거렸다.
"거북이 같군."
잠시 뒤, 그것이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쇳조각으로 뒤덮인 얼굴이 나를 보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어딜 도망치려고!"
도망치는 그것을 향해 양 손을 뻗고 생각한다. 팔에 감긴 천이 풀어져 날아가는 모습을.
휘리릭!
"그엑.."
양 팔의 옷 소매가 풀어져 긴 띠가 되어 뻗어났다. 늘어난 띠는 도망치는 괴물을 향해 날아가 양 팔을 묶는다. 괴물은 띠에 양 팔이 묶여 도망치지 못하고 신음하여 저항했다.
이 코트는 보기엔 평범하지만 특수한 술식이 걸린 띠로 만든 것이다. 강도도 튼튼하고, 무엇보다도 의식하는 대로 조작할 수 있는 이 띠는 정말이지 여러가지 용도로 사용할 수 있지만 조작에 많은 집중력을 요구하기에 보통은 움직이기 편하면서도 몸을 최대한 덮어 방어에도 적합한 코트의 형태로 사용하고 있다.
"흐럇!"
띠를 힘껏 당기며 달려간다. 띠에 묶인 괴물이 끌려서 뒷걸음질 쳤고, 나는 그 등을 향해 뛰어오르며 띠의 길이를 줄인다. 괴물의 등을 밟으며 말의 고삐마냥 양 팔의 띠를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으아다다다다다다다다!"
괴물의 등에 달리는 것마냥 쉬지않고 발길질을 했다. 괴물이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밀려나갔지만 꽉 묶인 띠가 그것을 놓아주진 않았다. 등에 나있던 쇳조각들이 부서져 사방으로 튀었다.
"으랏차!"
슬슬 마무리다. 기합을 넣으며 띠를 풀었다. 동시에 오른발로 괴물의 머리를 걷어차서 날려버렸다. 날아간 괴물은 땅에 몇 번 튕기며 구르더니 곧 멈추었다. 뒤를 돌아보니 부서진 쇳조각들이 길을 이루어 땅에 떨어져있었다.
"어째.. 생각했던 것보다 약하군."
쓰러져서 움직이지 않는 괴물을 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약하다."
일방적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제대로 반격조차 못하고 얻어 맞는 저것의 모습은 마치 현이에게 학대를 당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현이가 인간 답지않게 강한 점도 있지만, 그걸 감안해도 너무 약했다.
"저거.. 한 쪽이 너무 강한 거야? 아니면 다른 한 쪽이 너무 약한 거야?"
옆에 서있는 여자.. 한승희가 물었다. 처음 저것을 봤을 때만해도 겁에 질렸던 그녀는 지금와선 오히려 기가 막힌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둘 다다. 아무리 본체가 아니라곤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너무 약하다. 아니, 이럴 땐 생각 이하라고 해야하는 건가?"
불가사리.
쇠를 먹고 사는 그들은 먹으면 먹을 수록 거대해지는 몸집과 쇠로 이루어진 튼튼한 피부, 엄청난 괴력 등을 가진 일반적인 인간이 생각하는 괴물에 가장 가까운 존재들이다.
특별한 능력 보다도 그 육체 자체가 비정상적으로 뛰어난 부류인데 그런 불가사리의 잔해가 인간의 몸에 빙의했으니 저렇게 약한 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의 몸으로 행하던 행동들은 인간의 몸으로 행하기엔 무리가 있으니까.
쇠를 먹을 수록 거대해지면서 단단해지는 그들의 육체와 달리 인간의 몸은 애초에 쇠를 먹을 수도 없다. 빙의된 덕에 어느정도 흡수는 할 수 있겠지만 한계가 있다. 하물며 제대로 된 불가사리도 아닌 그 잔해가 빙의한 건 오죽할까.
강한 신체가 장점인 그들로썬 그 특징을 활용하지 못하는 지금같은 상태는 그야말로 최악. 저렇게 얻어 맞는 것도 납득 될 정도다.
"거기에 상대가 나빴다. 현이의 육체는 인간을 뛰어넘었다. 그것만으로도 아마 제대로 된 불가사리에 근접할 것이다."
"상태가 영 안좋은 불가사리 찌거기랑 인간 불가사리라는 거네."
한승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 불가사리 찌꺼기가 건물을 3개나 부쉈단 말이야? 굉장하네. 제대로 된 거였다면 얼마나 큰 일이 났을까.."
"아니, 꼭 그렇게 생각할 수도 없다."
육체가 가장 뛰어난 무기인 불가사리지만 특별한 능력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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