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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탑과 소년
글쓴이: 카빌
작성일: 12-07-31 23:10 조회: 2,236 추천: 0 비추천: 0

코린티오 성의 서쪽에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숲 하나 있다. 아주 고고하게 하늘을 향해 온몸을 내뻗은 상록수들이 인상적인 숲인데 그 곳에는 크고 높은 나무들에게 지지 않을 만큼 오래 되고 고고하게 생겨 먹은 둥근 원기둥 모양의 탑이 하나 있다. 아이들은 잘 모르지만 제법 유구한 역사를 가진 탑으로 생김새 자체도 제법 고풍스럽고 성의 전망대에서도 주위의 숲과 뒤쪽의 산과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그 탑 자체는 나름 이 성의 명물이라고 한다.

유감스러운 사실은 저 탑이 유명한 이유가 이런 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령의 탑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지금은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고, 유령만이 떠도는 탑이라고 한다. 탑이 유령의 탑으로 불리게 되고 세월이 지나자 이젠 저 탑만이 아니라 저 숲 자체가 유령의 숲 취급을 받고 있다. 그런 탑이기에 낮에는 물론 밤에는 더더욱 아무도 오지 않는다. 명물이라곤 해도 성의 전망대에서 관찰할 뿐 실제로 성에서도 접근하지 말라고 주의 시키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야밤에 돌로 포장된 숲길을 따라 그 탑을 향해 걸어가는 소년이 있었다. 용감한 아이인가 싶지만 나무들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들리면 바로 움찔대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

무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무서워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던지 입이 움찔움찔 하지만 차마 열지는 못한다.

이 소년이 이런 야밤에 저 유령의 탑을 향하게 된 이유는 알기 위해선 낮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스미얀은 몸에 갑주를 두르고 허리에 검을 차고서 전장을 향해 나가려는 영웅의 팔을 잡았다.

레오벤...... ... 가야만 하는 건가요.”

그녀의 말에 영웅 레오벤은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공주 이스미얀의 팔을 역으로 잡고서 자신의 품안으로 잡아당기며 안았다. 펄럭이는 붉은 망토와 휘날리는 이스미얀의 검은 머리가 서로를 안고 있는 연인, 그리고 영웅과 공주의 모습과 함께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그 둘은 서로를 안고서 잠시 침묵을 지켰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 영원히 이렇게 서로를 안고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레오벤은 결국 침묵을 깨뜨리고 말한다.

“...... 이스미얀 공주님. 저 밖에 있는 적... 헤스론 제국의 황제는 영웅입니다. 그런 자를 쓰러뜨리고 왕국을 구하기 위해서는 제가 꼭 가야만 합니다.”

그러자 이스미얀이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전 바보가 아니에요. 저도 병법과 정치를 보고 배워왔어요. 주위에서도 저보다 똑똑한 사람은 드물었죠. 그런 제가 보아도 승산이 없어요. 레오벤... 당신은 죽으러 갈 셈인가요?”

그 말에 웃으며 이스미얀의 얼굴을 쓰다듬는 레오벤.

그랬죠. 공주님은 어릴 때부터 천재라 불리며 그 지혜를 뽐내셨다는 사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저만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니 저를 믿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거짓말임을 바로 알아채는 이스미얀. 애당초 그에게 지혜를 가르친 것은 이스미얀이 아닌가. 하지만, 그런 들킬 것이 분명한 거짓말을 당당하게 말하는 레오벤의 모습에 이스미얀은 더 이상 말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말이 없는 이스미얀의 모습에 레오벤은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들게 하고 눈을 마주친다.

공주님 만약 이 전투의 끝에서 왕국이 살아남는다면 좋은 군주가 되어 주십시오. 그리고...”

잠시 말이 흐려지자 이스미얀이 재촉한다.

그리고... 뭐죠?”

그리고... 만약 제가 살아 돌아온다면 저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레오벤의 프러포즈에 이스미얀은 레오벤을 밀치며 물러서고는 돌아서 버린다.

공주님?”

교활하군요. 죽으러 가는 주제에 살아 돌아온다면이라니... 그렇게 제가 싫었나요?”

예상치 못한 반응에 레오벤이 당황한다.

.. .. 그런 것이 아니라...”

말까지 더듬으며 해명하려는 그의 말을 이스미얀이 잘라먹는다.

얼른 출격해주세요. 이기라곤 하지 않겠습니다. 모든 것이 끝나면 죽던지 살던지 어느 쪽이던 제가 찾아갈 테니 그때까지 영원히 혼자로 남아있으세요. 이건 감히 저와의 결혼을 회피하려한 벌칙입니다.”

이스미얀의 의도를 깨달은 레오벤은 웃음을 터뜨린다.

... 푸하하하하하하...! .. 일평생 동안 동경해온 보람이 있습니다. 알았습니다. 공주님의 그... 벌칙 명령. 즐거이 수행하겠습니다. 그럼, 평안하시길.”

그 말을 마지막으로 레오벤은 입가에 웃음을 그대로 유지한 채 뒤돌아 나간다. 레오벤이 나간 것을 확인한 이스미얀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잠시 후, 코린티오 왕궁에 마지막 왕국의 운명을 건 전투를 위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 전투는 모두가 예상한 것처럼 레오벤이 이끈 코린티오 왕국군의 패배로 끝났다.

하지만, 비록 패배했으나 레오벤과 이스미얀 사이의 아름다운 사랑은 이렇게 하나의 작품으로서 지금까지 전해져오고 있다.

그러한 내용의 책의 마지막장을 넘기는 10세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 있었다. 밝은 햇빛에 소년의 목에 걸린 나무 목걸이가 순간 반짝인다. 지붕 밑 다락방에 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책을 읽기에 적절한 조명이다. 소년은 종종 이곳에 앉아 책을 보는데 이 집에 있는 몇 권의 책 중에서도 소년은 유독 그 책을 좋아했다.

[코린티오의 황혼]

꽤 유명한 작가가 쓴 제법 유명한 역사 기반 소설이라고 알려진 그 책은 150년전 이 코린티오 지방에 있던 코린티오 왕국이 헤스론 제국에 정복당하여 멸망하기 직전에 세상에 나온 영웅 레오벤과 코린티오 왕국의 공주 이스미얀 코린티오의 사랑을 담은 책이다.

로시야. 할아버지께 도시락 좀 가져다주겠니?”

, ~. 바로 내려갈께요.”

할머니가 자신을 부르자 로시야는 들고 있던 책을 들고서 다락방을 내려갔다. 내려오자마자 로시야는 거실 한쪽에 있는 책꽂이로 가서 책을 다시 자리에 꽂아 놓고 바로 집 문 앞으로 간다. 마침, 로시야의 할머니가 보자기로 덮어 놓은 바구니를 들고 문 옆에 서 있었다.

, 이거 들고 가서 같이 점심 먹고 오거라.”

할머니가 내미는 도시락 바구니를 받아 들면서 로시야가 묻는다.

오늘 친구들하고 약속 있는데 놀고 와도 되죠?”

해 지기 전에는 와야 한다?”

허락을 받은 로시야가 밖으로 나간다.

네엡~ 다녀오겠습니다.”

로시야가 걸어가는 것을 잠시 바라보던 할머니는 중요한 이야기를 빼먹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로시야에게 외쳤다.

스프 들어있으니깐 엎지르지 않게 조심해라~.”

~!”

코린티오 성 외곽 쪽에는 성에서 관리하는 제법 큰 도서관이 있다. 과거 코린티오 왕국 시절부터 있어온 석재 건물로서 이 지방에선 가장 큰 도서관이다.

그리고 그곳의 관리인이 바로 로시야의 할아버지. 평민일 뿐인 로시야의 집에 단 몇 권이라도 책이 있는 이유도 도서관에서 폐기대상이 된 책을 종종 로시야의 할아버지가 챙겨 놓았기 때문이다.

로시야가 또래 애들보다 책을 좋아하고 아는 지식이 많은 것은 이러한 배경이 적지 않게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라고 관리인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손자가 다가오는 것을 보는 한 늙은이는 생각했다.

.. 잘 키웠지. 그렇고말고.”

로시야는 할아버지의 작은 중얼거림을 듣지 못한 채 도시락 바구니를 들어 올린 채로 걸어왔다. 손자 사랑이라는 콩깍지를 뒤집어쓴 할아버지의 눈에는 도서관이라는 장소에 걸맞게 말이 아닌 몸짓으로 점심을 알리는 손자의 평범하다면 평범한 예절까지 대견하게 보인다.

옳지 옳지. 도서관에선 조용해야지.”

할아버지. .”

이 정도는 괜찮다. 욘석아.”

할아버지는 먼저 점심식사를 한 조수를 불러 자리를 부탁하고는 손자의 손을 잡고 도서관을 나간다. 도서관을 나온 둘은 도서관 건물 옆의 잔디밭에 자리를 잡았다. 날씨도 좋고 잔디밭의 넓이도 제법 되어 여기저기에서 책을 보는 사람들이 보인다.

할아버지가 로시야에게서 바구니를 받아 보자기를 들추자 빵과 아직 따끈한 스프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할아버지와 로시야가 빵을 들고 조금 떼어서 스프에 담근 뒤 입에 넣는다. 본래 약간 딱딱했던 빵에 따뜻한 스프가 스며드니 그 스프의 향과 함께 수분을 머금고 촉촉한 식감을 발휘한다.

잠시 스프와 조합되어 녹아내리는 빵맛을 만끽한 할아버지는 새로 빵을 뜯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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