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마이페이지
 
Q&A
[공지] 노블엔진 홈페이지가 …
[꿈꾸는 전기양과 철혈의 과…
《노블엔진 2017년 4월 2차 …
[리제로 10 + 리제로피디아] …
[Re :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
 
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하여튼 서기국원의 감찰은 시작되었다.
글쓴이: 반쪽사서
작성일: 12-07-31 23:08 조회: 2,543 추천: 0 비추천: 0
하여튼 서기국원의 감찰은 시작되었다.

『무제한적으로 가속한 세계의 불균형과 욕망은 각자가 가슴에 품은 이상과 신념이 결코 겹치지 않는 무한한 공집합의 극한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끝에 인간은 그 어떤 상상도 불허하는 장대한 투쟁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이기주의의자 이타주의인 모순으로 무장한 인간들의 전장. 만인의 만인을 향한 투쟁의 시대. 전세계판 춘추전국. 일인국가전쟁. 그 시대를 부르는 이름은 다양하다. 과거에 얽메인 모든 것을 청산한 지금도 관례적으로, 습관적으로, 혹은 그 안에 담겨진 의미를 잊지 않고 후대에 전하고자 통일되지 않은 이름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맴돌고 있다. 그 수많은 이름들 속에서도 가장 가장 많은 이들이 가장 적절하다고 부르는 이름이 있다. 각자가 가슴에 품은 생각思과 심상─마음想이 격돌한 때라는 의미에서, 우리는 그것을 사상전쟁이라고 한다.

이것은 사상전쟁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그 이후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우리와는 조금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소년소녀들의 이야기이다. 』

……아니, 그렇게 거창한 얘기는 아닌데?

#@
「 긴급대응1반의 추가 예산 신청을 기각합니다. 해당 반 활동에 집행된 추가예산은 이미 초과상태인 바, 본 부처는 금일을 기점으로 해당 반의 예산추가신청을 동결합니다. 」-학생의회 예산 심의처-

「 학생의회의 예산추가신청 동결은 부당한 결정이며 재고를 요청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차후 학생자치회의에서 예산 심의처 활동감사를 상정시키겠습니다. 」-선도위원회 세무부-

「 협상 결과 긴급대응1반은 예산 추가 신청 동결을 해제하는 조건으로 학생의회 예산 심의처와 선도위원회가 공동으로 제안한 수정예산안과, 수정예산안과 활동비내역 심의 및 감사를 위한 서기국원의 활동감시안을 모두 수용하였습니다. 차후 해당 반의 예산추가신청안에는 서기부의 심의가 포함됨을 알려드립니다. 」 -서기국-

「 긴급대응1반은 학생의회, 선도위원회, 서기국의 결정을 존중하며 서기국의 감찰을 수용하는 바입니다. 」 -긴급대응1반 반장대리 유스티티아 페나에-

이 소설은 현실 사건을 기반으로 재구성된 창작물입니다. 해당 사건에 대한 실질적인 모든 정보는 정보보호법 공소시효 기간이 종료될 때까지 열람하실 수 없습니다.



p.s 이 추신이 보이는 사람은 눈치챘겠지만 위에 쓰여진 뭔가 있어보이는 경고문은 댁들 낚기 위한 함정입니다. 속지 마세요. 본다고해서 남산 아래로 끌려간다는 건 단순한 농담입니다. 근데 개인적으로 이것보다 더 재밌는 것들 많은데 뭐하러 굳이 이런 거 보겠다고 했는지 모르겠군요. 추가적으로 이런 거 볼 시간 있으면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길 추천합니다.

p.s2 어머니. 혹시라도 이 글 다 읽으신다면 아들내미가 참으로 고생했구나 하고 격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차가운 계절이다. 난방기구가 돌아가는 실내에 있어도 창틀이나 문틈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희미한 냉기가 그 사실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킨다. 책상 위에서 차갑게 굳어가는 손가락을 주물러 온기를 되돌릴 때도 마찬가지다. 양말에 덧신까지 신었건만 무심코 꿈틀거리게 되는 발가락도.
창 밖은 이미 황혼에 물들어 있다.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저녁 먹을 시간도 되지 않았건만, 이런 광경을 보고 있자면 일거리는 아직 남아있다는 걸 알아도 왠지 모르게 끝내고 돌아가고 싶어진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눈과 손은 착실하게 책상에 고정되어 일을 멈추지 않는다. 습관이라는 건 무서운 법이지.
딸랑.
“다녀왔습니다~”
문이 열리며 방울소리와 함께 낭랑한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퍼진다. 들어온 것은 교복 위에 선도위원회 소속임을 상징하는 검푸른 코트를 걸친 여학생이다. 키는 165정도일까. 발걸음에 따라 흔들리는 검은 생머리는 어깨죽지를 완전히 덮는 정도의 길이다. 생동감 넘치는 반짝이는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미인 순위를 정하는 녀석들이 본다면 상위권에 올려놓을만한 미소녀다.
다리에는 방햔용인지 검은 스타킹을 착용하고 있고, 오른팔에는 긴급대응반 완장을 차고 있다. 교내외를 막론하고 학생사건 발생시 가장 먼저 출동해야 하는 지위에 있다는 걸 증명하는 물건이다.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물건이기도 하다. 그 실력은 소꿉친구로서 어릴 때부터 지켜봐왔기에 잘 알고 있다.
"후으으~ 역시 따듯하다~"
문을 닫으며 소꿉친구 소녀─황은하는 그렇게 말했다.
엘리트라면 엘리트다. 학생자치가 당연시되는 요즘 시대에 전체 교육과정에 대한 감수는 물론이고 학생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도시행정까지도 총괄하는 게 학생의회와 선도위원회다. 당연히 구성원들에게는 각 지위에 걸맞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러한 도시의 양 기둥 중 하나인 선도위원회 소속, 게다가 언제나 최일선에서 활약하는 긴급대응반 학생이 엘리트가 아니라면 누가 엘리트일까.
그러나 뒤이어진 행동은 그다지 엘리트답지 못했다.
“으읏, 추워라, 추워라.”
그렇게 말하며 은하는 내팽겨치듯 코트를 가까운 의자에 던져버리고는 신발을 벗어던지고 부실 한켠에 놓인 돌침대 위 이불 속으로 파고 들었다. 부실에 왠 돌침대냐 싶을 테고 나도 저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할 말이 많지만 그건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매끄러운 동작으로 뜨듯한 돌침대로 파고든 은하는, 이불 너머로 보이는 윤곽을 보아하니 배를 깔고 엎드린 듯 했다. 옷 주름지니까 좀 삼가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신발 좀 가지런히 놓고 코트 좀 옷걸이에 걸어놔라 이 아가씨야.
“몸 좀 뎁히그왓?!”
내가 집어던진 지우개가 정확하게 은하의 이마에 명중했다. 이럴 때를 위해 준비해둔 경화 지우개다. 은하는 빨개진 이마를 쓰다듬으며 화가 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말 안해도 정리할 건데!”
퍽이나. 네 뒷바라지를 시작한 지난 십수 년 간 내가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죽어도 안 움직이는 네 모습을 지켜봤거늘 어디서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어. 얼른 튀어나와서 정리 안해?
“으으으, 알았어. 치…….”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봐주자 그제서야 다시 꾸물꾸물 침대에서 기어나와 다시 코트를 옷걸이에 걸고, 아예 대놓고 침대에 드러누우려는지 블레이저까지 걸어두고는 이산가족마냥 흩어져있던 신발을 가지런히 놓는다. 진작에 이러면 좀 좋을까.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아가씨한테 매일매일 유치원생들 가르치듯 이러는 것도 참으로 귀찮은 노릇이건만.
“맨날 혼내기만 하니까 그렇지. 흥.”
혼나지 않도록 태도를 고칠 생각을 하란 말이다. 아, 그리고.
“응?”
네가 정녕 왜 내가 손을 뻗었는지 모르겠단 말이더냐. 주간 활동내역서 내놔. 설마 안 가져왔다고 할 생각은 아니겠지.
“아, 가져왔어. 저기 마이 안주머니에 있어.”
그 말은 죽어도 침대 밖으로 나와서 내게 활동내역서를 건네줄 생각이 없다는 거로군. 다시 한 번 지우개를 던질까 했지만 이미 저쪽은 이불로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한숨과 함께 의자에서 일어났다. 오래 앉아있었으니까 좀 일어나서 움직여야지.
벗은지 얼마 되지 않아 미적지근한 체온이 남아있는 블레이저 안주머니에 손을 넣자 바스락하고 종이 묶음의 감촉이 느껴졌다. 영수증과 두 번 접힌 활동내역서였다.
일단 책상에 놔두고 스트레칭 좀 하려고 했는데 얼핏 보인 영수증에 이상한 글자가 보였다. 곧바로 검사를 하고, 잠시 화를 삭힌 뒤, 조용히 돌침대로 다가가 은하의 등허리를 후려쳤다. 학생 시절 학교 대표 배구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어머니에게 사사받은 등짝 스매시는 이불 정도로 방어할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
말로 나오지 않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소꿉친구의 모습은 예상대로였지만 그렇다고해서 화가 풀리는 건 아니다.
“왜?! 왜 때리는데?!”
엄청나게 억울한지 눈물을 글썽이며 소리를 빽 지른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스매시를 날리며 외친다. 넌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냐. 몇 번이나 말하냐. 간식은 활동비로 포함 안된다고. 그렇게나 말하는데 지금 왜라는 말이 튀어나오느냐. 게다가 스페셜 특대 파르페 세트는 대체 뭐냐. 이런 거 당당히 먹어놓고 어디 뻔뻔하게 활동내역서에 집어넣느냐 등등!
"거짓말! 근무 중에 먹은 건 활동비로 포함된다며!"
식사 외의 것은 포함 안된다고 말한 게 십 수 번은 될 거다. 네 머리는 램이니. 모래사장에 쓴 글씨가 훨씬 더 믿음직하겠다. 응? 응?
"꺄아아아!!! 아파! 아프다고!!!"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지 이 가시나야.
"꺄아아아아!!!"
한바탕 드잡이질을 벌이고 다시 정리하라고 활동영수증을 던져준 후, 자리로 돌아와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었다.
슬쩍 은하 쪽을 보니 완전히 풀이 죽어서 침울한 오오라를 풍기며 활동내역서를 정리하고 있다. 먹어도 되는 줄 알았다느니, 용돈이 위험하다느니 같은 말을 중얼중얼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애처로워 보이지만 흔들려서는 안된다. 긴급대응1반은 이미 과도한 추가예산 신청으로 학생의회 예산심의처로부터 찍힌 상태니까. 그리고 그때문에 서기국 소속인 내가 이렇게 긴급대응반에서 회계노릇을 하고 있는 거고.
얼마나 지났을까. 은하가 다시 정리해온 활동내역서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부모님께 시험성적표를 제출하는 구시대 학생 같은 모습이다. 낚아채듯 받자 어깨를 움찔하는 게 보인다.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만큼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안타깝기는 하지만 공사는 구분되어야 하는 법. 꼼꼼하게 내역서를 살폈다. 식대, 교통비, 공무집행중 민간피해소견서 등등. 이번에는 문제 없다. 진작이 이렇게 해왔으면 좋았을 것을. 다음부터는 꼭 이렇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긴급대응1반 반장 황은하 씨.
“……네에…….”
목소리에 완전히 힘이 빠졌다. 대답과 함께 비실비실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돌침대로 돌아가 이불 속에 파고든다. 완전히 풀이 죽어있다. ……에라 모르겠다.
결심을 하고 옆에 빼둔 간식거리 영수증도 전부 다시 집어넣었다. 길 잃은 아이를 위해 사준 거라던가, 학생의회 의원 접대라던가, 구실이야 많지. 다만 없었던 일로 채워넣는 건 안된다. 어디까지나 확실하게 있었던 일들에 조금 더 얹어두는 거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비리라고 볼 수 있지만, '써도 되는 돈'을 '써도 되는 경우'에 쓴 것 뿐이니까 큰 문제는 되지 않을 터다. 여기에 지금 내가 한 행위도 가감없이 적어두면 저쪽 사람들도 눈감아줄 테고.
적당히 작업을 하고 나니 말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먹는 걸로만 때웠으니까 다행이지 다른 품목이 들어가 있었으면 이렇게 할 생각도 안 했을 거다. 그렇게 완성된 활동내역서에 수결을 두면 끝이다.
그 내역서를 들고 돌침대로 다가가 은하의 어깨를 두드렸다.
“……왜.”
공허하니 퀭하고 뾰로통하니 뚱한 얼굴로 그리 묻는다. 순간적으로 다시 물릴까 했지만 이미 수결까지 둔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 되뇌며 활동내역서를 내밀었다.
“……뭐.”
좀 읽어보고서 물어봐라.
“…….”
은하는 이불 밖으로 꾸물꾸물 팔을 내뻗어 활동내역서를 집어들었다. 처음에는 심드렁하던 눈이 조금씩 놀라움에 휘둥그레지는 광경이 참으로 볼 만했지만 잠자코 있었다.
“진짜야? 진짜로 이렇게?”
벌떡 일어나 물어보는 은하의 얼굴은 방금 전과는 달리 생기로 가득차 있었다. 기분전환이 상당히 빠르구나. 여튼 진짜다. 물론 이번 만이고.
“……사랑해!"
이럴 때만이지─라고 말하기도 전에 은하는 나를 끌어안았다. 아까 때리면서 혼낸 것 때문에 마주보기 겸연쩍어서 뒤돌아 있었기에 백허그가 되었지만,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맹렬하게 부비적거리고 있는 걸 보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 듯 하다.
그래도 이제 슬슬 놔주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물론 등에 느껴지는 부드럽고 탄력적인 감촉이라던가 뺨에 느껴지는 보드라운 피부라던가 코를 살랑이는 머리카락 향기는 싫다고 할 수 없지만, 하루종일 철창을 휘둘러도 지치지 않는 체력의 소유자가 전력을 다해 껴안는 건 꽤 아프다.
“사랑해! 정말로 사랑해! 진심이야! 여보라고 부를게! 계속 옆에 있어줘! 맨날 챙겨줘! 깨워줘! 밥해줘! 청소랑 빨래해주끼야아앙앍?! 꾸엑?!”
무심코 본심이 튀어나온 소꿉친구의 이마에 딱밤 한 발을 먹여주자 그대로 뒤로 넘어가다 벽에 뒷통수를 부딪치고는 침대 위에서 경련한다. 그와중에 허벅지 위 아슬아슬한 높이까지 올라간 치마를 스리슬쩍 내려주었다. 이런 모습만 보면 누가 이 아가씨를 선도위원회 최강의 무력으로 만인지적, 무장여왕이라 불린다 할까.
“으으…… 너무해…….”
그리 말하며 허리께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내 허벅지를 배며 올려다본다. 지우개 투척에 딱밤까지 맞은 이마는 여전히 붉은 빛을 띄고 있었다. 아프지 않도록 조심스레 쓰다듬자 은하는 “흐응…….” 하고 힘빠지는 콧소리를 냈다. 꽤나 귀여운 소리다.
그러고보니 이렇게 지내기 시작한지도 벌써 1년이 넘었나. 6개월에서 1년이 되고, 그게 또 연장되고. 이대로 있으면 어째 졸업할 때까지 계속 함께할 것 같다.
문득 이렇게 우리가 지내게 된 그날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분명히…….

#@
“이대로 본편에 진입할 거라 생각하고 책장을 넘겼군! 하지만 그러한 희망은 얼어붙은 빙하 속에서 부활한 초록색 공룡의 것과 같은 초능력으로 쳐부숴주겠어! 은하가 진히로인인 것처럼 이야기를 시작시키다니. 용서할 수 없다!”
계획상으로는 일단 진히로인 맞기는 한데요. 것보다 작중 인물이 초장부터 그런 거 지적하면 이 소설의 향방이 엉망이 된다는 건 알고서 하는 말입니까 그거.
“괜찮아. 애초에 계획이라는 건 일이 시작된 시점에서 어긋나기 시작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어서 나랑 유스티 것도 써. 주연을 초반에 언급하지 않으면 어떡하겠다는 거야? 가뜩이나 서브히로인 취급인 것 같은데 이러면 곤란해. 특히나 나는 더더욱! 누님캐잖아! 가뜩이나 로리만 찾는 더러운 현실 속에서 나는 여차하면 늙다리 취급 받으며 히로인 투쟁에서 떨어져 나간다고! 하지만 괜찮아! 난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될 거니까!”
어쩌라는 거야 대체. 그렇게 생각하며 난 그제서야 문 쪽을 바라보았다. 서 있는 사람은 내 예상대로였다.
은하와 마찬가지로 교복 위에 걸친 건 선도위원회 소속임을 상징하는 코트와 긴급대응반 완장, 움직이지 않아도 불꽃이 흩날리는 것처럼 보이는 희미한 붉은 빛이 감도는 사자갈기 같은 검은 머리카락, 고양이 같은 동글동글한 눈매에 장난기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눈동자, 희한하게도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 코트를 옷걸이에 걸자 단숨에 알 수 있는 글래머러스한 몸매. 문도 안 닫고 코트부터 벗다니. 안 춥다 이건가. 하긴 추위에 강한 사람이지.
이 사람의 이름은 동방망. 태공망이 떠오르는 이름의 소유자로 일단 서류상으로는 우리보다 한 살 많은, 다시 말해서 긴급대응1반 최연장자다. 그리고 앞서 설명했다시피 매우 풍만한 몸매의 소유자로 170을 살짝 넘는 키까지 합쳐져 성인의 매력이라는 걸 마구 흩날리는 선배다. 문제는 성격이 저 모양이라는 거지만.
“쯧. 쯧. 쯧. 이 정도 말했으면 깨달아야지 섭정공. 더블 히어로 체재로 가자는 거잖아? 그쪽은 은하를 히로인으로 가져가고, 난 유스티를 데려갈게.”
그런 말을 하며 검지 손가락을 까딱거린다. 그래. 이렇게 진지한 얼굴로 헛소리를 하는 사람이다. 이 선배님은.
“싫어? 그럼 유스티를 데려갈래? 참고로 둘 다는 안돼. 인생은 등가교환이라고. 하나를 얻고 싶다면 하나를 버려야 하는 법이야. 욕심많은 나무꾼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법이야."
둘 다 데려갈 생각은 없습니다만. 데려갈 능력도 없고 말이죠. 와준다면 고맙겠지만 너무 큰 꿈이죠.
"핫, 그럼 나 받아줄 거야? 난 언제든지 OK야!"
유스티라면 괜찮지만 넌 좀 생각을 해봐야겠다.
"부우……."
뺨을 부풀리는 은하. 애냐. 하긴, 성격은 애지. 여튼 선배님. 거기 활짝 열어둔 문 좀 닫아주시죠.
"흠, 와준다면 고맙다라. 이것이 요즘 유행하는 식물계 남자인가. 최근 1년 동안 지켜본 섭정공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설마! 나를?! 큭, 이건 정말 듣도 보도 못한 발상인데!”
식물계가 아니라 초식계겠죠. 그리고 이번에는 어디서 뭘 보고 와서 그렇게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문 좀 닫으시죠. 복도한파가 들어옵니다. 난방기구라고는 사연많은 돌침대와 구시대의 유산인 기름 보일러뿐인 부실의 온기가 빠져나간단 말입니다.
내가 그리 말하자 선배는 깜짝 놀란 듯 움찔하고는 굉장히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가. 이 정도 추위, 인간에게는 치명적인가.”
어젯밤에 대체 뭘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른 문을 닫지 않으면 키탈저 사냥꾼과 레콘도 깜짝 놀랄 정도의 집요함으로 무장한 남학생이 이마투척에 특화된 경화 지우개를 당신의 이마에 5연발 속사투척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될 거야.
“쳇, 1년 동안 쓸데없는 기술만 늘어서는…….”
구시렁거리면서 문을 닫는다. 자기가 추위에 강하다고 이렇게 막나가는 건가. 이것이 바로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역지사지 정신이 부족한 현대 청소년의 태도인가.
“까칠함의 극치로 알려진 서기국원이 그런 소리를 하니 기분이 묘한데.”
망이 선배는 의자 하나를 끌어와 내 앞에 앉아 다리를 꼬며 그렇게 말했다. 일반적인 교복 치마라면 속이 보일 동작이지만 이 선배는 긴 치마를 입으니까 별 상관없다.
교칙 위반이 아니냐고? 학생의회나 선도위원회 의원직을 수행하는 학생, 혹은 교외행사에서 일정 성적을 거두어 유명해진 단체나 개인은 교복 개조를 요청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요청은 어지간하면 허가가 나온다. 국제대회나 정부 주도 하에 개최된 대회 같은 거에서 최우수상이라도 타오면 사복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의 무제한에 가까운 개조도 가능하다. 아니, 그쯤되면 아예 소재부터 최고급품을 사용해서 원하는 디자인에 맞춰 새로 뽑아준다.
대신 그렇지 못한 일반 학생들이 교복 개조를 시도하는 건 엄격하게 막고 있다. 벌점이 부과되는 건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교외봉사나 반성문 10장 같은 추가 처벌도 내려진다. 그러나 제일 끔찍한 건 교복을 개조한 학생이 개조한 교복을 착용한 사진을 찍어 공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밑에는 이런 문구를 넣는다.
[호박에 줄 그으면 수박 되냐.]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소리니? 하지만 교복에 민감한 10대 청소년들은 모두 이 처벌에 환호했으니 더욱더 끔찍한 일이지.
“거기서 그 사진을 보고 각성해서 더 이상한 개조교복 입고 사진 찍는 녀석들도 있으니 신기한 노릇이지.”
그런 녀석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녀석들이니까 신경쓰지 맙시다.
참고로 나같은 경우는 서기국원 전용복장인 로브가 있다. 처음 받았을 때는 여름에도 이거 입는 줄 알았는데 여름에는 조끼와 완장을 걸친다. 보냉제를 넣을 수 있어 좋다.
여튼 서기국이 객관성과 사실성에 얼마나 목숨을 거는지를 아신다면 까칠하니 어쩌니 말씀 못하실 겁니다. 교차검증에서 숫자 하나만 틀려도 담당자들 모여서 철야하는 집단이라구요. 어떻게든 옳게 고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게 까칠한 거잖아.”
……문득 이렇게 우리가 지내게 된 그날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분명히 그때도 이렇게 차가운 계절이었다.
“야, 야야, 야. 대놓고 내 말 무시하고 본편 들어가려고 하냐? 이거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진작에 시작했어야 했는데 망이 선배 때문에 진입 못한 거거든요? 이런 시덥잖은 얘기로 초반 분량 채워넣어봤자 재미없거든요? 얼른 본편 들어가서 화려하게 터뜨려줘야 이 글의 주 독자인 10대 남학생들을 만족시켜줄 수 있다구요.
“그런 거 너무 걱정하지마. 적당히 여자애들 벗기고 꺄아꺄아 거리면 걔들 다 만족할 테니까. 거기에 로리 아가씨들 몇 명만 더 투입하면 돼. 게임 끝이야."
그 말도 안되고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그렇게 용솟음치는 건지 모르겠군요.
"어차피 이런 글은 작가의 필력만으로 승부하는 게 아니야. 일러스트레이터가 있잖아? 그분께서 모든 걸 해결해주실 거야.”
그분은 전생에 대체 무슨 죄를 지으셨길래 이런 나열된 문자폐기물을 보고 피를 토하며 그림을 그리셔야 하는 겁니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구원은 없는 겁니까.
"이승만한 지옥이 어딨다고. 여튼 지금 벗을까? 초장부터 벗으면 후반에 가면 뭔가 굉장해지지 않을까?"
퍽이나 굉장해질 것 같습니다그려. 전 이 정신나간 텐션부터 어떻게 좀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분위기로 끝까지 대체 어떻게 끌고 갈 건데요? 라이트노벨이라는 건 차분할 때는 차분하고 폭발해야할 때는 폭발하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이 상태로는 끝까지 하이텐션일 뿐이잖습니까. 좀 진지해져야 한다고 봅니다만.
“음,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말야. 솔직히 말해서 요즘 10대들은 얘기가 조금만 진지해져도 후천성 진지증후군으로 경기를 일으키잖아? 탐그루 드래곤 라자 룬의 아이들 정도는 읽던 세대들의 진지함을 보여주는 순간 흑화해서는 시공을 오그라트리잖아?“
확실히 요즘 10대 남학생들이 그러한 세대의 진지함에 똑같이 환호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만, 그건과는 별개로 그 발언이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진지한 의견이라면 현대 청소년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연구해보시길 추천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본편 좀 들어가자고.
“응? 유스티는 소개 안해?”
“맞아. 솔직히 내가 봤을 떄 우리들 중에서 제일 인기있을 것 같은 건 유스티인데. 로리고. 착하고. 다재다능하고.”
“요리도 잘하고. 잘 챙겨주고. 신부로 삼고 싶다.”
“안돼. 내 눈에 흙이 들어가더라도 유스티는 못 데려가. 내 신부를 어딜 감히.”
“큿, 별 수 없네. 그러니까 잘 부탁쿠헥?!”
도망치지 못하게 은하의 목을 조이며 단련된 손가락으로 이마에 딱밤을 연타한다. 뒷바라지 해줄 생각도 없거니와 아무렇지도 않게 차선책으로 놔두는 건방진 아가씨가 바로 여기 있구나. 잡았다 요놈. 요놈.
“끼야아아아앙앍?!!?!?!”
누가 보면 힘없는 여고생 괴롭히는 걸로 보이겠지만 사실 놀고 있는 것이다. 무한한 전투력이 샘솟는 무장여왕이 마음만 먹으면 연약한 서기국원 하나 쯤은 단숨에 제압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나는 모르고 있었다. 은하는 이미 몸도 마음도 완전히 내게 종속되어 있었다는 걸. 마음 속에 잠들어있는 마조속성에 눈 뜬 소녀의 몸이 달아오르고 있음을.”
거기 선배님은 이상한 나레이션 넣지 좀 마시죠? 그러고보니 유스티는 어디로 간 건가요. 소개고 뭐고 사람이 있어야 할 텐데.
“우리 했던 것처럼 묘사만 해둬. 그럼 독자들이 알아서 책장 앞으로 넘겨서 일러스트 보고 올 테니까.”
난 정말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그렇게 마구 현실과 지면을 뒤섞고 있는 선배의 발언에 존경과 경의와 어처구니없음을 표하고 싶습니다. 누구든지간에 여기까지만 읽고나서 뒷부분이 어떻게 전개될 지를 추측하는 사람이 있다면 진짜 대단한 추리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겁니다.
“이것은 세계의 어둠 속에서 살아남은 이단과 요괴들과 싸우는 소녀와, 그러한 소녀와 우연히 만난 소년의 이야기,”
아니야.
“아니었어?”
아니잖아. 지난 1년을 왜곡하지 마.
“그래, 이건 기나긴 전쟁 끝에 자신들의 죄를 깨달은 인류가 신인류(포스트 휴머노이아)에게 세계의 주역을 넘겨주는 장대한 이야기야.”
뻥치지 마시죠. 이건 그냥 말도 안되는 시덥잖은 얘기들로 가득찬 별볼일없는 학생들 얘기거든요? 그러니까 독자분들은 어서 책장을 넘겨 본편으로 들어가는 게 좋습니다.
“그래봤자 여기랑 분위기는 똑같을 텐데.”
적어도 전개는 진행되잖아요.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야. 아직도 서문에서 빌빌거리고 있잖아. 시작 좀 합시다 제발.
“중심화자가 너니까 그냥 밀어붙여도 될 걸? 그런데 정말 유스티 소개 안 해도 돼? 정말 서브 히로인 취급이구나. 이 나쁜 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난 정말 너를 믿었는데! 천상계에서 사라져라 이 심해어야! 1+2 가드건트 같으니라고!”
두 사람 다 지금 본편에서 댁들 둘의 분량을 캐릭터 성격 파악을 위한 최소분량까지 줄이고, 지금까지 떠들었던 앞부분도 전부다 날려버린 다음에 유스티 분량으로 가득 채우고 싶은 욕망이 내 가슴 속에서 무한나선을 그리며 커져가고 있다는 걸 알아두길 바랍니다.
“그래도 나는 굴하지 않아! 승리와 승리의 갈피에서 나의 극을 잃어버렸을 때 맹세했어! 더 이상 약자로 남지 않겠다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강자가 되겠노라고!”
“나도 마찬가지야!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촛불의 불꽃일지언정 멈추지 않고 타오르겠어! 내 마법의 가을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스스로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알고는 있는 걸까 이 사람들.
일단 본편으로 들어갈까.

#@
딸랑.
"죄송합니다. 늦었네요."
"좋았어! 잘했어 유스티! 섭정공의 계획을 멋지게 깨트려줬어!"
"나이스 타이밍이야!"
"……네? 저기, 무슨 일이……?"
방울소리와 함께 방으로 들어오려던 은발의 소녀는 두 사람의 외침에 그 자리에서 멈춰서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이미 써먹은 전개방식을 또 쓰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진짜로 몰랐어.
"섭정공! 이제 포기해! 네 사악한 계획은 모두 끝났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제발 정신차려! 지구와 인류를 생각해!"
어떻게든 나를 쓸데없이 거창한 악역으로 만들고자 하는 그 의지를 평소 업무활동 때도 보여준다면 참으로 행복할텐데 말이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 괜찮으니까 들어와 유스티. 이 사람들 평소랑 다를 거 없으니까.
"아, 네."
그렇게 말하며 소녀는 상황을 파악한 듯 어른스러운 쓴웃음을 지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유스티. 풀네임은 유스티티아 페나에. 150은 안되는 작은 키에 구시대 기준으로 보면 열 서넛 정도 되보이는 앳된 외모의 소녀로 실제로도 나와 은하보다 두 살 어리다. 거기에 차분하게 가라앉은 황금빛 눈동자와 목 언저리에서 살짝 모아 왼쪽 어깨 앞으로 땋아내린 은빛 머리카락은 장인이 정성스레 만들어 조심스레 취급해야하는 인형 같다.
하지만 유스티는 결코 그런 연약한 소녀가 아니다. 검붉은 코트를 보면 알겠지만 학생자치의 두 축 중 하나인 학생의회 상임고문으로 활동중이며, 동시에 이곳 긴급대응반의 완장도 차고 있다. 문무겸비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거기에 긴급대응1반 세 아가씨들 중에서 제일 어른스러운 성격에 자신이 할 일은 확실하게 처리하고 해야할 말은 꼭 하는 당찬 소녀다. 그러면서도 타인을 배려할 줄 아니 금상첨화지.
“음. 예상하고 있었지만 역시 유스티에 대한 평가가 객관성을 유지하는 듯 하면서도 주관적이군. 게다가 평가가 후해!”
“역시 그런 거야?! 젊은 영계가 좋은 거야?! 그토록 헌신했는데! 두고봐. 조강지처 버린 남편는 처참한 최후를 맞이할,” 따악. “끼야아아아앙앍?!”
은근슬쩍 아내였다는 설정 넣지 말라는 의미에서 다시 한 번 이마에 딱밤 연타를 깔끔하게 때려넣는다.
“으으으으……. 그렇게 사랑한다고 했는데…….”
“정신차려 은하야. 이 남자는 네가 사랑했던 그 남자가 아니야. 이제는 여린 꽃봉오리만 눈에 들어오는 변질자라고.”
그 대사는 막장 드라마의 영향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정말, 놀래키지 말아주세요.”
코트를 옷걸이에 걸어둔 유스티는 우리들에게 그렇게 말하며 의자를 끌어와 망이 선배 옆에 앉았다. 이쪽은 제대로 정자세다. 덤으로 의자를 끌어올 때 소음이 없었던 것도 가산점을 주고 싶다.
“나도 조용히 끌어왔는데?”
앞서 벌인 일에 대해 조금이라도 반성할 생각이 없다는 건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긴급대응반 업무 끝나려면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으니까 은근슬쩍 시계를 보면서 집에 가도 되지 않느냐고 무언의 압박을 주는 건 그만두시죠. 은하 너도.
“하지만 배고프단 말야. 오늘은 진짜 열심히 일했다구.”
“나도 마찬가지야. 신나게 뛰어다녔다고. 큰 일이 안 터지고 자잘한 게 우수수 터지니까 더 귀찮아. 좀 큰 거 하나만 터지면 거기에 집중하면 되니까 좋은데.”
이 선배님이 은근슬쩍 큰 사건 터지길 바라고 있구만. 여튼 안되는 건 안 되는 일이다. 댁들이 평소에 선도위원회 소속으로 얻는 모든 특혜는 이럴 때 제대로 일한다는 전제조건 하에 받고 있는 거라고. 똑바로 일해라 학생공무원들. 유스티 뺴고.
“이 무슨 차별주의! 역시 서기국은 학생의회과 손을 잡고 선도위원회를 정권에서 축출하려고 하는 건가!”
망이 선배 계속 헛소리하면 있다가 저녁밥으로 혼자 팥죽 먹게 될 줄 아세요. 댁이 맛있다고 사 온 팥 한 가마니가 아직도 부엌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요.
“알았어. 그만 두지.”
“난 포기하지 않아! 선배의 유지를 이어,”
너도 새알심 없는 팥죽을 먹고 싶다면 계속 해라.
“죄송합니다, 서방님.”
서방님 소리는 왜 붙이냐 이 아가씨야. 여튼 간신히 두 사람이 헛소리를 멈추자 유스티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럼 30분만 기다려보고 일이 없으면 돌아가기로 하죠. 어차피 현재 교내에 남은 사람은 우리 같은 학생자치원들 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하교했으니까요. 일이 생기더라도 교내 사람들은 알아서 처리할 테고 문제가 되는 건 교외 뿐이니까요.”
사건이 터질 가능성이 높은 곳에 가 있겠다는 명분과 어서 돌아가고 싶다는 실익의 중간선인가. 난 찬성. 두 사람은?
“찬성이에용~”
“찬성이지롱~”
반대할 리가 없지.
결국 30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역시 명분이 있으니까 양심에 안 찔린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긴장까지 확 풀어버릴 수는 없다. 우리와 교대할 사람들은 우리 업무가 끝나고 그네들 업무가 시작되는 시간까지 칼같이 놀고 있을 테니까. 결국 일 터지면 우리 담당이 되버린다.
“걱정마세요. 이 근처에서 사건이 일어나 우리가 담당하게 될 가능성은 0에 가까우니까요.”
어떻게 알아?
“위성조회에서 이 근처에 인간 크기의 생명활동이 관측되지 않았으니까요. 가장 가까운 위치의 생명활동 밀집지역은 우리와 약 500m 정도 떨어져 있고, 그쪽에는 긴급대응5반이 대기중이거든요.”
인공위성을 그렇게 써도 되는 건가 싶지만 ‘별의 따님’께서 ‘기계’를 쓰는데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뭐해? 빨리 가자.”
“그래. 어서 밥을 줘. 몸에서 농부의 땀과 피와 눈물 어린 쌀이 필요해.”
그 말을 들으니 선배에게 진심으로 쌀이라는 이름의 탄수화물을 제공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 말에 이것은 가정폭력의 한 종류가 아닌가라고 외치는 선배와 그에 동의하듯 야단법석을 떠는 은하의 모습을 보자니 한숨이 나온다. 뭐, 늘상 있는 일이지.
그래, 늘상 있는 일이다. 요 1년 동안 매일 겪은 일들이지.
“핫! 흐름이 변했어! 섭정공이 본편으로 들어가기로 한 건가!”
“치사해! 알려주고 들어가지!”
난 그냥 댁들이 알아도 모른 척 해주길 바랐다는 걸 잊지 말아줘.

#@
사상전쟁 이후로 세워진 교육기관들이 대체적으로 다들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 학교만큼이나 희한하게 생겨먹은 곳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구체적인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면, 우선 대학 진학률 높은 지방 명문고이자 수도권에 가까운 특성화고라는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를 학교 선전이 버젓이 걸려있는 교문이 있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대학 진학률이란 말인가. 애초에 고등학교니 대학이니 하는 개념 자체가 소멸했는데 뭐야 대체. 과거의 유산을 복구한다는 의도는 좋다지만 이런 건 없어도 되지 않나.
다음으로는 바글바글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학생 수. 만 단위는 가뿐하게 넘어어간다. 사상전쟁 끝나고 아직 100년도 안 지난 것 같은데 어디서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몰려든 걸까. 그래봤자 넓디넓은 학교부지에 적당히 흩어져 있으니까 그렇게 안 많아 보이기는 하지만.
교육 외의 활동에 지원이 풍부한 것도 특징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동아리가 훌륭하다. 개인적으로 부활시킨 구시대의 유산들 중 가치있는 물건 순위 5위 안에 넣고 있다. 학업 외에도 다양한 실험과 활동을 지원하다니. 훌륭하다. 거기에 학생참여도와 만족도도 매우 높다. 가끔씩 관리2반이니 조사4과니 하는 이름만 들어서는 당췌 뭐하는지 알 수가 없는 심히 괴이쩍은 동아리는 물론이거니와, 검은 형제단이나 심해동창회 같은 어째 가입했다가는 창문 너머로 봐서는 안될 것을 보고 미쳐버릴 것 같은 동아리들도 보이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큰 문제는 없다. 물론 그러니까 계속 지원하는 거겠지만.
그리고 또 희한한 점은, 학생자치기관이 둘이나 있다는 것일까. 각각 학생의회와 선도위원회로 불리는 두 가지 조직이 양립하고 있는 이유는 아직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우리 학교의 원형인 구시대 학교의 유산을 그대로 따른 거라 자세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현재 가장 유력한 설은 보통 학생들 중에서 뽑은 대표들의 집합인 학생의회와 특정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의 집합인 선도위원회가 서로를 견제하고 협력하는 구조를 만들다보니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튼 그 외에도 찾다보면 불린 때마냥 술술술 나온다. 이렇게 말하니까 무슨 비리 폭로하는 것 같은 기분인데.
뭐, 그런 희한한 점들이 많기는 하지만 결코 이 학교가 싫은 건 아니다. 애초에 싫어할 건덕지가 있나. 집에서 가깝고 식당밥도 맛있고─삐. 호출입니다. 해당 서기는 이 호출을 듣는 즉시 서기국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이건 좀 싫구만.

#@
눈치챘겠지만 난 서기다. 정확하게는 학생서기국원. 보고 들은 일들을 모두 기록하면 되는 간단한 직위다. 물론 속기술 같은 거 없으면 정말 더럽게 힘든 일이지만. 사실 속기술 같은 건 없어도 된다. 굳이 그런 거 없어도 기록을 보조해주는 기계는 한가득 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서기에게 가장 중요한 건 얼마나 객관성과 진실성을 유지하느냐다. 그때문에 서기국은 기록에 한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하루 종일 교차검증을 하며 지낸다. 의심병 환자들의 공간이지.
하여튼 대체 무슨 일이길래 긴급호출인 걸까. 굳이 호출 안 해도 서기국원이 갈 곳은 서기국 뿐인데.
그 의문은 서기국장실에서 해결되었다.
“당했어.”
뭘 말입니까.
“학생의회 놈들한테.”
그러니까 뭘요.
“이걸 봐.”
최초로 제작된 것 같은, 그러니까 엄청나게 오래된 형태의 안경을 걸친 국장 선배는 그렇게 말하며 몇 장의 서류를 건네주었다. 보안등급이 정서기 이상이다. 이번에 정서기 시험을 본 나는 아직 못 보는 서류다. 떨어진다는 생각은 안하고 있지만 현재 정서기가 아니라는 건 사실이다. 봐도 되나. 국장 선배가 보라고 했으니까 괜찮기는 하겠지만서도.
여튼 서류를 살펴보았다. 요 며칠 간 학생의회 예산 심의처랑 선도위원회 세무부, 그리고 서기국 감사원이 사이좋게 돌아가며 투닥거린 내용이 쓰여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산심의처랑 세무부가 싸우고 있고 감사원이 중재안을 내놓으면 둘 다 싫다고 뻐팅기고 있다.
……서로를 죽어라 디스하다가도 감사원이 중간에 개입하면 언제 싸웠냐는 듯이 동맹해서 물어뜯는 모습에서 구시대 國K-1 높으신 분들이 떠오른다. 이런 거 배우지 좀 마 이 사람들아. 학생의회나 선도위원회 의원이면 엘리트잖아. 성적 상위권은 기본이고 거기에 온갖 전문지식으로 도배한 사람들이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투닥거려.
게다가 감사원은 왜 여기에 끼어든 거지? 애초에 서기국 감사원은 저 둘이서 어떤 안건 하나를 끝장내면 거기에 오류가 있는가 없는가 오기나 오탈자 점검해주는 것밖에 안하는 집단인데 왜 초장부터 이렇게 이름을 올리고 있는 거야?
“당한 거야. 학생의회 녀석들이 이미 완료한 거라고 보낸 게 사실은 자기네들끼리 쑥덕거리고 날치기 한 거였어. 이제 선도위원회에서 그거 가지고 트집을 잡고 학생의회랑 서기국이 손을 잡았느니 어쨌는니 하다보니까 이렇게 된 거지. 더 자세한 설명 듣고 싶어?”
너무나도 익숙한 신문 헤드라인 기사 속 國K-1들의 투쟁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데요. 그거랑 다른 점이 있다면 설명 부탁드립니다.
“없어.”
그럼 그렇지. 그래서, 이거랑 제가 호출받은 거랑 무슨 상관인가요?
“지금부터 설명해줄게. 우선 이 모든 문제는 긴급대응반 예산 심의과정에서 시작됐어.”
긴급대응반은 선도위원회 산하기관으로 교내외를 막론하고 학생 및 학사 관련 사건사고에 가장 먼저 투입되는 인력을 뜻한다. 농담이 조금 섞이긴 하지만 맨몸으로 훈련받은 성인 남성 백 명 정도는 상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인외종들이 판을 치는 곳에 예산심의의 칼날을 들이밀다니. 과연 학생의회 예산심의처. 강하다.
“의원들하고는 달리 예산심의처 녀석들은 믿을만하지. 여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긴급대응반, 정확하게는 긴급대응1반에서 좀 과하게 추가예산을 신청했는데 심의처에서 이걸 기각한 거야.”
나는 잠시 서류를 살펴보았다. 긴급대응1반의 추가예산신청서가 있었다. 확실히 작년 대비로 좀 많아 보인다. 기각될 만한 신청서인데.
“그래보이지? 근데 이걸 보고 선도위원회에서 작년 긴급대응1반 활동내역서를 제출하면서 이 정도 예산증액은 충분하 타당한 수준이라고 반박하고 나왔어.”
어디보자. ……확실히 활동량을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정도면 그냥 통과시켜줘도 괜찮지 않나?
“그랬으면 좋겠는데, 후으……. 학생의회랑 선도위원회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다보니까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단순한 일이라도 정치를 끼얹으면 복잡해진다더니 지금이 딱 그꼴이구만.
“게다가 이 건이 좀 걸리는 게 몇 가지 있어. 긴급대응1반 반장이 신청액이 변경되었다는 얘기를 했다고도 하고, 학생의회에서 신청안을 접수한 게 누군지 모른다는 얘기도 있고.”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학생자치에도 뭔가 구질구질한 음모들이 꼬이는군요.그래서 결론은 어떻게 난 건가요?
“일단 예산은 증액하는 쪽으로 결정났어. 하지만 증액폭은 4할. 그리고 긴급대응1반의 예산활용을 감시하기 위해 서기국 인력이 감찰시행한다더군.”
국장은 척 하고 나를 가리키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네가 그 감찰시행인력이다.”
그래도 됩니까? 전 이제 정서기가 되는 검증되지 못한 인력인데요?
“그래서 너인거야.”
서기국의 의중에서 최대한 자유로울 수 있으면서도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다고 인정받은 신참 정서기가 필요한 거지. 국장은 그렇게 덧붙였다.
웃기는 일이다. 서기국은 서로가 서로의 기록을 의심하고 교차검증과 위증검사를 밥먹듯이 하는 집단인데 의중 같은 게 있을까. 집단의 정치적인 의견 같은 건 있지도 않거니와 설령 있다한들 그걸 주장할 시간에 서기활동에 전념할 게 뻔하다. 자신의 사상과 주장조차도 기록의 대상일 뿐인 극단적인 기록집착자들의 집단이 뭘 좌지우지한다고.
“뭐, 바깥 양반들이 우리네 생리를 알겠냐. 여튼 그런 고로 일단 6개월간 긴급대응1반과 함께 활동하도록.”
거부권은, 말할 것도 없을 테니 넘어가겠습니다만, 1반 인원구성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요.
“여기.”
세 장의 학적서류가 책상 위에 올라왔다. 셋? 긴급대응반 인원이 이렇게 적을 리가 없는데? 최소 일곱에서 여덟은 되지 않던가?
그러나 그 의문은 곧 풀렸다. 산중규수라 불리는 도깨비 아가씨 동방망東方望에 성로의 천사Angel of Starlightway라 유스티티아 페나에Justitia Fenae라니.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꿉친구를 이렇게 보니까 기분이 어때?”
황은하. 만인지적萬人之敵. 무장여왕Queen of Weapons. 최종병기. 종언의 소녀. 파멸의 군주. 선도위원회의 깡패. 이 모든 흉흉한 별명이 전부다 은하를 가리키는 말이다.
어머니들끼리 화려했던 학창시절을 보낸 고교 동창이었던 덕분에 동네 놀이터 쟁탈전 때부터 함께했던 소꿉친구다. 현재는 서류에 써있듯 뛰어난 학업능력과 우월한 신체능력, 그리고 도무지 한계를 보이지 않는 전투능력으로 선도위원회 긴급대응반에 소속해 있는 소녀고.
국장은 뭔가 기대하는 듯한, 어딘가 놀리는 분위기가 다분한 표정이다. 그 뭐시기냐, 이왕이면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고 싶습니다만 은하랑은 간만에가 아니라 적어도 이틀에 한 번 꼴로 보고있고 30분 전에도 얘기하다가 왔습니다만?
“……왜? 소꿉친구잖아? 이제 1권 초입부인데 오랜만에 만나서 기억 속의 모습과는 크게 변한 모습을 보고 놀라고, 그때의 감정을 되새기면서 조금씩 다가가는 풋풋한 전개를 버리는 거야? 핫, 설마 소꿉친구는 친구로만 남고 새로운 히로인을 구하는 건가! 아니면 뭐야, 이미 그렇고 그런 관계인 거야?!”
그냥 어머니들끼리 교류가 많아서 계속 만나게 되는 겁니다만. 그리고 뭐가 아쉬워서 댁까지 네타 발언인 거야.
“재미없게스리…….”
누구 재밌으라고. 것보다 대체 뭘 해야하는지부터 좀 알려주시죠. 활동내역점검? 예산사용감시? 지금부터 기초회계라도 잡아야 하는 겁니까?
“아니,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야. 그냥 늘상하던 걸 하면 돼. 보이는 그대로, 들리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모조리, 가차없이, 무조건, 전부 다.”
국장은 거기서 씩 한 번 웃었다.
“기록하면 돼.”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휴문의 이용약관 개인정보보호정책
주소 : 인천광역시 부평구 평천로 132 (청천동) TEL : 032-505-2973 FAX : 032-505-2982 email : novelengine@naver.com
 
Copyright 2011 NOVEL ENGIN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