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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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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저는 지구인입니다.
글쓴이: 이클립트
작성일: 12-07-31 22:48 조회: 2,015 추천: 0 비추천: 0

프롤로그


『피와 상처로 얼룩진 야수의 입으로부터 포효가 터져나온다.
분노와 증오, 슬픔이 섞인 포효. 지금까지 군단을 지휘하면서 대형 몬스터들도 여럿 상대해보았지만, 내 눈앞에 있는 그 야수는 정말로 두려운 존재였다. 10척의 군함을 차례차례 휘감아 침몰시켜버리던 크라켄보다도, 유성처럼 창공을 가로지르던 와이번보다도, 3천명의 군단을 개미 밟듯이 짓밟던 사이클롭스보다도.
순수하게 살의(殺意)라는 면만 본다면 드래곤과 만티코어보다도 무서웠다.
수만 대군이 단 하나의 생물을 둘러싸고 있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인데도 압도당하고 있던 것은 우리들이었다.


“웃기지 마라…….”


그때.
그 야수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들렸다.


“나는 네놈들의 노예도, 전쟁의 도구도 아니야……!”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사건의 전말을 알지 못했던 그때 당시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만약 그때 그가 어떤 사정으로 이렇게까지 몰렸는지 알았더라면 조금쯤은 무언가가 달라졌을까. 그 해답은 지금도 모른다.
우리들은 병사들을 지휘하여 공격을 준비하게 했다. 창을 겨누게 하고, 화살을 시위에 메기게 하고, 기병들에게는 말을 달리게 했으며, 마법부대에게는 마법을 준비하게 지시를 내렸다.
그 순간, 야수가 외쳤다.
살의만으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면, 그 자리에 있던 우리들을 전부 죽이고도 남았을 증오를 터트리면서.


“나는, ‘지구’에서 온 ‘인간’이다아아아!!”


신력 8601년, 통일력 432년.
이 세계 엘타니아의 역사 속에, 「지구인」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한 날이었다.』


─통일력 457년 발간, 은퇴한 장군 루퍼스 운라크의 자서전
‘나는 지구인을 보았다’ 210페이지에서 발췌.


"폐하. 전령이 도착했습니다."


신하의 말에, 지금껏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에드워드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좋은 소식이 아닐거라는 것은 이미 짐작하고 있다. 그랬다면 이렇게 침통한 표정으로, 그리고 공포와 절망마저 섞인 목소리로 말하고 있진 않을테니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최악'의 소식이 아니길 비는 것 뿐이다. 에드워드는 남몰래 마른 침을 삼키며 그렇게 생각했다.


"들라고 하라."


곧이어 한 사람의 전령이 알현실로 들어온다.
갑옷의 여기저기에는 피가 묻어있고, 전령 본인도 어깨에 화살이 꽂혀있는 등 상처투성이. 그런데도 치료보다 먼저 이곳으로 오게 한 것은 그만큼 급한 보고라는 의미다.
에드워드는 전령이 무릎을 꿇기도 전에 손을 들어 제지했다.


"격식을 차리는 것보다 보고를 먼저 하도록."
"예, 예……!"


전령은 에드워드의 말에 안그래도 긴장해있던 몸을 더더욱 긴장시키며 잠시동안 침묵을 지켰다.
본래라면 국왕의 명령을 듣고도 곧바로 따르지 않았으니 크게 호통을 쳤을 일이지만, 지금의 에드워드나 주변의 다른 신하들에게나 그럴만한 기력도 정신적인 여유도 없다. 그저 전령의 말을 기다리고 있을 뿐.
이윽고, 전령의 입이 떨어졌다.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던 카이몬 요새가 놈들에게 함락됐습니다. '적'들은 이미 이 왕도를 목표로 진군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최악이다. 에드워드의 머리 속에는 그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에드워드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다른 신하들도 전령의 말에 동요하여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마지막 요새에서 이 왕도까지는 고작해야 일주일 거리. 하물며 그것은 사람이 말을 타고 달렸을 경우의 이야기이며, '적'들의 비상식적인 속도를 생각하면 사흘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마침내 그 저주스러운 마물들이 이곳까지……!"


지금 그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대는 인간이 아니다.
북쪽의 대지에서부터 중앙 산맥을 넘어 이곳 남쪽으로 내려온, 인간이 아닌 몬스터들로 이루어진 마왕의 군단.
그들은 산맥을 넘은지 불과 2주일만에 남쪽의 국가 하나를 멸망시켰고, 그곳을 근거지로 삼은 채 본격적인 침략을 개시했다. 그 전력과 기세는 문자 그대로 '압도적'. 전쟁이 시작되고 2년이 지난 지금은 남쪽 대지의 국가 중 절반이 멸망한 상태다.
왕국들이 힘을 합쳐 만들었던 연합군은 이미 괴멸 상태. 지금은 어떤 나라든지 자신의 나라로 쳐들어오는 마왕군을 막기에만 급급할 뿐이고, 그나마도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을만큼 위태로운 상태다.
물론, 그 점에 있어서는 이 지그로드 왕국도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카이몬 요새는 수호신 계약을 맺은 타이탄(Titan)이 지키고 있었잖나……."
"그런데도 버티지 못했다는 건가."
"그 전에 무너진 벨라스타 시티는 마도사 연합의 본부가 있는 곳이었지."
"역시, 우리들로서는 놈들을 이길 수 없는 걸지도."


신하들 사이에서 동요가 커져가자, 에드워드는 손에 쥐고 있던 홀로 바닥을 강하게 때렸다.
따악하는 소리와 함께 웅성거림이 잦아들어가자, 고개를 옆으로 돌려 대신에게 물었다.


"용사는 어떻게 됐나?"
"그것이…… 신전의 연락에 따르면, 성검을 찾기 위한 여행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에드워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침음성이 더더욱 커졌다.
왕국의 군대는 이미 무너졌고, 용사는 여행을 떠난 채 소식이 없다. 왕국을 지켜주기로 했던 타이탄은 그 맹약에 따라 마왕군에 맞서다 쓰러졌으며, 다른 나라들 또한 이곳을 지원해줄 여력이 없다.
자신들은 이제, 마왕군의 공격 앞에 완전히 노출된 것이다.


"이대로라면, 이 왕국은 멸망하는 길밖에 없는 것인가……."
"폐하. 무슨 그런 말씀을……."


대신의 말도 에드워드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그것 뿐이라면 좋다. 왕국이 멸망하고 국왕인 자신이 마왕군에게 참수당하는 걸로 끝난다면 차라리 목을 내주고 항복하는 것도 아주 나쁘진 않을 것이다. 당연히 에드워드도 인간인 이상 목숨을 잃는 것은 두렵지만, 지금보다 백성들의 피해가 커지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족 자체를 짓밟는 것. 항복하면 남는 것은 영원히 이어지게 될 비참한 미래 뿐이다. 이미 그런 꼴이 된 나라도 몇개나 있고.
무언가 방법은 없을까.
자신의 목숨이나 왕국은 둘째치고, 하다못해 사람들의 목숨만이라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 한 가지,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 궁정마법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번쩍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으로서는 지푸라기는 커녕 거미줄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니까.


"무엇인가, 그게?!"
"성공할지 어떨지도 모르고, 과연 저희들의 뜻대로 될지도 알 수 없습니다만……."


궁정마법사는 잠시 말을 끊고 한 차례 크게 한숨을 내쉰다.
그 표정은, 조금 전 요새가 돌파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 더욱더 딱딱하게 굳어져있었다.


"백년 전, 이 대륙에서 일어났던 「왕국 사냥」 사건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거야 물론,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


무의식적으로 대답하던 에드워드는 입을 다물었다. 궁정마법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단번에 이해했기 때문이다.


"서, 설마 자네 지금……."
"짐작하신대로. 허락만 해주신다면, 「금주(禁呪)」를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에드워드의 얼굴은 하얗게 되는 것을 넘어 푸른 색으로 변해갔다.
그런 그를 대신하여, 주변의 다른 신하들이 아우성쳐주었다. 본의는 아니겠지만.


"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마왕군만으로도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운 이때에 백년 전의 참극마저 재현하자는 것인가!"
"그런 짓을 했다가는 마왕군이 오기도 전에 나라가 없어져버릴거요!"
"미쳤군, 미쳤어! 연구실에 틀어박혀 마법연구만 하다보니 완전히 미쳐버렸군!"


하지만 주변에서 아무리 떠들고 소리쳐도, 궁정마법사는 그들 쪽으론 돌아보지도 않았다.
오직 국왕인 에드워드만을 바라보며,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계속 지껄이던 신하들도 입과 목이 아파 말하기를 그만두었을 무렵, 마침내 에드워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 지금부터 시작한다면 얼마나 걸리겠나."
"폐, 폐하!"


신하들은 대경실색하여 에드워드를 돌아보았지만, 에드워드도 궁정마법사도 그쪽은 깨끗이 무시했다.
궁정마법사는 재빨리 에드워드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재료를 모으는데 하루, 제단을 쌓는데 하루, 의식을 거행하기까지 하루. 사흘이면 됩니다."
"…… 마왕군이 이곳까지 도달하는 예상 시간이 사흘이었지. 그걸 생각하면 빠듯하군."
"예. 그렇기 때문에 하려고 한다면 한시라도 빨리 시작해야 합니다."


에드워드는 힘이 빠져버린 듯이 옥좌에 몸을 맡겼다. 안그래도 60을 넘긴 몸인데 연달아서 충격적인 이야기만을 들은 탓이다.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대신이 끼어들었다.


"폐하! 안됩니다! 백년 전의 일에 대해선 폐하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설령 '불러오는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불려온 자'가 저희들을 구해준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금주를 사용했던 사이피로스 왕국이 어찌되었는지 기억해주십시오!"


그에 질세라 이번에는 궁정마법사가 발언한다.


"그때의 일은 사이피로스 왕국의 자업자득이었습니다. '불려온 자'를 인간이 아닌 전쟁의 도구로서 취급하려고 했고, 죽을 때까지 노예로 부리기 위해 종속의 낙인까지 찍었지요. 그 결과 '불려온 자'는 폭주를 일으켜 사이피로스를 멸망시키고, 그때 입은 상처와 취급의 원한으로 인해 무차별적으로 인간을 학살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 또한 우리들처럼 이성이 있고 지성을 가진 존재, 우리들이 지금 처한 상황을 잘 설명하고 그를 존중하면서 간곡히 부탁한다면 무시하지는 않겠지요. 게다가……"
"게다가?"


어느 사이엔가, 에드워드와 대신을 비롯한 이 자리의 모든 이들이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궁정마법사는 빠르게 말을 하느라 가빠진 호흡을 진정시키고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마왕군이 코앞까지 닥친 상태에서 불러온다면 더욱 좋습니다. 싸우지 않으면 마왕군에게 죽게 될테니 싫어도 싸울 수밖에 없겠지요. 설령 백년 전처럼 폭주를 일으킨다고 해도, 그 대상은 가까이 있는 마왕군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제아무리 막강한 전력을 가진 마왕군이라도 어느 정도의 타격을 입게 된다.
그 말은 곧.


"…… 최소한, 이 왕도에서 놈들의 발을 묶어 다른 곳까지 피해가 미치는 건 막을 수 있다는 소리군?"
"폐하!"


소극적인 허락이나 다름없는 이야기에, 대신을 비롯한 신하들이 절망에 빠진 얼굴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에드워드는 속으로 쓴웃음을 금하지 못했다. 이 자들은 이 상황에서 아직도 이런 일로 절망씩이나 하는 것인가, 라고.


"그만. 그대들도 알다시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이 지그로드 왕국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오. 마왕의 손에서 인간을 지켜내느냐 아니냐가 걸린 싸움이란 말이오. 그런 상황에서, 왕국 하나로 놈들을 저지하고 용사가 자신의 사명을 다할 시간을 번다면, 그렇게 해서 인류의 미래가 지켜진다면 충분히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는데."


무엇보다, 이 방법을 택할 경우엔 잘 되든 못 되든 저 마왕군에게 크게 한방 먹여줄 수 있을 것이다.
설령 나중의 역사책에, 「참극을 재현한 어리석은 왕」으로 기록될지언정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목숨을 걸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궁정마법사는 들으라. 왕도에 남아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라도 지원해줄테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게."
"왕명을 받들겠습니다!"


백년 전.
이곳 엘타니아 대륙을 통일하려던 야심을 품은 사이피로스 왕국이 금주를 사용하여 불러온 '존재'가 있었다.
그를 세뇌하여 자신들의 도구로서 사용하려던 사이피로스 왕국은 오히려 그의 폭주에 휘말려 멸망해버렸고, 그 피해는 인접해있던 수많은 나라에까지 미쳤다. 그 결과 왕국들은 연합군을 결성하여 추격하기 시작했고, 7일 낮 7일 밤동안 몰아넣은 끝에 간신히 토벌할 수 있었다.
혼자서 나라 하나를 멸망시키고.
인접해있던 수많은 국가들을 위협했으며.
이 세계 최강의 생물인 드래곤과도 정면으로 맞섰다고 하는 그 '존재'.
지금에 와서는, 참극을 불러온 공포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그 이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구인 소환 의식」을 성공시키도록!"

챕터 1 : 지구인


누구라도 어렸을 때 TV에 나오는 픽션들을 동경한 적이 있을 것이다.
만화든, 영화든, 드라마든, 뭐든. 거기서 나오는 영웅이나 악당, 혹은 이야기 자체에 매료되는 경험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다가 성장하고, 철이 들고, 세상을 알게 되면서 점점 현실을 깨닫게 된다.
이 세상에는 세계를 정복하려는 악당도 없고, 그에 맞서는 영웅도 없으며, 마법이나 초능력같은 것도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령 정말로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자신과는 상관도 인연도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그런 식으로 현실에 수긍하고, 적응하면서 어린 시절의 꿈에서 깨어나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아무리 현실을 깨닫고, 그것에 순응하여 살아가게 되어도.
환상을 동경하는 그 마음 자체는, 가슴 속 어딘가의 한 구석에 남아있다. TV 속의, 책 속의 만들어낸 이야기를 보며 '이런 일을 겪어보고 싶다'라거나 '이런 것들을 실제로 보고 싶다'같은 기분이.
내가 지금의 상황에 빨리 익숙해질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이유때문일지도 모른다.


"고, 고, 공주님! 큰일났습니다!"


리아나 엘 란티안은 느닷없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녀의 비취빛 눈에는, 방문을 거칠게 열어젖히고 안으로 들어오는 근위병의 모습이 비추어졌다.
근위병은 리아나의 책상 바로 앞까지 뛰어온 후 고개를 숙이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고, 공… 주님… 큰일… 났……."
"… 일단 숨부터 돌리고 말해. 그러다가 숨 넘어가겠어."


한숨이 섞인 리아나의 말에 근위병은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몇번인가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기를 반복하고서 진정했다.
간신히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처럼 보이자, 이번에는 리아나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별볼일 없는 이유라면 다른데 가서 말해."
"'그 꼬마'가 없어졌습니다!"


… 또인가. 이렇게 사색이 되어서 뛰어오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생각보다 별 거 아닌 일이라서 다행이다.


"별 거 아닌 일이 아니라구요! 아침 식사를 가져다 준 하녀의 말에 따르면 분명 그때까지는 있었다고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 근위병들이 흩어져서 샅샅이 뒤지고 있습니다만, 왕궁 내부에서는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리아나에게는 지금 그 소년이 어디에 있을지 대강 짐작이 갔다. 그리고, 근위병들이 '왕궁 내부'를 찾고 있는 이상 절대 찾지 못할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다.


"아, 그래. 그럼 열심히 찾아봐. 나도 시간나면 도와줄테니까."


그러나 리아나는 그것을 근위병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 소년의 성격으로 짐작해보면 딱히 자신이 말을 하지 않아도 말썽이 일어날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위병들이야 발품을 좀 팔겠지만, 그 소년도 하루에 어느 정도는 사람에게 시달리지 않는 시간이 있어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한가한 말씀을 하실 때가 아닙니다!"


하지만 근위병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언성을 높이며 그렇게 말했다.
리아나는 서류로 향했던 시선을 다시 그에게 향했고, 그제서야 자신이 왕족을 향해 소리를 치는 무례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은 근위병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한다.
물론 리아나는 그런 것으로 근위병의 목을 날려버릴 생각이 없었고, 손을 흔들어 계속 말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 그게… 지금 그 꼬마의 관리는 공주님께서 맡고 계신 것으로 되어있으니까, 만약 그 꼬마가 왕궁에서 도망치기라도 한 것이라면 공주님의 책임문제가 됩니다. 지금 왕궁의 사정을 생각하면 그런 것은 굉장히 곤란하지 않을까 하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근위병들은 모두 왕가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이들만으로 구성된다. 거기에 지금 이 나라가 돌아가는 걸 생각하면 사소한 사고 하나도 커다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르는 이상 그가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 하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신용이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슬슬 그런 짓을 할 성격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줘도 좋을텐데.


"괜찮아.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모를 정도의 바보도 아니고, 나하고 한 약속을 깨트릴만큼 의리없는 것도 아니니까."
"… 믿고 계시는 겁니까? 그 꼬마를."
"글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잠깐 고민하던 리아나는 곧 알맞은 말을 생각해냈다.


"한번 약속한 건 설령 어린애처럼 손가락 걸고 한 약속이라도 그 녀석은 절대로 깨지 않아.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는 믿고 있어. 그러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돼. 오히려…… 나로선 '다른 한쪽'이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그쪽은 어때?"


그 말을 듣는 순간, 근위병의 얼굴이 다른 의미로 딱딱해졌다.
조금 전의 얼굴이 난처해지는 바람에 안절부절못하는 얼굴이었다면, 지금의 얼굴은 정말로 심각하게 굳은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쪽에서 먼저 마물 토벌을 위해 병사들을 파견했습니다만…… 요청조차 하지 않았는데도 마음대로 출격해버렸다고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 그래. 그렇단 말이지."


리아나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그녀의 머리속에는, 저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실하게 영상으로 떠오르고 있었으니까.


마물, 몬스터를 토벌하는 일은 숙련된 전사나 기사라고 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우수한 전사들이며, 뛰어난 살인 기술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더해 인간에게는 없는 특수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그리 드물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그들이 천성적으로 타고난 흉악함과 잔혹함은 그들이 가진 힘과 능력을 가장 강력하고 효율적으로 발휘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몬스터의 토벌은 보통 대상이 되는 몬스터들보다 많은 숫자의 병력으로 이루어지며, 그렇게 해도 방심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몬스터와의 싸움에서 한 순간의 방심은 곧 죽음을 의미하니까.
바로, 지금 이 경우와도 같이.


"우와아아앗!"
"물러서지 마라! 이쪽은 200명이다! 저쪽의 열배가 넘는다고!"


기사의 필사적인 외침에도 병사들은 몬스터들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서서히 무너져가기 시작했다.
보통 인간보다도 월등히 커다란 육체에 녹색의 피부. 돌과 뼈로 된 갑옷을 걸치고, 돌도끼와 돌망치를 휘둘러 병사들을 날려버리고 있는 이 몬스터들은 트롤(Troll)이라고 불린다.


[워오오오오옥!]


트롤들의 숫자는 전부해서 스물 남짓. 기사가 말한대로 이쪽 병력의 10분의 1이 될까 말까한 숫자지만, 트롤들의 괴력과 저돌성은 메우고도 남았다. 그들의 견고하면서도 질긴 피부는 병사들이 내지르는 창으로는 거의 뚫을 수 없었고, 그들이 휘두르는 돌도끼는 병사들이 앞으로 내민 방패를 산산히 때려부쉈다.


"타아아앗!"


그때, 기사 한 사람이 가장 앞에 나와있는 트롤을 향해 달려들었다. 원래부터 거구인 트롤들 중에서도 한층 더 커다란 체격을 갖고 있던 그 트롤은 기사가 다가오는 것을 보자마자 엄청난 기세로 돌망치를 휘둘렀다.
그 순간 기사는 몸을 앞으로 굴리며 돌망치를 피해냈고, 몸을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검을 휘둘러 트롤의 왼팔을 잘라낸다. 그때 일어나는 기세가 너무 심했던 탓인지, 트롤의 팔을 베어내자마자 기사는 앞으로 쓰러져 몇바퀴를 구른 끝에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하지만, 겨우 몸을 일으키고 뒤로 돌아서는 순간.
왠만한 통나무처럼 굵은 트롤의 다리가 기사의 몸통을 강타했다.


"커헉……!"


기사의 몸은 십수미터 이상을 날려가 바닥을 굴렀고, 입에서는 피를 토했다.
그런 반면 트롤은 잘려나가서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왼팔을 주워들어 절단 부분에 갖다댔고, 이윽고 완전히 재생되어 잘리기 전과 다를 바없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트롤이 가진 특수 능력. 아무런 치료가 없어도 신체를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몬스터는 여럿 있지만, 트롤만큼 빠르고 강력한 재생 능력을 가진 몬스터는 만월의 웨어울프 이외에 없다.
단순히 힘과 전투 기술이라는 면에 있어서는 비슷한 녹색 피부의 거인인 오우거(Ogre) 쪽이 위일지도 모르지만, 트롤이 가진 이 재생력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저돌성, 그리고 상처입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광폭함은 어떤 의미로는 오우거 이상이라고 평가받도록 하게 만든다.


"크윽…… 마법사 부대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거냐!"


기사가 당하는 것을 본 지휘관이 다급하게 외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무정했다.


"그게,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바보같은 소리를…… 우리가 돌파당하면 다음은 성문이고, 그 뒤에 있는 것은 주민들이 살고 있는 거주구다! 단 한마리라도 안쪽으로 들어가면 도대체 몇명이 살해당할지, 놈들은 그걸 알고는 있는 거냐?!"


지휘관은 그렇게 분노를 터트렸지만, 그런다고 해서 없는 마법사들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일은 없다.
그러는 동안에도 트롤들은 점점 성문을 향해 가까워지고 있었고, 병사들의 진형은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 것처럼 위태로워보인다.
무언가 다른 방법이 없을까.
그렇게 생각할 무렵.


"…… 대장님! 성문이 열렸습니다!"
"이제야 도착한 건가, 망할 마법사 녀석들……!"


불의 마법을 사용해, 트롤의 육체를 태워버릴 수 있는 마법사들만 있다면 이 싸움도 해볼만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성문쪽으로 돌린 지휘관은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성문을 통해 나온 것은 그가 알고 있는 마법사들도 아니고, 다른 성문에서 와준 지원군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왕궁의 훌륭한 기사가 나와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매우 음침하고 마른 몸에 허약해보이는 청년 한 사람.
트롤이 아니라 자신이 한대 툭 때려도 뼈가 부러져버릴 것 같은 인상의 소유자였다.
청년은 트롤들이 병사들을 격파하며 성문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도망치지도 않고 아우성치지도 않았다. 단지 여기서도 보일만큼 짙은 미소를 띄우며, 트롤들을 향해 걸어갈 뿐이다.
평소였다면 그런 것을 보고서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 달려가서 뒷덜미를 잡아채 성문 안으로 끌고가던지, 아니면 하다못해 오지 말고 도망치라고 소리치기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휘관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병사들을 향해 있는 힘껏 소리를 쳤을 뿐이다.


"전원 후퇴! 물러나라! 괴물들 싸움에 휘말리지마라!"


틀림없다. 이 세계에는 없는 섬유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있는 저 청년.
만약 그 정체가 자신이 생각하는대로라면 자신들은 여기에 있어서는 안된다.
지휘관의 필사적인 외침이 병사들에게 닿은 탓일까. 병사들은 죽을 힘을 다해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 결과 성문에서 나온 청년은 아무런 장애물도 없이 트롤들의 앞에 설 수 있었다.
그는 바닥에 있는 병사의 시체로부터 창을 빼내 들어올렸고, 그것을 쥔 채 몸을 뒤로 젖혔다가 있는 힘껏 휘둘러 던졌다.
─쒜에에에엑!
던져진 창은 공기를 둘로 갈라버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날아가, 가장 앞에 있는 트롤의 가슴을 뚫어버리고는 바닥에 박혔다.


[카아아아아악!]


트롤은 포효라기보다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그가 입은 상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재생하기 시작했고, 곧 트롤은 몸에 박혀있는 창을 꺾어버리고는 자신의 몸밖으로 꺼내 땅에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이상으로 살의와 투지가 가득 담긴 눈으로 청년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청년은 이미 트롤의 반응같은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처음부터 청년에게 방금 그 공격으로 트롤을 쓰러트릴 생각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여기 오기 전에 익혀두었던 지식이 얼마나 쓸모가 있는 알아보기 위한 시험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으니까.
역시 들었던대로, 심장을 부숴도 금새 재생해버리니 그쪽을 향한 공격은 소용없다. 그리고, 생물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인 심장조차 저 모양이라면 그 이외의 다른 곳도 큰 효과가 없을 것이다.


[고오오오오옥!]


방금 전 공격을 당한 녀석을 비롯하여, 십여마리의 트롤들이 일제히 청년을 향해 달려왔다.
보통 사람보다 훨씬 큰 녹색의 거인들이 지축을 흔들며 달려오는 그 모습은 어지간히 전장에서 잔뼈가 굵어진 전사라고 해도 겁을 먹기에 충분한 광경이다.
그러나 그런 것을 바로 정면에서 보고 있음에도, 청년은 단지 이빨을 드러내며 웃음을 띄울 뿐이었다.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는 트롤들을 앞에 둔 청년의 몸이 작게 경련을 일으켰다.
그 직후에, '변화'가 시작된다.
청년의 키가 커지고, 옷이 찢어지며 그 아래에 있는 몸이 드러난다.
그 마른 몸이 갑자기 팽팽하게 부풀어오르며 근육으로 바뀌고, 몸 여기저기에서 생겨난 청록색의 비늘과 날카로운 외골격들이 전신을 뒤덮어 갑옷과 투구의 형태가 된다.
강철조차 찢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손톱과 발톱이 튀어나와 아무것도 없던 몸의 무기가 되고, 허리 부근에서 자라난 꼬리는 땅을 후려쳐 암석을 깨부수며 강인함을 과시한다.
그 일련의 변화는, 흉폭한 트롤들조차도 경악하며 질주를 멈추게 만들만한 것이었다.
2m가 넘도록 성장하면서 청록색의 전신 갑옷과 투구처럼 변해버린 육체.
악어의 머리와도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머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발로 서서 이쪽을 보고 있는 그 모습은 어딜봐도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럼, 시작해볼까.”


그 '인간이 아니게 된' 이형(異形)의 괴인이 포효한다.
아까 전 트롤들이 내질렀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힘이 담겨있으며, 땅을 흔드는 듯한 괴수의 울음소리.
동시에 그것은,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악어괴인'이 한발짝 앞으로 나가는 순간, 트롤들은 패닉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며 달려들어왔다.
하지만 그것은 아까 전 인간의 병사들을 상대로 행했던 것처럼 적의와 파괴본능의 표출이라기보다, 눈앞에 있는 너무나도 두려운 존재를 배제하기 위한 몸부림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움직이기 시작한 트롤은 스무 마리 중에서 다섯. 그들은 손에 들고 있는 커다란 돌도끼와 돌망치들을 휘둘러 악어괴인을 공격했다.
그것을 확인한 악어괴인은 그 공격을 피하지도, 막아내지도 않았다. 단지 자세를 약간 낮춰 몸을 굳히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트롤들의 무기가 악어괴인의 몸에 닿는 순간.
엄청난 파열음과 함께, 무기들이 산산히 부서진다.


[고옥?!]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트롤 중 하나가 자루만 남은 무기를 든 채 경악성을 올린다.
그 뒤를 이어서 다른 트롤들이 채 반응하기도 전에, 악어괴인이 먼저 움직였다.
가장 앞에 있는 트롤을 향해 펀치. 기술이고 뭣도 없이 그저 주먹을 쥐고 내지르기만 했을 뿐인 단순한 공격이다. 권투나 싸움의 달인이 봤다면 코웃음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그 단순한 공격에, 트롤의 방어가 뚫리고 머리가 날아갔다. 아무리 재생력이 뛰어난 트롤이라고 해도, 머리가 날아가버려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다. 물론 머리가 날아가고도 한동안 재생하기 위해 꿈틀거렸지만, 결국 머리만은 재생시키지 못한 채 숨이 끊어졌다.
평균적으로 240Cm를 넘기는 거체의 트롤이, 머리 두개는 작은 정체불명의 괴인에게 단 일격을 받고서 목숨을 잃고 쓰러졌다. 그 사실은 다른 트롤들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전원이 아연하게 굳어져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악어괴인의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트롤 하나를 쓰러트린 기세를 타서 앞으로 한발짝 나아가 다리를 휘두른다. 두번째로 가까이에 있던 트롤의 다리에 로우킥. 악어괴인의 발이 닿는 순간, 트롤의 다리는 '빠각'하는 소리와 함께 본래라면 꺾일 리 없는 방향으로 꺾인다.
다리가 부러진 트롤이 한쪽 무릎을 꿇어버리자, 그 얼굴에 주먹을 휘둘러 뭉개버렸다. 그것으로 두 마리 째.
얼굴이 뭉개진 채 쓰러진 트롤의 머리를 완전히 밟으면서, 악어괴인은 남은 트롤들을 돌아보았다. 비록 얼굴을 감싸고 있는 갑각 때문에 확실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그가 지금 웃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좋다.
이곳은, 이 세계는 정말로 좋다.
'저쪽'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자신이, '이쪽'에서는 최강의 영웅이 될 수 있다.
저쪽에서는 상상도 해본 적 없는 괴물들과 만나고.
그들보다 더욱 압도적인 힘으로 짓밟아줄 수 있다.
이것보다도 더 큰 희열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트롤들이 쓸모가 없어진 무기 자루들을 버리고 맨주먹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무기가 없다고는 하지만 트롤의 주먹은 바위조차 깨부수는 흉기. 그것을 믿고 하는 행동이었다.
물론 악어괴인에게 있어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투지를 불태우며 덤비면 덤빌수록, 자신의 힘과 승리가 더더욱 돋보이게 될테니까.
지금 이 모습을 보고 있는 병사들 모두가 그 증인이다.


[「스톤 미스트」!!]


압도적인 희열에 휩싸인 채, 악어괴인은 몸을 크게 뒤로 젖혔다가 앞으로 나아가며 소리친다.
입 부분을 가리고 있던 갑각이 열리면서, 입에서부터 흑회색의 기분나쁜 안개가 방출된다. 마치 화산에서 용암이 분출되는 것처럼 맹렬한 기세로.
안개는 가장 가까이 다가온 트롤 다섯을 눈깜짝할 사이에 휘말아버렸고, 트롤들은 그 안에서 비명을 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개가 걷히고 그 안에 있는 것들이 드러났다.
─완전히 돌로 변해버린 채 영원히 움직일 수 없게 되버린 트롤들이.
조금 전에는 병사들을 몰아붙였고, 그 전에도 민간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일컬어지던 트롤들의 모습은 이제 거기에 없다. 지금 남은 것은 그저 5개의 석상들 뿐. 이 공격의 앞에서는, 트롤이 얼마나 강한 재생력을 가졌는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돌이 재생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악어괴인은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트롤들이 변한 석상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그때마다 하나씩 석상이 파괴되고,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이길 수 없다.
아무리 자신들의 몸이 더 크고, 자신들의 숫자가 더 많아도.
이 정체불명의 괴물을 상대로 싸워서는 이길 수 없다.
트롤들의 머리 속에 그런 생각이 스쳐가는 순간, 녹색의 거인들은 일제히 몸을 뒤로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자존심이 상하고 꼴사나워도 일단은 살고 봐야하니까.
그렇지만.


[어이어이, 어딜 가는거야. 너희들은 말야, 전부 제물이라고. 이 내가, 이 세상에서 영웅이 되고 써나갈 전설의 일부분! 그런데, 감히 도망을 치겠다고? 그렇게는 안되지!]


악어괴인은, 그들을 단 한마리도 놓칠 생각이 없었다.


[「소환」! 알디나, 카르키오스!]


그는 악을 쓰듯이 소리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두번째 힘'까지 아낌없이 사용한다.
그 순간 그의 등뒤에 있는 지면에, 흑회색의 마법진 두개가 생겨난다. 하나는 직경 2m 정도의 소형, 그리고 또 하나는 못해도 5m는 넘어갈 것 같은 대형의 마법진.
각각의 마법진의 중앙에서, 두개의 인영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인영은 마법진의 숫자와 마찬가지로 두개. 하지만 완전히 드러난 그 모습은, 어느 쪽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작은 마법진에서 나온 것은 정확히 인간과 비슷한 크기. 등에는 칠흑의 박쥐 날개 두 장이 달려있고 칠흑색의 긴 머리카락이 늘어져있으며, 자주색의 눈동자는 요염하게 빛을 발하며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등 뒤의 날개와 지금 그녀가 입고 있는 가린 곳보다 가리지 않은 곳이 더 많은 복장으로 미루어보면 그녀의 정체를 추측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큐버스(Succubus). 남성을 유혹하는 몽마형의 마족이, 흑빛의 창을 들고 날개를 펼친다.
하지만, 그녀의 매혹적인 모습도 커다란 마법진 쪽에서 나온 것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위압감이라는 측면에서는. 큰 마법진 쪽에서는 그에 걸맞게 '커다란 것'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마치 지금 도망치고 있는 트롤을 몇배로 불려놓은 것 같은 갈색 피부의 거인. 안면은 두건에 의해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이마에는 작은 뿔 하나가 돋아나있었다. 확실하게 추정할 수는 없었지만, 거인족(Giant)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그가 들고 있는 망치는 단 한번만 휘둘러도 성곽을 부술 수 있을 것처럼 거대했다. 그럼에도, 거인은 무거운 기색조차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루고 있었다.
두 마족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자, 악어괴인은 손을 들어올려 트롤들을 가리킨다.


[한 마리도 남기지 말고, 전부 없애버려라.]


그 말로 인해 시작된 것은, 싸움이 아닌 일방적인 학살.
서큐버스가 꺼낸 대낫이 트롤 하나를 세로로 절단한다.
거인이 내리친 망치로 인해, 트롤 셋이 한꺼번에 '고깃덩어리'로 다져진다.
그리고 악어괴인 또한 함께 움직이면서, 양팔에 꺼내든 커다란 손톱들로 트롤들을 베어가른다.
그 압도적인 공격 앞에서 트롤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도망치다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것밖에 없었다.
악어괴인, 정확히는 그 이전의 모습이었던 청년이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지 3분 남짓.
자신들의 열배가 넘는 숫자의 병사들을 압도하던 트롤이 전멸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며.
지휘관은 허망함이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게…… 「지구인」인가……."


리아나는 지구인이라는 존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 세계 엘타니아와는 다른, '지구'라는 세계에서부터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이세계 생명체.
그 힘은 단 한명이서 국가간의 균형을 깨트릴 수도 있을 정도이며, 일설에 따르면 최상위 계급인 킹(King) 클래스의 지구인은 이 세계 최강의 존재인 드래곤과도 맞설 수 있다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리아나가 지구인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단지 강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어떤 힘을 가지고 있든 그것을 제대로 사용한다면 불만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토록 막강한 힘을 가진 지구인 중에 자신의 힘을 자제하려고 하는 이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 막강한 힘으로 전쟁터에 뛰어들어 자기 멋대로 휘젓는 것은 별로 드문 일이 아니고, 자기 자신만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힘을 사용하는 것도 흔한 일이다.
이제 엘타니아에 존재하는 국가들의 힘은, 보유하고 있는 지구인의 숫자로 결정될 정도다. 물론 국가에 소속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세력을 만들거나 방랑하는 지구인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쪽은 극소수. 이 세계에 소환된 대부분의 지구인들은 어느 특정 국가에 소속되어, '국가를 위해서'라는 미명 아래에 자신들의 힘을 마구 남용하고 있다.
지금의 이 세상은 무언가가 잘못 되어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힘을 가질만한 인격도 자격도 없는 자들이 무더기로 나타나 이 정도로 엉망이 되진 않았을테니까. 지구인의 힘을 볼 때마다 리아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예외'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것은 지구인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그녀의 눈앞에 있는 이 소년처럼.


"제인아."


리아나가 부르는 소리에, 누워있던 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푸른 빛이 감도는 흑색의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를 함께 가진 소년.
체구는 리아나보다 작고, 전체적인 선도 가늘다. 남자라고 하기엔 너무 아름다운 외형은, 리아나가 처음 그를 봤을 때 여자아이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했을 정도다.
무엇보다도 리아나가 마음에 들어하는 것은 그 눈이다. 계속 들여다보고 있으면 빨려들어갈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깊은 곳에서 반짝이는 듯한 느낌까지 드는… 그런 신비한 눈. 딱 하나 유감인 부분이 있다면 왼쪽 눈은 항상 감고 있었기에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제인의 말에 따르면 '지구'에 있을 때는 멀쩡했다고 하는데, 엘타니아에 온 이후부터 뜰 수가 없다고 한다. 한번 억지로 뜨게 해보려고 노력한 적은 있었지만, 모조리 실패로 돌아간데다 제인이 굉장히 아파했기 때문에 그만두었다.
물론 한쪽 밖에 볼 수 없어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이유도 있다. 만약의 이야기지만, 이 소년이라면 다른 지구인과 마찬가지였더라도 그렇게 싫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 리아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몸을 완전히 일으킨 제인이라고 불린 소년이 대답했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냐니. 우리가 볼일이 없으면 만나지도 않을 사이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리아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제인의 옆까지 걸어와 슬며시 앉았다.
연령에 맞지 않는 몸을 가진 것은 제인만이 아니다. 리아나도 또한, 십대 후반의 소녀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발육이 잘된 몸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녀가 옆에 앉았으니만큼 당황할법도 하건만, 제인은 별다른 동요없이 대답했다.


"그건 맞지만, 그렇다고 볼일이 없는 건 아니잖아?"
"…… 응, 맞아."


전부터 생각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멍해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꽤 날카롭다.


"용건은 두 가지야. 너, 또 근위들 몰래 나왔지? 덕분에 다들 난처해하고 있어."
"미안. 그 사람들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계속 안에만 있으니까 갑갑해서."
"알아. 그거에 대해선 이해하고 있으니까. 너, 소환된 날부터 성밖으로 나간 적이 없잖아."


정확히 말하자면 나가지 못하게 한 것이지만. 그 생각을 떠올리자, 리아나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최소한 어디로 가는지 말은 하고 가라…… 고 말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나오지 못하게 할테니까 그럴수도 없겠네."
"…… 미안."
"사과할 필요는 없어. 엄밀히 따지면 잘못하고 있는 건 우리고. 그리고…… 네가 여기를 가르쳐준 덕분에, 나도 이런 풍경을 볼 수 있게 됐고 말야."


지금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이 왕성의 '옥상'이다. 끝이 뾰족한 첨탑의 형태로 되어있기 때문에 올라오는 것도 내려가는 것도 힘들지만, 이곳까지 올라오면 왕성 바깥까지도 보인다는 것이 이곳의 훌륭한 점이었다.
커다란 호수 한가운데에 떠있는, 화려한 분수와도 같은 성. 그 호수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마을들과, 또 그 마을들을 감싸고 있는 성벽. 자신의 조국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정말로 이 도시만큼 아름다운 곳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제인은, 이곳에 올라와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 몇안되는 기쁨 중 하나였다. 리아나도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혼내지 않는 것이고.
제인은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는 좋아해. 여기에 앉아서 주위를 돌아보면, 내가 정말로 다른 세계에 왔다는 게 느껴지니까."


지구인이란, 어차피 이방인.
그것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다른 세계에 떨어진 차원의 미아들이다. 그들의 감성은 엘타니아의 인간과 별로 다르지 않으니까, 고향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 물론, 리아나가 이 정도로 가까이에서 본 지구인은 제인이 처음이었기에, 다른 지구인들도 그럴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는 나중에 제대로 사과할게. 그럼…… 그거 말고 다른 용건은 뭐야?"


솔직히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어차피 누군가가 들려줄 이야기라면 차라리 자신이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짧은 침묵 끝에 그렇게 결론을 내린 리아나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 성벽 바깥의 평야에, 몬스터들이 나타났었어. 우리 병사들이 요격하러 나갔었고.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들렸으니까', 어느 정도는."


그렇다면 설명할 것도 줄어든다.


"우리 병사들이 밀리고 있을 때, 지구인이 나타나서 전부 밀어버렸어. 게다가 몬스터들을 상대로 애를 먹는 우리가 바보처럼 생각될만큼 압도적인 힘으로."
"지난번의 그 사람이야? 공작님한테 용병으로 고용됐다던?"
"그래, 그 녀석 맞아. 변신했을 때의 이름이 아마 「스톤 엘리게이터」라고 했었나. 본명은 관심없어서 잊어버렸지만."


멀리 있는 장소의 광경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수정구.
그것을 통해 보았던 장면들이, 아직도 그녀의 머리 속에 남아있다.
리아나는 몸의 떨림을 애써서 숨기며 태연한 척 말한다.


"지구인의 싸움을 직접 본 건 나도 처음이야. 하지만…… 강하더라. 아니, 너무 강했어. 그 녀석은 지금 나이트(Knight) 클래스인데도 그 숫자의 트롤들을 가볍게 전멸시켰으니까. 룩(Rook)이나 비숍(Bishop) 클래스 쯤 되면 지구인 한 사람이 기사 천명을 능가한다는 게 허풍이 아닐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바로 그 강함 때문에 성가신 문제가 생겼다.


"그 녀석하고 같은 지구인인 너도 그 정도 힘은 숨기고 있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올거야 분명. 처음 네가 소환됐을 때도 다들 그렇게 떠들었으니까."


'지구인의 힘은 먼저 손에 넣는 것이 임자'.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 나라의 고위층에도 여럿 있다. 하물며 다른 나라도 아니고 바로 코앞에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지구인이 있다면 탐내는 것이 당연하다. 지구인이라는 힘은, 손에 넣는 순간부터 이 왕국의 세계적인 위상이 달라져버릴 정도니까.
그러나 리아나의 말을 들은 제인은 침울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 미안. 나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역시 도움은 되지 못할 것 같아."
"나는 믿어. 네가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지금까지 봐오면서 알았으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믿어줄지 어떨지는 나도 장담못해."


제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물어봤을 때 진실을 숨기는 짓도 하지 않는다. 자신이 답변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성실하게 대답해주고, 거짓으로 대답할 바에는 차라리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런 제인이기 때문에, 리아나는 이 소년을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왕궁에서 제인을 믿어줄 사람은 오직 리아나 하나뿐일 것이다. 왜냐하면.


"지그로드 왕국이 마왕군을 막기 위해서 '두번째 지구인'을 소환한지 400년…… 그때 열렸다가 미처 완전히 닫히지 못하고 소실된 게이트때문에 그 뒤로 많은 지구인들이 엘타니아로 넘어왔지만, 너 같은 경우는 전례가 없으니까."


오히려 자신은 그 때문에 이 '유 제인'이라는 소년과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거지만.
그녀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제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신용하지 않는다.


"지금 현재 이 세계에 있는 수백명의 지구인 중에 너 하나 뿐일거야. 특별한 점이라고는 남들보다 귀가 좋다는 것 뿐, 초형태로 「변신」하지도 못하고, 몬스터와 계약을 해 「소환」하지도 못하면서 지구인들이 물질을 보관할 때 쓰는 아공간의 「창고」도 사용할 수 없는…… 그 이외에는 평범한 인간과 다를 바 없이 아무 힘도 가지지 않은 지구인이라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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