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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Center!!
글쓴이: Abanox
작성일: 12-07-31 22:44 조회: 2,048 추천: 0 비추천: 0
프롤로그. Dream

빗줄기.
노란 안개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소년.
그 소년을 감싸고 있는
시체.
시체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유일한 생존자.
고통. 노랑. 몸부림. 눈물. 고기. 분홍. 시체. 빨강. 하늘. 빗방울. 공허. 소년. 눈물. 피. 벚꽃. 눈물. 눈물. 눈물. 눈물. 눈물. 눈물. 눈물. 눈물.
소녀.
빛.
손.
‘내가… 지켜줄 테니까.’

1장. Real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보였던 것은 천장을 향해 뻗고 있는 나의 손이었다. 어째선지 숨이 가쁜데다가 등이 축축한 게 느껴질 정도로 땀이 배어 나와 있었다.
“…악몽?”
올렸던 팔을 침대 위로 떨어뜨린 후에 아무 생각 없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순간적으로 꿈에서 보았던 노란색 하늘과 겹쳐졌다. 아무래도 평범한 꿈은 아닌 듯하다.
물론 장담은 못하지만.
요컨대, 이런 것이다. 악몽이란 것은 단순히 무서운 꿈이다. 하늘과 천장이 겹쳐 보인다거나 꿈에서 잡았던 손의 느낌이 생생한 것은 아무리 무서운 악몽이어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그냥 잠이 덜 깬 것이겠지만.
이런 식으로 꿈에 대해서 해석을 하는 것은 내가 꿈에 대해서 관심이 있고 심리학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서 실험정신이나 연구정신 같은 것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그런 과학자 같은 발상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이 포근한 침대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은 것뿐이지, 절대 중2병적인 망상을 즐기는 그런 부류는 아니란 말이다. 난 그저 잠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며 침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평범한 고등학….
“으아아아아아앗!!!!!”
갑자기 들려오는 괴성에 나는 간단히 침대에서 빠져나와 괴성이 들렸던 거실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대충 짐작은 갔다.
“무슨 일이야?!”
“느아아….”
예상했던 바와 같이 괴성의 정체는 거실의 컴퓨터로 소설을 쓰고 있던 나의 친척 형이었다. HOSTIAS라는 필명을 가진 나의 밥줄은 꺼져있는 컴퓨터를 보며 두 눈을 부여잡고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현자타임?”
“아침부터 개드립 치지 말랬지?”
“아님 말고.”
누구인진 모르겠지만, 상당히 저질스러운 농담을 한 듯하다. 형의 얼굴이 상당히 기묘하다.
“대체 어떻게 하면 그런 농담이 스스럼없이 나오는 건지…나 참.”
“칭찬 감사요.”
“…….”
이번엔 누군가 실없는 소리를 하였나 보다. 형의 얼굴이 짜증으로 가득 찼다.
“아무튼, 무슨 일이야? 뭐, 대충 알 것 같긴 한데.”
갑자기 형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누구냐, 우리 형을 울린 녀석은!
“시, 시랑아… 컴퓨터가….”
“형을 울린 건 컴퓨터인가! 지금 당장 부숴줄게!”
“하지 마! 나 평소에 백업 제대로 안 해놔서 부수면 절반은 천국행이란 말이야!”
오늘은 평소와 다를 바 없구나. 즐거운 하루가 될 것 같다. 안심이다.
나는 꺼진 컴퓨터를 켠 후에 형의 소설 폴더에 들어가서 소설 파일을 켰다. 임시 저장된 파일을 불러오자, 형의 표정이 급격히 밝아졌다.
“고마워!”
“뭐 이런걸 가지고.”
“얼마 안 날아갔네. 다행이다. 씻고 와. 밥 차려줄 테니까.”
“엉.”
갑자기 피곤해진 나는 엉덩이를 긁으며 세면대로 향했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급격하게 잠이 밀려온다.
주방 쪽에서 들려오는 보글보글 소리를 들으며 나는 가볍게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한 뒤에 수건으로 머리를 털었다. 치약을 짜려 하다가 아직 아침밥을 먹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치약의 뚜껑을 다시 닫았다.
“형! 드라이기 어디 있어?”
“방에~.”
형의 방에 들어서자 깔끔히 정리된 책상에 드라이기가 놓여 있었다. 나는 드라이기를 콘센트에 꽂고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
이미 눈치를 챘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부모가 없다.
물론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도 부모님은 있었다. 물론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도 아니다. 6살 때에 유치원 장기자랑에서 여동생이 머리에 붙인 껌을 떼지 못하고 그대로 무대에 올라가서 부모님이 동생에게 꾸지람하며 나의 머리를 잘라주셨던 일은 아마 평생이 가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럼 언제부터 부모님이 없어진 걸까?
그에 대한 대답은 [I don't know]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는 부모님이 계셨던 걸로 기억한다.
언제까지 있었는지 기억을 한다면 어째서 부모님이 없어질 때의 기억은 없는 걸까?
이에 대한 대답도 [I don't know]다. 언제까지 있었는지는 기억하고 있지만 언제 없어졌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른바 기억상실증이라는 놈이다.
부모님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벚꽃놀이에 가자는 부모님과 만세를 부르며 기뻐하는 여동생의 미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다음에는 아마 벚꽃놀이를 가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아쉽게도 그다음의 기억이란 게 존재하질 않는다. 눈을 떠보니 병원 안이었고 부모님은 없었다.
혹시 벚꽃놀이가 사건의 진상을 알 수 있는 키워드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오늘 꾼 꿈에서 벚꽃을 본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무의식적으로 기억을 지워….
“앗 뜨거!”
머리카락이 드라이기로 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탈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그런 느낌이다.
어찌어찌 머리 말리기를 끝내고 드라이기를 정리한 다음에 거실로 나갔더니 형이 TV 앞에 밥상을 차려놓았다.
나는 상머리에 앉아 형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먹고 있어도 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동방예의지국에서 연장자보다 먼저 숟가락을 들다니…! 유교 정신에 어긋나게 된다. 먹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난 기독교라 유교 정신 따위 던져버리고 먼저 먹고 있지만.
사실 기독교란 말도 거짓말이지만.
그렇게 식사를 시작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형이 내 옆에 앉아서 TV를 켰다. 오랜만에 보는 아침 뉴스에선 황당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네. 다음 소식입니다. 어젯밤 H대입구역 근처 도심에서 황당한 싸움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OOO기자가 전해 드리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이 바뀌며 말 그대로 상당히 황당한 장면이 벌어졌다.
일단 난투극을 벌이는 둘 중 한 명은 어린 여자아이였다. 다른 나머지 한 명은 일단 남자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머리에 이상한 것이 붙어있었다.
귀였다.
동물의 귀.
여기까지만 해도 상당히 특이하다. 하지만 놀랄 것은 이것이 다가 아니다.
순화해서 싸움이지 이건 마치 옛날 중국 무술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 화려한 격투였다. 절대 막싸움이 아니었다. 둘 다 상당한 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그냥 봐서는 잘 모르겠지만.
둘은 정말 화려하게 싸우고 있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모자라다. 날아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둘은 기가 막히게 싸우고 있다. 웅성거림과 함께 자막이 나온다.
[야, 이거 뭐야? 촬영인가?]
[저거 뭐지? 귀인가?]
[이쪽으로 온다!]
[이 영상은 한 시민이 촬영한 영상입니다. 여자아이와 동물의 귀와 흡사한 것이 달린 남자아이가 마치 영상 연출을 하듯이 난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신원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으며, 현재 조사 중에 있습니다. 목격자의 증언이 점점 늘어나는 가운데 업로드된 영상은 감쪽같이 사라지며 영상의 실체는 미궁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OOO기자였습니다.]
[네. 목격자의 증언이 늘어나는 가운데 홀연히 사라진 영상. 과연 이 영상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다음 소식입니다. 게임계의 시장이 완전히 뒤바뀌어 가는 가운데…]
“요즈음 참 이상한 일 많지? 안 그래?”
“형한테는 좋은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 소설가에게 경험은 중요한 것이야.”
상당히 정론이다.
“그러고 보니 H대입구역이면 근처 아냐?”
“그러네. 나중에 찾아가서 사진이라도 찍어야지.”
“어쩐지 나중에 저런 인간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냥 생각으로 묻어뒀으면 좋았을걸.”
이런, 생각이 입 밖으로 나와 버렸다.
의도적이지만.
이런 식으로 식사를 끝내고 아까 하려다 말았던 양치질을 하러 세면대로 향했다. 어쩐지 아까부터 졸음이 몰려오고 있다. 이러다가는 학교에서 잘 것 같다.
물론 잘 거지만.
거울을 보니 상당히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 떡하니 비쳤다. 다크서클은 평소에도 있었지만 내 눈은 이렇게 충혈된 적이 없었다.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서 그런가?
나는 치약을 칫솔에 묻힌 뒤에 이를 닦기 시작했다. 일정한 리듬으로 나는 칫솔질 소리가 어쩐지 더욱 피곤하게 느껴진다.
“어…라?”
갑자기 눈앞이 흐릿하다.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흐릿하고 벽면 타일이 흐릿하고 세면대가 흐릿하다. 역시 잠이 부족한건가 하고 생각하며 눈을 비볐다.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와서 거울을 올려다보았을 때,
거울이 피로 물들어있었다.
아니, 거울에 비치는 욕실의 모습이 피로 물들어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거울은 놀라거나 당황하는 내 어리벙벙한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웃음.
아주 잔혹하고 비열한.
“…컥?! 쿨럭! 쿨럭!”
너무 놀라서 사레가 들렸다. 치약의 알싸하고 매운 느낌이 목 안에서 느껴진다. 기침이 멈추질 않는다.
기침이 겨우 멈춰 다시 거울을 보았을 때에는 피는커녕 나의 멍청한 얼굴만이 비치고 있었다. 갑자기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거울에 대고 중얼거렸다.
“너, 진짜 못 생겼다.”
거참 칭찬 감사하다.
입을 헹구고 거실로 나왔을 때에는 아까 전까지만 해도 느껴지던 수면욕구가 이미 눈 녹듯이 사라진 상태였다. 신기한 일이다.
방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는데 역시 요즘 너무 놀고먹었더니 살이 좀 찐 것 같다. 나중에 운동이라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안 하겠지만.
오랜만에 보는 교복으로 갈아입은 뒤에 가방을 어깨에 걸쳐 메고 신발 끈을 세게 조였다. 발을 조이는 신발의 감촉이 어쩐지 기분 좋다.
“그럼 다녀올게.”
“잘 다녀와. 차 조심하고.”
“응. 차가 오면 몸으로 받아치면 되지?”
“가끔 네 뇌를 해체해보고 싶어. 좋은 공부가 될 것 같다.”
나는 형이 진짜로 내 뇌를 해체하기 전에 재빨리 문을 열어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느끼는 햇살이 기분 좋다. 기분은 좋다. 하지만…
“더워….”
역시 여름방학이 지나도 아직은 여름인가 보다. 아파트 복도에서도 이렇게 더운데 저 아래는 얼마나 더울까?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졌다.
가고 싶지 않아도 바로 코앞이 학교라서 빼먹을 수는 없겠지만.
거기에다 바로 옆이 친구네 집이라 곧장 달려올 게 뻔하다.
나는 슬슬 태양이 쉴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하고 생각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파트 단지를 전부 빠져나왔을 즈음에 나는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리번거리는 얼굴에서는 시니컬한 느낌이 새어나오고 있었고 허리에 손을 얹고 있는 그 몸동작은 아무리 봐도 여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여자로는 보이지 않지만 여자다.
참고로 내가 말했던 우리 집 바로 옆에 산다고 했던 친구가 이 녀석이다. 이름은 류세아. 상당히 특이한 이름이라고 해야 할까, 꼭 만화나 소설의 주인공 같은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내 이름도 평범하진 않지만. 강시랑 이라니, 누가 지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유치하다. 아마도 부모님이 지었을 테니 나중에 하늘로 올라가게 된다면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아무튼, 현재 류세아의 움직임은 마치 그것이다. 옥상에서 결투장을 내민 녀석을 기다리는 싸움 잘하는 녀석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이 든다.
단순히 사람을 기다리는 모습이지만. 지금 말한 게 더 맛깔스럽지 않은가? 안 그런가?
아님 말고.
아무튼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기는 하다. 아무래도 나와 같이 친구가 없는 세아는 나 이외에 기다릴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잘 생각해보니 존재감 없는 녀석이 하나 더 있긴 했으니 그 녀석을 기다리는 걸지도 모른다. 이럴 때에는 아마 모른척하고 지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녀석도 만약 그 존재감 없는 녀석을 기다린다면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을 것이다. 자, 그러면 조용하게….
접근한다. 세상에서 가장 특이한 방법으로!
나는 조용히 세아의 좁은 등을 향해 달려간 뒤 그대로 배를 살포시 안아주었다.
“히익?!”
“으음….”
상당히 부드럽다. 여름방학 동안 뭐라도 잔뜩 먹어서 살이라도 쪄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뭔가 단단한 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방학 때 동안 근육 트레이닝이라고 한 거야? 무뚝뚝이?”
“방학 때 동안 내가 숨 쉰 만큼 맞을래? 정신 나간 외계인?”
아니, 머리채를 잡으며 얘기하면 아무리 나라도 겁먹는데?
“아니, 살려주세요.”
“비굴하네. 남자로서 실격이야.”
“너도 여자로서는….”
“뭐?”
“아니, 아닙니다. 죄송함다.”
진짜로 목숨의 위협을 느꼈다. 내가 살해당한다면 분명 이 녀석한테 살해당할지도….
물론 원인제공은 내가 하겠지만.
여태까지의 행동으로 봐서 내가 막 나가는 줄로만 아는 녀석들이 있을 것 같아서 설명해두는데, 난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는 알고 있다.
신경 안 쓰고 저지르긴 하지만.
세아는 잡고 있던 머리채를 풀며 말했다.
“학교 가던 중이야?”
“그럼 이 복장하고 아침에 막노동이라도 하러 가는 줄 아냐?”
두피의 고통이 채 가시기 전에 대충 명치 근처에 커다란 충격이 왔다.
“그냥 그대로 거기 누워서 노숙자나 되라.”
“하…한 푼 줍셔.”
“거지에게 줄 돈은 없어.”
“나도 네놈에게 받을 돈은 없어.”
“어? 나 돈 있는데?”
지갑이 상당히 빵빵하다.
세아의 가슴보다 빵빵하다. 그러니까….
“볼록?”
“일단 눈부터 뽑아 갈까?”
“내 시선은 당신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기 위해 존재합니다. 부디 제 기쁨을 앗아가지 말아 주세요.”
“뭐?”
너, 그거 뭐라고 하는 줄 알아?
더러운 거 보는 눈이라고 해. 그러니까 그만둬.
“…기쁘긴 하지만.”
“세아가 얼굴을 붉히며 눈을 피했다. 두근!”
“누가 얼굴을 붉혔다고 그래!”
나는 가끔 속마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다.
물론 고의적으로.
“둘 다 오랜만이야. 즐거워 보이네?”
존재감 없는 녀석, 정지온이 등장했다.
“좋은 아침. 아침부터 나사 빠진 녀석이 장난을 걸어와서 좋은 아침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 몸이 말을 걸어준 것만으로도 불행으로 여기라고!”
“아하하…거기선 ‘말을 걸어준 것만으로도 행운으로 여기라고!’ 라고 말해야 되는 거 아니야?”
“당연히 아니지!”
실제로는 맞겠지만.

*

시간은 지나 점심시간이 되었다. 등굣길에는 쓸데없는 말장난에 츳코미(일본식 개그라고 한다. 그 존재감 없는 녀석이 말해준 거니까 틀림없을 것이라고 본다.)를 받으며 온 것밖에 없고 개학식에 특별한 일이 일어날 리 없고, 수업시간에는 잠만 퍼질러 잤기 때문에 딱히 그렇다 할 이야기는 없었으므로 넘어가자.
붐비는 학생식당에서 겨우겨우 자리를 잡아 잡담하며 식사를 하였다. 문득 오늘 꾼 꿈이 생각나서 이야기했더니,
“개꿈이네. 복권 사라.”
“악몽이야? 난 한 번도 꿔본 적 없어서 모르겠네. 어떤 느낌이야?”
“으음….”
어떤 느낌이라고 해야 좋을까. 애초에 악몽인지 아닌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그래도 어떤 느낌이었냐고 꼭 집어서 말한다면….
“그리운 느낌?”
“싸이코다.”
“싸이코네.”
학교 점심시간에 싸이코라는 별명을 얻어버렸다. 조금 애매한 기분이다.
마음에 들지만.
“부정할 마음이 안 드네….”
“부정하라고!”
“푸흡! 푸하하하하!”
“쪼개지 마.”
명치 얻어맞았다.
명치를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사이에 세아는 식판을 치우고 식당을 나가버렸다.
매정한 여자일세….
“쓸데없는 소리 하니까 그런 거지.”
“다, 닥쳐. 무존재감.”
오늘 처음으로 지온에게 맞았다.
이번에도 명치였다.
“너…이, 자식….”
“하여간 매를 벌어요, 매를.”
“맞는… 말, …이지만, 그만, 둘 생각…은, 없다…. 난, 싸이코…, 니까.”
“그거, 마음에 들었나 보구나.”
지온은 식판을 치우고 식당 문으로 향하며 나에게 말했다.
“나 먼저 갈 테니까, 진정되면 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치를 연속으로 두 대를 맞으면 이렇게 되는 게 당연한 결과일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싸이코니까.
아픈 것이 조금 가라앉자 힘들게 식판을 들어 치운 뒤에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식당을 나왔다. 엄살 부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명치 두 대를 연속으로 맞아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아라. 진심으로 힘이 나오질 않는다.
교실에 도착하니 아픈 것은 대부분 가라앉고 힘도 어느 정도 쓸 수 있게 되어서 평범하게 교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매정하게도 두 녀석은 간식이라도 사 먹으러 간 건지 교실에는 없었다.
별생각 없이 자리에 앉아 있는데, 또다시 급격하게 피곤해졌다. 아니, 피곤해진 정도가 아니다.
갑자기 눈앞이 흐릿해지더니 몸이 무거워졌다.
“어…?”
나는 상황파악을 다하지 못한 채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잠시 이마에 고통이 느껴졌지만 아픔은 금세 사라졌다.

*

벚꽃.
아름다운 분홍색이 나무를 뒤덮고 있다. 파란 하늘은 흩날리는 분홍색을 더욱 선명하게 비춰주었다. 소년은 떨어지는 벚꽃을 보며 이 정도로 빛나는 꽃잎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소년은 여동생과 함께 떨어지는 벚꽃을 따라 달려갔다.
동생이 넘어지자 소년은 동생을 일으켜주었다.
하늘이 어두워졌다. 소년의 부모님이 소년과 소년의 여동생에게 집으로 가자고 말하였다.
집에 가기 싫은 여동생이 떼를 쓰며 버텼다.
부모님이 여동생을 달래는 중에 소년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언가가 이곳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미사일.
소년은 그것이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빛의 꼬리를 가진 쇠몽둥이가 형체를 드러내자, 소년은 본능적으로 말했다.
“도망가!”
하지만 소년의 외침이 사람들에게 닿았을 때, 떨어지던 미사일은 이미 지면에 닿은 상태였다.
하지만 땅에 박힌 미사일은 불을 내뿜지도, 파편을 퍼뜨리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얼마나 지났을까, 도망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올 때 즈음에 갑자기 미사일의 껍데기가 벗겨졌다.
연기.
노란색.
사람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가기 시작한다. 쓰러진 사람들은 끊임없이 붉은 액체를 쏟아낸다.
어두워지던 하늘이 빗줄기를 내리기 시작했다.
피.
소년은 머리가 아파왔지만 피를 토하는 일은 없었다. 소년은 부모님 쪽을 둘러보았다.
여동생이 사라졌다.
부모님은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져 있다.
지옥.
아비규환.

*

“……!”
눈을 뜨자 눈앞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어째서 눈앞이 검은 건지 잠깐 생각하다가 지금 내가 엎드려 있다는 것을 깨닫고 상체를 일으켜 정면을 보았다.
수많은 눈.
시선 고정.
“저… 괜찮니?”
선생님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예…예?”
대답하자 숨이 차올랐다. 뭔가 숨이 가쁘고 등이 축축한 것이 식은땀을 잔뜩 흘린 듯하다.
“아까부터 숨이 거칠던데, 양호실 가볼래?”
머리가 너무 혼란스러웠다.
오늘 아침에 꾼 악몽이 그리운 느낌이 들었던 이유.
방금 꾼 꿈의 익숙한 얼굴.
가족.
나는 내 마음속의 혼란을 진정시키기 위해 일단 평소처럼 개드립을 쳤다.
“아뇨…. 그냥 야한 걸 생각한 것뿐입니다.”
선생의 표정에 장난스러운 웃음이 번졌다. 다행히 드립이 통한 듯하다.
“너 자꾸 그런 생각 하면 키 안 자란다. 안 그래도 작아 보이는데.”
교실이 웃음바다에 잠겼다. 나는 분위기를 타서 진지한 생각은 그만두기로 했다. 일단은 웃자.
아무래도 마지막 수업이었는지 수업이 끝나자 곧바로 담임이 와서 종례를 시작했다. “이제 방학 끝났으니까 해이해진 마음 가다듬고 공부에 집중하자. 그럼 해산. 청소 도망가면 죽는다.”라는 말을 끝으로 방과 후가 시작되었다. 교실 뒷문으로 나가려는데 세아가 말을 걸었다.
“너 진짜 괜찮아? 또 악몽이라도 꾼 거냐?”
“어, 응…. 아마.”
나의 건성 가득한 대답에 세아는 의외로 걱정하는 투로 말했다.
“대답이 시원찮잖아. 진짜 괜찮은 거야?”
“적어도 너의 어쩔 수 없는 그 작은…팔에 끼여서 내 머리가 너무 아파!”
헤드락에 걸렸다. 그러고 보면 이 녀석, 의외로 프로레슬링 기술을 자주 사용한다.
“난 네 녀석 때문에 두통이 시도 때도 없이 생긴다! 이 우라질 놈아!”
아무래도 지뢰를 밟은 듯했다. 대인지뢰를 밟았다면 다행이지만…. 이건 아마도….
대전차 지뢰.
“미안합니다! 나는 그 작은 가슴이 좋다고 얘기하려고 했었습니다!”
“뒈져버려!”
의식을 잃을 것 같다. 아니, 잃기 직전의 상황에서 헤드락이 풀렸다. 순간적으로 하늘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보였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너 진짜 신고해버리기 전에 그만둬. 이 망할 외계인 같으니라고.”
“넵. 죄송함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고 학교를 나갔다. 잠시 누워서 아픔이 가라앉길 기다리고 있는데 생각해보니 지온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시 타공인(他共認) 존재감 없는 사나이!
자(自)는 없다. 아쉽게도 본인은 인정하질 않는다.
알아서 오겠거니 하고 생각하며 슬며시 일어나 정문을 통과하려는데, 처음 보는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키는 나랑 비슷해 보였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어중간한 길이의 빨간색 머리칼이 상당히 눈에 띄었다.
그 여자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씨익 웃었다. 어찌 보면 밝은 미소였지만 내가 보기에는 한없이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다른 사람을 기다리는 걸 수도 있겠지만.
내가 왜 자세하게까지는 아니지만 인물 묘사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나의 눈이 그녀를 발견해서 그런 것이지, 딱히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참 글래머긴 하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나이스 보디긴 하지만 내 취향은 좀 더 작은 여성…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관심은 없었다. 설령 저기에 있던 사람이 저 여자가 아니라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새치 아저씨라던가 4차원 꼬맹이라던가 조용한 은발 머리 소녀였어도 내 관심은 아마 불씨조차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이 말을 듣지 못했다면.
“과거를 떠올리신 감상이 어떠신가? 시랑군?”
찰칵.
“…누구세요?”
드륵드륵.
그녀는 말했다.
“초능력자.”

맞물려 돌아가는 태엽이 걸려버린 돌을 부수고 다시 회전을 시작하였다.

*

“저희 회사에 들어옵니다.”
학교에선 얘기하기 뭐하니 장소를 옮기자는 그녀에게 끌려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킨 뒤 듣게 된 최초의 말이었다.
“다짜고짜 그런 말을 들어도 곤란한데요.”
“아, 그러고 보니 자기소개를 안 했네.”
그녀는 자신의 핸드백을 뒤지더니 지갑에서 명함을 하나 꺼냈다.
‘로돈컴퍼니 첸’
로돈컴퍼니.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진 인형공장. 로돈컴퍼니에서 만든 인형은 전부 모양이 가지각색이라 하나하나 수제작이라고 예상하지만, 인형의 정교함 또한 기계 못지않아서 인간의 기술이 아니지 않을까 하며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의문의 공장.
이지만 나랑은 상관없는 곳이다.
근데 왜 나를…?
“…이름이 한 글자입니까?”
“물론 가명이지. 본명으로 불리는 건 직업 특성상 곤란하니까 그냥 첸이라고 불러.”
이름 옆에 조그맣게 쓰여 있는 ‘이세계 처리’이라는 글자가 너무 신경 쓰인다.
첸은 테이블에 오른팔을 올려놓고 왼손으로 내 미간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떡할래?”
“뭘 말입니까?”
“저희 회사에 들어옵니다.”
“그것보다 아까 학교에서 했던 말, 어떻게 아셨습니까?”
“네가 로리콤이라는 거?”
“그게 뭐예요?”
듣도 보도 못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으음? 으으음? 모르는 거야?”
“처음 들어보는 단어인데요?”
“형이 라이트 노벨을 쓴다고 하던데? 가끔 듣지 않았어?”
라이트 노벨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형은 라이트 노벨이라는 소설을 쓰나 보다.
“아무튼, 그 로리콤이란 게 무엇인지부터 좀 알려주시죠.”
“으음….”
첸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나에게 말했다.
“잠깐 눈 좀 감아볼래?”
“본부대로 합죠.”
눈을 감았다.
“…….”
대체 로리콤이란 것이 무엇이기에 눈을 감으라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형에게서는 들어본 적 없는 단어인 것은 확실했다. 그러니까… 아 맞다. 학교에서 예전에 아동 성폭력에 대한 교육을 받았는데 거기서 언뜻 본 것 같기도 하다.
근데 그게 눈을 감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됐어. 눈 떠도 돼.”
처음 듣는 앳된 목소리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도 평생 눈을 감고 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본부를 받아들여 눈을 뜨기로 하였다.
“나 같은 사람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로리콤이라고 해.”
딱 봐도 초등학생 저학년으로 보이는 꼬마애가 실실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아까 눈을 감았을 때 생각났던 중학교 때의 아동 성폭력 교육에서 들었던 그 단어가 로리콤이 맞는 듯했다. 그렇군… 그렇단 말이지….
“난 로리콤이구나.”
나는 초등학생이 좋다. 아니, 작은 체구가 좋다. 사실 나이는 상관없다.
하지만 지금은 처음 보는 초등학생과 시시덕거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내 바로 앞에 앉아있던 사람은 귀여운 초등학생이 아니라 좀 더 어른스러운 나이스 보디의 소유자였다. 이럴 때에는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만한 인물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꼬마야, 너 몇 컵이야?”
최악이지만 후회는 없다.
로리콤이니까.
…아니, 이게 아니지. 지금 내가 물어봐야 할 말은 이것이 아니다. 나는 점점 표정이 이상하게 변해가는 소녀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미안, 질문을 잘못했네. 혹시 네 자리에 앉아있던 쓸데없이 몸만 좋은 여자가 어디로 갔는지 아니?”
소녀의 표정이 경계에서 짜증으로 바뀌었다. 거기에다 추가로 장난스러운 웃음까지 추가되었다. 소녀의 표정에서 웃음만이 남았을 때에 소녀의 입이 열렸다.
“네가 말하는 나이스 보디의 여자가.”
소녀는 가슴을 강조하며.
“가슴은 이 정도로 크고.”
가슴이 커졌다.
키를 강조하며.
“키는 이 정도로 크고.”
키가 커졌다.
소녀는 첸의 것으로 추정되는 가방에서 부채를 꺼내 들더니 부채를 펴서 얼굴을 가렸다.
“얼굴을 이렇게 생긴 여자를 말하는 거지?”
부채가 접혀 얼굴이 드러나자 첸의 얼굴이 나타났다.
목소리도 어른스럽게 변했다.
“…….”
아무래도 나는 터무니없는 일에 말려든 것 같다.
“어때? 놀랐어?”
“이 명함 가짜죠? 진짜 직업은 마술사죠?”
“아까 들었잖아? 초능력자라고.”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뭐, 사실 신에 가깝지만.”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기는 개뿔.
“집에 급한 일이 있어서요. 그럼 이만.”
“가는 거야? 오빠?”
반칙이다. 녹아버릴 것 같다.
“어, 어쩔 수 없네요. 조금만 더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물론 그 목소리로 말이지요.”
첸의 얼굴이 순간 어느 유명한 만화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얼굴로 바뀌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평소의 얼굴로 돌아왔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계획대로라는 말이 들린 것 같긴 하지만 아무래도 고막을 울려 나온 소리는 아닌 것 같아서 무시하기로 했다.
“그럼 진지하게 가볼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그래. 일단은 세계의 비밀부터 이야기해주도록 하지.”
세계의 비밀을 얘기해 준단다.
나 참, 어떻게 하면 입사권유에서 세계의 비밀로 통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짐작이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이세계 처리.
첸은 조금 식은 아메리카노를 몇 모금 마시더니 진지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아쉽게도 목소리는 원래의 목소리였다.
“넌 이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쓰레기요.”
재활용 불가능한 쓰레기.
이유는 없다. 단순히 반항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아하하. 확실히 그렇지. 쓸데없이 머리만 좋아가지고 남들 등쳐먹는 세계는 여기밖에 없을 거야.”
참 더러운 세상이야. 첸은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첸은 커피잔을 내려놓은 뒤에 자세를 고쳐 씨익 웃었다.
“그런데 말이야, 만약 네가 진정으로 원하던 세계가 있고, 그 세계로 갈 수 있으면 어떻게 할 거야?”
“가봤자 입장은 똑같을 테니까 딱히 가고 싶은 생각은 안 드는데요.”
“거 참 참신한 대답이구나.”
역시 평범한 녀석은 아닌가. 라며 첸은 하늘을 보며 눈을 감았다. 어쩐지 가슴이 떨렸다.
난 평범하지 않은 건가?
첸은 다시 자세를 바로잡고 턱을 괴며 말했다.
“사실은 말이야, 갈 수 있어.”
“한강에 빠지면 되는 거죠?”
“설마, 그런 논리는 인터넷에서나 가능한 거지.”
첸은 아메리카노를 마시려다 잔이 비어있다는 것을 깨닫고 아쉬워하며 이야기를 재개했다.
“아무튼, 가는 방법은 알려 줄 순 없지만 다른 세계로 갈 수는 있어.”
“요컨대,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것 같은 그런 세계로 갈 수 있다는 건가요?”
“아니, 갈 수 있는 건 다른 세계지 차원이 아니야. 물론 주 차원이 판타지 세계라면 가능하지만.”
“뭐라는 거야, 이 아줌마.”
“어머? 우리 랑이가 죽고 싶나 보구나?”
또 속마음이 튀어나와 버렸다. 위험하다. 정말로 살기가 느껴진다.
“죄송합니다. 여신님.”
“오글거리지만 그 호칭은 마음에 드네. 하지만 첸이라고 불러. 그게 가장 편하거든.”
살기가 사라졌다.
“그러니까 세계랑 차원은 다른 말인가요? 애초에 차원이란 게 존재하기는 합니까?”
“존재하고말고. 뭐, 그냥 단순하게 설명하기 위해 차원이라는 말을 썼지만 아마 정말로 차원이라고 불리는 건 아니겠지.”
첸은 가방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들더니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원 속에 또 다른 원이 들어가 있는 도형을 그리며,
“차원은 이 원에 들어가 있는 또 다른 원과 같아. 그리고 세계는,”
첸은 원을 그려 검게 칠하더니 그 원을 중심으로 원을 잔뜩 그렸다.
“이 검은 원이 우리가 사는 중심세계야. 그리고 나머지 원들이 세계.”
“대충 알 것 같네요. 그러니까 세계 안에 차원이 있다는 말이지요?”
“이해가 빨라서 좋네. 그리고 지금부터가 중요한데,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알아?”
“자연현상…이 아닌가요?”
“아니니까 하는 말이지.”
“혹시….”
나는 많이 식은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쓰다. 아무튼, 마신 뒤에 진지하게 첸을 바라보며 말했다.
“분만입니까?”
“그 드립은 NG야.”
후우…. 라며 한숨을 쉬는 첸씨. 어쩐지 얼굴이 피곤해 보인다.
“드립은 NG지만, 대충 정답이야.”
커피를 미리 마셔두어서 다행이다. 안 그랬다면 지금쯤 첸씨의 얼굴은 커피 범벅이 되어있었겠지.
“…진짜요?”
“응. 세계가 태어나는 조건은 인간의 안에 있는 신이 눈을 떴을 때니까. 우리는 이런 가설을 세우고 있어.”
첸씨는 한 박자 쉰 뒤에 의기양양하게 말하였다.
“중앙세계,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세계는 사실 신을 뽑기 위한 시험장소이고 인간은 그 시험을 받고 있는 예비 신들이다.”
“진짜 바보 같은 소리네요.”
“바보 같지? 근데 거의 증명된 사실이나 다름없어. 그 증거로 세계가 무작위로 생겨나고 있다는 점과 세계가 태어나는 조건이 인간의 안에 있는 신이 눈을 떴을 때라는 점. 아, 물론 신이 눈을 떴다고 무조건 세계를 만들어 내는 건 아니야. 대충 각성이라는 느낌?”
“그 각성을 증명할 방법은 있습니까?”
“있지. 우리는 신이 눈을 뜨게 되는 조건을 세 가지로 정의하고 있어. 첫 번째는 깨달음을 얻는 것. 이건 불교의 사상에서 가져온 거야. 불교 믿는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가 된다고 믿고 있잖아? 불교의 사상이 전부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절반 정도는 맞아. 하지만 말이야, 이 방법으로는 신이 될 수도 없고 세계를 만들 수도 없어. 물론 신을 만나게 되기는 하지. 하지만 진리를 알게 되는 것뿐, 그 이후에 뭔가가 바뀌는 것은 아니야. 석가모니도 특별한 요술을 부려서 부처라고 불리게 된 것은 아니잖아? 결국 그런 거야. 그러니까 첫 번째 가설은 신이 눈을 뜨지만, 각성은 아니라는 것. 아, 여기 아메리카노 한 잔만 더 주세요.”
“아,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갑자기 생각난 거지만 나와 첸의 대화는 이 작은 카페에 퍼져서 결국엔 점원의 귀에 들어가게 될 텐데 어째서 점원은 아무런 내색도 안 하는 걸까? 신경 써 주시지 않으셔서 고맙긴 하지만 조금 찝찝하달까, 그런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첫 번째는 그저 신을 만나는 방법일 뿐이라는 거죠?”
“역시 머리 회전이 좋네. 두 번째는 바로 자신만의 세계를 완벽히 구축하는 것.”
“예? 신이 눈을 떴을 때에 세계가 만들어진다면서요?”
“그럼 하나만 물어볼게. 너는 사장이 없는 회사가 있다고 생각해?”
“…없네요.”
“그런 거야.”
첸씨는 의외로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어울릴 수도 있겠다.
“아무튼, 세계는 대부분 이 조건을 달성해서 만들어져. 대충 99.9% 정도?”
“마치 데톨 같네요.”
“그럼 간단하게 데톨이라고 칭하자.”
신의 눈을 뜨게 만드는 귀중한 방법이 순식간에 데톨이 되어버렸다.
세계 생성률 99.9%
데톨이 만듭니다.
“간단하게 말했지만 데톨을 달성하는 건 깨달음을 얻는 것보다 수백 배는 어려워. 세계를 구축하는 건 간단하지만, 세계를 완벽하게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세계를 구축하는 것도 간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요?”
“간단해. 세계구축의 주력은 상상력이니까.”
어쩌면 인간이 예비 신이라는 가설은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믿지는 않지만.
“수백 배는 어렵다고 했지만 매일 생성되는 게 세계니깐. 그래서 나 같은 이세계 처리자가 있는 거지.”
“매일 생성돼요?”
“응. 하루에 300개 정도.”
적기는 개뿔.
첸은 300개가 적은 거냐고 불만을 내뿜는 내 표정을 보고 의아해하며 말했다.
“응? 70억 인구를 달리는 이 지구에서 하루에 300개는 적은 양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냐?”
“예….”
그렇다면 매일 깨달음을 얻는 사람은 300명이 넘는다는 소린가?
아니, 실제로 수행하는 사람은 70억 명이 아니니까 아무래도 더 적을 듯싶다.
하루에 한 명은 깨달음을 얻으려나?
“알아서 생각하면 돼. 아무튼, 세계는 넓어. 이 좁은 대한민국 땅덩어리에는 한 달에 세계 두세 개 생성되는 것도 상당히 많은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항상 한 달에 세 개 정도는 항상 생성되거든. 왤까?”
“한국은 땅덩어리가 작아도 5천만이라는 인구수를 가진 나라라고요. 말을 들어보니 땅덩어리랑은 상관없을듯한데 그걸 질문이라고 하십니까?”
“아하하, 우문이었네. 그럼 이야기를 계속하자. 아무튼, 세계는 상상으로 구축되기 때문에 상상력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이 만들어 내. 베르나르 베르베르라고 알아?”
“이름만 들어봤어요.”
“뭐, 꾀나 유명한 소설가야. 그 사람도 세계를 만들었었어. 처리하기 아까울 정도로 재미난 세계였는데 말이야. 책이라도 한 번 읽어볼까?”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는 일기에다가 적어주세요.”
“아무튼지 간에, 소설가나 디자이너들이 많지. 의외로 꼬맹이들도 세계를 많이 만들어낸단 말이야, 애들 세계는 다 거기서 거기지만. 갈 때마다 그 망할 안경팽귄은 꼭 한 마리씩 있어. 신물이 날 정도로 말이지.”
역시 꼬마들의 대통령답다.
“뭐, 세계를 만들었다고 해도 자각은 없어. 애초에 생각으로 만들어진 세계인데 시스템 알림창도 없이 어떻게 자각을 할 수가 있겠어? 아, 세계가 인간에게 드러나는 때가 딱 하나 있긴 하지.”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점원은 나를 보더니 싱긋 웃으며 계산대로 돌아갔다. 정말 뭔가가 찝찝하다. 어째서일까?
첸은 갓 나온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더니 찻잔을 내려놓고 찻잔을 한번 튕겼다.
경쾌한 소리가 났다.
“꿈이야.”
나는 오늘 오후에 꾼 꿈을 떠올리며 숨을 삼켰다. 혹시 첸이 날 찾아온 것은 내가 세계를 만들어서가 아닐까?
“뭐, 꿈에서 드러나는 건 별로 대단한 건 아니니까 넘어가고, 세계는 처음엔 아주 작아서 중앙세계에 영향을 끼치지 않아. 하지만 내버려두면 계속해서 커져서 결국에는 중앙세계와 충돌하게 돼. 오늘 아침 뉴스는 봤어?”
“혹시 그 영상이…?”
“그래. 꾸물대다가 세계가 커져서 충돌해 버렸지 뭐야, 덕분에 처리가 참 곤란하게 됐어. 뭐, 우리 쪽이 상관할 건 아니지만.”
“혹시 다른 회사도 있어요?”
“응? 아, 있긴 하지. 우리 빼고 하나밖에 없지만.”
아무래도 경쟁구도인 듯하다.
“그머저리들이방해라는방해는다해대는데정작자기네들은재대로찾아내지도못하고민폐만끼치는데쓸데없이텐션만높아가지고욕해도웃어넘겨버려서오히려기분나쁜데다가사람을바보취급하고말이야정말마음에안들어그망할엘킨컴퍼니자식들….”
첸은 얼굴은 웃는 얼굴로 눈을 찌푸리며 독설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그 라이벌 회사도 인형공장인 듯하다.
이름은 들어본 적 없지만.
“진정하세요. 그렇게 말하면 못 알아먹어요.”
“…어? 아 미안. 잠시 흥분했었네. 그럼 이야기를 계속해서 세계를 처리하는 법 말인데….”
첸씨의 가방에서 전화가 울렸다.
“아, 잠깐만. 여보세요?”
전화를 받자마자 첸씨의 표정이 굳었다.
“찾았어? 벌써? 응. 그래. 위치는? 그런 곳에 있었구나. 몰랐어. 응. 잡아놓고 있어. 절대 엘킨에게 넘기면 안 돼. 알고 있지? 그래. 이따 봐.”
첸은 황급히 전화를 끊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 갑자기 용무가 생겨서. 나머지는 나중에 알려줄게.”
나는 황급히 가려는 첸씨를 붙잡았다.
“잠깐만요!”
뒤를 돌아보는 첸씨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 찼다.
하지만 이것만은 꼭 물어봐야 할 것 같다.
“어째서 저를 스카우트하려는 거죠? 제게 무슨 특별한 힘이라도 있는 건가요?”
나의 다급한 질문에 첸씨의 얼굴이 굳었다. 잠시 경악하는 듯한 표정을 하더니 이내 진정하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노코멘트야. 나중에 되면 알게 될 거야. 분명.”
첸은 다시 뒤를 돌아 황급히 가려고 하다가 갑자기 멈칫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더니,
“따라올래?”
라고 말했다.
“…예?”
“나머지 설명도 해줄 겸사겸사. 일을 구경시켜줄게.”
나는 대충 짐작이 갔지만, 분명히하기 위해 물어보았다.
“…어디로 가는데요?”
첸은 가슴을 펴며 의기양양하게 대답하였다.
“세계로!”

*

자기 멋대로 출발해버린 첸을 따라가서 도착한 곳은 이상한 사차원 구멍이 있는 교실도 아니고 횡단보도의 한 가운데도 아니고 이상한 연구소의 게이트 입구도 아니었다.
막다른 골목.
“어…그러니까….”
“랑. 야한 짓 할래?”
“뜬금포 작렬해서 할 말 없네요.”
“아하하.”
웃을 상황이 아니다. 진지하게 생각해서 괜찮을 거라고 판단했는데 설마 도달한 곳이 파멸이었을 줄은 몰랐다.
근데 야한 짓은 하고 싶다.
한바탕 웃어제끼던 첸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물론 장난이야. 장난. 내가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없잖아?”
“사실 야한 짓 하고 싶었는데.”
“이야~. 젊은 건 좋은 거야~.”
부럽네, 아하하. 라고 말하며 첸은 꽉 막혀있는 길목에 손을 대고
“…….”
조용히 눈을 감았다.
설마…상처받았나?
“절망하지 마세요. 첸씨도 젊으니까.”
“닥치고 있어봐.”
넵.
“…….”
아무래도 침묵은 익숙하질 않다. 입이 근질근질해서 뭔가 질 떨어지는 개그가 튀어나올 것 같았던 참에 첸의 손에서 갑자기 변화가 일어났다. 아니, 첸이 손에 댄 벽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주황색 선 같은 것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직사각형을 만들었다. 그 선은 점점 형태를 구체적으로 만들더니,
쨍그랑.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실제로 효과음이 있다면 분명 이런 소리가 나지 않았을까,
주황색 선이 그린 스케치가 깨지더니 그 형태가 실체화되었다.
문이었다.
첸은 손잡이를 비틀어 문을 열었다.
첸이 연 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벽조차 없었다.
“뭐 해? 들어가지 않고?”
“예?”
지금 이 여자는 나더러 수상한 선이 만들어낸 수상한 문에 이어진 아무것도 없는 수상한 공간으로 날 끌고 가려는 것 같다. 이것은 위험하다.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 이럴 때에는 차라리 도망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물론 들어갈 거지만.
나는 성큼성큼 수상한 문을 향해 걸어갔다. 입구에서 조금 망설였지만 “빨리 가, 길을 막고 있으면 내가 못 지나가잖아.”라며 등을 떠민 탓에 난 그대로 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눈이 부셨다.
빛이 나를 가루로 만들려는 것 같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몸이 무겁다.
눈앞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비디오테이프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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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는 동생에게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문법이 왜이렇게 많이 틀렸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그래도 완성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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