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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능력자가 머무는 그 어느 집단
글쓴이: 만월묘
작성일: 12-07-31 20:54 조회: 2,377 추천: 0 비추천: 0
Prologue

 마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사무실의 전경이었다. 인테리어 자체가 친환경 컨셉인지 여기저기 고동색으로 칠해진 벽이며, 나무결의 바닥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여차하면 고등학교의 교무실로 보일 수 있는 광경이지만, 대원들 하나 하나가 제복코트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은 일제히 유야무야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지훈은 아직도 쓰라린 콧등을 비비며 정면을 마주 봤다. 앞에는 장발의 남성이 2M쯤 거리를 두고 앉아 있었다. 어쩐지 앳된 모습에 중후한 느낌을 물씬 풍기는 기묘한 사내다. 옆에는 방금 전 사투의 원인을 제공한 것처럼 보이는 비서 풍의 여성이 책받침을 들고는 태연하게 서 있었다. 남성의 책상에는 역시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검은 명패가 놓여 있었다. 무궁화부 부장 및 '대장' 신선도. 이 특수부대를 책임지고 있는 우두머리이자 무궁화부의 부장이었다. 그래서 지훈은 물었다.
 "저어, 대장님."
 "음? 무슨 일이지?"
 대장이라 불린 선도는 아무 표정 없이 신참의 말에 반응했다. 실로 자신을 30대 늙은이라고 소개한 것과는 다르게, 그 자신의 머릿결이나 피부에는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지훈 따위는 감히 상대가 안될 정도로 얼핏 보면 여자라고 느껴질 만큼 가녀려 보였다. 후루룩. 뭔가 묘한 소리가 분위기 파악 못하듯이 무궁화부 안에서 울렸다. 지훈이 잠시 이런 말을 해도 괜찮을까, 고민하다가 이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왜 콜라에 밥을 말아 드시는 겁니까?"
 업무 때문에 불가결로 일찍 점심을 먹어야 하는 대장이었다. 그래서인지 현재는 그 많던 서류들을 어디로 치웠는지 온데간데 종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밥공기와 소소한 반찬들만 책상에 올려져 있었다. '비서'라고 불린 '부부장'의 말을 인용하자면 식당에 가기보다는 이쪽이 효율적이라고 해서 채택한 방식이라 한다.
 물론 지훈은 그걸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도 학교에 있을 때, 숙제가 엄청 밀리거나 하면 밥 먹으면서 해치우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이건 그런 문제를 아득히 뛰어넘어 상식 영역의 밖이었다. 콜라에 밥을 말아 먹는다. 이건 아무리 봐도 비정상적이다. 고상한 분위기와 합쳐진 그의 선입견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지훈이 보기로는 대장은 그다지 단 걸 좋아하진 않아 보였다. 실제로 대장도 한 숟갈씩 먹을 때마다 눈을 찌푸리는 눈치였다. 어떤 특수한 사정이 있는 듯해 보였다.
 선도는 말없이 누구나 다 들릴 정도로 꿀꺽 하고 입 안의 내용물을 삼켰다. 커다란 창문을 등지고 있어서 그런지 방금 전에 비해 선도가 커 보였다. 따뜻한 햇살이 선도의 장발을 비추고 있었다. 여전히 무표정인 그의 시선을 받은 것만으로도 지훈은 압도되어 질식해버릴 것만 같았다. 설마 기밀사항인가, 하고 불안함에 휩쓸리고 있을 무렵에 갑자기 선도의 옆에 서 있던 부부장이 움직였다.
 "그렇게 알고 싶으시다면,"
 부부장은 갑자기 선도가 먹고 있던 그릇을 홱 낚아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지훈도, 자신의 점심을 뺏긴 당사자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한동안 판단할 수 없었다. 부부장은 숟가락으로 내용물을 뜬 후에 천천히 천천히 지훈에게 다가갔다. 영문도 모른 채 지훈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칠 수 밖에 없었다. 햇빛을 등진 그녀의 모습이 마치 매혹하는 사신과 같았다. 물론 그것은 지훈에게만 비쳐질 뿐이었지만.
 "한 번 직접 드셔 보시는 게… 어떠실런지요!"
 "아니, 자…잠깐, 잠깐만?!"
 찰나였다. 부부장이 단숨에 지훈과의 거리를 좁히고 숟가락을 내밀었다. 숟가락은 일직선으로 지훈의 입에 닿는 듯싶더니
 땡그랑.
 청명한 금속음을 내며 튕겨져 나가떨어졌다. 순간의 위기를 모면한 지훈은 잠깐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아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부부장은 천천히 숟가락을 집었다. 햇빛에 숟가락의 표면이 반사되어 한 점의 빛을 만들어내어 지훈의 안구를 강타했다. 급작스러운 시야의 변화에 반사적으로 지훈은 눈을 가렸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부부장은 그릇을 집어 들더니 지훈의 품으로 파고들어───탄산이 그득한 국밥을 그의 입 속으로 흘려 넣었다. 아니, 때려 부었다, 라는 표현이 정확하겠지.
 이 일은 후에 상황을 몰래 지켜보고 있던 대원 중 한 명에 의해 이렇게 서술되었다. 그것은 마치 악마가 타락한 손으로 어린양을 죽음의 문턱 코앞까지 인도하는 장면이었다고.
 "우부붑부부부부붑붑?!"
 방심한 틈에 일어난 일이라 지훈은 반항 한 번 못하고 불가항력으로 콜라국밥을 억지로 먹을 수 밖에 없었다. 눈이 핑글핑글 도는 듯했다. 머리가 혼돈이다 못해 하느님이 우주를 재창조하는 환각까지 보이는 것 같았다. 지훈은 왜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회상했다.

──────────────────────────────

 "후우…."
 공활한 푸른 하늘 아래. 거대한 빌딩을 앞에 두고 지훈은 심호흡을 했다. 왠지 모르게 손에 땀이 나는 듯해서 옷에 슥슥 닦아 보기도 했다. 옷매무새는 정돈되어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머리를 묶은 끈은 안 풀리게 단단한지 점검하고, 잊어버리고 온 물건은 없나 체크했다. 이상 없음을 재확인하자 어느새 그는 빌딩 문 앞에 서 있었다. 유리로 되어있어 안쪽이 다 비쳐 보이는 걸 막기 위해서인지, 문 전체에는 큼지막하게 'IMPARK 본대'라고 적혀 있었다. 왠지 색 테이프로 붙인 듯한 그 모습이 어쩐지 조잡하게 보였다.
 "IMPARK라…."
 International and Multipurpose Psychic Army of Republic of Korea. 쉽게 말하자면 한국국제이능력특수부대. 이능력자만 거주할 수 있는 이 '세종시'에서, 온갖 일어날 수 있는 범죄를 막기 위해 조작된 부대. 그는 혹시나 싶어서 외워둔 것을 상기하고는 코트 품에서 카드를 꺼냈다. 카드에는 지훈의 앳된 얼굴과 일반인이 알아보기 힘든 정체불명의 코드 따위가 새겨져 있었다.
 그의 옆에선 고층 아파트에서 쓰일 법한 인식기가 [카드를 대주십시오.] 라고 정중히 말하고 있었다. 그래 봤자 여기선 모로 보나 흔하디 흔한 방범장치일 뿐이지만. 지훈은 익숙하게 카드를 인식기 패드에다 대고는 [인증이 완료되었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라는 말과 함께 열리는 자동문을 나서서 빌딩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안은 특수부대라고 말하면 우스울 정도로 다른 곳과 차이점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특수부대』라는 명칭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평범했다. 굳이 비유하자면───어느 곳에나 있을 법한 민원실 같았다. 여기저기 서류들과 싸움하는 모습이며, 친절한 목소리로 상담하는 것하며, 익숙한 모습이 천지였다. 지훈은 평범한 비주얼에 10초 동안 멍- 해져 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중앙의 안내데스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저기."
 "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친절한 미소로 지훈을 맞아주던 안내원 아가씨가 잠시간 그의 복장을 보며 어리둥절한 모습을 짓다가 원상태로 돌아왔다. 물론 지훈이 그것을 놓칠 리가 없었다. 지훈은 짧게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도 그럴 게, 그가 입고 있는 코트는 IMPARK 부대원들만 입는다고 하는 남청색의 제복코트였으니까. 지훈은 천천히 미소를 띄며 물었다.
 "'무궁화부'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그러자 안내원 아가씨는 남들이 다 알아볼 정도로 깜짝 놀랬다. 그 모습을 본 지훈은 왠지 모르게 자신의 목소리가 주변에 메아리 치는 착각이 들어서 저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봤다. 다행스럽게, 어느 하나 자신 일에 바빠서 이쪽을 보는 사람은 없었다.
 지훈은 휴, 하고 한숨을 내쉬며 다시 안내원 아가씨를 바라봤다. 아가씨는 이번 일이 처음인 것처럼 허둥대더니 수화기를 잡고는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조용하게 속삭이듯이 말하는지라 지훈은 주변의 소음 때문에 알 수가 없었다. 안내원 아가씨는 몇 초 동안 짧게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이윽고 다시 영업용 스마일 페이스로 돌아왔다. 참 전환이 빠른 사람이네, 지훈은 생각했다.
 "이쪽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고갱님.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고… 고객님?'
 지훈은 고객님은 상점 같은 곳에서 손님을 접대할 때 쓰는 말 아닌가, 라며 속으로 사소한 딴죽을 걸고는 안내원 아가씨께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엘리베이터는 누가 봐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문이 커다랬다. 지훈은 그제야 특수부대, 라는 압도적인 스케일에 긴장하고는 마른침을 삼키며 버튼을 눌렀다. 얼마 안 있어 문이 열리자 지훈은 천천히 발걸음을 재고는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3층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올라가는 걸 느끼며 그는 주위를 둘러봤다. 30명이 들어와도 넉넉할 공간에 자신 혼자만 있자니 그 공허함이 지훈을 때렸다. 지훈은 전신에 흐르는 긴장감에 지지 않으려 위를 쳐다봤다. 거기엔 최대인원허가수가 적혀 있었다. 56명. 아무리 봐도 웬만한 대형 백화점의 스케일과 맞먹었다. 지훈은 오히려 더 위축되어 다시 한번 마른침을 삼켰다.
 '이거 설마, 충격요법 주려고 일부러 이렇게 설계한 건가…?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쓸데없는 피해망상에 빠진 지훈이었다.
 왠지 모르게 지훈이 광장공포증에 빠지려고 할 때였다. 귀에 익은 벨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지훈은 도망치듯이 엘리베이터라는 짐승의 주둥이 안을 빠져나왔다.
 지훈이 작게 한숨을 쉬며 앞을 바라보자 있는 것은, 웬 인식기들 투성이였다. 꼭 검문소를 연상시키는 좁은 공간에, 인식기까지 놓여 있으니 그야말로 자신이 비밀요원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요원이라면 철저하게 자신의 임무를 실수 없이 해내는 것이 도리. 그리고 지훈의 첫 임무는 '무궁화부에 도달'하는 것. 지훈은 아직도 긴장으로 굳어 있는 몸을 애써 움직여 인식기 앞에 섰다.
 예전에 추천서를 내면서 한 번 사용해봤지만, 이곳의 인식기는 희한한 시스템 체계를 사용하는 듯했다. 그의 앞에 놓여있는 건 지문 인식기와, 안구 인식기, 음성 인식기의 삼종 세트. 하지만 하나하나 체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인식기들을 통해 총 데이터를 합산하여 인증 결과를 뽑아낸다고 한다. 그야말로 철저한 보안에 감탄하면서 지훈은 안내방송이 지시하는 대로 따라했다.
 [오른손을 대주십시오.]
 지훈이 지시대로 오른손을 지문 인식기에 대자 인식기가 스캐너와 비슷한 한 줄기 섬광을 내뿜으며 위아래로 훑었다. 자신의 손에 묻은 땀 때문에 오작동이 일어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지훈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인식기는 고장 하나 안 나고 [인증이 완료되었습니다.] 라는 메세지를 읊고 있었다.
 다음은 안구 인식기. 지훈은 큼지막한 구슬을 연상시키는 렌즈에 오른눈을 댔다. 그러자 붉은 선들이 나오면서 지훈의 눈을 위아래로 훑었다. 인식기의 안내음에 따르자면 안구의 홍채나 망막, 시신경 세포 등의 자료가 인식기 내에 저장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라고 한다. 붉은 선들은 몇 초간 지훈의 눈을 훑더니 인증이 완료되었다는 안내음과 함께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음성 인식기. 짧게 목소리를 내어 발성기의 울림 및 입과 코에서 방사 되는 음원의 전파 유형을 검토하여 인식한다고 한다. 지훈은 어김없이 지시에 따라 짧게 아- 아- 하고 소리를 냈다. 그러자 음성 인식기의 화면에 OK라는 문구가 떴다.
 '이상하게 제일 복잡해 보이는 인식기인데, 유난히 빠른 거 같단 말이야.'
 실제로 그런지 알 수 없는 지훈은 그저 고개만 갸우뚱 거리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나 본래 같으면 열려야 할 문이, 아직도 굳게 닫혀 있는 현실을 보고 지훈은 슬슬 다시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설마 이 상황에서 오작동을 일으켰다고는 하지 않겠지, 지훈이 일말의 불안과 함께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그의 예상을 깨트리듯이 다행스럽게 기기들은 오작동을 일으키지 않았다. 다만 불행스러운 것은───
 위이이이이이잉-!
 "뭐, 뭐야?!"
 문에 달려 있던 사이렌이 붉은 빛을 발하며 공간 전체를 메웠다. 인식기에선 전부 [CAUTION : 침입자가 확인되었습니다.] 라는 붉은 경고 메세지만 띄우고 있었다. 지훈은 당황해서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막 눌렀다. 우선 이곳을 벗어나 어떻게든 상활 설명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선 지훈이었지만, 그건 어느새 저지 되고 말았다.
 덥석.
 누군가가 자신의 양팔을 잡는 느낌이 들어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그곳에는 반달가슴곰과 맞먹는 무시무시한 덩치의 사내들이 있었다. 복장을 보아하니 이곳에 근무하는 수위 같았다. 지훈은 내심 안도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왜 수위들이 날 붙잡고 있는 것이냐. 설명을 해야 하는데 모든 질문에 응하지 않겠다는 저 험악한 얼굴은 무엇이냐. 그리고 그의 의문점은 간단히 해결되었다. 오른쪽에서 지훈을 잡고 있던 수위가 모자를 한번 고쳐 쓰더니
 "이봐, 형씨.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온 건가?"
 "에, 저기 그러니까…."
 "얼버무리지 말고 당장 대답하는 거야, 형씨."
 아니, 그 전에 사람 말을 들어주실 거면 그 얼굴 좀 치우고 말씀해 주시던가요! 지훈은 소리 지를 뻔한 자신의 속내를 꾹꾹 눌러 담았다. 솔직히 그들이 수위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그 누구라도 조폭이나 마피아 같은 거대 갱 집단에 어울릴 법한 외모들이었다. 거기다 한국인 치고는 조금 거무접접한 피부가 마이너스 효과를 더 부추겼다. 지훈은 가까스로 차분히 마음을 먹고 설명하려고 했다. 그때 갑자기 왼쪽의 수위 형님이 불쑥 그에게 얼굴을 들이밀면서 협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빨리 불지 않으면 홍콩행 급속열차를 태워버리겠어."
 그들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지훈을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훈은 그것만으로도 두려움의 농도가 한껏 짙어져서 무심코 마음의 소리를 내뱉었다.
 "싫은데요!"
 자고로 입은 모든 화의 근원이라. 지훈은 오늘 그 속담을 다시 한번 일깨우게 되었다. 수위 형님들은 지훈의 대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연행하자."
 "아니, 잠깐… 아저씨들! 아니, 그러니까 형님들! 제 말은 그게 아니라요…! 아, 그전에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이냐면, 그러니까…. 설명할 테니까 끌고 가지 말아주세요오오오오오오오!!!"
 죄인에겐 말이 아깝다는 듯이 수위 형님들은 지훈의 양팔을 낀 그대로 엘리베이터 안으로 질질 끌고 갔다. 난생 처음 겪어 보는 연행의 현장이 자신에게 닥쳐온 것을 실감한 지훈은 결국 담아뒀던 말을 모조리 뱉어내고야 말았다.
 "안돼! 나 아직 제대로 여자하고 사겨 보지도 못했다고…! 아무리 내가 동정이라지만, 이런 곳에서 순결을 잃긴 싫어어어어어어어어!!!"
 그의 뜻을 알 수 없는 외침만이 3층 전체에 가득 메아리쳤다.

──────────────────────────────

 "야아, 이거 죄송해서 어떡하죠? 저희 부부장님이 데이터 저장을 깜박하신 것 같더라구요~ 워낙 백치미가 매력인 분이신지라."
 유쾌하다는 듯이 활짝 핀 얼굴로 남자는 말했다. 걱정 말고 편한 마음으로 오라더니 이게 무슨 꼴이냐. 지훈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지훈은 가까스로 이 남자에게서 구원 받을 수 있었다. 1층 수위실에서 꼼짝없이 밧줄로 묶여 있던─이때의 지훈은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구세주를 바라고 있었다─찰나에 이 남자가 대장의 명을 받아 왔다면서 지훈을 구출한 것이다. 여담으로, 부부장이란 작자는 3층에서 울리는 지훈의 목소리를 듣자 그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쯤 되면 백치를 뛰어넘어서 아둔한 거 아니냐고 지훈은 작게 탄식했다.
 자신을 '무궁화부의 얼굴마담'이라고 소개한 청년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산뜻한 발걸음으로 지훈과 함께 인식기들로 둘러싸인 3층의 대문을 넘어섰다. 얼굴마담은 연신 내내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야~ 그건 그렇고, 아주 재밌었습니다. 비명소리요. 아니, 어떻게 상상이 비약하면 그런 엄청난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건지. 아주 오래간만에 부대원들과 한창 웃었습니다. 이거, 이번엔 아주 유쾌한 신입이 들어왔네요~"
 "하하…."
 지훈은 사람의 첫인상을 대체로 네 분류로 나눈다. 예의가 바르며 어딜 봐도 품행방정해 보이는 사람, 소위 일진으로 보이는 사람, 겉과 속이 다른 사람, 기본적으로는 선인이나 성격이 어딘가 뒤틀린 사람. 요컨대 얼굴마담은 네 번째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친절하면서도 어딘가 꼬여서 아무렇지 않게 남 앞에서 독설을 쏘는 사람. 장가는 이제 다 갔네, 지훈은 남몰래 통곡을 하며 얼굴마담을 따랐다. 그의 햇빛을 떠올리게 만드는 환한 미소와는 대조적으로 지훈의 얼굴에는 잿빛 구름만 껴 있었다.
 대문을 넘어서자 그곳에 있는 건 텅 빈 공간이었다. 정확하게는, 일차선 도로를 그대로 가져온 듯한 넓은 복도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저 너머에 큼지막한 나무결의 대문이 하나 더 있었다. 대문에는 다른 아무것도 쓰여져 있지 않고 오직 널찍한 무궁화 마크만이 그곳이 어떤 곳인지 대변하고 있었다.
 무궁화부. 모든 이능력에 관한 범죄와 예방을 책임지고, 소문으로는 저 멀리 해외에 긴급파견까지 간다는 한반도의 정예들. 이른바 대이능력자 특수부대(對異能力者 特殊部隊)라 불리우는 집단의 본부. 그곳이 지훈의 눈 앞에 놓여 있었다.
 지훈은 다시금 대문의 웅장함이나 복도에 남다른 공기가 흐르는 것을 느끼며 침을 삼켰다.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듯했다. 이대로라면 정수기에 쓰이는 20L짜리 생수통을 혼자 다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바로 대문 앞에 도착한 얼굴마담과 지훈은 가만히 서 있었다. 얼굴마담이 신참을 위한 배려인지 어서 열어 보라며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지훈을 기다렸다. 지훈이 마지못해 긴장감으로 경련을 일으키려는 손을 문고리에 올려놓을 참이었다. 문 너머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일방적으로 어느 남자가 여자에게 당하는 상황인 것 같았다. 그 소란은 지훈이나 얼굴마담이 꼭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다 들릴 만큼이었다.
 '방음 처리는 해놓은 거야, 여기…? 혹시나 누가 쳐들어와서 기밀정보라도 도청해 가면 어쩌려고 지금….'
 슬슬 그는 이 부대의 보안성이 철저한 건지, 느슨한 건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문 너머에서는 여전히 야단법석이었다.
 「아. 왜 때리는 건가.」
 「찰지시네요.」
 「이건 뭔가 잘못됐어. 제군들, 난 여길 빠져나간다…!」
 「그렇게는 안됩니다!」
 「큭?! 나에게 뭘 꽂은 건가, 비서!」
 「여러분, 쫓아가세요! 책받침을 맞았으니 멀리 도망가지 못할 겁니다!」
 아무래도 이곳은 특수부대가 아니라, 특수병원이 아닐까. 지훈은 생각했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한 직감을 받은 지훈은 그 즉시 손을 떼고 뒷걸음질 치려 했다. 그 찰나에, 갑자기 문고리가 들썩이는 것이 아닌가. 지훈이 흠칫 놀랄 시간도 주지 않고 문은 벌컥 열리면서 그의 복부와 얼굴을 전면강타 당했다.
 쾅!
 "책받침 때문에… 힘이, 빠진다…."
 엉덩이에 각이 진 책받침을 맞은 남자가 쓰러졌다. 물론 문고리를 복부에 맞아 열린 문짝 뒤에 가려진 지훈은 보지 못했지만.

──────────────────────────────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죽다 살아난 지훈은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눈 앞에서 노를 저어 다가오는 스틱스 강의 뱃사공 카론이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지훈은 마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옷가지를 정돈했다. 얼마나 곱게 먹였는지 부부장은 한 방울 흘리지도 않고 남김없이 지훈에게 주입(?)했던 것이다. 덕분에 새로 받은 제복코트에는 얼룩 하나 없이 말끔했다. 앞을 바라보자니 부부장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선도의 옆에 서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희생양들이 저 악덕 상사에게 당했을까, 지훈은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선도는 조용히 부부장이 다시 가져온 밥 한 공기를 해치웠다. 참으로 선인 같아 보였다. 겉으로는 강압적이어 보여도 행동 하나 하나가 조신하고 고운 것이 같은 남자가 보기에도 반할 정도였다. 지훈은 그에게서 어떤 마성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반 우스갯소리로 중얼거렸다.
 선도는 냅킨으로 입을 대충 닦더니, 곧바로 책상 한 켠에 놔둔 서류를 집어 들었다. 지훈의 입대신청서였다. 선도는 특정 한 부분을 눈살을 찌푸려 가며 집중해서 읽다가 지훈을 바라보았다. 대장의 시선을 느낀 지훈은 바짝 긴장하여 부동자세를 취했다. 군기는 살아 있군. 선도는 남들이 보이지 않게 살짝 미소를 걸치더니 차분한 어투로 말했다.
 "우리 부대에 지원하게 된 용의가 뭔가? 추천서를 가지고 오는 사람은 드문데 말이지. 그것도 몇 년 전의 추천서라면 더욱 그러하지."
 일순간 방 안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추천서'라는 물건은 호칭상 추천서라는 것이지, 이 의미는 받은 그때부터 이미 '정식 부대원'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하물며 그런 지식을 가지고 있을 리가 만무한 지훈은, 그저 단순하게 면접을 보는 것과 같이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것은… 한 남자에게 받은 자신의 확고한 의지였으니까.
 "지금부터 대략 몇 년 전, 어떤 분에 의해 구해진 적이 있습니다. 제가 위험한 건 아니었지만, 한순간이나마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었거든요."
 지훈은 선도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잠시 엿봤다. 선도는 여전히 무표정을 고수하며 지훈의 말에 경청하는 듯했다─표정이 드러나지 않아 지훈은 추측할 수 밖에 없었다─. 지훈은 짧게 헛기침을 하고 다시 뒷말을 이었다.
 "저는 그분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지훈은 만면에 각오가 가득 담긴 채로 선도에게 호소하며 말했다.
 "이 시를 위해서 몸을 바치겠노라고. 그래서 전 그분 같이 시민을 구하는 이 시의 한 줄기 빛이 되고 싶습니다!"
 그랬다. 지훈이 단순히 구원 받은 건 아니었다. '그 상황'이었다고 해도 지훈은 혼자서 잘 해결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머뭇거리며 가만히 서 있는 사람들을 대신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던 '소녀'를 지훈이 구해냈던 것이다.
 남자는 말했다.

 「우리 부대엔 너 같은 인재가 필요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었다. 자신의 재능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었다. 단순히 겉치레가 아닌, 진심이 우러나오는 목소리를, 지훈은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를 실망시키지 않게 노력해 왔고───지금 와서야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시간은 오래 걸렸어도 지훈은 괘념치 않았다. 얼마나 지나든, 어쨌든 그는 겨우 최우선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하아…."
 지훈의 말을 끝으로 약 10초간 정적이 흘렀다. 선도가 갑작스레 한숨을 쉬자, 그것을 시발점으로 삼은 대폭소가 무궁화부를 흔들었다. 이 상태로 가다간 이 빌딩 전체와 공진해서 무너지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음향은 컸다.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지훈만이 당황해서 허둥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부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거리며 허공에 손가락을 휘저었다. 마치 지휘자처럼 능숙한 손가락이 허공에 가느다란 선을 남기자 이윽고 모양새가 갖춰졌다. 커다란 양동이의 모습. 그 안에 부부장이 水를 그리자 양동이 그림이 작은 빛을 내뿜으면서 질량을 유지한 채로 나타났다.
 '선화도(Morphogenesis)'. 허공에 선을 그어 형태를 만들고 그 자리에서 사물을 '실체화(Realize)'시키는 이능력. 부부장의 이능력이 마음껏 활개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부부장이 한번 더 손가락을 휘저으며 이번엔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Ctrl + V.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지훈이 채 인식하기도 전에 일은 터져버리고 말았다. 양동이의 수가 순식간에 기하학적으로 늘어나더니 앉아 있던 부원들의 머리 위에 떴다. 그리고 남김없이 자신 안에 있는 내용물을 다 쏟았다. 담겨 있던 물은 폭포수처럼 내려 항의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부원 전체를 적셔버렸다. 그야말로 물에 빠진 생쥐들의 향연이었다.
 부부장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작게 헛기침을 하고는 선도에게 말을 걸었다. 차분하기보다는 어딘가 박약한 목소리였다. 아마 이게 항상 부부장이 일에 임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그럼 이제 부장님, 결정을."
 "그것보다, 비서."
 "전 비서가 아니라 부부장입니다만. 무슨 일이라도?"
 "다 좋은데 왜 나도 물세례를 맞아야 하는 건가. 이 늙은 나이에 폭포수행은 힘들다고 생각된다만."
 선도가 손으로 얼굴의 물을 훔쳐내자 그제야 부부장은 가늘게 눈을 떠서 선도를 힐끗 보더니 실수했다며 입을 가렸다. 지훈이 보기에는 어딜 봐도 가식적인 행동이었지만 말이다.
 "어머. 실수했네요. 시정하겠습니다."
 누군가가 했던 말이 지훈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은 10분도 지나지 않은 방금 전 얼굴마담과의 대화였을 것이다.

 「야아, 이거 죄송해서 어떡하죠? 저희 부부장님이 데이터 저장을 깜박하신 것 같더라구요~ 워낙 백치미가 매력인 분이신지라.

 '이게 어딜 봐서 백치미야. 그냥 고의적이잖아….'
 상하이조가 안되겠소, 쏩시다! 해놓고 심영의 영 좋지 않은 부분을 쏘는 소리하고 있네. 지훈이 꿍얼거렸다. 그러자 부부장이 번뜩이는 눈빛으로 갑자기 지훈 쪽을 노려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상사가 불시에 노려보는 것은 큰 압박이라고, 막상 지훈이 겪어 보니 새삼 무슨 의미인지 깨닫게 되었다. 공포감에 온몸을 전율시키면서 지훈은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차려 자세를 지켰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몰랐다. 그게 더 부자연스러워 보여서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게 다 들통난다는 것을.
 부부장은 지훈을 한번 흘겨보고는 짧게 한숨을 쉬고, 다시 그 눈을 선도에게 두었다.
 "그럼 부장님. 결정을."
 고요한 적막 속에 오로지 사각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소리는 오로지 선도의 책상 위에서 나는 것이었다. 부원들은 물을 맞은 뒤로 거의 몸이 얼다시피 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 지훈 또한 몸을 직립시킨 상태에서 일체 동작할 수 없게 되었다. 말 그대로 격렬한 긴장감 때문에 발이 땅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훈은 한 가지 예상할 수 있었다. 그것은 예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제 6감에 의한 미래예지였을지도 모른다.
 아, 이제 시작이구나.
 선도는 몇 초 걸리지 않아 신속하게 무언가를 작성하더니, 부부장에게 건넸다. 부부장은 짧게 긍정의 말로 대답하고는 비녀가 꽂힌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며 지훈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경직된 지훈을 깨우려 어깨를 한번 건드리며 말했다. 그 말에 지훈이 즉시 자동적으로 반응하며 부부장을 따라 그가 방금 출입한 문을 나섰다. 마지막으로, 지훈은 무궁화부를 돌아봤다. 그러자 그의 눈에는───살짝 미소 짓고 있는 선도의 얼굴이 들어왔다. 30대라는,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나이. 그러나 그의 표정에는 사람을 위한 따뜻한 배려와 근엄함이 함께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IMPARK에 온 걸 환영한다."
 그 말을 시작으로 부원들이 전부 소란을 피우며 지훈을 환영했다. 여러 말이 섞여 있어서 뭐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만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말하는 방식은 전부 제각각이지만 의미는 같았으니까.
 "IMPARK에 온 걸 환영한다!"
 지훈은 예의 바르게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한 뒤,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왠지 쑥스러워져서 얼굴을 붉히는 그는 잽싸게 부부장의 뒤를 쫓았다. 발걸음이 매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아아, 이런 곳이라면 얼마든지 몸을 담글 수 있겠어. 지훈은 안도했다. 천장의 형광등만이 햇살을 대신하듯이 지훈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문 너머에서 또각거리는 소리만이 들렸다. 무궁화부 안은 여전히 방금 전에 들어온 신입 때문에 난리었다. 보통 이들 사이에서 신입이 들어온다면 우선 외모로 화제를 삼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특이한 녀석이다, 잘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기대의 말만 오가고 있었다. 전대미문의 별난 신입이 들어온 지라 모두들 들떠 보였다. 그러나 딱 한 명, 이곳의 대장만은 달랐다.
 선도는 길게 한숨을 쉬고는 낮게 중얼거렸다. 그 어조에는, 뭔가 추억에 잠긴 것처럼 그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어디서 또 저런 바보가 들어온 건지…."


1. 동물원을 수렵원 안에 가두어 넣다

 선도에게 모종의 서류 따위를 받은 부부장과 지훈은 그 즉시 본대를 벗어나 전용차를 타고 '막사'로 옮겨 갔다. 차가 리무진을 닮은 길고 검은 차여서, 지훈은 비주얼에 다시 한번 압도되어 각목이 되어버린 것처럼 뒷좌석에 풀썩 앉아 버렸다. 운전은 물론 부부장이 하는 것이었다. 겉모습이란 건 역시 중요하구나, 하고 지훈은 다시 되뇌었다. 아무 말 없이 있다가 중간에 지훈은 단순한 호기심에 왜 '막사'라 부르냐고 물어보자 부부장의 대답은 간단했다.
 "군인이니까요."
 짧지만 한 방에 이해가 갈 정도로 심플했다. IMPARK 내부가 제아무리 공무원처럼 보여도 실상은 하나의 군부대다. 그것도 이능력을 전문으로 삼는 군인들이다. 그 사실을 자각한 지훈은 거기서 더 묻지 않고 부부장이 알려주는 주의사항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솔직히 너무 많은 내용을 한꺼번에 줄줄이 말하는지라 메모라도 해둬야 할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였지만… 끝에 "뭐, 이런 건 직접 경험해봐야 알겠죠. 일일이 기억하실 필요는 없으실 겁니다." 라고 말하는 부부장의 발언에 결국 포기해 버렸다.
 너무 적당적당하게 넘어가는 건 아닌가 싶어서 지훈은 조바심이 났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 부부장조차 자기 좋을 대로 하지 않았던가. 예를 들자면 인식기 데이터 저장을 깜빡해 버린 것처럼. 그래서 지훈도 그냥 마음 편히 먹기로 해버렸다. 무엇보다 자신만 혼자 잔뜩 긴장해 봤자 되는 일도 안될 것이란 걸 오늘에야 절실히 깨달아 버렸으니까.
 그래서 현재. 그들, 신입 예지훈과 무궁화부 부부장 황새냉은 'IMPARK 소속 막사'라 칭해지는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지훈이 부부장의 이름을 알게 된 건 거의 우연이었다.
 의외로 남에게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기 꺼리는 부부장과 '왜 IMPARK 내 부의 이름들은 전부 꽃 이름인가'라는 주제로 이야기하다 새냉이 자신의 이름을 예시로 들어버렸던 것이다. 처음 들은 순간 지훈은 터지는 웃음을 참으려 애를 많이 썼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녀의 도도한 이미지와는 정말 미스 매치였다. 잘못하면 그녀의 아이덴티티가 개그 캐릭터로 바뀔 만큼 충격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걸 백미러로 본 새냉의 심정을 지훈이 알까는 모르겠지만.
 "…우와. IMPARK는 그냥 건물이 다 크네요?"
 "이래 뵈도 특수부대니까요. 정부의 막대한 지원 하에 움직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세종시는 '능력학'에 관한 연구 때문에 현재 전세계에서 후원금과 수출이익을 남기고 있었다. 그 성과물을 낭비하지 않고 착실히 시민들에게 다시 헌납하고 있구나, 지훈은 감탄했다. 적은 부대원에 비해 넓은 평지를 차지하고 있어서 역시 낭비라고 봐도 되지만 신참인 지훈이 알 리가 없었다.
 지훈과 새냉은 본대에서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간단한 인증을 했다. 새냉은 자연스럽게 "내일 사진 찍고 ID카드가 발행되면 이제부터 그걸 쓰시면 됩니다." 라며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지훈도 아무 생각 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거듭 말하지만, 지훈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에 앞으로 다가올 파란의 조짐도 예상할 수 없었다. 새냉이 안에 들어서기 위해 떡갈나무로 제조된 대문을 연 그 일순간.
 "…응?"
 웬 커다란 분사기가 그의 눈 앞에 있었다.
 "……!"
 촤아아아아아아아악-!
 지훈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분사기의 꼭지에서 거센 물줄기가 뿜어졌다. 소방차의 소방펌프와 맞먹을 듯한 수압이 지훈을 덮쳐 방금 들어온 입구까지 밀쳐냈다. 약 4초간 지속된 물줄기가 끊기자 그제야 지훈은 땅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다. 자동문이 열리면서 지훈은 곧이곧대로 물에 절은 채 널브러져 버렸다. 다행스럽게 자동문이 강화유리로 이루어져 있는지 그 거센 수압을 받고도 깨지지 않았다. 2차피해를 피할 수 있었다는 것만 해도 그에게는 천만다행이라고 여겼다.
 널찍한 우산을 펼친 채로 새냉이 지훈에게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새냉은 지훈의 옆에 쪼그려 앉았다. 손가락으로 지훈의 볼을 찌르는 것이 마치 아이가 이 개구리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죄송하게 됐군요. 깜박하고 여기에도 데이터를 추가 입력하지 않은 듯합니다. 다음부턴 확실히 하도록 하지요."
 이로써 지훈의 뇌 내 데이터베이스에 추가정보가 입력되고 말았다. 이름 황새냉. 나이 20대 초반으로 추정. 직위 무궁화부 부부장. 적당주의 + 귀차니스트 + 방약무인한 여자.
 지훈은 마음 속으로 참을 인 자를 세 번 쓰며 얼굴의 물기를 닦아냈다. 물귀신처럼 흐느적거리며 일어서고는 지훈은 외쳤다.
 "이게 괜찮아 보이십니까!"
 역시 참는 건 무리였다.
 아무리 상관이라도 이번 건 참을 수 없었다. 적당히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직무유기 아냐? 신입에 대한 인권침해 아니냐고. 대장은 뭐하길래 이런 여자를 자르지 않고 계속 곁에 두는 거지? 혹시 이 여자가 대장님의 X라거나 그런 건가… 하며 말도 안되는 망상을 부풀리고 있을 동안 새냉이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그녀는 벌써 문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필시 이거 엿 먹이려는 수작이 분명해….'
 지훈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힘이 들어가는 걸 보아하니 놀랍게도 그 수압을 견뎌낸 듯했다. 이쯤 되어서는 자신의 몸이 이상하다고 자각해야 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정신을 분산시킬 수 없었다. 지훈은 새냉의 옆에 섰다. 그리고 오른팔을 내뻗었다.
 "준비되셨습니까?"
 "열어 주세요!"
 지훈의 말과 동시에 새냉이 문을 열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전방에서 분사기가 튀어나와 거대한 물줄기를 발사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지훈은 당하지 않았다. 인간은 자고로 학습하는 고등생물이다. 한 번 당한 걸 또 당할 정도로 지훈은 만만한 인간이 아니었다.
 지훈은 곧바로 오른손을 내밀어 물줄기를 건드리자, 정지했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정지한 것처럼 보였다. 지훈은 그대로 손을 내리지 않은 채 계속해서 물줄기를 막아냈다. 새냉의 길안내를 받아 물줄기를 막으면서 그들은 어느 복도에 다다랐다. 과연 물줄기는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끊겼다. 최대범위에서 이 복도는 미치치 않은 듯했다.
 "휴우…."
 지훈은 괜시리 나오지도 않는 땀을 닦아내는 시늉을 하며 이마를 문질렀다. 바닥을 내려다 보니 물웅덩이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아마 자신의 이능력이 없었다면 자신도 이렇게 됐을 거라고, 지훈은 섬뜩해지려는 것을 애써 뿌리쳐 냈다. 약간의 안심감을 느낀 지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안을 보자 과연 본대 못지 않게 꽤 큰 건물이었다. 어림잡아도 200평은 족히 넘을 것 같았다. 새냉의 부가설명으로는, 이렇게 보여도 L자형 건물이라 슬림하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시야로 너른 광장의 모습을 보자면 과연 이들에게 슬림한 건 어느 정도일까 하고 의구심을 품을만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지훈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저거로구만, 날 공격한 게….'
 지훈은 홀 중앙에 설치된 분수대를 보며 어처구니가 하늘로 치솟는 것을 느꼈다. 분수대의 끝부분에 방금 전 자신을 공격한 분사기의 형태와 똑같은 호스가 달려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사실 내부의 적을 막기 위해 곳곳에 트랩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저건 자율방어분수대로서, 가능성을 준비해 놓고 '시간인자'를 역용해서 만든 산물입니다만. 시험체 치고는 성능이 좋아서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옆에서 새냉이 끼어들었다. 어떤 테크놀로지를 구사하면 저런 자율방어기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거냐…. 지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여기서 길 잃으면 죽습니다. 아무것도 손대지 말고 저만 따라오세요."
 도대체 뭘 하면 막사 안에서 죽음의 경지까지 이르는지 궁금했지만 지훈은 묻지 않기로 했다.
 "아, 참고로 팀킬 당해도 전 책임지지 않으니 주의해서 따라오세요."
 도대체 어떤 식으로 대응할 예정이기에 팀킬까지 당하는지 궁금했지만 지훈은 묻지 않기로 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찬찬히 저희 막사 내부를 안내해 드리죠."
 새냉은 태연하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몸을 돌리고는 복도의 저 너머로 사라졌다. 지훈만이 혼자 참을 인 자 세 번을 새기며 그녀를 뒤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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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띠잉-
 "헉헉…."
 지훈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마자 즉시 주저앉았다. 뒤에선 말없이 새냉이 등을 토닥여 주고 있을 뿐이었다.
 1층은 그야말로 악마들의 소굴이라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1층은 부대원들의 사기충전을 위한 여가시설이라는 새냉의 설명을 듣자마자 뼈를 묻겠다는 각오를 한 게 잘못이었다. 수영장에 들어갔더니 상어떼들이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질 않나. 사격장에 들어갔더니 움직이는 마네킹들이 쫓아오고, 볼링장의 앨리(Alley)는 미로로 되어 있고, 미술관에 갔더니 그림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고─그나마 여기는 다른 곳에 비해 안전했다─, 심지어 식당에서는 요리사들이 화염방사기로 고기를 굽고 있질 않나. 아무튼 보통 멘탈이 아니면 버틸 수가 없다는 걸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었다.
 지훈은 순간 여기가 SCP 재단의 한국 지부는 아닐까? 하고 생각하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자신은 보나마나 D인원으로 쓰일 게 뻔했으니까.
 지훈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옷매무새를 다시 한 번 다듬고─푹 젖어서 무거웠던 옷은 1층에서 도망가는 시간 속에 말라 있었다─묶었던 머리를 재정비했다. 준비가 다 되었음을 확인한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새냉은 이미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부실 문을 잡고 있었다. 지훈의 사인을 받은 새냉은 주저 않고 문고리를 확 잡아당겼다.
 "환영한다, 신입!"
 웃는 얼굴로 지훈을 반겨주는 사내가 있었다. 시원시원한 인상의 사내다. 광택이 나는 이마를 뒷받침 해주는 듯한 검은 올백머리─희한한 건 일부러 더듬이처럼 머리칼을 한 가닥 세워두고 있었다─에다, 호리호리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울퉁불퉁한 것도 아닌 다부진 체격이다. 자신의 소개로는 '진달래부' 부장을 맡고 있는 노장군(盧裝軍)이라고 한다.
 장군은 새냉과 지훈이 부실에 입장하자마자 다짜고짜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이윽고 장군의 인사에 맞춰 여기저기서 환영인사와 함께 폭죽이 터졌다. 당연히 지훈은 이런 이벤트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어안이 벙벙해져 가만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이벤트가 있었다면 진작에 말씀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마터면 다짜고짜 공격할 뻔 했습니다. 웬 이상한 마빡이가 튀어나와서요."
 "이봐…. 그건 너무하잖아. 내 이마는 우리 부의 마스코트라고!"
 장군의 한마디에 모두 일시적으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이 부서의 부장님은 부하들에게 선망 받지 못하는 사람인 듯했다.
 "흥. 그 잘난 마빡은 혼자 때리면서 자학개그 하는 데에 쓰이는 것이지, 마스코트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 텐데요."
 "뭐?! 잠깐만! 이미 시대 지난 개콘 코너의 누구로 말하지마! 전국의 모든 마빡러들이 상처받는다고!"
 "그리고 더듬이는 왜 세우신 겁니까? 아무리 그렇게 해 봤자 당신의 더듬이는 움직이지 않아요. 딴죽만 걸 줄 아는 흡혈귀 소년과 자신을 헷갈리지 말았으면 좋겠군요."
 "크윽…. 크리티컬 히트 삼단 콤보를 작렬시키다니…!"
 지훈은 새냉과 장군의 시답잖은 대화를 듣고서야 제정신을 차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쓸데없이 큰 공간이었다. 마치 엄청나게 넓은 개미굴에 개미들만 몇 마리가 놓여 있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개인책상들이 이 공간에 다 찬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엔 여느 사무실과 다를 바가 없는 풍경이지만 곳곳에 놓여 있는 흉기가 불범하다고 알리고 있었다. 만화나 영화에서 볼 법한 긴 칼자루나 총기뿐만이 아니라 마상 경기에 쓰일만한 둥근 창이나 커다란 방패, 심지어는 하얀 천에 둘러싸여───말 그대로 베일에 싸인 정체불명의 물건도 있었다.
 여기는 뭘 하는 곳인가, 지훈이 생각하기도 전에 장군이 불쑥 끼어들었다. 장군은 지훈에게 자연스레 어깨동무하며 설명했다.
 "흠흠. 그러니까 말이지, 여기 진달래부가 뭘 하는 곳이냐면 말이다. 우선 우린 IMPARK 내에서 '돌격부대'로 활약하고 있지. 덕분에 전투요원들이 많아서 지금은 이렇게 남정네들 투성이지만…. 뭐, 네가 들어온다면 훨씬 분위기가 살 테니까 걱정은 하지 말고. 우리는 주로 이능력이 관련된 사건을 도맡고 있어서, 꽤 광범위하게 움직여. 예를 들면, 소매치기 같은 단순한 것에서부터 수난민 구조 같은 커다란 일까지! 어때어때, 우리의 힘이? 이러고도 우리 부에 안 들어오면 너는 정말…."
 '혼자서 신나셨네….'
 그 뒤로도 대략 몇 분간은 장군의 연설이 계속되었다. 자신 만큼이나 자기가 이끄는 부서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사내였다. 어째 장군 혼자 기뻐하며 열심히 떠들고 있었지만, 지훈은 마이동풍으로 흘려 들으며 중요한 사항만 기억해뒀다. 요컨대 이곳은 돌격부대가 많기 때문에 대다수가 전투부원들이라는 설명이었다. 좋아, 이 정도면 되겠다. 지훈은 그의 일장 연설에도 불구하고 포인트만 집어내는 자신의 능력에 자화자찬 하고 말았다.
 계속 늘어지는 부서 소개─라고 쓰고 자기 자랑이라고 읽는다─에 질려버린 새냉은 결국 참지 못하고 지훈을 낚아챘다. 장군이 당황해 하며 새냉에게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허공에서 날아온 청테이프가 달라붙어 그것은 저지되고 말았다. 말할 것도 없이 새냉의 이능력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가죠."
 "저, 저기 부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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