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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거침없이 빠져드는 여동생 근본주의의 복음서
글쓴이: 반딧부리
작성일: 12-07-31 20:40 조회: 2,618 추천: 0 비추천: 0
거침없이 빠져드는 여동생 근본주의의 복음서

교리문답 편

Q1. 여동생과 단둘이서 살게 되었습니다

A1.
돈이라면 충분히 있었다.
그동안 모아둔 1,000만 원, 부모란 사람에게서 온 5,000만 원을 합쳐서 6,000만 원. 얼굴도 모르지만 그래도 빚은 안 남겨 준 부모님께는 감사하다. 이 돈으로 전세방 한 칸 얻어, 아르바이트라던가 한다면 누이 하나쯤은 대학까지 잘 뒷바라지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정하게 된 것이고, 물론 이곳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다. 이곳은 분명 좋은 곳이다. 하지만 누이를 믿게 키우기에 좋은 환경이라 말할 순 없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수녀님께 작별 인사를 드린다. 떠나가는 이의 마지막 인사

"수녀님, 몸 건강히…. 흐아아앙"

누이는 무언가 북받쳤는지 수녀님에게 매달려 울음을 터뜨린다. 그런 누이에게 인자한 미소로 따스하게 품어 주시는 수녀님,

"언제든지 힘이 들 때면 찾아오렴."

떠나가는 길, 뒤돌아보면 너무도 작은 이 집은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의 집이다. 내가 자란 곳이고, 내 누이가 자란 곳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떠나가는 곳이기도 하다. 뭔가 시원섭섭한 느낌이 올라온다. 누이는 옆에서 울고 있다.

"이제 가자."

멈추어 선 누이의 손을 잡아 이끈다. 조그마한 손이 따뜻하다. 자꾸만 뒤돌아보는 누이, 나는 그저 끌어당길 뿐, 그저 앞만 보고 나아 갈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맞잡은 손, 그 따스함이 희미해질 무렵 저 멀리 버스 정류장이 눈에 들어온다.

낡아빠진 정류장에는 누이와 나, 그밖에는 아무도 없다.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 갈라진 콘크리트 도로의 위, 회갈색으로 삭아가고 있는 나무 벤치가 있다. 누이의 온색 원피스 자락에 얼룩이라도 지면 큰일이라고 생각하니까. 벤치 위에 티슈 한 장을 펼친다. 누이는 쪼르르 와서 털썩 주저앉는다.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이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무슨 여자애가 와 그라노, 좀 조신하게 앉아라"

하지만 누이는 말이 없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렸을까? 기다리다 지친 누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오빠야, 버스는 언제 오는데?"

눈가가 조금 부어있는 누이, 그 누이의 질문에 대해서 나는,

"좀 있다가"

하며, 다소 무신경하게 대답한다.

"좀이 얼마 만큼인데?"

다시 물어온다.

"기다리면 오겠지"

무책임한 말로 돌려막는다.

"오빠야도 모르네"

고개 돌린 누이, 시무룩한 그녀에게 애써 밝은 목소리로,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이제 우리가 떠난다는 게 중요한 거지.”

하지만 누이는 그저 시큰둥하다.

“오빠야, 우리가 지금, 꼭 가야만 하나?”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가야 했잖아, 그게 지금이 됐을 뿐이다.”

누이는 입을 다물었고, 대화는 더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저 멀리 디젤엔진 소리가 들려온다. 삐걱 삐걱하는 힘겨운 소리라고 생각한다. 뽀얀 흙먼지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하얗게 먼지가 앉아있는 버스가 바로 앞에 멈추어 선다.

"학생 둘이요."

네모난 돈통 속으로 꾸깃한 지폐 두 장이 빨려 들어간다. 누이는 어느새 맨 뒤의 창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여전히 어린애 같은 녀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서 나는 누이 옆자리에 자연스레 앉는다. 누이는 조금 불편한 듯 몸을 뒤척이다가 창밖을 바라본다. 누이가 바라보는 창 밖은 온통 뿌옇다

버스는 달려갔다. 덜컹덜컹, 울퉁불퉁한 흙길이 까만 아스팔트 도로가 되고, 창밖의 풍경도 따라 변한다. 초록빞은 잿빛으로, 파랗던 하늘은 먹구름이 그득하다. 그리고 한 방울, 한 방울 차창을 씻겨 내리는 봄비.

그리고 버스는 멈추어 선다. 도시의 경계, 그곳에서 우리는 또 다른 버스에 몸을 싣는다. 머나먼 곳으로 떠나는 길이다.

"위에 올라가면 이제 우리 말본새도 고치야 한다."
"와?"

누이는 왜 그런 이상한 소리를 하냐는 표정이다.

"우에 쪽에는 사투리 쓰는 사람 별로 안 좋아한다 카드라"
"별로, 안 좋아 해도 상관없다."
"그건 안되지! 누구 동생인데! 난 네 믿게 키워서 좋은데 시집 보낼 건데!"

나의 발언에 누이의 얼굴이 붉어진다. 적잖이 당황한 눈치다.

"무, 문 소리하노!"

그러다가 눈을 돌려버린다. 딴청을 피우고 있는 누이의 그 모습이 조금은 재미있을지도

"므, 뭐 노력은 해 볼게."

****

버스가 멈추어 섰다

"내리자."
“응"

까만 아스팔트 도로는 물을 흠뻑 먹어 까만 대리석처럼 빛을 발하고, 콘크리트 건물들은 은색으로 반짝인다.

"오빠야, 비 오는데 어쩌지?"
"다~ 방법이 있지!"

나는 버스 정류장 앞에 놓인 매트로지 두 개를 손에 들고, 하나를 누이에게 건넨다.

"그냥 신문이잖아. 이걸로 어쩌려고"

나는 신문을 펼쳐 머리를 가린다.

"치, 빈티나게시리."

툴툴거리면서도 누이는 신문지를 뒤집어쓴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거리, 그 한가운데 신문 두 개가 뛰어간다. 칙칙한 색의 재생지는 물을 먹어 더더욱 어두워진다. 신문지가 완전히 찢어지고 발기어 나갈 즈음 우리는 집 앞에 서 있었다

****

그렇게 큰 집은 아니었다.

"우와아-!"

그럼에도, 누이는 입을 다물 줄 모른 채 감탄사만 연발하고 있다.

흔한 오피스텔형 원룸. 전면 가득 거대한 유리창엔 저 멀리 지평선까지가 걸려 있다. 십 댓 평 정도의 1층. 한쪽엔 자그마한 싱크대가 있고 다른 한쪽엔 욕실 문, 천장 가까운 2층에선 낮은 난관 사이로 1층이 내려다보인다.

"나쁘진 않지?"
"응! 완전 좋다!"

흥분해서 뛰어다니려는 누이를 가까스로 붙잡고,

"일단, 샤워라도 해라."

겨우 진정시킨 누이에게 수건 한 장과 갈아입을 옷을 건넨다. 어제 미리 와서 옷가지나 가구 정리 그리고 청소를 하고 간 보람이 있다. 누이와 내가 비에 흠뻑 젖은덕에 바닥에 고이게 된 물은 닦아 내야 할 것 같지만

"뭐고! 오빠야 또 내 속옷하고 옷하고 전부, 마음대로 건드린기가!"

다소 신경질적으로 말하긴 해도, 누이는 내가 건네주는 옷가지와 수건을 곱게 받아 든다. 욕실 문을 좀 신경질적으로 닫기는 했지만 그리 기분 나쁘지는 않다. 귀여운 여동생의 떼 쓰는 모습은 감내할 만한 것이다. 잠시 후, 물이 흘러내려 가는 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 온다. 창을 때리는 빗소리와 함께 묘한 화음을 자아낸다. 그 사이 냉장고에서 누이가 좋아하는 토마토 주스를 한 병 꺼내 들자 손끝에 아리는 차가운 감촉. 탁자 위에 주스 병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아서 멍하니 바라본다. 어느새 유리병에 물방울들이 어려 흘러내린다.

“오빠야, 뭐하는데?”

내 어깨 위에 지그시 올려진 두 개의 손은 누이의 것이다. 그 사이 다 씻은 건가? 의자에 기댄 채 고개 들어 올려다보면 누이의 촉촉한 피부가, 발그랗게 상기된 볼이 눈에 들어온다. 입고 있는 까만 저지의 붉은 무늬와 묘하게 어울리는 그런 얼굴이다.

“그냥, 멍 때리고 있었지.”

누이의 축축한 머리칼, 그 끝에 매달려 있던 물방울이 톡하고 내 이마에 떨어진다.

“머리는 제대로 말리라고 했잖아.”
“피, 오빠는 머리가 짧으니까 그런 소리 하는 거잖아.”

나는 누이를 의자에 앉히고서 누이가 들고있던 수건을 빼앗는다. 수건을 펼쳐들고 축축한 머리칼을 닦아내기 시작한다. 언제나의 익숙한 손놀림.

“있잖아, 오빠야.”
“왜?”
“난, 오빠야가 머리 닦아 줄 때가 제일 좋다.”
“뭔, 소리하노.”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건을 든 손에 힘이 들어 가 버린다.

“히히, 그냥.”
“오빠야는 놀리는 거 아니다.”
“놀리는 거 아이다! 나중엔 오빠야 같은 남자랑 결혼할 건데!”
“이래가지고, 니 데리고 갈 남자가 있겠나?”

입을 쭉 내미는 누이,

“자! 다 됐다.”

조금 축축하지만, 검푸른 누이의 머리칼은 꼬불꼬불하게 귀밑까지 살랑거린다.

“어! 토마토 주스!”

누이는 그제야 탁자 위의 토마토 주스를 발견한 모양이다.

“토마토 주스다! 내 먹어도 되나? 응? 먹어도 되나?”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싱글거리는 누이,

“버스 타고 올 때는 그리 가기 싫다고 징징거리더만,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난다던데, 어디 엉덩이나 한번 확인해 볼까?”

내가 양손을 들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다가가자 누이는 기겁을 하며 뒷걸음질친다.

“유치하게 와이래삿노!”

누이의 등이 벽에 맞닿았을 때 울려 퍼지는 외침.

“씻기나 해라! 바보! 변태 오빠야!”

나를 강제로 욕실에 밀어 넣는 누이. 수건 한 장과 옷가지들이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온다. 손에 잡히는 데로 마구 던진다. 바지만 벌써 두 개, 이건 곤란하다. 아래도 바지, 위에도 바지를 입으란 건가? 하지만 여기 더 서 있다가는 칼까지 날아올 것 같으니 황급히 욕실 안으로 도망친다.

****

물은 뜨뜻미지근했다.
뜨뜻미지근 하기로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집을 가진다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무얼 해야 하지? 내일부터 학교도 가 봐야 하고 아르바이트도 가야 하고 할 일이 천지다. 학교는 별로 다니고 싶지 않았지만 누나의 만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게 되었다. 쓸데없이 고지식하다니까, 그 사람. 물줄기는 온몸을 타고 흘러내려 간다. 하지만 머릿속의 생각들은 씻겨 내려갈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에이, 어떻게든 되겠지."

비누 거품을 씻어 내고 수건을 찾는다. 보송보송하게 기분 좋은 촉감이다.

****

"자! 이거!"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문 앞에 서서 오렌지 주스를 건네오는 누이

"땡쓰~"

톡 하는 소리와 함께 뚜껑을 따고 병 속에 담긴 노란 액체를 들이켠다. 새콤하고 씁쓸한 맛이 난다. 배시시 웃고 있는 누이.

"뭐가 그렇게 재밌어서 웃는데?"
"그냥~ 오빠야는 몰라도 된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하고서 누이는 뒷짐 지고 총총걸음으로 사라진다. 뭐, 사라져 봤자 방 안이지만

"아, 비 그쳤다."

누이의 목소리 너머, 먹구름 사이에 숨어있던 태양이 빛을 발하자 환한 햇빛이 방 안을 가득 메운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생활,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고 있었다.

Q2. 여동생이 학교에서 따돌림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A1.
"야, 일어나! 지각하겠다."

우리 집 누이는 다른 집 누이들과 달리 잠이 많은 편이다. 그러니까 누이가 나를 깨우거나, 아침을 준비해 놓거나 하는 그런 만화적인 상황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 대신 이렇게 내가 앞치마를 하고 있다.

"으햐암, 5분만 더…. 흐냐으음"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역시 실력행사다. 강제로 이불을 들어 올린다. 하나, 둘 하고 번쩍! 이불 아래로 드러나는 익숙한 너무나도 익숙한 나의 사각 트렁크?!

"야! 어째서 니가 내 팬티를 입고 자는 건데"
"그야~ 편하니까~"

반쯤 덜 깬 눈으로 방긋방긋 웃는 누이.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할지 고민해 보아도 답은 안 나온다. 그저 고개를 좌우로 저을 뿐이다.

"알았으니까 어서 씻고 학교 갈 준비나 해."

후다닥 씻으러 가는 누이를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이건 안될 일이다. 안. 될. 일! 기본적으로 내 인생 목표는 1. 누이를 참하게 키운다. 2. 번듯한 놈에게 시집 잘 보낸다. 이것인데, 사각 트렁크라니! 첫 단추부터 잘못된 것이다. 아주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아아…. 머리가 아파진다. 하지만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다. 그래, 지금은 아침 식사나 준비하러 가자.

오늘의 아침 메뉴는 버섯 된장국에 계란 후라이의 훌륭한 1첩 반상이다.

"오빠야"
"왜?"
"나, 고기반찬."

칭얼거리는 누이에게 해 주는 말,

"어디서 반찬 타령이고, 그냥 먹어라."

누이는 툴툴거리며,

"오빠야 완전히 싫어."

물론 미안하기는 했다. 불평하기는 해도 잘 먹어주는 누이에게는 언제나 고마움? 그런 것을 가지고 있다.

"학교 교복은 괜찮은 거 같나?"

하얀 와이셔츠, 까만 체크무늬 치마와 베스트.

"오빠야 보기엔 어떤데?"

밥 먹다 말고 일어서서 한 바퀴 돌아보는 누이. 어디서 봤는지 베스트 주머니에는 손을 찔러넣고 있다.

"먼지 날린다. 앉아서 밥이나 먹어라"
"치, 오빠는 그러니까 여자친구도 하나 없지!"
"그냥 치워라."
"뭐, 사실이잖아. 오빠야는 무능하니까."

무시하고 밥이나 먹자. 손이 빨라진다.

"난 다 먹었으니까 간다."
"아, 정말 불리하면 도망이나 가고, 오빠야 같이 가아~!"

허겁지겁 밥그릇을 비우는 누이

"오빠야 지금 몇 시야?"

7시 59분 57초

"학교 아직 안 늦었으니까 괜찮아."

급하게 나오는 누이를 향해 말한다.

"그렇게 말하면서 오빠야는 벌써 문 열고 나가려고 하고 있잖아."
"뭐, 그건 그러네"
"그렇게 말할 게 아니잖아! 바보 오빠야!"

그렇다고 한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잡았고 잠시 뒤, 문이 열린다.

"그런데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된다."

누이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학교가 바로 집 앞이니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유리문 너머 바로 앞에 학교 교문이 눈에 들어온다.

"뭐야, 이게. 히히, 지각할 일은 없겠다!"
"이게 다, 나의 섬세함이라는 거지."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쉽지 않은 법이다.

"아니, 전학 첫날부터 지각이라는 게 말이 돼?"
"죄송합니다."

교문 앞에서 우리를 막아서는 근육계 교사. 아마 체육이라던가 그런 과목 담당일 거로 생각한다.

"일단 첫날이니까 봐 주는데, 다음엔 그런 거 없는 줄 알아. 어서 올라가 봐."

누이와 나는 꾸벅 인사하고 뛰어 올라갔다.

"뭐야, 지각 안 한다며"
"등교 시간이 8시까지란 걸 내가 알겠어? 난 20분까지인 줄 알았지!"
"오빠야 바보"

깨끗하게 무시하고 교무실로 향한다. 거기서 대충 아무나 인상 좋아 보이는 선생님 하나 붙잡고서 물어보는 것이다.

A2.
"오늘 전학 오게 된 초아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새로 전학 왔으니까 반장! 네가 좀 챙겨 주고, 자리는 그래 반장 옆에 빈자리 보이지? 그쪽에 앉으렴"

초아를 데리고 온 여교사는 그렇게 말하고서 교실 밖으로 나가버린다. 초아는 지정받은 반장의 옆자리에 간다.

"초아라고 했지?"

산뜻한 표정으로 인사해 오는 반장이라는 녀석. 두꺼운 안경 렌즈에 깔끔하게 가르마를 탄 머리칼. 이마가 반짝하고 빛난다. 누가 봐도 반장이라는 느낌.

"으, 응."

초아가 쭈뼛거리며 대답한다.

"난 강철수라고 해"

철수는 손을 내민다.

"그러니까 악수?"

초아가 물어본다. 이에 당연하다는 듯이

"그래, 악수."

초아의 얼굴은 붉어지고

"나, 남자하고는 손잡아 본 적 없는데…."

-웅성웅성

교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방금 들었어?"
"어, 왠지 귀엽지 않으냐?"
"이봐, 남자들! 너희 마음대로 이상한 눈으로 보지 말아 줄래?"

그런 교실 분위기를 읽은 것일까? 조그마하게 중얼거리는 초아.

"그래도, 오, 오빠야 하고는 손잡아 봤어."

"꺅, 귀여워!"

북새통에 소란스러워지는 교실. 당황한 철수가 손을 거두며

"미, 미안. 내가 좀 무신경해서."

하지만 2학년 1반에서 이미 전학 첫날. 귀요미로 입지를 굳혀버린 초아다.

바로 그때,

-쾅

신경질적으로 문이 열리고, 집중되는 시선 그 끝에 서 있는 한 여자. 날카로운 눈매로 교실을 한 번 쓱 훑어 보더니

“야, 이 2학년 잡 쓰레기들아! 내가 조용히 안 하면 전부, 죽여버린다고 했지?”

라고 소리친다. 갑자기 적막해지는 교실

“서, 선배. 그게 아니라요.”

철수가 일어나서 그녀를 향해 나아간다.

“철수라고 그랬던가? 반장이라고 그랬지?”
“네, 네. 반장입니다.”
“그럼 죽어.”

‘의자가 날아온다. 책상이 날아온다. 교실이 무너지고 학교가 무너진다.’라는 느낌의 손바닥이 철수의 뺨을 강타했다.

“반장이라면, 애들 똑바로 조용히 시키란 말이야.”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퇴장하는 선배라는 사람의 뒷모습. 이에 대한 반응은 크게 세 가지였다.

“역시, 설희 선배는 멋진 것 같아. 반할 것 같아~”

라는 여학생들과

“저 여자는 자기가 뭐라고 우리 반에 와서 이래라 저래라야?”

라고 하는 남학생들 그리고,

“괜찮아?”

라고 철수에게 물어보는 초아.

“뭐, 이 정도야 익숙해.”
“근데, 저 사람 누구야?”
“학생회장 선배인데 바로 위에 층 3학년 1반에서 한 번씩 시끄러우면 내려오거나 해.”

철수는 초아에게 설명하며 멋적스럽게 웃는다. 그런 철수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초아.

A3.
내 옆자리의 여자아이가 이상하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돌아오는데 얼굴도 발갛게 상기 돼 있고, 숨도 가빠 보인다. 이것은 역시 사랑인가? 소문으로만 듣던 사랑을 하는 여자아이의 모습을 이렇게 실물로 보게 되다니!

“저기.”
“뭐?”

조심스레 말을 걸자. 바로 쏘아붙이는 그녀.

“내 이름은 초인이라고 해. 오늘 전학 왔고, 잘 부탁해.”

내가 손을 내밀자. 강하게 내 치는 그녀. 사랑하는 소녀는 역시 까칠하구나!

“으음, 뭐 도움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말해.”

싸해진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한 말.

“그럼, 부탁 좀 하나 할게.”

뜻밖에 반응이 보인다. 역시, 연애 관련 문제인가?

“제발, 입 좀 닥쳐 줄래? 공부해야 하거든?”

굴욕적이다. 이런 여자는 처음이야! 내가 웃으며 건넨 호의를 이렇게 무시해 버리다니…. 이게, 도시의 여자라는 존재인가? 그야말로 충격이다.

챠르륵 문이 열리고, 선생님께서 들어온다.

“차렷! 경례!”

인사는 하는 둥 마는 둥 나는 멍~ 하니 얼이 빠져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그렇게 1교시가 지나가 버린다. 이곳의 여자는 무섭다!

****

조금 사이킥한 느낌의 종소리가 수업의 끝을 알려온다. 그와 동시에 멍청히 있던 내 뒤통수를 가격 해 오는 강한 충격.

“야! 촌놈. 잠시 나와봐.”

등 뒤에는 내 뒤통수에 자극을 가한 것으로 추정되는 노란 머리 녀석이 서 있다. 이건 역시, 전학생에 대한 견제라는 것인가?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금발을 따라 교실 밖으로 나간다.

“야, 촌놈 너!”
“와?”

이럴 땐 강하게 나가야 한다. 짐짓 인상을 구기고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하자. 강해 보이게 사투리는 필수다.

“존경한다! 어떻게 그 여자한테 말을 걸었느냐?”
“어?”

왠지 분위기가 이상하다. 녀석은 갑자기 어깨동무까지 해오는데,

“그게, 무슨 소리고?”
“처음에 교실 들어와서 아무것도 못 느꼈냐?”

확실히 이상한 교실이기는 했다. 지나칠 정도로 조용하고, 아이들 행동이 하나같이 조심스러웠다. 나는 그것이 단순히 고3 교실이라서 그런 것으로 생각했는데….

“잘 들어 우리 반에는 여왕님이 있다고, 전교 1등, 전국 모의고사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정도의 성적에다가 전교생의 압도적인 지지율 99%로 학생회장에 당선된 99%의 여왕 차설희!”

묘하게 분위기를 잡기 시작하는 녀석, 부연 설명이 상당히 길다.

“하지만 독보적인 외모와 능력의 찰설희지만 말이야. 이를 시기한 신이 그녀에게 한가지 흠집을 내놨지, 그게 무엇이냐 하면,”

녀석의 이야기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킨다.

“뭐, 뭔데? 그 흠집이?”
“바로, 성격이 개차반에 소갈머리 말아 놓은 것 같다는 거지.”

확실히 조금 까칠한 성격 같기는 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충고하자면, 너의 용기는 높게 사지만 만용은 부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멋진 척 뒤돌아서서 사라져 가는 녀석.

“자, 잠깐!”
“후, 내 이름은 정보….”
“아니, 그거 말고, 그 혹시 차설희가 좋아하는 사람 있는가?”

나의 질문에 녀석은 당황해서 허둥거린다.

“아, 아니. 뭐? 그, 그게 무, 무슨 소리?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 아니, 혹시. 서, 설마? 야! 촌놈! 잠깐만!”

A3.
“반장아, 나 체육복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

1교시가 끝나자. 초아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옆자리의 반장을 바라본다.

“학교 매점에 체육복 파니까. 거기서 사면 돼”

그 말을 듣자 더더욱 표정이 어두워지는 초아, 반쯤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힝, 어떡하지? 돈도 안 가져왔고, 매점이 어딨는지도 몰라서…….”

두 눈가에는 눈물이 글썽거리며, 고이기까지 한다.

“그거, 좀 곤란하네. 음, 잠시만”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확인을 해 보는 철수.

“음, 체육복은 만원이니까 그 정도는 빌려 줄 수 있겠어. 그럼 자, 가자!”

자연스럽게 손을 내민다.

“진짜? 미안해서 어쩌지?.”

양손으로 철수의 내민 손을 붙잡고 어쩔 줄을 모르는 초아다.

****

“그걸로 괜찮겠어?”

철수가 조심스레 초아에게 묻는다.

“좀, 크긴 해도 뭐 괜찮아.”

소매 끝으로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체육복

“그래도 너무 크잖아."
"뭐, 어떻게 보면 귀여워서 좋은데~? 히히"

초아가 베시시 웃자. 철수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가, 가자, 수업 늦겠다."
"응!"

****

수업은 지루했다.
문득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면 파랗고, 운동장을 내려다보면, 초아다! 체육 시간인가? 그런데 초아의 모습이 조금 이상하다. 펄럭 펄럭거리는 소매와 접어 올린 바지, 뭐지? 그러다 한쪽 바지가 흘러내려 그 기다란 바지 단의 모습을 드러낸다. 설마, 저건 신종 괴롭힘인가? 전학 첫날부터 따돌림당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응?

****

체육 수업을 갓 마치고 올라온 학생들이 떠들썩하다. 모두가 남학생들이었다. 여학생들은 탈의실이라는 곳에서 옷을 갈아입고 올 것이고, 남녀차별의 영향으로 남학생들은 교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 것이다.

그때, 문이 거칠게 열린다.

“꺅!”

곳곳에 터져 나오는 비명

“뭐, 뭐야 여자들! 아직 옷 다 갈아입지도 못했다고!”

놀람은 불만이 되고 불만은 흥분이되어 표출된다. 하지만 문에서 들어 온 존재는 그들이 예상한 여학생들이 아닌 한 남자였다.

“여기가 2학년 1반 교실인가?”

혼자 중얼거리는 남자. 혼이 빠져나간 듯 어딘가 이상해 보인다.

“그, 그래. 여기가 2학년 1반인데 무슨 일이시오!”

그의 중얼거림을 들은 한 명이 옷가지로 몸을 가리며 반문한다.

“그렇군. 흐흐흐 너희는 오늘 다 디지는 줄 알아!”

그렇게 외친 남자가 갑자기 날뛰기 시작한다. 미친듯한 몸놀림.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남학생들, 허공에는 체육복이 흩날리고, 교복이 흩날리고, 팬티가 흩날리고, 나체가 흩날린다.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처절한 비명의 한가운데 벌떡 일어나 외치는 철수.

“보아하니 3학년 선배이신 것 같은데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으십니까?”

남자는 고개를 들어 철수를 바라본다. 반쯤 눈이 풀려 초점이 없다.

“나, 나는 아무것도 잘못 한 게 없어. 히히히, 너희가, 너희가 잘못 한 거야.”

그렇게 말하고서 철수를 향해 달려오는 남자. 주먹을 철수의 턱을 향해 날린다. 옆구리에서 출발해 나선을 그리며 나아가는 주먹, 그것을 몸 바깥쪽으로 쳐 내는 철수

“오호, 제법이로구나! 네 이름은?”
“제 이름은 강철수(强鐵手)입니다.”
“강해 보이는 이름이군. 내 이름은 초인이다.”
“선배도 만만치 않은 이름이군요.”

두 사람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대결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는 군중, 한 치도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그런 기운이 두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휘몰아 치는 그 기운은 마치 태풍과 허리케인. 그 두 개의 거대한 바람이 만났을 때, 모든 것들이 바람에 휩쓸려 하늘로 날아오른다. 책상도 의자도 둘러싼 남학생들조차도

“오빠야! 지금 뭐하는 거고?”

문을 열고, 교실에 나타난 한 명의 소녀

“어? 초아 왔네? 이제 걱정하지 마라. 괴롭히는 애들은 이 오빠가 전부….”

초아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달려와서 남자의 허리에 날라 차기를 작열시키는 것이었다.

“쿠, 쿠헉.”

허리를 붙잡고 쓰러지는 남자. 그 자세는 마치 대문자 알파벳 O와 T와 L의 형상.

“너, 너를 태권도 도장에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쿠, 쿨럭.”

각혈하고 쓰러지는 남자. 그리고 다시금 등 뒤에서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목소리

“반장 나와!”

순간 교실에는 살을 에는 겨울바람이 몰아친다. 차설희의 등장이다.

“내가 한 시간 전에도 와서 경고했지?”
“서, 선배 그게 아니라.”

당황하는 철수 올라가는 차설희의 손바닥

“변명은 필요 없어!”

먹잇감을 노리고 강하해 오는 독수리와도 같은 형상 그리고, 그 독수리를 막아서는 한 마리 뱀. 바로 초아였다. 초아가 한 손으로 차설희의 팔목을 붙잡고 있다.

“넌 뭐야!”
“반장은 아무 잘못 없으니까. 때리지 마요!”
“판단은 내가 하는 거야!”

차설희가 초아의 손을 신경질적으로 뿌리친다.

“이. 이게!”

차설희가 초아를 쏘아 본다. 초아 또한 지지 않고 차설희의 눈을 마주 본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휙 돌아서는 차설희.

“체, 난 가니까. 알아서 조용히 해.”

그렇게 차설희는 유유히 사라져 간다.

“있잖아요!”

초아가 차설희를 향해 소리친다.

“왜?”
“우리 오빠야 데려가요.”

차설희의 시선이 초아가 가리키는 손끝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잠깐의 혼란, 오랫동안 지속될 분노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초인의 멱살을 붙잡아 질질 끌면서 퇴장한다.

2학년 1반에 울려 퍼지는 환호성. 그것은 초아, 그 전설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에 불과했다.

A4.
내가 정신을 차린 건 4교시가 끝날 즈음이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선생님도 나가버렸는데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복도에서는 배식차가 와서 오늘의 점심 메뉴가 돼지 두루치기임을 알려 오고 있는데, 아무도 나가질 않는 거지? 역시 이상한 교실이다.

나는 생각은 그만두기로 하고 주린 배를 채우러 가기로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집중되는 시선들

"뭐야? 밥 안 먹어?"

엉겁결에 말하기는 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괜히 민망해져서 헛기침이나 하며 교실을 나선다. 그리고 그런 내 등 뒤에 따라붙는 한 사람.

"지금 밥이 넘어가? 이 밥통야!"
"아, 너였냐? 차설희"

찰싹하는 찰진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진다.

"어, 어라? 어어?"

뺨이 아프고, 어째서인지 차설희는 울고, 무슨 상황인지 전혀 따라갈 수가 없다

"왜, 왜 울어?"
"바보, 병신, 밥탱아!"

한 단어에 한 대씩 좌우 뺨을 때려주더니 어디론가 후다닥 도망쳐 버리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이럴 땐 역시 따라 가 보아야 할 것 같다. 그 정도 상식은 TV 드라마만 보아도 쉽게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그렇게 나는 설희가 사라져간 방향을 뒤쫓는다.

****

차설희는 세면대에서 눈가를 씻고 있었다.

"뭐야 이게"

중얼거리는 그녀. 감정을 애써 추스르며 심호흡을 한다. 숨을 크게 들이쉬며 후 읍~

"야! 차설희!"
"콜록, 콜록, 콜록"

갑작스러운 초인의 등장에 당황한 차설희는 사레에 들린 모양인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눈물을 찔끔거리면서,

"어디까지 따라오는 거야! 이 변태 새끼야!"
"말이 너무 심하잖아. 나는 걱정 돼서 따라왔는데,"
"걱정? 내가 누구 때문에! 이 모양인데! 죽어! 병신!"

그렇게 말하고서 또다시 도망가 버린다

"역시 여자의 마음은 어려워"

한숨 쉬는 초인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오는 두 명의 여학생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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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전학 첫날부터 이렇게 문제나 일으키고.”
“죄송합니다.”
“됐으니까 가봐. 학교에서도 편의 봐 주고 있는데 이렇게 사고 치고 다니면 힘들어진다는 것만 알고 있도록.”

지금 와서 후회해 봐야 이미 늦은 일이다. 차설희를 따라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다고 솔직히 말한다 해도 차설희에게 맞아 죽을 운명이라면 거짓말을 하자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젊은 날의 호기심과 치기 어린 영웅 심리 때문에 일순간 잘못된 판단을 하여 발생하게 된 우발적인 사고였습니다.”

라는 변명을 하게 되었고, 이 질서 정연하고, 논리적인 인터넷 뉴스 스타일의 변명에 담임 선생님은 기가 찬웃음과 훈계 몇 마디나 하고, 치우는 것이다.

더는 어딘가에 휘말리면 안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의 멍청한 생각에도(여동생 왕따 설이라던가) 차설희의 이해할 수 없음에 대해서도, 2학년 1반 반장이 쓸데없이 강하다는 점에 대해서도 휘말리지 말자. 나에게는 목표가 있지 않았던가?

1. 여동생을 믿고 참하게 잘 키워서 2. 좋은 남자에게 시집을 잘 보낸다.

그거면 충분하다. 그래, 조용히 수업을 받자. 옆구리에서 차설희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왔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쉬는 시간 이름을 알 수 없는 녀석이 내 뒤통수를 갈겨 와도 무시한다. 잠이나 잔다. 그리고 눈을 뜨면 6교시 끝! 가방을 싸자!

수학책 1을 사물함에 넣습니다.
수학책 2를 사물함에 넣습니다.
국어책 1을 사물함에 넣습니다.
영어책 1을 사물함에 넣습니다.
영어책 2를 사물함에 넣습니다.
단어장 1을 사물함에 넣습니다.

가방을 들고 교실 문을 나섭니다.

“너 어디 가?”

다소 퉁명스러운 그런 목소리. 차설희다. 영 좋지 않은 표정으로 가방을 싸는 내 모습을 지켜보더니 결국 나를 제지하고 나선 것이다.

“나? 일하러 가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
“아, 그러니까 일단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지랄하지 말고 앉아서 공부나 해”

차설희는 나를 강제로 책상에 착석시킨다.

“그러니까 이건 담임 선생님께서 편의를 봐 주기로….”
“무슨 말이 많아! 너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전학 첫날부터 실실 쪼개기나 하고, 너희 여동생도 말이야. 선배한테 버릇없게 굴고, 이제 보충이고 야자까지 빼먹으려고 하고, 교실 분위기나 어지럽히고, 정말 싫다고! 그런 거 난 용납 못 해!”

현재 시각은?

3시 40분 44초

이대로 붙잡혀 버리면 아르바이트에 늦는다.

“미안, 가봐야 해서,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해 줄게”

나는 벌떡 일어나 설희를 빠르게 지나쳐 후다닥 뛰어나간다.

****

교실에 남겨진 차설희

“정말…. 완전, 싫어.”

신경질적으로 초인의 책상을 발로 차 버린다.

****

복도를 지나쳐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아래층을 지나쳐…. 가려다가 2학년 1반 교실에 들려

“초아야 오빠 일하러 간다~ 공부 열심히 해”
“응, 다녀와.”

무언가 ‘꺅’이니 뭐니 한 소리가 들린 것 같지만 무시하고 다시 뛰어 내려간다.

A5.
“그러니까 내가 늦지 말랬잖아!”

편의점 계산대 앞 허리쯤 오는 키의 여자아이가 말한다. 사실 아이는 아니다. 저래 보여도 24살 아줌마다. 같은 고아원 출신의 친한 누나? 그런 느낌의 사람이다. 뭐 이 누나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형부 된다는 사람에 대해서 매우 나쁜 인상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숨김없이 그대로 표현해 ‘아동 성애자 아냐?’ 란 느낌이었으니까.

“여보, 너무 그러지 마!~ 학생이잖아~ 공부도 해야지~ 이거 먹고 화 풀어”

커다란 막대 사탕을 누나에게 건네는 형부

“헤~ 이거, 먹어도 돼? 응?”
“먹고 나서 꼭 양치해야 해요~”

무언가 능숙한 형부다. 그리고 지금도 형부에 대한 인상은 나쁘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건 뭐 흔한 아동 납치범의 모습이니까. 좋은 인상을 가지기는 어렵다.

“그럼, 잘 부탁해, 나는 우리 자기랑 같이 데이트하러 갈 거니까. 그렇지~”

사탕을 손에 들고 손잡고 나가는 두 사람. 보통 커플이나 신혼부부의 닭살질을 보면 부러움이나 질투심이 생기기 마련인데 저 두 사람은 걱정이 앞선다. 누군가 경찰에 신고해 버릴 것만 같은 그런 두 사람이다.

****

“다녀왔어!”

라고 해도, 이 녀석 벌써 자는가? 이제 자정이었다.
우리 집 누이는 다른 집 누이들과는 달리 잠이 많은 편이다. 그러니까 밤늦게 집에 돌아왔을 때 현관까지 나와서 ‘돌아왔어?’ 라던 가의 마중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이다.

신발을 벗고 2층에 올라가 보면 새근새근 잠이 든 초아.

“우냐암, 고기반찬~”

잠꼬대하면서도 고기를 찾는 녀석. 그럴 줄 알고 이렇게 고기를 사 왔지! 나는 들고 온 봉투 속에 담긴 내용물 들을 바라본다. 내일 아침은 역시 불고기가 좋겠지? 오늘 밤에 양념에 재워 놓아야겠다. 벌써 기대가 되는걸? 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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