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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마법소녀로 살아가는 방법
글쓴이: 나카
작성일: 12-07-31 20:33 조회: 2,514 추천: 0 비추천: 0

제목: 대한민국에서 마법소녀로 살아가는 방법.

1장.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나의 이름은 한민준.

고등학교 2학년으로 본격적으로 입시지옥에 들어선 평범한 소년이다.

나이는 18살. 키는 174cm. 취미는 없다. 특기도 없다.

예전에는 만화책이라던가 판타지 소설, 혹은 마왕을 쓰러트리는 RPG게임 같은 것도 제법 즐기긴 했지만, 결국 이건 현실이 아닌 가상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한순간에 모두 흥미를 잃어버렸다.

예를 들자면 흔들리는 강아지풀에 환장하던 고양이가, 실은 그 강아지는 자신을 농락하기 위해 인간이 고의적으로 흔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런 감정이랄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 만큼 모험이라던가 판타지를 동경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현재 나는 리얼한 수험생 라이프를 즐기는 중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학교의 야간자습과 학원을 마치고 11시가 넘어서 집으로 돌아오던 나는 길에서 떨어져 있는 스마트폰을 발견했다.

근처 파출소에라도 갖다 줄까 하고 그것을 잡는 순간, 스마트폰의 액정에서 빛이 솟아오르더니 그 안에서 목에 빨간 나비리본을 맨 토끼인형이 튀어나왔다.

“도와주세요. 저는 마법의 나라에서 온 요정입니다. 요정의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어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평소 수상한 사람을 만나면 조심하라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지만, 스마트폰에서 튀어나와서 말하는 토끼인형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1초. 2초. 3초.

잠깐 고민한 나는 스마트폰을 본래 있던 바닥에 살며시 놔두고 빠른 걸음으로 그곳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오늘은 유난히 피곤했던 모양이다. 말하는 토끼 인형 같은게 있을리 없잖아.

“저기? 저기요? 저어어어어기요!”

뒤에서 뭔가 환청 같은게 들리지만 무시하기로 한다.

조용한 밤에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멀리서 들으면 가끔 ‘저기요 저기요’처럼 들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니 이런 경우는 먼저 놀라거나 최소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봐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귀여운 토끼가 도움을 청하는데 뒤도 안돌아보고 가버리다니,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 같으니!”

“따라 오지 마!! 그리고 인형에게 피도 눈물도 없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아!”

되도 안 되는 헛소리 까지 하며 스스로를 납득시켜 보려 했으나 환청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자신이 튀어 나온 스마트폰을 두 손으로 잡고 따라와 나를 매도하는 토끼 인형을 뿌리치기 위해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지만, 입시 준비중인 고2 답게 50미터도 전력 질주를 못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아 하아 하아. 잠시 휴식.”

“그 헉헉 러죠. 헉헉헉.”

인형주제에 나와 똑같이 전봇대에 기대 숨을 몰아쉬고 있는 인형을 보며 이것이 세상이 망할 징조인가? 역시 2012! 라고 생각하며 근처의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너도 뭐 마실래?”

“오 친절하시군요. 하지만 늦은 시간인데 빨리 집에 들어가 봐야 하지 않나요?”

“지금 가장 위험한 건 너라고 생각해.”

“쳇.”

혀를 차는걸 보니 역시 이 녀석은 은근슬쩍 우리 집 안 까지 들어왔을게 분명했다.

안 되겠어 이 녀석. 여기서 기필코 떨어트리지 않으면.....

자판기에서 녹차를 뽑아 한 모금 마시니 약간 몸과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도 잠시, 조금 전 허옇게 도끼눈을 뜨고 쫓아오던 토끼 인형이 지금 거울을 보며 귀엽게 보이려고 쫑긋쫑긋 자신을 치장하는 모습을 보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아무튼, 그래서 내게 이렇게 달라붙은 이유가 뭐야?”

“아 다름 아니라, 좋은 아르바이트가 있어서 그걸 소개시켜드리려고 합니다. 고객님.”

이야기를 들을 의사를 보이자 토끼는 마치 형사드라마에서 선량한 사람들을 피라미드에 빠트리려는 악덕 업체의 조직원처럼 무척이나 나를 위해준다는 어투로 말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 요정나라에 위기가 어쩌고 저쩌고 했던것 같은데.”

“에이 그 말을 믿으셨어요? 선수끼리 다 알면서.”

뭘 아는지 모르겠지만 능글능글 맞는 태도가 더욱 불신감을 부추겼다.

“무슨 아르바이트 소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고2거든?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밤 11시가 넘어야 집에 오는데다 교육방송까지 보면 2시에 겨우 잠들 수 있는 내가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소개 시켜드리려는 아르바이트는 일하는 시간은 얼마든지 조절 가능하면서도 고임금은 물론 4대 보험에도 가입되어 있는 안전하고 믿을만한 일자리입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밑천 없이 한몫 땡길 수 있는 좋은 기회죠.”

사람도 믿지 못할 세상에 봉제인형을 어떻게 믿을까 만은 그래도 관심이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애초에 하루에 고작 5시간을 자고, 매일 같이 감옥 같은 곳에서 단어와 공식을 외우고 문제를 풀고 한국에서는 쓸 일도 거의 없는 양놈 나라의 말을 주절주절 해대는 것도 전부 다 한 푼이라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닌가.

“아주 운이 좋으세요. 보통 제가 이렇게 나서서까지 사람을 모집하지 않거든요.”

나도 말하는 토끼 인형이 직접 아르바이트 할 사람을 모집하러 다닌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시간 없으니깐 빨리 말해줘.”

“네 틀림없이 만족해하실 겁니다. 제가 소개시켜드리려는 것은 다름 아니라 마법소녀 아르바이.....고객님? 고객님? 고오오개애액니이이이이이임!!!”

마법소녀라는 말을 듣는 순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지만, 고2의 체력으로는 공원을 벗어나지도 못한 채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되풀이 하는 것에 불과했다.

“뭐어가아 헉헉 뭐어가아 마아으음에에 헉헉 아안 헉헉 드으세에요오오 헉헉헉.”

“하아 하악. 니가 무슨 좀비냐. 하악.”

숨조차 고르지 못하고 찰거머리처럼 따라오는 그 모습은 과거에 유행했던 악마의 좀비 인형 영화와 오버랩이 되었다.

호러돌(doll)이 되어버린 토끼는 잠시 쉬더니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인형인 덕분인지 회복이 확실히 빨랐다.

“당신에게는 재능이 있어요. 당신의 가슴 안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고이 숨어 있단 말입니다. 당신은 스타가 될 수 있어요.”

“그딴 재능 필요 없거든. 지금 내게 필요한 재능은 교과서를 한번만 봐도 전부 외울 수 있는 그런 거야.”

“꿈이 메말랐군요.”

“그게 어때서! 이 나라의 교육제도는 암기만 잘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단 말이야. 잘못된 건 이 세계라고!”

어째서 나는 오늘 처음 본 인형과 야밤에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괜히 슬퍼지기 까지 했다.

“그리고 너 말야. 마법소녀를 구한다고 한다면서 내 모습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

그렇다. 마법소녀가 좋고 싫고를 떠나 내겐 마법소녀가 될 수 없는 절대적인 이유가 있었다.

토끼 인형은 위 아래로 쭈욱 흩어보더니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내려치며 말했다.

“요즘 여학생 교복은 보이쉬룩으로도 나오는 모양이군요.”

“틀려!! 여학생 교복이 아니라 이건 남학생 교복이고 나는 남자라고!!”

“남자 교복을 입고 있는게 뭐 어때서요. 치마보다 바지를 선호해서 그렇게 입고 다니는 애들이 종종 있죠.”

“너 지금 일부러 모른척 하고 있는 거지?”

“에이 농담이 참. 거울도 안 보고 사세요? 한 품에 꼬옥 안길 것 같은 아담한 체구에 우유 빛깔 새하얀 피부, 거기에 가느다란 이목구비까지. 누가 봐도 숏컷 머리의 미소녀가 사이즈가 큰 남자교복을 입고 있는 걸로 밖에 안 보이잖아요.”

이마에 힘줄이 욱씬욱씬 불거진다.

하지만 나는 현대의 교양있는 지성인. 그래 인정한다.

부모님을 닮아 키도 작고, 고등학생인 탓에 야외 활동이 적어 피부가 여자보다 새하얗다는 것도, 목소리는 가늘어서 친구 집에 전화라도 하면 친구네 어머니들이 여자친구에게 전화 왔다고 오해하신 적이 한 두 번이 아닌 것도, 별명이 공주님이라는 것도, 사귀어 달라며 사내놈들로부터 고백을 5번 받아본 적이 있다는 것도, 그 중 한번은 고백한 남자아이를 좋아하던 여자아이가 있어 뜻하지 않는 치정싸움이 일어났던 것도 전부 인정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을 통해 진신이란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사실을 아주 잘 깨닫고 있는 나는 직접적으로 저 말하는 봉제인형에게 진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가르침을 내리기로 했다.

간단히 봉제인형의 얼굴을 잡은 나는 힘껏 내 사타구니에 파묻어 버린 것이다.

“우으으읍. 숨 쉬기가 힘드 우웁!! 뭐 뭔가요 이 기분 나쁜 느낌은 우으으읍. 서 설마! 으아아아아악.”

아아 좋은 반응이다.

하지만 뒤늦게 야밤에 공원에서 봉제인형을 사타구니에 마구 비벼대는 나의 모습을 깨닫자 온 몸에 힘이 빠졌고 그로 인해 봉제인형은 나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헉헉, 서 설마 이 감촉은. 사랑의 상징인 마법소녀 마스코트에게 이런 끔직한 짓을 하다니!! 역시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었어! 이 더러운 수컷! 용서 할 수 없는 수컷! 수컷 OUT!!”

아무튼 스스로도 멘탈을 붕괴시키는 짓을 해버렸지만 그래도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설마 남자에게 마법소녀를 하라는 짓은 아무리 미친놈이라도 할리 없겠지.

“이제 내가 남자라는 것을 깨달았겠지. 그러니깐 아르바이트 권유는 다른데 가서 해. 아 오늘 나간 진도 복습할 시간도 없는데.....”

엄청 더러운 것을 닦아 내려는 것처럼 땅바닥에 얼굴을 비비며 괴로워하는 봉제인형을 뒤로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 때였다.

“후후후후후후.”

불길한 웃음소리가 나의 길을 가로 막는다.

뒤를 돌아보자 잠시 전만해도 멘탈이 붕괴되어 있던 봉제인형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 없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또 어느새 생긴 안경을 쓸어 올리며 말했다.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지금은 21세기입니다. 마법소녀의 옷이나 설정 하나 하나 조차 정부에서 압박을 넣던 과거가 아닙니다. 지금은 우월한 21세기라구YO, 검열 꺼져! 난 우월한 21세기에 산다고!”

봉제인형에게서 13등급 진상파가 검출되고 있다.

이놈은 절대적으로 위험한 존재다. 하지만 더욱 두려운건 아직 저놈의 진정한 공포는 시작되지 않았다는 나의 예감이었다.

스포트라이트 밑에서 한바퀴를 돌자 어느새 영국 신사의 복장을 갖춘 봉제인형은 전쟁에 나갈 병사들을 모집하는 위인의 포스트처럼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도 훌륭한 마법소녀가 될 수 있다.”

“빌어먹을!!”

남자에게 마법소녀를 권하는 미친 인형이 존재할 줄이야.

“세상에 남자 마법소녀가 어디 있어!! 애초에 남자라는 것부터 해서 마법소년이 되어야 정상이잖아!”

토끼 인형은 옆구리의 지퍼를 열고 거기서 장난감 파이프 담뱃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럼 상품성이 떨어지잖아요. 그리고 제가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라구요. 요 옆에 있는 섬나라에서는 최근 40세의 보디빌더 아저씨가 마법소녀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고 있지요. 그게 싫으시면 트랜스(Trans)마법으로 성별을 바꾸는건 어떠세요?”

“2012때문이다!! 2012는 역시 멸망의 날이었어!! 마야 문명의 예언은 진실이었다고!!”

상식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를 들은 탓인지 나는 다시 패닉에 빠지고 말았지만 봉제인형의 주문 한방에 곧바로 제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겨우 진정한 상태가 된 나는 아무래도 다시 이야기를 재정리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대체 넌, 왜 나 같은 남자에 수험생을 계속 악의 구렁텅이에 빠트리.....가 아니라 마법소녀를 시키려고 하는 거야?”

“그것은 운명입니다. 처음에 자기소개를 하면서 ‘나의 이름은 한민주 평범한 소년이다. 데헷☆’ 이라고 했을때 전 느꼈어요. 아 이사람이야말로 마법소녀의 자질이 있구나”

“남의 마음을 읽지 마! 그리고 ‘데헷☆’ 같은 것은 붙이지도 않았어! 별표는 무슨 의미야?”

“그런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는 거야말로 마법소녀의 훌륭한 자질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에요.”

“궤변일 뿐이잖아!!”

겨우 진정했던 내 자신이 3분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광분 모드로 변해 버렸다.

“아니면 차라리 저기 물 건너 섬나라에 가서 하면 되잖아. 하기 싫다는 사람 억지로 붙잡기보다 거기에는 그런 거 하려는 사람들 많으니깐 아무나 가서 골라잡으면 되잖아.”

“그건 안돼요.”

“왜?”“이미 섬나라의 마법소녀들은 포화상태이거든요. 게다가 마법소녀노동조합의 힘이 얼마나 쎈지, 일은 지지리도 안하면서 툭하면 임금 인상에 휴가나 늘려달라지, 요즘은 마법소녀일은 하지도 않고 CF나 찍고 방송국에서 눌러 살기만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성인잡지와 방송에까지..... 크윽.”

“아아.... 그래?”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세상 살기 힘든 것은 인간이나 인형이나 매 한가지인가 보다 싶었다.

“거기에 비하면 이 한국이야 말로 발전가능성이 무궁한 미개척 시장이죠. 많은 마스코트들이 한국을 찾았지만 야자와 수능의 올가미에 구속당한 소녀들을 구하지 못하고 좌절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외국대형자본계의 마스코트 회사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이 한국에 마법소녀라는 시장을 단단하게 형성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 그래 열심히 해봐. 그럼 안녕.”

“이럴 때야 말로 그럼 내가 함께 도와줄게 라는 따스한 말 한마디 정도는 해줘도 되잖아요!”

“내가 뭣 때문에! 그리고 난 얼마 후에 주민등록증까지 나온단 말이야. 1년 뒤에 수능만 치면 바로 대학생이 된다고.”

“걱정 하지 마세요. 한국은 아직 현역 마법소녀들이 많이 부족해서 현재 2X살로 열심히 현장에서 뛰고 계신 분도 계신다고요. 굉장하죠? 지금 열심히 활동 하면 은퇴할 때에는 대한민국 마법소녀 1세대라는 명예로운 칭호까지 얻을 수 있어요.”

“그딴거 하나도 기쁘지 않아! 그리고 만약 한다고 쳐. 부모님이나 친구에게 나 이제부터 마법소녀가 되기로 했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직업에 귀천은 없어요. 그러니깐 아무 문제없어요.”

“내 인생에 문제가 생기거든! 인권도 신경 써 달란 말이야. 그리고 왜 하필 나야.”

“그야. 이것 때문이죠.”

토끼 인형은 옆구리 지퍼에서 아까전 내가 주웠던 스마트폰을 꺼내 건내주었다.

아니 그 지퍼 계속 열어둘 셈인가.

“마술의 스마트폰을 주우셨잖아요. 그 스마트폰은 아무에게나 보이지 않아요. 마법소녀의 자질을 지닌 사람만이 볼 수 있죠. 그리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당신의 마법력 때문이에요. 우리 마법소녀 마스코트들은 인간들의 내면에 숨어 있는 마법력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거든요. 지금으로선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없지만 당신에게서 어마어마할 정도로 거대한 마법력이 느껴져요. 현역은커녕 꽤 오랫동안 이 바닥에서 실력을 쌓은 랭커들 중에서도 이 정도의 마법력을 가진 이는 드물죠. 마법소녀가 된다면 단기간에 마법소녀의 정점에 설 수 있을거에요. 당신은 마법소녀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라구요.”

18년을 평범하게 살아온 내게 그 정도로 놀라운 재능이 있다는 것은 확실히 놀랍다.

“하지만, 굉장히 쓸데없는 재능이잖아. 잠자리에게 이 세상에 그 어떤 소똥구리보다 소똥을 더 잘 굴리는 재능을 있다는 거랑 뭐가 달라.”

“마 마법소녀를 소똥구리에 비교하다니, 이 얼마나 또라이 같은 아니 비범한 정신세계란 말인가.....아아아아악! 부수면 안돼요! 그게 부서지면 저도 죽는다고요!”

저 막돼먹은 인형에게서 또라이라는 소리를 들은 바람에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이 강하게 들어간 모양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두 동강 내버리고 싶었지만 꿈자리가 편치 않을 것 같은지라 어쩔 수없이 미련을 버리고 스마트폰을 넘겨줬다.

“흑흑 이 악마! 나를 죽이려고 했어!”

나는 오늘 말하는 인형은 눈물도 흘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까 전에 피도 눈물도 없다는 말은 취소. 왠지 이놈이라면 당연하다는 듯이 피도 흐를 것 같다.

마스코트라는건 꽤 심오하구나.....

“어쨌든 예의상 물어보는 건데, 만약 내가 마법소녀가 되면 뭘 해야 하는 거야?

그러면서 나는 대충 마법소녀가 해야 할 일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음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과 싸워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들을 소탕하여 이 도시의 치안을 유지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현재 국민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 이익만 챙기는 비리 투성이의 정치인들을 때려잡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건 좀 곤란하다. 국가 공권력과 싸우는 일이라면 내게는 너무 불리한 점이 많다. 그냥 몰래 잠입해서 목만 따고 달아나는 거라면 모를까.

오늘밤 당신의 모가지를 가져가겠습니다. 마법소녀. 이런 느낌으로 말이다.

“새... 생긴 것 답지 않게 엄청 과격한 생각을 하고 계시네요.”

“그냥 농담이야.”

“농담이라 해도 이 나라의 정치인들 씨가 마를 소리를 하는건 위험해요.”

“.....아니 위험한건 네 발언이라고 생각해. 그보다 결국 마법소녀가 되면 뭘 해야 하는 거야?”

“만약 마법소녀가 되면 먼저 마법소녀 협회에 등록을 하고 당분간 마법을 배워야 해요. 그렇게 적응 기간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스파링을 통해 실전감각을 익힌 후 배틀 아레나에 참전하는게 주된 일이죠. 아 스파링에서도 이기면 파이트머니가 나온다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스파링? 대회? 파이트머니? 무슨 마법소녀라기 보다 시합을 기다리는 복싱선수들을 나타내는 단어들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아 말 안했던가요? 결국 간단히 말해 다른 마법소녀와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거에요.”

“왜 다른 마법 소녀와 싸워야 하는데?”

“예전에 케이원이 붐이었잖아요. 그래서 마법소녀시장에도 한번 대입해 봤는데 이게 반응이 그야말로 상상초월이었죠. 그래서 우리들은 소일거리 보다는 아예 이쪽으로 시장으로 옮겼어요.”

그러면서 인형은 출력해놓은 전단지를 나에게 내밀었다. 그 곳에는 <마법소녀 배틀 아레나> 라고 적혀 있었고 그 밑에는 지금까지 경기 명장면이 필름모양의 그림에 담겨져 있었고 한쪽 구석에 http://www.magicgirl-battle.com/에서 볼 수 있다고 친절하게 적혀 있었다.

“꽤나 본격적이네.”

뭔가 필살기 같은 마법을 주고받고 있는 화려한 사진들을 보며 나는 긴장했다.

“괜찮아요. 당신이라면 틀림없이 아레나에서 1등을 해서 천하장사매직걸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이름 구려!”

“구리다니요. 게다가 천하장사매직걸이 되어야만 세계 대회에 나갈 수 있는 참가권이 주어진다고요. 자 우리 목표는 1년 안에 1위의 자리에 오르는 거에요. 자 따라 외치세요. 세계정복!”

“할까보냐! 그리고 원래 마법 소녀는 평화와 정의를 위해 악당과 싸우는거 아니였어?”

“훗, 내일 당장 먹을 쌀도 없는데 일단 우리부터 먹고 살아야 정의를 수호하든지 말든지 하죠. 정의 같은 것은 권력자에게 꼬리를 흔드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대한민국 검사와 경찰들에게 맡기세요. 그 자들 대신해서 좀 도둑 몇 잡아봤자 우리에게는 도움 줘서 고맙다는 종이 쪼가리 밖에 남는게 없다고요. 그것 보다는 좀 더 값어치 있는 종이를 받는 일을 해야죠.”

그러면서 토끼 인형은 음흉한 얼굴로 손가락을 동그랗게 쥐어 보였다.

그 순간만큼은 왠지 이 녀석과 친해질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12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내일 아침 또 6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들어가서 씻고 오늘 배운 것을 조금이나마 마무리 하려면 2시는 넘을 것이다.

내 아까운 수면 시간이 1시간이나 줄어들다니 더 이상 시간을 뺐겨서는 위험했다.

“저기 말이야. 계속 봉제인형이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이름이 뭐야?”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최대한 정중하게 인형의 이름을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제 이름을 밝히지도 못했군요. 풀네임은 인간의 발음으로는 어려우니 그냥 장이라고 불러주세요.”

“알겠어. 장. 사실 난 예전에 너와 같은 환상과 모험을 좋아했어. 하지만 이제 아냐. 내겐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어. 네가 마법소녀가 되어줄 사람을 찾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당신이 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꿈을 찾는 것도, 사랑을 찾는 것도 아닌 그저 누군가가 정해놓은 대로 맞추어 가려고 노력하는 것뿐이잖아요.”

“.....미안. 난 이미 여기에 길들어 저버렸는걸. 네 덕분에 잠깐 동안 즐거웠어. 이렇게 큰 소리를 질러 본 것도 얼마만인지 모르겠고 말이야. 넌 나보다 아직 환상을 믿고 있는 사람을 찾는게 더 좋을것 같아.”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18살. 환상 같은 것을 쫓기에는 너무 늦었고, 꿈조차 꾸는 걸 포기 한지 오래다.

그래 이러면 되는 거다.

앞으로도 나는 변하지 않을 거고 변할리 없을 것이다.

그 한마디만 없었다면 말이다.

“세금 제외한 연봉 1억 보장.”

뚝. 나의 발걸음이 멈췄다.

“장기계약. 익명성 보장, 4대 보험 가입, 유급 휴가 보장, 방학 휴가 기념일마다 보너스 지급! 2차 상품 및 모든 행사 이득은 5:5!”

장의 한마디 한마디가, 나의 마음을 움직인다.

꿈을 잃지 말라고. 네가 있어야 할 곳을 찾으라고 외치고 있다.

서로 말 없이 쳐다보는 나와 장은 천천히 서로에게 다가갔다.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서로의 마음이 전해진다. 이 순간 우리는 진정한 파트너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걸음을 두고 마주선 우리는, 중요한 시합 앙숙이었던 것을 잊고 함께 멋진 플레이로 역전의 점수를 얻어 낸 농구선수들처럼 힘껏 서로의 손을 부딪혔다.

그렇게 나는 마법소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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