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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많이 먹는 것이 미덕입니다.
글쓴이: 유우
작성일: 12-07-31 20:31 조회: 2,454 추천: 0 비추천: 0
나는 뚱뚱하다.

부정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사실이다.

수치적으로는 120kg. 짜장면으로 따지면 1끼에 곱배기 두 개 가능. 뱃살로 따지면 거대 물 베개.
키는 160.
그래. 뚱뚱하다.
하지만 나는 최근에 일고 있는 다이어트 열풍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애초에 시도 해봤자, 포기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먹는 것이 남는 것. 금강산도 식후경. 많이 먹는 것이 미덕.
내 좌우명이자, 인생을 편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뭘 그렇게 빡빡하게 사는가?
"또 뭘 먹고 있어."
그렇기에, 나에게 간섭하는 이런 말 따위는 가볍게 무시해 줄 수 있다.
"빵."
완전히 무시하면 상대의 화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일단은 간결하게 대답한다. 그리고 한 입 가득히 소보루 빵을 밀어 넣는다. 이 소보루빵은 안에 커스타드 크림이 들어있어서, 목이 메이지도 않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바삭한 겉면과 안의 부드러움의 조화는 가히 '외유내강'이라는 빵 이름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휴, 그러니까 살이 이렇기 찌지. 좀 그만 먹어."
물론 나는 그만 먹을 생각이 없다. 커스타드 크림의 단맛이 뇌로 보내주는 미칠듯한 단맛의 신호가, 나의 뇌를 부드럽게 감싸며, 나는 황홀경에 빠져든다. 아. 정말 파리빵집이랑 매일빵집이 우리나라를 모두 뒤덮을 동안에도, 꿋꿋이 살아 남은 빵집답다. '황금성' 마치, 중국집 이름 같지만 엄연한 우리 동네의 대표 빵집이다. 얼마전에는 '골목상권 우수 매장'으로 뽑히기도 했다.
"너도 먹을래?"
그렇게 말하며 가방에서 다른 빵을 꺼냈다. 내가 좋아하는 빵 베스트 5 안에 들어가는 '용두사미' 였다. 소라빵의 모양새를 하고 있으며, 기형적으로 머리부분이 크고, 담겨있는 크림이 거의 동그란 모양 -마치 여의주를 문 용의 입처럼- 생긴 것이 특징이었다. 커스타드 크림과 초코 크림 버전이 있으며, 하루권장당분을 한 방에 해결해 줄 정도로 달콤한 것이 특징이다.
"또 있어? 어휴. 그래. 차라리 내가 먹자 내가 먹어."
인심이라도 쓰듯, 내 빵을 가져가는 여울. 솔직한 얘기로 그렇게 투덜댈 거라면 안 받아줬으면 좋겠지만, 내 빵을 거절한 적이 없다.
'용두사미'는 입이 큰 남자가 아니면 먹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터져 나올 것 같은 크림 때문에, 한 입에 먹지 않을 경우 대참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울은 익숙하다는 듯이 꼬리를 떼서 크림을 빨아 먹기 시작했다. 한 번에 먹지 않을 것이라면, 몹시 현명한 선택이다. 과연, 내 옆에서 빵을 삥뜯은 지 3년이 넘자 관록이 넘치는구나.
"안 먹어줘도 되거든?"
준 주제에 치사하게 한 마디 해본다.
내 음식을 엄청나게 뺏어 먹는 주제에 마른 이 소녀는 여울. 원래는 나랑 같은 뚱뚱이었으나, 피 나는 노력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이런 거 뺏어 먹으면 요요 현상 일어날 텐데 말이지.
"내놔 안 뭑머후현, 쭙. 혼댜 다 먹댠하."
"다 먹고 말해."
순식간에 크림을 빨리고 쪼그라든 '용두사미'를 먹으며, 여울이 말했다.
"아주머니, 엄청 걱정하시던데, 살 진짜 안 뺄꺼야?"
대답 대신 주저 없이 다음 빵을 꺼냈다. '용의구슬'. 7개의 미니 슈를 초코를 굳혀 부드럽게 연결해 놓았으며, 각 슈 위에는 작은 식용 비즈가 붙어있다. 물론 모양은 별모양이다. 별의 개수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빼서 뭐 하게."
솔직한 내 심정을 말해봤다.
"야 지금 이게 사람의 몸매야?"
그렇게 말하며 내 뱃살에 손을 댄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꼬집었다.
엄마도 아닌 것이 엄마보다 잔소리가 훨씬 심하다. 솔직한 얘기로 성가셨다. 만약에 여울이 아닌 다른 사람이 꼬집었다면, 화가 치밀었겠지만, 익숙해진다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덤덤하게 말로 받아쳤다.
"그럼, 내가 동물이냐?"
그렇게 말하며 일성구를 먹었다. '용의 구슬'은 각 구슬마다 각각 다른 과일 맛 크림이 들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성구는 메론이다.
"야 그런 말이 어딨어."
음,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는 자각은 있는 것 같았다. 얼굴이 예쁘다. 노력파다. 내가 좋아하는 포니테일 스타일을 고수한다. 등의 장점이 있는 반면, 살을 빼면서 앞뒤가 사라진 몸매와 더러운 성격은 장점을 모두 커버해서 무덤으로 이끌 정도로 안 좋다고 생각했는데, 좀 철이 들었나?
"빨리 동물한테 사과해."
"그쪽이냐! 애초에 동물도 아니면 난 정체가 뭔데?"
격하게 반응 하는 것 같지만, 이러면서도 내 손은 멈추는 일 없이, 이성구를 집었다. 이성구는 사과맛이다. 상큼하면서도 달콤한 사과 크림은 일품이다.
여울은 머리를 갸웃갸웃 하며 곰곰히 생각하더니, 손가락을 들며 대답했다.
"음식물 쓰레기통?"
"인간이나 동물 이전에 생물 이하냐."
시니컬한 대답과는 별도로, 내 뇌는 항상 먹을 것을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다. 삼성구는 포도크림이다. 포도맛 크림이 어울리냐?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는데, 이게 생각보다 엄청나게 맛있다.
"그럼.네 평소의 행실을 생각해보면 가장 어울리는 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말하더니, 순식간에 내가 제일 아끼는 사성구를 집어 들었다.
"야, 야, 그건 먹지마."
그 행동은 대인배인 나마저도 흥분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손오반의 분신! 고급우유로 만든 녹아내릴 듯한 황금성의 자랑인 '순수생크림'이 들어간 사성구에 손을 대는 것은 참을 수 없다.
"헤헹. 나머지 빵 그만 먹을꺼면 줄게. 나머지는 내일 먹어."
물론 여기서 지칭하는 나머지 빵은 남아있는 '용의 구슬' 3개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유리멘탈', '쇼생크탈출', '입으로 만든 빵' 등 황금성의 초호화 빵 라인업이 내 가방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아마도 그것을 칭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성립할 수 없는 거래였다.
눈 앞에 맛있는 먹을 것이 있는데, 왜 내가 참아야 하는가?
마치, 이것은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상금을 찾아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된다.
"야 그 사성구 내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여울은 아슬아슬하게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서 손을 뒤로 뺐다. 쉽게 말하자면, 애들이 좋아하는거 줄까 말까 하면서 놀리듯이, 내가 손을 뻗을 때마다 손을 뒤로 쏙 빼며 피했다. 정녕, 피를 봐야 겠느냐.
"야, 안 내놔?"
하지만 가방의 빵을 모두 먹기 전에 의자에서 일어나는 것은 수치다. 등짝의 상처보다도 더 불명예스러운 일인 것이다. 남들은 뭐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내 안에서는 그랬다. 특히, 황금성의 빵은 당일 생산 당일 판매 원칙을 철썩같이 지키고 있기에, 산 즉시 먹어주는 것이 빵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다. 화장실 갈 틈도, 친구들과 대화할 틈도 없다. 모두 해치워줘야 하는 것이다.
명예냐, 아니면 사성구냐. 잠시 고민하다가 의자를 뒤로 뺐다. 내 무게 때문에 의자가 바닥을 끄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나의 몸이 일으켜 세워졌다. 역시, 명예 따위 보단 먹는 것이 중요하다. 줏대없는 남자라서 미안하다.
"이 몸을 일어나게 만들다니."
다행히, 여름방학 도서관의 휴게실에는 나와 여울밖에 없었다. 여울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의자를 방패삼으며 나와 마주섰다.
"흥. 그 육중한 몸으로 어디 날 잡을 수 있겠어?"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 슬금슬금 거리를 좁혔다. 물론 여울은 의자 바리게이트를 늘이며, 뒤로 물러섰다. 의자로 막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다. 내가 붙으려는 순간, 다른 쪽으로 도망갈 수 있을테니까.하지만, 출구 쪽이 아닌 벽을 등진 것이 너의 패인이 될 것이다.
"잡을 필요는 없지."
애초에 속도로는 이길 수 없는 상대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전법이 있다. 여울 주변에 놓여진 의자 위에 다른 의자를 겹쳐 쌓아 올렸다. 바리게이트는 더더욱 높아졌다. 여울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뭐해?"
"보면 알아."
그렇게 말하고 또 다른 의자를 쌓아올린다. 그제서야 내 의도를 알아챈 듯한 여울이 당황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퇴로는, 내 눈 앞에 있는 이 책상, 한 곳 뿐이다. X자로 의자의 다리가 얽히게 올려놨기에, 쉽게 뺄 수는 없을 것이다.
"야 치사하게 이러는 게 어딨어?"
여울의 말을 들은 체 만 체 하며, 유일하게 뚫린 책상을 치웠다. 여울은 뒷걸음질을 쳤다. 당연히, 그녀의 등에는 벽이 기다리고 있다.
"얌전히 빵 먹는 작은 뚱보를 건들인 대가다."
담담하게 말하며, 성큼성큼 다가갔다.
"잠깐!"
여울은 한 손을 내밀며 나를 제지했다. 그런다고 작은 뚱보를 막을 수는 없다. 나는 주저없이 여울의 배때지에...아니 잠깐, 저 여자가 뭐하는 거야!
"자꾸 다가오면, 이거 먹어버린다."
여울은 입에 닿을랑 말랑 하게, 사성구를 가져다 댔다.
젠장! 이래서야, 손을 쓸 수가 없다. 곤란하군. 빵 하나에 호들갑인 이유가 있다. '용의구슬'은 완전 예약판매를 실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약대기번호는 한 달에 한 번밖에 받을 수 없다. 저것을 먹히게 되면, 다음 사성구는 다음 달에나 먹을 수 있게 된다. 먹는다고 협박하면 내가 손을 못 쓴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떠올린 듯한 여울은, 여유 있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자. 이거 다 치워. 안 그러면 먹어버린다."
전쟁에서 패배한 국가들이, 무조건 항복을 외칠 때의 심정을 깨달았다. 저항하기에는, 사성구를 향한 내 의지가 걷잡을 수 없이 크다.
마지못해 의자를 치우기 시작했다. 의기양양해진 여울은 그 기세를 몰아 협상 조건을 제시했다.
"사성구, 돌려주면 나머지는 내일 먹는 거다?"
마지막 의자를 내려놓을 때 쯔음, 협상안을 제시했다. 내가 제시 할 수 있는 카드가 있나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았다.
"내일부터 시작하면 안 돼? 다이어트."
"넌 그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아?"
아니오. 저라도 안 믿을 것 같아요 헤헤. 하지만 이렇게 교섭을 포기할 수는 없다.
"정말, 진짜 제대로 시작할게. 내일부터 2학기 개학이잖아."
"개학이 뭐가 어때서?"
"개학하면 왜 그런 거 있잫아. 새로운 다짐. 새해에 하는 다짐 처럼 말이야."
"새해에 시작하는 다짐처럼 빨리 포기하시겠다? 성의가 느껴지질 않네. 그냥 먹어버려야 겠다"
"잠깐잠깐잠깐잠깐. 어허. 왜 이러세요. 입 떼. 어. 야, 안 떼? 선생님. 스승님. 언니!"
입에 닿을락 말락 사성구를 넣었다 뺐다 하는 모습에, 나는 몹시 흥분했다. 아니, 성적인 의미가 아니라 노했다는 의미로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조건을 제시해줄게."
"뭔데?"
"다연부에 들어와."
"야, 내가 미쳤다고 그런 정신나간 부에 가입하냐?"
다연부, 다이어트 연구부의 줄임말로, 이 녀석이 현재 1학년 매니저다. 6개월만에 나와 비슷한 몸매에서 현재의 몸매로 변한 여울은 전설같은 존재이며,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라고 한다.
"너 진짜 우리 코치 언니가 얼마나 살 잘 빼주는데."
"난 식단조절로 살 뺄 생각 없어."
"그럼 운동으로라도 빼자. 3학년 선배들이 거의 모든 종목의 운동에 대응해서 프로그램을 짜 주실 수 있어."
"운동으로 뺀 다는 이야기도 아니야. 그냥 살 뺄 생각이 없어. 내 살이 어때서?"
그렇게 맗자고 뱃살을 두툼하게 잡아서 출렁여 보였다. 여울은 인간으로서 못 볼 것을 봤다는 표정이 되었다.
"스, 슬라임 같아."
당당하게 외치긴 했는데 슬라임 같다는 말을 들으니 조금 상처가 되긴 했다.
"됐고, 난 슬라임하고 같이 백년해로 할 테니까 어서 내놔."
"그럼, 최소한 나랑 같이 상담 한 번만 받자. 우리 고문 선생님 친구분이 비만 상담 해주시거든."
"그 얘기는 벌써 3번째야. 난 안 간다고 했잖아. 야 됐어. 나 그냥 안 먹는다."
1달 뒤에 먹으면 되지. 그런 정신 나간 부에 들어가면 한 달 뒤에도 못 먹을 것이 뻔했다.
"이씨.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열심인 건데. 다 너 때문이라고 너. 너. 너."
다혈질인 여울이 성격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했다. 순간 욱해버린 나도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 데 왜 그렇게 참견이야."
그 말을 하자, 여울은 정색하고 나를 쳐다봤다. 나는 기세에 눌려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약 2분 후. 설정된 온도보다 올라간 온도를 낮추기 위해 오래된 에어콘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할 때 까지. 우리 둘은 그렇게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여울은 내 눈을 쳐다봤고, 난 눈을 피했다. 여울은 깊게 한숨을 쉬더니 입을 열었다.
"됐어. 너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해."
"야 그건 주고, 으브ㅡ읍."
"많이 쳐 먹어라."
여울은 사성구를 내 잎에 말 그대로 쳐 넣고 가버렸다. 하여간, 여자애가 입도 험하고, 성격은 왜 저런지 모르겠다니까.
"...내가 누구 때문에 다연부에서 열심히 배웠는데..."
여울이 방을 나가며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는, 난방기 소리에 가려져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더불어 나가면서 입에 넣은 사성구는, 내가 지금까지 먹었던 사성구 중에서 가장 맛이 없었다. 이상하다. 여울이가 오래 들고 있어서 손가락 온도 때문에 쉬었나.
남아있는 빵들도, 어쩐지 평소처럼 맛있지 않았다. 나는 처음으로 빵을 남겼다. 7개밖에 안 샀는데. 우유도 남겼다.
여름방학 마지막 날은, 그렇게 별로 좋지 않게 끝나고 말았다.

다음날. 개학은 했지만, 평소처럼 여울과 대화하는 일은 없었다.
먼저 우리집 초인종을 눌러서, 빨리 나오라고 재촉했을 그녀는 먼저 학교에 가버렸다.
쉬는 시간마다, 내가 뭔가 먹나 감시하던 그녀는, 우리 반에 찾아오지도 않았다.
점심시간, 유일하게 나와 같이 밥을 먹어주던 그녀는, 내가 모르는 그녀의 반 아이들과 밥을 먹었다.
급식으로 나온 밥을 허겁지겁 세 번 리필해서 먹어 치웠다. 채워지는 느낌이 없다. 급식 아줌마의 눈치가 보여서 네 번째 리필은 포기했다.
답답한 마음과 허전한 위장을 달래기 위해, 매점에 가서 인스턴트 햄버거를 샀다. 두 개 샀다. 세 개 샀다. 네 개 사면 저녁을 줄여야 했기에, 참았다. 콜라도 두 개 샀다. 물론 다이어트 콜라따위로 타협하지 않았다.
첫 번째 불고기 버거를 뜯고 한 입 물었다. 대체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평소 같으면, 양배추와 패티, 그리고 소스의 배율을 떠올리며 맛있게 먹었을 햄버거에서도, 마치 모래라도 씹고 있는 것처럼 맛없었다.
두 번째 핫 칠리 버거는 매운 맛 때문에 혀만 아팠다. 평소에는 이 매콤함과 육즙이 풍부한 닭고기 패티가 어우러져 내는 맛의 하모니를 느끼며 환호했을텐데, 그냥 통각만이 느껴졌다.
세 번째 치즈버, 어?
"왜 그렇게 음식을 길가의 하수구에서 오물이라도 퍼 먹듯이 맛없는 표정으로 먹나? 그렇게 먹으면 벌 받아."
누군가가, 내 치즈버거를 멋대로 뜯어서 열고 있었다.
"그거 , 내 햄버거 인데요."
"흥, 맛도 못 느끼고 있는 놈이, 햄버거는 무슨. 지금 너한텐 필요 없어. 게다가 너 세 개 째잖아? 급식도 세 번 리필했고. "
아니 어떻게 알았지. 멋대로 그렇게 말한 상대는, 꼬맹이었다. 아니, 꼬꼬맹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갈색과 빨간색이 뒤섞인 긴 생 머리에, 동그랗고 커다란 눈동자. 중학생인가? 엄청 침울한 상태였기에, 정말로 짜증은 났지만, 나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신사니까. 최대한 기분을 억 누르고 친절하게 말해줬다.
"여기 고등학교 매점인데, 잘못 찾아온 거 아니니?"
"난 중학생이 아니다."
"아, 초등학생은 매점 이용 시간이 아닌데, 내가 연락해줄까?"
"난 너보다 선배다."
아, 그렇게 말 하자 나와 같은 교복을 입고 있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게 나와 같은 교복이라고 인식되지 않았던 이유는, 너무나도 헐렁해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언니 교복을 대신 입고 나온 만우절 날의 중학생 같았다. 명찰은 노란색, 엄연히 현재 2학년이었다. 2학년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자연스럽게 존댓말이 나갔다. 우리 학교는 선후배 관계가 좀 엄격하다. 비록 생긴 것은 빨간머리 초딩 꼬맹이었지만, 엄연히 선배는 선배다.
"도, 돌려주세요. ..서,선배님."
너무 어려보이는 외모 탓에, 선배라는 말이 쉽게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흥, 지금의 너에게 먹이기엔 햄버거가 아깝다."
그렇게 말하며, 무표정한 얼굴로 뜯은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신종 괴롭히기? 햄버거 셔틀? 작은 입으로 햄버거를 파먹는 소녀(일단은 선배)를 보며,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화를 낼까 했지만, 도저히 저 외모를 상대로 진지하게 화를 낼 마음이 들지 않았다. 누가 봐도, 아니 내가 봐도 상대를 괴롭히는 모습으로 보일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남의 햄버거를 먹으면 안 되죠."
소심하게 저항해본다. 치즈버거가 제일 맛있는데! 그걸 뺏다니!
"흥. 선도부 대머리한테 이야기라도 하게? 그 대머리가 믿어줄까? 내가 내 세 배는 되 보이는 덩치한테서 햄버거를 삥 뜯었다고 말하면?"
과연, 그런 계산을 한 후의 행동인가. 그 대머리가 내 말을 믿기는커녕, 오히려 선배를 삥 뜯었다고 욕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것보다, 어째서 여울학생이랑 싸웠냐."
"네? 선배가 그걸 어떻게 아세요?"
그렇게 말하자, 선배는 어째서 당연한 것을 묻냐는 표정이었다.
"너희처럼 튀는 커플이, 우리 학교에 또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커, 커플이요?"
선배의 말에 의하면, 전교에서 우리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통학을 같이함은 물론이고, 쉬는 시간마다 만나며, 점심시간에도 남들 눈 의식하지 않고 애정행각을 벌이는 등, 커플계의 귀감이자 솔로부대의 적으로 학교에서 유명인이라고 한다. 많이 당황스러웠다. 우리가 그렇게 알려져 있단 말인가?
"커, 커플 아니에요. 그냥 친구에요. 친구."
"흠, 그래? 그렇다면, 아직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기회요?"
내 물음을 무시하고 회장은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둘이 싸워준 덕분에 처음으로 너에게 말을 걸 기회가 생긴 것도 사실이지."
그렇게 말하며 선배는 손을 내밀었다. 손에는 햄버거 소스가 묻어있어서, 도무지 모양새는 나지 않았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다식부 회장, 미덕이라고 한다. 도지. 넌 우리 다식부에 꼭 필요한 인재라고 생각한다. 다식부에 들어오지 않겠나?"
"다식부요?"
"그래."
나는 내밀은 손을 잡는 대신에, 그 손위에 휴지를 올려주었다. 선배는 그제서야 소스가 묻은 사실을 깨달은 듯, 소스를 닦아냈다.
"그게 뭐하는 부에요?"
"중학교 수준의 한자를 알고 있다면, 해석할 수 있는 바로 그 의미다."
"많이 먹는다?"
"그래."
잠시 회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다식부. 학교 이사장님이, 경제가 어려웠던 시절 많이 못 먹었던 것을 안타까워하며, 가난한 학생들을 모아서 많이 먹기 대회를 열어, 모두를 배불리 먹였다는 훈훈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이 발전하면 발전할 수록, 다식부에 들어오고자 하는 학생은 줄어들었으며, 급기야 많이 먹기는 죄악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점점, 가입자는 줄어들었고, 이제 부원이라고는 3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식당이나 매점에서 많이 먹는 학생들을 체크하며, 가입을 권유한다고 한다.
"잘 알겠고, 다 좋은데, 일단 햄버거 값은 주세요."
"안 잊어버렸냐?"
"먹는 것에 관한 한, 제 기억력은 극한에 가깝습니다."
특히, 음식점 위치, 가격, 맛은 완벽하게 기억한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지, 나랑 먹기 대결을 하자."
"먹기 대결이요?"
뜬금없는 소리지만, 다식부 회장이 제안하니 왠지 모르게 그럴싸하게 들렸다. 외모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 종목은 카레. 네가 이기면 햄버거 값의 10배를 물어주지."
10배. 만원이라는 소리군. 용돈 벌이로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선배라고 주장하고는 있지만, 이렇게 작은 꼬맹이한테 질 것 같지도 않았다. 다식부 회장이건 뭐건, 내가 질 이유가 없지.
"좋아요. 그럼 선배가 이기면요?"
"다식부에 들어와라. 그리고 햄버거 값은 없어지는 거다."
승리 시 조건도, 패배 시 조건도 내게 나쁘지 않았다. 이 대결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다식부에 들어가게 되면 여울이가 난리 칠 것 같기는 한데. 뭐, 어떻게든 되겠지.
"좋아요."
"그럼 오늘 7시에, 천제카레로 와라."
그렇게 말하고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높은 편이어서 그런지, 키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교복팔이 축 쳐졌다. 귀, 귀엽다. 자신은 멋있게 말하고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솔직한 얘기로 사촌동생 재롱 잔치 이후로 이렇게 귀여운 존재를 본 것은 처음이다. 답답했던 기분이 조금은 풀어졌다.
방과후, 여울은 말도 없이 집으로 먼저 갔다. 중학교 때 싸운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기분은 조금 안 좋았지만, 좋은 기회였다. 군것질을 못 하게 하고, (한다고 해도 뺏어 먹고) 집으로 끌고 가는 여울이 없는 지금이야말로, 다식부 활동에 참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카톡으로 미안하다고 보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내가 왜 미안해 해야 하나. 에이, 일단 잊어버리자.
대결 장소는 천제카레라고 했다. 천제카레. 천하제일카레의 줄임말이다. 천제카레만의 조리법으로 100시간 이상 숙성시킨 카레의 깊은 맛은, 감히 어설픈 카레들이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이기에, 꽤나좋아하는 가게다. 하지만 가격도 만만치 않기에 그렇게 자주는 올 수 없다. 가게 앞에 도착해서야 선배의 전화번호를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다행히 가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왔군."
"네, 선배님 혼자세요?"
"그래."
어느새 갈아입었는지, 몸에 맞는 사복을 입고 있었다. 살짝 하늘거리는 하얀 원피스는 귀여움을 더욱 강조해주었다. 하지만 무표정한 얼굴 때문에, 삐진 초딩으로 보였다. 160에 120kg인 내가 140 정도에 40kg정도로 보이는 어린 애한테 꼬박꼬박 선배라고 부르는 광경은, 남들이 보기에는 조금 우스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니면 삐진 초딩을 달래는 모습으로 보이겠지.
"천제카레에 와본 적은 있나?"
"물론이죠."
"그럼 도전카레에 대해서도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도전카레. 말 그대로 카레에 도전하는 메뉴다. 5인분을 20분 내로 먹을 수 있으면 공짜. 그리고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라간다. 이 가게의 1인분은 보통 가게의 1.5~2인분에 육박하기에, 약 10인분 정도 되는 양을 한 번에 먹어야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나도 먹을 수 있는 양이라 생각되지만, 실패 시의 수수료 5만원이 무서워서 도전한 적은 없다.
"네. 근데 수수료가 무서워서 해 본 적은 없어요."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물론이죠. 다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요."
"자신감은 합격이군. 좋아. 그럼 대결 종목은 도전카레로 하지."
"수수료는요?"
"자신 있다고 하지 않았나? 개인 부담이다."
"네 뭐, 당연히 성공할테니까요."
살짝 불안했지만, 남자로서의 오기가 작동해서 응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실수는 너무나도 뼈 아펐다.

"여기 도전카레 2인분 나왔습니다!"
내 얼굴의 세 배는, 선배의 얼굴의 9배는 되는 듯한 커다란 접시에 카레가 담겨져 나왔다. 탕수육 접시랑 비교해도 더 커 보인다. 향긋한 강황의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카레를 본 순간 확신했다. 수수료를 내게 될 수는 있지만, 내가 질 리는 없다. 이 소녀는 이 카레를 절대로 다 먹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준비, 시작!"
20분에 5인분. 분명히 많이 먹는 나이지만, 그냥 마구잡이로 덤벼서는 어려울 가능 성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름의 작전을 세웠다. 바로, 물을 이용하는 전법이다. 분명히 도전 카레는 양이 많다. 하지만 양 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씹는 횟수를 줄이고, 물로 빨리 빨리 넘기면서 먹으면, 내 필승이다.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 나는 비비지도 않은 카레를 크게 크게 퍼서 입으로 옮기고, 물로 흘렸다. 순식간에 2인분은 줄어들었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옆 자리의 선배의 먹는 모습을 쳐다봤다. 그리고 눈이 휘둥그레 졌다.
부조리다.
내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광경은, 세계의 부조리다. 아니, 다른 사람 눈에 어떻게 보일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눈에는 이 세상에 다시 없을 부조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 눈앞의 적발 소녀의 입에는, 음식이 끝없이 들어가고 있었다. 과장이 아니다. 정말 끝없이 들어가고 있다.
숟가락이 가늘고 분홍 빛의 고운 입술은, 개뿔 카레가 묻어서 노란 입술 사이로 끝없이 들어갔다. 그리고 짧게 씹는 동작과 함께 꿀떡꿀떡 넘어갔다. 뭔가, 너무나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비현실감을 증폭 시키다 못해 폭발 시키고 있는 것은, 역시 선배의 외모였다. 아무리 봐도 초등학생 고학년, 그 중에서도 마른 편에 속하는 외모의 소녀의 입에 그 많은 양의 카레가 들어갔다는 것이 불가사의하다. 어처구니없다는 것이 내 감상이다.
선배의 먹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긴장되었다. 이거, 잘못하면 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숟가락을 들었다. 속도를 올려서 카레를 입으로 넣었다.
"읍, 으읍."
급하게 넘긴 탓에, 목이 메여왔고, 물을 더 많이 마시게 되었다. 선배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페이스가 변하지도 않고, 카레를 입으로 옮겼다.
10분째.
하지만 내 그릇에는 아직도 도전 카레가 2인 분 정도 남아있다. 처음 5인분이 담겨져 나왔다는 점을 생각할 때, 5분 만에 이렇게 먹은 것은 빠른 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분내에 다 먹는 것이기에 나쁜 페이스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쥐고 있는 이 숟가락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다.
'너, 넘어 가질 않아.'
당황스러웠다. 평소에는 카레 1인분을 먹고, 집에 가서 치킨도 먹고, 빵도 먹었는데. 이 내가 벌써 포만감을 느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반면, 선배는 여전히 꿀떡꿀떡 잘도 먹고 있었다. 입이 작은 탓에, 많은 양을 먹지는 못 했지만,

15분째.
1인분이, 100인분처럼 느껴졌다. 남은 카레에 숟가락은 커녕, 고개조차 돌리기 싫어졌다. 내가 원래 카레를 싫어했나? 싶을 정도로 거부반응이 일어났다. 김치와 단무지로 입을 개운하게 해 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믿을 수 없게도, 선배의 그릇에는, 카레가 없었다.
"흠, 아직도 그것밖에 못 먹었나?"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그녀가 말했다. 선배의 배는 마치 아이라도 밴 듯이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그 모습은 무언가 금단적인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지방들이 모두 헛되게 느껴졌다. 뭔가,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최소한, 수수료를 내지 않기 위해, 숟가락을 움직인다. 물을 마셔서 음식을 내려보낸다. 식도까지 음식이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너무 배가 불렀다. 도대체 어떻게 이 카레를 다 먹은 거지?
"말을 꺼낸 것은 나니까. 책임은 져 줘야겠지. 아저씨. 이거, 제가 도와주는 건 봐주실 수 있나요?"
뭐?
"원래는 안 되지만, 뭐 미덕이 부탁이면 못 들어줄 것도 없지. 게다가 도전 카레 다 먹고 더 먹겠다니 패널티도 충분하고 말이야."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내 카레 그릇을 빼앗아 갔다. 다른 카레가게보다 많은 1인분이 담긴 카레가, 19분이 되기 전에 모두 사라졌다. 나는 그 모습을 망연자실 한 표정으로
"솔직한 얘기로 실망스럽다. 너는 너무 못 먹는다."
는 대답조차도 할 수 없는 데, 원피스 안에 농구공이라도 숨긴듯한 모습의 선배는 태연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내기, 취소하겠다. 너 같은 녀석은 다식부에 들어올 자격도 없다."
그렇게 말하며 내 손에, 만원짜리 한 장을 쥐어주었다. 치즈버거 10개 값이었다.
"여울학생이 바라는 대로, 다이어트 연구부에나 들어갈 것을 추천하마."
대체 소문은 어디까지, 얼마나 나 있는 것인지 조금 두려워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쓸 정신이 없었다. 선배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역시나 키 변화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배만큼은 엄청나게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선배가 가게를 떠나는 순간 까지도 움직일 수 없었다. 손에 쥔 천원 짜리를 지갑에 넣을 여유조차도 없었다.

패배감, 굴욕감. 그리고 엄청난-

"우웨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구토감이 나를 지배했다. 가게 주인 아저씨.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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