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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의 남고생에게 청춘따윈 없어
글쓴이: 새로운도약
작성일: 12-07-31 19:14 조회: 2,146 추천: 0 비추천: 0

프롤로그.


“헉!”

식은땀과 함께 꿈에서 깼다.

땀이 한방울 이마에서 떨어졌다. 숨이 거칠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선배라고…. 오빠라고 불러도 되냐고?”

울음이 터졌다. 사탕을 빼앗긴 꼬마처럼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무서운 꿈이였냐고? 전혀 아니였다. 무척이나… 무척이나… 달콤한 꿈이였다. 하지만 눈물이 났다.

“우와와와앙!

왜냐면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였기에…….


1장. 나는 반도의 남고생이다.


“그런 꿈을 꿨는데.”

2교시가 마치고 쉬는 시간이였다. 나는 친구인 성철이에게 오늘 꾼 꿈에 대해서 말했다.

하지만 성철이는 시큰둥했다.

“그런 꿈. 난 맨날 꿔. 내 경우엔 한 여자애가 하도 많이 나와서 진짜 후배처럼 느껴질 정도라고. 내가 이름도 지어줬어 수민이라고.”

“슬프네.”

“뭐가 슬퍼. 꿈에서 나는 귀여운 여후배가 있는 승리잔데. 현실 따위 엿이나 먹으라고 해.”

“성철아.”

“그딴 눈으로 쳐다 보지마! 너도, 너도 그렇잖아! 현실이 이러니까. 그런 꿈을 꾼거라고! 남고에서 청춘을 즐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성철이가 울부짖었다. 이 녀석의 말이 맞다. 청춘은 무릇 남과여가 있어야 만들어지는 법.

아침의 그 꿈과 성철이의 지금 이 말로 나는 결심이 섰다.

“그래 니 말이 옳아. 그래서 말인데.”

“너 설마! 그 눈은!”

뭔데. 내가 뭘 말하려는지 눈을 보는 것 만으로 알 수 있는 거냐? 라고 되묻고 싶었지만 진지한 순간이기에 나는 맞장구를 치며,

“그래. 난 전학을 갈거다. 남녀공학으로!”

신록이 푸르른 5월. 그렇게 난 전학을 결심했다.

그래, 모든 것은 내 청춘을 위해.



“안녕하세요. 박정수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고요.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전학 온 학교. 새로운 반.

나는 자기소개를 하는 중이였다.

부모님께 억지스런 이유를 대가며 배 째라는 식으로 전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당연히 이유를 사실대로 말할 순 없었다. 고등학교 3년을 가능하면 여자와 함께 청춘스럽게 보내기 위해 전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간 이런 미친놈이! 하면서 따귀를 맞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단식투쟁까지 해 나는 간신히 서울에 있는 남녀공학 학교로의 전학을 허락 받았다. 통학은 무리였기에 작은 원룸하나를 아버지께서 얻어주셨다.

자기소개를 했음에도 반응이 무미건조했다. 뭘까? 서울의 학교는 이런 건가? 담임선생님 마저 무관심해 보였다.

“끝났으면 저기 세 번째 분단 맨 뒤 빈자리 보이지? 거기 앉아라.”

선생님이 말했다.

“아, 네.”

나는 뒷자리에 앉았다. 맨 뒷자리라. 소설 같은 데 보면 남주인공은 항상 맨 뒷자리였지. 왠지 일진이 좋을 것 같아.

옆자리 짝은 당연히(!) 여자였다. 약간 갈색기가 도는 단발머리에 보조개가 푹 파여 귀여웠다.

“안녕?”

나는 기분이 좋아져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말걸지마. 기분 나쁘니까.”

어…? 뭐지?

난 그냥 인사를 했을 뿐인데……. 뭔가 이상했나? 서울 아이들은 인사를 싫어하는 건가?

아.

아까 그 말 취소다. 일진이 좋기는 개뿔.

오늘 전학 왔기 때문에 수업에 필요한 책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옆자리 짝인 그 여자애와 책을 같이 보게 되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서로 붙어야 했고 그렇게 서로 사이가 좋아지…기는 커녕 학교가 마치기 까지 한마디도 못했다. 머리는 이 상황에 대해서 기분이 나쁘다 하고 생각했지만 몸은 정직해서 여자애 냄새는 이렇게 좋구나하며 평소보다 숨을 더많이 쉬었다.

그렇게 무난하게 전학 첫날이 끝났다. 분명 내가 봤던 소설같은데는 전학을 가는 주인공은 쉬는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반 친구들에게 둘러쌓여 자신의 신상정보에 대해서 꼬치꼬치 대답을 하던데……. 나는 그딴거 전혀 없었다. 반 친구들은 쉬는시간에 자거나 공부하기에 바빴다.

친구가 생기기는 커녕 나는 반 친구들의 이름조차 몰랐다.

집에 도착 해 씻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혼자 살게 된 첫날이다.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해서도 뭔가 청춘스러운 로망이 있었지만. 겪어보니 없었다. 집이 너무 조용해 무서울 정도였다.

나는 요를 깔고 누워 생각했다.

‘내일은……. 친구라도 만들자. 기죽지 말자! 그 뭐지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한 사람이 있었잖아. 오늘의 이 무관심은 아마 그 아픔일거야. 내가 먼저 다가가보자.’

가능하면 짝인 그 여자애의 이름도 알고 싶었다.



“왓! 지각이다!”

전학 이틀째부터 지각을 하다니! 평소엔 어머니가 깨워주셔서 몰랐지만 아침에 혼자 일어나는 일은 힘든 것이였다.

나는 서둘러 등교준비를 했다.

“박정수 지각했구나. 벌점 1점이다.”

등교를 한 나를 보자마자 선생님이 했던 말이다. 그 말은 무미건조했고 감정이 담겨있지 않았다. 아, 조금은 기대하고 있었다.

요녀석! 지각을 하다니! 오늘만 봐주마! 다음 부턴 그러면 안된다! 하하하하!

…라던가 하는 일을. 제기랄 정녕 청춘은 없는 건가! 그냥 공부만 하다 끝날 학창생활인거야?

‘아니. 아니다! 내가 노력하면 돼! 청춘이 없으면 내가 청춘이 만들면 되잖아!’

오늘이야말로 청춘의 밑거름이 될 여자아이와 친해지고 말겠다.



내가 생각하기에 청춘의 첫걸음. 그것은 항상 정해져있다.

‘바로 동아리지. 동아리에 들어서 귀여운 여자아이들이랑 친해질거야!’

나는 단숨에 교무실로 달렸다.

“동아리? 우리 학교엔 그런거 없다.”

“아.”

하지만 담임선생님은 무참히 내 그런 기대를 깨버렸다.

어깨에 힘이 쫙 빠졌다. 솔직히 조금, 아니 많이 기대했는데…. 여자아이랑 친해져서 사,사귀고 손까지 잡는 상상까지 했는데……!

‘아냐, 아직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

동아리가 없다면 내가 만들면 된다!

나는 다시 교무실로 들어갔다.

“선생님. 그럼 제가 동아리를 만들고 싶은데요.”

“그래?”

이 선생님은 원래가 표정변화가 적은 것 같다. 너무 반응이 시큰둥한거 아냐?

“일단 교칙으로는 동아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명확한 주제의식과 그 주제의식이 긍정적이여야 하고 고문선생님이 한 분 필요하다. 그리고 부원은 5명 이상이여야 해. 이렇게 준비를 하고 동아리 신청서를 쓰면 된다.”

“그렇군요…….”

윽. 역시 난관에 부딪쳤다. 동아리 부원이 될 친구가 없는 것이 첫째요. 전학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아는 선생님이 없다는것이 둘째였다.

“그리고 난 고문을 할 생각이 없다.”

작은 희망마저 밟아버리는 담임선생님의 추가타.

‘후. 일단 차근차근 진행해보자.’

나는 교무실을 나섰다.

일단은 인원이다. 무슨 동아리를 만들지는 일단 정해놨으니까. 당연히 만들 동아리는 청춘을 만끽 할 수 있는 동아리다. 여행을 간다던가, 같이 공부를 한다던가, 수업이 끝나고 놀러다닌다던가 하는 그런 동아리. 가능하면 남자는 받고 싶지 않다…….

“저기…….”

나는 일단 내 짝에게 말을 걸었다. 어제 딱 하루 관찰 한 건데 얘는 별로 사람들이랑 말을 많이 안하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어제 전학 온 나랑 비슷할 정도로 친구가 없다. 그냥 아예없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딱이지 딱. 근데 왜 친구가 없지? 보니까 다른 애들도 피하는 것 같던데. 성격이 지랄 같아서 그런가.’

아마 맞을 듯 싶다. 처음 보는 상대한테 기분 나쁘다고 말 걸지 말라고 했던 애니까.

말을 걸자 짝이 나를 쳐다봤다. 쳐다 봤다기 보다는 째려봤다가 맞을 거 같았다.

“어,음. 그러니까 나 아직 너 이름을 몰라서.”

일단은 이름이였다. 이름도 모르는 상대한테 같이 동아리 만들지 않을래? 라고 말하는 건 실례니까. 나는 예의를 아는 남자다.

“…정이슬.”

니가 내 이름을 알아서 뭐할건데? 안 말해주면 끈질기게 물어 볼 것 같으니까 말해준다. 라는 뉘앙스가 어투와 표정에 담겨 있었다.

내 지나친 상상인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나는 그렇게 느꼈다. 도도하다. 분명 내가 읽었던 청춘소설에서 이런 여자아이는 사실 속은 여린 그런 여자애고 친해지면 귀여운 모습을 보여줬다!

‘드디어 내게 청춘이 오는가!’

“저기 나랑 함께 해줄래?”

너무 흥분한 나머지 나는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그러자 정이슬의 표정이 약간 변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야?”

약간 붉어진 얼굴. 이런 내가 너무 흥분해서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랑 청춘스럽게 으쌰으쌰한 일을 함께 해달란 소리야.”

조금 더 어투를 강하게 큰 목소리로 잘 이해할 수 있게 말했다. 청춘스러운 동아리를 으쌰으쌰하고 같이 만들자.

그러자 갑자기 주위가 웅성웅성 해졌다.

“저 전학생……. 좀 하는데. 저 정이슬한테 으쌰으쌰한 일을 하자고 직격타를 날렸어!”

“보기보다 꽤 하는 군. 좋은 변태다.”

“어맛……. 뭐 저런애가 다있어!?”

그것은 모두 내 얘기로 뭔가 내가 인간으로서 생매장 당하고 있었다.

‘어……? 뭐지?’

“이 파렴치한!”

정이슬이 어느새 일어나 내 따귀를 시원스럽게 갈겼다.

짝!

분명 이 여자는 운동을 했다. 강냉이가… 아니 이빨이 나간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어,어, 왜? 왜 날…….”

도대체 난 내가 왜 맞았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동아리 만드는 걸 함께 해 달라는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이게 서울인심인가? 으흑…….

“같이 청춘을 즐기자는게 그렇게 힘든 일이야!?”

갑자기 울분이 받쳐 그렇게 소리쳤다.

“이,이게! 정말 끝까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정이슬이 울먹이며 다시 한번 손을 올렸다.

‘또 인가?’

나는 얼굴에 힘을 팍 줬다. 진짜 이번에 맞으면 임플란트를 해야 될 지도 모른다.

“무슨 소란이냐!”

다행히도 그 손이 내 얼굴에 오기 전에 근육이 우락부락한 선생님께서 반에 들어오셨다.

“저,저,저자식이 저를 파렴치한 말로 농락을! 으우우….”

정이슬이 울음을 참으며 말했다. 파렴치한 말이라니? 이게 무슨소리야.

“너 이녀석! 교무실로 따라와라!”

선생님이 내 팔을 잡아채더니 그대로 날 끌고 갔다.

“아니요 선생님 그게아니라 전 그저 걔랑 같이 청춘을 즐기려고…….”

“이놈이 정말로! 어린놈이 그렇게 밝히다니? 세상이 말세다 말세야!”

“아뇨! 아뇨! 선생님 제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닥쳐라 이놈! 이 일은 학생주임선생님께 넘길 거다!”

아무리 설명해도 무용지물이였다. 난 그저 동아리를 만들어서 청춘을 즐기고 싶었는데…… 왜 이렇게 된 거지?

하늘이 나를 시기하는가!

결국 이 일은 학생주임선생님께 넘어갔고 나는 전학 온지 이틀.

“정학 일주일이다. 집에서 자숙하도록 해라. 그리고 그 여자애가 많이 놀랬다. 정학기간에 사과하러 가도록 해라.”

“아.”

정학을 당했습니다♪



“하하하 모두 똥이나 먹으라지.”

아침 9시. 드라마를 보며 감자칩을 씹고 있는 나.

정학을 먹어버린 바람에 내 정신이 붕괴되고 있었다.

새로운 학교를 다닌지 겨우 이틀이였다. 겨우 이틀 만에 정학이라니?

“말이되냐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에이 씨 몰라. 그냥 잠이나 더 자야지.”

청춘이고 나발이고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자고 싶어…….


“저기 선배?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헤헤.”

“그럼! 당연하지. 날 오빠라고 생각해주다니 정말 고마운 걸?”

“헤헤…… 오빠!”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잠에서 깼다.

“청춘이! 청춘이 날 부르고 있어!”

또 그 꿈을 꿨다. 이번 꿈은 더욱 리얼해서 여후배가 오빠라고 한 순간 전율이 짜릿! 느껴졌다.

“그래…. 포기하는 그 순간이 게임 종료라고. 아직 난 끝까지 노력하지 않았어. 분명 이 꿈은 내 미래를 암시하는 걸거야. 여후배랑 우후후한 청춘이 날 기다리고 있다고! 아니 여후배 뿐만이 아니라 여선배도 날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희망이 내 안에서 점점 커졌다. 그에 따라 무기력했던 몸에 점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오오오오! 달리자! 정이슬의 집으로! 가자!”

정학기간 동안 정이슬에게 사과를 해야했다. 일단 이 문제부터 풀어야 내 청춘을 올바르게 진행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께 받은 정이슬의 집주소를 가지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그리고 나와서야 알았다.

“우리 집 옆옆집이네….”

이웃이였구나.

“가까워서 좋군."

나는 벨을 눌렀다.

그러자 옆에서 소리가 들렸다.

“…뭐야?”

내가 사과를 해야 할 장본인이 바로 옆에 있었다. 날씨가 더워서인지 약간 땀에 젖은 정이슬이.

“응? 왜 밖에…….”

아! 지금 하교 한건가?

“마침 잘됐다. 내가 온 이유는 너에게 사과하러…….”

퍽!

“으악!”

정이슬은 내 말을 듣지 않고 나를 발로 한번 찬 뒤 물 흐르는 듯한 몸놀림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버렸다.

“야! 너에게 사과하러 온 거라고!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사과하러 온건데!”

솔직히 난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아직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나 때문에 정이슬이 피해를 받았다고 하니 사과를 해야 했다.

“필요 없어! 저리 가! 이 변태야!”

“변태라니? 난 평범한 남고생이라고.”

“그리고 평범한 남고생은 모두 변태지.”

“아니거든!? 사과해! 모든 평범한 남고생한테 사과하라고!”

“사과는 네가 하러 온거 아니야?”

“크윽…….”

이 녀석. 말솜씨가 있군!

“그래 사과할테니까 문좀 열어줘.”

“사탕 줄테니까 따라오라는 아저씨 같아서 싫어.”

“뭐 어쩌라는 거야.”

“가.”

“이렇게 된 이상 문 열어 줄 때까지 벨을 눌러주마. 사과를 하고야 말겠다.”

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

어렸을 적 벨누르고 도망가기 놀이를 했던 실력이 지금 발휘되고 있었다.

나는 리드미컬하게 벨을 눌렀다.

혼자 벨소리에 심취해 있을 때, 옆에서 누군가 나를 툭툭 쳤다.

“저기…. 너 누구니? 누군데 우리 집 벨을 그렇게 누르는 거야?”

아주머니셨다. 나는 벨을 누르던 손을 황급히 숨기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혹시 정이슬 어머니 되시나요?”

“응 그런데. 우리 이슬이 친구니?”

“아,네, 뭐 그런 셈이죠.”

거짓말은 아니다. 그래도 같은 반 이니까.

“제가 사실은 걔한테 뭘 잘못해서요. 사과하러 왔는데 안받아주네요. 문도 안열어주고요.”

부모이기는 자식 없다고 했다. 정이슬에게 직접 말하기보다는 우회적으로 정이슬의 어머니에게 말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이게 무슨 생고생이람. 난 단지 청춘을 만끽할 동아리를 만들려고 했을 뿐인데.’

뭐 어쩌겠는가 하늘이 준 시련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분명 시련을 이겨내면 빛나는 청춘이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 착한 친구네. 자 어서 들어와. 사실 그 아이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거든. 아마 부끄러워서 그랬을 거야.”

부끄러움이요? 설마요.

정이슬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집안으로 들어왔다. 정이슬은 거실에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빠르게 일어서더니,

“어,어떻게? 어떻게 들어온거야! 이 스토커! 내게 무슨 짓을 하려는거야?”

“어떻게 들어오긴 네 어머니께서 들여보내주셨다. 그리고 무슨 짓을 할거냐면 사과를 할거야.”

“어? 엄마!”

“우리 딸. 언제 남자를 만들었대? 엄마는 놀랐어.”

정이슬의 어머니께서 짓궂은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나,나,나,남자는 무슨! 얜 그냥 같은 반 변태라고! 심지어 친구도 아니야!”

“그래그래. 엄마는 빠져줄게.”

후훗, 하고 웃으며 가셨다.

그리고 거실엔 정적이 흘렀다.

‘학교에선 엄청 조용하고 차갑더니 꽤나 수다쟁이잖아?’

“너. 일단 따라와.”

정이슬은 그렇게 말하고는 내 팔을 잡아채고는 날 끌고 갔다. 끌고 간 곳은 아마 정이슬의 방으로 추정되는 곳이였다. 여자애답게 인형장식품들이 많았고 좋은 냄새가 났다. 이크. 너무 변태같군. 하지만 여자애 방에 들어온 건 처음이라고.

정이슬이 지쳤는지 한숨을 푹 쉬며 침대에 앉았다.

나도 자연스럽게 그 옆에 앉았다.

“앉지마! 넌 서있어!”

“난 손님인데.”

“넌 지금 사과하러 온 입장이잖아.”

“아, 일단 그거에 대해선데 너 그거 다 오해다? 왜 내가 변태로 몰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난 그저 너랑 친구가 되고 싶어서, 동아리 만드는데 협력해달라고 말한 것 뿐인데.”

친구 하나 만드는데 일주일 정학에 변태취급까지 받다니. 여자와는 친해질 수 없는 운명인가.

“흥. 거짓말.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 하지 그래?”

전혀 믿지 않았다.

“난 너에게 처음 만났을 때 부터 전혀 살갑게 굴지 않았어. 그런데 니가 나랑 친구가 되고 싶어할 이유가 있겠어?”

일부러 그런 거 였나?

“그냥 짝이기도 하고 너도 친구가 없어보여서 그런 건데.”

그 말에 정이슬이 발끈했다.

“치,친구가 없기는!”

“있어? 이틀 뿐이지만 너 하루 내내 인상만 팍팍 쓰고 반애들이랑은 말 한마디도 안하던데.”

“어,없긴 하지만! 난 단지 고독을 즐기고 있었을 뿐이야.”

“없네. 친구.”

“아니얏! 그런게 아니라구!”

정이슬이 소리를 빽 하고 질렀다. 화가 났는지 얼굴은 터지기 직전의 활화산의 용암처럼 빨갰다.

이 녀석. 정말 학교에서 보여주는 모습과는 정말 다르다. 뭐든지 쿨하게 반응했었는데. 지금 반응은 정말 놀려먹기 딱 좋은 귀여운 여자애잖아.

“뭐 아무튼 이제 알았지? 난 딱히 너에게 변태로 불릴 이유가 없다는거. 그리고 정학 받을 이유가 없다는 걸 말야. 알았으면 학주선생님한테 가서 다 오해였다고 내 정학을 풀어달라고 말해줘.”

“으…씨.”

왠지 분해보이는 얼굴이였다. 하지만 이내 곧 숨을 가다듬더니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어떤 동아리를 만들려고 했는데?”

“이미 그런 표정 지어봤자 네 본 얼굴을 알아버려서 소용 없다고.”

“닥쳐.”

정이슬은 성격에 어울리게 입도 험했다.

“무슨 동아리냐면…. 뭐. 청춘스럽게 여행도 다니고 공부도 같이하는 스터디그룹 비슷한 그런거야.”

사실은 여자애들을 모아서 나 혼자 청춘을 우후후 즐기는 동아리야. 아직 여자애들은 없지만.

“청춘? 촌스럽긴.”

“촌스러워서 미안하네요.”

“근데 그 동아리에 내가 꼭 필요한거야? 만약 꼭 필요하다면……. 들어가줄 수도 있는데?”

엣헴, 하고 헛기침을 하며 정이슬이 말했다.

어디서 밀당을?

“아니 딱히. 네가 싫다면 어쩔 수 없지 다른 사람을 찾아보는 수 밖에. 아쉽네. 그럼 안녕.”

나는 벌떡 일어났다.

게임으로 다져진 내 밀당 실력을 우습게 보지마라! 난 항상 아이템을 정가대로 산 적이 없는 몸이라고.

“아니, 저기. 그게 아니라! 자,잠깐만! 기다려 봐. 딱히 안한다곤 안했다구. 하,할게 한다고!”

말을 무시하고 가는 듯한 포즈를 취하자 다급해진 정이슬은 내 어깨를 잡고는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 같이 동아리 만들자.”

“으…. 뭔가 당한 느낌이야…….”

주먹이 부릅 쥐어졌다.

드디어. 드디어다. 성별이 여자인 아이와 친구가 됐다!



저녁이라도 함께 먹자는 정이슬네 어머니 권유에 너무나도 기쁜 마음으로 저녁을 먹었다. 내가 혼자산다고 말씀 드렸더니 반찬도 가져다 준다고 하셨다.

“너는 어머니를 많이 안 닮았구나.”

내가 그렇게 정이슬에게 말하자.

“무슨 뜻이야? 안 좋은 뜻이지?”

하며 그 무지막지한 주먹을 날렸다.

즐거운 저녁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는 길.

뭔가 착착 진행되는 것 같아 좋았다. 아침에 산산히 조각났던 멘탈은 어느새 촘촘하게 붙여져 있었다.

건물로 들어서자 이상한 냄새가 났다. 뭐랄까 고기 썩은내나 생선 썩은내 비슷한…….

계단을 올라섰다.

집 문앞.

사람이 쓰러져있었다.

금색머리를 등까지 기른 치마를 입은 여자애가.

그리고 그 밑엔 새빨간 피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어……?”

내 청춘이 삐걱대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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