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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제목미정
글쓴이: 블리자드
작성일: 12-07-31 19:08 조회: 2,330 추천: 0 비추천: 0


“까아아악!”


엉망진창으로 옷이 찢어진 여자아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쓰러져있

었다. 귀청이 떨어져나갈 듯한 비명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내려다보자 두 눈에 들어온 풍경이었다.


아니, 이런 걸 깔려 있다고 부르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경고, 경고. 매너에 위반되는 행위입니다. 경고, 경고. 매너에

위반되는 행위입니다.


덮쳐지고 있다, 라고 불러야하는 건가?
덮쳐지고 있다? 즉, 덮치고 있다? 누가?

서필은 점점 동공을 확장시켰다.


“……나?”


그렇다. 자신이다.


이름 모를 음식점 안에서, 반쯤 헐벗은 여자아이를 땅바닥에 눕히

고, 얼빠진 표정으로 두 눈을 껌뻑거리고 있는 바로 서필, 바로

자신 말이다.


아니, 아니야. 범인은 아니라고.


다만 범죄자 취급하듯 시스템경보가 울려 퍼지고, 저 멀리서부터

사람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아, 이미 신고까지 완

료된 상태인 게 분명했다.


백주대낮에, 그것도 워넷의 아바타를 덮치고 있는 ‘변질자’로

말이야.


“벼, 변태 선도부원이 저를 덮치고 있어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

이 성추행 성범죄자!”


“저스티스의 이름으로 꼼짝 마라!”


유능하고 정의로운 ‘저스티스’들은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민첩하게 주위를 둘러싸며 완벽하게 현장을 검거했다.


비둘기 장식이 어깨에 부착된 그녀들이 일사분란하게 서필의 주변

을 빙글 둘러싸자 퇴로는 물론 변명할 여지조차 한꺼번에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아, 아니야……!”


서필은 급히 손을 흔들었지만,


타인의 눈에 그 광경은 여자아이를 깔고 앉은 있은 ‘변태’가 뻔

뻔하게도 무죄를 주장하는 광경으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거기까지! 당신은 현행범이에요!”


“설마하니 그 명문 아이기스 학원의 학생이 이런 짓을 저지를 줄

이야.”


“저런 구제불능 변태와 같은 동료였던 것이 부끄러워!”


“서필은 저스티스의 수치에요! 당장 체포해버리죠!”


그리고 서필은 보고야 말았던 것이다.


‘다…….’


혐오스럽다는 듯 자신을 내려다보는 저스티스의 여학생들의 입가

에, 희미한 미소가 걸려있는 광경을.


‘당했다!’

언제부터 잘못된 것일까. 서필은 자신의 신세가 어디서부터 무엇

에 의해 비틀렸던 것인지를 되뇌어보았다.

그래,
아마 그때부터였다.

Prologue.
정의의 이름으로.

―오늘의 서울 날씨를 알려드립니다. 평균기온 21도, 전국적으로

구름 없이 쾌청하여 외출하기 좋은 날입니다. 덧붙여 워넷의 시차

가 1.3초 조정되었으니 이에 착오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7월 21일, 현실의 날씨를 그대로 반영하듯 ‘워넷’에서도 따가운

햇볕이 쏟아져 내리던 그날 아침.


‘외출이라. 그러고 보니 외출 안 한 지도 오래됐네.’


서필은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하늘에 떠오르는 문자를 읽으며 썩

평화롭지 못한 등굣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정신적인 피로도가 MAX치 언저리까지 달한 상태를 그대로 반증하

듯 눈 밑엔 짙은 다크서클이, 얼굴엔 어두침침한 그늘이 끼어있었

다.


오는 길에 탔던 전철이 워낙 북적거려서 원래 도착해야 했던 시간

보다 족히 30분은 더 늦어져버린 것이다.


방패 모양의 휘장이 화려하게 걸린, ‘학구’ 최대의 명문학교 아

이기스 학원의 입구가 오늘따라 지옥처럼 보이는 것은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겠지?


“멈추세요, 서필.”


아니나 다를까.
지옥의 파수꾼이 쌍심지를 켠 채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실베스타 단장.

백금을 녹인 듯한 단발형의 머리칼이 햇빛을 받아 은백색으로 반

짝거렸다.


새하얀 피부와 영리한 이목구비를 따라, 몸의 볼륨을 따라 유려한

곡선이 타고 흘렀고, 무심한 눈동자는 얼음을 조각해놓은 것처럼

냉정하게 가라앉아있었다.


보이는 미모 그대로, 아이기스 학원에서 순백색 교복이 그녀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은 아마 찾아보기 힘들 테지만…….


“다, 단장, 좋은 아침.”


그런 그녀가 얼음폭풍이 휘날릴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서필은 모공까지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입구를 들어올 때까지 초과한 시간은 32분 21초.”


초 단위까지 정확하게 측정한 실베스타의 눈이 살기등등했다.


“당신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입니까. 서필.”


“호, 혹시 저를 기다리시고 있었던 건가요?”


“네, 기다렸어요. 얼마나 배짱이 좋은 지 한 번 시험해보고 싶었

거든요.”


서필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실베스타의 눈이 독을 머금은 창살

처럼 푹-! 몸을 찔렀다.


“저스티스의 구성원은 언제나 한 시간 일찍 등교, 말할 것도 없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연락도 없이 이를 어기는 학생은 여태껏

한 명도 없었어요.”


“아니, 그게, 여기엔 사정이…….”


“듣고 싶지 않습니다.”


“윽…….”


구구구구- 무시무시한 기세로 노려보는 실베스타의 기세에 서필은

간이 콩알만 해졌다.


그녀는 서필의 교복 오른쪽 어깨를 가리켰다.


“이곳에 새겨진 아이기스 학원의 상징이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

습니까? 품위를 떨어뜨리고, 규칙을 어기고. 한심하군요.”


“저한테 유지할 품위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지당한 말입니다. 저 역시 당신에게 품위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땅바닥에 떨어뜨린 거잖아요?”


“떠, 떨어져 있었어요? 제 품위가?!”


“예, 지저분한 것 같아서 집게로 주웠습니다.”


“돌려주세요!”


“그건 무리한 부탁입니다. 전 품위를 지키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

에, 떨어져 있는 건 제대로 분리수거해서 버리기 때문이죠.”


안 돼, 재활용, 제대로 재활용 쓰레기에 분리수거했겠죠? 그렇겠

죠?!


“무슨 소립니까? 거기에다 넣으면 제대로 분리수거가 안 되지 않

습니까?”


서필은 까마득하게 인간 이하로 격하된 기분을 누리는 동안에도

실베스타 단장은 눈 한 번 깜빡거리지 않았다.


“당신 개인의 문제라면 아무래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품위

없고 몰상식한 행동을 할 때마다, 아이기스 학원에게도 그 영향이

미친다는 점은 그냥 넘어가지 못하겠군요. 이해됩니까?”


이해되는 과정에 여러 가지로 상처 입었지만 어째든 고개를 끄덕

였다.


정의, 원칙, 품격 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실베스타 단장에

게 자신은 마치 비단에 떨어진 먹물자국 같은 존재가 아닐까? 라

고 서필은 말없이 스스로를 비웃어 보았다.


“무엇보다 이것. 어깨에 붙은 그 상징이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

로 알고 있는 것입니까?”


다음으로 실베스타가 가리킨 곳은 교복의 왼쪽 어깨, ‘저스티스

’의 표식인 비둘기 문양이 있는 곳이었다.


“이건 그러니까, 저스티스의 단원을 상장하는…….”


저스티스.
달리 말해 선도부원.


보다 쉽게 말하자면 학구의 모든 학생들을 관리하는 학생자치경찰

이었다.


하는 일은 신고를 받고 범죄 학생을 검거하거나, 벌점을 부여하거

나, 심하면 감옥에 넣어버리는 권한까지 갖추고 있는 직책이었다.

아마 이곳 ‘학구’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집단이 아닐까?


더불어 눈앞에 실베스타가 바로 그 저스티스의 단장, 서필은 그

단원이었다.


고개를 살짝 꺾고 서필을 훑어보던 실베스타는, 마치 들으라는 듯

한숨 섞인 목소리로,


“저스티스 선서문 제 1장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건…….”


“저스티스의 이름을 목에 건 자, 도덕적으로 완전한 인간이 될

것.”


조금 낯간지러운 내용이어서 무심결에 잊어버린 내용이었다.


“저스티스에서 중요한 건 재능이 아닙니다. 주어진 역할을 수행

하는 의무감과 성실함입니다.”


“무슨 소리인지는 알겠는데, 1시간 일찍 등교하는 것도 그거랑

관계가 있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저스티스의 인물은 모든 면에서 귀감이 되어야하는

법입니다. 스스로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 타인을 심판할 수는 없다,

저스티스의 최우선 원칙이에요.”


“에이, 심판이랄 것까지는…….”


“……아, 그랬었죠.”


볼을 긁적이며 중얼거린 서필의 말에, 실베스타는 이전에 없을 정

도로 차갑고 무뚝뚝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래요. 그랬었죠. 당신이 명예로운 저스티스의 단원이란 사실

이 유감스러울 만큼, 귀감이나 수훈이 될 만한 전적이라곤 세우지

못하고. 가끔 단원들의 보고서 명단에는 이름이 빠져있거나, 동료

들에게는 ‘구제불능의 서필’이라고 불린다거나……그밖에도 유감

스러운 부분이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주 잠깐 잊고 있었던 제

가 나빴습니다. 사과를 받아주시겠습니까, 구제불능의 서필 씨?”


“…….”


드라이아이스를 방불케 하는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실베스타 단장

의 독설이 단숨에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도중에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단련될 만큼 단련된 서필마저 다리가 후들거렸으니까 말

이다.


“아이기스, 그 중에서도 저스티스의 단원이라는 겉면에 속아서,

당신이 상당히 잘난 사람이라 착각했을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이 불

쌍할 정도입니다.”


“저기……, 특정인물도 조금은 불쌍하게 생각해주세요.”


“실례했습니다. 어떤 의미로 생각해보면 그 이하가 없을 정도로

불쌍한, 구제불능의 당신을 몰라보고 넘어간 점은 실수였습니다.

라고 말하면 만족하십니까?”


“……아니요, 그게, 죄송합니다.”

그 이후로도 한참의 질책이 쏟아졌지만 다 기억나지는 않았다.
그게, 그 독설을 다 기억했다간 살아갈 이유랄까, 존재가치 같은

게 모조리 지워질 것 같았단 말이지.


“적어도 당신이 아이기스 학원의 교복을 입고 있는 동안만큼은

그에 어울리는 행동을 해줄 것.”


실베스타는 ‘아직 할 말은 더 남아있지만 이번 한 번만 눈감아주

겠다.’ 라는 느낌으로 고개를 돌렸다.


“알아들었습니까.”


“다, 다음부터 조심할게요.”


서필은 번뜩이는 실베스타의 눈초리를 피해 슬쩍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때마침 살짝 비웃으며 지나가는 여학생들과 눈을 마주친 것도 그

때였다.


분명 들어서 좋을 내용은 아닐 목소릴 조잘거리면서 여학생들이

옆을 지나가는 동안, 서필은 꼬빡 한숨을 내쉬었다.


“……미움 받는 게 익숙해지는 자신이 싫다.”


실베스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듣고 있는 겁니까?”


“네, 넷!”


“정말 듣고 있는 겁니까?”


“네? 듣고 있어요.”


“제대로 듣고 있는 겁니까?”


“네……듣고…….”


무슨 일이지.


서필은 뭔가 의식이 점점 멀어지는 듯한 기분이 휩싸였다.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지고, 매서운 실베스타의

얼굴이 점점 흐물흐물하게 변해갔다.

흐물흐물하게,
흐물흐물흐물…….

“듣고 있나, 자네!”


“으악!”


꼴사나운 비명을 지르며 쾅- 자리에서 일어나자, 전혀 색다른 풍

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실베스타 단장이 있던 교문 앞의 풍경은 사라지고, 한창 수업 중

인 교실의 풍경이었다.


선생님을 포함한 학생들이 모두 서필 쪽을 향하여 시선을 돌린 채

킥킥거리거나, ‘왜 저러지?’ 라는 등의 썩 곱지 않은 눈빛을 보

내고 있었다.


‘어째서, 교실?’


가뜩이나 여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학교라서 그런지 한 번

에 주목을 받자 확- 잠이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자네, 수업 중에 딴청은 자제해주게나.”


“아, 죄, 죄송합니다?”


서필은 선생님의 일침에 어리둥절해져서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어느 틈에 이리도 시간이 흘렀는지, 시계는 오전 11시를 나타내고

있었다. 홀로그램 화면에선 “가상구조에 대한 이해 2장” 이란 문자

가 떠올라있었다.


원래 배웠던 것이 1장의 막바지까지였으니, 그 사이 2장으로 넘어

간 것으로 보아선……이런, 자신도 모르게 깜빡 졸아버린 건가.


아침부터 허겁지겁 등교한 것에다가, 그 살벌하기로 유명한 실베

스타 단장에게 너덜너덜해지도록 설교를 들었으니 그야 지치지 않

고 배기겠는가 싶었다만.


“정말 글러먹었네!”


문제는…….


“성적도 떨어지면서 수업시간에 졸기나 하고, 정말 구제불능.”


“푸훗! 목소리 크잖아, 바보.”


옆자리에 앉은 여자아이들의 입에서 노골적인 웃음소리가 터져 나

왔다.


왼쪽 어깨에 비둘기 표시가 있는 걸로 보아, 저스티스의 단원들인

가.


그녀들의 맹공격을 들으며 자리에 주저앉은 서필은, 급격히 그늘

낀 얼굴로 어깨를 늘어뜨렸다.


킥킥대던 여자아이들은 그의 맥 빠지는 반응에 입술일 삐쭉 내밀

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들어보나마나 한 내용이었다.


야유를 한 귀로 흘리는 것이 극도로 단련되어서 큰 타격은 없었다,

라고 말한다면 괜히 불쌍해 보일 것 같지만……어쩌겠는가? 그

이 사실이었는데.


물론 이런 광경에 익숙해진 것이 비단 당사자 뿐만은 아닌 듯, 앉

아 있던 학생들은 아무 반응도 없이 심지어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연발했고, 선생님은 태평하게 안경을 고쳐 잡으며 짝짝- 손뼉을

쳤다.


“자자, 너무 시끄러워지지는 말고, 다시 수업 진행할게요.”


“네에-.”


실컷 놀려댄 여자아이들은 명량한 목소리로 대답하면서도 삐쭉 혀

를 내미는 걸 잊지 않았다.


서필도 꼬빡 한숨을 내쉬며, 수업이 진행되는 홀로그램으로 관심

을 돌렸다. 날씨도 좋고, 외출하기에도 최적의 날씨라고 하는데,

왜 이곳만 장마철인지.

―실베스타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하였습니다.

머릿속에서 차라랑- 청아한 알람소리가 들려왔다.


‘단장?’


서필은 뜻밖의 발신자에 이채를 발했다.


만약 이 학교 학생의 누군가가 실베스타 단장으로부터 개인적인

메시지를 받았다면 당장 까무러쳐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정도로 메시지를 통해 개인적인 연락을 하는 일이 드

문 그녀였다.


따라서 아침부터 ‘직접’ 실베스타 단장에게 훈계를 들었던 서필

은 어떤 의미로 참 대단한 인물이라고……말 못할 것도 없었다.
머릿속으로 ‘수신’이라는 신호를 보내자, 시야에 조그맣게 나타

난 스피커모양의 아이콘에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저스티스의 단원들은 오늘까지 모두 교문에 걸린 알림판을 확인

할 것. 궁금한 점이 있다면 저스티스 본부로 찾아와주세요. 이상

입니다.

그러면 그렇지.
저스티스 단원들에게 보낸 단체메일이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실베스타 단장이 직접 메시지를 돌릴 정도라니, 도대체

어떤 일이지?

수업이 끝나고 알림판으로 향하자, 벌써 우르르 모인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다.


저스티스와 전혀 상관이 없는 학생들까지 관심을 보이는 탓에, 다

섯 명이 나란히 걸어도 넉넉할 정도였던 복도가 무진장 비좁게 느

껴졌다.


가까이 갔다간 필화를 입을 테니. 서필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알림

판에 붙은 내용을 확인했다.

<총학생회와 저스티스 합동 비상회의에 대한 공고>

“총학생회?”


내용은 이랬다.


최근 총학생회장과 ‘괴담’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이 퍼져있으니,

정확한 사실 확인과 소문의 진원지를 찾아, 범인을 잡아내기 위하

여 비상회의를 시할 예정이다. 총학생회역시 이에 참가할 예정이

며, 중요한 사안이니만큼 저스티스의 단원들은 한 사람도 결원이

없도록 모두 준비하여주길 바란다……라는 내용.


한 줄로 요약하자면 총학생회와 함께 비상회의를 열 것이라는 내

용이었다.


다른 내용은 모두 무시하고, 서필의 눈에 들어온 글자는 오직 하

나.

총학생회.

총학생회.


그곳은 학구 전체를 관리하는 자치기관, 보다 정확하겐 ‘총학생

회장’의 부서를 일컫는 말이었다.


이름은 총‘학생’회였지만, 그 안에는 아이기스의 교장을 비롯한

중요인물들이나, 저스티스의 단장인 실베스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각각 학교의 대표인들을 포함해, 극히 소수의 ‘허가받은 인

원’들로 편성되어 있었다.


그들 모두가 심상치 않은 신분의 사람들인데. 하물며 그들 중에서

도 중심이 되는 인물인 총학생회장은 어떻겠는가?


학구의 인물이라면, 아니, 워넷에 접속하는 인물이라면 그 누구라

도 동경해마지않을 총학생회장.


그녀의 존재는 철저한 보안에 둘러싸여서, 적어도 학구 내에서만

큼은 절대자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실제로 총학생회의 본산인 아이기스 학원에 재학생으로 다니고 있

으면서도, 서필은 총학생회장의 실물을 마주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학교에 들어온 이후로는, 단 한 번도.

그저,
워넷에 들어온 이례로 ‘딱 한 번.’
총학의 실체를 확인할 기회가 ‘딱 한 번’ 있었다.

그건 서필이 아직 아이기스 학원에서 입학하기 이전의 일이었다.

대충 작년 이맘때였던가?


워넷에서 매해 열리는 행사, 워넷 퍼레이드가 열리던 날이었다.


비행선을 비롯한 수많은 탈것들이, 병풍처럼 양쪽으로 늘어선 관

객들 사이로 통과하는, 왠지 쓸데없이 거창해 보이는 행사였다.


허나 그 거창한 행사를 구경하기 위해 몰린 사람들은 그야말로 인

산인해를 이루었다.


하루에도 수천만 명의 세계인들이 지나다니던 서버가, 그날은 당

장 터져나갈 지경이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는 감도 잡히지 않

았다.


서필 역시 그 현장이 있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법한 유명인사들이 탈것들에 올라타 차례

차례 등장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유명한 가수나 스포츠선

수, 종교계의 인사들까지 포함해서 어마어마하게 긴 퍼레이드 행

렬이 이어졌다.


폭죽이 터지고 음악이 흘러나오고 정신이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

고 찾아갔던 서필에겐 그저 시끄럽고 복잡한 행사일 뿐이었다.


그렇게 약 2시간가량 진행된 퍼레이드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즘이

었을까.


<이어서 총학생회장이 입장합니다!>


방패를 든 여신상처럼 설계된 탈것이 등장하는 순간, 장내를 채운

것은 잠깐의 침묵이었다.

완전무결.

여신상의 꼭대기에 올라서 있는 그녀를 표현할 말은 오로지 그것

뿐이었다.


칠흑 같은 흑발을 나비장식으로 묶어 올리고, 아이기스 교복의 사

이사이, 대리석을 갈아 만든 것이 분명한 순백색의 피부를 따라,

세기의 대작과도 같은 곡선이 몸 전체로 타고 흘렀다.


연분홍색의 입술부터 길게 뻗어 나온 속눈썹, 완벽하게 자리 잡은

이목구비, 빨려 들어갈 듯한 검은색 눈동자까지.


총학은 손을 흔들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한쪽 어깨에 걸

어놓은 검은색의 휘장만이 우아하게 펄럭거리고 있었을 뿐, 그저

앞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보는 이들의 머릿속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시하…….”


뒤늦은 함성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지만, 서필은 여전히

굳어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이 나오겠는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손 하나 깜짝한단 말인가.

총학,
그녀는 4년 전에 해어졌던,
서필의 소꿉친구 ‘시하’였다.

“이봐, 구제불능!”


신경질적인 호칭과 함께 번쩍- 서필은 회상에서부터 깨어났다.


“사람이 부르면 대답해! 구제불능 주제에.”


언제부터였는지 저스티스의 여학생들이 못마땅한 얼굴로 눈을 흘

기고 있었다.


그녀들은 서필의 주변을 반원 형태로 둘러싸고 잔뜩 겁주는 듯한

분위기를 잡더니,


“혹시라도 비상회의에서 엉뚱한 짓 했다간, 절대로 가만 안 둘

테니까 말이야.”


“아예 빠지면 좋을 텐데.”


사실 아이기스 학원의 몇몇 여학생들로부터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것도 총학과 관련된 이유에서였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막 이 아이기스 학원에

입학했을 당시, 서필이 가장 처음으로 찾았던 사람은 총학생회장

이었다.


아니, 뭐랄까, 아는 사이이기도 했고. 학교 일에 대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아무튼 여러 가지로 고민하다가 내

린 결론이 “일단 만나보자!”였거든.


그것 외엔 정말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아마도.


아무튼 그때부터 서필은 ‘내가 사실 어렸을 적에 총학생회장이랑

알고 지냈던 친구인데, 좀 만날 수 없을까?’ 라는 말을 종종 하

고 다니게 됐다.

결과는?
당연히 보는 대로.
그 이하가 없을 만큼 처참했다.

총학을 만나기 위해 앞을 향하여 걷고 있었는데, 결국 그녀와는

얼굴 한 번 마주칠 수도 없었고.


쓸쓸하게 뒤돌아서자 훨씬 더 괴로운 미래가 활짝- 문을 개방한

채로 그를 기다리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몰랐다고. 설마하니 이 학교에 그렇게 많은 ‘총학 팬클럽’이 있

을 줄은. 그것도 죄다 여자들일 줄은.


듣자하니 총학의 팬클럽에서 한 번 회색분자로 지목당한 녀석은

죽었다 깨어나도 학교 내에서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한다.

끔찍하게도 말이야.


당연하게도 그런 사실을 조금도. 아니, 전혀 눈곱만치도 알지 못

했던 서필은 보란 듯이 입학 첫날부터 팬클럽의 표적으로 걸려 들

어버렸고, 결국 오늘까지도 이런 신세…….


겨우 저 정도의 인간이, 위대한 총학님과 과거에 친구사이였다는

주장을 어지간히도 믿기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알아들었지? 총학님과 말을 섞는다든지, 가까이 접근한다던지,

그런 끔찍하고 파렴치한 짓을 생각이라도 했다간…….”


“절대로!”


“가만 안 둬!”


여학생들은 미리 맞춰본 것처럼 엄포를 늘어놓으며, 마지막엔 내

지르다시피 ‘흥-!’ 콧방귀를 터트리고 사라졌다.


늘 저런 식이었다. 팬클럽들의 압박이 이처럼 직접적으로 들어오

는데, 총학과 만나겠다는 생각 따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가뜩이나 팬클럽들의 눈살이 따가운데, 소란을 피워가며 만날 정

도로 명분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솔직히 이젠 만나고 싶다는 마음도 없었다.


“비상회의라.”


하지만 비상회의에 참가한다면…….


“만날 수 있는 건가.”


기분이 묘했다.

한때는 그렇게 만나고 싶었는데.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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