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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사냥꾼과 가희 이야기.
글쓴이: 저녁달빛
작성일: 12-07-31 13:31 조회: 1,828 추천: 0 비추천: 0

용 사냥꾼과 가희 이야기.


옛날. 어느 마을에 한 소년과 소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소녀가 소년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난 가희가 될 거야.”

소년이 소녀에게 이야기 합니다.

“난 용 사냥꾼이 될 거야.”

소녀가 먼저 소년에게 이야기 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너를 위해 노래를 불러줄게, 너는 나를 위해 용을 잡아줘.”

어쩌면 소년이 먼저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너를 위해 용을 잡을게, 네가 나를 위해 노래를 불러줘.”

누가 먼저 이야기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둘은 서로의 꿈을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 했습니다.

그렇게 서로 약속을 했습니다.

약속을.......


-프롤-


“브레스! 브레스! 브레스!”

날뛰는 용의 포효와 사람들의 비명과 괴성사이에서 대장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지금까지 머리 위에 들고 있던 방패를 내리고 용을 올려다본다.

서부 유황 계곡의 붉은 제왕 폭풍, 템페스트.

머리에서 꼬리까지 20m, 땅위에서 떠받히는 4개의 거대한 기둥 위에 들고 있는 머리 끝 까지는 6m 나 된다. 이 거대한 괴물이 고작 두 장의 날개로 하늘을 날수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는다. 붉은 피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상처가 났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용과 싸우는 계곡에는 지금까지 녀석이 흘린 피에 곳곳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용은 거대한 머리를 천천히 뒤로 당긴다.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오른다. 브레스를 뿜으려는 용의 가슴은 처음보다 4배는 더 부풀어 올라 있었다.

방패를 들고 있는 손이 떨려왔다. 방패는 내 오른손에 건틀릿과 함께 가죽 끈으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풀기 위해서는 칼로 가죽 끈을 끊어 버려야만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단단히 붙잡았다.

“방패! 전진! 창, 검, 석궁 모두 방패 뒤로 물러나라! 폭발물을 모두 버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내열 처리된 길이 2.5m, 무게 20kg의 타워 실드를 앞세우고 돌진 한다. 지금까지 앞에서 싸웠던 동료들이 뒤로 물러난다. 들고 있던 무기와 장비를 챙기지 못한 사람들은 무기를 버리고 뒤로 달아난다. 드래곤의 화염 브레스는 내열 처리된 방패를 제외 하고 모든 것을 태워 버린다. 드래곤이 가장 강력한 무기를 사용하는 순간, 앞으로 나서서 동료를 보호해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나는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있도록 방패를 앞 세우고 전진 한다.

“꼬마야. 너무 앞으로 가지마.”

방패 분대장인 해커 아저씨가 앞으로 너무 앞으로 나온 내 어깨를 붙잡았다.

“예! 주의 하겠습니다!”

나는 고함으로 대답하고 한걸음 뒤로 물러나 동료들과 어깨를 맞댄다. 내 양 옆으로는 나를 비롯한 20명의 방패수가, 진을 짜고 있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앞에서 맹렬하게 싸웠던 동료들이 몸을 최대한 웅크려 방패의 그림자에 숨는다. 한쪽 끝에서 아까 까지 들고 있던 창을 바닥에 버린 채, 몸을 웅크리고 있는 제프 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녀석은 몸을 웅크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웅크리던 몸을 일으켜 세운다. 녀석은 내 앞에서만큼은 얕보이기 싫었던 모양이다.

“고개 처 숙여! 제프! 죽고 싶냐!”

해커 분대장님의 고함에 제프는 다시 몸을 웅크리고 손가락으로 분대장님을 가리킨다. 훈련소였다면, 달려와서

‘바다 사람은 한번 얕보이면 끝짱난다 아이가? 내는 대장 명령만 아니면, 허리가 부러졌으면 부러졌지 허리 숙이지 않는다. 진짜다! 내말 못 믿나?’

하고 말했을 것이 틀림없다.

“방패를 서로 맞대라! 틈을 보이지 말란 말이다!”

방패 위에 유일하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 해커 분대장님의 고함 소리가 들린다. 용이 브레스를 뿜을 때는 방패 분대장인 해커 아저씨가 대장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었다. 나는 옆의 방패와 딱 맞아 떨어지도록 맞붙이고 두 팔로 방패를 단단히 붙잡는다.

“방패 위로 머리 내밀지 마! 온다! 고개 숙여!”

귀를 찢어 버릴 것 같은 용의 괴성과 함께 뜨거운 화염이 방패에 부딪쳤다. 용의 숨결, 브레스는 불꽃의 바람이라고 하기보다, 불꽃의 폭포 같이 몰아치고 있었다. 허리가 뒤로 꺽여버릴 정도의 충격이 두 팔에 전달되었다.

“허리가 부러지더라도 버텨라! 동료들의 생명이 너희들에게 달려있다!”

용의 괴성을 뚫고 해커 분대장님의 독려 소리가 들려왔다. 내열처리된 방패가 눈앞에서 순식간에 붉게 달아오른다. 방패와 가까이 있던 머리카락이 열에 타 쪼그라 들기 시작한다. 가죽 장갑 3장을 덧끼운 왼손으로 뜨겁게 달구어진 철판을 붙잡는다. 가죽이 타는 기분 나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방패를 누르는 브레스의 충격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어깨에 힘이 빠지는 순간 해커 분대장님이 다시 고함지른다.

“고개 내밀지마! 어깨에 힘 빼지마! 녀석의 브레스는 두 번 온다!”

해커 분대장님의 고함이 끝나기 무섭게 용은 다시 브레스를 뿜었다. 아까보다 더 큰 충격이 두 팔에 전해졌다. 눈앞의 방패는 시뻘건 색을 넘어 노란 황금색 불타오르고 있었다. 방패를 바라보는 눈앞의 열기를 참지 못하고 눈을 감아 버렸다. 3장의 가죽 장갑을 끼운 손끝이 뜨거웠다. 첫 번째 브레스에 첫 번째 가죽 장갑은 녹아 버렸다. 하지만 나는 방패에서 손을 떼지 못한다. 지금 손을 떼버리면 모두 죽는다. 설령 한쪽 손이 타버리더라도 손을 떼서는 안 된다. 두 번째 가죽 장갑이 녹아 버리고, 남은 한 장의 가죽 장갑도 녹아 버리기 시작했다. 뜨거운 철판에 녹은 가죽이 손과 달라붙기 시작했다. 가죽이 타는 매케한 냄세와 살이 타는 냄새가 섞여 코를 자극한다.

‘유미르!’

왜 지금 그 이름이 떠올랐는지 알 수 없다.

‘유미르!’

아주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던 이름이었다.

‘유미르!’

그리고 그 어린 시절, 나의 꿈을 다시 떠올리게 했던 이름이었다. 지금 내가 이곳에 있게 만들 이름이었다.

“유미르!”

“끄아아아아아!”

내 곁으로 동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방패로 만든 진의 누군가가 브레스를 막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한명이 주저앉아 버리고 그 뒤의 동료들이 화염에 휩싸여버린다. 가운데가 무너진 구멍, 그 틈으로 불꽃의 폭풍이 몰아친다. 불꽃의 브레스가 갑작스럽게 무너진 공간을 향해 뿜어진다. 좌우에 있던 사람의 몸에 불이 붙고, 다시 두 사람이 방패를 놓치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그 뒤에 보호 받고 있었던 동료들이 불길에 휩싸여 순식간에 타 죽어 버렸다. 마치 도화지 가운데 불을 붙이는 듯이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 했다.

“당황하지 말고 진을 유지해라! 최외각에 있는 사람은 방패를 접어 불길이 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라!”

지금까지 방패의 진 뒤에 있던 해커 분대장님은 자신의 방패를 들어, 구멍이 난 한쪽 최외각을 막아 버린다. 방패와 방패의 틈 사이 뿜어져 나오는 불꽃에 해커 분대장님의 왼팔에 불이 붙었다.

“대장님!”

“난 괜찮다! 방패를 놓지 마라!”

해커 분대장님의 말대로 불꽃은 왼팔의 보호구 일부를 태우고 꺼져 버렸다. 하지만 건너편의 상황은 방패로 가려져 알 수 없었다. 등 뒤에서 대장님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연막탄을 터트려라! 예비대! 부상자를 수습해라! 모두 후퇴 한다!”

대장님의 명령과 동시에 우리는 허리춤에 찬 붉은 가죽 주머니를 끌렀다. 그리고 그것을 방패 너머로 집어 던졌다. 가죽주머니가 불에 타 터지며 연막을 만들기 시작한다. 우리가 만든 연막이 계곡을 뒤덮는다. 맨 뒤에 있었던 예비대 10여명이 투입된다. 투입된 예비대는 장비와 부상자, 사망자의 시신을 회수 하기 시작한다.

“방패 진을 흩트리지 마라! 우리는 예비대를 보호 하고 맨 마지막에 후퇴 한다!”
해커 분대장님의 독려에 잠시 틈을 보였던 나의 방배는 다시 단단히 조였다. 아까까지 황금색으로 빛이 날 정도로 뜨거웠던 방패는 이제 붉은색으로 식어가고 있었다. 자욱한 연막 사이로 동료들이 후퇴하기 시작한다. 마지막 남은 부상자가 예비대의 손에 끌려 간 것을 확인 하고 해커 분대장님은 다른 방패 병들에게 귀속으로 속삭였다.

“모두 조용히 물러난다. 용은 시야가 가리면 달려들지 않지만, 소리를 듣고 공격 할 수도 있다.”

우리는 방패로 진을 유지 한 채 뒤로 천천히 물러나기 시작한다. 아직도 계곡은 우리가 만든 연막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천천히 뒤로 물러나던 내 발에 물컹한 어떤 것이 밟혔다. 그것은 예비대가 가지고 가던 시신에서 떨어진 다리 조각이었다.

“우왁!”

나는 놀라서 허둥지둥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가죽끈에 단단히 묶인 방패가 땅에 부딧치며 요란한 소리를 내지른다.

“모두 흩어져!”

해커 분대장님의 명령에 모두 등을 돌리도 달아나기 시작한다. 내 머리위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해커 분대장님이 자신의 방패를 버리고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그 우람한 팔에 붙잡혀 뒤로 5m 가량 날아갔다. 계곡의 돌무더기에 허리를 부딛 쳤다. 해커분대장의 등 너머로 붉은 용의 쇠기둥 같은 다리가 박힌 것이 보인다. 아직도 계곡은 연막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 흡!”

해커 분대장은 한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는다. 내 귀에 가까이 다가와 속삭인다.

‘조용.’

거칠게 자란 턱수염에 볼이 간지러웠다. 허리에 찬칼을 뽑아 내 오른손에 묶인 가죽 끈을 끊어 버린다. 그리고 방패를 들어 멀리 집어 던진다. 길이 2.5m, 무게 20kg 내열 처리된 방패는 계곡 한쪽에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멀리 떨어진 방패 위로 용의 발길질 소리가 들려왔다. 해커 분대장님은 조용히 일어내 내게 손을 내밀었다.

‘꼬마야. 가자. 달릴 수 있지?’

아! 이거 참! 왜 해커 분대장님은 항상 나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꼬마라고 부르는지 알 수 없었다. 사실 나는 꼬마가 아니었다. 오히려 해커 분대장님 보다 크면 컸지 내가 키가 작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항상 나를 꼬마라고 불렀다. 대장님이 부대장님을 막내라고 부르는 것처럼, 부대로 돌아가면 왜 그렇게 부르는지 따져봐야겠다.

나는 먼저 일어나 내게 손을 건네는 해커 분대장님의 손을 붙잡았다. 그 순간. 해커 분대장님의 몸통의 절반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분대장님의 상반신을 덥고 있던 가죽 갑옷을 붉은 무엇인가가 덮어 버렸다. 그것은 용의 머리였다.

“우아아아아아아아!”

나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1 Ch.




내가 부모님에게 마음속의 결심을 고백한 한 그날은 평온한 일상의 하루였다. 너무 평온해서 어제와 오늘을 구분 할 수 없을 정도로 반복되고 있는 일상이었다. 갑작스럽다면 갑작스럽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평소 내가 용 사냥꾼이 되기 위해 몸을 단련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에 놀라지는 않으셨다. 어머니는....... 고개를 돌리고 울었다.

“왜. 용 사냥꾼이 되려고 하는 거니?”

아버지의 질문에 내가 대답했다.

“‘저의 아버지’가 용 사냥꾼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내 대답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적지 않게 놀라신 것 같았다.

“어떻게 알았니? 난 딱 한 번 내 형이 용 사냥꾼이라고 이야기 했을 뿐 그 뒤로 한 번도 이야기 한 적이 없었는데......”

아버지는 말끝을 흐린다.

“제 동생들이요. 그리고 아버지가 용 사냥꾼이었던 형님의 이야기를 딱 한 번만 하신 것으로 알았어요.”

어머니는 다시 아버지의 품에 안겨 우시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어깨를 토닥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알고 있었다면, 더 이상 말릴수 없구나. 허락 하겠다. 하지만 이곳은 네 집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언제라도 쉬고 싶으면 이곳으로 돌아 오거라.”

나는 두 팔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껴안아 드렸다.



나의 친 아버지. 그러니까. 지금 까지 나를 키워주신 아버지의 형님은 용 사냥꾼이었다.

지금의 아버지가 친 아버지라고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장남인 내게는 다섯 명의 동생들이 있었다. 둘째와 막내까지 서로의 나이 차이는 한 살에서 두 살. 둘째와 장남인 나와 나이 차이는 5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내게 용 사냥꾼이었던 자신의 형님의 이야기를 단 한번 만 해주셨다.

용 사냥꾼은 100명 정도의 팀으로 이루어진다. 훈련과 훈련을 거듭해서 한명의 용 사냥꾼으로 인정을 받게 되면, 설령 용 사냥 도중 죽게 되더라도, 용 사냥 이후에 사냥에 성공한 사람들은 그동안 희생된 사람의 몫을 챙겨 주는 약속을 하게 된다.

아버지는 그 수령인으로 어머니와 자신의 동생을 정한 것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배속에는 내가 있었다.

아버지는 이야기 해주었다. 지금 우리가 내 땅을 갖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용 사냥꾼이었던 형님 덕분 이라고, 딱! 한번만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버지는 형님을 싫어하세요?’

‘아니. 형님은 내 자랑이야. 형님이 나를 떠나는 그날, 그 때 형님의 뒷모습을 아직도 기억 하는 걸.’

‘그럼 왜 형님의 이야기를 안 하세요?’

아버지는 항상 거기서 이야기를 멈추곤 했었다.



아주 어린 시절, 나의 친 아버지가 용 사냥꾼이었다는 것을 자각한 때부터 나는 용 사냥꾼이 되기로 결심 했다.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우면서, 틈틈이 용 사냥꾼으로 훈련 하는 것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17살이 되었다.

그리고 며칠 전 한통의 편지가 도착 했다.

[하람. 나. 카나리아라는 예명으로 데뷔 했어........

........앞으로 계속 노력 할 거야. 약속 했으니까.]

유미르.

내게 가희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한 소녀였다. 농사일을 끝내고 언덕에서 목검을 휘두를 때면, 항상 옆에 앉아 내 모습을 구경하고는 했었다. 한껏 땀을 흘리고 목검을 놓으면, 그녀는 내 곁에서 노래를 불러주었다.

목검을 수백 번씩 휘두르며 뜨겁게 달아 오른 가슴도 그녀의 노래를 듣고 나면 편해지곤 했었다.

[그때 그 약속 기억하지? 네가 이야기 했잖아? 네가 나를 위해 용을 사냥해줄 테니까, 내가 너를 위해 노래를 불러 달라고.]

5년 전이라 잘못 알고 있었던 모양인데, 말을 먼저 꺼낸 것은 유미르였다. 그 날, 내가 땀에 온몸이 젖어 목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췄을 때, 평소처럼 유미르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대신 내게 이야기 했다.

‘하람. 나 내일 도시로 가. 그러니까. 내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것도 마지막이야.’

그날 유미르가 부르던 노래는 왠지 모르게 슬펐다. 그리고 평소보다 훨씬 길었다. 노래가 끝나고 유미르가 이야기 했다.

‘나 부탁이 있어. 난 앞으로 가희가 될 거야. 수많은 사람들에게 내 노래를 들려 줄 거야. 하지만 내가 노래를 부르는 것은 오직 하람을 위해서야. 그러니까 너도 나를 위해서 용을 잡아줄래?’

라고.

[그때 그 약속 기억하지? 네가 이야기 했잖아? 네가 나를 위해 용을 사냥해줄 테니까, 내가 너를 위해 노래를 불러 달라고.]

아무튼 그녀는 도시로 이사를 갔고, 나도 유치하게 목검을 휘두르는 것은 관두었다. 10kg의 나무 짐을 등에 이고 산을 뛰어 다니기 시작한 것이 그날 이후 부터였다.

그래.

그녀가 꿈을 위해 첫 번째 발걸음을 내 딛었으니, 이제 나도 꿈을 위해 발걸음을 시작할 때라고 생각 했다. 그래서 나는 집을 떠났다.



아버지의 소개로 대륙 서부에 위치한 용 사냥꾼 훈련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꽤나 거친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조심해라.’는 아버지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나는 훈련소 입소 1 주일 만에 사고를 저질러 버렸다. 제프! 이 처 죽일 놈!

그날은 처음으로 라디오에서 카나리아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던 날이었다. 오전 훈련을 끝내고 점심시간. 용 사냥꾼 훈련소의 휴게소 한쪽에는 작은 라디오가 있었다. 나는 점심을 거르고 휴게소로 먼저 달려가 미리 외워둔 라디오 채널을 맞추어 놓았다. 거친 오전 훈련으로 배속이 밥을 달라고 소리 지르고 있었지만, 훈련소의 사람들과 라디오 채널을 갖고 싸우지 않기 위해서는 이 정도 희생을 필요 한 것이었다.

[지금부터 들으실 곡은 최근 떠오르는 신인 가희. 카나리아 양의 곡입니다.]

지글거리는 노이즈 너머로 유미르의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5년이 지난 만큼 보다 어른스러워지고 아름답게 다듬어진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예전 같은 편안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나는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유미르의 노래를 들었다.

“뭐~ 이따위 노래나 처 듣노? 남사스럽게 시리.”

라디오의 채널이 돌아가고 유미르의 노래가 끊겼다. 나는 감던 눈을 뜨고 채널을 돌린 녀석을 바라본다. 동쪽에서 온 제프 녀석이었다. 나이는 17세. 나와 동갑. 제프는 요란스런 노래가 나오는 채널을 맞추고 휴게실 한쪽 의자에 등을 기댄다. 그리고 내게 들으라는 듯이 큰 목소리로 중얼 거린다.

“그런 힘없는 노래 들으면 소화되려는 밥도 체한다. 아이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라디오의 채널을 돌렸다. 라디오에서는 다시 유미르의 노래다 들려왔다. 내가 자리에 앉자, 제프는 내 등을 향해 말한다.

“봐라~. 거기 내 좀 봐라~. 좋게 말할 때 채널 돌려라.”

미친 놈. 나는 등을 돌린 채, 유미르의 노래에 집중 했다. 내가 대꾸를 하지 않자, 제프는 자리에서 일어나 라디오로 다가온다. 그리고 등을 돌리고 있던 내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하여간 남부 촌놈들. 억수로 싸가지 없는 것은 알아줘야 한다.”

제프는 라디오의 채널을 바꾸는 스위치에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라디오에는 여전히 유미르의 노래가 끊이지 않았다. 제프는 채널을 바꿀 수 없었다. 내가 제프의 등을 붙잡고 뒤로 잡아 당겼다. 제프의 몸이 뒤로 날아가 휴게실 책상과 의자에 부딪친다. 나는 라디오의 볼륨을 크게 키웠다. 유미르의 노래 소리가 점점 커져 휴게실을 가득 채운다. 식사를 끝낸 훈련소의 사람들이 휴게실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쓰러진 책상과 의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제프의 모습에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제프는 바닥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턴다.

“아직 끝난 것 아이다. 이제 시작이다.”

그리고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녀석의 주먹이 내 턱을 정확히 가격한다. 내 몸이 한쪽으로 휘청 거리기 무섭게 반대쪽 턱을 후려친다. 엄청나게 매서운 주먹이었다. 단 두 번의 주먹질에 난 허리를 굽혔다. 통증도 어마어마했지만, 머리가 울려서 제대로 일어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봐라~. 봐라~. 고개 좀 들어봐라. 아직 안 끝났다.”

고개 숙인 내 머리 위에 빈정거리는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라디오에서는 유미르의 노래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머리가 울리는 것이 멈추지 않는다.

“아님. 걍! 뒈저쁠든지!”

녀석의 두 주먹이 고개 숙이고 있던, 내 등 위를 내리 찍는다. 내 몸은 바닥에 고꾸라져 버렸다. 녀석은 쓰러진 나를 지나 라디오로 다가간다.

“이딴 남사스런 노래나 들으니까. 약해 빠진 거다. 니 사타구니에 불알 두 쪽. 다 달려있나?”

하지만 이번에도 제프는 라디오의 채널을 돌리지 못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녀석의 허리를 뒤에서 두 팔로 붙잡았다. 제프는 그런 내가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는다.

“니? 게이가? 동성애자란 말이!”

제프는 말을 끝내지 못한다. 나는 녀석을 휴게소 반대편으로 집어 던졌다. 멀쩡하게 있었던 책상이 망가지며 녀석은 휴게소 바닥에 뻗어 꿈틀 거린다. 주먹을 쓰는 것은 녀석이 유리했지만, 힘을 쓰는 것은 내가 압도적으로 유리 했다.

“하! 하! 하!”

바닥에 뻗는 제프는 천정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웃기 시작한다. 라디오에서 나오던 노래는 이제 끝이 났다. 아까웠다. 다음에는 언제 들을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제프는 비틀 거리며 책상을 치우며 일어난다. 단단히 쥐고 있는 주먹이 아까보다 훨씬 매서울 것 같았다.

“니. 오늘 나한테 죽었다. 턱 단디 물어라!”

“둘 다 멈춰!”

제프가 내게 달려드는 순간, 휴게소로 대장님이 들어왔다.



훈련소 한 쪽, 대장님의 사무실. 대장님의 개인 공간이라고 해야, 책상과 의자. 책장 정도로 간소한 자리였다. 대장님은 우리 둘의 훈련소 성적을 다 읽고는 책상 위에 내던진다.

“변명 해봐. 훈련소 내에서 싸움을 강제 출소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제프가 먼저 나서서 항변을 시작했다. 녀석은 용 사냥꾼이 되는데, 나보다 더 간절했던 모양이었다.

“등을 붙잡고 바닥에 내던지는데, 가만히 있으면 불알 두 쪽 달린 남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이 녀석이 먼저 뒤통수를 때렸습니다.”

“낮 간지러운 노래로 채널을 바꿔서, 듣기 싫다고 했는데, 안 바꾸잖아요.”

“저는 점심도 먹지 않고, 먼저 가서 채널을 맞춰 둔 것입니다. 그러니까. 원래 채널을 제 것이었단 말입니다.”

“제가요. 휴게소에 들어왔는데, 남자 새끼가 유치하고 간지러운 노래나 듣고 있길 래, 채널 좀 돌렸습니다.”

“유치하단 말 취소해라. 너 죽는다.”

“와? 네가 날 죽일 깜이나 되나?”

건들거리는 제프에게 내가 당장 주먹을 휘두르지 않은 것은 대장님 앞이었기 때문이다. 제프 역시 건들거리며, 대꾸 한 것은 대장님 앞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녀석은 말이 많지만, 주먹을 쓰는 것을 망설이는 녀석은 아니었다.

대장님은 우리 둘을 보고 턱을 괸다.

“그래서 서로 사과 할 생각은 없는 거지?”

우리는 동시에 대답했다.

“제가 미쳤습니까?”

“싫은데요.”

대장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부디 그 각오 오래 간직해 두도록. 막내야! 그것 준비해라! 너희 둘. 따라와라.”

막내라고 해서 가장 어린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대장님 바로 아래 부 대장님을 막내라고 불렀다.


우리는 대장님을 따라 연병장으로 나왔다. 7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연병장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병장 한쪽의 천막 그늘 아래, 다른 훈련병들이 쉬고 있었다. 연병장 앞에는 용 사냥에 사용되는 길이 2.5m, 무게 20kg 의 타워 실드가 놓여 있었다.

“둘 다. 하나 씩 등에다 매라.”

타워 실드는 원래는 한 손에 드는 것이었지만, 행군 할 때는 이동 할 때는 등에 맬 수 있도록 정면에 가죽 끈이 준비 되있었다. 커다란 방패가 등에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지만, 7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달구어진 타워 실드는 등에 닿는 것만으로 살이 데일 정도로 뜨거웠다.

대장님은 우리 둘 다 등에 방패를 맨 것을 확인 하고 턱으로 연병장 한쪽 끝을 가리켰다.

“그럼 일단 2 km. 연병장 3 바퀴만 돌아라. 먼저 지친 녀석이 사과 한 것으로 하겠다.”

제프는 건들거리며, 나를 가리킨다.

“대장님요. 이 더운 날 이거 매고 연병장 돌면, 야 죽습니다.”

“지랄한다.”

나는 등을 돌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지난 5년을 매일 같이 나무 짐을 지고 산을 뛰어다닌 내게는 이까짓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제프는 내 등 뒤에서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연병장을 달렸다.

“죽겠다. 이 더운 날 이게 무슨 짓이고.”

내 곁에서 달리던 제프는 내게 들으라는 중얼 거리지만,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무시한다. 말이 많은 제프는 한 바퀴를 지나 두 바퀴가 되자 더 이상 떠들지 않았다. 7월의 태양은 무시무시했다. 바닥에는 뜨거워진 연병장 모래의 열기. 머리 위에는 뜨겁게 달구어진 철판의 열기. 두 열기 사이에 우리는 달리고 있었다. 3 바퀴를 다 돌고서 우리는 대장님 앞에 섰다.

대장님은 천막의 그늘 아래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훈련병 들은 그늘 아래서 놀고 있었다.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고, 카드를 가져와 놀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업무를 보고 있던 문서를 내려놓고 책상위에 놓인 물 컵 두 개를 마시라고 손 짓 한다.

제프와 나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물 컵을 들어 마신다. 시원한 물이 목을 타고 가슴으로 넘어온다. 제프와 나는 물 컵을 뒤집어 안에 있던 물방울 하나까지 모두 마셔 버리고 컵을 내려놓았다.

“아직 할 만 하지?”

“하모요! 바닷사람은 이까짓 것 아무것도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제프는 기운차게 고함을 지른다. 나도 뒤를 이어 대답 했다. 대장님은 그런 우리 둘이 매우 만족스러웠는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럼 더 뛰어. 3 바퀴. 중간에 한명이 쓰러지면, 그녀석이 나중에 사과 하는 것으로 한다. 훈련소의 훈련 과정 중 죽어도 상관없다는 것은 계약서에 적혀 있던 것 기억 하도록 하고.”

대장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프는 앞으로 달려간다. 처음 내가 먼저 달려갔던 것을 마음에 담아 두었던 모양이다. 나도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덥다.

이 간단한 말에 얼마나 함축적인 내용을 담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뜨겁게 달구어진 연병장의 모래가 얼굴에 닿는다.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땀에 얼굴이 범벅이 된다. 우리는 얼굴은 모래 먼지를 가득 달라 붙인 채 달리고 있었다. 달린 다기 보다는 조금 빠른 속도로 걷는 것에 불과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달리고 있었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니. 먼저 사과 안하나?”

“싫다.”

제프는 다시는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세 바퀴가 끝나고 연병장의 천막으로 돌아 왔을 때, 두 개의 밥그릇에 물을 담아 놓여 있었다. 물. 물. 물! 물이다! 제프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동시에 밥그릇에 손을 가져갔다. 대장님은 삐딱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직 마시라는 말 하지 않았어.”

우리는 밥그릇에 가져가던 손을 멈춘다. 하지만 손을 다시 안으로 넣는 것도 아니었다. 마시라는 말을 하자마자 우리는 밥그릇을 집어, 안에 든 물을 마실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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