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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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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아스가르드에서 왔습니다!
글쓴이: RiPeNa
작성일: 12-07-31 12:54 조회: 1,874 추천: 0 비추천: 0

자정을 넘긴 밤.
나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가는 이유인 즉슨 동아리 실에 잠깐 잠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이 시간이었다. 학교 교칙상 야간자율학습은 말 그대로 '자율'이기 때문에 이처럼 동아리실에 와서 잠을 자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그때 동아리실에는 나 혼자 밖에 없었으니 깨워줄 사람이 있을리 만무. 덕분에 이런 고생을 겪고 있는 중이다.
집에가면 혼낼 부모님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부모님은 해외출장을 가셔서 적어도 6개월 정도 있어야 돌아오시기 때문에 집에는 나 혼자 뿐이다.
집 앞에 도착하자 나를 반기는 건 천장에 부착된 자동센서, 그리고 정체불명의 미소녀가 앉은 채 문에 기대어 있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혼란이 찾아왔다. 이런 상상을 해보지 않은건 아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상. 현실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대책같은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녀의 머리색이 백금발인 것을 보아 그녀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외국인이 왜 우리 집 앞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혹시… 한세진 씨 맞으신가요…?"
"맞긴 맞는데, 누구신지…?"
"찾았다…."
그녀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그대로 내게 쓰러졌다. 얼떨결에 받은 그녀의 몸은 차가웠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여기서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를 깨워보려고 했지만, 완전히 잠이 들었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의심스러운 여자이긴 하지만, 사람을 길바닥에 내버려 두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거 같아 그녀를 집 안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집 안은 어둠이라는 공간에 의해 전부 장악되어 있었다. 나는 그 공간속에 감각적으로 그녀를 소파가 있는 곳을 찾아서 그녀를 눕혔다. 그리고나서 전원 스위치를 켰다. 형광등은 '파밧' 하면서 깜박거리더니 불이 들어왔다.
나는 가방도 제대로 벗지 못한 채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위에 깔린 이불을 들고 그녀에게 덮어주었다. 겨울 이불이니 금방 따듯해 질 것이다.
그보다 이 여자 대체 정체가 뭐지…. 급한김에 집에 데려오긴 했지만, 그녀의 정체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아는 거라고는 외국인이라는 것 뿐.
편지라도 있나하고 현관으로 나가려는 그 때, 신발장에 검정색 편지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편지 봉투를 집어들었다. 반대편에는 하얀색 잉크로 L. K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의심스러워 보이는 편지였지만, 편지가 위험해봤자 얼마나 위험하겠는가. 그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봉투를 뜯었다.
봉투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나하고 생각하던 순간, 봉투가 잘게 부서져서 가루가 되어 버렸다. 그 가루는 바닥에 떨어지더니 사람의 형태를 이루었다.
-안녕하십니까 한세진 군-
조그맣게 생긴 것이 내게 말을 걸었다. 순간 얼어붙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내 표정을 보고 뭐가 문제인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볍게 손가락을 팅겼다. 그러자 그것은 순식간에 190센티미터 정도 되는 키의 남성으로 모습을 바꿨다.
"이러면 되겠습니까?"
"어, 어떻게…"
"많이 놀라신 모양이군요. 너무 놀라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부탁을 하러 왔으니까요."
"당신…대, 대체 정체가 뭐야...."
그는 내 물음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보니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제 이름은 로키입니다."
"로키라면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그 로키?"
"그렇습니다. 한세진 군은 정말 똑똑하군요"
로키에 대해서 아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닌데 그는 박수까지 치면서 칭찬했다. 별것도 아닌 것에 칭찬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제 이름도 밝혔으니 부탁을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슨 부탁?"
"지금 자고 있는 여자 분 보이시죠? 저 분은 저희 누님인 토리아입니다. 아, 인간들한테는 토르라고 알려져 있죠."
"저 여자가 토르라고?!"
로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알고있는 토르라면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지고 있고, 망치를 휘두르면서 거인을 때려잡는 남성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지금 눈에 보이는 여자는 가녀린 여자의 모습이었다.
"저기 죄송한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로키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내가 알고있는 토르는 남자라서..."
"역시 인간들은 저희 누님이 남자라고 알고있는 게 사실이었군요. 그건 인간들이 잘못 기록한 겁니다."
로키는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웃음 뒤에는 화난 표정이 감춰져 있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이를 꽉 다문 채 이가 갈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저기, 로키....님?"
내 말에 로키는 아까전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어디까지 얘기했죠?"
"부탁을 한다고 했는데요…."
"아 그렇군요. 제 부탁은 단 하나. 저희 누님을 잠시 이 집에 머물 수 있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저희 집에요…?"
"무리한 건 알겠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니, 무리한 거 까지는 아니고…."
지금은 집에 부모님이 없기 때문에 그녀를 데리고 있는다고 해서 큰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니니까.
"정말입니까?"
"근데 왜 우리집 인지 알 수 있을까요?"
"음.... 그건 조금 무리가 있습니다. 왜냐면 저도 그 이유를 모르거든요. 단지 누님께서 세진군의 집에 갈테니 무조건 성사 시키라는 말 밖에 없었습니다."
"만약에 제가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거죠?"
"거절하신다면 저는 아마.... 묠니르의 제물이 되겠죠... 그러니 신 하나 살리는 셈 치고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로키는 내 앞에서 무릎이라도 꿇을 작정이었다. 신이 인간에게 무릎을 꿇는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평생은 무리지만, 몇 달 정도는 상관없어요."
그러자 로키는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정말 고맙습니다, 세진 군. 그럼 저희 누님과 지내실 때 조심해야 할 점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조심해야 할 점이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요구사항에 긴장 되었다.
"딱 한가지. 누님은 존댓말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니 세진군도 존댓말을 쓰시면 안됩니다."
"에? 존댓말이요?"
"그렇습니다. 저희 누님이 굉장히 싫어하거든요. 만약 어길시에는… 묠니르의 제물이 될 겁니다..."
"그, 그거 말고는 다른 건 없죠…?"
"한가지 부탁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로키는 잠시 말을 끊었다. 대체 무슨 부탁을 하려고 하는건지...
"저희 누님을 잘 부탁 드립니다."
로키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그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는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처러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Act. 1

나는 토리아와 함께 집 안에서 무료한 토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토리아는 내 허벅지를 배게 삼아 소파위에 누워있었다. 얼핏보면 다정한 신혼부부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녀와 만난 지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나도 좋아서 이렇게 있는 건 아니다. 밥을 먹고 소파에 앉아있는데, 토리아가 누웠다. 뭐하는 거냐고 물으려는 찰나, 그녀가 나를 올려다 보면서,
"낮잠 잘거니까 가만히 있어"
라는 말을 하고 눈을 감았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생각했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서 토리아를 보니 정말로 잠들어 버렸다. 이렇게 되다 보니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잘 자네…"
토리아를 보고 중얼거렸다. 표정은 제 집에 자는 것 처럼 평온해 보였다. 이렇게 귀여워 보이는 소녀가 거인과 맞서 싸우는 토르라니… 전혀 믿겨지지 않았다.
그녀를 보고 있자니 나도 졸음이 쏟아졌다. 나도 잠깐 잘까….
토리아 때문에 누워서 자는 건 불가능 하지만, 앉아서 자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그래, 잠깐만 자는거다.
이러게 생각하고 나도 눈을 감았다.
얼마나 잤을까. 누군가 누르는 초인종 소리에 잠에서 깼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소파에는 나 혼자 누워있었다.
자꾸 재촉하는 초인종 소리에 일어나려고 하는데, 토리아가 옆으로 다가왔다.
"내가 나갈게."
토리아는 내 옆에 앉아서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나는 잠결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소파에 누웠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가 부르는 소리에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럴거면 내가 나가려고 할 때 내버려두지…
현관에는 토리아와 파란색 택배회사 조끼를 입은 택배원이 서 있었다.
"여기에 뭘 써라고 하는데, 뭘 써야하는지 모르겠어…"
토리아는 손에 들고 있던 펜과 종이를 내게 내밀었다. 딱 봐도 택배물 수령 확인서였다. 토리아가 내민 펜과 종이를 받아서, 사인란에 사인을 하고 택배원에게 건냈다. 택배원은 종이와 펜을 받음과 동시에 작은 상자를 주고 사라졌다.
"처음부터 내가 나간다고 했잖아."
"난 잡상인쯤 되는 줄 알았지…"
토리아는 멋쩍은 듯 혀를 살짝 빼어 물면서 수줍게 웃었다.
"근데 그건 뭐야?"
토리아는 내 손에 있는 작은 상자를 보면서 물었다.
"이거? 아마 머그컵일걸? 궁금하면 뜯어 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토리아는 내 손에 있던 상자를 낚아채더니, 부엌으로 뛰어갔다. 그녀의 행동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토리아를 따라가려던 순간, 초인종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잡상인인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문을 열었는데, 눈 앞에는 예상과는 달리 내가 잘 알곷있는 사람이 서 있었다.
"안녕 세진아~."
"으, 은주 누나?"
은주누나가 우리집에 오는 건 크게 이상할 건 없다.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해외 출장에 나가시면 은주누나가 와서 날 챙겨줬고 지금도 가끔 이렇게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하필이면 이런 순간에 올 줄이야…
"누나…가 우리 집에 무슨 일로… 온 거에요?"
"당연히 하룻 밤 신세지러 왔지."
"그러니까 멀쩡한 누나 집 놔두고 왜 우리 집에서 자냐고요..."
"어머? 어렸을 때는 나보고 자고가면 안되냐면서 메달렸으면서 이제 컸다고 그러는거야?"
"그땐 초등학생 때잖아요... 그리고 중학교 때 부터 혼자서 잤거든요?"
"네~ 참 잘했어요~"
누나는 당연하다는 듯 말하고선 자연스럽게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문이 열리지 않게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그러자 누나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하는 거야?"
"집이 난장판이라서… 오늘은 안돼요"
"너희 집 난장판인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누나가 깔끔하게 치워줄테니까 문열어."
"집은 저 혼자 치울테니까, 누나는 누나 집에서 편하게 자요."
"오늘은 너희 집에서 자고 온다고 해서 갈 데도 없단 말야."
"그래도 오늘은 절대로 안된…"
쟁그랑
누나를 막기위해 말하던 중 유리가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나는 곧장 부엌으로 뛰어갔다.
부엌에는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있는 토리아가 서 있었고, 주변에는 머그컵으로 추정되는 파편이 흩어져 있었다.
"세, 세진…"
"가만히 있어!"
토리아는 내 고함소리에 움직이려고 했던 발을 멈췄다.
"치울테까지 가만히 있어. 안 그럼 유리 밟을지도 모르니까."
"으,응…"
눈에 보이는 큰 파편은 손으로 조심스럽게 치우고, 작은 파편은 근처에 있는 청소기로 치워버렸다. 내가 부엌을 치우는 사이 은주누나가 들어와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차분하게 굳어있는 표정. 아마 쉽게 넘어가지는 못 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한세진, 여기에 앉아. 그리고 옆에 있는 아가씨도 앉아봐요."
은주누나가 가리키는 곳에 나와 토리아가 앉았다. 토리아는 무슨 죄인이라도 된 것 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게 지금 어떻게 된 상황인지 설명해 봐. 둘이 무슨 사이길래 나한테 거짓말을 하면서 저 아가씨를 숨기려고 했는지."
"저, 저는 세진이랑 사촌지간인 한세아라고 해요…"
토리아의 발언에 나는 물론이고 은주누나 역시 놀란 눈치였다.
"외국인 같은데… 사촌이라고?"
"어머니가 영국인인데 저는 어머니의 모습을 많이 닮게 된거에요."
은주누나는 잠시 당황하더니 고개를 푹 숙인 채 뭔가를 생각하는 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방금전까지만 해도 굳어있던 표정과 달리, 평소의 웃는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렇다면 추궁은 끝난건가?
"하긴 세진이가 외국인이랑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했어. 괜한 오해해서 미안."
"아니에요. 그런 오해 자주 받아서 신경 안써요."
"그래도 미안한데.... 아, 나 잠깐만 나갔다가 올게."
은주누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말릴 틈도 없이 밖으로 나가버렸다. 토리아는 누나가 나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왜, 왜 이래...."
"겨우 살았네.... 저 여자는 대체 정체가 뭐야...."
"은주누나 말하는 거야?"
"계속 의심하는 거 같아서 생각을 조작하려고 했지.... 원래라면 집으로 되돌려 보낼 생각이었는데, 뭐가 문제 인지는 몰라도 그건 안되더라고. 그래서 잠깐 쉬려고 밖으로 보냈어."
"한마디로 최면 같은 걸 걸었다는 거야?"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아무튼 그 여자가 올 때까지 쉴거니까 넌 가만히 있어."
토리아는 그렇게 눈을 감아버렸다. 이렇게 되면 낮의 상황이랑 비슷해졌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녀의 머리가 허벅지가 아닌 어깨에 있다는 것. 그녀의 고운 숨소리가 내 심장 박동수를 상승시키고 있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두근거림 때문에 이대로 가다간 '심장이 터져 죽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던 그 때, 초인종이 울렸다. 토리아는 잠에서 덜 깬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 동안, 나는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문 밖에는 무언가가 잔뜩 담긴 봉투를 양손에 들고 있는 은주 누나가 서 있었다.
"대체 무러 사온 거에요...?"
"그냥 이것 저것 사왔어. 무거우니까 빨리 비켜."
"옆으로 몸을 살짝 비켜주자, 은주 누나는 쏜살같이 들어와서 봉투를 바닥에 내려놨다.
"누나, 이건 대체..."
"아까전에 미안 한 것도 있고 해서 가볍게 한잔하면서 풀려고 했지."
봉투 안에는 술과 주전부리가 들어 있었다. 술의 양으로 볼 때, 절대로 '가볍게' 마실 양이 아니었다.
"이거.... 오늘 다 마실거에요...?"
"글쎄.... 그래도 모자라지는 않을거야. 자, 이건 내가 들고 갈 테니까 그건 네가 들고 와."
은주누나는 주전ㄴ부리가 든 봉투를 들고 거실로 향했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누나의 뒤를 따라갔다.
토리아는 나와 은주누나가 들고온 물건을 보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 그건 뭐에요?"
"뭐긴 뭐야. 술이랑 안주지. 아까 내가 미안한 것도 있고 해서 한 잔 하자고 사왔어."
"아, 술이었어요? 근데 저는 피곤해서 별로 마시고 싶지 않은데..."
"피곤하다고? 아~ 아까 정신조작한다고 피곤했구나~."
은주누나의 말에 토리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렇다면 누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거야?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지 모르겠는데요...?"
토리아는 최대한 태연한 척 했지만, 은주 누나는 재밌다는 듯 웃고 있었다.
"다 알고 있는 사람한테 연기할 필요 없어요 토.리.아.님."
".... 네 녀석... 대체 누구냐...."
토리아의 말과 눈빛에 적의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푸른 빛의 스파크를 흩뿌리는 망치를 들고 있었다.
은주누나는 토리아의 망치를 보며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호오~ 묠니르의 등장인가? 이거 맞아 죽기 싫으면 정체를 말해야 할 것 같은데?"
은주누나는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하더니 땅을 찼다. 그러자 발 밑에서 검은 색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누나의 몸을 감추었다.
시간이 지나고, 그 안개가 걷히고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로키였다.
"지금까지 로키의 장난이었습니다~. 관객 두분 께서는 재밌으셨나요?"
로키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반면 나와 토리아는 할 말을 잃은 채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자 로키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런, 재미 없었나요? 누님께서는 많이 당하셔서 그렇다고 하지만, 세진군은 재밌어 할 줄 알았는데...."
"재밌기는 뭐가 재밌어!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긴장한 줄 알기나 해?"
"저는 누님께서 금방 알아차릴 줄 알았습니다. 근데 제가 말할 때까지 모르시다니... 서운합니다."
"됐고. 무슨 일 때문에 여기 온 거야. 내거 부를 때까지 아스가르드에 있으라고 했잖아."
"전해줄 말이 있어서 내려온 겁니다. 그보다 누님 손에 있는 묠니르 좀 치워주시면 안 될까요?"
토리아는 로키의 말에 망치를 어디론가 감춰버렸다. 로키는 뒤를 돌아 나를 보더니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내밀었다.
"이건 제 선물입니다."
나는 로키가 내민 봉투를 받아 들었다.
"아, 그리고 세진군도 이 얘기를 들어야 하니 자리에 앉아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양손에 있는 봉투를 부엌에 대충 내려놓고, 거실에 돌아갔다. 거실에는 로키와 토리아가 서로 마주본 채 앉아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토리아의 옆에 앉았다. 토리아는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로키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스가르드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거야?"
"누님이 이 곳으로 온 날. 아버지께서 누님을 찾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누님이 오지 않자 이상한 낌새를 느낀 아버지는 아스가르드의 신들을 동원해서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누님을 찾지 못하자, 다른 세계로 갔다고 생각하고 모든 세계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여기에 오는 건 힘들잖아."
"힘들긴 하지만, 보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로키는 잠시 말을 끊고 숨을 고른 다음 말을 이었다.
"그래서 누님의 외형을 이곳의 사람들처럼 바꾸고, 세진 군과 함께 학교에 다니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됩니다."
"네 말대로 여기를 볼 수 있다면 밖에 돌아다니는 건 더 위험한 거 아냐?"
"아버지는 누님이 변장을 쓸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는 건 아버지는 누님의 평소 모습을 찾고 있기 때문에 들킬 위험이 적은거죠. 그리고 누님도 집 안에 계속 있으면 갑갑해 할 것 같기에 생각해낸 겁니다."
"흐음... 그건 그렇네... 그럼 난 상관 없는데, 넌 어때?"
토리아는 날 보며 물었다.
"나도 상관없어. 그냥 너 하고 싶은대로 해."
"그럼 결정된 거로군요. 누님은 잠깐 따라오실 수 있겠습니까?"
"너, 나한테 이상한 거 시키려고 그러는 거 아니지?"
"저는 누님의 변장을 도와주려고 하는 겁니다. 정 불안하시다면 여기에서 하셔도 상관없습니다만."
".... 그냥 따라갈게...."
토리아는 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로키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로키는 들어가기 직전, 고개를 내밀더니,
"조금 오래 걸릴 수도 있으니 TV라도 보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라고 말하고서 방문을 닫았다. 나는 로키가 말한대로 TV를 켰다.
얼마나 지났을까. TV에서도 볼 만한 게 없어서 하염없이 채널을 돌리던 중, 닫혀있던 방 문이 열렸다. 로키는 들어갔을 때와 별 다른 점 없이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뒤를 따라 나오는 소녀는 내가 보고 기억하고 있던 토리아의 모습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밝은 빛의 백금발은 칠흑같은 흑발이 되어있었고, 눈동자 역시 에메랄드를 연상케하는 녹 색에서 청명한 빛을 발하는 푸른 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분명 머리카락 색과 눈동자만 바뀌었을 뿐인데, 180도 달라져버린 그녀의 모습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토리아는 바뀐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나... 많이 이상하지...?"
"아, 아냐... 괜찮아..."
"정말이지...? 이상한데 괜찮다고 하는 거 아니지...?"
"정말 괜찮아. 근데 눈동자는 왜 파란 색으로 한 거야?"
"그건 제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로키가 끼어들었다.
"세진군, 정말 좋은 지적입니다. 누님이 벽안인 이유는 누님이 저를 속이려고 했을 때, 그 설정을 그대로 쓰기 위해서 입니다."
"그 설정이라면 토리아가 나랑 사촌이고, 어머니가 영국이라는 그 설정?"
"그렇습니다. 누님이 좀처럼 없는 발휘하지 않는 순발력으로 만들어낸 설정이기에 그대로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촌이라면 같은 집에 사는 것도 다른 사람들 눈에 크게 걸림돌이 되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누님이 벽안인 점이 마음에 걸린다면 당장 시정하겠습니다."
로키의 말에 토리아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모르긴 몰라도 토리아는 바꿀 마음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바꾼 모습이 그녀에게는 마음에 드나보다.
내가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자, 로키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아스가르드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돌아가는 거야?"
토리아의 표정에서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조금 있으면 임시소집시간입니다. 늦었다간 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 어쩔 수 없네...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알려야 해."
"알겠습니... 아, 한 가지 잊고 갈 뻔 했군요. 세진군, 잠시 저와 얘기좀 할 수 있겠습니까?"
"로키의 부탁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토리아의 얼굴에서 아쉬워 하는 표정은 사라지고 로키를 의심하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럼 방에서 얘기하도록 하죠."
"너 세진이한테 이상한 짓 했다간 나한테 죽는다."
"얘기만 할 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로키는 너스레 웃으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내가 뒤따라 가려는 순간 뒤에서 토리아가 붙잡았다.
"이상한 짓 하려고 하면 무조건 소리질러야 해. 알았지?"
"얘기만 한다고 하잖아. 너무 걱정하지 마."
나는 토리아를 뒤로 한 채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서 서있는 로키는 방금 전의 웃는 모습이 아닌,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것처럼 굳어있는 표정이었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어제, 저에게 물어보셨죠. 왜 누님이 세진군을 선택했는지."
"뭔가 알아낸 거라도 있는거에요?"
"죄송하지만 제 답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모릅니다 입니다. 저도 뭔가 있을 것 같아서 나름 찾아보긴 했지만, 단서가 될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즉, 세진군을 선택한 이유는 누님밖에 모릅니다."
"그럼 직접 물어봐야 하는건가..."
"그건 좋지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누님께서 말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걸 억지로 알아낸다고 물어보면 다칠수도 있습니다."
로키의 차분한 목소리가 일종의 경고처럼 느껴졌다. 덕분에 나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자 로키는 평소의 웃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너무 긴장하실 필요없습니다. 자, 그럼 정말로 작별인사를 하러 가볼까요?"
로키는 내 손을 잡고 방을 나왔다. 거실에 있던 토리아는 우리가 나오자 마자 도끼눈을 뜬 채 노려봤다.
"둘이서 무슨 얘기 한거야?"
"그건 개인적인 거라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누님에게도 할 말이 있습니다. 잠시만 가까이 와주실 수 있습니까?"
토리아는 로키의 말을 의심하면서도 천천히 다가왔다. 로키는 토리아가 다가오길 기다리다가 손이 닿는 거리가 되자, 손을 뻗어서 토리아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더니 로키는 양 쪽에 잡고 있던 손을 서로 붙이고 그대로 당겼다. 방심하고 있던 나와 토리아는 속수무책으로 서로 붙게 되었다.
"두 사람은 이렇게 붙어있는 모습이 가장 보기 좋습니다."
"...로키 너 진짜.... 죽는다!"
"그럼 젖는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로키는 익살맞은 미소를 지으면서 사라졌다. 나와 토리아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 처럼 손을 놓고 멀찌감치 떨어졌다. 그리고 얼굴을 붉힌 채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말 그대로 어색해 죽을 것 같았다.
한참동안 아무런 대화도 없이 침묵만 흐르다가 토리아의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났다.
"너... 배고파...?"
"....응...."
토리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조금만 있어... 금방 해줄테니까..."
".... 빨리 부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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