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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24시 따닷!
글쓴이: 노트
작성일: 12-07-29 00:33 조회: 2,658 추천: 0 비추천: 0



목차


0. 별의 노트르담에서 발췌


1. 하늘 아래, 별 아래 누워.


2. D-1


3. 젊어서 고생을 정말 사서 하게 되었다.


4. 월차 1/4


5. 별의 시








0. 별의 노트르담에서 발췌


“달. 넌 별이 좋아 구름이 좋아?”




1. 하늘 아래, 별 아래 누워.



“그래서 가출까지 한 거야?”

별이 빨랫줄에 찜질복을 널던 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한 말이다.

“가출이 아니라니까?”

얘기 해주기 전에 말해뒀건만.

“그럼 뭔데? 으앗-.”

소녀는 눈을 가늘게 만들며 가느다란 빨랫줄을 받침대 삼아 턱을 괴었으나, 이내 줄이 흔들려 팔꿈치가 중심을 잃고 허둥댔다.

“그, 그러니까.”

이걸 뭐라고 해야 잘 둘러댔-, 아니 잘 설명했다고 소문이 날까…….

그래 그거다!

“난 아까도 말했듯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에 땀 흘려 일을 해보고 싶었던 것뿐이야.”

“그래서? 그러면 고3이 가출해도 돼?”

눈썹하나 움찔 거리지 않고 돌아온 별의 날카로운 지적이었지만 내겐 이런 반응까지 계산해 생각해둔 말이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알지?”

“당연히 알지! 나 종합 문예소녀라니까?”

딱히 종합 문예소녀가 아니라도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애초에 종합 문예소녀 이라는 수식어도 너 자신이 붙인 것 같고.

“난 온고지신의 자세로 옛 성현들의 말씀 중 하나인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를 심신에 새기고자 수행을 하는 중일뿐이야.”

훗.

“흥! 그러셔?”

“응! 그런데?”

“따라 하지 마!”

그러는 너는 왜.

“그러는 너는 왜 예비 고3이 알바를 하고 있냐?”

“나, 남 이사.”

별 생각 없이 한 질문이었는데 별은 왠지 조금 당황한 눈치다.

대답을 회피하려는 걸까? 은근슬쩍 내 눈을 피하며 콘크리트인 옥상바닥에 대자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달이 밝으니 얼굴에 드리운 역광의 색도 더 깊어져 왠지 표정이 안 좋게 느껴진다.

“뭐해? 여기 더럽잖아.”

“괜찮아 짜샤. 찜질방에서 알바하며 좋은 점이 무료 목욕 빼면 뭐가 있겠어?”

맞는 말 같다. 하지만.

“옷 더러워지잖아. 옷은 우리가 빨거든?”

“정확히는 세탁기느님이 빠시거든?”

“칫.”

말을 말자.

별은 당분간 일어날 생각이 없어보였고 그동안에 나 혼자 빨래를 너는 건 불공평한 일이니, 나도 잠시 쉬자.

마른 찜질복 몇 개를 빨랫줄에서 낚아채어 바닥에 깔고 조심스럽게 별의 옆에 약간 거리를 두고 누웠다. 이런 내게 별은 ‘가지가지 한다.’라고 했지만, 말을 마치자마자 눈빛을 거두고 하늘로 시선을 향하는 바람에 맞받아칠 기회를 잡지 못했다.

“우와~ 달 한번 참 바~알다!”

별의 감탄에 나의 시선도 달로 향했다. 과연 밝고 아름다운 만월이다. 얼마나 노랗게 빛나는지 가까이 있는 별들은 그 빛에 물들어 함께 노래져 있었다.

“정말…… 밝구나. 여기서 보는 달은.”

“누가 들으면 너가 사는 데는 달도 안 뜨는 줄 알겠네.”

매일 뜨기야 하겠지만 정말 안 보이는 날도 많다…… 떠도 잠깐 고개를 들어 감상할 여유조차 없었고. ……나는 잠깐 달을 감상할 정도의 여유도 없이 공부에만 매진했던 거구나.

“아~아아~아아아!”

별이 갑자기 뒹굴뒹굴 거리며 소리를 질러댄다. 알게 된지 고작 하루지만 자신 있게 확신하건데, 얘 좀 이상하다.

“나 시상이 떠올랐어!”

그거 참 종합 문예소녀답다.

“제목. 달. 별. 그리고 구름.”

가슴에 손을 포개어 얹더니 ‘소녀’라는 느낌의 눈빛으로 낭송을 시작한다. 크고 맑은 눈에 꽉 찬 달에 눈이 유난히 초롱초롱해 보인다.

“금빛으로 물들은 달은 은빛깔 별의 맘을 흔들기에 충분해.”

…….

“어둠을 삼키운 구름은 금빛깔 달의 맘을 돌리기에 충분해…….”

…….

“후우~.”

뒷내용은 아직 생각나지 않았는지 짧게 한숨을 내쉰다. 작은 호흡이었는데도 가슴이 커서인지 크게 들썩였다

“어때?”

“응? 뭐가?”

“미래의 대 작가님이 즉흥시를 들려주셨으면 감상평 정도는 줘야지.”

“끝인 거야?”

“응 그런데?”

별이 고개를 살짝 기울며 ‘뭐 잘못 된 거라도?’라는 눈으로 물어온다.

……이 재능 없어 보이는 안타까운 소녀에게 현실적인 충고를 해줘야할까, 용기를 북돋는 칭찬을 해줘야할까?

“음…… 좋았어.”

싫은 소리를 할 자신이 없는 나는 결국 후자를 택했다.

“뭐? 솔직하게 말해도 좋아.”

별은 어째서인지 당황한 눈치다.

“정말 좋았는데?”

“그럴 리가 없잖아! 이건 장난으로 막 지은 시인데? 놀리는 거지!”

“…….”

그럴 거면 대체 왜 물어 본거냐 하여간 얘 참 이상해…….

후…… 가뜩이나 거슬리는 가출소년이라는 타이틀에, 거짓말쟁이라는 수식까지 붙고 싶지는 않으니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해야한다.

“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달이 금빛으로 ‘물들었다’라고 표현한 점이라던가, ‘맘을 빼앗기에’와 ‘어둠을 삼킨’이라는 구절에서 나타난 의인법이나, ‘뭐뭐~의’라는 반복적인 표현으로 운율을 형성-.”

“니가 무슨 문학 선생님이야?”

“하하 별 말을…….”

갑자기 너무 띄워준다. 부끄럽게.

“그런 의미가 아니잖……. 에효. 너도 참 특이한 캐릭터다…… 아, 그래.”

별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의 왼쪽 가슴에 달린 주머니를 뒤진다. 가슴이 옷에 꽉 껴서 꺼내기가 힘든지 한손으로 가슴을 꽉 누르며 다른 한손으로는 그로인해 살짝 벌어진 공간에 손가락을 넣어 각진 무언가를 꺼내려한다. 힘들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 아, 그런 의미가 아니라…….

“후.”

마침내 각진 무언가를 꺼내는데 성공했다.

“특별히 천재 작가님의 아이디어 노트에 메모해 줄게!”

“어? 그 각진 거 담배 아니었어?”

별이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작은 수첩과 달빛을 받아 기스가 간 것이 선명히 보이게 된 낡은 만년필이었다.

“내가 넌 줄 알어?”

별이 기분 나쁘다는 얼굴로 말했다. 개그를 다큐로 받아들이다니 얜 예능프로 작가는 절대 못할 거다. 친구들이 가끔 내 개그는 쓰레기라고 했지만 그럴 리가. 그건 그렇고 요즘 세상에도 만년필을 쓰는 애가 있구나. 준거집단이 작가인 사람으로서의 프라이드 같은 건가?

“나도 안펴.”

“이름.”

내 대답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수첩 몇 장을 넘기더니 짧게 말했다.

“잠깐!”

별이 화들짝 놀라더니 순식간에 내 옆으로 데구루루 굴러왔다. 넌 글 쓸 때 휴먼 굴림체로 쓰면 딱이겠다.

“나, 나 지금까지 니 이름도 모르고 있었던 거야?!”

“어, 그런가?”

“왜 안 알려 줘! 치사한 놈!”

여태껏 내 이름에 관심도 없던 네가 할 말은 아닌듯한데.

“몰라.”

“뭐?”

“몰라…… 기억을…… 잃었-.”

경찰한테도 안 불러준 이름. 너한테 순수히 불러주겠냐?

“아쉽네……. 인터뷰 잘 응해주면 감사의 의미로 빨래 20장을 대신 개어줄 생각이었-.”

“문유하!”

앗싸! 20분이나 벌었다! 경찰은 내게 빨래를 대신 개어준다 했어야 했다.

“흐음…… 기억이 갑자기 돌아오기도 하고 그러나봐?”

별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하, 하하.”

“뭐 됐고. 나이.”

“19세.”

“엉큼한 놈!”

뭐?

“종합문예인 이라는 애가 19세. 하면 이순원을 떠올리지는 못할망정.”

“뭐? 그게 누군데?”

“……아니야.”

“성별?”

“보면 몰라?”

“봐야 알겠는데?”

“뭐?”

“까봐.”

어…… 뭐라고?

아, 아니, 그, 그렇게 대놓고! 얘 대체 뭐야?!

“뭘 그렇게 멍청하게 있냐? ……역시 다 뻥이지 너! 나보다 나이 어리지? 이리 내봐!”

야, 야 너, 너, 너! 진짜로? 야 지금 손을 어디로! 주머니에 넣어서 만져볼 생각인가? 미친거 아냐?

“흐음~ 이건가?”

몸이 굳어서 저항을 할 수가 없다.

“찾았다~.”

……난 썩었다.

“어? 이거 비싼 브랜드 아니야?”

별이 어제부로 가벼워진 내 지갑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다. 지갑이다.

“오~ 민증이다. 으, 사진이랑 숫자가 잘 안보여…… 핸드폰 같은 거 있어? 있으면 좀 비춰봐~.”

핸드폰은 락커에 고이 모셔두고 왔다. 그리고 설사 지금 있어도 안 켠다. 가출, 아, 그…… 온고지신의 자세로 심신을 단련할 이 한 달을 잠깐 핸드폰을 켰다가 위치추적에 걸려서 그만둘 생각은 없기도하고, 그 미친 사진을 보여주고 싶지 않기도하고.

마침 달 때문에 역광이라 참 다행이다.

“읏챠-.”

……천잰데?

별이 몸을 뒤집었다. 그리고 손에 들려있던 주민등록증은 달빛을 받아 아주 화~안하게 보이게 되었다.

뺏어야한다!

“크흑- 푸흐흣-! 핫하하하하하하! 크큭흐큭큭큭-.”

늦었다.

“이거 너, 풉- 크크크크큭. 너, 너 맞아?”

아니라하면 믿어주게?

“아~ 아, 배야. 이제 좀 진정잌큿크크큭큭큭-!”

“그렇게 웃기냐?”

“당연하지 대체 무슨 약을 했길래 여장을 하고 민증 사진을 찍은 거야 너?”

차라리 약을 하고 찍었던 거라면 당시에나마 창피하지 않았을 텐데. 하…….

“우으으으으-.”

별이 갑자기 진짜 오한이 온 것인지 연기인지 헷갈릴 정도로 리얼하게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빠가 말 해줘서 이 세상 모든 남자가 다 변태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게 무슨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아니려나?

“내 눈앞에 있는 놈이 여장변태일 줄은 정말 꿈에도…….”

“아니야!”

후우~. 머리가 지끈 거린다.

“흐음? 그거구나. 후우~ 실마리는 모두 풀렸어.”

별은 한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파이프담배 피우는 시늉을 했다.

“이 주민등록증은 네게 아니야.”

뭐?

“네 누나의 것이지. 제법 솜씨 좋게 뒷번호 한자리를 바꾸었지만 나 별록 홈별의 눈은 못 속이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범인의 말 따위 들어볼 생각 없다. 흠흠. 아무튼 고로, 넌 나와 동갑 혹은 그 아래라는 거지!”

어째서 그런 결론이 나오는데.

“이상한 소리 말고-.”

“그러니 오늘부터 나를 누님이라 부르거라!”

이게 목적이었냐.

“싫은데.”

네 말이 맞다고 해도 너와 동갑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배제하는 거잖아.

“흠~ 그러면 경찰 아저씨한테 가서 ‘우리 찜질방에 민증을 조작한 애가 있어요~.’라고 해야겠다~. 112가 몇 번이더라~.”

“하아-. 마음대로 해.”

“어?”

별이 당황했다.

“아, 뭐. 좋아! 정 그렇다면 동갑. 동갑으로 대우해줄게. 이 이상은 안 돼.”

뭐, 얘한테 오빠소리를 듣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래.”

“흠흠. 그럼 계속 인터뷰 시작. 거주지가…… 강남? 너 부자였어?!”

“강남 산다고 다 부자일 거란 생각은-.”

“그럼 그렇지.”

하지 않는 게 좋지만 난 부자 맞다.

라고 말할까 생각한 순간.


삐이-피슈~우우우우웅~펑-!


검은 하늘에 굉음이 퍼지더니 붉게 물들었다.

저건…….

“……시작 되었네.”

“뭐가?”

-알립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양양해변은 ‘S.A.B’가 정복합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강원도 양양군의 해변은 이, ‘S.A.B’가 정복합니다!


해변으로부터 거대 앰프를 통해 일방적인 통보가 들려왔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S.A.B는 뭐고 정복은 또 뭐야?

“S…… S.A.B가 뭐야?”

“으유~. 그것도 모르냐? 떠오르는 슈퍼루키 ‘Sea And Blues’잖아.”

아, 신인 가수인가? 중3 이후로는 TV를 본적이 손에 꼽히다보니…….


-그럼 다 같이~ 렛츠 댄스타~임! 짝 못 짓는 사람은 수~울래! 짝 못 짓는 사람은 뭐라고요~?


“수~울래!”

별이 들리지도 않을 해변에 두 손을 모아 대답을 했다. 멀리 해변에서도 군중들이 외치는 소리가 작게 들려온다. 내년 여름에는 초리를 데리고 한번 놀러올까?

아, 초리도 내년이면 고3이지.

“야 빨리 빨리 짝지어! 짝 못 짓는 사람은 술래라잖아~.”

뭐래.

“빨리~이. 술래는 엉덩이로 이름 써야 된단말야!”

별이 내게 손을 내밀며 급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말은 안 하던데.


-5! ……4! ……3!


“아 진짜!”

“으앗-!”

씨엔블루스인지 뭔가 하는 가수들이 카운트다운을 세자 마음이 조급해 졌는지 내 손을 확 낚아채며 일어섰다. 몸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던 난 별의 손이 이끄는 힘 때문에 그 하얀 맨다리에 얼굴이 잠시 닿았었는데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초리였으면 분명 난리 났을텐데.


-1!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일렉기타를 시작으로 하여, 키보드가 이끌고 하모니카와 베이스가 거드는 모던풍의 블루스가 해변으로부터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

음악은 정말 좋은데, 얘랑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손을 맞잡고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는 거지. 부담스러워서 놓고 싶은데…….

“예쁘지 않아?”

손을 놓으려는 순간 별이 한참만에 입을 뗏다.

그나저나 당혹스럽다. 확실히 예쁘긴하지만…….

헐렁한 사우나복을 입고 있어도 꽉 조이는 가슴. 그와 대조적으로 걸을 때마다 소매를 펄럭이게 하는 가는 팔. 내가 가지고 있던 바닷가 소녀의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새하얀 피부. 지금 하고 있는 양머리 수건과 잘 어울려 진짜 어린 양을 연상시키는 크고 맑은 눈동자와 조그마한 코와 입술. 양머리 수건의 바깥으로 늘어뜨려 놓은 허리까지 닿는 긴 뒷머리.

이정도면 초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정도긴 하지. 초리는 얘랑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긴하지만.

그보다 이런 걸 자기 입으로 이렇게 당당하게 묻다니…… 갑자기 시를 짓지 않나. 너야말로 참 특이한 캐릭터다.

“뭐, 예쁘긴 예쁘지.”

아니라고 해봐야 거짓말인게 뻔하고, 그저 외모가 예쁘다는 것 뿐이니 솔직하게 말하긴 했는데, 막상 솔직하게 말하고 보니 쑥스러워서 눈을 맞추기 힘들다. 쑥스러워 시선을 아래로 피하니 가슴이 가로 막는다…….

“그치 그치? 아아~ 어쩜 저렇게 예쁜 선율을 연주할 수 있을까?”

“그거였어?!”

“응? 그럼 뭘로 알고 대답한 건데? 아~ 폭죽?”


나는 어이가 없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시 침묵이 흐른다. 손에 습기가 고인다. 손을 잡은 상태라 누구의 손에서 땀이 나는지도 모르겠다. 10분 전만해도 여름이지만 옥상이고, 해변이고, 밤이기에 오히려 선선한 편이라 생각했는데 아닌가보다.

“춤추지 않을래?”

“어? 어, 뭐…… 응.”

가만히 있는 것 보다는 뭐라도 하는 게 덜 뻘쭘하겠지.

“…….”

“왜 가만히 있어?”

“바, 바보야 이런 건 원래 남자가 리드하는 거야.”

“너가 춤을 출줄 모르는 게 아니으악-!”

“어머, 미안 헤헤~. 모르고 너무 세게 밟아 버렸네?”

별이 내 발등에 올라섰다. 별의 이마가 딱 내 입술 높이에 왔다.

……그건 그렇고 분명 일부러 세게 밟은 것 같은데.

“흐으-.”

“그렇게 아파?”

별이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 정말 미안하다는 어투로 물어왔다. 그야 워낙 세게 밟았으니까 아직 아픈 게 맞긴 한데 지금의 신음은 그거 때문이 아니라…….

“흐으으…….”

별의 숨결이 내 쇄골에 닿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별의 머리에서 나는 달콤한 향기 때문에 정신이 조금 혼미해져오는데 쇄골에 간질간질한 숨결이 닿으니 상대가 누구고를 떠나서 솔직히 조금 흥분되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숨결이 강하고 불규칙하기 까지 하다. 이성을 찾자. 상대는 함별이다. 나는 집에가면 일곱 살 때 약혼을 한 토끼 같은 운초리와 마녀 같은 엄마, 근엄하신 아버지가 있다.

“미, 미안해 역시 너무 세게 밟았지?”

“괜찮아.”

아파서 뭐라고 해주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이 녀석이 또 뭐라고 입을 열것이 분명하다. 얘는 무슨 치약을 쓰길래 입에서 달콤하면서도 산뜻한 향기가 나는거야…….

“저, 정말 괜찮다면…….”

별이 내 손을 힘주어 잡았다. 땀이 흥건해 손을 한번 놓았다가 옷에 닦고 다시 잡고 싶지만 이상황에서 그랬다가는 왠지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 같다.

……지금 나오고 있는 음악은 블루스. 블루스를 추려면 한쪽 손으로 상대의 등을 잡아야한다. 지금 와서 그만두자고 했다가는 상황이 겉잡을 수 없이 어색해질 것이다.

후…… 별 수 없이 난 손을 오른손을 별의 등으로 가져갔다. 브라끈이 그대로 잡힌다. 거치적거리는 것이 브라끈이라는 생각은 못하고 이게 뭔가 싶어 몇 번 쓰다가 무엇인지 깨닫고 손을 떨었는데…….

“…….”

다행히 별은 아무 말 없이 먼 곳만을 바라보고 있다. 달을 등지고 있어서 얼굴에 짙게 그림자가 드리워져 표정은 잘 모르겠다.

후-.

“갈게.”

“으? 으, 응.”


우리는 지금 만월의 밤에 찜질방 옥상에서 분홍색과 하늘색의 찜질복을 사이좋게 맞춰 입고 해변에서 전해져오는 블루스의 선율에 맞춰 춤을 추고있다. 간간히 별의 가슴이 내 복부에 닿아 불안 불안하긴 했지만 어떻게든 호흡을 맞추며 추고 있다. 막상 춤을 추고 있으니 별로 떨리지 않는다. 엄마가 블루스를 교양댄스로 배우라고 시켜 배운게 초등학교 때의 일이라, 기억을 더듬으면서 추다보니 다른것에 신경쓸 여유가 별로 없었다.


-피리리리휘이이- 펑! 펑! 휘리-팍!


음악이 클라이막스로 접어들자 폭죽들이 연이어 터진다. 붉고 푸르고 노란 불꽃들이 하늘을 뒤엎어 달도 별도, 구름도 가려버린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잠시 멈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리다가 눈이 마주쳤다. 별의 맑은 눈망울로 나와 형형색색의 불똥들이 보인다. 움직임을 멈췄더니 쇄골로 스며드는 숨결이 다시금 의식되기 시작한다. 내 위에 올라가 있었는데도 조금 숨이 찬지 숨결은 아까보다도 더 불규칙하게 와 닿았다. 나의 숨결도 춤추기 이전보다 조금 거칠어져 숨쉴 때마다 별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는게 보인다.

……그건 그렇고 또 어색해졌다. 후…… 이번에는 내가 무슨 말이라도 꺼내보자.

“지, 지금쯤 해변에서는 커플들이 키스라도 하고 있으려나?”

말을 조금 더듬긴 했지만 상황에 맞는 적절한 화제를 꺼냈다.

“흐읏-!”

상황에 맞기는 개뿔. 난 뭐하자고 이런 상황에 저런 말을 꺼낸걸까.

“으으…….”

……너 지금 눈 감는 거…… 무슨 의미냐.

……무슨 의미긴 무슨 의미야. 그 의미겠지. 이걸 어쩌면 좋지……. 해야하는 건가? 하지만 난 얘한테 그런 감정 없는데…….

게다가 난 아직 첫키스도 안해봤고…… 첫키스 상대로는 초리만 생각해 왔지 다른 여자애는 생각조차 해본적 없는데…….

“아 눈 아파…….”

응?

“니 숨 때문에 먼지 들어갔나봐 좀 불어줘봐.”

…….

“으, 응.”

“그렇게 가까이까지 얼굴 들이댈 필요 없잖아. 기분 나쁘게.”

눈에 들어간 먼지를 빼달라는 요청에 얼굴을 가깝게 한것만으로도 이렇게 기분 나빠하는데 난 대체 뭔 생각을 했던거지.

“후우-.”

“너 이 안닦았어? 어휴 입냄새!”

……초리야 역시 난 너밖에 없다. 너한테는 당장 내일이라도 날 밝으면 연락할게.


“오라바-앙! 큰 일 났-.”

가까워진 얼굴을 다시 거두려 할 때였다. 찜질방 사장 할아버지의 손녀 은솔이가 특유의 하이 톤으로 나를 부르며 옥상 문을 쾅 열었다.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오, 오라방? 뭐하는…….”

난 재빨리 별을 안고 있던 손을 풀었다.

“아, 아니 그게…… 하하. 그, 그러니까 말이지.”

“벼, 별이 언니 아까 낮에 분명히 오라방 따위한테는 관심 없다 했으면서!”

……너 그랬었냐? 나도 너한테 관심 없다 함별!

“언니 미워! 오라방은 무지개만큼 더 미워-! 흐아아앙!”

무지개는 ‘굉장히’ 뭐 그런 의미일까?

“은솔아! 아…….”

별은 은솔이 걱정되는지 크게 은솔이의 이름을 불렀지만 은솔이는 뒤도 안돌아보고 달아났다.

“큰일이 뭔지는 알려주고 가야지.”

은솔보다는 큰일이 뭔지 걱정 되나보다. 아, 그러고 보니 분명 내 이름을 부르며 큰일이 났다고 했는데…… 설마 경찰이?!

“후우…….”

은솔이가 옥상의 출입구에 서서 한숨을 쉬었다. 돌아왔네?

“고용인. 큰 일 났어.”

아…… 너냐? 저 녀석은 계솔이다. 은솔이와 마찬가지로 사장 할아버지의 손주인데, 다른 점이 있다면 쟤는 손녀가 아니라 ‘손자’다. 키, 헤어스타일, 얼굴. 모든 것이 이란성 쌍둥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똑같다.

“고용인 대답 좀 해봐.”

싸가지는 이 녀석이 훨씬 없지만. 본인의 말에 따르면 10년 후 스무 살이 되면 이 찜질방의 경영권을 물려받을 미래 CEO이신지라, 자기의 말에 잘 따라야한다고 하셔서 대충 맞춰주고 있다.

“큰 일이 뭔데?”

내 대신 별이 물었다.

“지금 아래층 상황이 말도 아니야. 어떤 미친 아줌마랑 누나가 고용인 이름을 대면서 ‘내 딸 어디 있어?!’라며 깽판을 치고 있다고. 하여간 사장님은 왜 굳이 그쪽 같은 사람만 고용하는 건지 참……. 혁수형 같은 사람은 흔치 않다고 그렇게 말씀 드렸는데도! 아무튼 데러 올 테니까 알아서 해결해.”

“뭐……?”

미친. 망했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게 생겼다. 벌써 찾아낸 거야? 핸드폰도 분명 꺼뒀는데! 추적 할 수 없었을 텐데? 이대로 잡힐 수는 없다. 이제 겨우 이틀째가 되었는데! 여기서, 벗어나야해!

“이게 무슨 일이야?”

“설명할 시간 없어. 나중에 보자!”

난 별에게 짧게 인사를 마치고 난간으로 달렸다. 급해서 별을 내팽개치듯 밀었는데 뒤에서 철퍼덕 소리가 나는걸 보니 넘어졌나보다. 미안하지만 사과를 할 시간이 없다. 최대한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한다.

제기랄. 빨랫줄이 하도 많아서 걸리적거린다.

“야! 너 어디가!”

정말 미안하지만 지금은 대답해줄 여유가 없다. 나중에, 나중에 꼭 다시 찾아올게.

나는 점프하여 난간을 밟았다. 그리고 보았다.

탁 트인 밤바다의 전경을. 그리고 깨달았다.

여기가 우리 찜질방의 옥상이라는 것을.

“야! 조심해!”

“으아아! 으~ 워어어어!”

간신히 불완전하게나마 중심을 잡아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고 조금씩 중심을 잡았다.

후-. 일단 살았다.

“으아아아아! 피해!”

뒤에서 별의 목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보니 별이 전속력으로 내가 있는 방향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이대로 있다간 별이 나를 밀쳐서 떨어지게 되겠구나 하하…….

나는 재빨리 몸을 옥상으로 던졌다.

“야! 이 바보약으앗-!”

의도치는 않았는데. 정확히는 별에게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넘어졌다.

“우으으…….”

“괜찮아?”

……상식대로라면 지금 쯤 내가 별의 위에서 쓰러진 별에게 해야 할 질문이었지만, 상식이 통하지 않는 별답게, 본인이 내 위에 올라와 있었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나를 옆으로 살짝 피하더니 내 허리를 부여잡고 함께 넘어졌다. 자기 딴에는 그와중에도 나를 보호해주려 했던 것 같은데 그냥 가만히 뒀으면 지금보다는 안전하게 착지했을 거다…….

“으…… 괘, 괜찮긴 한데…… 나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뒤통수를 조금 세게 부딪혔는지 어지럽다.

“머리 부딪힌 거야?”

“……아?”

별이 내 머리를 감싸 들어올렸다. ……어지러워서인지 가뜩이나 숨쉬기가 힘든데 큰 가슴에 얼굴이 묻혔다. 코 주위의 산소량은 적어졌는데 가슴에서 나는 좋은 향기 때문인지 숨이 자동으로 깊게 쉬어져서 큰 문제는 없는듯하다.

“헤에~! 너, 너 뒤통수에 피나!”

하하…… 살다보니 참 별일이 다 있네.

“우리 딸 어디 있냐고오오오!”

옥상으로 올라오는 통로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여기까지 또렷하게 들린다.

“어머니 진정하세요. 유하언니는 아무 일 없을거에요. 똑똑한 사람이잖아요.”

“저기 있습니다. 저희 측에서도 더 이상 고용할 생각 없으니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짐싸서 돌아 가주셨으면 합니다.”

점점 목소리가 가까워진다. 아…… 어서 일어나 도망쳐야하는데 별이가 응급 지혈을 한답시고 자기 상의를 부-욱 찢어 배꼽티를 만들더니 천쪼가리로 내 머리를 꽁꽁 싸매고 있다.

고맙지만, 전혀 압박이 안 된다.

“아니 그런데 이 쪼끄만한게 아까부터 보자보자하니까 말하는 싸가지, 아차.”

“괜찮아요 어머니 전 아무것도 못 들었어요. 어머니처럼 고상하…….”

“…….”

“…….”

“별이 누나……?”

“딸……?”

“……괘, 괜찮아요 어머니. 저, 저 지금 유하언니가 뭐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못 봤어요.”

하, 하하…… 왜 하필 지금 얼굴이 옥상 출입구 쪽으로 향해 있어서 저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는거야. 고개를 돌리고 싶어도 의식이 희미해져서 몸을 움직일 수가 있어야지 이거 원…….

엄마도, 초리도. 앞으로 어떻게 본담. 하아-. 모르겠다.

“어, 어서 119 불러요! 빨리!”

내가 살아서 듣는 마지막 목소리는 함별의 목소리인가?

아니, 죽긴 누가 죽어 하하…….

흔히들 죽기 전에 일생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고 하던데, 지금 내 의식 한켠에서 떠오르고 있는 영상은 고작 가출한 날의 기억이니까 별로 상관 없을 거야……?

일단은…… 눈을 감고 좀 쉴까? 아주 잠깐만.

“어서요! 강원도 119 번호는 119에요!”

……어디든 똑같다 임마.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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