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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황당무계합니다, 황제님!
글쓴이: 만월묘
작성일: 12-07-28 21:53 조회: 2,355 추천: 0 비추천: 0
0. 혹시 연주하시는 곡은 진혼곡입니까, 황제님?

 콰앙.
 홍련(紅蓮).
 고요한 정적 속의 밤을 때리는 굉음. 폭음. 소리로 난타하는 폭력이 마구 휘둘러진다.
 그 속에 개화하는 아름다운 꽃밭. 강철의 대지를 짓밟고 붉은 백합들이 만발한다. 아름답다. 장관이다. 수려하다. 한 마디로 표현하지 못할 광경들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마치 한 편의 비극적인 연극을 보는 것 같아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들리지 않지만, 모두가 들릴 정도로.
 들리지만, 모두가 들리지 않도록.
 아아. 개장의 막은 여기서 피는 것인가───
 손을 까딱인다. 벌이 동료들에게 보내는 신호처럼 손을 부드럽게 휘젓는다. 한 번 더 폭발이 일어나며 꽃이 개화한다. 여기저기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잿빛의 꽃가루들이 참으로 아름답지 아니할 수가 없다. 왼손을 쭉 뻗고 한 바퀴 빙글 돌리자 전방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붉은 꽃들이 산개하는 듯 보였다.
 강철의 파편들은 무참히 짓밟히고, 힘없는 자들은 조용히 꽃밭에서 으스러져간다. 사방은 붉다. 붉고 붉은 꽃들이 펼쳐져서 대지를 빨갛게 적신다. 아아, 이 절경을 대체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점입가경? 아니, 재미지다고만 하기엔 너무 절경이다.
 백화요란? 아니, 화려하지만 그것뿐이다. 도처에 터져 나오는 이 훌륭한 울림은 뭐라고 표현해야 하는가.
 지옥? 딱 좋다. 허나, 뭔가가 부족하다. 여기에 한 단어가 더 필요하다는 기분이 든다.
 홍련은 어떨까. 홍련지옥. 그거야말로 딱 알맞는 말이다. 이곳은 홍련지옥이다. 붉은 꽃잎들이 화려하게 산개하고,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폭음과 비명소리, 그리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가관이 펼쳐지기까지 하니. 이것이야말로 찾고 있던 그 말이다. 이곳을 한 번에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을 집합시킨 단어다.
 하하, 작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작은 웃음은 곧 큰 웃음이 되어 이윽고 박장대소하는 웃음소리가 되고 만다. 여전히 소리는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모두를 때렸지만, 이 순간만큼은 딱 한 명은 예외시 된다.
 ───가디건을 나풀거리던 소녀는 유유히 손을 휘저을 뿐이었다.

 "크윽…!"
 하얀 가운을 입고 있던 사내가 쓰러졌다. 칠흑 같은 어둠에 삼켜진 방을 둘러싸고 있는 컴퓨터에서는 Error라는 붉은 문구만 띄우고 있었고, 방 안을 메우고 있던 배양관들은 엉망진창이 되어서 깨진 유리병이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이곳에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는 듯싶었다. 자세히 귀를 기울이면 사람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것마저 아니라고 부정했다.
 자신을 찾으러 오는 소리가 아니었기에.
 들리는 것이라곤 오직 새된 비명소리 밖에 없었기에.
 사내는 고개를 들려고 했지만 저지당했다. 누군가가 가차없이 자신의 머리를 밟아버렸다. 억지로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줘봐도 무슨 이유에선지 전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사내는 일말의 두려움을 느끼며 일단 힘을 빼기로 했다.
 눈을 뜨자 앞에는 회색빛 오버니삭스로 감싼 다리 밖에 보이지 않았다. 가녀린 라인을 보아 짐작하건대 자신을 때려눕힌 사람은 여성일 것이라고 사내는 확신했다. 아무리 내가 나이를 먹었거니, 힘에서까지 자신보다 어린 여자한테 밀리다니, 하고 사내는 자책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잘못 들으면 상대방을 도발하는 것처럼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내는 잠깐 숨을 가다듬었다. 엎어진 자세에서 밑으로 꾹꾹 눌려지고 있기 때문에 호흡하는데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못할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싶을 때 사내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네가 이런 식으로 배신할 줄이야. 실망이다."
 나름 비장한 어투로 말하려 했지만, 정작 상대에게는 어떻게 들렸는지 코웃음만 돌아올 뿐이었다. 사내를 압박하고 있던 그녀는 조금 더 힘을 줘 사내의 머리를 꾹꾹 눌렀다. 두개골이 으깨질 것만 같았지만 그래도 사내는 악바리로 버텨냈다.
 그런 사내의 모습에 흥이 떨어졌는지 그녀는 머리에서 발을 뗐다. 대신 주위에 쓰러져 있던 바퀴 달린 의자에 그녀는 털썩 앉고는 팔짱을 끼고 사내를 내려다 봤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디까지나 무미건조했다.
 "이능력자가 95%, 일반인이 5% 살고 있는 이 '세종시'에서, 얼마든지 배신 당할 수 있다는 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여기 시민으로서의 기본 소양 아니었나요?"
 확실히 그녀의 말이 맞았다. 최근 시대의 싸움은 주로 정보를 통해 이루어진다. 바로 그렇기에 이곳 '세종시'는 철저히 시민들의 이능력을 감추고 또 믿을만한 대상이 아니면 자신의 이능력을 공개하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고도 있다. 서로의 이능력도 모른 채, 어떻게 경쟁하게 될지 또는 어떻게 공생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때로는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하며, 때로는 대의를 위해 남을 배신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 이 도시의 기본 생존법이자 철칙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사내는 말해야 했었다.
 "그런 불신감을 허물기 위해 우리가 연구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그러나 돌아온 것은 허탈하다는 비웃음뿐이었다.
 "언제부터 당신이 그렇게 긍정적이 되었죠? '연구자들은 무조건 긍정해서는 안된다'가 당신네들의 입버릇 아니었나요?"
 "크으…."
 반론할 여지가 없었다. 실제로, 그들은 시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국가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시민들의 불신감을 없애기 위해 우리는 노력했다' 라는 정의 넘치는 말은 통용되지 않는다. 사내가 생각하기에도 자신이 말하는 것이 허울 좋은 위선이라는 걸 깨닫기엔 충분했다.
 사내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조금 들어 올렸더니, 거기에는 거만하게 다리를 꼰 채 자신을 내려다 보는 소녀의 모습이 있었다. 역시나. 사내는 전율하며 그저 소녀가 어떻게 행동할지 지켜보기로 했다. 머리를 질끈 묶어 올린, 하늘색 가디건이 인상적인 소녀는 입꼬리를 올렸다.
 밤하늘의 차가운 공기마저 베어버릴 듯한 붉은 초승달처럼.
 "'스트레인지 체커(이능력 측정기)'의 범용화는 말 그대로 획기적이었습니다. 그것만 주어진다면 서로 신용하면서 일을 할 수도 있고, 도시에 만연해 있는 경계심도 자연스럽게 풀어져 나가겠지요. ───그래서?"
 사내는 소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짐작할 수 없었다. 덕분에 다시 되물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라니?"
 "그래서요? 범용화 되면 시민들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뭐가 있죠? 겨우 안일한 신뢰도 하나? 사람의 신용만 있으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나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물론이다! 그래서 우리도 함께 뭉쳐 연구…."
 "아니죠. 과연 '세종시'는 뭣 때문에 서로의 이능력을 감추라고 지시했을까요? 그건 바로 뛰어난 이능력자가 함부로 설치고 다니지 못하게 위해서입니다."
 소녀는 벌떡 일어서더니 허공에다 손을 휘젓는다. 지휘봉도 없이, 아무 음악도 없이, 그저 상황만을 즐기는 듯이.
 "정부는 겁쟁이들뿐이라, 자신들이 위협받는 걸 무서워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능력자들을 한 도시에 집성시킨 거구요. 그런데 그 정부가 무서워하는 걸 당신네들이 마음껏 부수겠다? 안되죠. 안되는 일입니다. 그건 정부도, 시민들도, 모두를 위해서도 놔둬선 안되는 일이에요."
  "하지만…."
 소녀는 갑자기 사내 앞에 무릎을 쪼그리더니 그의 입에 손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왠지 차가운 살기가 등등한 것 같아서, 사내는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소녀는 아무렇지 않게 평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 더 이상의 궤변은 듣지 않겠습니다. 오늘로서 끝이에요. 당신네들의 모든 연구 데이터는 소거했으니까."
 "뭐…라고?!"
 그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얼마나 우리고 개고생을 했는데. 얼마나 많은 생명들을 희생시키고,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아무리 배신을 했다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닐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더 독한 년이었다.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사내는 일어서려고 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소녀를 덮쳐서 입 다물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거라고 직감했다. 하지만 그것마저 쉽지 않았다.
 "…?!"
 다리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놀라서 뒤를 봤더니 땅에서 삐죽 솟아난 집게손이 자신의 두 다리를 잡고 있었다. 이쯤 되면 분하다기보다는 어이가 없다. 그녀는, 그의 눈 앞에 있는 소녀는 이미 처음부터 이런 일이 벌어질 걸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내는 이를 악물며 소녀를 노려봤다.
 "너… '시나리스트' 이 자식…!"
 그러나 사내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소녀가 그의 얼굴을 냅다 걷어찼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사내는 턱을 강타당해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정신이 몽롱해지는 가운데에 기침이 나왔다. 바닥을 보니 아무래도 피를 조금 흘린 것 같았다.
 소녀는 더러운 게 묻었다며 신발을 털어내고는 손가락을 튕긴다. 그녀의 얼굴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은 채 초승달 미소를 짓고 있었다.
 "거기다───"
 쾅. 무언가가 벽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방은 특수합금으로 되어 있어서 설령 이능력자라고 할지라도 쉽게 뚫지 못할 텐데…. 사내는 방 안에 울려 퍼지는 소리의 폭력을 들으며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소녀가 말할 것보다 앞으로 찾아올 '무언가'가 더 무서워졌다. 이제 어찌 됐든 좋았다. 여기만 빠져나갈 수 있다면, 이 붉은 방에서만 빠져나갈 수 있다면 그녀의 발을 핥아도 좋다고 생각 들었다.
 "당신네들은───"
 쾅. 두 번째 타격음. 벽의 한 곳이 눈에 띄게 부풀어 올랐다는 것은 얼마 안 가서 사내도 깨닫게 되었다. 언어도단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혀를 깨물었는지 피가 멈추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이 사내의 모든 감각기관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래서 소녀가 하는 마지막 말이 무슨 의미인지 당장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것 말고 다른 것도 연구하고 있었잖아요?"
 두근.
 비명소리가 벽 너머의 복도에서 울려퍼졌다. 여러 명의 목소리가 섞인 것 같았다. 그제서야 사내는 방금 전 자신이 들었던 소리를 떠올렸다. 그랬다. 오직 들리는 소리라곤 살려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끔찍한 울부짖음 밖에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곧….
 쾅! 세 번째 타격음과 동시에 합금으로 이루어진 벽의 한 켠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사내는 그 사이로 작은 무언가가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네모난 눈에다 네모난 입. 거기다 네모난 머리에 네모난 몸체까지. 전신이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로봇이었다.
 네모난 붉은 눈을 형형히 빛내던 로봇은 방 안으로 들어오더니 집게손으로 구석구석을 더듬거렸다. 뭘 찾고 있는 건가 싶었지만 바닥에 떨어진 것은 일체 신경도 쓰지 않으니 그건 아니라고 사내는 단정했다. 이윽고 로봇은 찾고 있던 걸 발견했는지 머리에서 느낌표를 띄웠다.
 로봇이 발견한 것은 방 한가운데에 설치되어 있던 커다란 배양기였다. 이 배양기는 '마력(Hex)'을 분석할 수 있는 '실험체'가 들어있던 곳이었다. 이 '실험체'에서 뽑아낼 수 있는 데이터는 연구원들의 예상 외로 다용도적이어서 수많은 기관들을 장착시켜 이 연구지대에 있는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설정해 놓은 특수한 물건이었다.
 로봇은 곧바로 배양기에서 몇 걸음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사내는 저것이 무슨 일을 초래할 건지 짐작할 수 있었다. 사내는 허둥지둥 거리며 소녀의 발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에누리 없는 잔인한 미소였다.
 "이미 이 연구지대에 있던 모든 데이터는 적출했습니다. 여기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어요. 원래라면 데이터만 빼놓고 사라질 계획이었습니다만───역시 열심히 노동한 분들에게 그런 건 실례인 거 같아서요. 그래서 당신네들을 위해 멋진 연극을 준비했죠."
 소녀는 사내의 손을 떼어내고는 짓밟았다. 사내가 신음을 내며 끙끙거리고 있자 소녀는 가디건을 펄럭이며 등졌다.
 잠깐, 연극? 문득 사내는 의문점이 들었다. '연극'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물론 그냥 뱉어낸 말일 수도 있었겠지만, 만약 그녀와 자신이 함께 한 시간들이 전부 진실이었다면 그녀는 절대 의미 없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반드시 저 '연극'이란 단어에는 어떤 의미가 함유되어 있을 터다. 사내는 긴박한 순간에도 굴러가는 자신의 머리에 마냥 감탄할 수는 없었다. 뒤에서 로봇이 마치 인간처럼 배양기에 뛰어들려는 모습을 포착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행동과 말, 그리고 지금 자신 연구원들이 처한 상황을 총 조합한 결과, 결론은 어렵지 않게 나왔다. 이 모든 것이 소녀의 자작극이었을 뿐이란 얘기였다.
 처음 우리에게 연구를 도와주겠다는 그 말도. 연구가 막힐 때마다 언제나 들고 왔던 해결책도. 스스럼없이 누구에게나 싹싹했던 그 태도조차도. 처음부터 짜놨던 시나리오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사내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들자 보이는 것은 오직 지휘봉 없이 허공에 손을 휘젓는 소녀의 수수한 자태였다. 맙소사…. 여태까지 현군(賢君)인 줄로만 알았던 사람이, 바로 그 흉포한 폭군이었을 줄이야. 사내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그저 웃어 버렸다. 눈에서 흐르는 이슬줄기도 자각하지 못한 채 웃었다.
 "그럼 안녕. 다음에 볼 수 있으면 또 보자구요."
 소녀는 쓰러져 있던 사내에게 싱긋 웃어 보이고는 방을 떠났다. 그것을 시발점으로, 로봇은 주저하지 않고 마구 달렸다. 타다다다다닷. 쾅!

 소녀가 지나온 자리에는 붉은 꽃만이 아름답게 피고 있었다.


1. 직접 행차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황제님.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이라 약간 당황하겠지만, 그렇대도 제대로 들어주길 바란다. 왜냐면 나는 현재 심각한 위치에 놓여 있으니까.

 만약 모르는 여자가 나타나서 자신이 어린 여자애 팬티를 내리고 있는 사진을 보여 준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다음 보기 중 고르시오. (5점)
1. 당장에 낚아채서 찢어버린다.
2. 저 사람은 내가 아니라고 부정한다.
3. 당신은 대체 뭐하는 사람이냐고 따진다.
4. 현장에서 그 즉시 도망친다.
5.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보이듯이 선택지는 많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백지 상태로 답안지를 제출했다. 당연히 점수는 0점. 생각한다고 시간을 지체해서도 아니고, 답을 찾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행한다면 그대로 이뤄졌을 답이 많았다. 그런대도 백지로 답을 낸 이유는 간단했다.
 그 황제님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

 오늘은 매우 기분이 좋은 날이다. 그렇다. 오늘은 시험을 본 날이다!
 대체로 시험날이 즐거운 사람의 유형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공부를 잘해서 시험점수가 잘 나왔다고 확신하는 사람, 시험날이 뭐죠? 먹는 건가요? 하는 사람. 그 중에서 나는 어떤 곳에 속했냐면은───당연히 후자 쪽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전날에 공부를 하긴 했지만 벼락치기로 해서 잘 외워지진 않는다. 순간기억력이 있다면야 몰라, 나에게 그런 초능력 따위는 없다. 머리에서 얼핏 떠오르는 단어들이나 밑줄 친 문장들이 고작이었다. 결과적으로 평범하게 벼락치기를 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평범한 점수를 받겠지. 그거뿐이었다.
 점수가 잘 안 나오면 또 집에 들어가서 한 소리 듣겠지만, 어디까지나 거기뿐인 이야기다. 어쨌든 학교는 일찍 마친다. 지긋지긋한 야자를 할 필요도 없고, 어차피 귀에 들어오지 않는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된다. 다시 말해 자유시간이다- 그 말입니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있자 옆에서 누군가가 날 불렀다. 아참, 그러고 보니 얘가 같이 있었다는 걸 깜빡했네.
 "신수현. 일찍 마치니까 그렇게 좋아?"
 "당연하지. 지긋지긋한 수업 안 들어도 되지, 야자도 빼고, 거기다 오후를 만끽할 수 있는 자유시간이 주어지니까."
 "그러니까 네 점수가 안 오르는 거야. 알아? 점수 안 오른다고 나한테 징징거리기 전에 혼자서 어떻게 하면 오를 수 있을까, 하고 한 번쯤은 생각해보는 게 어때?"
 "최유림…. 네가 우리 엄마냐. 시어머니냐. 오늘따라 옆에서 왜 이리 쫑알대는 거야?"
 그리고 우리 엄마도 그렇게 말 안 한다. 내 성적을 이미 포기하셨거든.
 내가 덧붙이자 유림이는 흥, 하고 홱 고개를 돌린다. 구불거리는 갈색 머리가 찰랑인다. 사실 유림이는 좋은 아이다. 아니, 어딜 보나 좋은 면 밖에 없는 아이다. 외모는 이목구비가 아기자기하고 키도 조금 작은 편이라 귀엽게 보인다. 성격도 쾌활하고 싹싹해서 모든 아이들에게 전반적으로 인기가 좋은 데다 선생님들께도 총애를 받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성적도 나름 우수한 편이고 사람들간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모습도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세간에서 말하는, 이른바 엄친딸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냐- 하는 말들이 나올 줄로 알고 있겠다. 확실하게 말하건대, 나는 신이 인간을 공평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에 찬성하는 바다.
 문득 하늘을 바라봤다. 먹구름도 아닌 것이, 하얀 털뭉치들이 잔뜩 끼인 게 뭔가 위태로워 보인다. 여름 치고는 꽤 선선한 날씨인 듯하지만 어차피 저 구름들은 순식간에 지나갈 것이다. 곧 있으면 쨍쨍한 햇볕이 날 맞이해주겠지. 에휴, 하고 나는 조용히 한숨 쉰다.
 그렇게 우리는 조용히 길을 걸었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유림이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어? 하고 소리를 낸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물어보려 했더니 유림이가 쏜살같이 어디론가 달려가 놓고는 사라진다. 뭐냐, 대체. 혼자서 빨빨거리고 돌아다닐 거면 내 옆에 붙지 말라고. 귀찮게스리….
 "왜 안 오는 거야…."
 5분 정도 제자리에서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자리를 뜨려던 차였다. 갑자기 옆에서 유림이가 가방을 덜렁거리며 달려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손에는 핫도그를 쥔 채. …설마, 내 거 하나 사주겠다고 그렇게 급히 뛰어간 건가?
 유림이는 내 앞에 오더니 숨을 몰아쉬고는 핫도그를 쥐어준다. 뭔가 부끄럽다. 원래 이런 건 남자들 몫인데 왠지 유림이에게 떠넘겨 버린 기분이다. 나는 일단 고맙다며 조심스레 받아 들기로 한다.
 "먹어 봐, 먹어 봐. 여기 핫도그 되게 맛있다?"
 유림이가 싱긋 웃으며 날 올려다 본다. …위험해. 하마터면 저 표정 때문에 깜빡 속아 넘어갈 뻔 했다…. 이 마녀가 당최 나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었는지 잊어버릴 뻔 했어. 그래도 일단 줬으니 안 먹을 수는 없고. 에라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도전해볼까.
 형용할 수 없는 불신감이 등골을 훑어가고 있는 가운데 결국 나는 케첩이 잘 뿌려진 핫도그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신이 인간을 공평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에 찬성하는 바다. 유림이는 분명 엄친딸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엄청난 결함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엄청 매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꺄핫! ★ 성공이다!"
 남 괴롭히는 걸 즐기는 것이다. 특히 나로 대상을 하여. 이 불여우는 실수로 했는지, 고의적으로 했는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교묘하게 상대를 농락한다. 그리고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보며 즐기는 해괴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혀를 뽑아내고 싶을 정도의 얼얼함을 느끼며 나는 눈물을 글썽거린다.
 "성공이다, 라니…. 미리 준비해두고 있었던 거냐! 그리고 어울리지 않게 별은 왜 붙여!"
 "당연하지- 오늘은 널 엿 먹이기 딱 좋은 날인 것 같았는걸."
 "언제는 엿 안 먹인 적이 있었냐…."
 "물론 있었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그것 한 번 참 끝내주는 비율이네!"
 "일주일이 7일이니까, 대략 14~29% 정도네? 많다!"
 "즉석에서 그런 거 계산하지마…!"
 "하지만 역시 즐거운 날일 때 괴롭히는 재미가 더 늘지 않아?"
 "S였냐…! 사티스틱 하다못해 아주 SSS구나!"
 "응! 사실 나, 채찍을 쥐어주면 당장이라도 널 때리고 싶을 정도로 S였어!"
 "그런 끔찍한 멘트를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하지 말아줄래?!"
 "에? '노예야 기어라!' 라는 멘트도 준비해뒀는데 왜?"
 "…평소에 그런 상상을 하고 있었던 거냐!"
 "덧붙여서 네가 노예가 된다면 일단 삼각목마에 태워서 내 발을 핥게 만들 작정이었어."
 "…내 존슨을 그런 식으로 위협하지 말아줄래?!"
 "존슨이 없어진다면 여러모로 편리해질지도 모른다고? 꺄아~! 생각만 해도 짜릿해진다!"
 틀렸어. 구제불능이야. 이건 뭘 해도 돌려놓을 수 없어….
 나는 주변의 공원으로 달려가 급수대에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대화재에 소나기가 내리는 듯한 상쾌함을 느낀 나는 겨우 입을 뗀다. 혀는 아직도 얼얼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가셨다는 게 느껴진다. 후우… 힘든 싸움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뒤따라오는 유림이를 노려본다. 유림이는 아직도 내가 베어 문 핫도그를 들고 있었다.
 우선 반격하기 전에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입가를 닦고 유림이에게 질문한다.
 "최유림. 하나만 물어보자. 그거, 어떻게 만든 거냐."
 범상치 않은 저 특유의 매운 맛. 보통 레서피가 아닌 이상 핫도그에서 저렇게 맵게 나올 리가 없다. 대체 어떻게 만들었길래 악마도 한 번 먹고 울며 도망갈 정도의 음식을 만들어낸 걸까?
 "이거? 뭐, 별 거 어려운 건 없었는데- 일단 먹기 쉬우라고 반죽에다 설탕을 넣어야 하는 걸 실수로 소금을 넣어 버렸어."
 이건 명백하게 일부러 한 거다. 내가 장담하지.
 "그리고 소시지를 끼워야 하는데 소시지가 다 떨어졌더라구. 그래서 별 수 없이 집안에 남은 초특급 HOT! 카레 소시지를 끼웠지."
 어떻게 하면 집안에 초특급 HOT! 카레 소시지 밖에 안 남게 되는 거냐….
 "그 다음에 별 거 없이 고춧가루 묻은 빵가루를 묻히고 기름에 튀겼어."
 어이. 별 거 없다면서 고춧가루는 왜 들어가는 거야.
 "마지막으로 케첩이 없길래 대신 너 몸에 좋으라고 직접 멕시코산 타바스코 소스라는 걸 뿌렸지. 그럼 이런 핫도그가 짜잔! 하고 완성-"
 음. 알았다. 이것으로 확신했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는 것이 느껴진다. 후우, 깊게 숨을 뱉는다. 오케이. 차분함을 되찾았다.
 "즉 너는, 작정하고 오늘 날 먹이려고 가져온 거구나."
 "응!"
 즉답하지마! 유림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당연한 걸 뭘 이제 와서 새삼스레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아무래도 안되겠군. 이번은 그냥 참고 넘어갈 수 없다. 이번에야말로 본떼를 보여주마.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유림이를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유림이가 굳은 얼굴로 뒷걸음질 친다. 남이 보면 치한이 아무 죄 없는 여고생을 덮치려 든다고 생각하겠지만 이젠 남의 시선 따위 상관없다. 난 이전에도 많이 당했단 말이다!!!
 "그렇게 내 몸 걱정이 된다면… 우선 네 건강부터 챙기시지!"
 "꺄아아아아아앗?!"
 내가 달려들려고 할 찰나였다. 눈을 질끈 감고 있는 유림이 옆에 어느샌가 누군가가 서 있다는 걸 포착한 것이다. 순식간에 나타난 제삼자의 등장 때문에 놀란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춘다. 자세히 보니 나와 유림이 또래쯤으로 되어 보이는 어느 여자아이였다.
 분홍 뿔테안경에 푸른색이 조금 감도는 흑색 머리를 질끈 묶어 올려놓고, 연구원을 연상시키는 팔랑이는 하늘색 가디건에, 청색 핫팬츠를 입고 있다. 게다가 무릎을 넘는 니삭스까지. 영락 없는 여자애라는 걸 자각한 나는 불러 세우기 위해 손을 뻗는다.
 그러나 내가 행동하기도 전에 뿔테안경의 소녀는
 "어디어디."
 라고 말하더니 단숨에 유림이가 들고 있던 '특제 신수현 엿 먹이기용 HOT! 도그'를 베어 무는 것이 아니겠는가. 순간 당황한 내가 뭐하는 짓이냐고 묻기도 전에 소녀는 혀로 자신의 입술을 훔치더니 감상평을 말하기 시작한다.
 "맛있군! 실로 매콤한 맛이 콜로세움에서 살사를 추는 열정적인 두 댄서를 연상케 만드는군. 혹시 그대는 궁중요리사 출신인가?"
 "…괴짜냐?!"
 덧붙이자면 콜로세움은 춤추기 위한 곳이 아냐! 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던 배틀로얄을 하던 곳이라고!
 유림이는 그제서야 자신 옆의 존재감을 느꼈는지 살짝 눈을 뜨고는 소녀를 흘깃 훔쳐본다. 뭘 그렇게 소심한 척 하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나로서는 잠잠코 유림이의 반응을 기다리기로 한다. 10초동안 멍하니 소녀를 지켜본 유림이는
 "누구야, 이 사람?"
 느린 반응으로 나에게 물어왔다. 나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쉰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 놓였는데 도움이 안되냐…. 평소 같으면 특유의 발랄함으로 남에게 있는 정보 없는 정보 다 빼내던 주제에. 아니, 내가 한 말은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다. 예전에 길 가다가 어떤 남자가 유림이에게 폰 번호를 건넨 적도 있었으니까.
 내가 모르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절레절레 거리자 유림이의 눈이 커진다. 왠지 반짝반짝 거리기까지 하는 게 불안한 미래를 예감하게 만든다. 설마….
 "설마…. 게에게 몸무게를 뺏겼다가 수현이가 도와줘서 다시 되찾은 수현이 여친?!"
 "중간과정을 너무 생략했어."
 "그럼 약혼자?"
 "…최종결론이냐."
 "와이프구나!"
 "정신이 어떤 은하계와 접속하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냐…."
 나는 가끔씩 진지하게 고민한다. 과연 최유림 이 자식을 정상인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것인지를.
 유림이는 또 날 골탕 먹이려는 수작인지 "그럼 잘해봐~" 하며 손을 흔들고는 내 반대편으로 사라진다. 이보세요. 분명 저거 내가 모르는 사람인 거 알면서도 일부러 저러는 거지? 그치?
 내가 멀리 아지랑이가 되어버린 유림이를 보고 있자 어느새 소녀가 내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꽤 작은 편이네…. 대충 내 어깨를 조금 넘는 크기인 것 같다. 소녀는 무지 건방지게 가디건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날 올려다 보고 있었다. 조금 예리해 보이는 바다빛 눈동자가 내 얼굴을 식별하듯 훑는다. 뭔가 기분이 팍 상한 내가 신경질을 낸다.
 "이봐…. 대체 뭐하는 사람이길래 쓸데없이 남 경계하게 만드는 거야?"
 그러나 소녀는 내 물음에 답하지 않는다. 다만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 눈 앞에 놓을 뿐이었다. 그것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요즘 디지털화 된 세상에 디카나 폰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필름에서 뽑아낸 사진을 보여주다니. 특이한 녀석이로세- 하고 심드렁하게 넘기려는 순간에
 "이게… 뭐야."
 나는 못 볼 걸 보고야 말았다.
 사진 속에는 내가 있었다. 그것도 평범하게 찍힌 게 아니다. 어쩐지 낯익은 얼굴의 7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의 팬티를 벗기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것도 얼굴을 잔뜩 붉힌 채로. 꼭 거친 숨을 내몰아 쉬며 헉헉거릴 것만 같은 표정으로.
 소녀는 사진을 집어 든 채 까딱거리며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거. 대략 이틀 전쯤에 찍힌 사진이다. 기억 나나?"
 이틀 전쯤이라면…. 아, 그래. 기억났다. 그때였을 것이다.
 야자를 째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공원에서 엄마를 잃어버렸는지 어떤 여자아이가 울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안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의외로 권선징악을 중요하게 여기는 남자라─이봐, 다들 그 눈초리는 뭐야?─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우는 아이를 진정시키고 엄마를 찾아주려 했다. 그런데 여자아이가 우는 이유는 엄마를 잃은 것 말고도 따로 있었다. 바로 길거리에서 참지 못하고 소변을 터트리는 바람에 팬티가 젖어버린 것이었다. 다행스럽게 치마를 입고 있었던 지라 치마에는 묻지 않았지만, 팬티는 살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기분 상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벗겨서 공중화장실에서 빨아줬을 터인데….
 그 순간의 장면이 찍혔다니. 대체 뭐하는 인간이야? 하지만 내가 묻고 싶었던 것과는 다르게 내 입은 횡설수설을 하고 있었다.
 "아, 아니…. 이건 내가 저 여자애를 도와주려고 했던 거지, 절대 나쁜 의도로 벗긴 게 아니라… 그러니까 빨려고 벗긴 건데…."
 …뭐하고 있는 거냐, 나. 왜 변명을 하는데 이상한 말들이 주저리 나오는 거냐! 이래서야 완벽하게 하드 페티쉬 변태 로리콘이잖아! 내가 했던 말을 전면부정 해야 했지만 머리가 새하얗게 백지화 되어버렸다. 눈알이 빙글빙글 돈다. 식은땀이 흐른다. 나 자신을 변호할 아무런 멘트가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나는 어버버버 할 수 밖에 없었다.
 소녀는 그런 내 반응에 신경 쓰지도 않는지 태연하게 말을 잇는다.
 "안다. 그대가 미아가 되어버린 여자아이를 도와주려다 어쩔 수 없이 그랬다는 거."
 "그, 그래! 바로 그거야! 이야. 제대로 이해해줘서 다행이네."
 말투가 조금 이상한 거 같지만 그래도 정상인이라서 다행이네. 나는 안도했다.
 응? 잠시만. 근데 사실을 다 알고 있으면 왜 굳이 저 사진을 꺼낸 거지? 보아하니 시청에서 내려온 사람이 나에게 용감한 시민상을 내려주려는 것도 아닐 테고. 아니, 애초에 왜 이 사진을 꺼낸 거지? 어딜 봐도 오해의 소지가 많아 보이는 장면의 사진을. …오해가, 많아?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한 나는 경악한다. 설마 하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려고 하자 소녀가 입꼬리를 살짝 올린다. 아무래도 불안하다. 안 좋은 사건이 터지려고 할 것만 같다. 이 자리에서 떠야 하는데 발걸음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식은땀이 계속 흐른다. 뭐지, 갑자기 차가워지는 이 공기의 변화는…? 마치 서리라도 얼 것처럼 주위의 공기가 일순간 식어버린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
 소녀는 어디까지나 사진을 흔들며 말한다. 그 목소리의 음색은, 어딘가 방금보다 더 잔혹하게 바뀐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걸 짐이 그대의 학교에 뿌려 버리면?"
 당연히 사건의 진실을 알지 못하는 아해들이 이런저런 소문을 내다가 결국엔 학교 측에서 징계를 먹거나, 아니면 어디서 나오는 곰탱이씨처럼 경찰에게 끌려가겠지. 별 거 아니네.
 …엄청난 일이잖아! 내 인생에 빅뱅이 찾아오는 엄청난 계기가 될 거다! 나는 소녀의 사진을 뺏으려고 손을 휘저으며 말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도와주려고! 했던! 거라고!"
 소녀는 잽싼 몸놀림으로 내 손을 요리조리 피한다. 덕분에 미묘하게 한 발의 차이로 사진을 놓치게 된다. 일부러 날 조롱하듯이 거리를 두며 소녀가 웃는다.
 "무엇이든 간에, 이 장면만 본다면 오해의 소지는 많아지겠지?"
 이윽고 제 풀에 지친 나는 숨을 고른다. 틀렸다. 이건 완벽하게 저 소녀에게 주도권을 뺏겼다. 저 사진은 정진정명 나에게 협박하는 것이다.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뿌려버리겠다는, 내 명예를 실추시키는 위협. 당초 내 앞에 나타났을 때부터 나는 이미 선택권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두 손을 든다. 그게 꽤 만족스러웠는지 소녀는 사진을 주머니에 넣고는 다시 건방진 자세로 돌아온다. 아마 이게 평상시 이 소녀의 서 있는 모양인 듯하다.
 소녀는 여전히 무미건조한 말투로 나를 칭찬한다.
 "그대는 참으로 상황판단력이 좋군. 마음에 들어."
 물론 그저 비꼬는 말로 안 들린 나는 가시 돋은 어조로 대답한다.
 "그걸 말하려고 날 찾아온 건 아닐 텐데. 원하는 게 뭐냐."
 그러나 대답은 뜻밖이었다.
 "그러하다."
 "……뭐?"
 "이걸 말하려고 그대를 찾아 온 것이 맞다."
 이게 무슨 헛소리야. 잠시 상황파악이 되지 않는 나는 기어이 말을 더듬기 시작한다.
 "어, 그러니까…. 날 비… 비꼬려고 온 거라고?"
 "비꼬다니. 가당치도 않은 말을. 짐은 그대를 칭찬하러 온 거다."
 "칭찬? 그게 칭찬이었냐?"
 "그러하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보통 악역 같으면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과 저것, 그리고 요것이다!' 라며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올 것이다. 그런데 이 소녀가 하는 말은 무엇인가. 칭찬하러 왔다고? 겨우 칭찬 하나 하는데 사진은 대체 왜 보여준 거냐? 내가 이제 아주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나…. 이놈이나 저놈이나 날 엿 먹이고 싶어서 아주 안달이 났구만, 났어. 나는 절대 널 믿지 않는다! 그러니 썩 꺼져버려!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입이 움직여 주지 않았다. 낯선 사람에게 칭찬을 들었더니 요상한 기분이 든 탓일까. 어색해진 분위기 때문에 선뜻 나는 입을 열지 못했다.
 소녀는 침묵하는 내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 번 끄덕이고는 그대로 내 뒤를 향해 걸어간다. 조용히 한마디만 남긴 채, 흔적도 없이 공원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다면 내일───그대의 학교 대강당 방송실에 있는 '네로의 연극사무소'로 찾아와라."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나는 멍하니 소녀가 사라진 방향만 멀뚱히 바라볼 뿐이었다. 소녀를 생각하자 어딘가의 폭군이 떠올랐다. 스산한 바람이 공원 문을 삐걱거리게 만들었다.


2.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황제님.

 '네로'라는 이름을 들으면 보통 다들 무슨 생각을 할까?
 검은 고양이?
 CD 굽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
 '악마가 울지도 모른다 4'에서 나오는 은발에다 악마의 팔을 달고 있는 그 형님?
 아니. 내 생각은 다르다. 내가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건 기억하고 있다. 고대 로마 5대 황제. 그야말로 '폭군'이라는 칭호가 잘 어울리던 사람이.
 마침 궁금하던 차에 옆에 친구 녀석이 있군. 나름 역사에 일가견이 있는 녀석이니까 뭐라고 말하려나. 제가 직접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야. 넌 보통 '네로'라는 이름을 들으면 뭐가 생각나냐?"
 "네로? 네로, 라고 한다면 역시 고대 로마 5대 황제일까. 왜 있잖아, 폭군으로 유명했던 그 사람."
 역시 이 녀석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나. 남들과 별로 다를 것도 없었군. 이로써 나도 일반인이라는 것이 명확하게 입증되었다. 행주질 하며 열심히 책상을 닦는 나의 친구, 그러니까 태현이는 묻지도 않았는데 술술 경력을 읊는다.
 "정식 명칭은 '네로 클라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제르마니쿠스'. 재위 기간은 54년부터 68년까지였는데, 처음에는 선정을 베풀었다가 차츰 본색을 드러냈다고들 하지. 그 중 가장 유명한 일화가 기독교를 박해하고 신도들을 학살했다는 일화일까. 이와는 반대로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었는데, 어떨 때는 자신이 직접 연극 배우로 나서기도 했대. 물론 사람들이 나가지 못하게 출입구를 봉쇄해 놓고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태현이는 하핫 하고 쾌활하게 웃는다. …상상 이상이구만. 이 정도 되면 학식이 있다, 정도가 아니라 소위 덕후 부류에 끼여도 될 정도다. 역사덕후. 음, 이 녀석에겐 딱 알맞는 호칭일지도.
 아무튼 역시 네로, 라고 하면 제일 먼저 폭군이 생각난다. 그럼 여기서 뜬금없지만 문제 하나. 만약───자신 또래의, 자신을 '네로'라고 칭하는 여자아이가 자신 앞에 나타나서 가당찮은 협박을 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거야 뭐…."
 "좀 기분 나쁘지 않겠냐? 다짜고짜 튀어나와서는 영문 모를 말을 해대잖아."
 그러나 태현이는 내 멱살을 잡는다. …이 자식, 쓸데없는 곳에서 또 오버액션 하고 있네.
 "멍청한 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일단 미소녀인지 아닌지부터 전제 조건에 내걸어야지!"
 이보세요. 나 지금 진지하게 묻고 있는 거거든. 내 주변인들은 하나 같이 도움 안되는 바보천치들이라 유일하게 너한테 묻고 있는 거거든. 제대로 좀 답해주라. 음, 잠깐. 그러고 보니 걔, 또래 애들에 비해서는 조금 예쁠지도….
 하지만 태현이는 내 말을 들은 채 만 채하며 멱살을 강하게 움켜잡는다.
 "그럼 당연히 좋아해야지! 미소녀가, 그것도 여자사람이, 친히 날 붙잡고 좋아해주겠다는데 기분 째지지 않겠냐?!"
 "너의 '좋아한다'의 의미는 협박이었냐…."
 "물론. 그보다 더한 애정 행각은 없지."
 "언제부터 협박이 애정 행각으로 변했는지 모르겠거든?"
 "서로의 약점을 찾아내, 사랑의 속박에서 도망가지 못하게끔 족쇄를 묶어두는 역할을 하는 거니까. 이거보다 더 로맨틱한 게 어딨겠냐!"
 "미안한데, 네가 좋아하는 그 로맨스 말이다. 지금 범죄라는 항목으로 구분되고 있어."
 "그러니까! 우매한 윗대가리들이 로맨스를 모른다고! 아, 정말. 내가 법무부에 있었더라도 이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너 같은 초희귀 마조히즘 변태는 안 가는 게 이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도 훨씬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진심으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녀석이 정치와는 연관이 전혀 없어서. 태현이가 행주를 붕붕 돌리며 호언장담한다.
 "걱정 마. 이제부터라도 정치 공부 시작해서 내가 반드시 이 법을 바꿔버릴 테다!"
 다 좋은데 물 좀 튀기지 마라, 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그러던지 하고 대충 대꾸한다.
 토요일. 막 오후 1시가 되어가는 나른한 시간. 우리는 대강당 방송실에 있었다.
우리라고 좋아서 학교에 온 게 아니다. 다만 보충할 게 있어서 수업을 들으러 온 거뿐이다. 뭐, 이렇게 말하긴 해도 결국 학교에서 강제로 시킨 거지만서도. 그렇다고 해도 나는 딱히 상관이 없었다. 보충수업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따라잡을 수는 있는 수준이니까.
보충수업이 다 끝난 나와 태현이는 곧바로 대강당에 위치한 방송실로 왔다. 우리 학교 강당은 다른 학교들에 비해 크기가 엄청 넓다─그래서 우리는 그냥 강당이라고 하기보다는 대강당이라고 부를 때가 많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어림짐작으로 세어 보건대 실로 2천명이 들어와도 뒷자리가 조금 빌 정도의 넓이에, 천장은 거의 끝이 안 보일 정도다. 과연 이사장이 소강당을 지을 필요가 없다고 자부할만했다.
 우리는 스테이지가 펼쳐지기 전에 위치한 계단을 타고 2층에 도착했다. 올라오자 펼쳐진 광경은 과연 여기가 강당 내부인지 아니면 별관인지 헷갈릴 정도의 넓은 복도였다. 태현이의 말에 따르자면 1층에 예민한 기기들을 둘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2층을 별개로 만들어 방송기기들을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이쯤 돼서 나는 이사장이 얼마나 많은 돈지랄을 했을지 짐작이 갔다.
 사실 이 방송실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도에는 CCTV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태현이야 원래 방송부원이라고 치더라도 내가 징계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에 찾아온 건 다름 아닌 이유가 있었다.

 「내일───그대의 학교 대강당 방송실에 있는 '네로의 연극사무소'로 찾아와라.

 나에게 전언을 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당최 처음 보는 얼굴이라 무지 의심되는 곳이 한두 개가 아니다. 무엇보다 수상한 사진을 찍어 가져와, 나에게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처자다. 이렇게 되면 함정에 말려드는 기분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도 현실이다. 지금 주도권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형국이니. 선택지가 하나 밖에 없다면 플레이어는 그곳을 향해 가야 하는 셈이지. 그 어떤 고난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말이야.
 "어때. 이 정도면 깨끗해진 거 같지 않냐?"
 "음. 그러네."
 제법 열심히 닦았는지 태현이는 이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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