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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시작된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글쓴이: SKYnSEA
작성일: 12-07-28 16:30 조회: 2,407 추천: 0 비추천: 0
『시작하는 이야기』

영화 중에 《피워 주어서 고맙습니다》 란 영화가 있다. 그 영화는 러닝 타임 내내 화제(話題)에 대한 찬반론자(讚反論者)들의 첨예한 대립이 이어져서, 그 영화의 주제가 그 찬반의 대상인 것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마지막에 가선 ‘그것을 어떻게 할지는 당신들의 자유이고, 중요한 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는 것’이라며, 단지 그 한 문장을 전달하기 위해서 그 긴 영화를 만든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이런 내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하는 말 중에 ‘난 말을 한다.’ 란 대사가 있다. 말 하나로 여태까지 모든 것을 해 온 주인공은 결국 극 중 최고의 갈등마저 말로써 해결하며, ‘김일은 박치기하고, 유영철은 살인하고, 난 말을 한다.’고 하고는, ‘누구나 한 가지씩 재능은 있기 마련이다.’라며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뿐이라는 식으로 한 번 씁쓸하게 웃어준다.
얘기가 좀 멀리 돌아서 가버린 느낌인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그 영화에서 말하는 것처럼 누구나 한 가지쯤 잘하는 것이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내 경우를 예를 들어볼까. 나는 내가 스스로 깨닫기 전까진, 정말로 특별할 것 없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흔한 사람이라고 줄곧 그렇게 생각해왔다.
외모가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다가도, 멋진 외형의 타인과 비교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고, 어느 특정 과목에 자신이 있다가도, 정작 보면 나보다 위의 세계는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었다. 운동으로 시선을 돌려도, 나는 구하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던 그런 클래스였고, 학업 이외의 상식이나 잔머리 등의 지식을 봐도, 나보다─그런 쪽으로─ 머리를 훨씬 잘 쓰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우물 안 개구리의 상황은 겪어 보지 않았지만, 덕분에 내가 잘난 사람이란 생각을 해보기는커녕, 난 자신을 스스로 별것 없는 놈 취급을 했던 것이 지금까지 살아온 일상이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런 나에게도 남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고 하는 그런 전개는 불가능할까? 다른 사람과 견줄 수도 없는, 나만의 뭔가가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난 그 순간까지, 나 자신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


1


……나 대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너 방금 엄청나게 빨랐던 거 알아?”
“살았으니까 다행이지. 그래도 좀 조심하지 그랬어.”

이 녀석들─그러니까 방금까지 날 기다렸던 친구들─의 말에 따르자면, 내가 문자 그대로 ‘눈 깜빡할 사이에’ 여기까지 달려왔다고 한다.
하지만 난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위급할 때 초인적인 힘을 낸다는 건 들어봤지만, ─난 페달을 밟지 않았는걸?

“……인성아.”
“왜?”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오고, 인성이에게 부탁했다.

“나 한 대만 때려 줘.”
“알았어.”

일말의 의구심도,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주먹을 날렸다.

“억!”

맷집에는 제법 자신이 있었는데, 허망하게도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래도 일단 아픈 걸로 보아선 지금 상황이 꿈은 아니구나.

“현서야.”
“응?”

누워 있는 나를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현서는 날 일으켜 세워 주고 있었다.
일어나서 옷에 묻은 것을 털어내며 현서에게 물었다. 인성이가 터는 것을 도와준다.

“내가 그렇게 빨랐어?”
“방금? 그렇지. 순식간이었어.”
“순식간이었다고……?”

아니다. 그런 속도 같은 물리적 개념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속도가 아니라,─조금 추상적이지만─ 그냥 자리가 바뀌었단 느낌이었다.

“아냐. ……그러니까, 좀 다른데…….”
“얘가 충격이 꽤 컸나 보네?”
“그러게.”

‘죽음’이란 것과 접촉의 일보 앞까지 갔던 것에 대한 후폭풍일지, 아니면 그 뒤에 내가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의심 때문일지, 공황상태에 빠진 기분이었다.

“……?”

등에 살짝 떠밀린 듯한 느낌이 들어서 뒤를 돌아보니, 현서가 날 보고, 기운 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웃고 있었다.

“지금 가슴이 두 근 반 세 근 반하고 있다는 건 알겠지만, 일단 이동하자. 이번 전차 놓치면 한 30분은 기다려야 해.”
“아, 응.”

이제서야 다리가 풀린 듯, 떨리는 걸음 걸이로 하나 둘 걸음을 옮기는 내 모습에, 현서와 인성이는 힘 내라며 내 등을 밀고 있었다.



2



“장민호… 장민호……! 어떻게 네가 자이언츠를 배신할 수 있어!”

경기가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길. 경기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건만, 인성이는 아직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기도 해. 만일 우리 팀에서 이적한 선수가 우리 팀을 상대로 역전 쓰리런(3점 홈런)을 날린다면 내 경우에도 정신에 이상이 오겠지. 특히 그 선수가 “난 영원히 OO맨이다.” 같은 말을 하고서 이적할 경우는 더더욱(그 선수를 응원하는 것과는 별개다).
……물론, 난 좋다만.
경기의 9회만 짤막하게 말하자면, 상황은 정규 이닝의 마지막인 9회 말 원 아웃에 주자는 1루와 2루. 스코어는 5:3의, 자이언츠가 2점 리드한 상황. 자이언츠는 자신들의 마무리 투수(Closer Pitcher)인 김가율을 마운드에 올렸다.
그 상황에서 김가율은 우리 팀─라이온즈─의 선두 타자인 2번 이형욱에게 중전 안타(중견수 앞 안타), 3번 박성빈에게 4구(Base on Balls)를 주고 강판을 당했다(김가율은 최근 부진이 계속되었고, 자이언츠는 오늘마저 지면 스윕을 당한다).
이어지는 좌타자 라인인 4번 최영우와 5번 채대인을 상대하기 위해, 양호감은 이미 전 2경기를 전부 나왔던 강형직을 다시 한 번 마운드로 올렸고, 강형직은 타격감이 최고였던 최영우를 삼진(Strike Out)으로 처리하고 한숨을 돌렸으나, 라이온즈는 이내 좌투수 강형직을 상대하기 위해 투입한 대타, ‘먹튀’ 장민호가 3점 홈런을 때리는 역전극을 선보였다(최종 스코어 5 : 6 = 자이언츠 : 라이온즈).
라이온즈의 FA 포수는 죄다 먹튀냐고 생각했던 나에겐(라이온즈 팬), 이제부터라도 살아나는 걸까란 희망을 품게 만들고, 인성이(자이언츠 팬)의 가슴에는 비수를 꽂는 한 방이었다.

“분명 아직 정대연(우완 언더핸드)이 남아 있었는데, 어째서 계속 강형직으로 간 거냐고!”
“정대연은 이번 주만 4경기에 나왔었잖아. 그 이상은 힘들지. 4번째 경기에선 블론 세이브(세이브 실패)까지 먹었는데. 애초에 문제는 불 지른 김가율이지. ……이렇게 보니까 강형직만 죽어나가네.”
“그래! 김가율이 문제야!”

사랑해요. 오승완.
그렇게 경기 내용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얘기를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집에 가기 위해서─ 갈라져야 할 장소가 나왔다.

“후……. 그래. 아직 경기는 많이 남아 있으니까. 잘 가라!”
“집에 갈 땐 조심해서 가고.”

인성이는 인제야 경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며, 현서는 낮의 그 일을 언급하며 내게 조심하라며 인사했다.
나도 그 둘에게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갔다.

“너희들도 잘 가. 아참? 인성아, 어쨌든 우리가 스윕했다!”
“이 녀석?!”

이윽고 완전히 등을 돌려 각자의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3




시간은 9시를 지나, 어느덧 10시를 향하고 있었다. 길거리에 보이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더 줄어가고 있었다. 이 정도 인파면 슬슬 자전거를 타고 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차……. 죄송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서 자전거와 함께 멈춰 서니, 별안간 뒤에서 누군가가 자전거의 뒷바퀴에 부딪힌 것인지, 자전거가 흔들렸다.
사과하며 뒤로 돌았다.

“아……!”
“아냐. 괜찮아!”

아름다운 파란 눈이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내가 미소 짓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왜 뒤에서 그냥 걷고 있던 거야? 알았으면 같이 갔을 텐데! 뒤돌기 전까지 전혀 눈치 못 챘어.”
“나도 방금 막 안 거야. 몰래 다가가서 놀라게 해 주려고 하기 직전이었는데…….”

그 순간 불어온 바람이 그녀의 긴 머리칼을 공중에서 희롱했다. 머리를 정리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어째서일까?
그녀의 이름은 하예진. 인성이나 현서보다 더 옛날인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낸 아이다.
예진이는 한국인 아버지와 이탈리아인이신 어머니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데, 어떻게 보면 한국인 같이 보이지만 눈동자의 푸른색과 하얀 피부, 키는 이탈리아인인 어머니의 그것을 물려받았다고 해서 가만 보면 정말로 이국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과거 유치원 시절 예진이가 내가 다니고 있던 그 유치원에 오고 얼마 안 됐을 때, 얼마 동안 그 생김새 탓에 다른 아이들이 어울리길 꺼리던 시기가 있었는데, 내 기억 속에 있는 당시의 나는 그 이질감에서 오는 아름다움에 매료돼서 나도 모르게 다가간 것이 친해지게 된 계기였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부터 반했던 거지.

“어……? 뭘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 거야~?”

예진이가 자신의 치마를 약하게 털어내고 있는 것을 보며, 내가 갑자기 멈춘 것에 대해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을 때, 예진이는 그런 날 보고는 장난기를 품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 아, 그게…… 보고 있던 게 아니고! 더러워진 게 미안해서 그런 건데……!”

추궁의 의도가 아니란 건 알면서도, ‘그게 내 착각이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바보 같이 허둥대고 만다.
예진이는 그런 내 모습이 재밌는 건 지 소리내서 웃었다.

“에이~!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어! 아무 말 안 하고 몰래 뒤에 있던 내 잘못이지.”
“아냐. 자전거를 타고 갈 생각이었으면 내가 일단 구석으로 가서 멈추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하는 걸.”

예진이가 사고를 일으키고 나 때문이라고 하면 나 때문인 것이고, 그게 아니라고 해도 나 때문인 것이다. 그게 옳은 것이다. 아무렴!

“하하……!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당연합죠! 뭐가 어쨋든 제 잘못이고, 제 잘못이며, 그래서 제 잘못인 겁니다!”

나는 기합에 찬 목소리로 세상의 진리를 역설했다. 예진이는 곤란한 것 같기도, 재밌어 하는 것 같기도 한 그런 표정과 함께 그저 웃고 있었다. 나, 너무 바보 같은가?
예진이는 내 자전거의 뒷좌석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럼, 나 집까지 태워 줘.”
“……어?”

네? 뭐라고요?

“네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런 기회는 좀처럼 없을 테니까……. 그냥, 나 데려다 주면 용서하는 걸로 할까?”

─아니 이 무슨 달콤한 말?!

“……정말로 태워도 돼?”

내가 잠시 상황 파악에 늦어 그러고 있으려니, 예진이는 씩 웃었다.

“싫어?”
“아니! 그럴 리가!”

예진이와 알고 지낸 건 10년이 넘었지만, 이런 식으로 한 자전거를 탄다는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왜냐하면, 내게 자전거를 가르쳐준 게 예진이었는 걸! 혼자서 갈 때나, 둘이서 어디를 갈 땐 항상 자전거 가지고 나왔고! 어째서 오늘은 자전거를 타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즈음 베네치아에 계실 부모님! 전 한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



4


“아~, 야구 보고 온 거야? 결과는 어떻게 됐어?”
“‘그’ 장민호가 역전 쓰리런을 날리더라. 하하!”
“장민호가? 잘 됐네! 진혁이, 너 어제까지만 해도 장민호 얘기만 나오면 먹튀, 먹튀라 말하고 그랬었잖아?“
“그걸로 감을 잡아서 다시 일어날지, 아니면 그냥 어쩌다 나왔던 것인지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지. 타격에서 힘들다면 일단 리드라도 감을 잡는다면 좋을 텐데……. 방망이만 보자면 지명(지명타자, DH, 투수 대신 타격에 임하는 선수, 수비는 하지 않는다)에서 모향기가 잘 해주고 있으니까.“

자전거에 탄 그 직후, 예진이에게 어째서 오늘은 자전거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었는지 물어봤더니, 알고 보니 오늘 우리 지역에 비가 오기로 예보가 나왔었다고 한다(경기장 주변 날씨만 신경 써서 몰랐다). 예진이는 비가 올 것을 생각해서 자전거를 집에 두고 걸어서 도서관을 갔는데, 다시 밖으로 나와서 보니 비는커녕 하늘은 보란 듯이 쾌청해서 꽤 황당한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 후, 버스를 타기 위해서 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기던 도중에, 자전거를 끌고 가고 있던 나를 발견하게 됐고, 그 뒤는 내가 겪은 그대로였다.
하하! 어떤 놈─나─은 진공 열차까지 타서 야구 보러 가고, 이 아가씨는 비가 온다고 들었는데도 걸어서라도 도서관을 가다니! (난 비가 온다는 소리만 들어도 집에서 안 나가는 사람이라.)

─나도 도서관갈 걸! 예진이랑 앉아서 있을 수만 있다면 온종일 도서관에만 있어도 좋아!

“이렇게 진지할 땐 꼭 다른 사람 같은데……, 으앗!”

내 뒤에 누군가를 태운 상태로 자전거를 모는 행위가 익숙하지 않았던 탓에, 도중에 있던 요철을 밝아버린 순간, 자전거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잠깐 허둥지둥 몰고 말았다.

“미안해~! 누굴 태우고 다녀본 적이 많질 않아서, 하하!”

당황한 듯한 예진이가 내 등에 바짝 붙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묘하게, 백허그 같은 느낌이 나쁘지 않은데?! 아니 아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좋긴 좋네.

“아, 아니야! 바보처럼 어중간하게 있던 내 잘못이지! ……정말로 바보같이, 왜 떨어져 있었던 거야…….”

예진이가 한껏 더 강하게 잡는 것이 느껴진다. 필요 이상으로 힘이 들어간 것 같기도 한데, 방금의 흔들림에 적잖이 놀랐던 것 같다.
지금 이 상황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꽤나 마음에 들지만), 이런 모습을 보니, 무조건 안전에 조심이라고 마음 속으로 단단히 결심하게 된다.

“저기, 예진아?”
“응…?”
“이제 흔들리는 거 없이, 안전하게 잘 가고 있으니까, 조금만 여유롭게 있어도 될 것 같은데…….”

조금 더 길을 나아가니, 시가지로 들어와서 부터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예진이를 뒤에 태우고 갈 대부터 드문드문 시선이 오는 것은 느끼고 있었는데, 그 시선이란 게 사람이 증가하는 것을 따라서 비례 증가하다보니 이젠 옥 죄는 듯한 착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예진이가 평범한 미인이 아니란 건 유치원 때부터 느끼고 있던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평소에 둘이서 어딜 가고 있을 때도 시선이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설마 뒤에 타고 있는 효과일까? 하긴, 내가 말하긴 뭐 하지만 이건 껴앉고 있는 거라고?

“─싫어.”
“응?”
“싫어. 이러고 있을래. 이게 마음이 여유롭고 편한 걸.”

예진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마치 아직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내게 전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내 등에 자신을 더욱 더 밀착해왔다.
난 그 느낌에 스스로도 무슨 표정을 할지 알 수 없어서, 표정에 변화가 생기지 않도록 어떻게든 표정 유지를 위해 애쓸 뿐이었다.




“여기까지 데려다 주지 않아도 됐는데. 돌아나가기도 복잡할 텐데…….”
“그럼 너 혼자서 여기까지 걸어 들어가야 했단 얘기잖아. 복잡해도 바로 앞이니까, 기왕 하는 거 끝까지 해야지.”
“─바보. 자기를 생각해야지.”
“날 생각해서 이렇게 한 거야.”
“하여간에, 참 손해 보는 성격이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얼굴은 웃고 있었다. 응. 이 웃음만 볼 수 있다면야. 설령 산꼭대기에 집이 있다고 하더라도 엎고 올라갈 수 있어.
10시(PM)가 가까운 시간. 나는 예진이의 집 앞에서 예진이와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헤, 헤어진다고 표현하니까 기분이 괜히 슬퍼지는걸? 괘, 괜찮아. 아직 ‘사귀지도 못하고 있으니까’, 헤어질 일은 없어!

─이런 젠장! 되려 더 슬퍼졌잖아?!

“저기, 나…… 갈게?”
“응.”

그렇다. 이제 예진이가 뒤돌아서 엘리베이터를 향하는 순간, 오늘은 다시는 서로 마주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난 또 혼자서 이런저런 망상이나 하겠지.

“저기……!”

그런 헤어짐이 예정돼 있었을 텐데.

“나─ 정말로 갈게?”
“아……, 응.”

얼라이요? 어째 내 예상과 다른 전개인데?
혼자 멋대로 하고 있던 미래 예상을 관두고 ‘지금’으로 시선을 옮겨보니, 예진이는 갑자기 뭔가 불만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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