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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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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그대와 함께 하는 여정
글쓴이: 메리사
작성일: 12-07-26 21:40 조회: 2,367 추천: 0 비추천: 0

Prologue

대학수학능력시험. 통칭 수능.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어린 아이들을 죽을 때까지 옭아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벤트. 이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암기력 테스트가 아닌 사고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이라고 잘난 사람이 말했지만 누가 저 말을 믿을까.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총 12년의 시간을 들여 단 하루만에 승부를 봐야 하는 일생일대의 이벤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능의 점수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미래와 반려자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벤트. 이는 매우 엄청난 압박을 학생에게 부여한다.

혹시 12년동안 열심히 했는데 떨어지면 어쩌지……라는 생각에서부터 온갖 잡생각이 가득 난다. 그도 그럴 것이, 12년이라는 시간동안 공부한 것을 단 하루 만에 본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안이하고 어리석은 생각이다. 문제는 그런 어리석은 이벤트를 몇십년이고 계속 해온 사회도 문제라는 거지만.

하지만 만약 수능을 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 간에 수능을 친다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엄청난 타이틀을 얻게 된다.

그래, 「수능 끝난 고3」이라는 최강의 신분─타이틀─을 말이다!!

12년동안 오직 수능을 위해 노력했고 모든 청춘을 쏟아부었던 우리는 그 대서사시가 끝나자마자, 실로 '자유'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신분이 된다.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든, 술을 마시든─물론 술을 대놓고 마시는 것은 바보짓이니 이런 건 적당히 눈치를 봐가면서 하자. 기껏 얻은 자유를 술 한 잔 때문에 놓칠 수는 없지 않은가?─태클을 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뿐인가? 수능이 끝난 학생들을 위해─그렇게는 말하지만 사실 돈을 펑펑 쓸 수 있게 된 학생들의 부모로부터 돈을 갈취하기 위한 세일 이벤트다─대학 준비를 빌미로 세일을 하는 판매점.

수능이 끝난 학생들에게 자유를 만끽하게 하기 위해서 수험생 특별 할인 세일 등으로 여러 가지를 즐길 수 있게 되는 권리를 얻게 된다. 오오, 경배하라 수험생! 우러러 보거라, 수능! 이 얼마나 멋진가?

12년이라는 시간동안 얽매였던 우리의 자유는 지금, 여기서 부활한다!

지금 우리는 외친다! 이 자유! 이 권리! 이 쾌감!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공부에서 벗어난 지금, 우리는 자유를 손에 쥔 채 이 세상을 만끽하겠다고!!

그리고 그런 쾌감과 즐거움을 느끼며 횡단보도를 건너던 나를 멋지게 들이박은 자동차를 마지막으로, 내 의식은 아주 빠르게. 소리소문없이 육체에서 날아갔다.

2011년 11월 24일.

「수능 끝난 고3」이라는 최강의 신분을 지닌 가련한 소년 하나가 골로 갔다.

'……요…….'

어디선가 소리가 들린다. 이상하네. 마치 울려퍼지는 스피커 같아.

'얼른 일어나세요…….'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일어나세요, 용사여……였던가?

'얼른 안 일어나면 골로 갑니다…….'

"……뭣!?"

난 마지막 말을 듣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뭐? 골로 간다고? 아니지, 이건 아니지!

자는 사람 깨우는 데 골로 간다니? 그런 불경한 말을! 난 이제 막 수능을 마친, 앞날 창창한 고3이란 말이다!

일어나자마자 난 잠시 내 눈을 의심해야했다. 회색이다. 온 공간이 회색이었다.

차도도 없다. 사람도 없다. 건물도 없다. 마치 초원처럼 넓게,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회색 공간을 본 나는 중얼거렸다.

"……What The ●uck?"

"욕은 안 쓰는 게 좋아요."

"헉쓰!!"

갑작스럽게 들린 목소리에 남자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펄쩍 뛰었다. 얼른 뒤를 돌아봤다.

검은 한복……아니, 분명 한복과는 다르지만 전통복을 입고 있는 한 소녀가 서 있었다.

머리에 쓴 것은 분명……'갓'이라고 했지? 검은 갓에 검은 옷. 뭔가 불길했다.

"누, 누구세요?"

"아, 제가 보이시고 목소리가 들리는 거라면 확실히 골로 가셨네요."

"예, 예?"

너무 갑작스러운 시츄에이션이라 말을 더듬었다.

"음, 어……우선 본인 확인부터. 신세린 씨죠?"

"예? 어……그, 그런데요?"

"와아, 이름 예쁘시네요. 남자분인데 이런 이름은 처음인 것 같아요."

갓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소녀로 추정되는 목소리와 체격. 나랑 비슷한 것 같은데…….

"저, 누구세요? 그리고 여기 어디에요? 왜 제가 여기 있어요?"

"본인 확인이 끝났으니까 질문에 대답드릴게요. 저는 당신을 맡게 된 저승사자 한아영. 그리고 여기는 산 자와 죽은 자가 생을 심판받는 잿빛세상. 그리고 당신이 여기 있는 이유는 골로 갔기 때문이에요."

"……예?"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죽었다구요."

……

…………

………………

"……예?"

대체 난 지금까지 '예?'라고 몇 번이나 질문을 한 거고 대답을 한 걸까? 한가한 사람은 세어 봐라. 난 안 셀 거다. 내 바보 같은 대답과 태도에 한아영이라 자신을 소개한 소녀는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갓을 들자 난 아주 순간이지만 숨을 쉬는 것을 잊어버릴 뻔 했다.

회색빛 머리카락과 회색빛 눈동자. 마치 TV에나 나올 것 같은 하얀 피부와 아름다운 이목구비. 그걸 보고 난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 소녀는 인간이 아니다!!

"허, 허억……!!"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뭐지? 아니지, 잠깐만 신세린. 야, 회색머리카락에 회색 눈동자라니. 이게 말이 될 법하냐? 그야 물론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를 코스프레하려고 컬러 렌즈 같은 것을 쓰지만 이건 아니다! 아무리 봐도 풍기는 분위기가 다르다. 게다가 저 옷은 대체 뭐고 여긴 뭐야?

"이 옷은 한복이 아니라 두루마기에요. 그리고 말씀드렸듯이 여기는 산 자와 죽은 자가 생을 심판받는 잿빛세상. 당신은 죽었어요."

"……주, 죽어요? 제가요? 그, 그럴 리가요. 전 분명히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말을 잇지 못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어떻게 됐지?

"죽었어요. 아, 이건 좀 심하네요. 죽었다기보다는 가사상태.

그러니까 아직 살아는 있지만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는 않은 상태를 뜻하는 거에요.

의학드라마 같은 곳에서 많이 들어봤죠?"

무슨 개소리냐? 가사상태? 죽어? 내가? 고3이?

"참 운도 없었어요. 신호를 무시한 자동차가 용맹하게 돌진해 박은 게 당신이라니.

여담이지만 그 자동차는 이제 막 새로 뽑은 신형이었던 것 같아요."

신형? 무시해? 용맹하게 돌진해 박은 게 나라고?

"지금 당신은 중환자실에서 일각을 다투는 상태가 되었고 부모님으로 추정되는 분들도 병실 밖에 있네요."

"……잠깐만요. 제가……죽었다고요?"

더 이상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바로 입을 열었다.

"예. 정확히는 가사상태. 살아는 있지만……"

"그런 건 됐어요! 제가, 제가 죽었다고요? 가사상태라고요?"

"예."

검은 두루마기와 갓을 쓴 소녀는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할 뿐이었다.

"……하. 하핫! 하하핫! 어, 그럴 리가 없어요! 이거 무슨 몰래 카메라죠?

아씨, 성현이 자식. 이런 데에 날 끌어들이고! 빌어먹을! 어디 있어! 야, 한성현!!"

"한성현이라면 친구분을 말하는 거겠죠? 그 분도 중환자실 밖에 있어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걸 보면 친한 친구분이셨던 것 같네요. 좋은 친구를 두셨어요."

무슨 개소리냐. 대체 무슨 개소리냐?

"아마 믿기 어려울 테니까 직접 체험시켜드릴게요."

소녀의 말이 끝나고 눈을 깜빡거렸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어딜 봐도 환자가 있을 법한 공간.

그 공간에 누워있는 것은……나다! 나야! 정말 나다!

"……아, 아앗! 세, 세상에! 아냐! 저건 내가 아냐!"

"아뇨, 저게 당신이에요. 저게 한 때 신세린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신세린이라는 인격체로

활동하던 당신의 육체죠."

"아냐! 저건 내가 아냐! 하, 하아! 으, 으아앗!"

환자실의 문을 향해 뛰쳐나갔다. 문을 열고 나가야 해!

이 미친 공간에 더 있다간 나까지 미칠 거다!

그렇게 결심한 나는 문을 통과해 「밖으로 나갔다」.

"……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어. 난 다시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히, 히익!"

무, 문에 손이 닫지 않아! 마치 유령처럼 통과하는 자신의 손을 보고 난 기겁을 했다.

"말씀드렸잖아요. 당신은 지금 영혼상태. 그런 이승의 장애물에 제한을 받지 않아요.

아, 저기 계시네요. 당신의 부모님과 친구분."

"어, 엄마! 아빠!! 성현아!!"

멀지 않은 곳에 설치된 의자에 앉아 침통한 표정을 짓고 계신 부모님.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눈이 퉁퉁 부었고 밑에는 물이 가득한 성현이.

"아빠! 엄마! 저에요! 세린이에요! 세린이에요! 세린이라니까요!!

야, 한성현! 나 안 죽었어! 야! 야! 왜 대답을 안 해! 왜 날 안 보냐고!"

"소용없어요."

냉정하게. 너무나 무미건조하게 대답하는 소녀를 향해 난 크게 외쳤다.

"대체 뭐야 이건!! 뭐냐고!!"

"……."

"왜 엄마랑 아빠가 날 안 보는 거야! 왜 성현이가 내 말을 못 듣는 거냐고!!"

"……뒈졌으니까요."

뭔가 뜨거운 게 내 볼을 타고 밑으로 떨어졌다. 나 울고 있나?

"지금 신세린 씨는 영혼상태. 그러니까,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게 없어요."

"아, 아아……!!"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냐! 이건 현실이 아냐! 악몽! 있을 수 없는 현상!!

"현실도피는 추천하고 싶지 않네요. 이건 현실이에요. 명실상부한 현실이죠."

"아냐……!! 아니라고!!"

"정말 유감이지만……신세린 씨. 현재 당신은 영혼상태. 중환자로서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에요."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와 함께 내가 있던 곳은 병원에서 다시 그 회색공간으로 바뀌었다.

"……아, 냐……. 난, 아직. 아무것도 못 했어……."

"예. 하지만 죽은 사람 모두 같아요. 아무것도 못 하고 죽었죠."

"난……안 죽었어. 안 죽었다고……!!"

"중환자실에 계신 육체는 사망에 가까운 상태에요."

"닥쳐……닥치라고!!"

난 날 향해 친절하게 설명하는 미소녀에게 소리쳤다.

죽었다고?

뒈졌다고?

골로 갔다고?

자동차에 받혀서?

고3이? 꽃 같은 이팔청춘이 사라져?

"으,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앗────!!!!"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울려퍼지는 내 울음소리.

그저 날 바라보고 있을 뿐인 검은 옷의 미소녀.

그저 난 울부짖을 뿐이었고, 소녀는 날 바라볼 뿐이었다.

"이제 우실 건 다 우신 것 같네요."

"……."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는다. 믿기지 않는다. 내가 죽었다니.

그럼 난 어디로 가지?

"……난……어디로 가는 거에요?"

"예?"

이제 눈물은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궁금한 것이 있었기에 난 내가 갈 곳을 물어봤다.

흔히 말하는 천국과 지옥. 비록 짧은 생이라지만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겁이 났으니까.

"설마……지옥 가는 거에요?"

"아뇨."

이건 놀라웠다. 내 인생도 아주 나쁘게 살아온 것은 아니었구나!!

"처, 천국에 가는 거에요?"

"아뇨."

"……예?"

뭐야, 잠깐만.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니라면 어딜 간다는 거야?

"연옥에 가는 거에요?"

"아뇨."

"그럼 대체 어딜 가는 거에요!? 천국도 아냐, 지옥도 아냐. 게다가 연옥도 아니라면 대체 어딜 간다는 거에요!? 설마 저 죽은 후에 무슨 시험 받는 거에요?"

무서웠다. 공포가 엄습했다. 죽은 것도 무서운데 죽은 후에 또 고통을 겪어야 한다니.

싫다, 그런 건 싫다! 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일 뿐인데 왜! 어째서!?

"……전 어디 간다고 말씀드린 적은 단 한 번도 없는데요."

"아, 안 가면……저, 어, 어떻게 되는 거에요?"

"후우……정말이지. 우선 설명드릴 테니까, 거기 편하게 앉으세요."

난 OTL포즈에서 그녀의 말에 따라 편하게 다리를 편 채 앉았다. 윽, 눈물 묻었다.

"우선 다시금 소개할게요. 제 이름은 한아영. 저승사자입니다."

그건 안다. 물론 믿기지는 않지만.

"전 2011년 11월 24일. 교통사고로 인해 가사상태이신 신세린 씨를 담당하게 됐습니다."

무척 사무적인 말투에 다시금 깨달았다. 난 정말 죽었구나.

"현재 신세린 씨는 고등학교 3학년의 과정을 수료한 청소년입니다. 이 경우 교통사고라는 요인으로 인해 현재 시각으로 보자면 중환자실에서 일각을 다투고 있는 상태에 있습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조금 전에 봤던 그 광경이. 나와 함께 살아온 부모님이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시고, 내 모습을 인식하지 못하시는 공포와 충격의 시츄에이션은 아마 영원히 못 잊을 것 같다.

"그러나 명부에 의하자면 신세린 씨는 현재가 아니라 오랜 후에 사망하실 예정이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몇 살까지 살다 죽어야 했어요?"

"죄송하지만 명부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어차피 상관없잖아요……죽었는데."

"아뇨, 정확히는 가사상태죠. 잿빛세상에 오는 사람은 주로 두 부류입니다. 신세린 씨와 같이 육체는 미약하나마 살아있는 상태에서 영혼만이 여기에 오는 경우. 그리고 육체가 사망하고 영혼이 죽음을 맞이하여 오는 경우. 신세린 씨는 전자죠."

"그럼 뭐가 달라지나요, 어차피 죽었는데."

"예, 죽었죠. 하지만 '완전히' 죽은 건 아니에요."

"……네?"

"신세린 씨와 같은 경우, 불의의 사고 및 본인의 본래 남은 생애. 그리고 적은 나이라는 것에 의해 선처가 내려져 다시금 영혼이 돌아가 가사상태에서 소생을 하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저어, 진짜 죄송한데……쉽게 말해주세요. 어려운 말은 몰라서요."

그러자 아영이라는 소녀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러게 어려운 말은 왜 쓰냐, 쉬운 한국어 놔두고.

"'다시 살아나실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거에요."

……다시 살아날 수 있어?

"그, 그럼 저 다시 살아나는 거에요? 진짜에요?"

세상에! 그런 좋은 게 있었다면 진작에 말하라고! 난 조금 전 죽음의 각오와 슬픔은 까맣게 잊고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말에 덩실덩실 상태가 됐다. 인간, 참으로 간사하다면 어쩌겠냐. 좋은 일은 좋은 거고 나쁜 일은 나쁜 거다. 자, 이 사고를 거름 삼아 다시 살아나는 거다! 소생하라, 신세린! 다시 세상에 태어나 아직 누려보지 못한 것을 누리는 거다!!

"단!"

덩실거리는 내 상태를 꼼짝도 못 하게 만드는 그녀의 말이 내 귀에 화살처럼 박혔다.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지, 무조건 소생하시는 건 아닙니다."

"기회……요?"

"예. 기회를 통해 신세린 씨가 소생하시기에 합당하신가, 그런 의지를 지니셨는가를 판단받게 됩니다."

"자, 잠깐만요!"

갑자기 초치는 소리에 난 모든 힘을 다해 그녀에게 항변했다.

"그, 그럴 수는 없어요! 다시 살려주시는 건 정말 고마워요! 진짜에요! 하지만 기회라뇨!? 전 그……아, 맞다!

사고를 당했잖아요! 좋아서 죽은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실수로 죽은 건데 기회라니……!! 너무하잖아요!"

부당하지 않은가! 난 그 자동차 사고로 거의 반죽음 상태가 됐지만 결코 좋아서 이런 상태가 된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이런 상태가 되고 싶은 변태가 있다면 그 녀석한테 이 기회를 송두리째 주고 싶은 기분이다! 대체 어느 미친 녀석이 이런 상태가 되고 싶어하겠는가? 내 항변에 아름다운 눈동자는 날 곧게 바라보며 내 말을 끊는다.

"물론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외는 아주 부득이한 경우. 또는 어린 아이 정도에만 적용됩니다. 아주 부득이한 경우는 암 같은 불치병이지만 아직 이승에서 이루셔야 할 일이 있는 경우를 포함해 많은 예외적인 경우. 이는 저승사자의 재량을 통해 용납됩니다. 어린 아이는 당사자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으니 관대하죠."

"그럼 저는요!? 저는 원하지도 않는 사고를 당했다구요!!"

내 생사여탈권을 쥔 그녀에게 대들정도로 난 급박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이것도 부득이한 경우다!

"하지만 신세린 씨는 주변을 확인하지 않았잖아요."

"주, 주변을 확인하지 않았다뇨?"

"분명 신호등이 건널 수 있게 색깔이 변했으며 자동차는 멈춰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신호에 맞게 정확히 서는 차량은 매우 드물죠. 그렇기에 본인의 확인이 필요로 되어지구요. 신세린 씨는 그런 상태에서 신호만을 의지하여 건너셨고 주변의 확인을 게을리 했습니다."

"다, 당연하잖아요! 초록색 불이 되면 자동차가 멈추고 사람이 건넌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런 규칙을 지키지 않고 돌진하는 자동차를 주의하셨다면 이런 상태까지는 오시지 않으셨겠죠."

"……큭……!!"

할 말이 없었다. 분명 그런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 또한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까지 염두해가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래, 분명 맞아. 하지만……하지만……!!

"……알겠, 어요. 죄송해요. 소리 질러서."

날 올곧게 바라보던 회색빛 눈동자는 아주 약간이지만 부드러워졌다. 저렇게 웃으니, 되게 귀엽네. 정말 저승사자 맞냐…….

"인정하셨으니 괜찮아요. 사실 신세린 씨는 굉장히 빠르게 납득하신 경우에요.

대부분은 죽지 않았다며 화를 내고 땡깡을 부리죠. 저희한테는 폭언도 서슴지 않는 분들이 계세요."

"죄,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화를 내는 건 대부분 그러니까. 개중에는 저희한테 성욕을 품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세상에. 저승사자한테 성욕을 품다니. 대체 어디에 사는 머저리냐!?

"저희 같은 여성에게 '헤헷, 너의 은밀한 부분에 내 엑스칼리버를 처넣어주겠어!'라는 멍청한 대사를 지껄이는 분도 계시더군요. 아, 물론 이 경우는 기회나 그런 거 없이 저승사자에 대한 폭언 및 성희롱으로 무료지옥관광티켓을 끊어드렸어요. 편도로."

"왕복티켓은……없겠죠?"

내 질문에 싱긋 웃는 그녀를 보니 이제야 소름이 돋는다. 내 앞에 있는 건 진짜 저승사자다!!

"뭐, 그건 됐고. 지금부터 '기회'에 대해 설명을 드릴 차례네요."

침을 삼키는 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린 적이 있었을까. 내 심장은 터지기 직전이었다.

드래곤이랑 싸우라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아니지!? 저승사자가 있다면 귀신이랑 싸우라거나 그런 일을 하라고 할 수도 있다! 세상에, 내가 어쩌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됐담? 난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심장을 부여잡고 있었고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웃으며 가볍게 말했다.

"살아있을 이유를 찾으세요."

"……네?"

"말 그대로입니다. 살아있을 이유. 본인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자 죽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찾으셔야 합니다."

"……그게 다에요?"

"예. 하지만 절대 쉽지는 않을 거에요."

살아있을 이유? 살아있을 이유라니? 그거야 당연히 '죽기 싫으니까'잖아. 당연한 거 아냐?

"아, 혹시나 싶어서 말씀드리지만 '죽기 싫으니까'같은 머저리 같은 이유를 말씀하셨다간 진짜 골로 보낼 거에요♡"

헉! 어떻게 내가 생각한 거 알았냐! 검은 두루마기에 감춰진 그녀의 굴곡을 보니 새삼 멍청한 소리를 지껄였던 자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가는 것 같았다. 아니지, 아니지! 잠깐만 신세린! 넌 지금 저승사자! 그것도 여성한테 욕정을 하는 거냐, 멍청아!! 지금은 그런 것보다는 이유를!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라!

헌데 뭘 어떻게? 회색빛으로 가득한 공간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저어, 뭘 어떻게 찾아야 하죠?"

"아, 그러고 보니. 의식세계로 같이 가는 걸 잊었네요."

"의식세계요?"

"현재 신세린 씨의 몸은 가사상태이지만 뇌와 의식은 살아있습니다. 저와 신세린 씨는 그곳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저, 저승사자님이랑 같이요?"

"예. 이상한 짓을 하려는 게 아니라 당신을 보호하고 조언하기 위해서죠.

덧붙여 굳이 님 같은 거 붙일 필요 없어요. 그냥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이름으로 부르라니,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럼……지금 당장 가는 거에요?"

"예. 제한시간이라고 부를 건 없지만 이 경우 육체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까. 일주일 정도로 하죠."

"일주일이요? 그렇게 오래 있으면 제 몸 죽는 거 아니에요!?"

"아 참! 실제로 일주일이 아니라 의식세계에서 일주일을 말씀드리는 거에요.

의식세계에서는 시간의 영향을 별로 안 받기 때문에 일주일은 그리 길지 않아요.

현실 시간으로는……두세 시간?"

그렇게 짧단 말인가? 헌데 대체 의식세계에 들어가서 뭘 한단 말이지?

"그건 신세린 씨가 들어가서 찾아야 해요.

저희가 옆에서 서포트를 하긴 하겠지만 말이죠. 준비는 되셨나요?"

준비는 됐다. 그래, 내 몸에 돌아가기 위한 여정. 내가 살아남기 위한 찬스. 난 포기하지 않는다. 노력하겠어! 최선을 다해서!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난 공손하게 말했다.

"저, 화장실은 어디죠?"

"……영혼이 화장실 가는 거 봤어요?"

아차! 빌어먹을, 좋은 분위기와 멋진 결심을 분자단위까지 박살냈어! 내 자신의 어리석음을 저주했다.

"이제 진짜 갑니다. 일주일. 뭐, 길게 잡아도 세 시간이겠네요. 살아야 하는 이유를 부디 찾으시길 바랄게요."

그녀의 손가락이 튕김과 동시에 우릴 지탱하던 회색공간은 엄청난 소리와 충격을 내며 무너졌다.

떨어진다. 검은 공간으로.

들어간다. 내 의식세계로.

도전한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다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남은 일주일(3시간)이 줄어들며 내 여행의 시작을 알렸다.

Chapter 1

"학교다."

멍청하게 혼자 중얼거렸다. 학교다. 정말 학교야. 내가 수능을 치기 전까지 3년동안 뺀질나게 다니던 학교. 갈색빛깔의 학교는 신식이라는 것을 표현하듯 반짝거렸으며, 책상에는 온갖 책이 올려져 있다. 단지 평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아무도 없네요."

들려오는 목소리에 흠칫거렸다. 검은색 두루마기와 갓을 쓴 그녀가 내 옆에 서 있었다. 안 춥나?

"저승사자가 추위타면 어떻게 하나요. 걱정해주시는 건 고맙지만요."

학교라니. 난 어처구니가 없었다. 대체 왜 이 대목에서 학교가 나오냔 말이다? 물론 공포영화 같은 곳의 배경으로는 딱이지만 말이다. 공포영화. 그러니까, 귀신이나 괴물. 혹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나타난다면 역시 그 공포감을 최대한 부각시키기 위한 곳으로는 학교와 병원만한 곳이 없다. 학교가 공포감을 증가시키는 이유야 간단하다. 늦은 밤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이 늘 사용하는 곳이, 그저 시간이 다르고 밤이 된 것만으로 엄청난 공포감을 주는 유령의 집 뺨치는 곳으로 변하기 때문. 지금은 밤이다. 밤에 혼자 학교에 있다니. 무섭다. 솔직히 진짜 무섭다.

"그렇게 무서워요?"

"그거야 당연하잖아요……. 아무리 밤까지 공부해도 그렇지, 혼자 이 커다란 학교에 남아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구요."

"잘 됐네요. 의식세계긴 하지만 좋은 경험이잖아요. 게다가 혼자는 아니랍니다."

"……아, 그러고 보니 저승사자님이랑 같이 있네요."

이 저승사자, 무지 예뻐서 저승사자라고 인식하기가 어렵다.

그거야 뭐, 허연 얼굴의 무서운 아저씨가 같이 있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만…….

"저승사자님이라 꼬박꼬박 부르면 듣는 저희가 부담이에요. 이름으로 부르세요."

"이름이라면……한아영……님?"

"'씨'를 붙여도 상관없어요. 그치만 이왕이면, '아영이 누나'라고 부르는 게 좋네요."

"정말 이름 불러도 괜찮아요?"

"예. 상관은 없어요. 그렇다고 너무 친근하게 부르지는 마세요."

처음 보는 사람을 누나라고 부를 정도로 여자랑 사귄 적이 없다. 우선은 '씨'를 붙이자.

"어, 음……근데 왜 제가 여기 있나요?"

"의식세계는 신세린 씨의 것이에요. 당신이 살아갈 이유를 찾기 위해서 가장 적합한 장소 중 하나가 바로 여기겠죠. 하지만 학교라……무척 멋지네요."

"멋져요? 여기가?"

"예."

그녀는 책상 위에 수북히 쌓인 책을 펼쳤다. 어라, 만질 수 있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책을 만질 수 있고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 왜지?

"왜 여기서는 물건을 통과하지 않고 볼 수 있는 거에요?"

"의식세계도 이승보다는 저승에 가까운 곳이니까요.

여기서는 육체의 강함은 별로 들어올 곳이 없어요.

와아, 이런 어려운 것도 배우네요. 으음, 함수? 이건 뭐죠?"

"저, 잘 모르는데요."

"……고등학교 졸업하신 거 아니었어요? 수능이었던가, 치셨잖아요."

"하하, 쳤다고 다 아나요. 모르는 것도 많은 상태에서 쳤죠."

"자랑할 만한 건 아니네요."

빌어먹을, 난 치고 싶어서 쳤겠냐. 그 빌어먹을 시험! 그녀는 다른 책상에서도 책을 꺼내 펼쳤다.

여기 내 의식세계라고 했지? 왜 이렇게 다른 사람 책상에까지 책이 있는 거지? 다른 사람 거는 살펴본 적도 없는데.

"일종의 이미지가 박힌 거에요. 하지만 정말 좋네요. 저는 이런 곳, 다녀보지 못했어요."

"아영……씨는. 그럼……?"

뭘 어떻게 말해야 하지? 언제 죽었냐고? 언제부터 이 일을 했냐고?

전부 다 실례될 것 같은 말이다. 내 생각을 읽었는 걸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

"죽은 건 대강 2백년 전 정도라고 생각되네요. 그 당시에는 이런 곳처럼 자세히 학문을 가르쳐주는 곳이 없었어요.

사실 저도 예전의 기억은 잘 떠오르지 않아요. 좋아서 저승사자가 된 것도 아니구요."

"……저승사자는 어쩌다 되신 거에요?"

책을 살피는 게 어쩐지 바보 같아서 그녀의 과거사에 대해 물었다.

"후후, 글쎄요. 어느날 이런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저승사자가 될 거냐고. 안 되도 상관은 없지만 되면 좋다고."

저거 진담이겠지? 헌데 거 참 맛간 놈일세. 저승사자를 무슨 뽑기 뽑듯이 뽑냐?

"그래서 된 거에요. 뭐, 자세히는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지금까지 오래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런 면에서는 신세린 씨는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제가요?"

내가 운이 좋다니, 설마. 수능 끝난 고3이 죽었는데 운이 좋다면 나보다 운이 안 좋은 놈들은 다 죽게?

"다 죽었거든요."

"ㄴ……네?"

갑자기 생각을 읽은 줄 알고 난 깜짝 놀라 더듬거렸다.

"일제강점기 때는 육체가 죽어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자들이 살고 싶다고 비명을 질렀어요. 같은 동포를 그렇게 보내야만 해서 너무 안타까웠어요. 저승사자는 그들을 살릴 수 있는 신이 아니니까요."

"일제강점기라면……1910년부터 1945년을 말씀하시는 거죠."

"예에. 안타까웠어요. 여기 교과서에도 자세히 나와있네요. 아하하……이런 걸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말이에요."

쓸쓸해 보이는 눈동자. 어쩐지 슬펐다. 왜 이런 걸 끄집어내는 걸까. 빌어먹을. 저런 예쁜 여자애가 슬퍼하는 모습 따위, 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비록 의식세계이긴 하지만 저한테는 일종의 문화체험이에요. 그런 걸로 치자면 같이 오길 잘 했네요."

"……오래동안 외로우시지 않으셨나요?"

나 같으면 미칠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다시 웃음을 지었다. 제기랄. 왜 이런 대화를 했담. 분위기나 전환해 볼까?

"그럼 2백년 정도동안 사셨다는 거네요?"

"살았다기보다는, 존재했다고 하는 게 타당하겠죠. 왜요?"

"음……아영 씨에 대한 적절한 호칭이 생각났어요."

"와아♪ 정말요? 뭐에요?"

"아영이 할머니."

"뒈질래?"

"죄송합니다!!! 진짜 죄송합니다!! 제발 봐주세요!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세상에, 저 미소녀가 저렇게 험한 말을 하다니! 게다가 방금 진짜 죽일 것 같은 표정이었어!

"다음에는 얄짤없이 지옥행이에요♬"

"죄송합니다! 진짜 죄송함돠! 앞으로 이런 짓은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아영이 누님!!"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목숨을 거는 행동은 하지 말자. 난 진심으로 맹세했다.

어떻게든 용서를 구한 나는 내가 앉는 자리에서 책을 보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수학의 정석, 한국 근현대사. 정치에 법과 사회. 한국지리. 사회탐구는 진짜 많이 풀었구만. 국어도 좋고. 윽, 외국어는 패스.

……

…………

………………

"아, 빌어먹을! 내가 왜 여기서까지 문제집을 보는 거야!?"

난 화가 나서 책을 집어던졌다. 빌어먹을! 대체 이건 뭐야!? 난 왜 여기서까지 공부를 하는 거지?

내가 던진 책을 아영이 누나가 집어들었다. 그녀의 표정은 놀라움으로 물들어갔다.

"와아, 엄청 많이 쓰셨네요."

"그거야……써야하니까요."

"왜요?"

"왜요는 일본담요입니다."

앗, 내 개그가 통하지 않은 건가. 구겨지는 표정의 아영이 누나를 보니 아무래도 실망한 것 같다.

"쓸데없는 개그 하지 말고요."

"어, 좋은 대학 들어가려면 써야죠."

"좋은 대학이라. 그게 어디죠?"

"그야,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곳이죠."

"그럼 신세린 씨는 왜 좋은 대학에 가려고 하죠?"

"그거야……가야하니까요. 좋은 대학 가서 공부하고, 좋은 곳에 취직하고. 그런 거잖아요."

어째서일까. 단 한순간이지만, 그녀의 표정은 너무나 슬퍼보였다.

왜? 난 뭔가를 잘못했나? 그저 말했을 뿐인데?

싫어. 저 소녀의 저런 표정은 보기 싫다.

"저, 왜 그러세요?"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나저나 진짜 책이 많네요."

"그거야 고3이니까요. 싫어도 눈을 뜨면 공부, 자기 전까지 영어단어를 외워야 하는 게 일상이에요."

"그렇게 공부해서 뭐가 되려고요?"

공부해서 뭐가 되려고 하는 거냐니. 그거야 당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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