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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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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아빠하고 나하고
글쓴이: 아웰
작성일: 12-07-26 12:41 조회: 3,219 추천: 0 비추천: 0


※ 일상 에피소드를 하나하나 짧게 끊어 치는 (비)일상물입니다.


1. 아빠와 엄마

처음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무렵이었다고 생각한다. 엄마랑 같이 오는 친구들을 보고 ‘이 아줌마 누구야?’라고 질문했을 때 친구들은 하나 같이 ‘우리 엄마’라고 대답했다.

“엄마가 뭐야?”
“엄마는 엄마야.”

다섯 살짜리에게 이 정도면 완벽한 대답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엄마나 아빠 없이 편부모 가정에서 자라다가 배우자가 멀쩡히 다 있는 또래 친구들을 처음 본 아이들의 흔한 래퍼토리 대로 그날 집에가서 아빠에게 물어보았다.

“아빠 나는 왜 엄마가 없어?”

여기서 아빠가 ‘대신 내가 있잖니? 은하는 엄마가 없어 외롭니?’라고 말해주고 내가 ‘아니. 아빠가 있으니 괜찮아.’ 라고 말하며 서로 껴안으면 훈훈한 가족이야기가 되었겠지만 우리 아빠는 그때도 지금처럼 쿨 했다. 아빠는 내 질문에 당황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진지한 기색도 없이 마치 내가 '오늘 저녁은 뭐야?' 라고 물어 보았을 때 '오늘 저녁은 콩나물 국'이라고 대답 하듯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네 엄마 너 버리고 도망갔어.”
“왜?”

내가 그 말에 어떤 충격도 받지 않고 태연히 ‘왜?’라고 물어 볼 수 있었던 건 역시 아빠의 그 엄마가 도망간 것 따위야 콩나물 국의 간이 안 맞는 정도의 문제 밖에 안 된 다는 듯 한 쿨 한 태도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빠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니 나 역시 엄마가 없는 것에 문제를 느끼지 못 했다.

“몰라. 나도 네 엄마 만난 적 없어. 나도 너 주워왔다니까.”
“그럼 내 엄마는 유리 언니야?”
“유리 언니 일하는데 알지? 거기 가서 유리 언니더러 엄마라고 불러 봐.”

다음 날 나는 아빠가 말해준 대로 엔 유리 언니네 가게에 찾아가서 유리 언니를 엄마라고 불러 보았고 어째서인지 그날 밤 아빠는 유리 언니에게 엄청 맞았다.

“멀쩡한 처녀 인생 망칠 일 있어요? 애한테 뭘 시키는 거에요!”

아빠를 그렇게 마구 팬 후 유리 언니는 나를 앉혀 놓고 말했다.

“잘 들으렴 은하야. 언니는 네 엄마가 아니야.”
“그럼 내 엄마는 누구야?”
“어? 음? 그러니까 널 낳아준 사람.”
“날 낳아준 사람?”
“어 음 그러니까 모르겠네 하하.”

그 후로도 계속 나는 왜 엄마가 없을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지만 아빠는 항상 ‘없으면 어떠냐’는 식이었다. 그렇다고 ‘엄마가 없다는 걸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단다.’라고 내게 가르쳐 준 적도 없다. 내가 두 번째로 나는 왜 엄마가 없냐고 물어 보았을 때 아빠는 오늘 요리하기는 귀찮은데 집에 라면이 없을 때처럼 고민하다가 말했다.

“필요해?”

‘엄마가 있으면 좋겠어?’도 아니고 마치 ‘그 인형이 필요하냐?’ 라는 듯이 물어 보니 나는 대답할 말이 딱히 없었다.

“아니.”
“그럼 됐잖아?”
“그렇구나.”

엄마가 없다는 고민은 그걸로 넘어 갔다.


2. 아빠와 직업

일곱 살이 되어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을 때 엄마가 없다는 것 말고 다른 고민이 생겼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아빠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아빠. 아빠의 직업은 뭐야?”
“앙?”
“직업 말이야 직업.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

아빠는 요즘 학교는 일곱 살짜리에게 뭘 가르치는 거야 수업료랑 육성 회비만 꼬박 꼬박 낼 수 있으면 직업이야 상관없잖아 라고 투덜거린 후 말했다.

“선생님이 알아 오라고 했냐?”
“응.”
“자유로운 영혼의 보헤미안이라고 해.”
“정식 직업을 갖지 않고 이 일 저 일 하며 되는대로 사는 젊은이들로 부모세대가 피땀 흘려 장만한 집에 눌러 살면서 슬렁슬렁 번 돈으로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부르며 잉여스러운 취미활동을 즐기는 사람들?”

아빠는 ‘실례잖아. 이 집은 분명 내 돈으로 산거라고.’라고 반박하거나 ‘너 보헤미안들이 들으면 정말 화낼 말을 하고 있어.’라고 정정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응.”

아빠는 역시 쿨했다. 그래서 나는 아무 의심 없이 아빠의 직업은 '자유로운 영혼의 보헤미안‘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그런 내 대답을 듣고 가정 방문을 할거라고 아빠에게 알려주라고 했다. 집에 간 후 12시 방향에 단체로 폐사한 닭들처럼 쓰러져 있는 술병들을 치우고 뱀 수십 마리가 허물 벗어 놓은 것처럼 아무렇게나 던져져 굴러다니고 있는 남성용 양말 및 속옷가지를 빨래 바구니에 집어넣고 왜 내 먹을 것을 가져 가냐는 듯이 항의하는 개미 및 기타 여러 벌래 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집안에 뿌려져 있는 빵 부스러기나 소시지 조각 등을 빗자루로 쓸었다. 아빠가 ’너 뭐하냐?‘ 라고 말할 때 쯤 ’선생님이 내일 가정 방문 할 거래.‘라고 말해주었다. 내 말을 들은 아빠는 턱을 긁적이다 말했다.

“무슨 공룡 살던 시대 학교도 아니고 교사가 학생 가정 방문이야?"
"아빠 직업이 수상하데."
"안 오면 안 돼?”
“안 될 거라고 생각해.”

아빠는 말없이 나를 도와서 집안을 치우기 시작했다.

“네 선생님 남자?”

아빠는 내가 품에 가득 안 고 가다가 떨어뜨릴 뻔한 술병들을 발을 뻗어 받아 내며 말했다.

“여자.”

술병을 내 놓은 후 아빠의 양말이며 속옷가지들이 들어 있는 빨래 바구니를 들어 올렸다. 어찌나 많은지 내 힘으로는 버거울 정도였고 빨래의 높이 때문에 앞이 안 보였다.

“젊어?”

아빠는 한 손으로 그 바구니를 가져가며 말했다.

“응.”

그 빨래 바구니를 집안 구석의 옷장에 쑤셔 박으며 아빠가 말했다.

“예뻐?”

쿵! 소리와 함께 옷장 안으로 그 빨래 바구니가 들어갔다. 나는 재빠르게 옷장 문을 닫았다. 간발의 차이로 빨래 바구니가 다시 밖으로 튀어 나오기 전에 옷장 문이 닫혔다. 나는 옷장이 미어터지지는 않을까 걱정스레 문을 살펴보며 대답했다.

“그 정도면 예쁜 거 아닐까?”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 했다.

“결혼 했어?”
“안 했을 걸.”

벌레 퇴치용 스프레이를 집안 구석구석에 뿌리는 것으로 청소는 일단락되었다. ‘오늘따라 왜 이러세요?’라는 듯한 원망어린 시선을 벌레들이 보내 왔지만 나는 마스크를 쓴 채 그 스프레이를 벌레들의 머리 위로 퍼부었다.

벌레들은 최후의 보루로 우리 아빠를 바라보았다. 마치 ‘태초에 잠자리에서 배갯밑에 백탁을 내리시어 저희를 먹여 살리시고 후에 음식물 부스러기로 저희 수천 수만 일족을 살리신 위대한 이여. 저희를 구하소서.’라고 호소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빠는 자비롭게 자신이 먹여 살리던 벌레들에게 스프레이를 뿌렸다. 배신감과 조물주에게 버림 받았다는 절망감에 몸부림 치는 벌레들을 내려다 보며 아빠가 지나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은하야.”
“왜?”
“너 아직도 엄마 갖고 싶냐?”
“아니,”
“잘 생각해 봐.”
“갖고 싶다고 한 적도 없는데.”
?
그 날 아빠는 뭔가를 잃어버린 사람 같은 표정을 지었다.




3. 아빠와 야구

어느 날 나는 유나네 집에 놀러 간 이후 늘 궁금하게 생각했던 걸 아빠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아빠.”
“왜?”
“왜 우리 집 TV에는 야구만 나와?”
“축구도 나오잖아.”

그러고 보니 그랬다. 하지만

“유나네 집 TV는 다른 것도 나와.”
“어떤 거?”

나는 유나네 집에서 봤던 빙하 속에서 1억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인간을 노예로 부리려고 하는 사악한 고대 생명체와 자기 가정을 지키려는 한 아버지의 처절하고 고독한 투쟁을 그린 아동용 만화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빠는 내 이야기를 다 듣고 그거 재밌었어? 라고 물어보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빠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유나네 집 가서 TV 봐.”
”유나 집 멀단 말이야.“
“하긴 3km는 TV 보러 걸어가기에는 좀 멀지.”

그리고 아빠는 나를 번쩍 들어 올린 후 쇼파로 걸어갔다. 나를 무릎 위에 앉힌 채 아빠는 TV를 켰다. 그날도 TV에서는 어김없이 야구 중계가 하고 있었다. 아빠는 나를 자주 안아주는 편이 아니었다. 아빠가 날 안아 주는 때는 이렇게 야구 경기를 볼 때뿐이었다. 아빠가 날 무릎 위에 앉혀 놓으면 그 커다란 품에 내 작은 몸이 언제나 쏙 들어가곤 했다. 야구가 좋았던 건 아니지만 아빠의 그 넓은 품에 폭 안기면 뭔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나도 아빠랑 같이 야구를 봤다.

아빠는 에인절스라는 팀의 팬이었고 그게 아빠의 유일한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아빠는 늘 쿨했지만 항상 ‘아등바등 야구해서 뭐하나 어차피 인류는 하나인것을.’이라는 천사 같은 마인드로 상대 팀에게 승리를 갖다 바치는 에인절스 앞에서 쿨해지지 못 했다. 에인절스가 이긴 다음 날 학교 갖다 오면 집 안에는 커다란 곰 인형이 있거나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주일에 한 번 있을까 말까였다. 일주일 대부분 아빠는 에인절스의 패배 이후 쓸쓸한 표정으로 발코니에 나가 담배를 피웠다. 에인절스는 참 어지간히도 못 하는 야구팀이었다.

그런 에인절스가 모처럼 끈질긴 승부 끝에 9회말 동점 상황. 에인절스의 타자가 긴장한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아빠의 얼굴은 포커 페이스였지만 나를 올려놓고 있는 무릎은 안마기 수준으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빠는 브라운 관을 눈을 깜빡이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뚫어져라 쳐다보던 중 지나가듯 말했다.

“은하야.”
“응?”
“사실 우리 집 TV에는 비밀이 있어.”

그 다음 순간 상대팀 투수가 공을 던졌고 에인절스의 타자는 힘차게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헛스윙이었다. 상대 팀 투수는 타자의 어처구니없는 스윙에 씩 웃으며 다시 와인드업을 했다. 아빠는 그 어이없는 스윙을 보고 넋이 나가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빠의 다음 말을 재촉했다.

“비밀이 뭔데?”
“아 비밀은 말이지…”

그 다음 2구 째. 이번에 타자는 제대로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공은 아깝게도 파울이었다. 예전에 방망이에 맞추기만 하면 무조건 안타인 줄 알았던 시절 ‘왜 저 선수는 안타 쳤는데도 안 뛰어?’ 라고 세 번 연속 물어 보았다가 처음으로 아빠에게 맞을 뻔 한 이후로 나는 야구 관전에 방해가 안 될 수준의 규칙은 스스로 깨우쳤다. 아빠는 모든 걸 포기한 표정으로 담배를 꺼내들며 쓸쓸히 말했다.

“에인절스가 이기면 우리 집 TV에 야구 축구 말고 다른 것도 나온다.”
“에인절스 대단하네.”
“그래. 그러니까 너도 응원해.”
“응.”

다음 순간 투수가 던진 공을 에인절스의 타자가 그대로 때렸다. 늘 냉정을 잃지 않던 아빠는 날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는 것도 잊은 채 벌떡 일어났다. 당연한 수순대로 나도 앞으로 고꾸라졌지만 저 공이 넘어가면 우리 집 TV에도 만화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말에 나는 아픔을 잊은 채 쭉쭉 뻗어 나가는 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공은 떨어질 듯 떨어질 듯하다가 그대로 담장을 넘어갔다. 에인절스 선수들이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는 것을 멍하니 서서 지켜보던 아빠는 털썩 쇼파에 주저앉았다.

그 날 아빠가 약속한 대로 우리 집에는 축구 야구 말고 다른 프로그램이 TV에 나왔다.

나는 아빠의 무릎 위에 앉아서…스포츠 뉴스를 봐야했다.


“오늘 에인절스에서 기적적인 9회말 끝내기 홈런을 치며 팀의 역전승을 이끈 주인공 슈퍼 스타 윤정환선수. 현재 리그 홈런 타점 분야 모두 5위권으로 맹활약 하며 이번에야 말로 만년 꼴찌 팀 에인절스가 꼴찌를 면 할수 있을 거라고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스포츠 뉴스도 참 재미없었지만 행복하게 뉴스를 보고 있는 아빠를 보자 나는 ‘이거 재미없어’라고 말 할 수가 없었다.

“그 윤정환 선수가 펜텀스의 모기정 선수와 트레이드 된다고 펜텀스 구단 측이 전격 발표했습니다. 윤정환 선수 인터뷰입니다.”
“예. 언젠가 반드시 명문 구단 펜텀스에서 뛰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펜텀스에서 더욱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누군가가 따귀를 맞는 것 같이 '짝'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빠는 때리는 거나 다름 없는 거친 동작으로 자신의 이마를 감싸쥐고 있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매년 팀이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음에도 에인절스 팬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 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인 에인절스의 금상혁선수가 훈련 중 어깨 통증으로 엔트리에서 제외 되었습니다. 의료진은 전치 2주 부상이라고 진단…”

아빠는 담배를 꺼내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아무래도 내일 곰인형이 날 반겨주고 있거나 고기 파티가 열릴 것 같지는 않다.


4. 아빠와 동물원

가끔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이면 유리 언니가 학교 앞까지 마중 나올 때가 있었다. 오늘 유리 언니는 하얀 민소매 셔츠에 너무 조이지도 너무 헐렁하지도 않은 청바지라는 편안한 차림이었다. 그 날 내 눈을 끄는 건 유리 언니의 옷이나 미모가 아니라 유리 언니와 함께 온 커다란 개였다. 그 하얀 개는 나를 보자 ‘컹컹’ 거리며 꼬리를 마구 흔들었다.

“퐁지도 은하가 좋은가 보네.”

그 큰 개는 혀를 내민 채 애타는 눈으로 ‘컥컥컥’ 거리면서 날뛰고 있었다. 유리 언니는 그렇게 덩치 큰 개가 날 뛰고 있는데도 오직 한 손 만으로 개 목줄을 잡고 하나도 힘들지 않은 얼굴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나는 이대로라면 저 개가 목졸려 죽지 않을까 걱정하며 말했다.

“퐁지가 이 개 이름?”
“응. 귀엽지?”

퐁지라 불리는 개는 이제 침을 질질 흘리며 ‘학! 학! 학!’ 하고 거칠게 숨을 내 뱉었다. 퐁지는 어떻게든 유리 언니의 손 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유리 언니는 팔을 움직이지도 않고 손목만으로 그 큰 개를 꼼짝 못 하게 하고 있었다.

“쓰다듬어 봐도 되.”

언니는 친절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눈을 희번득 거리고 있는 7살짜리 여자애의 두배에 가까운 덩치를 가진 개를 만질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관둘래.”
“왜? 퐁지가 얼마나 착한데.”

그러면서 언니는 퐁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니의 손이 닿을 때마다 퐁지의 얼굴 가죽이 좌악 밀려 나가며 퐁지의 눈이 뒤집혔다. 진심으로 저 개의 얼굴 가죽이 벗겨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언젠가 아빠가 유리 언니가 가게 앞에 있던 고양이의 얼굴 가죽을 무두질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게 그 건가.

“언니 퐁지 아파 보여.”
“응? 아니야 퐁지는 날 좋아해. 그렇지 퐁지?”

퐁지는 ‘끼잉’ ‘끼잉’하며 죽어가는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언니는 ‘아유 이뻐’ 하면서 퐁지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렇게 퐁지의 목을 끌어 안고(목뼈가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 되는 훌륭한 쵸킹이었다) 나랑 눈 높이를 맞춘 상태로 유리 언니가 말했다.

“참 은하야. 너희 아빠 이번 주 말에 뭐하시니?”
“야구 보거나, 야구 하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시즌 초에는 야구 보기 바쁘거든.”
“그럼 말이지…”

언니는 조심스레 주머니에서 티켓 3장을 꺼냈다.

“이번에 시내에 있는 동물원에서 이벤트로 무료 입장권을 나눠주는데 언니가 3장을 받았거든? 주말에 아빠랑 언니랑 같이 동물원 가지 않을래?”
“동물원?”
“응. 은하는 한 번도 동물원 가본 적 없지?”
“동 물의 보호와 번식, 연구를 꾀하고 일반인에게는 관람을 통하여 동물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 동물에 대한 애호 정신을 기르면서 오락 및 휴식을 제공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동물을 모아 일정한 시설을 갖추어 기르는 곳이라면 한번 도 가본 적 없어.”

유리 언니는 ‘하…하하 우리 은하 또…똑똑하네.’하고 어색하게 웃고는 말했다.

“집에 가면 아빠에게 잘 말씀드려. 은하도 좋아하는 동물이 있지?”
“응. 나는 토끼가 좋아.”
“역시 그렇지? 토끼 귀엽지?”

유리 언니가 ‘나도 토끼가 좋아’ 하며 활짝 웃었다.

“응. 아빠가 그러는데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동물의 세계에서 사자는 우월해 보이지만 사실 생존경쟁에 있어 종의 관점에서 볼 때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은 빠른 발과 선회 능력의 적수가 될 수 없데. 토끼는 빠른 발과 선회능력을 다 갖춘 동물이야.”

망연한 얼굴로 ‘너네 아빠는 도대체…’라고 중얼 거린 후 언니는 다시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 아무튼 동물원에 가고 싶지?”
“응.”
“아빠에게 잘 말씀드려. 이번 주말에 혹시 시간 되면…같이 동물원에 가자고.”
“응.”

어째서 언니가 마지막에 얼굴을 살짝 붉혔는지는 모르겠지만 동물원에 가보고 싶기도 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날 집에가서 나는 유리 언니에게 들은 대로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유리 언니가 나랑 아빠랑 같이 동물원 가자고 하던데.”
“왜?”
"공짜 표가 생겼데."
"좋다."

공짜 표라는 말에 아빠는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아빠도 동물원 좋아?”
“어. 동물원의 동물들은 하는 것은 딱히 없어 보이는데 다 재때재때 밥은 먹고 다니잖아. 사람들의 인기도에 따라서 받는 대접이 달라지기도 하고 서로 멱살 잡고 패대기치며 싸우기도 하고 도대체 지능이 있는건지 의심스러운 바보짓을 저지르기도 한다는 점에서 인간 사회의 사람인데 동물 같은 사람들을 모아 놓은 어딘가와 매우 흡사하지만 동물원에 있는 녀석들은 동물이라 이해가 가거든.”
“아 그거 알아. 국회 얘기지?”
“아빠는 더 이상 네게 가르칠게 없다.”

우리 둘은 서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 주의 주 말. 아빠는 차를 끌고 우리 옆집에 사는 유리 언니네 집 앞으로 갔다. 잠시 기다리자 유리 언니가 나왔다.

“죄…죄송해요 늦었죠?”

문을 열고 나온 유리 언니는 완전 다른 사람 같았다. 시원시원한 느낌의 새하얀 반팔 가디건에 쇄골이 드러나는 너무 야하지도 갑갑하지도 않은 검은 색 니트. 그 니트와 쌍을 이루는 허벅지 위로 올라오는 하늘하늘 거리는 풍성한 레이스의 미니스커트. 광고에 나오는 모델 같았다. 내가 언니의 미모에 감탄하고 있는 사이 아빠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집을 착각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서려는 아빠의 뒷덜미를 용서 없이 잡아채는 저 완력은 틀림없이 유리 언니였다. 아빠는 차를 몰고 갈 일이 있으면 늘 나를 옆 좌석에 태우고 다녔으므로 언니는 자연스럽게 뒤에 타게 되었다. 동물원에 가는 동안 내내 유리 언니는 뭔가 불만스러운 듯 했지만 아빠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유리 언니에게 티켓을 받고 우리는 동물원에 입장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아빠와 유리 언니 사이에서 두 사람의 손을 잡고 걷게 되었다. 아빠는 무표정했지만 유리 언니는 뭐가 좋은지 얼굴을 약간 붉힌 상태에서도 계속 웃고 있었다. 맨 처음 도착한 동물 우리에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동물이 있었다. 갈색 몸에 빳빳해 보이는 털이 나 있고 길쭉한 입에 순박해 보이는 눈동자를 가진 동물이었다.

“아빠 저거 뭐야?”
“개미핥기.”
“저거 개미를 핥아 줘?”

유리 언니가 ‘쿡쿡’하고 웃고는 설명해주었다.

“저 주둥이를 개미굴에 넣은 다음에 혀로 개미를 잡아먹어.”

나는 잠시 개미핥기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아빠 저거 우리 집에 키우자.”
“왜?”
"우리 집 개미 나오잖아.”
“개미핥기는 비싸서 안 돼.”
“비싸면 할 수 없지."

유리 언니는 뭔가를 말하고 싶은 표정으로 우리 부녀를 보고 있었다.

다음 우리에는 사자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아빠 사자다.”
“응.”
“사자 피곤해 보여.”
“어쩔 수 없지. 사바나의 드넓은 초원을 지배하다 이런 머나먼 타지에 끌려 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 자기의 신세에 자포자기 했으니까.”
“그런 말을 들으니 사자도 불쌍해 보여요.”

유리 언니가 안타깝게 말했다. 그러자 불현듯 아빠랑 맨날 야구를 봐서 알게 된 사실이 떠올랐다.

“타이거즈랑 라이온즈는 라이벌이지?”
“뭐 말하자면 그렇지.”
“둘이 다이다이뜨면 누가 이겨?”

유리 언니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으음 역시 사자가 아닐까? 백수의 왕이라고 하니까. 그래도 은하야 다이다이라는 표현은 좀…”
“그런거야 아빠?”
“다이다이 뜬다고 하면 호랑이가 이기겠지.”

유리 언니는 ‘다이다이’라는 아빠의 표현에 얼굴을 찌푸렸다.

“왜?”
“호랑이는 기본적으로 홀로 생활 하며 홀로 사냥하고 사자는 무리 지어 사냥하거든.”

유리 언니가 아빠의 말을 듣고 뭔가 알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은 즉…”
“호랑이는 솔플이고 사자는 다굴인거구나?”

유리 언니보다 내가 먼저 외쳤다.

“저기 은하야 너 그런 말 누구한테…”

하지만 아빠는 유리 언니가 말을 끝내기 전에 재빠르게 말했다.

“그렇지. 그래서 다이다이 뜨면 솔플에 익숙한 호랑이가 이기지. 하지만 은하야.”
“응?”
“너는 홀로 현란한 컨트롤과 아이탬으로 보스 몹을 잡는 고수 한명과 못 하는 친구들끼리 서로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싸우기도 하면서 함께 몹을 잡는 여러 명 중 누가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인거 같냐.”
“친구랑 같이 하는 사람.”
“그런 거야. 그러니 너도 사자 같이 인생을 살아야 한다.”
“응.”

유리 언니만이 홀로 ‘이게 정상적인 부녀의 대화인걸까?’하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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