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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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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테사렉(Tesseract)
글쓴이: 눈사람K
작성일: 12-07-24 20:46 조회: 2,036 추천: 0 비추천: 0

- Prologue -

오랜 쫓김에 내 숨은 벅차기 시작했고, 같은 처지의 중년 사내 역시 이 이상 전력질주를 하기엔 무리가 있어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멈출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멀리 뒤에서 굶주린 늑대의 무리가 이빨을 드러내며 악착같이 쫓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눈과 코가 없는 늑대의 형성과 비슷한 괴생명체였다.

골목길 사이로 들어서자 눈앞에 철문으로 된 건물 출입구가 보였다. 그 안으로 몸을 피하기로 판단하고 사력을 다해 뛰었다. 녹슨 철문의 문고리는 헛돌고 있었다. 하지만 몸을 몇 번 세게 부딪치니 조금씩 열릴 기미를 보였다. 나는 몸을 날려 두발로 문을 힘껏 걷어찼다. 다행히 거친 쇳소리를 내며 문은 활짝 열렸다.

중년 사내가 힘겹게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아저씨! 여기요!”

손을 흔들며 소리쳤지만 그의 눈빛은 내 쪽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고통스럽게 숨을 내쉬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하는 수없이 넋이 나간 채 달리고 있는 중년 사내의 옷깃을 잡아 건물 안쪽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철문을 닫았다. 철문은 열릴 때와는 달리 너무나 쉽게 닫혔다.

하지만 잠금장치도 없는 철문이 무식하게 들이닥치는 늑대 무리를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방비책을 고민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더니 근처에 놓인 긴 의자라던가 찢어진 소파가 보여 그것을 끌어다 문 앞에 두었다.

“여긴 어디지?”

중년 사내는 숨이 편해졌는지 질문을 던졌다.

“건물 안이잖아요.”

나는 문 앞에 놓아둔 소파에 앉아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하지만 내 말은 듣지도 않은 채 중년 사내는 뭔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정신이 나간 것 같다.

쾅! 쾅! 철문을 향해 강한 충격이 가해졌다.

“으아아아!”

“닥치고 좀 도와줘요!”

중년 사내는 사시나무 떨듯이 기어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내가 도움을 요청해도 그의 귀엔 닿지도 않는 모양이다.

나는 필사적으로 세워둔 물건들을 등으로 맞대고 철문이 열리지 않게끔 버텼다. 그렇게 몇 분 동안 수십 차례 가해지던 충격은 얼마가지 않아 멈췄다. 하지만 놈들이 물러선 것은 아니었다. 놈들의 묵직하게 울려 퍼지는 낮은 울음소리에 경련이 일어난 것처럼 내 몸의 근육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건 꿈이야. 젠장, 빌어먹을 왜 내가……. 왜!”

“이봐요. 아저씨. 진짜 좀 도와달라고요. 아니면 입이라도 닥쳐요.”

그때 건물 안쪽 어디선가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계속 이곳에 버티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도망칠 길을 생각해 보았을 때 최선책으로 나는 옥상을 향하는 것을 선택했다. 오도 가도 못하는 그 위에서 꼼짝없이 갇힐 수도 있었다. 하지만 늑대 떼가 건물 주변을 감싸고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보단 나아보였다. 그리고 허술해 보이는 이 건물 안에 제대로 숨을 공간은 없어보였다.

결국 그래서 내린 결론이 옥상이었다. 건물이 빼곡히 늘어선 도심지니 난간을 뛰어넘어 옆 건물로 이동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건물 사이를 넘는다. 그것이 쉽게 되리라고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보다 좋은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어이, 아저씨. 아무래도….”

등 뒤에서는 다시 충격이 가해지고 있었다. 나는 더 생각할 것 없이 내린 결론을 전하기 위해 중년 사내를 불렀다. 그런데 그는 가지고 있던 권총을 자신의 턱밑으로 향하고 있었다.

“잠깐!”

탕, 귀를 찢는 소음이 울려 퍼졌다.

털썩, 중년 사내는 뜬 눈으로 괴로워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이런, 젠장…….”

욕을 한번 내뱉은 나는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계단을 두 칸씩 밟으며 옥상을 향해 올라갔다. 밑에서 들려오는 기분 나쁜 쇳소리가 조금씩 철문이 열리고 있음을 알려준다.

달빛 아래 드러난 건물 옥상 위에 서자 도심지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늑대 떼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옥상 주변을 살펴보니 마땅히 건너 뛸 건물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없지는 않았다. 다만 3~4m는 되어 보이는 그 간격을 뛰어넘을 재주가 내게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쾅! 옥상 출입구는 열리지 않았다. 다만 문 아래쪽이 휘어져 튀어나왔다. 그 틈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늑대 한마리가 머리를 내밀었다.

“이런!”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들며 옥상 문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틈 사이로 나오려하는 늑대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사납게 이빨을 들이밀던 늑대의 머리는 바닥으로 축 쳐졌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옥상문 너머로 부딪혀오는 충격은 나의 내장 속까지 전해졌다. 구역질이 생기는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이대로 오래 버티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그나마 다른 건물들보다 제일 간격이 짧은 곳을 응시했다. 짧다고 한들 내가 뛰어넘기에는 가망성이 낮았다. 그래도 뛴다고 가정했을 때 적어도 맞은편 건물의 에어컨 환풍기가 있는 곳까지는 간신히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든 순간 나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전력질주를 하며 옥상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오른쪽 발을 옥상난간에 내딛고 뛰어올랐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그러나 왼쪽 다리가 뭔가의 붙잡힌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윽!”

고개를 돌려보니 늑대 한 마리가 내 다리를 물고 있었다. 어느새 열린 옥상 출입문으로 몇 마리가 더 모습을 드러냈다. 늑대는 턱을 좌우로 움직여 내 다리에 이빨을 더욱 깊게 박아간다.

“아아악!”

심한 통증에 비명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나는 총구를 겨누며 방아쇠를 당겼다. 머리에 여러 방의 총알이 박혀 늘어졌지만 다리를 물고 있는 늑대의 주둥이가 쉽사리 벌어지지가 않았다. 원치 않은 족쇄에 허우적대는 동안 다른 무리들이 달려들었다.

나는 사색이 되어 권총을 쏴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총알은 금세 떨어졌다.

복부에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억 소리 한번 내보지도 못하는 충격에 고통스러워 할 틈도 없이 난간 너머로 중심이 기울었다. 그 짧은 순간 보았다. 개미떼 마냥 징그러울 정도로 몰려있는 괴물 늑대의 무리를 말이다.

공중에 붕 뜬 감각을 느낄 것도 없이 나는 떨어졌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떨어진 충격보단 겁에 질려있던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망연자실하게 얼마나 있었을까? 그때까지 늑대들이 다가오는 기미가 없었다.

상당히 지독한 냄새가 코를 괴롭게 했다. 그 냄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고 하지만 좀처럼 몸을 추슬러지지가 않았다. 땅위에서 헤엄치듯이 쓰레기 더미에서 빠져나와 아스팔트 바닥과 대면한다. 그리고 숨을 가쁘게 내쉬면서 주변을 살폈다.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골목길이었다. 방금 전에 있던 늑대 떼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얼굴을 세수하듯이 문지른다. 죽다 살아났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한 달 전과는 또 다른 공포였다.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다. 테사렉에 들어선다는 일은 정말 미친 짓이다.

“그 녀석은 아직 살아있으려나?”

나는 허리춤에 차고 있는 발신표시장치에 눈을 돌렸다. 하지만 어디서 부딪쳤는지 모니터가 깨져있었다. 그러나 어차피 세모의 생사여부는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소용없다는 걸 깨닫는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쌓였던 피로가 몰려와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상처도 치료하지 않은 채 아스팔트 위에 대자로 누워서 잤다간 잘못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그냥 생리적 욕구가 이끄는 대로 하기로 했다.

- 1. 세모 -

천희빈이라는 여학생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특징은 그녀가 다문화가정의 혼혈이라는 것이다. 옅은 갈색머리의 푸른빛의 눈동자, 그녀 스스로가 학기 초 자기소개 시간에 아버지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면 나는 그녀가 유학생인줄 알았을 것이다.

많은 동양학생들 가운데 조금 튀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는 교우관계에 있어서 큰 마찰은 없어 보였다. 여느 여학생들과 같이 무리를 지어 웃고 떠드는 것은 물론이며, 그들 가운데에서는 특히나 친하게 어울리는 친구도 많은 것 같았다.

학교성적은 특출하게 잘하는 것도, 선생님께 야단을 맞을 정도로 하위권을 도는 것도 아닌 것 같으니 중간, 혹은 중간 이상은 나오는 것으로 생각된다.

밝고 명랑한 성격에 생김새 역시 예쁜 측에 속하니 남학생들이 가까이 가려는 모습도 보이곤 한다. 개중에는 그녀에게 고백했다는 남학생도 있었다고 하는데, 잘되어 사귀었는지 어찌되었는지까지는 모르겠다.

나와 그녀와는 작년 한 해 동안 같은 반이었고, 올해에도 같은 반이 된지 2주 정도 되어갔다. 하지만 나는 그 기간 동안 그녀와 말 한번 주고받은 적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는 천희빈은 여기까지였다. 결국 내가 알고 있는 그녀는 평균적으로 평범하게 학교생활을 하는 보통의 여학생이라는 정도이다.

하지만 그 보통의 여학생은 이제 평범한 일상과는 어울리지 않게 변하고 말았다.

때는 오후수업시간이었다. 수학교사가 교과서의 적힌 수식으로 칠판을 메우고 있는 와중에 교실에 정적을 깨는 다수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단순히 커다란 벌레가 교실 안으로 들어와 지르는 비명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소음이었다.

학생들은 얼마나 기겁을 하였는지 모두 책걸상에 걸려 넘어지면서까지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소란스럽게 바닥에 나뒹구는 책걸상과 더불어 겁먹은 신음소리와 비명이 한대 어울려 정말 정신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공황상태가 퍼져나가는 중앙에는 천희빈이 있었다.

어깨를 넘어서는 그녀의 긴 생머리는 장작이 불에 타들어가듯 천천히 붉게 물들어갔으며, 파충류가 탈피라도 하는 것처럼 피부는 균열을 띄며 조금씩 벗겨져 떨어지고 있었다. 주변반응에 누구보다도 당황스러울 그녀는 변해가는 두 손으로 마찬가지에 상태인 얼굴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이내 자신의 변화를 확실하게 알고자 생각했는지 그녀는 교실 뒤쪽에 걸려있는 벽거울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그녀가 지나갈 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학생들마저 눈으로 본 현실에 기겁하고 피하게 시작했다.

약 2분, 그녀가 거울을 쳐다보고 있던 시간이다. 그리고 그녀의 변화가 끝을 이루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핏빛과 같은 붉은 머리색, 붉은 눈동자, 그리고 창백하게 변해버린 피부를 확인한 그녀가 거울에서 눈을 뗀 것은 누군가의 도움을 바래서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녀의 시야에 비친 것은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란 학생들과 교사의 눈빛과 표정, 그리고 난장판 된 교실이 전부였다.

그 숨 막히는 분위기를 깬 것은 뒷문을 열고 들어온 옆 반 교사에 의해서였다. 갑자기 터무니없이 시끄러워진 교실로 들어와 경고를 주려고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교사는 문을 열고 바로 마주한 천희빈을 보고 소스라치며 뒤로 넘어졌다.

난데없는 봄비로 교실수업을 하게 된 덩치 큰 남자 체육교사는 그래도 교실에 있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마음을 추스르며 상황대처에 나섰다. 그는 침작하게 수학교사에게 양해를 구하며 자신이 직접 그녀를 데리고 양호실로 가겠다고 말을 전했다.

아직도 심신의 정리가 되지 않은 수학교사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천희빈이 체육교사와 함께 복도너머로 사라지고 몇 분 후, 교실은 이제 웅성거림으로 시끄러웠다.

어디서 간간히 주워들은 사실을 내새워 떠드는 부류가 있는가하면, 이제 와서 울면서 그녀의 상태를 걱정하는 부류도 있었다. 그리고 상황을 악화시킬 뿐인 전혀 근거 없는 말을 꺼내는 부류도 있었다. 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걸 떠들어서 모든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지 의문이다.

그 웅성거림 가운데에서 나는 잠시 동안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결정을 내린 나는 수학교사에게 다가가 화장실을 갔다 오겠다고 말을 건넸다. 그녀는 여전히 고개만 끄덕이고 있을 뿐이었다.

양호실 앞에 도착하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건교사와 체육교사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어딘가로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너무나도 무거워 보이는 분위기를 뒤로 한 채 나는 양호실 안으로 들어갔다.

천희빈은 양호실 구석 쪽에 배치되어있는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양호실에 있는 침대 중 어느 것도 칸막이 처져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녀 혼자만이 이곳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직까지 자신의 변화를 믿기가 힘든지 그녀의 손에는 손거울이 들려있었다.

내가 양호실 안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쳐다보고 있던 손거울을 내리며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표정에서는 방금 전까지 교실에서 보았던 당황스러움을 찾을 수 없었다. 빨간 눈동자가 이쪽을 응시하는 싸늘하고 오싹한 무표정은 보이는 이로 하여금 다가서기 힘든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무슨 말을 먼저해야할 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거세게 칸막이 커튼을 쳐졌다. 자신은 누구와도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뜻을 전하고 있다는 것쯤은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칸막이 쪽으로 다가가 커튼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옆 칸 침대에 걸터앉아 그녀와 마주하였다. 순간 당황스러워하던 그녀는 이내 나를 노려보며 물러서듯 침대 위에서 뒤쪽으로 몸을 빼었다.

“같은 반인데 혹시 나 알고 있냐?”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무덤덤하게 말을 건넸다.

말없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 다급히 베개를 끌어안으며 얼굴을 파묻었다. 나야 아무래도 좋지만 어떻게든 가리고 싶어 하는 그 행동에 굳이 신경 쓰지 않으며 나는 말을 이었다.

“우선 이걸 좀 봐줬으면 하는데 말이야.”

나는 지갑 속 깊숙이 숨겨놓고 있던 카드형태의 물건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베개에서 눈만 빼꼼히 내민 그녀는 나를 잠시 쳐다보다가 물건을 건네받았다.

카드는 일종의 주민등록증 같은 것이다. 그다지 잘나옴과는 거리가 먼 나의 증명사진 옆으로 우측상단에는 『민간지원 출입허가증』이라고 써져 있었다. 이것은 세간에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제도이다.

허가증과 나를 번갈아 보던 천희빈은 입을 열었다.

“이걸 나한테 보여주는 이유가 뭐야?”

어쩌면 그녀가 자신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내게 매달려 해결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짐작하고 있던 내게 침착하게 나의 의도를 물어보는 천희빈의 반응은 조금 의외였다.

“지금 밖에서 선생님들이 전화하고 계시거든. 아마도 100% 소방서일거라고 생각된다. 어차피 재난대책본부가 연결되는 라인이니까 연락하는 곳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너도 대충 짐작은 하고 있겠지. 네 상황이 질병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게 아닌 것쯤은 말이야.”

그녀는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재난방재청에서 공무원들이 나오면 너에 대한 처우를 확실히 해주긴 할 거야. 하지만 형식적인 선에서만 해주니 문제지. 그러다보면 넌 영문도 모른 채로 ‘정문’ 안으로 들어가게 될 수도 있어. 공무원들은 사람들한테 제대로 설명을 안 해주거든. 다 알고서도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어째서 그러는데?”

“별로 상황을 좋게 만들어 주지 못하니까. 비슷한 예로 말하자면 불치병 환자에게 의사가 환자의 심각한 상태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것과 같을 걸. 어떤 사람은 괴롭지만 애써 평정을 유지하고 노력하면서 남은 인생을 살기 위해 계획 짤 테고, 혹은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자살을 택하거나 하겠지.”

“…….”

“그리고 너무나도 깊은 절망감에 분노한 환자가 눈앞에 의사를 목 졸라 죽이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 이해가 돼? 이게 대충 방재청 공무원들이 사람들에게 세세하게 설명을 해주지 않는 이유야. 그들 입장에서는 테사렉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가지게끔 하는 게 목적이라고는 하는데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 모르는 게 약이란 말이 있으니.”

부연설명은 여기까지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나는 애초에 그녀를 찾아와 건네려했던 본론을 내놓기로 하였다.

“참고로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테사렉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아. 특히나 너의 변화에 대해서는 더욱이나 말이야. 하지만 공무원들이 알려주지 않는 사항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전부야. 네가 원한다면 그 사람을 만나게 해줄 수도 있어. 하지만 그다지 듣기 좋은 말을 들을 수는 없을 거야. 어쩌면 이대로 방재청에서 해주는 방안이 더 나을 수도 있겠지. 판단하는 네가 알아서 해.”

그렇게 말하며 나는 그녀에게 내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줬다. 그때 양호실 미닫이문이 열리며 보건교사와 체육교사, 그리고 교감선생님이 들어왔다. 얼핏 보니 그 외에 여러 명의 교사들이 밖에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럼 난 간다. 그리고 절대 나에 대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나는 교사들에게 양호실에 파스 좀 가지러 왔다고 둘러댔다. 그리고 빨리 교실로 돌아가라고 호통을 치는 그들의 말을 들으며 양호실 밖으로 쫓겨났다.

“이제 그곳에서 나온 지 한 달 정도가 지났어.”

“정말 자원해서 들어갔던 거야?”

“그래.”

“전에 표식이 생겨서 들어갔던 적도 없었고?”

“한 달 전에 ‘정문’으로 들어섰던 게 처음이야.”

학교를 나와서 향하고 있는 곳은 신도시로 발탁되어 개발되고 있는 아파트 단지였다. 강변 산책로를 따라 서두를 것 없이 천천히 같이 걸어가고 있는 동행인은 천희빈이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돼? 왜, 위험한 곳에 스스로 발을 내밀었는지.”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친절하게도 그것을 이해했는지 그녀는 더 추궁하며 물어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감추지 않아도 상관없는 거냐?”

“뭘?”

나는 손짓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리켰다. 이야기를 돌릴 화제를 찾던 와중 그녀가 너무나도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게 걷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거. 뭐, 됐어. 고작 염색하고 다니는 불량학생으로밖에 더 보겠어. 이전에 거리에서 이런 색으로 물들인 사람을 본 적 있거든.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하나의 개성적인 패션으로 봐주겠지.”

어쩐지 ‘요즘 젊은 것들이란. 쯧쯧.’ 이란 시선이 난무하던 것은 그런 것이었나? 하지만 적어도 전염병환자처럼 혐오대상으로 질시되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그녀에게 나은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상관없지. 그런데 너, 의외로 회복하는 게 빠르구나.”

“인간은 원래 환경의 적응하는 생물이라잖아.”

천희빈에게 억지로 감정을 참고 있다는 느낌은 없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그녀는 당장 영화계로 진출해도 될 만한 인재였다.

“모든 인간이 너처럼 광속으로 적응을 하지는 않아.”

“광속이라니! 너무하잖아. 혼자서 울면서 감정을 추스르고 현실적인 대응에 발을 내딛기 위해서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함부로 말하는 거야.”

“그… 그랬냐? 미안하다.”

“5년 전에 끝난 일이었지만.”

“너는 시간을 역행하는 소녀냐?!”

개발단지 내에 비포장 바닥은 내리는 비에 젖어 진흙탕이었다. 그 탓에 진흙이 튀지 않게끔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으며 길을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백선호 씨라고 했었지? 어째서 이런 곳에 사는 거야?”

“듣기로는 계약하는 번거로움이 없이 이곳저곳 돌아다니기 편하다고 하더라.”

불법거주니까 다른 문제로 번거로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뭐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도 ‘지원자’야.”

“지원자?”

“자발적으로 신청해서 테사렉 ‘정문’을 통과하는 사람을 그렇게 불러.”

이윽고 목적지로 삼았던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신경 쓰기는 했지만 신발과 바지는 온통 의도치 않게 묻은 진흙으로 더러워져있었다. 그러나 옷이 배릴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다. 닦으면 지워질 수 있는 정도였다.

나는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어 천희빈에게 먼저 건넸다.

“아, 고마워.”

물티슈를 건네받은 그녀는 옷에 묻은 진흙을 닦았다.

“이왕이면 신발바닥에 묻은 진흙도 탁탁 털어줬으면 해. 워낙 깔끔한 걸 좋아하는 아저씨라 이런 부분에서 민감하거든.”

물티슈 상자를 아예 바닥에 내려놓아 그녀 스스로가 더 꺼내 쓸 수 있게끔 해주었다. 그리고 나 역시 옷과 신발에 묻은 진흙을 닦기 시작했다.

백선호는 이 건물 최고층에 머물고 있었다. 골조구조만으로 되어있는 간이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는데 밑을 내려다보기가 두려워 시선은 위쪽으로 향하는 나였다. 심한 고소공포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안에서 바깥이 훤히 보이는 승강기가 도중에 잘못되지는 아닐까 하는 걱정이었다.

“오랜만이야. 이제야 군. 병원에서 본 이후로 처음인가?”

하얀 와이셔츠에 맨 흰색 넥타이, 흰색 정장에 백구두를 신은 사내가 무늬 없는 화이트카펫이 깔린 바닥 위에서 행사 때나 쓸 하얀 장갑을 낀 손을 흔들어보였다. 백선호(白選好), 이름의 뜻 그대로 성향을 내보이는 남자였다.

내부를 밝히고 있는 형광전구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창문이 없기 때문에 바깥에서 들리는 빗소리를 포함한 온갖 소리가 방안을 매웠다. 백선호는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고 바퀴달린 의자에 앉아 두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렸다.

“재난방재청에서는 아직 테사렉이 발생했다는 소식은 없는데……. 그러면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는 같이 온 ‘세모’ 아가씨에 대한 건가?”

“역시 ‘세모’였나.”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확신은 없었다. 듣기만 했지 ‘세모’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없었으니까.

백선호는 시선을 돌려 내 뒤쪽으로 서있는 천희빈에게 바라보고 있었다. 천희빈은 승강기에서 내려 그를 처음 보자마자 한발자국 물러서있었다. 스포츠머리하고 있는 덩치 큰 30대 초반의 남성은 험상궂은 이미지는 아니었지만 관여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날카로운 인상을 풍기고 있기는 했다.

“안녕하세요. 아가씨. 전 백선호라고 합니다. ‘화이트 백’이라고도 불리기도 하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호칭이 있긴 하지만 편하신 대로 아무렇게나 부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서 한쪽 팔을 대각선으로 내리며 정중한 신사처럼 인사를 했던 그는 다시 의자에 앉아 하품을 하며 두 다리를 책상 위에 올린 채 기지개를 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희빈은 앞으로 나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천희빈이라고 합니다. 제야한테서 얘기 듣고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래? 제야가 나에 대해서 뭐라고 말했는데?”

“여러 가지를 알려주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군. 그럼 아가씨는 구체적으로 뭐가 알고 싶은데?”

“알고 계신 거 전부 다 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백선호는 고개를 돌려 그녀와 시선을 마주하면서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하하하, 상당히 당돌한 아가씨네. 알고 있는 거 전부 말해달라니. 무슨 첩보원이 간첩에게 심문하는 것 같은 대사인데. 내가 쉽게 입을 열거 같은 사람으로 보이는 건가?”

“돈을 드려야 하는 건가요?”

“아니, 돈은 됐어. 원래 알고 있는 지식을 떠들어 대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상관없거든. 안 그래도 지루한 참이었고.”

책상에 올린 두 다리를 내리며 백선호는 팔짱을 꼈다. 그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시지를 않는다.

“자, 그럼 당돌한 세모 아가씨한테 뭐부터 이야기를 해줘야하나. 우선 아가씨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 테사렉 대해 말해줘 볼래?”

3년 전, 테사렉이란 재난이 지구상에 존재함이 세계 모든 언론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초입방체 공간의 규모는 거기서 나오는 특수한 파장을 잡아내는 레이더 없이 확인할 수가 없었다. 작게는 한 건물에서 크게는 한 도시를 집어삼킬 정도로 그 규모가 제각각이다.

장비 없이는 확인할 수도 없는 이 테사렉이 등장함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다수의 실종자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것은 각종 범죄로 인한 사건으로서의 실종이 아니었다.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사라진 대부분 사람들은 테사렉의 피해자였다.

언론에 알려지기로 테사렉이 발생한 지점에는 지구상과는 다른 차원이 형성된다고 한다. 다중우주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그것이 타행성과의 연결점 혹은 또 다른 지구설이라고 언급하고 있었다.

테사렉과 관련 없는 사람들은 그 지점에서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지낸다. 하지만 같은 지점의 다른 차원공간에서는 테사렉에 끌려가버린 다른 사람들이 그곳에 존재하는 이질적인 것들에 의해 생존을 위협받고 있었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밝혀진 바는 없다. 발생 원인은 현대과학으로 설명할 수도 없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수준의 규모로 발생할 지 미리 예측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런 수수께끼투성이의 터무니없는 재난을 정부가 국민들에게 알리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감출 수도 없는 그 사실을 발표했을 때는 전 세계적으로 종말론자를 비롯한 사이비 종교가 성행했으며, 표식이 생긴 자들의 광기 어린 범죄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도 그런 사태를 짐작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에 따른 대책마련으로 테사렉을 전문으로 하는 재난방재청이라는 기구를 따로 조직해 관련 업무를 처리하게끔 하였다.

“세모 아가씨, 테사렉의 표식이 어떻게 생기는지 혹시 알고 있어?”

“네, 예전에 뉴스에서 설명한 걸 본적 있어요. 테사렉이 발생하기 전에 퍼지는 어떤 파장이 인체와 닿아서 생기는 걸로….”

“땡! 틀렸어.”

“예? 그게 무슨…….”

“파장은 발생 지점이 어떠한 에너지를 받아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걸 말하지. 하지만 그 파장의 일으키는 에너지의 주측인 테사렉이 없음에도 표식이 생기는 사람은 많아. 더군다나 테사렉이 발생하기 전에 파장이 퍼진다고?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럼 거기서 나오는 특수한 파장을 잡아서 테사렉의 존재여부를 파악하는 공무원님들은 뭐하고 있을까? 왜 진작 비상령을 내려서 사람들을 지옥행 낙인이 찍히지 않게끔 하지 않고.”

“…….”

“테사렉은 절대 나타날 징조를 드러내지 않아. 그냥 예기치 않게 갑자기 그곳에 나타날 뿐이지. 절대 발생하기 전에 파장이 퍼지는 일 따윈 없어.”

“그럼 어떻게 표식이 생기는 거죠?”

“잔해물 파편이야. 아는 사람들은 ‘먼지’라고 말하지.”

“‘먼지’라고요?”

“그래, 먼지. 영어로는 더스트(Dust). 그래서 D물질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 이건 테사렉이 파괴되고 나서 사라지지 않은 남은 파편이야. 눈에 보이지도 않고, 물질이 아니면서도 물질계에 존재하는 이상한 것이지.

그리고 공기 중에 부유하는 ‘먼지’에 재수 없게 닿은 사람은, 모기에 물린 것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두개의 원으로 된 과녁판이 몸에 생긴 걸 볼 수 있지. 그게 표식이 생기는 과정이야.”

“마치 원자력 발전소가 터지고 남은 방사능과 같은 맥락이네요. 그래서 언론에서 테사렉이 곧 발생할 것 같은 지점에서 표식이 생긴다고 하는 거군요.”

“이해가 빠른 걸 아가씨. 맞아. 모기에 물리는 사람들은 테사렉이 나타날 지점에서 생겨나는 게 아니라 테사렉이 나타났다 파괴되었던 곳 근처에서 생기는 거지. 게다가 그 파편을 관측할 기술은 아직 발명되지 않았으니 민중혼란을 막기 위한 논리로 정부가 아무 말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암, 당연하고말고. 또 무슨 난리가 날지 모르니까.”

“진짜인가요?”

“믿기 싫으면 관두던가. 그래도 지구는 돌아가니까.”

백선호는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 이렇게 들으면 참 이 세상이 살기 참 불안한 것 같지? 하지만 한 해 동안 테사렉에 의해 사망하는 사망자 수는 같은 해에 교통사고 사망자 수에 절반도 채 되지 않아. 재밌지? 인류의 대위기 같아 보이는 정체불명의 재난현상도 인류의 문명 발전으로 생긴 사고보다도 못하니 말이야.”

혀를 쯧쯧 차면서 백선호는 책상서랍에서 금속제 병을 꺼냈다. 그리고 살짝 흔들어 보더니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그럼 저도 그 ‘먼지’에 닿은 건가요? 선호 씨도 그렇고 제야도 저를 세모라고 하던 거 같은데 그것과 관련있나요?”

병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다시 한 모금 마신 백선호는 기분 나쁘게 웃으며 말했다.

“관련 서류를 작성할 때 살아있는 사람은 동그라미, 죽은 사람은 엑스를 하지. 그런데 딱 두 가지로만 기입할 수 있는 란에 세모 표시를 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라고 생각해? 아가씨.”

다음날 천희빈은 결석하는 일 없이 학교에 나왔다.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모면한 내가 교실 안으로 들어섰을 때, 그녀는 교실 창가 뒤쪽 구석으로 자리를 옮겨 혼자 앉아있었다. 다른 이에게 듣자하니 그녀 스스로가 책걸상을 들고 옮겼다고 한다. 다른 교우들의 통행에 방해되지 않게끔 그곳에 있겠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비록 모습은 변했지만 여전히 밝은 그녀를 보고서 조심스레 걱정의 말 한마디라도 건네는 사람은 그녀와 친했던 여학생들이었다. 하지만 다가서려는 사람은 없었다. 자신들에게 마가 옮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전염되는 일 따윈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어도 생기는 거부감이 그들의 붙잡는다.

그런 그들에게 천희빈은 괜찮다며 오히려 자신으로서 인해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하다고 전한다. 그리고 애써 웃음을 보이며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수업을 들어온 교사들 역시 마찬가지의 반응이었다. 애써 외면하려는 교사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수업은 별 차질 없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천희빈과 내가 어제 같이 하교했던 이야기는 퍼지지 않았다. 내가 테사렉과 관련되어 있다는 소문조차 없었다.

나는 천희빈으로 인한 난리통 속에서 다친 곳이 심하게 아프다는 명목으로 조퇴를 하였다. 내가 한 달 전 병원에 입원했던 사실을 알고 있던 담임은 순순히 그 말을 믿어주었다. 첫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에 들러 담임을 만나 병원에 잘 갔다 왔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그는 몸조리 잘하는 말 외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른 교사들도 내게 신경 쓰는 기미도 없었다. 양호실에서 천희빈은 내 말대로 교사들에게 나를 언급하지 않으며 조퇴를 한 모양이다.

그 덕분에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세모인 그녀와는 달리 나는 언젠가 테사렉과 연을 끊을 사람이다. 재수 없게 표식이라도 생기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그런 내게 테사렉과 연관되어 주변 사람들로부터 괜히 안 좋은 이미지를 남길 이유는 없었다.

학교의 모든 수업이 끝난 방과 후, 석식시간. 원하지는 않지만 일주일 중 3번 이상은 해야 하는 야간자율학습을 하기 위해 나는 학교에 남아있었다. 생각보다 맛있었던 급식을 먹고 나는 골프 연습장으로 왔다.

학교 신관 건물 뒤쪽에는 작은 골프 연습장이 있었다. 사용자는 교장, 교감선생님이나 골프에 관심 있는 교사들이다. 하지만 사용함에 있어 눈치가 보일 테니 젊은 교사들보단 연륜이 있으신 분들이 주로 이곳을 들르신다. 또한 학교에서 학생들이 사용하는 시설이 아닌 만큼 사용빈도가 많지 않은 것 같다. 외부에 눈길도 있을 테니 말이다.

여하튼 그래서 요즘은 오전 중에 교장선생님이 가끔 사용하는 모습만 보일 뿐 그 외 시간에는 거의 비어있는 시설이다.

골프 연습장 펜스 옆으로는 학교 옆 산과 이어지는 작은 통로가 있었다. 물론 길이 나있는 정식적인 통로는 아니다. 아무튼 그 펜스 옆으로 들어서서 울타리를 넘고 조금 언덕을 내려가면 학교의 사각지대가 된다.

언덕은 발을 잘못 내딛으면 강가까지 미끄러져 버릴 정도로 가파르다. 이런 곳에 담배꽁초가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면 불량학생들의 주요영역임을 알기 쉽다. 교사들이 이곳까지 와서 흡연을 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괜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조금 더 먼 곳까지 이동했다.

이 정도면 됐겠다 싶은 곳에 나는 나무를 등받이 삼아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꺼낸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고 담배필터를 통해 빨아들인 연기를 내뱉으며 나는 어제의 일을 회상했다.

“재난방재청에서는 테사렉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의료기기 하나를 나눠주지. 의료기기라고는 하지만 테사렉에 들어가 있는 사람 중 생존자가 얼마나 되나 파악하는 용도지. 그들의 대략적인 위치도 나타내니까 말하자면 생존여부를 확인하는 발신기지.”

백선호는 자신의 손목에 차고 있는 것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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