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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파티 세계정복!
글쓴이: 내팔은최강
작성일: 12-07-24 14:01 조회: 2,126 추천: 0 비추천: 0

-4기 때 올렸던 것을 전체적으로 갈아엎고 다시 써서 올립니다.-


하교 길에 피시방 건물 앞에 있는 커다란 세움간판이 보였다. 세움간판의 배경에는 거대하고 웅장한 느낌의 콜로세움이 있었고 두 명의 전사가 근육을 꿈틀거리며 칼을 맞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글씨가 써 있었다.

'콜로세움 오브 콜로세움 세계대회! 우승 상금 50억! 지금, 고대의 전장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아래로 대회 일정, 참가 방법 등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청개구리는 세움간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야, 우리 저거 대회 한번 나가볼까?"

그의 이름은 원래 서우와(徐雨蛙). 한국말로 말하면 서씨 성을 가진 청개구리 뜻이다. 본인이 우와보다는 청개구리라고 부르는 것을 더 좋아해서 그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그냥 청개구리라고 불렀다.

리아는 한심하다는 듯이 청개구리를 쳐다보았다.

"대회는 무슨, 공부나 해."

청개구리는 코웃음을 쳤다.

"상금이 오 십억이라는데 공부가 대수냐? 공부가 밥 먹여줘?"

리아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먹여주지. 그리고 오 십 억이면 뭐해? 네 명 팀 대회니까 상금도 넷으로 나눠야지, 세금 때야지, 그렇게 하다보면 얼마 남지도 않아. 까불지 말고 좀 공부를 해라."

리아의 잔소리에 청개구리는 툴툴거렸다.

"자기도 게임 폐인이면서 엄청 잘난 듯이 말하네."

리아는 고운 눈썹을 일그러트렸다.

"무슨 소릴 하냐? 이번 중간고사에서 내가 전교 이 등했는데. 너 몇 등이야? 네가 설마 일 등이야?"

청개구리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그만, 내가 잘못했으니까 너까지 나를 몰아붙이지 마라. 더 이상 하면 나 진짜 운다."

청개구리의 등수는 정확히 전교 328등이었다. 전교생이 500명 조금 넘으니 중간도 못가는 등수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집에서 들들 볶이는 신세였다. 청개구리는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리아는 혀를 찼다.

"대회를 나간다고 해도 문제가 있잖아. 팀원은 최소 네 명인데 우리는 지금 두 명이잖아. 나머지 두 명은 어떻게 구할 건데? 게다가 두 명을 구한다고 쳐. 그렇게 나가서 우리가 우승 할 수 있을 것 같아? 안 그래도 요즘 프로리그가 생겨서 밥 먹고 게임만하는 놈들도 잔뜩 나올 텐데 그런 놈들을 어떻게 이겨?"

청개구리는 불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프로라고 해봐야 엄청 잘하는 것도 아닌데. 게다가 일 대 일로 하면 네가 가지고 놀잖아. 천하의 리버레이션이 무슨 소리를 하냐?"

리아는 콜로세움 오브 콜로세움, 콜콜에서 나름 이름을 날리는 네임드 유저였다. 리아는 일 대 일 싸움의 고수였다. 아니, 초 절정의 실력을 가진 천하제일 고수였다. 만약 일 대 일 싸움에 공식랭킹이 있었으면 반드시 랭킹 1위 였을 것이다. 하지만 콜콜은 기본적으로 사 대 사 팀 대결 게임이었고, 공식적인 랭킹도 사 대 사 대결에 밖에 없었다. 그 외에 일 대 일, 이 대 이 대결은 서비스만 지원할 뿐 공식적인 랭킹도 없었다. 게다가 일 대 일 싸움을 잘한다고 사 대 사 싸움까지 잘하는 건 아니다. 개인플레이를 잘하기 위해 요구되는 능력과 팀 플레이를 잘하기 위해 요구되는 능력은 확연히 달랐다. 특히 팀플레이는 팀원 간의 소통,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한데 리아는 그런 점에 약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리아가 다른 고수들이나 프로게이머들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나도 계네들이 진짜 엄청나게 잘한다고는 생각 안 해."

리아는 손가락으로 청개구리를 가리켰다.

"그래도 너보다는 잘할 걸?"

청개구리는 발끈했다. 그는 리아처럼 이름이 알려진 네임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유저를 발 아래로 두는 상당 수준의 고수였다.

"나보다 잘 해봐야 눈꼽만큼이지. 놈 들이 그렇게 잘났어?"

솔직히 그렇긴 하지. 리아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리아와 청개구리는 게임을 시작한지 이 년이 넘는 올드 유저였고 콜콜의 프로리그는 만들어진지 육 개월도 안 된 상태였다. 프로게이머들의 실력은 아직 리아와 청개구리같은 하드코어 유저에 비해 크게 높지 않았다. 하지만 리아와 청개구리는 실력 외에 커다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리아는 그 점을 지적했다.

"일단 우리는 팀을 못 만들어. 이제 우리 같은 잉여캐들은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파티에 안 끼워준다고. 너도 잘 알잖아?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지 잊었어?"

"......"

할 말이 없었다. 리아의 말은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청개구리와 리아가 대회에 나가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팀이다. 청개구리와 리아 외에 최소 두 명을 추가로 구해야 하는데, 대충 아무나 넣으라고 하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제대로 된 실력자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리아와 청개구리의 캐릭터가 대세를 거스르는 잉여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대회에 나가서 우승할 수 있는 실력과 의지를 가진 인간이라면 절대로 리아와 청개구리의 팀에는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 때도 그랬다. 청개구리는 리아와의 만남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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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ation. 한국말로 읽으면 리버레이션.

콜로세움 오브 콜로세움 사상 최강, 최악이라고 불렸던 유저의 아이디다. 일명 킹 오브 쓰레기, 쓰레기의 왕이다. 팀플레이 게임인 콜로세움 오브 콜로세움을 하는 주제에 절대로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조금만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으면 무조건 욕설을 주워섬긴다. 누가 잘못한 것이 없어도 기분이 나쁘면 고의적으로 상대편에게 죽어주거나 같은 편을 방해한다. 부처님이라도 같은 편으로 두고 싶어 하지 않을 개차반이었다. 하지만 성격이 남들 보다 더러웠기 때문에 리버레이션이 유명해진 것은 아니었다.

게임 속 세상은 가짜 세상이다. 그 안에서 나쁜 짓을 했다고 경찰이 와서 잡아가지 않는다. 일종의 가상 무법지대라고나 할까? 그런 세계였기 때문에 리버레이션 정도의 악의적인 쓰레기들은 처치하기 곤란할 정도로 넘쳐났다. 리버레이션이 유명해진 것은 리버레이션의 신기막측한 맞장 실력 때문이었다.

리버레이션은 쌍검을 사용하는 스피드형 검사 캐릭터였다. 빠른 공격속도와 빠른 이동속도로 상대를 제압하는 타입으로, 쫄래 쫄래 도망다니며 싸우는 궁수나 마법사들을 상대하기에 좋다. 하지만 이런 스피드 형 근접 캐릭터는 속도가 빠른 만큼 내구도가 떨어진다. 빠르기 때문에 거리를 두고 도망치면서 싸우는 상대는 쉽지만, 가만히 서서 강력한 공격력과 강력한 방어력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파워 타입의 캐릭터에게는 약했다. 재빠른 페더급 복서가 헤비급 복서를 이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리버레이션은 헤비급을 때려잡는 페더급이었다. 그 이유는 리버레이션이 사용하는 스킬에 있었다.

콜로세움 오브 콜로세움은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이 자유로운 게임이었다. 캐릭터를 만들 때 직업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유저가 육성하는 방법에 따라 캐릭터의 직업이 정해진다. 유저는 콜콜의 세계에 득시글거리는 괴물들을 사냥해 경험치를 얻고 레벨을 올린다. 레벨을 올리면 몇 점의 점수가 주어지는데 그 점수로는 캐릭터의 능력치를 올릴 수 있었다. 유저는 게임을 하면서 자기 취향에 맞게 능력치를 올리고 그에 맞는 아이템을 착용한다. 캐릭터가 사용하는 기술 역시 유저가 직접 선택해서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캐릭터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싸우는 것이 콜로세움 오브 콜로세움의 주된 게임 플레이였다.

리버레이션은 매우 극단적인 전투 스타일을 취했다. 사용하는 스킬들이 모두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보장하는 기술들이었다. 성공시키면 큰 효과를 보이지만, 조금만 실수해도 안 쓰는 것만 못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까다로운 기술들이다. 한 두 개쯤이야 다른 사람들도 많이 사용했다. 이러한 기술들은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킬 조커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도 리버레이션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기술칸을 그런 위험한 기술로 채우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기형적인 캐릭터 셋팅이 리버레이션을 상성을 뛰어넘는 캐릭터로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리버레이션의 캐릭터 세팅을 따라했다. 그러나 리버레이션과 같은 강함을 보인 사람은 없었다. 리버레이션과 같은 도박성 캐릭터는 다루기가 매우 어려웠다. 빠른 반응 속도와 침착한 컨트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을 배짱이 있어야한다. 하지만 그것들을 모두 가진 유저는 적었다.

이런 점들이 리버레이션의 이름이 콜콜의 세계를 울리게 만들었다. 이 쯤 되면 유명한 콜콜 팀에 스카웃될만도 하건만, 안타깝게도 리버레이션의 신적인 컨트롤은 일 대 일 싸움에서만 유효했다.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해야하는 팀플레이에서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게다가 그 개 같은 성격까지 한몫해서 리버레이션은 결국 어떤 팀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리버레이션은 천천히 사람들에게서 잊혀져갔다. 대회우승이나 정식랭킹같은 공식적인 기록을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리버레이션은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

청개구리는 리버레이션을 잘 알았다. 그는 콜콜이 클로즈 베타를 할 때부터 게임에 매달렸던 사람 중에 한 명으로써 콜콜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리버레이션을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 리버레이션이 있었다.

청개구리는 파티를 구하는 중이었다. 콜콜은 기본적으로 팀을 이루어 하는 게임이었고 같이 게임을 할 친구가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매번 같이 팀을 이룰 사람을 새로 구해야 했다. 이러한 과정은 언뜻 귀찮아 보이지만 콜콜은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게임이었다. 한국에서 서비스되는 서버만 해도 평균 동시 접속자가 이십만은 된다. 사람은 많았고 대부분의 경우 네 명으로 구성되는 팀 하나를 만드는데 삼 분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청개구리는 달랐다. 그는 팀을 만드는데 최소 삼십 분이 걸렸다. 간혹 운이 좋아 금방 팀원들을 모으고 파티를 구성할 때도 있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운이 좋을 때뿐이다. 그는 겨우 오 분이 걸릴까 말까한 게임 한 판을 위해 게임 속의 광장에서 삼 십분 동안 '팀 구합니다.'하고 소리쳐야 했다. 청개구리가 그렇게 힘들게 팀을 구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청개구리의 캐릭터, '남자라면도끼'가 잉여캐릭터라는 것이다.

잉여캐릭터란 무엇인가? 잉여란 사전적인 의미로 남는 자원 등을 일컫는 말인데 넷상에서는 흔히들 '쓸모없다.'라는 의미로 많이 쓰였다. 즉 쓸모없는 캐릭터라는 것이다. 그러면 쓸모없는 캐릭터란 뭘까.

콜콜은 철저한 팀플레이 위주의 게임이었다. 다수 대 다수의 싸움에는 전술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전술이라는 정돈된 행동양식이 있어야 여러 명의 사람이 하나의 완성된 유기체처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축구같은 스포츠를 예로 들면 쉽다. 축구 역시 팀플레이 게임이라는 점에서는 콜콜과 같았다. 팀에 소속된 선수들은 팀이 취하는 전술에 맞춰 각자의 역할을 받고 그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콜콜에서 말하는 쓸모없는 캐릭터란 팀이 취하는 전술에 맞지 않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었다.

초창기에는 전술 같은 것이 없었다. 팀을 구성할 때 대충의 포지션을 정하기는 했지만 그 포지션에 따라 싸움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유저들은 게임에 익숙하지 않았고 이론만 대충 알 뿐 그것을 실현하지는 못했다. 대부분의 싸움이 그냥 마구잡이 개싸움으로 끝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유저들의 실력은 늘어만 갔고 전술의 중요성이 머리를 쳐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자, 전술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면 욕을 먹는 시대가 왔다.

청개구리의 캐릭터는 콜콜의 세계에서 유행하는 전술에 맞지 않았다. 사람들은 빵빵한 판금 갑옷에 방패까지 든 기사타입을 원했지 청개구리처럼 양손도끼들고 동물가죽까지 걸친 야만인타입을 원하지 않았다. 강력한 방어력이 중요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대세는 패스플레이였고 팀은 패스를 잘하는 선수를 원했지만 청개구리는 드리블만 잘하는 선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팀을 구하기 어려웠던 것이고 그건 스피드형 쌍검전사인 리버레이션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광장에 마주보고 서서 사이좋게 팀을 구한다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날은 재수가 없는 날이었는지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둘 다 팀을 구하지 못했다. 그 쯤 되면 서로 동질감을 느끼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먼저 말을 건넨 것은 청개구리였다. 그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자신이야 이름도 없는 일반 유저니까 그렇다고 쳐도 리버레이션은 한 때 최강이라고도 불렸던 네임드 유저였다. 그런 유저까지 잉여캐릭터라고 배척받을 줄은 몰랐다. 그는 리버레이션이 킹 오브 쓰레기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 때 만큼은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저기 같이 사냥이나...... 2:2라도 하실래요?>>

<<......콜.>>

그것이 리버레이션, 아니 리아와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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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레이션은 진짜로 성격이 더러웠다. 가끔은 이 유저가 사람이 아니라 악마가 지옥에서 컴퓨터 켜놓고 게임을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리버레이션과 다른 사람을 같이 두고 팀을 짜면 거의 99퍼센트의 확률로 싸움이 났다. 싸움이 나지 않는 1퍼센트는 청개구리를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이 부처님에 비견될 정도로 자비로운 마음을 가졌을 때뿐이었다. 하지만 또 어쩔 때 보면 성격이 괜찮았다. 다혈질에 욕 잘하고 누가 시비를 걸면 참지를 않아서 그렇지 그 더러운 성질만 안 건드리면 다른 사람에게도 제법 친절한 편이었다. 게다가 청개구리와 리버레이션은 왠지 궁합이 잘 맞았다. 둘이서는 싸우는 일도 없었고 대화도 잘 통했다. 둘은 금방 친해졌고 서로 핸드폰번호까지 주고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리버레이션이 말했다.

<<야, 너 어디 사냐?>>

<<G시 사는데. 왜?>>

<<그래? 나도 거기 사는데. 우리 한 번 진짜로 만날래?>>

<<좋아!>>

청개구리는 쉽게 승낙했다. 그는 지금까지 많은 온라인 게임을 했지만 커뮤니티 생활에는 소홀했기 때문에 친구 비슷한 것도 사귄 적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리버레이션은 온라인에서 만든 첫 번째 친구였다. 당연히 현실의 리버레이션에게도 관심이 있었다. 둘은 G시의 X역 부근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때로는 판타지보다 더 판타지 같을 수가 있다. 청개구리는 처음 리아를 보고 그것을 실감했다. 그는 리버레이션이 비쩍 마르고 키가 작은 남자 애일 거라고 생각했다. 보통 신경질적인 사람은 병이 있든 타고났든 몸이 약하기 마련이니까. 그는 게임을 하는 사람, 그것도 이름 높은 네임드 유저가 여자일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따라서 여자애들은 간혹 몸이 건강해도 신경질적일 수가 있다는 것을 간과 하고 있었다.

리버레이션은 여자였다. 그것도 귀엽고 얌전하게 생긴 안경 소녀. 개미 한 마리 못 잡을 것 같은 순진한 얼굴에 곱게 나눈 양 갈래 댕기머리를 어깨 위에 늘어트리고 있었다. 게임 상에서의 난폭한 이미지와는 정반대였다. 하지만 청개구리가 놀란 것은 리버레이션이 단지 예쁜 여자애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리버레이션을 알았다. 아니, 정확히 말자하면 리아를 알았다. 청개구리와 리아는 같은 반이었다.

리아 역시 청개구리를 보고 놀랐다. 그녀도 온라인에서 사귄 사람이 학교의 클래스메이트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둘은 사는 곳도 가까웠다.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살았으니 어찌 보면 사이좋은 이웃친구라고도 할 수 있었다. 물론, 게임에서의 일로 만나기 전에는 서로 말도 섞지 않던 사이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날의 만남 이후로 청개구리와 리아는 진짜로 사이좋은 이웃친구가 되었다.

그 사이좋은 이웃친구가 부드럽게 말했다.

"너도 할 말 없지? 팀도 못 구하는 우리가 무슨 대회를 나가니. 게다가 맨날 탱자탱자 놀기만 하는 너랑은 달리 누나는 공부하느라 바빠요."

"누나는 무슨...... 헐크녀주제에."

"......죽을래?"

현실의 리아는 얌전한 아이였다. 학교에서는 목청 한 번 높이는 법이 없고, 누가 부탁을 해오면 거절을 못했다. 그녀의 이미지는 딱 이거였다. 예쁘고 착하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 청개구리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다 거짓말이고 위장이었다. 안경이 주는 범생이 이미지에 속아서는 안 된다. 리아의 진짜 모습은 게임 속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겉으로는 요조숙녀의 탈을 쓰고 있지만 그 안에는 폭력적이고 난폭한 괴물이 숨 쉬고 있다. 게다가 귀여운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게 키도 크고 힘도 엄청나게 세서 청개구리는 리아를 헐크녀라고 불렀다. 당연한 말이지만 리아는 그 별명을 싫어했다.

입 한번 잘못 놀렸다가 몇 대 맞을 뻔한 청개구리는 날뛰기 시작하는 헐크를 잠재우기 위해 말했다.

"아, 아이스크림 먹을래? 내가 사줄게."

이 괴물을 얌전히 만드는 데는 입 안에 뭔가를 집어넣는 게 최고였다. 리아는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네가 쏘는 거지?"

"베스킨라빈스는 안 된다."

"칫, 뭐야......"

리아는 아쉽다는 듯이 혀를 찼다. 청개구리는 길가에 있는 슈퍼에 들러서 하드를 두 개 샀다. 둘은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면서 나란히 걸었다.

리아가 하드를 다 먹고 남은 나무막대를 질겅질겅 씹으며 물었다.

"오늘은 뭐할래? 팀 구하는 것도 귀찮은데 오랜만에 이 대 이나 뛸까?"

청개구리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나 오늘은 게임 안 해."

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게임 안 하면 뭐하려고? 설마 공부?"

"공략써서 올릴 거야."

청개구리는 캐릭터를 커스터마이징하는 재미로 게임을 했다. 능력치를 어떻게 찍고 아이템은 어떤 것을 사용하며 스킬은 어떤 것을 쓰느냐에 목을 메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얼마나 적절하게 조합하느냐에 따라서 캐릭터의 퍼포먼스는 큰 차이를 보였고 청개구리는 캐릭터의 능력을 눈꼽 만큼 끌어올리기 위해 게임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뜯어보는 인간이었다. 그가 지금 키우고 있는 '남자라면도끼'는 청개구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노하우와 기술의 결정체로 대세에 맞는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정석 캐릭터들과 맞먹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청개구리는 바로 오늘, 남자라면도끼의 세팅과 캐릭터 운영방법을 글로 써서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릴 생각이었다. 그는 자신이 정립한 캐릭터 세팅이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정석캐릭터가 되었으면 하는 자그마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리아는 풋 하고 비웃었다.

"공략? 네 공략같은 걸 누가 본다고 그래?"

"왜 안 봐! 분명히 댓글을 줄줄이 달면서 아 님 짱이네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음? 하고 감탄할 걸?"

리아는 성을 내는 청개구리를 달래듯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리아는 여자치고는 키가 큰 편이어서 남자인 청개구리와 비교해도 그렇게 작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래, 열심히 쓰렴. 누나가 댓글 하나는 달아줄게."

청개구리는 리아의 손을 쳐내며 소리쳤다.

"시끄러! 이 돼지야! 아이스크림 많이 처먹고 살이나 쪄서 나중에 눈물이나 줄줄 흘려라!"

그리고선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화는 나지만 그래도 맞기는 싫은 모양이다.

"야! 너 거기 안 서?"

리아는 화가 난 듯이 손을 흔들기는 했지만 청개구리를 쫒아가지는 않았다. 그녀는 저 멀리 사라져가는 청개구리의 등을 보면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킥킥 웃었다. 정말...... 이럴 때는 완전 애라니까. 리아는 생글생글 웃으며 경쾌하게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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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는 저녁식사를 마치자마자 책상에 앉아 공부를 했다. 전교 이 등이 꽁으로 먹은 자리는 아니었다. 그녀는 원래 공부를 열심히 했다. 쉬는 시간에도 공부를 할 정도니 말 다했다.

공부가 좋아서 하는 건 아니었다. 그녀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공부를 싫어했다. 다만 공부를 잘해야 나중에 편하니까 열심히 할 뿐이다. 타고난 머리와 집중력과 인내심이 있었기에 성적은 좋았다. 하지만 싫은걸 억지로 하는 만큼 스트레스도 심했다. 리아는 그 스트레스를 게임으로 풀었다.

여자아이가 현실에서 누군가를 때리고 거친 말을 하면 미친년 소리를 듣지만 게임에서는 몬스터를 찢어죽이고 육두문자를 남발해도 문제 생길 일 없다. 겉으로 드러낼 수없는 폭력적인 욕구를 해소하는 데는 게임을 하는 게 최고였다.

한참 공부를 하던 리아는 정해둔 시간이 지나자마자 펜과 공책을 집어던지고 컴퓨터를 켰다. 게임은 그녀에게 짜증나는 학교생활을 잊게 해주는 활력수요 생명줄이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청개구리를 만난 뒤에는 게임하는 시간이 더 즐거웠다. 비록 오늘은 청개구리 없이 게임을 해야 한다는 점이 아쉽긴 했지만 그녀는 습관적으로 컴퓨터가 부팅되자마자 콜로세움 오브 콜로세움을 실행시켰다.

게임에 접속한 리아는 광장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오늘은 뭘 할까.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일 대 일 대결을 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별 도움도 안 되는 주제에 말만 많은 팀원들 때문에 짜증이 쌓였던 참이었다. 청개구리도 없는 지금, 사 대 사 대결을 해봐야 스트레스만 더 받을 게 뻔했다.

‘오늘은 혼자 허접들 바르면서 기분이나 풀어야지.’

리아는 마우스를 움직여 팝업창을 띄우고 일 대 일 대결 신청 버튼을 눌렀다. 콜콜은 자동으로 상대를 찾아주는 자동매칭 시스템을 지원했다. 준비를 갖추고 버튼만 누르면 프로그램이 알아서 상대를 찾아 대결을 주선해 주었다.

처음 시작은 좋았다. 리아의 일 대 일 실력은 압도적이었고 대부분의 유저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녀의 일 대 일 승률은 90퍼센트를 넘었다. 리버레이션이 패싸움 보다는 일 대 일에 더 강한 캐릭터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경이적인 승률이다. 리아는 승승장구, 한판도 지지 않고 계속해서 이겨나갔다.

리아는 프로게이머 뺨칠 속도로 키보드와 마우스를 움직이면서 헤실거렸다. 후, 허접한 자식들. 진짜로 내 상대가 될 만한 녀석은 없는 거야? 그녀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계속해서 일 대 일 대결 신청 버튼을 눌렀다. 약간의 대기시간이 지나고 모니터 화면에 커다란 콜로세움이 펼쳐졌다.

모래먼지가 휘날리는 광장 안에 피와 무기와 전차의 잔해들이 널려 있었다. 그 황량한 검투장의 중앙에 두개의 캐릭터가 마주보고 섰다. 리버레이션은 쌍검을 등에 맨 날렵한 복장의 금발 여전사였다. 상대는 '불용'이라는 아이디에 황금빛 갑옷과 투구, 그리고 방패까지 갖춘 기사였다. 게임 속의 캐릭터가 멋들어지게 인사를 나누고, 화면 위로 카운트가 표시되었다.

3, 2, 1, Fight!

싸움이 시작되었다. 리버레이션과 불용은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원을 그리며 돌았다. 리아는 첫눈에 상대가 보통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리아정도의 고수가 되면 상대가 장착하고 있는 아이템, 그리고 약간의 움직임만 봐도 상대의 수준을 알 수 있다. 녀석은 고수였다. 그것도 리아가 승리를 확신 할 수 없을 정도로.

실력이 엇비슷하다면 보통 각자가 가진 캐릭터의 성능과 상성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그 점에서는 불용이 리버레이션보다 유리했다. 리버레이션은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상성에서 비교적 자유로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리버레이션은 어디까지나 빠른 이동속도로 이득을 취하는 캐릭터지 상대방과의 맞대결에 강한 타입이 아니다. 게다가 방패와 검은 공격과 수비의 균형이 좋기 때문에 사용자가 고수이면 고수일수록 약점이 없어지는 까다로운 조합이었다. 하지만 고작 그런 것에 주눅들 리아가 아니었다.

그녀는 곧바로 리버레이션을 움직여 불용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리아는 기술을 사용했다. ‘전신(戰神)의 저주’. 상대방의 방어를 무시하고 데미지를 주는 특수공격 기술이다. 그 어떤 강력한 방어기술도 뚫을 수 있는 기술이지만 방어기술을 사용한 상대에게만 효과가 있는 것이 문제다. 그냥 가만히 서 있는 상대에게 적중하면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하고 사용자의 체력을 깎아먹는 위험한 기술이었다.

리버레이션의 쌍검이 붉게 빛나며 불용을 향해 곧게 찔러 들어갔다. 리아에게는 불용이 반드시 방어기술을 사용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두꺼운 판금갑옷에 방패까지 착용하는 유저들은 성향도 방어적이기 마련이다. 이런 타입의 유저들은 보통 공격이 오면 일단 막고, 그 다음에서야 무엇을 할까 생각한다.

리아의 예상대로 불용은 방패를 치켜 올리며 방어기술을 사용했다. 리버레이션의 쌍검은 방패를 그대로 지나쳐 불용의 몸통을 깊숙이 찔렀다. 전신의 저주에 적중당하면 큰 데미지를 입을 뿐만 아니라 잠깐 동안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러한 ‘기절’ 효과가 약 3초가량 지속되는데, 일상생활에서의 3초와 전투 중에서의 3초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3초면 상대방을 죽이기에는 모자라지만 재기불능의 피해를 입히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리아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버튼을 연타했다.

크아악!

갑자기 불용이 전사 특유의 괴성을 지르더니 기절상태에서 풀려나 이어지는 리버레이션의 공격을 막았다. 리아는 깜짝 놀랐다. 불용같은 방어형 캐릭터라면 상태이상을 해제하는 기술을 몇 개쯤 사용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다만 기술을 사용하는 타이밍이 문제였다. 반응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전신의 저주가 적중한지 0.5초도 지나지 않아 상태이상을 풀어내고 공격을 막았다. 게다가 싸움이 시작하자마자 전신의 저주 같은 기술에 당하면 보통 당황해서 허둥대기 마련인데, 그런 모습도 없었다. 행동가능상태가 된 불용은 리버레이션의 쌍검을 방패로 막으며 동시에 칼을 찔렀다. 매끄러운 기술 연계였다. 허나 리아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리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버튼을 눌러 ‘반격’기술을 사용했다.

‘반격’은 상대방이 공격하는 타이밍에 맞춰서 정확하게 사용해야만 발동되는 기술로 공격을 방어함과 동시에 상대방에게 큰 피해를 준다. 다만 역시 반동이 큰 기술이라 타이밍이 조금만 틀려도 사용자를 기절상태에 빠트렸다. 리아는 불용이 칼을 찌르자마자 기술을 사용했고 기술이 성공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불용은 검 끝이 리버레이션에게 닿기 전에 억지로 방어기술을 사용해 공격을 취소했다. 흔히 모션캔슬이라고 부르는 컨트롤 방법인데, 한 순간에 기술을 두 개 씩이나 사용해야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상대방의 리듬을 무너트리는 엇박자 공격이나 방어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많은 고수들이 즐겨 사용하는 기술이었다.

불용의 모션캔슬에 반격기술은 실패로 돌아갔고 이번에는 리버레이션이 기절 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리버레이션은 불용과 같은 상태이상 해제 기술이 없었다. 무방비상태에서 칼침을 몇 대 맞자 체력이 쭉쭉 달았다.

역으로 위기에 몰린 리버레이션은 기절상태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뒤로 물러섰다. 큰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아직 게임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일단은 거리를 벌리고 한 숨 돌린 뒤 다시 싸우면 역전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불용은 그리 쉽게 리버레이션을 놓아주지 않았다. 이동속도는 리버레이션이 훨씬 빨랐지만 불용은 리버레이션의 이동경로를 예측하고 그 방향으로 공격을 가하거나, 토끼몰이를 하듯이 몸으로 도주경로를 틀어막으며 슬금슬금 따라붙었다. 리아는 솔직히 감탄했다.

“이 자식, 무슨 놈의 무빙이......!”

진짜 고수간의 대결은 한 순간의 기싸움에서 승패가 가려진다. 한번 기세에 밀려서 손해를 보면 그것을 만회할 기회는 쉬이 주어지지 않고, 결국은 그 작은 피해가 승패를 좌우하게 된다. 첫 교전에서 큰 피해를 입은 리버레이션은 계속해서 도망만 다니다가 결국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리버레이션의 시체가 클로즈업 되며 'LOSE'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모니터에 비쳤다.

“쳇. 졌네.”

리아는 입맛을 다셨다. 진 게 분하긴 했지만 그녀라고 해도 무조건 이기라는 법은 없었다. 이길 때가 있으면 질 때도 있는 법이다. 고작 한 번의 패배로 흥분할 필요는 없었다.

리아는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뭐든지 고수가 하수를 상대하면 재미가 없는 법이다. 안 그래도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허접들을 계속 상대하는 게 지겹던 참이었다. 불용은 그녀가 오랜만에 만난 진짜 고수였다. 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암, 저 정도는 되야 진짜로 싸워볼 맛이 나지! 귓속말로 말해서 한 번 더 싸워보자고 해야겠다.

그 때 쓰러져있는 리버레이션을 지켜보던 불용의 머리 위로 말풍선이 하나 떠올랐다.

<<존나 허접이네 ㅋㅋ>>

순간 좋은 기분은 날아가고 분노만 남았다. 리아는 키보드를 부술 기세로 키를 두드렸다.

<<이런 사랑해 아픈아이같은 아이가 죽고 싶냐?>>

<<뭐래 ㅋㅋ 븅쉰 ㅋㅋ>>

리아는 입술을 짓씹었다. 빌어먹을 필터링! 그녀는 게임에서 제공하는 필터링 서비스로는 걸러낼 수 없는 그녀 특유의 욕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입 다물어. 쥐 똥같은 시바랄 놈아. 요단강 건너고 싶어서 환장했냐고.>>

<<진 주제에 말만 많네. 진짜 게임 왜 함? 그냥 게임 지우지. ㅋㅋㅋ>>

<<강아지년이 진짜. 한 판 떠. 개 쳐 발라버린다.>>

<<ㅋㅋ 그래여. 한 판 해요. 허접님. ^^>>

이 새끼가 진짜...... 광장으로 돌아온 리아는 부글부글 끓는 심정을 다스리며 불용의 아이디를 검색해서 일 대 일 대결 신청 메시지를 보냈다. 불용은 대결을 받아 들였고 다시 한 번 리버레이션과 불용이 콜로세움의 중앙에 마주보고 섰다.

리아는 손마디를 우득우득 꺾었다. 넌 죽었다. 어떻게 손도 못쓸 만큼 엉망진창으로 관광태워주지! 그리고 그녀는 졌다.

“이건 말도 안 돼!”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상성 상 맞붙어서 싸우면 이길 수가 없는데 의욕만 앞서서 너무 공격적으로 싸운 탓이다.

불용은 신이 나서 떠들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아는 자신이 여자라는 것도 잊고 콧김을 팍팍 뿜었다.

<<썅알놈아! 또 해! 너 진짜 조져버린다!>>

<<시른데. ㅋㅋㅋㅋㅋ 님 가튼 듣보잡 허접이랑은 재미없어서 안 함. ㅋㅋㅋㅋ>>

듣보잡? 듣보잡이라고? 듣도 보도 못한 잡놈에게 듣도 보도 못한 잡놈취급을 당하자 리아는 충격에 뒷목을 부여잡았다. 대놓고 말은 안했지만 그녀는 자신이 콜로세움 오브 콜로세움 최강 최악의 유저라고 불리는 것을 은근히 좋아했다. 킹오브쓰레기라고 욕은 먹지만 그래도 최강이라고는 해주니까. 최근 명성이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리버레이션이라고 하면 모르는 놈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를 천둥벌거숭이에게 듣보잡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들을 줄이야. 꿈에서도 상상해본 적 없었다.

<<아 진짜 너무 못해서 게임 할 맛도 안 나네. 나 할 거 있음. 나갈 거임. 그럼 즐겜하셈. ㅋㅋㅋㅋ>>

<<나가긴 어딜 나가! 덤벼! 이 호라먹을 노무 색히야!>>

리아는 계속해서 일 대 일 대결 신청 메시지를 보내며 귓속말로 욕을 퍼부었지만 불용은 낄낄거리며 그대로 게임을 종료해버렸다. 불용에게 보냈던 귓속말이 시스템메세지로 돌아왔다.

-그 유저는 현재 접속 중이 아닙니다.

“이런 개새끼가아!”

리아는 벌떡 일어서며 키보드를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키보드와 연결되어있던 본체가 우당탕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리아가 키보드를 책상 위로 내리치려 할 참에,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란이냐?”

리아의 방문이 열리며 금테 안경을 낀 근엄한 표정의 중년인이 머리를 디밀었다. 아버지였다.

리아는 헉 소리를 내며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리아의 아버지는 리아를 얌전한 요조숙녀로 알고 있었다. 아니, 그녀의 아버지야말로 리아가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도록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는 그만큼 엄하고 고지식하며 무서운 사람이었다.

리아의 본모습을 알고 있는 것은 오로지 그녀의 어머니와 청개구리뿐이었다. 다른 사람, 특히나 아버지 앞에서는 절대로 성질을 부려선 안 된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이미지를 모조리 망치게 되니까. 그녀는 키보드를 손에서 떨어트리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에그머니나! 손이 미끄러졌네?”

그리고선 수줍게 아버지를 향해 웃어보였다.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이긴 했지만 영화배우 뺨치는 기막힌 연기였다. 아버지의 두 눈이 지긋이 리아를 바라보았다. 리아는 식은땀을 흘리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

가벼운 침묵이 흘렀다. 다행히 아버지는 리아의 이상행동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안경을 쓸어 올리며 엄숙하게 말했다.

“조심하거라.”

“네.”

문이 닫히자마자 리아는 풀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가슴 위에 손을 올리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큰일 날 뻔 했네.

잠시 숨을 가다듬으며 놀란 가슴을 다스린 그녀는 바닥에 넘어져있는 컴퓨터본체를 일으켜 세우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채팅창에 마우스 커서를 가져다대고 휠을 돌렸다. 방금 전에 있었던 불용과의 채팅기록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그것을 확인하자 잠시 가라앉았던 울화가 다시 솟구쳤다.

빠드드득!

그녀의 하얀 치아가 맞부딪히며 부싯돌처럼 불꽃을 튕겼다. 안경너머로 커다란 두 눈이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손에 잡혀있는 마우스는 끼익끼익 비명을 질렀다. 리아는 지옥의 무저갱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불용인지 개용인지...... 두고 봐라......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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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도끼 전사 공략을 쓰는 데는 네 시간이 걸렸다. 능력치 올리는 법, 아이템 세팅, 스킬 세팅, 운영법, 단점, 장점, 기타 등등. 적을 것은 많았고 시간은 없었다. 생각나는 대로 다 적으려면 날을 새도 모자를 것 같아서 청개구리는 적당히 중요한 정보만 적고 공략을 마쳤다. 청개구리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적은 공략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음, 좋아!”

아무리 봐도 완벽하다. 초보자에게는 초보자에게 필요한 정보가 있고 중수에겐 중수에게 필요한 정보가 있다. 어떤 게이머가 보더라도 얻어갈 것이 있는 수준 높은 공략이었다. 이걸 보고 감탄하지 않으면 눈이 썩은 거다. 제정신이 아닌 거지.

청개구리는 콜로세움 오브 콜로세움의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에 공략을 올렸다. 그리고 두근두근거리는 심정으로 공략에 대한 반응을 기다렸다.

이것 참, 너무 칭찬일색이면 어떻게 하지? 조금은 태클을 걸어주는 놈이 있어야 논리로 밟아주는 맛이 있는데. 이거 공략하나로 네임드되는 거 아니야?

꿈같은 망상을 펼치며 공략에 달릴 댓글과 추천을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반응이 없다. 청개구리는 모니터 오른쪽 하단에 표시되는 시계를 보았다. 벌써 글을 올리고 30분이 지났는데 댓글하나 달리는 것이 없었다. 인터넷 페이지를 계속해서 새로고침 했지만 올라가는 것은 조회수뿐이었다. 그나마 조회수도 올라가는 속도가 시원찮았다.

청개구리는 훗 하고 웃으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애초에 올리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이 있을 거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사실 기대했다.) 천천히 기다리면 된다. 뭐든지 일조일석에 되는 일은 없는 법이다.

공략을 올린지 한 시간 쯤 지났을 때, 그가 올린 공략 위로 새로운 공략글이 올라왔다. 글의 제목은 이거였다.

‘한국서버 랭킹 1위 팀 파이어몬스터즈의 탱커, 불용의 탱킹완전공략.’

“불용이라......”

청개구리는 턱을 쓰다듬었다. 콜콜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청개구리가 과거의 일들만 아는 것은 아니다. 그는 최신정보에도 빠삭했다.

불용은 몇 달 전부터 갑자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신진고수였다. 원래의 아이디는 뭔지 모르고 파이어몬스터즈의 일원이 되어서 불용이라는 캐릭터를 새로 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용은 정석적인 방어형 전사를 살짝 비튼 형태로, 약간 공격적인 성향을 지닌 방어 타입의 전사였다.

보통 팀 간의 싸움이 길어지면 다른 팀원들은 다 죽고 튼튼한 전사와 전사의 뒤에 숨어서 보조만 하던 성직자만 살아남는 경우가 많다. 불용은 일반적인 방어형 전사보다는 덜 튼튼했지만 바로 그런 상황에서 강점을 보이는 캐릭터였다. 게다가 불용은 방어형 전사치고는 상당히 공격적인 운영을 하는 유저로, 굳건히 벽처럼 버티고 서 있다가도 기회가 오면 갑작스럽게 치고나가 상대방의 공격수를 잡아 죽이는 플레이로 유명했다. 축구로 말하자면 강력한 중거리 슛과 헤딩능력을 가진 수비수, 농구로 말하자면 3점 슛까지 가능한 센터 같은 존재다.

불용은 현재 사 대 사 대결 랭킹 1위 팀인 파이어몬스터즈에 속해있었고 그만큼 팀플레이를 잘 했다. 거기에 소문에는 일 대 일 실력도 굉장하다고 했다. 갑자기 나타났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이는 유저다.

다만, 불용도 리버레이션처럼 성격이 안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리버레이션이 사납고 입 더러운 걸로 유명하다면 불용은 다른 사람을 빡치게 하는 말투로 유명했다. 말끝마다 ‘ㅋㅋㅋ’를 붙이며 사람을 골려먹는데, 그 행동 때문인지는 몰라도 불용은 사실 갓 열 살을 넘긴 초등학생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청개구리는 불용의 공략을 보았다. 엉망진창인 공략이었다. 공략이라기보다는 그냥 자기 캐릭터 세팅을 정리해서 올린 거였다. 게다가 이 말투는 뭐냐. 대부분의 문장이 그냥 ~하면 됨 ~하면 껌임 으로 끝났다. 고수가 사용하는 캐릭터 세팅인 만큼 안에 들어있는 정보자체는 괜찮았지만 공략으로써의 가치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은 글이었다. 청개구리는 몹쓸 것을 봤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후, 이런 쓰레기 같은 자식. 공략을 뭘로 보고 이딴 걸 올려. 아무리 네임드 유저라고해도 내 완전무결한 공략에도 반응 없는 놈들이 이런걸 보고 콧방귀나 뀌겠어?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났다. 불용을 사랑하는 전국의 빠순이 빠돌이들은 전부 모인 것 같았다. 실시간으로 댓글과 추천수가 허리케인 폭풍을 일으키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청개구리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숨도 쉴 수 없었다. 그는 찬양 일색의 댓글들을 바라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이런 줏대 없는 자식들. 네임드가 말하면 똥이 된장이라고 해도 믿을 놈들이다. 도대체 공략을 보는 건지 공략에 딸려있는 랭킹 인증샷을 보는 건지 모르겠다. 그는 뒤로 가기를 눌러 자신이 올린 공략을 다시 확인했다.

“어.”

댓글이 하나 달려있었다. 그래도 제대로 된 공략의 가치를 아는 놈이 한 놈쯤은 있는 모양이다. 땡볕이 쬐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는 댓글을 확인했다.

<<요즘 양손 도끼드는 잉여캐를 누가 써요. 진짜 병신님이신가.>>

“......”

청개구리는 그 뒤로 새벽 3시가 되어 어머니에게 한 대 맞을 때까지 댓글을 확인 했다. 하지만 그 때까지 달린 댓글은 오로지 그것 하나뿐이었다. 반면 불용의 공략은 조회수가 만단위에, 댓글이 400개가 넘었다. 게임이건 현실이건 뭘 하려면 일단 명성이 있어야 한다. 청개구리는 그것을 깨달았다.

“이 세상은 시궁창이야......”

청개구리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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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는 시큰둥한 얼굴로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그녀는 어제의 일로 기분이 매우 안 좋았다. 이럴 때는 아무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공부를 하는 게 낫다. 문제를 풀고 있으면 그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안 들어서 좋다. 점심시간이라 사방이 시끄러웠지만 이정도 소음은 익숙했다.

누군가가 리아가 풀고 있던 문제집을 잡아 채갔다. 리아는 고개를 들었다.

“야, 야, 점심시간인데 무슨 공부를 하냐~.”

완전 껄렁하게 생긴 양아치가 앞에서 껄떡대고 있었다. 같은 반이지만 그녀는 놈의 이름을 몰랐다. 같은 반 학생 중 그녀가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 안 되었다.

리아는 울상을 지으며 손을 뻗었다.

“도, 돌려줘~.”

“흐흐, 싫은데?”

정신연령이 초등학생인 놈을 상대하려니 미치도록 짜증이 났다. 그녀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완벽한 범생이 안경소녀를 연기했다. 리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훌쩍였다.

“왜, 왜 그래? 돌려줘!”

리아는 예쁘장하게 생긴데다가 순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어서 자주 짓궂은 남자아이들의 장난거리가 되었다. 지금도 그렇다. 놈은 무슨 새티스틱한 취향이라도 있는지 애처로운 표정의 리아보고선 큭큭 웃었다. 그리고 문제집을 가지고 도망쳐버렸다.

리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생각 같아서는 이미지 관리고 나발이고 당장 달려 나가서 놈의 등 뒤에 플라잉 니킥을 먹이고 뒤통수를 팔꿈치로 찍은 다음, 괴성을 지르면서 그 초딩만도 못한 대가리를 바닥에 열 번쯤 찍어버리고 싶었다.

“으으......”

못 참겠다. 이 이상 범생이 연기를 하다가는 화병으로 쓰러질 것 같았다. 리아는 지친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옥상에 올라가서 바람이라도 쐬는 게 정신 건강에 좋겠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교실 어딘가에 있을 청개구리를 찾았다. 어차피 할 말도 있었는데 같이 가자고 해야지.

청개구리는 자기 자리에 엎드려있었다. 리아는 청개구리의 옆으로 다가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청개구리는 반응이 없었다. 리아는 청개구리가 왠지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 같으면 어딜 감히 함부로 귀한 옆구리를 찌르냐고 구시렁거렸을 텐데. 리아는 다시 한 번 청개구리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을 걸었다.

“야, 일어나봐.”

청개구리는 고개를 들어 리아를 바라보았다. 리아는 흠칫 놀랐다. 청개구리의 얼굴표정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청개구리는 무슨 인생 다 산 백 살 영감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가, 같이 옥상 가서 바람이나 좀 쐬자고.”

“싫어. 안 가.”

청개구리는 다시 책상에 머리를 파묻었다. 리아는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청개구리가 이렇게 된 이유는 뻔했다. 분명 어제올린 공략이 쓰레기 취급을 당했으리라.

공부는 잘 못하지만 청개구리는 게임에 있어서는 전문가였고 모르는 게 없었다. 그건 리아도 인정했다. 근데 그런 전문가의 공략이 왜 실패했을까? 리아는 청개구리의 공략이 왜 쓰레기 취급을 받았는지 알았다. 물론 청개구리의 공략을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안 봐도 뻔하다.

일단은 사람들이 잘하지도 않는 잉여캐릭터의 공략을 썼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잉여캐릭터는 그게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팀을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하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 청개구리는 그냥 대충 적고 말면 될 걸 별의 별 세세한 부분까지 이유와 근거와 증거까지 들어대며 게임으로 논문을 작성했을 것이다. 고작 게임 하나 하는데 누가 그런 걸 보겠는가? 그냥 스크롤 내리는 거지.

어쨌든 청개구리는 지금 삐친 상태였다. 삐친 청개구리를 달래는 데는 입안에 뭔가를 집어넣는 것이 최고다.

“일어나. 빵 사줄게.”

청개구리는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진짜?”

무슨 한 두 살 먹은 애기도 아니고...... 리아는 살래살래 고개를 저었다.

청개구리와 리아는 매점에서 단팥빵과 소로루빵을 하나씩 사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단팥빵은 청개구리꺼, 소보루빵은 리아꺼였다. 점심시간이었지만 옥상은 한산했다. 대부분의 학생은 운동장이나 교실, 혹은 학교건물 뒤편의 작은 공원에서 놀았다.

가을하늘은 파랗고 바람은 시원했다. 옥상에서 보니 형형색색으로 물든 가로수들이 눈에 가득 찼다. 리아는 깊게 숨을 들이키면서 기지개를 켰다.

“날씨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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