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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해 주세요, 회장님
글쓴이: 스느
작성일: 12-07-22 20:12 조회: 2,415 추천: 0 비추천: 0

0. 택월 황일의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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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학년?”

“…….”

“몇 학년?”

“…….”

“몇 학년?”

넘어질 때는 손이 먼저 반응해서 바닥을 짚고, 주먹이 날아오면 목을 움츠리며 눈을 감는다. 말을 걸어오는 미인에게 즉답을 하지 못한 것도 그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처음 보는 미소녀가 말을 걸어온다면 누구라도 당황하잖아? 게다가 소녀의 손에는 커다란 카메라에 취재 마이크까지 들려 있어서, 이쯤 되면 당황하지 않는 쪽이 오히려 비정상이라고 생각되었다.

천천히 당혹스러움을 가라앉힌다. 당황해서 우물쭈물하고 있어봐야 도움이 될 것은 없었으니까.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소녀를 쳐다본다. ……하지만 쳐다본다고 해서 질문의 의도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하늘색 단발이 잘 어울린다는 것이나 인형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 같은, 쓸데없는 정보만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면…….’

머리를 굴리자, 왜 그녀가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선거여론조사를 위한 인터뷰인가. 오늘 오전 10시, 그러니까 2시간 뒤에 학생회장 선거를 진행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기에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게 아니고서는 다른 가능성이 없었기에, 그렇게 단정 짓고는 질문에 대답했다.

“1학년 9반의 권재오입니다.”

“네가 지지하는 건 누구야?”

이번에도 별 생각 없이 대답을 하려다가, 꺼림칙한 기분에 인상을 찌푸렸다. 대답을 지연하고서 마이크를 내밀고 있는 소녀를 훑어본다. 명찰을 달지 않아서 학년을 알 수는 없었지만, 키가 나보다 두 뼘은 작고 젖살도 아직 덜 빠진 것을 보면 나보다 나이가 어렸으면 어렸지 많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런 여자아이에게 반말을 듣는 건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인터뷰니까 일단 응답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순순히 대답했다.

“기호 3번입니다.”

내가 지지하는 기호 3번은 학교에 조경시설물을 설치하고, 동아리 개설절차를 개선하는 등 학생들의 여가 부분을 공략하고 있는 후보였다. 하지만 공약보다는 절세가인이라는 점과 도원고 이사장의 딸이라는 것으로 학생들에게 더 알려졌고, 나도 그녀의 외모에 반한 많은 남학생들 중 한 명이었다.

“왜?”

반말은 무시하고 대답하려고 했지만……역시 신경 쓰였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다른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말을 하면 그녀의 이미지에도 지장이 갈 텐데, 그런 건 상관하지 않는 타입인걸까. 물론 인터뷰를 편집할 때 기술로 처리할 수는 있겠지만.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더 반감이 들었다. 이 소녀에게 훈계를 내려야겠다는 사명감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사적인 원한은 없습니다. 절대로 초등학생에게 반말을 들은 기분이라서 복수하고 싶어진 건 아니에요. 고등학생이나 돼서 그렇게 쪼잔할 리가 없잖아요?

일관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소녀의 눈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그거야 당연하잖아요?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예쁜 얼굴에, 몸매도 착하잖아요. 교복 치마 밑으로 드러나는 꿀벅지는 또 얼마나 대단한지, 가끔 핥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니까요. 그러면서도 품에 쏙 들어올 것 같은 귀여움까지 겸비하고 있고, 누구랑은 다르게 버릇도 있죠. 가능만 하다면 당장 혼인신고서 들고 가서 도장을 찍게 하고 싶을 정도인데요. 안 뽑는 남자가 있다면 그 녀석이야말로 고자라고 생각합니다.”

저질스러운 단어 선택에 몸짓까지 동원한 일방적인 찬미. 내가 한 말이지만 스스로가 생각해도 낯이 다 뜨거워지는 말이었다. 이게 이대로 전파를 타면 정말 죽고 싶겠지만, 방송에 문제가 되는 반말을 편집하듯 이런 인터뷰도 편집할 수밖에 없다. 나를 인터뷰한 시간과 필름을 아깝게 만들고, 찬미를 하는 도중 소녀와 비교를 해서 정신공격까지 시도했다.

입가에 미소가 슬쩍 걸렸다. 어떠냐, 이 버르장머리 없는 초딩아!……내가 생각해도 좀 한심스러웠지만 어쨌든 성공했으니까! 분명 갑작스러운 정신공격에 눈물을 글썽이기라도 하고 있겠지. 속으로는 악당의 웃음을 터트리면서 소녀의 반응을 보기 위해 시선을 옮긴다.

소녀는 할 말은 그게 끝이냐는 듯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끝?”

“……네.”

“의견 고마워.”

그녀는 귀찮은 일을 끝냈다는 것처럼 다른 학생에게로 향했다.……무슨 말이라도 좀 해 주시죠. 소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녀의 하늘색 단발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흔들림은 마치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애써 그 생각을 부정한다. 저렇게 보여도 속으로는 수치와 치욕을 느끼고 있을 게 분명해.

하지만 묘한 불안감이 피어올라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소녀가 다른 학생을 인터뷰하는 장면을 응시했다. 선배로 보이는 그 학생에게도, 소녀는 거리낌 없이 반말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사람은 반말을 쓰는 것이 좋다는 듯 기뻐하면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설마.

반말하는 것은 편집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게 컨셉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속에서 벌레들이 꾸물꾸물 기어오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저 사람은 컨셉이라고 해도 내가 한 발언은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방금 내 수준 낮은 표현이 장식한 대상은 이사장의 딸이다. 이사장은 그 대상이 딸이 아니었을 때도 이성 문제에 얽힌 학생들을 가차없이 퇴학시킨 전례를 가지고 있는 폭군이었다. 편집하는 사람에게 약간의 상식이라도 있다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선거가 시작하기까지는 2시간도 남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편집이 가능한가?

지금 이 시대에 폭동이 일어날 리가 없는데, 화난 군중들의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착각일 것이다. 아니면 마음속에서 엄청난 속도로 번식하는 벌레들에게서 들리는 소리겠지. 벌레들의 이름은 의문이었고, 그들이 잉태한 벌레들의 이름은 불안함이었다. 불안함이라는 벌레들은 때때로 착각이라는 기생충을 몸에 키운다.

“처벌하라! 처벌하라!”

그러니까 착각이야.

군중들을 선동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도.

화난 군중들의 함성도.

해일처럼 밀려오는 인간의 파도도.

제일 앞에서 핑크색 티셔츠를 입고 눈을 빛내는 담임선생도.

“변태왕 권재오를 처단하라! 처단하라!”

“꿀벅지라는 건 인정하지만 그건 음담패설! 양지에서 떳떳하게 할 말이 아니다!”

“도희 언니를 벗겨본 것도 아니면서 함부로 그런 말을 했다면 죽일 거야!”

“근데 지금 이거 뭐 때문에 몰려가는 거야?”

“평범한 노이즈 마케팅이네요. 비천한 1학년생은 어쩔 수 없다니까요.”

“네 이 놈 권재오! 감히 조례 시간에 도망갔다는 건 죽을 준비가 됐다는 말이겠지!”

이런 일로 담합하는 도원고등학교의 미래는 밝네요, 하하하하하…….

망할.

1. 사건발발! Code name - T

─ 오늘은 올해 들어 가장 나쁜 날씨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침 식사를 하며 얼핏 들었던 일기예보는 완벽하게 빗나갔다. 구름 한 점 없고, 태양은 따사로웠다. 분명 달력의 세 번째 페이지가 펼쳐져 있는데도, 기온이 30도 주변에서 머물렀던 그 동안의 날씨와 비교해보니 날씨가 좋다는 것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창문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이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었지만, 향수를 맡게 되면 간만에 찾아온 좋은 날씨는 소용이 없어질 것 같아서 기억을 떨쳐내고는 시선을 교실 안으로 돌렸다. 청춘에 걸맞은 따스한 날씨도 있겠다, 청춘의 나이에 머물러 있는 우리들도 있겠다. 이제 청춘으로 시작하는 이름의 상황만 있으면 딱 보기 좋은 풍경이 될 것임을 알고 있어서, 혹시 누군가가 그런 상황을 연출해주지는 않나 하고 찾아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없었습니다. 내 여자친구는 오른손이라며 자랑스럽게 말하는 남자들과 어제 본 호모만화를 공유하는 여자들로 가득한 1학년 9반에서 청춘이 있을 리가 없죠. 한숨을 내쉬면서, 고백이라도 할 것처럼 얼굴이 빨개져 있는 놈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 학기 초라서 이름은 모르지만, 적어도 저 녀석이 같은 반 여자애에게 고백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제 3자가 이 장면을 목격했다면, 분명 저 녀석이 고백을 하려고 다가간다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꽈배기가 몸에 빙의한 것처럼 걸어가는 놈의 모습은 연기자로써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단한 연기였으니까. 비록 씨름선수에 비견할만한 커다란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몸짓이라서 어제 밤에 먹은 치킨이 역류를 시도하고 있지만.

늘 그래왔듯 소년의 목적지는 소녀들 이 무리를 지어 수다를 떨고 있는 곳이었다.

이미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곧 일어날 상황에 대해서 기대하며 명당을 찾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저 놈에게서 고백을 기대해서 자리를 옮기는 것이 아니었다. 소년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은 유치하면서도 결말이 정해져 있는 장난.

그들의 시선은 소년의 오른손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 시선들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것은 난세를 평정시킬 영웅에게 보내는 신뢰. 그 기세라면 원기옥도 모으겠다. 나야 입학 첫 날부터 너무 많이 봤던 터라 질려버렸지만 흥미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기에 이번의 희생자를 살핀다. 그리고 대여섯 명이 모여 있는 그 무리에서 아직 당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면서 동성애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하고 있는 내 짝꿍, 한미소였다. 맛있는 건 제일 마지막에 먹는다는 말도 있고 우리 반 최대의 위험인물이기도 해서 최초 계획에서는 마지막에 노리기로 했었던 걸로 아는데. 벌써 그 차례가 돌아왔을 리는 없었고 성미 급한 녀석들이 계획을 바꾼 모양이었다.

그들이 조금만 미소를 주의 깊게 봤더라면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텐데.

“아이스께-끼!”

군청색의 교복치마가 소년의 손에 의해 하늘로 가볍게 치솟는다.

강아지가 그려진 하얀색.

저번에도 몇 번 봤던 디자인이었다. 아마 마음에 들어 하는 거겠지. 내가 사소한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미소는 이를 갈며 눈웃음을 지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감히 나한테 했다는 건 죽을 각오가 서 있다는 거지?”

파렴치한은 그녀의 위협적인 말에 고조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근자근 밟아줘!”

그는 예쁜 여자에게 맞는 걸 좋아하는 놈이었다. ‘아이스께끼 계획’을 주선한 장본인이었고, 급우들의 치마에 가장 높은 빈도로 손을 댄 녀석이기도 했다. 큰 덩치만큼이나 맷집도 좋아서 여자들이 킬힐을 신고 밟는 게 아닌 이상은 오히려 상쾌할 뿐이라고 자부했었지.

“정확히 한 대만 때릴게.”

둔감한 남자라면 그녀가 상냥하게 웃고 있다고 착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태생적으로 눈웃음이 귀여운 그녀의 얼굴 탓일 뿐이다. 끝이 살짝 말려 올라가있는 미소의 단발이 오늘따라 더 날카롭게 보이고, 팔에 힘줄 같은 게 보이는 건 착시현상이 아니다. 지금의 상황을 웃으면서 보고 있는 남학생들도, 밟히기 위해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소년도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

첫째, 미소는 각종 격투기 유단자이다. 둘째, 오늘은 미소가 마법에 걸리는 날이고, 미소는 내색을 하지는 않지만 건드리게 되면 폭발한다. 마지막, 셋째.그녀는 지하철에서 치한을 만나면 면상을 날려버리고, 골목에서 불량배를 만나면 가차 없이 두드려 팬 후에 경찰서에 신고했다가 도리어 자기가 범죄자로 의심당한 적도 있는 소녀이다.

요컨대, 미소는 신발에 물컹물컹한 게 닿는다고 해서 처벌을 포기할 순진한 아가씨가 아니야.

“어금니 꽉 깨물어.”

미끄럼 방지용 징이 달린 미소의 슬리퍼가 높게 치솟았다. 아무 저항 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누워있던 소년의 표정이 굳는다. 소년의 다리가 오므려졌다.

“자, 잠깐!”

미소는 상쾌하게 웃었다.

“늦었어.”

“으아아아악!!”

살집 때문에 완전히 가리지 못한 사타구니 사이로 무언가가 직격했다. 으직하는 소리가 들린 건 모두의 착각이기를. 모든 남학생들이 소년의 미래를 기원해주고 있는 가운데, 미소는 ‘저격 성공!’을 외치며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한미소, 잔인하다! 한미소, 무서운 아이!

“얘 거품 물었는데?”

“바지에서 이상한 물이…….”

“119 불러야 하는 거 아냐?”

다른 학생들의 걱정스러운 웅성거림에도 상쾌하게 웃으면서 걸어오고 있는 미소는 어느 만화의 악당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손은 왜 터는 거야, 한 건 했다는 걸 알리고 싶은 거냐? 1학년 9반의 최종병기님은 내 옆에 앉은 후 기분 좋게 웃었다.

“헤헤, 오늘은 한 명 보냈네.”

“……오늘‘은’이라니?”

“아, 어제는 수확이 없었거든. 엄청엄청 아쉬웠어. 그래서 오늘도 없으면 그냥 주변에 있는 사람 걷어차야 하나 생각 중이었는데 마침 잘 됐지.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한 명의 희생자는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일 텐데, 매일 같이 등·하교하는 나는 아직까지도 용케 살아있네요. 폭군의 통치 하에서 살아남은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미소는 웃으면서 가방을 뒤지다가, 문득 떠올린 것처럼 질문을 던져왔다.

“근데 혹시나 해서 묻는 거지만. 너도 봤어?

인간이 눈에서 빛을 내고 있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누님.”

내가 방금 그녀의 팬티를 봤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팬티를 보인 게 처음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차리면 미소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대우가 좋으면 샌드백 정도로 마치겠지만, 그녀의 감정상태가 폭발적인 지금 그걸 알게 된다면 대우는 좀 더 나빠질 것이었다. 하지만 조심성이 없는 것은 미소 쪽이라서, 솔직히 억울했다.

그 폭력성만 없었다면 천연이라고 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순수하고, 조심성이 제로라서 팬…이라던가 브…뭐시기도 자주 노출시키는 그녀의 행동은 보는 사람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하루에 한 번 꼴로 보고 있을 정도라서 요즘은 익숙해졌지만, 그 정도의 빈도라면 다른 녀석들 중에서 본 놈이 한 명쯤은 있을 텐데 왜 말을 하지 않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뭐 어쨌든……기대하는 건 무리였구나.”

“뭘 기대했는데?”

혼잣말인데도 용케 들었네. 미소는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별 건 아냐. 그냥 우리 반에도 청춘 로맨스가 일어나지는 않을까 기대해봤지.”

청춘 로맨스는 개뿔 현실은 성교육 시간입니다. 그것도 여자와 남자의 차이를 보여주는 시간이 아니라, 거부감이 들면 반드시 남자의 거시기한 곳을 걷어차야 한다는 걸 배우는 시간이라서 남자들에게는 죽을 맛이겠지. 남자가 남자를 덮칠 일이 생기지 않는 한은 쓸 일도 없을 텐데, 정작 그것을 가르친 교사는 상큼한 표정으로 말했다.

“청춘 로맨스라면……정신 나간 사촌이랑 동거하는 걸 말하는 거야?”

“그건 오히려 청춘을 깎아먹지 않을까.”

“엄청엄청 젊어 보이는 고모와의 로맨스는? 고모가 집에서 막 진수성찬을 차리고……”

“고모와의 로맨스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리고 더 배고프게 하지 마! 지금도 위장이 음식을 달라고 애원하고 있단 말이야!”

사실 뜬금없이 하늘을 보며 청춘이네 로맨스네 하며 운운했던 것도 배고픔 때문이었다. 아침을 굶은 것도 아닌데 밥을 먹지 않은 것처럼 배가 연신 꼬르륵거리고 있었다. 겨우 잊어가고 있었는데 다시 기억을 살려버리면 어쩌잔 거야.

“이번 교시만 끝나면 점심시간이잖아. 조금조금만 참아.”

부사를 연속으로 연발하는 그녀의 말투 덕분에 참아야 하는 시간이 더 짧게 느껴졌다. 그래, 참자. 고작 1시간도 참지 못할 리가 없잖아. 결심은 했지만 배가 쉴 새 없이 꼬르륵거리는 탓에 의지가 약해지려 하고 있었다. 꼬르륵거리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이번 교시 수업 뭐야?”

미소는 생글거리며 대답했다.

“화학입니다, 고객님.”

“호랑이라니……믿고 싶지 않네.”

불만이 섞인 한숨으로 내 의견을 드러냈다. 하필 화학이냐. 우리의 담임선생이자, 1학년과 3학년의 화학을 가르치는 선생은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남자였다. 천하의 재앙 같은 말장난이 아니라, 60분을 사용해 가르쳐야 할 내용을 20분 만에 완벽하게 가르치는 탓에 학생들로부터 천재라고 불리고 있었다. 물론, 내가 불만을 품는 것은 그 능률적인 수업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40분이나 시간을 남겨주면 고맙지.

“오늘도 소지품 검사 하겠지?”

“당연하지. 왜, 뭐 걸리면 안 되는 도색잡지라도 가져왔어?”

“그럴 리가 있겠냐!”

담임은 수업을 하고 남는 40분을 소지품 검사에 투자한다구요!……라고 얼마 전에 경찰서에 가서 진심을 다해 호소한 적이 있었다, 비록 아무도 믿지는 않았지만. 경찰서에 가서 그렇게 외쳐볼 정도로 나는 내 몸을 멋대로 수색한다는 행위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물건을 숨기기라도 하면, 숨긴 장소에서 그것을 찾아와 물건 주인에게 들이밀며 씨익 웃는 그의 모습에서는 더더욱 거부감이 들었다.

덧붙이자면 별명은 말했다시피 호랑이. 학년부장 선생님으로 오해받을 정도로 큰 덩치나 주황과 검은색이 섞인 깍두기 머리를 보면 납득할 수 있는 별명이었다. 호랑이처럼 날렵한 움직임도 움직임이고, 그런 별명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학생들 사이에서는 공포로 회자되고 있었다.

그나저나 호랑이 수업이라니, 교과서를 미리 꺼내둬야 할 것 같았다. 미소가 책상 서랍에서 교과서를 꺼내는 걸 보고 나도 서랍 안을 뒤졌지만, 서랍 안에는 화학 교과서가 없었다. 사물함에 있는 건가.

“교과서 좀 가지러 갔다 올게.”

“응.”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꼬르륵거리기 시작하는 배를 무시하고, 교실 뒤쪽에 일렬로 서 있는 사물함들을 쳐다보며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겨우 세 발자국을 움직였을 때, 갑자기 기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마치 사물함에 다른 누군가가 손을 댄 것 같은 위화감. 하지만 곧 스스로가 너무 당연한 걸 말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벌써 4교시인데 당연하잖아.’

앞에 세 번의 수업이 있었는데 사물함에 손을 댄 사람이 없을 리가 없었다. 나는 여태까지 교과서가 책상 안에 들어있어서 사물함을 열 일이 없었지만. 쓸데없는 생각을 정리하고 나란히 배열되어 있는 사물함들 중 거의 정중앙에 위치한 내 사물함 쪽으로 다가갔다.

사물함에 걸려있는 세 자리의 비밀번호 자물쇠가 보인다. 분명히 내 사물함이다. 혹시나 해서 붙어져 있는 이름표도 확인했다, 당연하게도, ‘권재오’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하지만, 내 사물함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좀 더 제대로 말하면……누군가가 왔다 간 것 같았다.

‘착각이겠지.’

가끔 겪는 기시감, 데자뷰. 뭐 그런 것의 일종일게 분명했다. 자물쇠를 열기 위해 엉거주춤 앉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불안감을 애써 지워낸다. 다른 때보다 비밀번호를 더 많이 돌렸다, 시끄러운 와중에도 자물쇠의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제대로 들렸다. 천천히, 사물함의 문을 열었다.

“……후.”

역시 착각이었네. 쓸데없는 걱정을 했던 자신이 우스워서 쓴 미소를 지었다. 편지 같은 게 사물함 안에 들어있을 리가 없지. 걱정을 털어내고 열 권 정도의 책들 사이에서 화학 교과서를 꺼낸다. 책의 제목이 ‘생화학무기’ 라고 바뀌어져 있는 교과서가 반보다 조금 더 몸을 드러냈을까, 어쩐지 불룩했었던 교과서 안에서는 무언가가 스르륵 빠져나왔다.

향수가 머리를 지배했다. 고개가 반사적으로 내려갔다.

《아직도 이해가 안 돼? 하긴, 그러니까 병신이라는 소리를…… 》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이 편지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 향수의 장악력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은 편지가 아니었다. 날씨도 그 때와 같고, 사물함을 열기 전에 찾아오는 위화감도 같지만, 안에 들어있는 것은 편지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안심해도 된다. 다행이라고 안도할 수 있잖아. 기껏해야 검은색 티팬티인걸. 기껏해야 검은색 티팬티. 검은색 티팬티. 티팬티. 안심…

…안심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엄청난 순발력으로 팬티를 집어 든다. 그 후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목격자는 없다, 만세! 손에 든 그것을 배 쪽으로 가까이 댄다, 조금 이상해보이기는 해도 이 자세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팬티가 노출되지는 않겠지. 손과 함께 배에 닿고 있는 그것의 부드러운 질감이 야릇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손가락 끝의 촉감이 믿겨지지가 않아서 곁눈질로 주위를 한 번 더 살피고, 고개를 숙여서 손에 잡혀있는 그것을 직접 확인한다. 실크 재질인지 매끄러워 보이는 표면, 보는 내가 다 부끄러울 정도로 아슬아슬한 끈, 야릇한 조명 아래에서 보는 것도 아닌데 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어른들의 물건이라고 하는 게 아니구나. 근데 십 년 뒤에 생긴 여자친구와 손을 잡고 간 호텔에서나 볼 거라고 생각했던 속옷을 학교에서 보게 되는 겁니까!?

아니 그보다, 대체 어째서 내 사물함에 팬티가 들어있는 건데!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고사를 되새긴다. 침착해라 권재오, 넌 속옷을 머리에 뒤집어쓰거나 얼굴에 가져다대고 킁킁거리는 취미를 가진 인간이 아니잖아, 냄새에 민감한 건 사실이지만……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납득해버리잖아!

심호흡을 하면서 냉정을 되찾는다. 사물함을 열기 전에 느꼈던 위화감에 대해 떠올렸다. 그 위화감이란 팬티에 관한 것이었습니까, 도저히 믿을 수 없어서 사물함의 덮개를 닫고 그 덮개에 붙어있는 이름을 한 번 더 확인한다. 내 이름 맞네요. 현실을 도피하고 싶어졌다.

이름을 멍하게 쳐다보다가, 시선을 조금 옮겨 덮개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는 자물쇠를 쳐다봤다. 입이 달려 있었다면 다른 사람에게 몸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뻔뻔스럽게 변명을 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사물함에 팬티를 넣은 건 내가 되는데요? 내가 몽유병 환자라도 된다는 겁니까?……그럴 리가 있겠냐! 눈빛에는 원망스러움이 더해갔다.

하지만 무생물을 쳐다본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기에, 쓸데없는 행동으로 기운을 빼는 건 그만뒀다. 지금은 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지를 생각해야 했다. 다른 학교였다면, 아니 최소한 열흘 전의 고백사건만 없었더라도 이렇게까지 당황스럽지는 않겠지.

학기 초에도 가방에 여성용의 흉부 방어구를 가지고 다니며 자랑스럽게 여자친구 속옷이라면서 자랑하고 있던 놈이 있었다. 그걸 걸린 지금은 선생님들의 노트북 및 수업자료 셔틀로써 움직이고 있고, 주말의 대부분을 사회봉사로 보내고, 여자친구에게도 차이고 여학생들에게는 색골로 취급당하고 있었다.

별 원한이 없었던 그 놈도 그런 취급을 당하고 있는데, 지금도 그 녀석과 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는 내가 지금 상황을 들킨다면 다른 문제아들처럼 퇴학을 시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위기감이 몸을 죄였다. 절대로 걸려서는 안 된다. 특히 소문 퍼트리는 게 취미인 우리 반 놈들이라면 더더욱. 주위의 눈치를 살핀다. 나를 의식하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계속 이런 자세로 사물함 앞에 앉아있게 된다면 내게 문제가 생겼다는 걸 누구든 알아차릴 게 분명했다. 기회를 봐서 대충 주머니에 쑤셔넣고 수업을 들을까? 꽤 괜찮은 생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다른 한 손에 들려 있는 교과서가 눈에 들어왔다.

절대로 불가능하다.

고백사건 때의 일로 내게 감정이 좋지 않은 것은 호랑이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마당에 뻔뻔스럽게 수업을 받아보겠다고? 다른 곳에 숨기고 수업을 받을 수도 없다. 아마 내 코앞에서 흔들어 보인 후에 증거자료를 이사장에게 넘겨버리겠지. 호랑이에게 들키는 것도 위험하다. 그에게서도 도망가야 한다. 이 위기에서 탈출해야만 한다.

하지만 탈출할만한 참신한 방법 따위는 생각나지 않았다. 학교를 벗어날 유일한 방법인 조퇴는 아픈 건 근성으로 버틸 수 있다고 주장하는 담임에게 막힌다. 아니, 그와 마주치는 것부터가 위험했었지. 교실도 위험했다. 이대로 수업을 듣는다는 건 지옥행 열차표를 직접 끊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탈출하자.

일단 지나가는 녀석들의 눈치를 살핀 뒤 팬티를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그 후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거울을 보며 표정을 바꿨다. 그 누구보다도 아픈 사람의 얼굴.……아까 게거품을 문 녀석의 표정을 참고하고 있었다. 내가 선생이라도 조퇴를 시켜주고 싶을 정도로 아파보이는 얼굴. 초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꾀병을 부려왔던 게 빛을 발할 때가 있었구나.

이 상태로 주변 녀석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뒤 양호실에 가는 척을 해서 자리를 벗어나는 게 지금 내 생각으로는 가장 현명한 판단이었다. 표정이 뒤틀리지 않도록 신경을 쓰면서 천천히 내 자리로 돌아갔다. 일부러 소리가 나게 교과서를 책상에 올려놓자, 미소의 시선이 곧장 이쪽으로 향했다.

“어디 아파?”

감사합니다, 누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존칭이었다. 너무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아서 주변에 있는 녀석들도 반응을 보일 적당한 목소리에 너무도 감사했다. 나중에 이 사건을 설명할 수 있게 되면 반드시 감사해야지.

“……아, 아냐. 괜찮아.”

그녀의 표정은 예사롭지 않았다.

“안 괜찮은 것 같은데? 사물함에 다녀오는 새에 뭐 이상한 일이라도 생겼어?”

이상한 일이라는 말에 힘이 실려 있었다. 말의 끝은 의문형이었지만, 그녀의 특성상 이건 ‘무슨 일이 생겼는지 말해’라는 말을 빙 둘러서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미소는 소문을 잘 퍼트리지 않겠지만 다른 녀석들도 이야기를 듣고 있는 마당에, 사실대로 말하고 협조를 구하는 건 어려웠다.

“실은 아까부터 배가 좀 아팠거든.”

“어라? 고프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녀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그렇지 않았다.

“고픈 게 아니라 아픈 거였던 것 같아.”

“그래? 특별한 일이 생긴 건 정말 아니고?”

강조가 들어간 그녀의 말투는 가슴을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내게 사실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녀가 가진 호기심에 대한 욕구를 자극시킨 게 분명했다. 여기서 사실을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생각인가, 아니면 설마. 이 녀석이 내 사물함에 팬티를 넣은 건가?

“……너.”

미소가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흔들리는 건 내 눈이었다. 여기서 들키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 장면으로 변해 영화처럼 머리를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미소가 손을 살짝 뻗어오자,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을 치곤 그녀를 노려봤다. 내 가슴에 차가운 결정이 맺혀가고 있음에도, 미소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웃고 있었다. 그 투명한 미소가 얼음을 녹인다. 그것을 보자, 그녀가 처음 내게 접근할 때 품은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난인 줄 알았는데 정말정말 아픈 모양이네, 눈에 핏발까지 섰어. 미안. 선생님한테 말씀드리고 양호실……호랑이가 양호실에 보내줄 리가 없으니까 그냥 지금 가. 호랑이한테는 내가 말해줄게.”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뒷문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천천히 교실을 빠져나오면서 슬쩍 뒤를 돌아보자,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칠판 쪽으로 돌리고는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그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주머니 속의 물건을 처리하는 일이었기에 생각을 접어두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곧 수업이 시작할 예정이라서 복도는 텅 비어있었다. 점심시간의 복도를 보는 것 같았다. 복도의 공허함이 마음에 밀려왔다. 주위가 조용해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 기분으로 상황을 정리해보자.

빠져나온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뒤가 문제였다. 머리를 아무리 쥐어짜도 학교 안에는 숨길 수 있는 장소가 없었다. 보는 사람이 없다면 복도에 버리는 것도 상관없지만, 학기 초부터 꾸준히 떠돌던 CCTV에 대한 소문 때문에 쉽게 그럴 수가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학교 밖으로 나가 헌옷수거함에 넣어버리고 싶었지만, 미스터 코리아 출신의 수위 아저씨와 100미터를 5초에 주파한다는 대형견이 버티고 있는 이상 정문으로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학교 주위로 사람이 뛰어넘지 못하는 높이의 담장이 버티고 있는 관계로 월담도 불가능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가 왜 이런 상황에 처한 거지?

이런 곤경에 날 잡아넣은 건 대체 누구지?

범인에 대한 증오와 함께 호기심이 치밀었다. 이사장의 허락이 없는 이상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는 정문과 교도소가 떠오르는 담을 생각하면 외부인은 절대로 아니다. 학교 안의 사람들 중에서 나를 이렇게 만들 사람이 있나? 내 자물쇠의 비번을 알아내서 팬티를 집어넣을 정도로 지독한 원한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차라리 불량배들에게 의뢰해서 시비를 걸어오거나, 가방을 몰래 훔쳐서 버리는 수준이라면 기분이 나쁘기는 했어도 큰 피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건 주머니에 들어있는, 고작 한 장의 속옷이 불러올 수도 있는 피해에 비하면 너무 작았다. 게다가 이것은 나에 대해서 많은 것을 파악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가능한 전개였다. 내가 기호 3번―지금은 당선이 되었으니 학생회장―에게 고백을 한 것이야 전 교실에 생방송으로 방송되었으니까 알 수도 있지만, 내가 CCTV의 소문을 믿고 있는 것도, 담임이 소지품 검사를 한다는 것도, 심지어는 내가 언제 어느 교과서를 꺼낼지에 대해서도 전부. 그래서 두려웠다.

그런 깊은 두려움을 내게 심을 정도로 강한 원한을 가진 사람이 있었던가.

부모님은 입버릇처럼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범죄를 저질러 경찰서에 가도 좋은 경험이라며 웃어넘길 바보 아버지나, 그런 아버지를 상식인 이라고 믿고 계시는 백치 어머니지만 나도 그 이야기에는 동의하고 있었다. 나는 결코 평범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학교에서의 나는 다른 학생들과의 교류에서 크게 뒤떨어진 것도 아니고, 다른 학생들을 이끄는 위치에 서 있는 것도 아니다. 언행이 올바르지 못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빈축을 사거나 엄청나게 스펙이 좋아서 시샘과 질시의 시선을 한 몸에 받지도 않는다. 누구에게 딱히 피해를 주지도 않았고 불친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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