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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능력을 지닌 소녀와 여자 귀신만 보는 발정난 스피릿.
글쓴이: 이그란스
작성일: 12-07-21 21:26 조회: 2,221 추천: 0 비추천: 0
3기였나, 4기였나... 지적해주신 것들을 조금 고쳐서 올려보았습니다.
서장은 바뀐 것이 없습니다.
전에 보셨다면 서장은 가뿐히 뛰어넘으셔도 무관합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 지적해주신 레트리츠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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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묘한 능력을 지닌 소녀와 여자 귀신만 보는 발정난 스피릿.


서장 스피릿을 쓸 수 있는 불행한 녀석.


보통 길거리에서 뿅~ 하고 괴물이 나타나고, 매일 괴물과 맞닥뜨리는 소녀가 있다면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아니, 나는 천공 도시로 이주한 것도 쉽사리 못 믿는 마당에 그럴 순 없을 거라고 생각해.
그래 적어도ㅡ작은 괴물이라면 천공 도시에선 가끔 볼 순 있으니 이해한다구.
하지만 그 뿐이야. ‘괴물’을 처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시’에서 거대한 녀석이 출현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이 소녀를 만나기 전, 불과 2일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어.



그림자들을 감추는 어둑한 밤.
“뭐야야아아! 정말로! 이게 어떻게! 어떻게 해서! 막 보충을 끝내고 돌아온 나에게 이딴 거지같은 일이 일어나는 거야?!”
속으로는 불가능이다아아! 하고 외치면서도 연우는 미친 듯이 달렸다. 연우는 자기 등에 매달려 있는 소녀를 힐끗 보았다. 그러나 급박하게 뛰어가는 상황에도 곤히 잠들어 있자 왠지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원래는 자신이 당하는 일이 아니라 소녀가 당하는 일일 텐데.
왜 자신은 이딴 개고생을 해야 하며, 소녀는 이리 편하게 잘 수 있는 것인가.
세상이 불공평해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물론 소녀를 그냥 지나쳤으면 이러한 일은 없었겠지만….
몇 달 전부터 알고 지내던 소녀였기에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야야야야! 눈 좀 떠봐!”
제발 이 상황 좀 이해하라고 소녀를 깨우지만 오히려 연우는 울화가 터졌다.
“음냥음냥~ 등은 푹신푹신.”
이딴 개소리나 하고 있는 것이다. 연우는 하는 수 없이 대략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빠르게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를 노려봤다. 이윽고 연우는 바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보통 고등학생의 달리기로 5분 동안 전력을 다해 달렸다.
그런데 아직도 따돌리지 못하고 이 모양.
자신에게 불행한 일이지만 왠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그리고 여기까지 당도했다면 답은 저절로 나온다. 도저히 순수한 달리기로 따돌릴 녀석이 아니다.
무언가 사기를 쳐서 달리기 속도를 대폭 상승 시키지 않으면 따돌리지 못한다.
그렇다고 싸워서 충분히 이길 놈이었다면 이런 고생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쉽게도 자신은 ‘공명석’을 다룰 수 없는 최하 클래스.
싸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너도 참 ‘공명석’을 멋지게 사용할 수 있는 녀석한테 걸릴 것이지! 왜 매번 나 같은 놈한테 걸려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만드는 거야!”
소녀에게 푸념을 늘어놓지만 전혀 듣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포근히 잠든 미소만 보여줄 뿐이다. 연우는 뭐가 이런 녀석이 다 있냐는 듯 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달리는 걸 중지하지 않았다.
앞길을 가로막는 바리게이트(?)들은 전부 거칠게 거둬 차버리고, 인파를 뚫으며 고함소리를 한껏 지르면서 다리의 기어를 밟는다. 무작정 달리는 일이지만 이것이 얼마나 귀중한 역할인지 아는 녀석은 연우와 쉽게 친구를 먹을 수 있을 것이다.
“크아아아! 서프레스는 아직도 멀었습니까아아아?!”
밤이라고 해도 여기는 제 2지부다. 방금도 여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을 폭풍처럼 뚫고 지나가 쌍욕을 얻어먹었다. 또한 지금 막 얼핏 보아도 깡패들이 모여 있는 무리를 뚫어서 ‘검은 그림자’ 말고 연우를 쫓는 추적자가 더욱 늘어난 듯 했다.
그리고 진정 연우가 노린 건 이것이었다.
제 2지부에 널린 깡패들이 모조리 쫓아온다면 폭동이 일어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천공 도시의 경찰인 ‘서프레스’가 분명 몰려올 것이다.
그럼 게임은 종료.
서프레스들에게 이 괴물을 맡기고 자신은 도망가면 끝이다. 스스로도 완벽한 작전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단 한번, 단 한번 길을 잘못 들어서 모든 게 무산됐다.
“…막다른 길.”
신이 자신을 농락하지 않고선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정말 이럴 수는 없다.
절망에 빠졌던 연우는 막다른 길을 등지고 돌아섰다. 역시 그곳엔 많은 인파가 서있었다.
“헤이! 너가 나를 치고 간 간댕이가 부은 자식이리~?”
“넌 여기서 다이다이~”
도저히 한글처럼은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이것만은 알 수 있었다.
녀석, 검은 그림자가 왔다.
“크르르르릉!”
늑대 같은 소리를 내면서 많은 인파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솟아올랐다. 연우에게로 달려들 기세였던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놀랐고, 검은 그림자의 정체를 보자 누구랄 것도 없이 전부 도망쳤다.
당연한 결과였다고 연우는 생각했다. 깡패는 곧 주먹의 힘이라는 건 일반적인 도시에 대한 것이지, 이 도시 한에선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힘을 가지고 있는 건 ‘공명석’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녀석.
즉, 학교에서 최상위 클래스. S반 근접한 곳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 거의 ‘공명석’을 제대로 다룰 수 없어 약한 녀석들이다.
참고로 연우는 최하 클래스 F반이기 때문에 전투 능력은 제로다.
“크르르르르.”
인간처럼 직립보행에 신장 5미터로 변하고,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녀석은 침착한 눈빛으로 연우를 바라봤다. 거의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빛과 다름이 없지만 연우는 겁을 먹거나, 두려워하진 않았다.
“…제길. 이렇게 되면 살 방법은 하나뿐이잖아?”
연우는 천년이나 수명을 감소시키는 듯 한 한 숨을 내쉬었다.
그렇다.
연우가 아무런 능력이 없었다면 이미 오래 전에 괴물에게 당했을 것이다.
등에 업힌 소녀는 만날 때마다 괴물과 조우하고 있었으니까.
괴물을 어떻게든 하기 위해 등에 짊어진 소녀를 연우는 딱딱한 땅에 잠시 내려놓을 때였다.
괴물은 먹잇감이 움직였다는 것을 포착했는지 주먹으로 강력하게 땅을 내려찍었다.
인간과 비슷한 두 주먹을 단순히 내려찍었을 뿐인데 파괴력은 장난이 아니었다.
땅은 무너지고, 파편은 여기저기 튀어 올라온다. 주변에 있던 건물들도 영향을 받았는지 폭포수처럼 우수수 파편들이 떨어지고, 그 중에는 연우에게 힘차게 날아가는 파편도 있었지만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연우가 스스로의 심장을 향해 쐐기를 박듯 오른쪽 손으로 찔러 넣었기 때문이다.
“후아압…큭…!”
고작 사람의 손에 불과한 연우의 손이 심장을 관통하는 듯 싶더니 회색빛이 일그러진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별로 달라진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연우가 가볍게 파편을 향해 주먹을 뻗었을 뿐이었다. 무섭게 날아오는 파편이 한 조각도 남지 않고 소멸됐다. 마치 원래 그 자리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영혼 공명.
일명 스피릿.
자신에게서 ‘소중한 능력’을 주는 대신에 원하는 강함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다.
‘공명석’을 쓰지 못하는 연우에게는 아주 유용하고, 좋은 듯 한 능력이지만 실상을 보면 그렇지 않다. 강함을 얻고 난 후의 후유증을 보면 말이다.
연우가 생각하기에 소중한 능력.
사람이라면 잃어서는 안 될 능력을 대가로 사용한다. 공을 차는 능력을 잃을지, 공부를 하는 능력을 잃을지, 무엇을 잃을지 알 수는 없으나 알아내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바로바로 증상이 일어나니까.
만약 공을 차는 능력을 잃었다면, 축구를 하는 순간 바로 알 수 있다.
공을 차려고 할 때마다 꼭 무언가의 방해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설령 해가 쨍쨍하고, 아무런 방해가 없는 곳에서 멈춰 있는 공을 차려고 한다 해도 결과는 같다.
결코 일어날 수 없는 현상.
지진이 일어나거나, 아무 이상이 없는 공에 공기가 빠지거나, 연우의 뒷골이 땡겨 기절하는 둥 이유는 여러 가지다.
“오늘로 정말 마지막으로 쓸 거니까!”
능력 때문에 눈물을 흘린 연우는 주먹을 꽉 쥐고 괴물에게 격돌했다.
그리고 그 날 연우는 또 소중한 능력 하나를 잃었다.


제1장 소년은 또 그렇게 운다.


“…에 그러니까 전 지금 당신이 당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잠든 소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연우는 잠시 목욕을 하고 나오자 머릿속이 난잡해지는 현상을 겪어야만 했다. 어느 새 깨어나 있던 소녀가 연우를 바라보면서 정좌를 틀고 이상한 말을 꺼냈기 때문이다.
“후에ㅡ말 그대로일걸?”
“아, 아니ㅡ! 그 말대로가 어떻게 당신을 여기서 살게 해달라는 이야기인 겁니까. 뭔가 교묘하게 이야기가 비틀어지고 이상하지 않나요?”
여기서 살게 해 달라는 소녀의 어이없는 주문. 즉, 이 말은 남녀 간의 동거라는 소리다. 때마침 가족들은 연우와 멀리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에 지금 집에 있는 건 연우 혼자뿐.
물론 여기가 대한민국이 아니라 우주에 쏘아져 있는 위성에게도 위치가 잡히지 않는 ‘천공 도시’지만 연우의 근본은 대한민국이다. 그렇기에 피로 이루어진 혈연도, 결혼도 하지 않은 젊은 남녀가 같이 지낸다는 건 연우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런데도 소녀는 뭐가 이상하냐는 둥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웅? 전혀 이상하지 않아.”
당신에게는 이성이란 존재하지 않는 듯 싶습니다. 연우는 소녀를 위아래로 약간 훑었다.
다른 말 필요 없이 우선 귀엽고, 예쁘다.
연우가 로리콘이라서 이런 판단을 내린 것은 결코 아니다.
백옥 같은 피부는 물론이며, 복숭아의 껍질을 빻아서 짙은 분홍색을 추출해낸 것처럼 예쁘게 분홍색으로 물든 머리카락이 방바닥에 정신없이 흐트러져있고,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창공보다 더욱 상쾌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눈동자로 보는 이를 즐겁게 만들어준다.
복장은ㅡ매일 만날 때마다 입고 있었던 드레스.
멀리서 보았을 땐 주황색으로 물든 고급스러운 드레스 같았지만 제대로 보니 묘하게 다른 느낌을 주었다.
뭐라고 할까.
무언가 익숙한 느낌이지만 딱 부러지게 생각나는 건 없었다.
각설하고.
연우가 무엇보다도 하고 싶은 말은 이런 예쁜 아이가 여기서 살게 된다면 꽤나 골치 아파질 것 같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혈기왕성한 17세다. 미숙한 상태로 이 아이와 살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라고. 너가 돌아가야 할 장소는 하나 정도 있을 거 아니야?”
“없어.”
잘못들은 건 줄 알았다.
“…뭐?”
“돌아갈 장소 없어.”
듣긴 들었어도 진담이 아닌 줄 알았다. 그런데 눈동자를 보니 그러한 장난을 치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너 여기서 살아봤자 좋은 건 안 나와.”
“좋은 거?”
그게 뭐냐는 눈치였지만 연우는 손뼉을 치며,
“그래, 예를 들자면 청소 같은 것을 매일해도 쓰레기는 나 때문에 방구석에서 넘쳐날 거라고?!”
자랑은 아니지만 연우는 방의 상태를 보라는 듯 팔을 벌렸다.
몇 십 개의 잡지, 책, 신문지, 닦다가 놓아둔 걸레와 주스 자국, 정돈되지 않은 이불과 베개, 머리를 빗는 빗들을 전부 어질러져 있고, 쓰레기통에 있어야 할 쓰레기들은 방 구석구석에 놓여있다. 싱크대에 있는 접시들은 며칠 간 닦지 않아서 썩은 냄새가 진동을 했고, 음식물 쓰레기도 버리지 않아 파리들이 주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냉장고 안의 상태도 밖의 상황과 비슷할 것이리라.
조만간 A/S센터를 불러서 수리를 해야 했으니까.
“우에에ㅡ대단해.”
방안이 어질러져 있던 것을 소녀도 그제야 눈치 챘는지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음음하고 혼자 사는 남성의 방을 마음껏 감탄해라 하면서 연우는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다지 기분은 좋지 않았다.
“그래도 나 여기서 살래.”
“으응?”
결코 거부할 수 없게끔 순진무구한 아이의 표정을 짓는 소녀다. 그것을 본 연우는 어째서!! 스스로 말하기 눈물 나지만 이딴 쓰레기 같은 방이 뭐가 좋다고 산다는 거야?! 마음속으로 외치고 무릎을 꿇으며 절망에 빠졌다.
“안 돼?”
“돼…가 아니라!!”
한순간 본심이 나올 뻔했지만 연우는 꾹 참았다. 그리고 원래 내뱉어야 하는 말을 하려고 했다.
“안 되는 게 당연하잖….”
“…후에ㅡ.”
울먹이는 소녀 때문에 내가 죽일 놈이다! 연우는 창문을 박차고 슈퍼맨처럼 뛰어내릴 뻔했다.
“아니, 왜 우는 거야!”
괜히 혼자 나쁜 놈이 되어버린 듯 한 상황에 연우도 울고 싶었다.
“그치만…그치만. 나 여기서 살고 싶은걸!”
“…이유는?”
목욕한 후 나온 뒤 이유는 들었지만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기에 다시 되묻는 것이다. 그렇게 주먹을 쥔 손으로 눈물을 닦고 애써 소녀가 말한 건 딱 하나였다.
“세상이 너무 각박해.”
이런 이유다.
연우는 좀 더 현실성 있고 거절하지 못할 굉장한 이유를 말했으면 좋겠지만 이 소녀에게 그러한 것은 바랄 수 없을 것 같다. 진심으로 우러러 나오는 듯 소녀의 퉁퉁 부은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결코 세상이 각박하다는 것이 현실성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는 그러한 것이 넘치고 흐르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이유만으로 자신과 동거를 한다고 하니 연우는 이해하려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저기 말입니다.”
“왜?”
“혹시 또 거절하면 울 겁니까?”
만일을 위해 물어보지만 소녀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리고 저건 100프로라는 수치를 뛰어넘어 120프로 울 기세다. 곤란한 상황에 빠진 연우는 무덤덤하게 옷을 주섬주섬 방바닥에서 주워 껴입더니,
“좋아.”
소녀의 얼굴은 눈부시게 펴졌다. 연우는 그런 소녀를 보며 차라리 잘됐다고 판단했다. 계속해서 말하지만 사실 소녀와 마주칠 때마다 괴물과 조우하고 있어서 상당히 골치였기 때문이다. 그 괴물이 ‘작은 놈’이라면 연우도 평범한 주먹으로 처치할 수 있겠지만 매일매일 소녀가 만나는 건 ‘큰 놈’이라서 골치가 아프다.
그러나 이제 소녀가 여기서 살게 된다면 그러한 일과도 헤어질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소녀와 만날 때마다 능력을 잃는 일은 이제 안 해도 된다는 것이다.
“단! 조건이 있어.”
“조건?”
“기다려봐.”
연우는 펜과 종이를 서랍에서 꺼내더니 차례차례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적었는지 종이를 펄럭이며 소녀에게 건네주었다.
“거기에 써져 있는 양식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 것.”
“흐에…무언가 야한 조건이라도 써져있을 것만 같아~”
신고 당해서 잡혀갈 일 있냐! 하면서 연우는 고개를 휙 돌렸다. 소녀는 그런 연우에게 미소를 짓고 종이에 써져 있는 글을 읽어 내려갔고 곧 말했다.
“좋아.”
“그럼 계약은 성립이네.”
연우는 심호흡을 하고 가장 묻고 싶은 것을 물었다.
“너 이름이 뭐야?”
야, 너 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것도 질리던 참이었다. 이왕에 이렇게 된 거 이름이라도 알자는 심보인 것이다. 소녀는 이름쯤은 아무것도 아닌지 쉽게 알려주었다.
“흐으응~ 지금 붙여진 이름은 세린. 이 세린이던가.”
“지금 붙여져?”
“흐응, 응. 연구소의 어느 착한 사람에게 붙여진 이름이야.”
‘연구소’라는 말이 신경 쓰이기도 하지만 연우는 사소한 건 뒤로 잠시 미루어두었다.
“그럼 잘 부탁한다고. 세린아.”
“응.”


1


“받아랏! 괴물! 너를 이번 공격으로 끝내버리겠어!”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정의의 용사 대사를 제쳐두고, 왠지 모르게 세린이가 보고 있는 것을 함께 보고 있는 연우는 입에서 음? 이라는 묘한 소리를 냈지만 결국 헛웃음이 나왔다.
이 웃음은 결코 TV에서 시청해주는 프로그램이 재미있어서가 아니다.
“…설마 저런 곳에 공명석을 쓰진 않겠지.”
중얼거리는 연우. 하지만 단순히 용사물인가, 용자물인가 하는 프로그램을 찍는데 공명석을 사용한다면 그건 틀림없이 웃기는 일일 것이다.
자원낭비고, 인력낭비다.
공명석.
오로지 천공 도시에서만 생성되며,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되는 구슬이다. 그렇다고 영혼이 들어 있다고 해서 구슬이 직접 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인간들이 지레 짐작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이름을 붙인 이유는 이 구슬은 주인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이유다.
또한 얼핏 보면 동그란 구슬처럼 생겼지만, 안을 살피면 천공 도시에서 어느 순간부터 지구에 나타난 괴물을 퇴치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도구다.
단순한 구슬이 무지막지한 괴물을 어떻게 처치 하냐고 묻는다면, 단순하지 않으니까 공명석이라는 것이다. 막상 전투에 돌입할 때는 사용자가 구슬의 형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데 모습은 여러 가지다.
검, 활, 창, 총, 지팡이, 단도, 비수, 갈고리 등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
덧붙이자면 공명석의 강함은 빨강색부터 시작해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파랑색, 남색, 보라색 순이다. 당연히 빨강색이 최하이며, 보라색이 최상의 강함을 가지고 있다.
공명석의 강함을 결정하는 여부는 ‘재능’도 재능이지만, 실질적으론 괴물들을 처치한 ‘수’다.
먼저 사람들은 살아있는 것들을 ‘양기’라고 부르며, 죽어있는 것, 불길한 분위기를 내뿜는 것들을 ‘음기’라고 말한다.
괴물들은 대체로 ‘음기’를 몸에 지니고 사는데 그것을 공명석이 흡혈귀처럼 빨아들이고 자체 강화를 시도한다. 그러나 괴물들이 순순히 자신들의 생명인 ‘음기’를 줄 리가 없으니, 죽이고 난 후 죽을 때까지도 간직하고 있는 ‘음기’를 추출해내면서 공명석이 성장하는 것이다.
어찌됐든 요즘은 그래픽들이 발달하여 대충 CG로 덧붙여도 상당히 생동감 있게 나올 수 있을 테니까. 굳이 공명석을 사용해서 괴물을 처치하지 않아도 될 터다.
뭐, CG로 덧붙이는 순간 연우의 눈에는 그것이 CG로 만들어진 것인지 정말로 공명석을 사용한 것인지 전부 보이지만 말이다. 아마도 공명석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스피릿의 영향이 있는 모양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공명석을 사용할 수 없는 F랭크, 자신이 공명석을 판단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역시 사용하잖아. 참…. 어쩐지 저 괴물이 불쌍해졌어.’
저 작은 괴물도 분명 CG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괴물을 어딘가에서 수입한 후 방송에 내보내고 있다던가 하는 것도 아니다. 괴물을 죽이는 건 되도, 사고파는 행위는 천공 도시의 법에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으니까.
길을 걸어가다가 우연히 본 괴물을 상대로 비밀리에 세트장을 맞추고 촬영한 것임이 확실하겠지.
“알 게 뭔지.”
여기서 괴물이 어쩌고, 공명석이 어쩌고 해도 결국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세트장에 직접 찾아가 말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말이다.
연우는 TV에 고정되었던 시선을 세린이의 뒷모습으로 돌렸다. 그리고 근처로 가서 앉은 후 아직도 TV를 열심히 시청중인 세린이의 어깨를 살짝 건드렸다.
“세린아.”
“으음?”
세린이는 뒤를 돌아봤고, 서로 마주보는 상황이 연출됐다. 세린이는 괜찮은 듯 싶지만 반대로 연우는 너무 가까워서 심리적인 압박에 시달렸다. 애초에 여자들과 잘 이야기 하지 않는 연우에게 이러한 형태는 무리였다.
그래도 연우는 거리를 3m 정도로 수정하고 애써 무덤덤하게 대화를 시도했다.
“‘일단’은 같이 살게 됐으니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
“에ㅡ무얼?”
인형 같은 얼굴이 쭉 쳐진다. 동시에 너, 너무 강력해! 라고 소리친 후 도망가고 싶었지만 연우는 듣고 싶은 말을 위해서 꾹 참았다.
“…넌 왜 그런 무식한 괴물들에게 쫓기었던 거야?”
여태껏 세린이를 만날 때마다 제일 묻고 싶은 내용이었다. 괜히 원망하는 건 아니지만 그도 그럴 것이 세린이를 만나는 날마다 연우의 능력은 하나 둘 씩 사라져갔기 때문이다. 적으면 한 개정도의 능력을 잃지만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인해 최대 세 개의 능력이 날아간 적도 있었다.
“괴물?”
세린이의 동공이 커졌다. 마치 괴물이 뭐냐고 물어보는 듯 한 눈동자 같다. 연우는 괴물을 모를 리가 없을 터인 세린이에게 조금 다르게 이야기 해보았다.
“너를 괴롭히던 녀석들 말이야.”
세린이는 그제야 아? 하고,
“거대하고 큰 아이 말하는 거지?”
“…거대하고 크다니.”
거대하고 큰 녀석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말 그대로 괴물이 옳을 것이다. 하나 같이 천공 도시에선 결코 볼 수 없는 괴물 같은 놈들뿐이었으니까. 아마도 그런 강력한 괴물들은 천공 도시 외부, 즉 바깥으로 나가야 만날 수 있을 것이 확실하다.
“그 애들이 나를 괴롭히는 이유는 음…. 모르겠는데?”
세린이는 아쉽다는 듯 한 숨을 내뱉었다.
“하나 같이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처지에 있어 가지고 대화를 나누어 본적이 없거든.”
저건 또 무슨 말이야 하고 연우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자기의 파괴본능으로만 움직일 터인 괴물과 대화를 나눈다? 절대 평범한 인간들이 생각할 수 없다.
“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보는 거야?”
“그것도 그럴 게 대화를 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나요?”
“뭐가? 괴물이랑?”
“네.”
“전혀 이상하지 않는데?”
“전~혀 이상한 게 아니라 이상한 거야! 어떻게 괴물과 대화를 나누냐고. 그런 크르르릉! 카르르르릉! 키르르르릉! 콰카카카캉! 하고 이상한 소리만 내는 무식한 놈들과!”
“우에ㅡ? 그러는 연우가 더 이상하지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세린이다. 만? 이라는 단어가 신경이 쓰이기도 하나, 여동생 이외의 여자, 세린이에게 처음으로 이름을 불렸기 때문인지 연우는 볼이 발그레 졌다. 이윽고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해진 연우는 자신의 볼을 양팔로 툭툭 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겠어. 다시 말해 쫓기는 원인을 모르겠다는 거지? 그럼 쫓길만한 짓을 했다던가, 그 비슷한 짓을 한 일은 없었어?”
본인이 모르겠다고 하니 넘어가도 상관은 없겠지만 그래도 연우는 꼬치꼬치 캐물었다. 세린이가 비정상적으로 많은 횟수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이 괴물들과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경을 끌래야 끌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천공 도시에서 괴물과 마주하는 일은 거의 없다. 퍼센트로 따지면 로또 1등에 당첨되는 확률과 맞먹을 것이다. 괴물들을 퇴치하는 집단의 본거지로 쳐들어 올 간 큰 놈은 별로 없거니와 있어도 단순한 주먹으로 퇴치할 수 있는 잔챙이 같은 녀석들뿐이다.
세린이는 입술을 내밀면서 생각하는 듯 싶더니 곧 해답을 내놓았다.
“내가 연구소에서 나왔기 때문일지도…….”
“연구소?”
그 전에도 이름을 연구소 같은 곳에서 붙여주었다고 했는데……. 무슨 연관이 있는 거지? 하고 연우는 이마 속에 봉인된 해마의 아드레날린을 마구 돌렸다. 그러므로 명탐정은 아니지만 대략적인 것은 유추해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세린이는 연우가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에 빠지고 있을 때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나도 화려한 드레스 같은 옷 때문에 동화책 속에 나오는 공주가 조심스레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세린이는 재미없고 따분한 남성의 방을 둘러보더니 끝내 냉장고 앞으로 당도했다.
“배고픈데…여기 안에 있는 거 먹어도 돼?”
골똘히 생각 중이라 미처 세린이가 움직이는 것을 파악하지 못한 연우는 놀란 눈빛을 띠었다. 냉장고 앞에 서 있는 세린이를 보고 놀란 게 아니라, 그 냉장고를 열려고 하는 시늉을 보이는 세린이를 보고 놀란 것이다.
“여, 열면 안 돼!”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는 쳤지만 때는 늦었다. 세린이가 에에? 하기도 전에 기운 빠지는 삑! 소리가 나더니 방안의 모든 전기가 꺼져버렸다. 보나마나 현관에 있는 차단기가 내려가 모든 가전제품이 맛이 갔겠지.
“제길, 망했다.”


2


연우의 집은 거실하나, 화장실 하나, 베란다 2개, 방 3개로 나뉘어 혼자 살기에는 너무 큰 집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세린이와 사는 것이 어찌 보면 행운일 수도 있겠지만 다르게 보면 불행일 수도 있다.
세린이가 방의 구조를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고통 속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냉장고. 냉장고를 특수한 방법으로 열지 않으면 방금처럼 모든 가전제품이 작살나는 수가 있는 것이다.
“잘 봐. 냉장고를 열 땐 이렇게 여는 거야.”
세린이가 유심히 지켜보고 있을 때 연우는 냉장고의 손잡이를 굵은 밧줄로 단단하게 묶었다. 그리고 차단기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 냉장고의 손잡이로 이어져 있는 밧줄을 잡고 미리 준비한 빨간 노가다 장갑을 꼈다.
장갑을 낀 손으로는 차단기가 내려가지 않게 꾹 누르고 동시에 밧줄을 잡아당겼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절전 없이 냉장고가 열렸고, 세린이는 어째선지 신기한 눈동자로 연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연우는 그것을 동정의 눈빛이라고 오인하여 망연자실했다.
“…나도 알고 있어. 어휴, 내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어버렸는지.”
그 놈의 ‘여자 귀신’들이 문제다.
연우에게는 ‘스피릿’ 때문인지는 몰라도 귀신이 보인다. 그것도 남자 귀신이 아니라 여자 귀신만 말이다. 그렇다고 사실 연우가 엄청나게 밝혀서 남자를 여자로 만들어버리는 효과가 있다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러한 건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설정일 것이리라. 그런 감동도 재미도 없는 설정을 만들어서 무얼 할까. 설마 잘 사귀던 여자가 남자였다는 죽여 버릴 설정을 바라는 건 아니겠지.
각설하고.
냉장고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도 앞에 말했듯 전부 ‘여자 귀신’들 때문이다. 또 다른 에러사항도 많이 있지만 일일이 생각하다가는 연우의 머리는 화가 돌아 터져버릴 것이다.
스피릿으로 소모해버린 그 놈의 능력을 얻기 위해서라고 해도 그렇지, 상황이 이 지경까지 왔으면 한 줌의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우에ㅡ밥은 언제 줄 거야?”
슬픈 일들이 속속히 떠올라 따뜻한 물이 연우의 눈가에 흐르고 있을 때 세린이가 물었다. 연우는 냉장고가 열리는 게 보이자 차단기에서 손을 뗐다. 몇 분이 지나면 또 차단기가 내려갈 테지만 냉장고를 그렇게 오래 열어둘 생각은 없다.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들을 연우는 하나 둘씩 꺼내고 싱크대에 올려놓고선,
“…이것뿐이라니.”
부족하다. 한 달을 버티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재료다. 물론 자신 혼자서 산다면 어떻게든 남자의 근성을 발동해 버틸 수 있었겠지만 혼자 사는 건 몇 시간 전에 졸업했다. 연우는 혹시나 해서 냉장고 옆에 있는 달력을 확인하고….
“젠장, 안 보는 게 더 좋았다고.”
아버지에게서 돈이 들어오는 기한이 진짜 한 달이기에 요번 달은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버텨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돈이 없으면 몸이 고생한다는 것을 느낀 연우는 막막한 심정으로 식탁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는 아이처럼 산만하게 앉아 있는 세린이가 있었다.
연우는 얼른 준비해야겠다고 판단하며 음식을 열심히 만들었지만 망해버렸습니다. 에헷~
“가 아니잖아!”
거의 음식 쓰레기와 다름이 없는 완성된 요리를 보고 어째서? 실패한 원인이 뭐지? 하고 연우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처음부터 다시 요리의 레시피를 생각한다면 실패확률은 0%에 가깝다. 초보자도 쉽게 만들 수 있는 비빔밥과 비슷한 요리였으니까 말이다. 재료를 넣고 비비기만 하면 되는데 실패하는 것이 이상할 것이다.
물론 뜻하지 않게 재료를 팍! 하고 쏟아 부은 죄도 있고, 갑자기 싱크대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터져 폐기물이 비비고 있는 음식으로 약간 들어갔긴 했지만 이런 음식이 되려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야 되는 걸까. 이건 도저히 사람이 먹을 음식이 아니다.
연우는 아직도 식탁에서 발랄하게 웃으며 먹을 것을 기다리고 있는 세린이에게 얼핏 시선이 갔다.
“어쩌지.”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세린이에게 감히 음식을 망쳤다고는 말을 할 수 없다.
“…그래.”
연우는 싱크대에 남아 있는 재료들을 확인하고 요리를 다시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에는 비빔밥이라도 진심으로 전심전력껏 실력을 쏟아 부으면 실패할 리가 없…겠지가 아니라 실패했다.
“어째서야!”
어제까지만 잘만 해서 먹었던 비빔밥이 왜 오늘은 만들어지지 않는 걸까. 연우는 너무 황당해서 얼굴에 경련이 일어났다. 그렇지만 곧 그래, 일이 이 지경까지 왔으면 원인은 그거겠지 하고 연우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틀림없이 어제 세린이를 구하기 위해 사용한 ‘스피릿’이 원인일 것이다.
‘운도 없지……. 돈도 없는 지금 이 상황에 요리라는 특기를 잃어버리다니.’
정말 불행하다고 스스로도 생각했다. 동시에 신은 연우를 버렸는지 기묘한 소리가 식탁에서 들려왔다.
“우엥….”
연우는 물음표를 띠우고 식탁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이가 없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왜 울고 있는 거냐고.”
물음에 세린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면서 이야기했다.
“그치…만 배…가 고…픈걸….”
“…….”
배가 고프다고 우는 인간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되면 방법은 하나. 아주 간단하고 꽤 눈물이 나는 방법이었다. 편의점에서 사온다라는 간단한 방책. 연우는 이번 달은 죽을 준비를 하고 세린이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소리를 하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하여 바깥으로 나온 연우는 물품을 탈취하고 도망치는 죄인처럼 이리저리 주위를 살폈다.
“음? 오늘은 없는 것 같군.”
다시 말하지만 연우에게는 귀신이 보인다. 그것도 ‘여자’ 귀신만 골라서 말이다. 평소처럼 걸어 다녀도 종종 보이는 귀신들의 숫자를 보자면 ‘남자’ 귀신들도 있을 법하나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어찌됐건, 연우는 그런 귀신들을 필요할 때가 아니면 거의 피해 다니는 실정이었다. 괜히 엮였다가 좋은 일은커녕 나쁜 일만 주구장창 생겨났기 때문이다.
스피릿으로 소모한 능력을 보충하기 위해 가장 최근에 여자 귀신을 도와주었을 때도 그렇다. 친우와도 다름없는 고양이를 잡아달라는 요구에 연우는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면서 간신히 잡아냈고 여자 귀신에게 전달했지만 결과는 절대 좋지 않았다. 스피릿으로 소모한 능력을 여자 귀신이 ‘한’을 풀어 하늘로 올라갈 때 생겨나는 ‘양기’로 보충을 했어도 그 뿐.
남겨진 고양이 자식은 연우의 냉장고를 고장이 나게끔 만들었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른다.
그저 고양이가 없어지고, 그 후부터 냉장고가 그렇게 작살나 있었으니까.
‘에휴, 지금은 안 보인다고 해도 조만간 내가 찾아가야 할 판인데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연우는 도둑고양이처럼 이리저리 살피는 건 그만두었다. 요리라는 특기를 잃어버려 다시 되찾기 위해서라도 곧 이 세상에 한이 맺힌 귀신들을 찾아다녀야 했으니까.
이윽고 아직도 천공 도시의 지리를 외우지 못한 연우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A4용지만한 종이를 꺼냈다.
“이건 언제 봐도 신기하단 말이야.”
얼핏 보자면 그저 그런 A4용지에 불과하지만, 실상 안을 살펴보면 그게 아니다.
특별한 종이.
누군가 ‘자동 탐색 종이’라고 부르면 100퍼센트 이 최첨단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종이 명칭을 뜻하는 것이다. 이 종이가 뭐로 만들어졌는지 재질은 불명이지만 한 가지 특수한 기능이 있다.
지도의 사용자가 제 1지부에 있다면 1지부의 지도를, 사용자가 제 2지부에 있다면 2지부의 지도를 비춘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내비게이션의 실시간 업데이트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원산지가 천공 도시라 그런지 사용 범위는 천공 도시 한인 것 같지만…….
‘에, 내 위치가 여기니까.’
참고로 연우가 있는 위치는 천공 도시의 집들이 거의 80퍼센트 모여 있는 제 1지부다.
천공 도시는 조각조각 분단되어 있는 섬의 형태를 이루고, 제 1지부부터 21지부까지 있는데 어디의 지부냐에 따라서 있는 기능들이 다양하다. 예를 들어, 제 1지부가 주거지가 많은 장소라면 연우가 향해야할 제 2지부는 각종 놀 거리와 먹을거리가 밀집되어 있는 장소다.
그리고 조각조각 분단되어 있는 섬의 형태라고 한다면 하늘을 날거나, 바다로 건너 지부에서 지부로 이동해야겠지만 천공 도시에서는 그러한 개념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천공 도시에는 대규모 텔레포트, 일명 게이트라는 것이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그 기계를 누가 만들었는지, 무엇의 힘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그 안에 있는 부품이 무엇인가는 미지수. 다만 두 가지 정확한 것이 있다면 공명석이 주재료고, 괴물들의 음기가 주 에너지원이라는 것이다. 또한 대규모 텔레포트의 용도는 섬처럼 떨어져 있는 지부의 형태를 본다면 볼 것도 없다.
당연히 각기 떨어진 지부에서 지부로 옮겨가는데 대표적으로 쓰이고 있다.
‘근데….’
연우는 지도를 보면서 현기증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빠르게 게이트를 찾아내려고 했지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굳이 원인을 파헤쳐보자면.
“…너무 복잡하잖아!”
오히려 욕설이 튀어나오려고 한다. 하긴 A4용지 크기만한 곳에 제 1지부의 지리를 전부 넣어놨으니 복잡함이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후, 대충 여기인 것 같은데…난 여기서 왜 계속 혼잣말을 하고 있는 거야?”
지나가던 사람이 자신을 본다면 틀림없이 정신 나간 녀석이라고 판정 지을 것이다. 또한 연우는 집 앞에서 시간을 너무 소비했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급해졌다. 곧장 게이트가 표시되어 있는 장소로 달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지만 발걸음이 둔해졌다.
“하아, 이 인원수를 향해 돌진해야 한다는 건가.”
한 숨을 내뱉고 연우는 다시 한 번 게이트에 몰려있는 인간들을 확인했다.
한 마디로 표현해서 ‘무지하게’ 많다. 하긴 지부에서 지부로 이동하는 게이트가 확인한 바로는 2~3개뿐이었으니 사람들이 몰리는 건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막상 인파를 뚫고 게이트를 이용하려니 불편한 감이 있긴 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제 2지부로 이동하는 2번 게이트가 사람이 그다지 없다는 것일까.
1초에 한 사람이 빠지는 속도로 운행되고 있으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연우는 2~21번 게이트 중에 편의점이 있을 터인 2번으로 다가가 줄을 섰다.
예상대로 사람들은 빠르게 빠져나갔고 게이트를 사용할 수 있었다.
제 2지부에 도착한 연우가 제일 먼저 향한 곳은 당연하지만 편의점이다. 워낙에 먹을거리, 놀 거리가 많은 지부라 그런지 편의점 따위는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볼 수 있었다.
“뭘 사가야 하지.”
음식을 고르고 있는데 연우는 망설여졌다. 세린이가 무얼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막상 사갔는데 이러한 음식을 못 먹는다던가, 맛이 없다고 하면 머리 아파진다. 이럴 거면 직접 본인한테 물어보고 나올 걸 그랬다라며 연우는 자조했다.
연우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취향대로 음식을 골랐다.
그리고 첫 번째로 집은 것이 남성 대부분 그렇듯.
컵라면.
‘이 음식을 설명하자면 남성 누구에게나 인기 만점이며, 어디서든 생명줄을 바퀴벌레처럼 근성 있게 살아가게 해주는 간편한 라면이도다!’
왜 느닷없이 설명하고 있는 거지 하고 연우는 대충 컵라면을 집으며 노란 바구니에 집어넣었다. 장은…. 이걸로 끝. 커다란 노란 바구니가 쓸쓸해 보이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다. 이번 달은 아껴 쓰지 않으면 큰일 나니까 말이다.
연우는 계산대로 빠르게 향했고 컵라면을 하나 내려놓았다.
“920원입니다.”
비싸다. 하는 것을 말할 새도 없이 연우는 느낄 수 있었다. 계산대에 있는 직원의 눈길을 말이다. 말은 친절한 것 같지만 안을 살피자면, 그냥 손으로 가져오면 될 것이지 대체 큰 바구니에는 왜 넣은 거야? 하는 감각. 또한 연우도 그제야 그런 방법이 있었지 하고 생각했다. 사실 제 2지부는 편의점이라고 해도 일반 대형마트와 다를 것이 없다.
놀 거리와 먹을거리가 모여 있는 곳이기에 이곳을 개발하던 개발자가 이왕 하는 김에 화려하게 크게 짓자라고 생각해 이렇게 지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그것 때문에 기에 눌려서 자신도 모르는 새에 바구니를 가져온 것이겠지. 어딜 가나 사람은 분위기에 휩쓸리기 쉬운 동물이다.
연우는 920원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얼른 계산대에 놓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연우는 나오는 순간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는 생각이 지워졌다. 바로 앞에 커다랗게 알바생 모집 공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흐음, 일단 나왔으니 날 한 달 동안 버티게 해줄 것을 구해야겠지.”
연우는 이제부터 알바를 한다고 생각하니 한 숨만 나왔다. 돈 버는 것은 좋지만 그 이후에 올 후유증은 장난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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