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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코드네임 허니비(Code name honey bee)
글쓴이: 나제온
작성일: 12-07-21 01:27 조회: 2,130 추천: 0 비추천: 0

Code name honey bee

1

그 클래식 바(classic bar)는 번화가에서 약간 떨어진, 사람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건물 사이의 뒷골목 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외진 곳에 있음에도 어떻게 알았는지 손님들이 알아서 찾아오긴 했지만, 역시 모든 가게가 그렇듯 낮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 드물게 사람 없는 그 시간대에 누군가가 바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검은 색과 노란 색의 줄무늬 티셔츠에 붉은 색 선글라스를 쓴 금발의 청년이었는데 표정도 자세도 껄렁껄렁한 게 한 눈에 봐도 경박스러워보였다. 하지만 바텐더는 아무런 티도 내지 않고 글래스를 닦았다.

가게에 들어온 청년은 바텐더 앞에 놓인 의자에 앉더니 말했다.

“달콤하고 시원한 걸로 아무거나 주세요.”

“그럼 ‘피나 콜라다(pina colada)’ 어떠십니까?”

“달고 시원하기만 하면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그럼 그걸로 주세요.”

바텐더의 말에 대답하는 청년은 아무리 봐도 칵테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 같았다. 단순히 더위를 못 참고 마실 걸 찾아온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럼 카페에나 갈 것이지 왜 바에 찾아온 건지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건 바텐더가 참견할 일이 아니었다. 바텐더는 “알겠습니다”하고 대답한 뒤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바텐더가 칵테일을 만드는 것을 구경하던 청년이 문득 입을 열었다.

“저기, 바텐더 아저씨. ‘모스맨(mothman)’이라고 알아요?”

청년의 말에 바텐더의 동작이 순간 멈췄다. 청년은 그걸 보고 씨익 웃었다.

“…잘 모르겠군요.”

“그래요? 이게 꽤 재미있는 이야기거든요. 말 그대로 나방과 인간을 합쳐놓은 것 같이 생긴 괴물인데 목격자들의 말에 의하면 몸은 까맣거나 갈색이고 등에는 커다란 날개가 달려있는데다 키는 2미터나 된답니다. 가끔 머리가 없는 것도 있는데 그건 가슴에 눈이 달려있다네요.”

“미확인 생물체 같은 겁니까?”
“그런 거죠. 거기에 이건 꽤 유서 깊은 놈이에요. 첫 목격자가 발생한 게 1966년 11월 12일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였거든요. 그리고 그 다음해 1월 정도까지 목격이 계속됐는데 그 해 말에 웨스트 버지니아 포인트 플리전트에 있는 실버 브릿지라는 다리가 붕괴한 이후로는 목격이 거의 없었답니다. 재미있지 않아요?”

“다리 붕괴 이후로 목격이 없었단 건, 그 모스맨이란 괴물이 재앙을 예고하는 그런 존재였다는 겁니까?”

청년은 즐거운 듯이 이야기를 늘어놨다. 아무래도 청년은 오컬트 마니아인 것 같았다. 바텐더는 적당히 맞장구쳐주자 청년은 신나서 말을 계속했다.

“맞아요, 맞아요. 그런 거죠. 그래서인지 그 실버 브릿지 외에도 여러 참사현장 등에서 모스맨을 봤다는 이야기가 간간히 있어요.”

“음……. 자, 피나 콜라다 나왔습니다.”

“벌써요? 엄청 빠르네요.”

바텐더가 칵테일을 건네자 청년은 놀라면서도 바텐더가 내려놓은 칵테일을 들어올려 입으로 가져갔다.

“오, 이거 처음 먹어보는데 맛있는데요?”

“다행이군요.”

“맛있는 칵테일도 있고 시원하기도 하고, 좋네요, 좋아.”

청년은 크게 웃고서 칵테일을 한 모금 더 마신 뒤 내려놨다.

“여기서부터가 본론인데요. 그 모스맨 말이죠. 실은 최근에 발견됐어요.”

“어디서요?”

“그 웨스트 버지니아에서……모스맨이 아니라, 그 이 발견됐거든요.”

“알요?”

바텐더의 표정이 저도 모르게 굳었다. 그 얼굴을 보며 실실 웃던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고 칵테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얼굴을 굳혔던 바텐더는 다시 표정 관리를 하며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흠, 그게 그 모스맨이라는 괴물의 알이란 건 어떻게 알았답니까?”

“나방 알이었는데 그 크기가 주먹만했다네요. 이야, 그런 무식하게 큰 알에서 태어나는 나방 새끼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모스맨 밖에 더 있겠어요?”

“그 알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청년은 남은 칵테일을 한번에 꿀꺽꿀꺽 마신 뒤 잠시 기억을 더듬는 듯 머리를 톡톡 치며 천천히 말했다.

“그게 말이죠, 발견된 알이 전부 네 개였는데 그 중 하나를 누가 가지고 도망친 것 같…….”

청년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새 바 아래에 숨겨놓고 있던 권총을 꺼낸 바텐더가 미처 피할 틈도 없이 청년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겨버린 것이다. 소음기를 달았는지 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청년은 자신이 총에 맞았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는지 실실 웃고 있던 얼굴 그대로 쓰러졌다. 그걸 본 바텐더의 얼굴이 희열로 히죽 일그러졌다.

“크, 크크……크크크………!”

한참을 큭큭대며 즐거워하던 바텐더는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바를 뛰어넘어 바깥쪽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바닥을 봤는데, 놀랍게도 바닥에 있어야 할 청년의 시체가 없었다. 그걸 보고 바텐더의 눈이 커질 무렵, 바텐더의 귀에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머리통에 대고 총을 쏴버리다니,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냐?”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바텐더가 몸을 돌리자 벽에 등을 기댄 채 그를 바라보고 있는 청년이 보였다. 바텐더의 얼굴이 마치 귀신을 본 것처럼 하얗게 질렸다.

“너, 너……!”

“‘넌 분명 죽었을 텐데!’ 같은 진부한 대사를 할 거면 그냥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낫다. 자, 이쯤 되면 발뺌할 생각은 없으시겠지?”

청년은 히죽 웃으면서 선글라스를 벗었다. 선글라스 아래에 드러난 청년의 눈동자는 기묘하게도 황금빛을 띄고 있었다.

“너지? 작년에 웨스트 버지니아에 갔다가 나방 알 훔쳐서 튀었다는 ‘조사반’ 김덕수가.”

“젠장! ‘파브르(Fabre)’에서 나왔냐?”

“알면서 뭘 물어. 설마 평생 안 걸릴 줄 알았냐? 사실 널 보면 꼭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청년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그 알 대체 얼마 받고 팔아먹었냐? 몇억? 곤충 알 하나 값이 설마 십억을 넘어가진 않았겠지? …아니, 아니지. 로랜드 고릴라가 한 마리에 10억이라던가? 흠, 그걸 생각해 보면 몇십억은 받았을지도 모르겠군.”

“닥쳐─!”

바텐더, 김덕수가 쥔 총이 다시금 불을 뿜었다. 총탄은 이번에도 정확히 청년의 이마를 관통했지만 청년은 잠깐 신음을 흘렸을 뿐, 아무런 문제도 없이 말을 계속했다.

“젠장, 아프잖아. 말하기 싫으면 그냥 말하기 싫다고 해. 왜 자꾸 머리를 쏘고 난리야?”

아니, 심지어 청년의 이마에 총상은 이미 사라져있는 상태였다. 마치 처음부터 총은 맞은 적도 없는 것처럼. 청년이 총을 맞으며 바닥에 흘린 피가 아니었더라면 김덕수조차 청년을 쏜 게 꿈은 아니었을까 의심했을 정도로 청년은 멀쩡했다.

“이, 이런 괴물 자식…!”

“결론이 그거냐?”

청년은 한숨을 내쉬고서 허리 뒤쪽에 손을 가져가 숨기고 있던 나이프를 한 자루 꺼냈다.

“어쨌든 누구한테 죽었는지는 알아야지? 내 소개를 하마. 파브르 ‘살충반’ 소속 코드네임 ‘허니비(honey bee)’다.”

자신을 허니비라고 소개한 청년의 말에 김덕수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김덕수의 입에서 얼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쌔신 허니비…!”

“응? 알고 있었나? 그럼 이야기가 빠르지. 아무튼 내 머리를 쏜 네 판단이 틀린 건 아니었어. 난 확실히 널 죽이러 온 거니까.”

“젠장! 어째서 살충반이……!”

“자, 그럼…. 유서라도 쓸래?”

“다, 닥쳐! 난 안 죽어! 이 괴물 자식! 뒈져! 뒈져!”

김덕수는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치며 방아쇠를 몇 번이고 당겼다. 총탄이 몇 번이고 허니비의 머리와 몸에 명중했지만 허니비는 아픈 듯이 얼굴을 찡그리기만 할 뿐, 죽을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권총의 탄환이 다 떨어지자 허니비는 퉷, 하고 뭔가를 뱉어냈다. 그러자 허니비의 입에서 지금까지 맞은 수와 같은 수의 탄환이 튀어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탄환을 내뱉은 허니비는 열 받은 얼굴로 입가를 슥 닦았다.

“이놈이……. 친절하게 유서 쓸 기회까지 줬더니만 끝까지 총을 갈겨?”

“히이이익……! 사, 살려줘! 살려줘!”

허니비는 싸늘한 눈동자로 자신을 향해 목숨을 구걸하는 김덕수를 바라보며 나이프를 바로잡았다.

그게 유언이냐?

싸늘한 목소리로 말한 허니비는 다트라도 던지듯이 나이프를 던졌다. 허니비의 손에서 떠난 나이프는 번개같은 속도로 날아가 김덕수의 이마를 꿰뚫었다. 김덕수의 몸이 쓰러지자 허니비는 김덕수의 이마에 꽂힌 나이프를 뽑아들고 바를 나왔다.

허니비가 바를 나와 몇 걸음 걷기도 전에 허니비의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허니비가 전화를 받자 핸드폰 너머에서 요염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됐어요?

“죽었지.”

─이런, 가엾어라….

“헛소리 할 시간 있으면 처리반이나 빨리 보내.”

허니비는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여자를 향해 싸늘하게 대꾸했다. 그런데도 여자는 전혀 기분 나쁜 기색 없이 요염한 목소리를 냈다.

─어머, 나쁜 남자…. 하지만 난 그런 나쁜 남자에게 끌리…….

삑.
허니비는 통화를 끊은 뒤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걷기 시작했다.

2

“그래서 결국 그 모스맨의 알을 사간 게 누군지는 알아냈나?”

허니비는 소파에 앉아서 자신 앞에 앉아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빨간 정장을 입은 날카로운 인상의 스포츠머리의 남자는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둘 사이에 있는 테이블에는 음료수가 하나씩 놓여있었다.

“그래. 알아냈지.”

“역시 정보반 박진호! 그래, 누군데?”

“그게…좀 거물이다.”

“거물?”

박진호라고 불린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황정그룹이라고 알고 있나?”

“황정그룹? 그 뭐냐, 재벌그룹이잖아?”

단순한 재벌그룹이 아니라 국내에서 손꼽히는 재벌그룹이었다. 주로 손대는 건 의료기기나 약품 등으로 아직 전 세계 적으로 유명한 건 아니지만 황정제약이라고 하면 국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거기 회장이 샀다더군.”

"뭐?

허니비의 얼굴이 굳었다.

“아니, 대체 그런데서 뭐 때문에 모스맨 알을 사가는데?”

“요즘 거기서 이종교배 연구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종교배면 라이거, 타이곤……. 이런 거?”

“그래. 모스맨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인간과 나방의 이종교배 결과물이잖아? 그래서 샘플로 구한 모양이다.”

“아니,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

허니비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허니비의 반응에 진호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동안 둘 사이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그러다가 이윽고 허니비가 침묵을 깼다.

“황정그룹 연구시설에 잠입해서 나방 알 처리하려면 첩보반이 고생하겠네.”

어찌됐든 그들이 속한 조직에서는 분명 모스맨의 알을 처리하려고 할 것이고 황정그룹의 보안은 삼엄할 것이 틀림없다. 결국 고생하는 건 황정그룹에 투입되어 알을 처리해야하는, 이런 일에 곧잘 투입되는 첩보반 사람들이다. 하지만 허니비의 말을 들은 박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도 않을 걸.”

“왜? 황정그룹이 나방 알 그냥 폐기하겠다고 했어?”

“아니, 황정그룹 연구시설에 잠입할 건 너거든.”

“응?”

허니비는 잠깐 동안 진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너무나도 의외였기에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몇 초 후 다시 곰곰히 진호의 말을 곱씹던 허니비는 얼굴을 크게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뭐라고?!”

“왜 그러지?”

“‘왜 그러지?’가 아니잖아! 시설에 잠입하는 건 첩보반이 할 일 아니야? 왜 내가…….”

“황정그룹이 알을 손에 넣은지 1년이나 됐다. 알이 부화하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시간이지. 이번 일을 하다보면 모스맨과 만날 수도 있다. 모스맨을 죽이는 건 살충반이 할 일이잖아.”

“그래도 이건…….”

허니비는 계속해서 불평하려 했지만 진호는 손을 내저었다.

“너 혼자 하는 것도 아니야. 미리 예전부터 그곳에 있던 첩보반 요원이 도와줄 거다. 그리고 네가 뭐라고 하던 간에 이미 상부에서 결정난 일이니까 이제 와서 뭐라고 해도 소용없어. 이미 명령이 내려왔다고. 그 명령을 전하는 역할이 바로 나고. 명령서라도 볼래?”

진호는 그렇게 말하며 품 안에서 검은색 편지봉투를 하나 꺼내 허니비를 향해 건넸다. 봉투를 뜯고 내용물을 확인한 허니비는 이를 으득 갈았다. 봉투 안에는 허니비에게 황정그룹 연구시설에 잠입해 모스맨의 알을 처리하라는 명령장이 있었다.

“젠장.”

“벌써부터 그렇게 열 내면 안 되지. 아직 진짜 문제는 나오지도 않았거든.”

“진짜 문제?"

허니비가 불안한 듯 묻자 남자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네가 잠입해야 할 그 연구시설이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다.”

“쓸모없는 정보부 같으니!”

허니비는 박진호에게 얼굴을 크게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하지만 진호는 그런 말을 듣고도 그저 곤란한 듯 웃을 뿐이었다.

“진정해. 반은 농담이니까.”

“반은…? 그럼 나머지 반은?”

“물론 진담이지.”

박진호는 옆에 두고 있던 서류가방에서 종이봉투를 하나 꺼내 허니비에게 내밀었다. 종이봉투 안에는 커다란 사진이 하나 있었다. 위에서 섬을 찍은 사진인 것 같았다.

“위성사진이다. 우리가 찍은 건 아니고 다른 데서 가져온 거지만.”

“이 섬에 연구시설이 있나?”

“그래. 황정그룹 회장인 황성진의 개인소유 섬이지. 연구시설이 어디 있는지 알겠나?”

허니비는 천천히 사진을 살폈다. 숲이 있고, 모래사장이 있고, 커다랗고 작은 별장처럼 보이는 건물이 몇 개 있을 뿐, 연구시설로 보이는 건물은 없었다. 한참을 사진을 살피던 허니비는 종이봉투와 사진을 내려놓고 물었다.

“이 별장같이 생긴 것들이 실은 연구시설인가?”

“그것들은 그냥 별장이다.”

“그럼 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

“그래서 아까 그게 반은 진담이라는 거지.”

진호는 허니비가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사진에 찍힌 섬을 손가락으로 딱 짚으며 말했다.

“1년 전 모스맨의 알은 이 섬으로 들어갔고, 분명 이 섬 어딘가에 연구시설이 있는데 그게 어디 있는지는 몰라. 지하시설인가보지. 어쨌든 네가 해야 될 일은 이 섬으로 들어가서 연구시설을 찾아 모스맨과 관련된 걸 전부 박살내고 오는 거다. 연구 자료는 가져와도 상관없고.”

“귀찮은 냄새가 막 나는구만.”

허니비가 귀찮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말하자 진호는 실실 웃으며 허니비가 내려놓은 종이봉투에서 사진 두 장을 새로 꺼냈다. 각각 남자와 여자의 사진이었는데 남자는 머리가 희끗한 중년이었고 여자는 아직 20세도 안 된 것 같은 청초한 미소녀의 사진이었다.

“누구야?”

“하나는 황성진 회장. 하나는 그 외동딸인 황정아다. 이 황정아라는 여자애가 며칠 후면 생일인데, 이 섬에서 3일 동안 생일파티를 할 모양이야. 그것도 각계의 유명인사들을 모아놓고.”

“생일파티를 3일 동안이나 해? 부자는 생일파티도 스케일이 다르구만.”

진호의 말에 허니비는 혀를 내둘렀다.

“평소에는 아무도 섬에 들여보내지 않지만 이때만큼은 예외지. 이때를 노려 섬에 들어간다.”

“근데 거기 갈 수 있는 게 각계의 유명인사 뿐이라면 신분 조작이 힘들지 않아? 아니면 진짜 유명인사의 도움을 받나?”

“그런 방법도 있지만 이번엔 아니지. 너는 거기에 손님으로 가는 게 아니다.”

허니비의 질문에 진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음료수를 마셨다. 손님으로 가는 게 아니라는 말에 허니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거기를 어떻게 가?”

허니비의 질문에 진호가 웃었다.

“각계의 유명인사들이 참가하는 3일간의 파티. 여기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필요한 인원이 얼마나 될까? 고급 요리나 고급 옷의 세탁 등은 전문 인력을 쓴다 해도 그 외에 일에도 필요한 사람은 많다.”

“음.”

“그래서 전문 인력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아르바이트로 뽑게 된다. 어차피 생일파티 동안이라는 일시적인 기간에만 필요한 인원이니까. 그런데 그들 중 상당수가 황성그룹의 직원들로 채워지게 되지만 일부는 외부에서 데려오기도 하거든.”

“설마…….”

진호의 설명을 듣고 있던 허니비의 얼굴이 굳었다. 이 시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할 이유는 하나 밖에 없다. 허니비의 반응을 보던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넌 여기에 알바로 간다.”

“이 살충반의 허니비가 알바라고?”

“어쩔 수 없다. 이것만 해도 신분 조작이 어려웠다고. 황성 그룹의 알바는 보통 알바가 아니라 시급도 높지만 그만큼 신분도 확실히 조사한다. 단순히 신분이 깨끗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학력이나 업무 경력까지 본다고. 알바가 이정도인데 손님은 어떨지 상상이 가나? 들킬 확률을 최소한으로 낮추려면 이게 최선이다. 이것도 미리 그 안에 잠입해있는 첩보부 직원의 도움을 받은 결과라고.”

“이런 젠장…….”

허니비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만큼 시급은 높으니까 뭐, 3일 동안 용돈 벌이한다고 생각해라.”

“……내가 돈이 궁해 보여?”

“물론 아니지.”

허니비는 한숨을 푹 내쉬고서 얼음이 들어있는 홍차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별 수 없지. 하는 수밖에.”

“훌륭해. 역시 프로페셔널하군.”

입 발린 칭찬을 한 박진호는 다시 서류가방을 열고 뭔가를 또 다른 종이봉투를 꺼냈다. 허니비가 받아서 내용물을 테이블 위에 쏟아놓자 주민등록증과 자기소개서, 그리고 여권과 종이 한 장이 하나 나왔다. 허니비는 자기 사진이 들어있는 주민등록증에 쓰여 있는 이름을 소리 내서 읽었다.

“정시현?”

“그게 그 섬에 있을 동안 네 이름이다. 지금부터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걸. 아, 그리고 그 종이는 그 알바의 안내서다.”

“어디 보자……. 내일 오전 10시까지 황성제약 본사 건물 앞으로 오라고?”

“생일은 5일 후고 파티는 4일 후지만 준비는 2일 전부터 한다는 거지. 거기에 가는데 하루 정도가 걸리니까.”

허니비의 얼굴이 다시금 일그러졌다.

“이런 젠장, 근데 이걸 지금 알려줘? 박진호, 댁 참 본인한테 말도 없이 일을 철두철미하게 진행하시는구만?”

“임무 바로 전날까지 일상의 평온함을 맛보라는 내 배려다.”

“그 배려에 눈물이 다 나는군…….”

허니비는 이를 으득 갈며 실실거리고 있는 박진호의 얼굴을 쳐다봤다. 박진호도 허니비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으며 실실 웃었다. 그 태도가 허니비를 더 열받게 했다. 그러던 도중, 갑자기 테이블 위에 있던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박진호는 전화를 받더니 닭살이 돋을 정도로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호호 심부름 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객님?”

박진호는 조직의 정보원인 동시에 덩치 큰 아저씨들을 여럿 거느리고 있는 심부름 센터 소장이기도 한 것이다. 평소에는 다른 부하가 받지만 지금은 다들 일하느라 나가있었다. 오랜만에 듣는 박진호의 상냥한 목소리 연기에 허니비는 헛구역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소 출입구로 향했다.

“호호 심부름 센터……. 작명 센스 하고는. 화낼 기운도 안 나는구만. 나 간다.”

문앞에서 전화 상대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말한 허니비는 문을 열고 사무소를 나섰다.

3

“어이, 정시현! 일어나!”

목소리가 들렸지만 계속 눈을 감고 있던 정시현은 곧 그것이 자신을 부르는 것임을 깨닫고 눈을 떴다. 그러자 눈앞에 낯선 여자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여자는 커다란 여행용 캐리어가방을 끌고 있었다. 잠시 기억을 더듬던 정시현은 곧 이 여자가 아르바이트 인원을 통솔하기로 했던 이수진이라는 여자임을 기억해냈다.

“다 왔어. 빨리 짐 챙겨서 내릴 준비해.”

“아, 예.”

수진의 말에 시현은 서둘러 들고 온 가방을 챙겼다. 앞장서서 걸어가는 수진의 뒤를 따라 배에서 내린 시현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흐릿했던 서울의 하늘과는 달리 이 황성진 회장 개인소유의 섬은 푸른 하늘에 조각구름이 떠다니고 있는게 굉장히 아름다웠다.

“아, 넌 여기 처음이었던가? 너무 들뜨지 마. 어차피 우린 여기 놀러온 게 아니라 일하러 온 거잖아?”

“예….”

수진의 충고에 시현은 약간 기죽은 기색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수진은 그가 기죽은 게 보기 싫었는지 시현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시급 센 알바도 드물어. 여기서 돈 번 다음에 그 돈으로 놀러가라고.”

“예.”

둘이 배에서 내려서 얼마 정도 걷자 다른 아르바이트 인원들이 모여서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시현이 사람들의 구석으로 가서 서자 수진은 사람들의 맨 앞으로 가서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이수진입니다. 황정그룹 정직원으로 여기 오기 전 말했다시피 여기 있는 동안 여러분을 통솔할 겁니다. 절 뭐라고 불러야할지 모르시겠다면 그냥 '팀장님'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그렇게 자기소개를 마친 수진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모두 알다시피 3일 뒤면 황성진 회장님의 따님인 황정아 아가씨의 18번째 생일입니다. 이틀 뒤에 생일파티가 시작되죠. 황성진 회장님과 황정아 아가씨는 파티가 시작되는 이틀 뒤에 오실 거고, 우리는 오늘부터 그 전에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하게 될겁니다. 그럼 우선 숙소로 가죠.”

수진은 그렇게 말하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해변가 안쪽 잘 닦인 길을 따라 얼마간 걷자 커다란 건물이 몇 채 모여 있는 곳이 나왔다. 수진은 그 중 두 개의 건물을 양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 건물은 남자들이 쓸 거고 이쪽 건물은 여자들이 쓸 겁니다. 방은 한 방에 두 사람씩. 불편해도 어차피 앞으로 며칠 정도만 쓸 거니까 참아주세요. 가끔씩 여자가 남자 방에 간다거나 남자가 여자 방에 간다거나 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엔 그냥 바다에 던져버릴 겁니다.”

수진의 말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웃겨서 웃는 건지 예의상으로 웃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시현은 안 웃긴데도 억지로 웃었다.

“어쨌든 우리는 놀러온 게 아니라 일하러 온 거니까요. 연애는 나중에 섬 밖에 나가서 해주세요. 그럼 각자 방을 배정해드리겠습니다.”

수진은 각자 방 호수와 방에 들어갈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시현은 A동 301호였다. 3층 첫 번째 방. 방을 출입 할 수 있는 ID 카드도 받았다. 모두에게 방을 배정하고 ID 카드를 나눠준 수진은 한 시간 뒤에 다시 오라는 말과 함께 해산하라는 말을 했다. 무려 하루 동안이나 배를 타고 왔다 보니 배 멀미가 있는 사람을 위해 잠시 컨디션 조절을 위한 시간을 준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 숙소에 짐을 풀기 위해 흩어졌다. 시현이 있는 301호의 룸메이트는 모히칸 스타일로 머리를 세운 청년이었다. 스포츠 백을 내려놓은 청년은 웃는 얼굴로 시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제 이름은 김동욱입니다. 이름이 뭡니까?”

“정시현입니다.”

시현은 동욱의 손을 마주잡으며 대답했다.

“시현씨는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악수를 하고 손을 놓은 시현은 동욱의 질문에 위조된 신분증 상의 자기 나이를 떠올렸다. 하루 만에 가짜 이름과 가짜 나이 등 가짜 신상명세를 외우다보니 머리가 아팠다.

“21살입니다.”

“정말요? 저랑 동갑이네요. 말 놓으실래요?”

“그러죠.”

시현이 시원스럽게 응하자 동욱은 씨익 웃으며 침대에 털썩 앉았다.

“아, 먼지가 장난 아니네. 나중에 여기도 청소해야겠어. 뭐, 여기에 하러 온 게 청소같은 거니까 자기 방 청소 정도는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거겠지?”

“그렇겠지.”

시현도 맞은 편 침대에 앉았다.

“그건 그렇고, 봤어?”

“뭘?”

“황정아 말이야, 황정아.”

고용주의 딸 이름을 아무렇게나 부르는 동욱의 태도에 시현은 잠깐 멈칫했지만 어차피 본인 앞도 아니고 둘 밖에 없는 곳이니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은 봤지.”

“캬, 진짜 예쁘지 않냐? 완전 연예인 뺨치는데. 부잣집 외동딸에 얼굴도 그렇게 예쁘고……. 정말 세상은 불공평한 거야. 아, 황정아랑 결혼하면 정말 단번에 인생 역전하는 거지. 예쁜 아내와 막대한 재산을 한번에 얻는 거니까.”

동욱은 황정아와 결혼하는 망상을 하고 있는지 풀어진 얼굴을 했다. 22살이라는 녀석이 18살 여자애랑 결혼하는 망상이나 하다니, 이야기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시현은 벌써 이 김동욱이라는 남자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이틀 뒤면 온다니까 꽤 기대된다. 실물로 보는 건 몇 개월만이거든.”

“작년에도 여기 알바를 했어?”

“물론이지. 어쨌든 여기 알바는 시급이 엄청 세잖아. 넌 이번이 처음이지? 생일파티를 이렇게 3일씩이나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긴 한데, 어쨌든 매번 와서 엄청 벌었지. 하하하! 아무튼 황정아 생일파티 때가 제일 최고야. 다른 사람 생일 때는 아무도 모르게 와서 아는 사람들끼리만 이야기하고 가버리거나 방에 처박혀있는 경우도 있는데 본인 생일 때는 그럴 수 없으니까. 3일 동안 질리도록 볼 수 있다고.”

아무래도 동욱은 황정아에게 반해있는 것 같았다. 물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그건 시현이 알 바 아니었으므로 시현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그럼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이 섬에 출입하면 안 되는 지역 같은 거 있어?"

비밀 연구시설이 있다면 일단 기본적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 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물어보자 동욱은 시현의 예상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있지, 있어. 어차피 있다가 팀장님이 전부 말하시겠지만 길이 나있는 곳 외의 숲은 전부 출입금지구역이야.”

“저, 전부?”

“그래. 자연 그대로를 중시한다고 섬의 대부분을 개발 안했다보니 숲 속에서 길을 잃으면 곤란하거든. 왜, 숲 속 깊은 곳에는 뭐가 있을지 모르는 법이지. 설마 맹수라도 있겠냐만. 작년에도 한 명 행방불명 됐었어. 다행히도 라이터로 불을 피워 연기를 만든 덕에 구조됐지만 그 대신 규칙을 어긴 대가로 아르바이트 비용은 한 푼도 못 받았지.”

의외의 말이었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확실히 일반인이 숲 속에서 길을 잃으면 상당히 위험하고, 그래서 숲 전체를 출입금지구역으로 정한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정시현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귀찮은 일이었다. 이 섬 어딘가 있을 연구시설의 위치 범위를 좁힐 수가 없었으니까.

“너도 조심해. 기껏 시급 높은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며칠동안 열심히 일했는데 한 푼도 못 받으면 얼마나 억울하겠냐?”

동욱의 말에 시현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아르바이트 비용을 못 받는다는 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동욱은 쾌활하게 웃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너무 그렇게 무거운 표정 짓지 말라고. 그냥 길을 걷다가 옆으로 새지만 않으면 되니까.”

“그래….”

동욱은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를 휘파람으로 불던 동욱은 갑자기 휘파람을 멈추고 시현에게 물었다.

“너, 혹시 배멀미 하냐?”

“그런 건 안 해.”

시현의 대답을 들은 동욱은 창문을 열었다. 창문은 일정 각도 이상 열리면 더 이상 열리지 않는 차양식 창이었다.

“다행이네. 그럼 시간도 남는데 지금 방 청소 안 할래? 일마치고 와서 다시 청소하려면 귀찮을 거 아냐.”

“그러자.”

둘은 방구석에 놓인 청소도구를 사용해 방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화장실은 없었고, 각 층마다 공용 화장실이 하나 있는 정도였지만 방마다 세면대가 하나씩 있어 거기에서 걸레를 빨아 방을 닦을 수도 있었다.

“후, 상쾌하군. 역시 사람은 깨끗하게 살아야 해.”

청소를 끝마친 동욱은 상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를 따라 웃은 시현은 방에 걸린 시계를 봤다. 어느새 한 시간이 거의 지나가고 있었다.

“한 시간, 거의 다 됐는데.”

“어? 벌써? 그럼 갈까?”

둘은 방을 나와 아까 모였던 장소로 향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밖에 나와 있었다. 그리고 몇 분 뒤, 정확히 집합시간이 되자 여자 숙소에서 수진이 나왔다. 그 뒤로는 쭉 청소가 이어졌다. 황성진 회장 가족 생일 때 외에는 사용하지 않는 시설이다 보니 대청소를 할 필요가 있었고 손님들이 손님들이다보니 구석구석 세심하게 쓸고 닦을 필요가 있었다.

일부 사람들이 파티가 열릴 연회장이 있는 저택을 청소하는 동안 다른 일부는 손님들이 머물 손님용 숙소의 청소를 했다. 시현은 저택을 청소했지만 듣자하니 손님용 숙소는 일류 호텔 스위트 룸 수준으로 화려하다는 모양이었다. 정신없이 청소를 하다 보니 어느새 11시가 됐다. 아직 청소는 끝나지 않았지만 아르바이트생들도 사람인지라 잘 필요가 있었기에 수진이 해산시켰다.

"어차피 무리해서 일을 시켜봐야 일을 엉망으로 할 테니 그럴 바에야 좀 더 재우고 제대로 일을 시키는 거지. 말 그대로 고품격 서비스를 위한 마인드랄까?"

방으로 돌아온 동욱이 그런 식으로 부연 설명을 했다. 공용 샤워실에서 샤워를 마친 동욱과 시현은 같이 방으로 돌아왔다. 열심히 일해서 피곤했는지 동욱은 말도 별로 안 하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잘 자.”

“잘 자.”

동욱에게 인사한 시현은 침대에 누웠지만 잠들지 않았다. 체질상 아무리 일을 해도 거의 피곤을 느끼지 않는데다 잠도 한 시간이면 충분한 시현으로서는 지금부터야말로 진짜 일할 시간인 것이다. 비록 연구시설이 어디 있는지 감도 안 잡힌다지만 그렇다고 놀고 있을 수만도 없다.

하지만 방과 숙소 건물의 출입은 ID카드로 한다. 출입시 모든 기록이 컴퓨터에 남는 것이다. 누가 언제 나가서 언제 들어왔는지 전부 알 수 있다. 이건 좋지 않다. 또 어디에 감시카메라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 창문으로 나갈까? 아니, 그럴 수도 없다. 이 방의 창문은 차양식 창이라 일정 각까지만 열리고 그 이상은 열리지 않는다. 사람이 빠져나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나가려면 창문을 망가뜨려야하는데 그럼 밖에 몰래 빠져나가려고 한 걸 들킬 것이고 유감스럽게도 시현에게는 망가진 차양식 창을 고칠 재주가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시현은 잠시 뒤 동욱이 코를 골기 시작하자 몸을 일으켰다.

“자, 그럼…. 이제 어쩐다?”

시현…. 아니, 허니비는 곤란한 듯 중얼거리며 방 안을 둘러봤다. 하지만 그런 그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떠올라있었다.

“어쩌긴 뭘 어째. 그냥 나가면 되지.”

허니비는 침대에서 내려와 창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생긴 구멍은 역시 사람이 빠져 나가기는커녕 머리조차도 안 들어갈 크기였다. 창문을 연 허니비는 지금까지 끼고 있던 컬러 렌즈를 뺐다. 지금껏 검은 색이었던 허니비의 눈동자가 다시 황금색으로 돌아왔다.

"이제야 좀 살 것 같군."

컬러 렌즈를 넣은 렌즈 케이스를 베게 옆에 둔 허니비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자신의 왼손을 들어올려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자 허니비의 왼손 검지 끝에서 균열이 생기더니 갑자기 손가락 끝마디가 뚝 부러져 떨어져나갔다. 하지만 허니비는 자신의 손가락이 떨어졌는데도 아무런 동요도 없이 손가락이 떨어져나간 왼손을 이불 속에 집어넣었다.

허니비의 가슴 위에 떨어진 손가락은 점점 꿈틀대며 모양이 변하더니 마침내 한 마리 꿀벌로 변했다. 잠시 자신의 손가락이 변한 꿀벌을 바라보던 허니비가 눈을 감자, 그와 동시에 허니비의 가슴 위에 앉아있던 꿀벌이 날개를 움직이며 날아올랐다.

그리고 꿀벌, 허니비(honey bee)는 여유롭게 창문 틈으로 빠져나가 숲을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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