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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고양이'주막은 언제나 한가합니다.
글쓴이: 마녀는예쁘다.
작성일: 12-07-20 18:15 조회: 2,236 추천: 0 비추천: 0

‘아기고양이’주막은 언제나 한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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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프롤로그.

무릉도원. 신선들이 노니는 옥계의 5대 관광지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그 곳에는 천도복숭아 나무가 한그루 있다. 천도복숭아 나무들 중에서도 가장 달디 단 복숭아를 맺어 옥황상제에게 ‘련’이란 이름을 하사받은 특별한 나무였다. 그러니 그 나무가 아기고양이를 낳았다는 사실에 옥황상제가 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본래 옥계의 천도복숭아 나무는 원한다면 고등생물체를 낳을 수 있다. 그 사례도 적지 않아 옥계의 신선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일이였다. 하지만 고등생물체를 낳은 나무는 근 1000년간 복숭아를 맺을 수 없었다. 설령 맺는다 할지라도, 아무 맛이 나지 않는 복숭아를 맺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자연, ‘련’의 복숭아를 아끼던 옥황상제로서는 치밀어 오르는 화에 쓰러져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월하. 네가 나의 ‘련’에게 아기고양이를 낳게 만들었지?!”

옥황상제가 머무는 궁중에서 죄를 다스리고 형을 집행하는 ‘제 5의 궁’. 그 곳에 끌려온 월하는 상석에 앉아있는 옥황상제를 심드렁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업무 중에 끌려온지라 월하의 옷차림새는 예의에 많이 어긋나있었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선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지 영 모르겠습니다. 제가 무슨 힘으로 련과 옥계의 고양이를 서로 사랑에 빠지게 만듭니까.”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월하의 곧은 은색 눈동자에 옥황상제는 옥좌의 팔걸이 부분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럼 네가 아니면 누구란 말이냐! 너는 인연의 장부를 쓸 수 있지 않느냐!”

확신에 가득 차 있는 옥황상제의 화난 목소리에 월하는 고개를 내저었다.

“허나 제가 가지고 있는 건 아래 세상의 자들 것 뿐 입니다. 옥계의 모든 자들의 인연장부는 옥황상제님이 가지고 계시잖습니까.”

조금의 막힘도 없이 유연하게 나불대는 월하의 주둥이에 옥황상제는 결국 뒷목을 잡았다. 겉으로 보기엔 10살 전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뒷목을 잡는 포즈를 취하는 건 상상이상으로 어울리지 않았다. 월하는 한쪽 입 꼬리를 비죽 올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얼마 전에 ‘련’의 인연장부가 사라졌다!”

옥황상제의 하늘색 눈동자에 붉은 빛이 스쳤다. 그리고 그 다음순간 허공에서 돌연 돌풍이 생겨나 월하를 덮쳤다. 그대로 돌풍에 삼켜진 월하의 은빛 머리카락이 허리 근처에서 어지러이 흔들린다.

“…제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

월하가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어 무언가를 움켜쥐는 것처럼 주먹을 쥐자, 돌풍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없지만, 너다.”

순식간에 소멸되는 돌풍을 보며 옥황상체는 눈살을 찌푸렸다.

“심증만으로 범인을 저로 단정 짓고 계시는군요.”

“네 평소 행실이 좀 얌전했어야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옥황상체의 모습에 월하는 잠시 얼굴을 찌푸리더니 눈동자를 굴렸다.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맞아요.”

몇 초의 생각 뒤, 월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그랬어요.”

생각보다 순순히, 그리고 너무나 쉽게 긍정하는 월하의 모습에 옥황상제의 어깨가 잠시 움찔거렸다.

저게 또 무슨 꿍꿍이 인거지?

월하를 오랫동안 보아왔기에 옥황상제는 아까보다 더 인상을 쓰면서 월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짚이는 게 없었기에 옥황상제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당연히 너 일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곧 밝혀질 것을 왜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가증스럽게 부인했지?”

옥황상제의 경계어린 표정에 월하는 심드렁한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자신만큼 옥황상제를 위하는 이는 없건만, 왜 저리 자신의 속 깊은 충심을 몰라주시는지.

속으로 뻔뻔한 생각을 하면서 여전히 따분한 얼굴로 월하는 잠자코 입을 열었다.

“옥황상제님을 위해서였습니다. 옥황상제님의 과거의 실수를 다시 들추고 싶지 않았거든요.”

“과거의 실수?”

“제 오랜 친우 산신령을 기억하시나요? 이름이 ‘오렌지’인데. 물론 기억이 안 나실 리가 없지요. 아, 역시 이 대목에서 얼굴 하얘졌네요. 제 예상대로.”

월하의 심드렁한 얼굴에 일순 비치는 심술궂음에 옥황상제는 숨을 들이켰다. 놀란 나머지 크게 뜨여진 하늘색 눈동자와 뒤로 젖혀진 상체 때문에 흔들리는 구름색 머리카락에 월하는 히죽 웃었다. 싸늘한 은색 눈과 대조되게 입 꼬리만 빙긋 웃는 모습이 가히 괴기스러웠다.

“아무튼 그 친구가, 옥황상제님이 1675년 전에 잃어버린 인연의 장부 때문에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옥황상제님도 아시다시피 인연의 장부가 ‘이성끼리의 연을 맺어주는 것’이잖아요.”

구리가 많이 시려 보이더라고요. 동성보단 이성 아니겠어요.

히죽대며 말하는 월하의 주둥이에 옥황상제는 손을 들어 미간을 꾹꾹 누르며 옥좌에 몸을 기댔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지?”

꼼짝없이 전세가 뒤집힌 이 상황에 옥황상제는 한숨만 내쉬었다. 피곤의 홍수가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오렌지가 이번에 주막을 하나 차린다고 하기에, 개업 선물로 애완동물을 선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게 가장 편할 것 같아서요.

뒷말은 거의 옹알거리는 수준 이였지만 옥황상제의 두 귀는 매우 밝았다.

“…너! 이 괘씸한……!!”

“애완동물이 외로움이랑 우울증에 그렇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무심한 얼굴로 뻔뻔하게 말하는 월하의 모습에 옥황상제는 결국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화를 다시 집어삼켰다. ‘사실은 그냥 귀찮은 것 뿐 이였어요.’라고 이마에 써 놓은 주제에 잘도 나불대는 월하의 능글맞은 혀에 옥황상제는 이를 악물었다. 차라리 그냥 능글거리기만 했으면 이렇게까지 열불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월하의 저 심드렁한 표정과 고저 없는 미성이 옥황상제의 속을 박박 긁어내렸다.

“…아무튼 그 애완동물이 ‘련’이 낳은 아기고양이란 거지?”

“네. 그러니 이쯤에서 눈감아주시면 더 이상 옥황상제님의 과거를 파헤치지 않고 다시 묻어드리게요. 무덤처럼요. 묘지명은 ‘쯧쯧쯧’이 어떨까요? …아. 농담입니다.”

여전히 심드렁한 얼굴로 농담 같지 않는 농담을 지껄이는 월하의 모습에 옥황상제는 순간 발끈거리다가, 이내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기운 없이 한숨을 내뱉었다.

더 이상 상대해봤자, 자신만 더 늙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긍정하긴 싫지만, 옥황상제 자신은 확실히 말빨에서 만큼은 월하에게 한참 뒤졌다.

“그래, 그래. 묘비명이건 뭐건 그만 가라, 가.”

월하와 대화를 한 지 10분 만에 옥황상제는 10년 늙은 얼굴로 손을 대충 내저었다.

“내 눈앞에서 당장 꺼져버려.”

꽤 과격한 말에 녹아있는 체념적인 어조에 월하는 히죽 웃었다.

만사가 피곤한 꼬맹이 얼굴은 생각보다 바보 같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월하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던지고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그런데 천도복숭아 나무가 고등생물체를 낳은 건 종종 있어왔던 일인데, 왜 이번 일에 그렇게 심기를 불편해하시는 건지…?”

옥황상제가 ‘련’을 아꼈다는 사실과, 그 이유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아는 월하의 능청스러운 질문에 옥황상제는 이미 사라진 월하의 빈자리를 노려보았다. 옥황상제의 턱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가증스러운 놈.”

결국 이를 아득아득 갈면서 한마디를 내뱉곤, 옥황상제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줄 알았다. 본전도 못 찾고 스트레스만 쌓였어. 그래, 애초에 련의 그 소식만 아니었으면 저런 건방진 녀석과 대면을 할 이유도 없거니와, 있어도 피했을 것이다.

다음부터는 좀 더 냉정해지고 침착해져서 월하와 엮일 일이 생겨도 한 걸음 뒤로 물러나자, 다짐하면서 옥황상제는 감은 눈 위로 손을 올려 눈두덩을 꾹꾹 눌렀다. 그걸 신호로 궁의 오색기둥에서 시녀 다섯이 나와 소금을 궁 구석구석에 뿌리기 시작했다. 특히, 월하가 있던 곳에는 굵은 소금을 한 소쿠리씩 쏟아 부었다.

01 ‘아기고양이’주막

이름. 김평화.

성별. 남.

나이. 16세

취미. 피규어와 대화하기, 애니메이션 보며 개똥철학을 쌓기, 만화책에게 옷 입혀주기, 라노벨 모으기.

특징. 지금 죽어있음.

…라는 스펙을 가진 난 오늘도 텅텅 비어있는 학교 안을 배회하고 있다. 내가 왜 여길 배회하는지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린 그 순간부터 난 학교 안에 껌딱지처럼 붙어서 잉여짓을 하고 있었다. 이게 바로 남아도는 인력이라는 거겠지. 훗. 이런 고독한 영혼 같으니.

“그나저나 지금이 몇 시야.”

대체 이 학교는 왜 시계가 없는 건지. 지금이 몇 시 인지 도통 모르겠다. 아니, 사실 알아도 별 상관없겠지만. 그래도 아주 가끔가다가 궁금해진다. 그러니까, 해가 뜨거나, 노을이 질 때. 그 때가 제일 시계 생각이 난다.

아. 난 왜 이렇게 감수성이 풍부한 거지?

“그나저나 정말 아무도 없네. 방학인가. 아니, 방학이라고 해도 이렇게 없다니. 정신 나간 범생이들도 한명도 안 보인다고. 그리고 방학을 이렇게 길게 할 리가 없잖아.”

혹시 죽어서 그런가. 죽은 사람 눈에는 산 사람이 안 보이는 건가. 올. 이거 뭔가 설득력 있네. 그런데 왜 나와 똑같은 귀신들도 안 보이는 거지? 레벨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이런 것도 레벨업해야 하는 거야??

그나저나 정말 지루하다. 그나저나 ‘그나저나’란 말이 입에 붙어버렸어. 이상한 말버릇이 생겼다고. 아, 어차피 아무도 내 말을 못 들으니 별 상관이 없나….

“그나저나 가족들은 잘 지낼까?”

저번에 찾아가 보니, 내 방에 남동생 물건이 좀 있었지. 뭐, 일단 내겐 살아있는 사람이 안 보여서 가족이건 뭐건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만. 물론 물건도 만질 수 없어서 내 비밀책장도 건들지도 못했고.

“역시 레벨 업인가.”

아아. 중얼거림만 늘었어, 혼잣말만 늘었다고. 너무 슬프잖아. 그 무인도에 떨궈진 백인처럼 나도 공에다가 매직으로 사람얼굴을 그려야하나? 하지만 난 물건을 만질 수조차 없잖아. 난 안 될 꺼야, 아마.

난 잉여니까.

쓸쓸한 잉여영혼이니까.

배회하는 것 말곤 아무것도 못하는 레벨 0이니까. 그래도 레벨 1일수도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지. 긍정적으로 사는 거야! 그래, 두 발이 허공에 둥둥 떠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하잖아. 비록 5cm가 한계이고, 날지도 못하지만. 벽 같은 건 통과할 수 있잖아. …그 덕분에 물건을 만지지 못하지만. 아아. 난 사고력 자체가 마이너스적 사고야. 다크다크하구나.

“젠장. 젠장. 잉여력 돋네. 젠장.”

언젠가 우울증에 걸려서 쓸쓸하게 발견되겠지. 아니, 여긴 아무도 없는데 누가 날 발견하긴 할까?

계속 학교에 있다간 우울증에 걸려버릴 것 같아서 학교 밖으로 나갔다. 사실 학교에 매여 있는 게 아닌지라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리고 어디에서도 인간을 볼 수 없다. 귀신도 볼 수 없다. …생각할수록 우울해지는구나.

우울함을 이마에 써 붙이고 학교 주위를 빙빙 돌다가 오랜만에 번화가로 산책 가기로 결심하고 하굣길을 걷다가,

“어라? 저게 언제 생겼지?”

우연히 흙과 짚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오두막집을 발견했다. 새로 개업한 특이한 식당인가 싶어서 잠시 기웃거렸지만 별달리 내 호기심을 끄는 것은 없었다. 그냥 단순히 크고 무식하게 생긴 오두막집이었을 뿐 이었다.

“별 거 아니네.”

심드렁하게 다시 한 번 더 오두막집을 둘러본 다음에 나는 여긴 분명 ‘한정식’을 파는 곳 일거라고 생각하면서 몸을 돌렸다.

-요리랑 청소도 못하는 게 메이드복을 입다니! 이건 메이드복에 대한 모욕이야!!

-빨래도 못합니다만.

만약 거기서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대로 지나쳤을 것이다. 그래, 소리! 이 세상에는 오직 나밖에 없기에(아마도) 소리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배회하는 이 동네는 한적하다 못해 쓸쓸했다. 그리고 쓸쓸하다 못해 사실 좀 무서웠다. 얼마나 무서웠냐면, 말로는 다 설명 못하지만 아무튼 침묵 속에 홀로 있다는 건 생각보다 소름끼쳤다. 그래서 그런 침묵을 깨려고 혼잣말을 하다가 혼잣말이라는 왠지 불쌍한 버릇도 생겼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소리가 들려오다니!! 드디어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거야? 그 사이에 레벨업 이라도 한 거야??!!?

“혹시 인간? 아니면 귀신?”

어쨌든 반갑다. 반가워 죽을 것 같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경계심도 생긴다. 소리가 안 들리던 곳에서 갑자기 소리가 들린다면. 그것도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오두막집에서 들린다면 누구라도 조금 무서울 것이다. 내가 심약한 게 아니라, 다들 무서울만한 상황이라고.

“이, 일단 근처에 숨어있을까?”

게다가 나쁜 놈 일수도 있고.

무서운 놈 일수도 있고.

미친 놈 일수도 있고.

아예 인간도 귀신도 아닌 다른 것 일수도 있고.

그래. 인생은 의심이야. 의심. 의심해서 손해 볼 게 뭐가 있어. 내가 어디서 봤는데, 영혼도 죽는단 말이야. 고급스럽게 말하자면 소멸이지. 소멸당하고 싶진 않으니까, 나대지 말고 조용히 구석에 박혀서 상황을 지켜보자. 그래서 만약 착한 애 같으면 친구먹자고 해야지.

“그런데 친구 하기 싫다고 하면?”

급 우울해진다. 더 이상 우울해지기 전에 그런 고민은 뒤로 미루고….

-그런데 뭐가 그렇게 당당한거야?! 여기서 당장 나가! 이 잉여력 돋는 못난아!

-난 당신의 애완동물이야.

-그런 말 하면서 당당한 표정 짓지 마! 무섭잖아!!

그 때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마지막에는 남자의 비명소리와 함께 문지방이 뜯어져 나가면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미처 자리를 피하지 못한 나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젠장. 굼벵이처럼 꿈질거리지 말고 행동을 빨리빨리 하라는 어마마마의 잔소리를 그때 접수했더라면 이런 상황은 결코 생기지도 않았겠지?

엉거주춤한 포즈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밖으로 튀어나온 물체를 흘깃 쳐다보았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무언가가 튀어나와 마당에 쓰러진 장소에서 세발자국 앞이었다. 한마디로 똥 같은 위치였다.

“괘, 괜찮아요?”

결국 한마디를 목구멍너머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에 반응하듯이 바로 내 앞에 쓰러져있는 소녀의 몸이 움찔거린다. 잠깐, 소녀? 조금 흙바닥에서 굴러서 흙투성이였지만 분명 여자아이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갈색 양 갈래 머리에 고운 분홍색 한복차림이다. 한복은 개략식이여서 무릎까지 내려오는 짧은 치마였는데…. 구르느라 치마가 허리부근까지 말려 올라가 있다. 그 덕분에 팬티가 다 보인다. 호랑이무늬 팬티다.

“….”

보통은 흰색 팬티 입는 거 아니야? 나이 때를 보건대 하얀색의 팬티를 입을 나이다. 분명 어디선가 본 만화책에서 그게 진리라고 했다고. 나도 그에 동의하는 바이고. 음음. 분명 호랑이무늬는 30대 새끈한 글래머 누님만 착용하는 게 이 세상의 예의고 예절이고….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엎어진 상태로 그대로 기절인지 도통 일어설 생각을 안 하는 소녀의 동그란 뒤통수와 팬티를 번갈아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내려줘야겠어.”

저러다 감기 걸리겠어. 아니, 그 전에 시집 못 갈지도 몰라.

선량한 생각을 하면서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치마를 내려주기 위해서. 그런데 치마를 내리기도 전에, 아니, 손을 뻗기도 전에 목을 잡혀버렸다. 그래. 목. 머리와 몸통을 이어주는 짧고 굵은 원통. 다르게 말하면 모가지. 예문으로는 ‘내일 성적도 이런 식이면 네 모가지를 비틀어 버릴 줄 알아!!’. 아무튼 그 목을 붙잡혀 버렸다.

“쿠엑.”

강한 압력으로 조여 오는 무언가를 두 손으로 잡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체 뭐가 내 목을 조이는 거지? 목을 감싼 실 뭉텅이 같은 거를 만지면서 실의 근원지를 찾아 눈을 굴렸다.

“컥? 컥?!?”

실의 근원지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바로,

“…손님인가요?”

내 아래에 엎어져있었던 소녀였다. 내 목을 감싼 실 뭉텅이의 정체는 소녀의 머리카락이었고.

…응? 아니 잠깐 머리카락?

“쿠어어억?!!”

머리카락이 어떻게 내 목을 조여? 아니, 이제 보니 저 녀석 양 갈래 머리카락이 지 혼자서 움직이고 있잖아?!

“손님이군요.”

아까까지만 해도 엎어져있었던 소녀가 어느새 단정한 자세로 무릎 꿇고 앉아있다. 헝클어진 앞머리를 재빨리 정리하는 오른손이 노련해 보인다. 아니, 그건 아무래도 됐고 이거나 좀 풀어 줘!

“컥. 컥.”

컥컥대면서 발버둥치자 그제야 소녀가 내 목을 감싼 자신의 머리카락을 풀어준다.

“죄송합니다. 손님을 접대하는 방법이 아직 미숙해서….”

굉장히 공손한 태도와 어조로 말하는 모습에 나는 욱신거리는 목을 붙잡고 아무 말도 못했다. 저렇게 공손하고 미안해…보이진 않지만, 어쨌든 사과하는데 쫀쫀하게 뭐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든 난 미인한테 약하니까.

“괘, 괜찮아, 요.”

“쇠머리국밥은 5000원이고, 돼지머리고기는 10000원입니다.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네?

잠깐만요. 우리 지금 그냥 단순히 화해한 거잖아요. 왜 갑자기 강매하려고 해요? 나 일단 손님 아니에요. 아니라니까?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목만 쓰다듬고 있을 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 아직 개업도 안 했는데?”

목소리는 뜯어진 문지방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아까 엿들은 대화소리에서 남자 목소리가 있었지.

꽤 괜찮은 추리를 하면서 문지방너머에서 걸어 나오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처음, 맨 처음 눈에 들어온 건 펄럭이는 검은색 한복이었다. 통이 넓고 긴 소매에 약간 벌어진 저고리의 틈. 엉성하게 묶인 고름. 다리 기장과 딱 맞는 한복바지. 감상을 말하자면 한 폭의 애니메이션 명장면 같았다. 암. 명장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다. 키도 상당히 크고 얼굴도 잘생긴 남자였다. 목덜미를 덮는 오렌지색 머리카락과 약간 매서운 눈매의 눈동자도 농도가 짙어서 고급스러워 보인다. 속눈썹도 긴 게 상당히 근사하다. 근사한데….

그래, 근사한데……, 어딘가 모르게 아저씨 냄새가 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아저씨 냄새가 진동해서 ‘아무래도 아저씨’라는 인상을 주고 있는 묘한 미남자였다.

…그런데 진짜 안쓰럽네. 생길대로 다 생겼는데 아저씨라니. 수염하나 없이 미끈한 턱을 가지고 있는데도 아저씨라니! 신의 저주를 받은 게 분명하다.

“개업은 이미 했는데요?”

남자를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무뚝뚝한 목소리가 툭 튀어나온다. 나는 입을 다물고 있고 저 남자도 입을 다물고 있으니 당연히 범인은 내 앞에 있는 소녀다. 그냥 소녀도 아닌, 미소녀.

“어이. 아직 가게 이름도 안 정했어.”

“아기고양이에요.”

“아기고양이? 그건 또 뭐야?”

“제 이름인데요.”

“난 네 이름 지어준 적 없는데.”

갑자기 바뀐 화제로 열심히 대화를 나누는 둘을 보며 나는 눈동자만 굴렸다. 왠지 내 존재감이 묻힌 느낌이다. 나, 이렇게 존재감이 없었나?

“절 아기고양이라고 불렀잖아요.”

“그럼 고양이새끼라고 해? 아니, 그보다 그걸 이름으로 알아들었다고? 아빠찌찌가 ‘난 아빠찌찌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비유가 역겹네요.”

그건 저도 동감입니다. 거기서 왜 갑자기 아빠찌찌가 나와? 비유가 그따위밖에 없어? 생긴 건 멀쩡한데 왠지 미친놈 냄새가 풍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하나 더 말하자면, 찌찌보단 쭈쭈가 낫지 않아?

“아빠찌찌도 일단 찌찌니까 존중해주지 그래? 엄마찌찌처럼 우유는 나오지 않아 별로 쓸모가 없지만. 아니, 잠깐만. 이제 보니 정말 쓸모없는 찌찌네. 까맣거나 갈색이거나 털이 조금 난 것 이외에는 별 쓸모가….”

-뻑.

미소녀가 양 갈래 머리 중 오른쪽으로 남자에게 어퍼컷을 날리는 것을 끝으로 대화가 끝났다. 허공에 붕 떠서 저 멀리 날아가는 남자를 보면서 나는 눈을 살짝 찌푸렸다. 너무 빨리 날아가서 검은색 한복 끝자락밖에 못 봤다.

“이상한 것을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이상한 것? 저기 날아가서 어딘가에 처박혀 있는 저 남자요?

“네?”

어리바리한 얼굴로 반문하는 내게 미소녀가 히죽 웃어 보인다.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갈색 양 갈래를 펄럭이면서 눈꼬리를 살살 접는 게 꽤 귀엽지만…. 그 귀여움이 눈에 들어오기 5초도 안 되서 내 레이더는 미소녀의 싸늘하게 식은 갈색 눈동자를 포착했다. 설산의 마녀보다 더 싸한 갈색 눈동자와 곱게 휜 눈꼬리. 그리고 미소를 머금은 입술의 조합이라.

무섭네.

…라는 깨달음이 찾아온 건 정말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나저나 정말 이중적인 웃음이다. 저렇게 웃는 것도 힘들 텐데. 거울보고 연습했나?

“손님. 그럼 이만 안내하겠습니다.”

응?

“안내요?”

“네. 메뉴는 안에 들어가서 정하기로 해요.”

누구 마음대로요? 아니, 그보다 나 손님 아니라니까?!

“저기, 저 손님이….”

아닌데요.

채 뒷말을 잇기도 전에 나는 입을 그대로 다물었다. 미소녀의 양 갈래 머리가 위협적으로 흔들렸기 때문이다.

나란 남자, 소심한 남자.

어깨를 늘어트리고 미소녀의 뒤를 그대로 얌전히 따랐다. 어차피 이미 죽은 목숨 될 대로 되라 다. 음식만 안 시키면 되겠지 뭐.

미소녀의 뒤를 따라 들어간 오두막집은 생각대로 수수했다. 넓고 수수한 마룻바닥에 놓여진 10개 남짓의 나무 탁자들. 방석은 구석에 쌓여있다.

“안내하겠습니다.”

“아…. 네.”

미소녀가 나를 안내한 자리는 가운데였다. 아직 손님이 아무도 없어 괜찮다면 구석으로 가고 싶었지만, 소심한 나는 반론을 할 생각조차 못하고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바닥은 차가웠다. 아마도 온돌일 텐데 왜 차가운 거지? 이런 전통가옥이면 보통 온돌 아니야?

“방석은 셀프입니다.”

“아, 네.”

맞은편에 서서 내게 고개를 살짝 숙이는 미소녀의 말에 나는 마주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차갑긴 하지만 방석을 가지러 가기엔 너무 귀찮았다.

“그럼 메뉴는 무엇으로 정하겠습니까?”

아,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여기서 더 이상 질질 끌려갔다간 나중에 진짜 음식 먹고 튈지도 몰라! …튀기도 전에 저 이상한 머리카락에게 붙잡히겠지만. 아니, 그보다 아까 날라간 그 남자는 괜찮을까?

“막걸리도 팝니다.”

네?

“…전 미성년자인데요.”

“그래서 미성년자에게는 5000원에 팔고 성년자에게는 500원에 팝니다.”

…아니, 아예 팔면 안 되는 거 에요.

굉장히 당당한 어조로 말하는 미소녀의 무표정한 얼굴에 나는 힘을 내서 입을 열었다. 저러다가 영업정지 되면 큰일이니까.

“팔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하하…주인 맘이죠.”

“전 애완동물입니다.”

하지만 결국 미소녀의 싸늘한 눈동자에 다시 기가 죽어 결국 횡설수설로 말을 끝냈다. 그런 내게 미소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왠지 이해해선 안 될 것 같은 문장을 당당하게 말했다.

“아니, 저…죄송합니다.”

결국 사과로 마무리 지은 내 소심함에 미소녀는 어깨를 살짝 으쓱거렸다.

“괜찮습니다.”

“…아, 네. 뭐. 아, 그리고 막걸리는 됐어요.”

어차피 돈도 없고.

“하지만 이미 안경에 까까머리에 못생긴 낯짝을 보니, 질풍노도의 여드름을 가진 힘없는 학생 같지만 그래도 첫손님이니 막걸리는 2500원에 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네? 저기 잠깐만요. 방금 대사에 뭔가 꺼림칙한 문장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결론은 막걸리 50%세일이지만, 무언가 알고 싶지 않은 단어들이 막 있었는데?! 그리고 안 시킨다고요! 대체 뭘 결정했다는 거야? 손님의 주문을 마음대로 결정해도 되는 거야? 독자적인 상술 같은 거야?

“물은 셀프지만, 주문은 대리도 되므로 제가 대신 주문하겠습니다.”

네? 어이, 이봐요?? 저 손님 아니에요. 아니, 그보다 뭘 대신 주문합니까? 차라리 물을 가져 와! 왜 당연히 셀프인 걸 대리로 하냐고?!

미소녀에게서 풀풀 풍기는 감당하기 버거운 어둠에 나는 무릎을 꿇었다. 이거, 마왕급 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친해지기는 개뿔. 우린 아예 만나선 안 되었어! 이럴 줄 알았으면 학교에 짜져있는 거였는데!!

미소녀는 내 맞은편에 다소곳이 앉더니 나무탁자위에 메뉴판을 펼쳐본다. 그리곤 이윽고 화통하게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친다.

“전부.”

??!!

“전부 시켜서 맛을 봐주지.”

“…!!”

“이것도 대리 대사입니다.”

“지, 지금 이게 무슨?”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음식을 만드는 거랑 설거지도 셀프입니다.”

그러면 가게의 의미가 없잖아?!!

미소녀의 얼굴이 너무 진지해서 장난이라고도 생각 못하는 내 처지가 너무 불쌍하다.

“그, 그런…. 게다가 전 손님이 아니에요.”

미소녀에게는 반론을 필 용기도 없는 내 소심함이 한스러울 줄이야. 하긴. 내 방 벽지에 있는 브로마이드의 미미짱이랑 대화할 때도 눈을 못 마주치는데. 뭐. 솔직히 미미짱보단 이 쪽이 더 무섭게 생겼고….

“손님이 아니라고요? 가게 안에선 손님과 종업원 그리고 사장. 셋 중 하나인 게 예의입니다.”

심으로 썩어 들어가는 미소녀의 표정에 당황한 나머지 입만 벙긋거리자 미소녀가 탁자를 치며 재촉 한다.

“셋 중 뭐죠?”

아무것도 아니에요.

“만약 아무것도 아니면 잡상인으로 간주하고 통으로 구워버릴 테다. 이 수퇘지야.”

수, 수퇘지? 내가? 내가 수퇘지??

갑작스러운 공격에 하얀 재가 돼서 풀풀 흩날리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한 곳에서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어이. 아직 개업 안했다니까.”

오렌지머리의 남자다. 머리에 피가 줄줄 흐르고 있다. 하지만 둘 다 그것에 신경 안 쓰기에 나도 모른 척 시선을 피했다.

양심에 찔리지만 원래 이런 건 대세의 반응에 따르는 거다.

“개업했습니다.”

“안했어. 사장의 권위로 개업 안 했어.”

“했습니다.”

“그럼 저게 손님이라고?”

남자의 말에 미소녀가 날 돌아본다. 무표정이다. 하지만 갈색 눈동자는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미소녀의 모습에 남자가 경망스럽게 웃는다.

“아무 대답도 못 하는 걸 보니, 내가 이겼군.”

굉장히 뿌듯하게 말하는 남자의 모습이 어째 조그만 꼬마를 이겨놓고 좋아하는 아저씨 같다.

아무튼 이제 슬슬 조용히 퇴장하면 된다. 다시는 이 쪽으론 오줌도 누지 말아야지. 친해지긴 개뿔. 이 사람들 다 이상해.

난 조용히 살고 싶으니까 피해야지.

눈치를 살피며 뒷걸음질을 두 번 쳤을 때,

“그래요. 손님은 아닙니다. 하지만 음식을 주문했습니다.”

미소녀가 예고 없이 폭탁을 날렸다. 폭탄은 주위를 침묵으로 만들며 순식간에 터졌고, 그 여파로 남자와 미소녀의 눈길이 내게 꽂혔다.

…하하 빌어먹을. 난 고독한 영혼이니, 고독한 뒷모습만 남기고 도망칠 수 있게 좀 내버려 줘…. 엉엉 엄마. 살려줘요.

***

“이름은?”

“…김평화입니다.”

“나이?”

“18살이요.”

“보아하니 구천을 떠도는 영혼인데…, 죽은 기억 있어?”

“아니요.”

…내가, 내가 왜 여기서 자기소개를 하고 있는 걸까?

“그럼 자살한 영혼이군. 잘됐네. 자살한 영혼은 구천에서 자신이 자살한 이유를 떠올리기 전까진 승천하지 못하니까. 후후후.”

음산하게 웃고 있는 남자를 보면서 나는 온 몸에 흐르는 피가 창백하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나저나 참 이름에 안 맞게 평화적이지 않은 꼬맹이네. 감히 내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무전취식을 시도하다니.”

이를 악물고 싱글 웃는 남자를 보며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직 음식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그냥 취소하면 안 될까요? 아니, 그보다 전 음식을 시킨 적이 없는데요. 저 뒤에 있는 마녀가 대신 시켰다고요.

하지만 그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이제부터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몸으로 갚아야지? 응? 안 그래?”

누구라도…, 누구라도 식탁 맞은편에서 음산하게 웃으면서 곰방대를 피우고 있는 오렌지색 남자와 마주하면 그럴 꺼 다.

“하, 하지만…!”

“하지만 뭐? 아, 너 혼자 자기 소개한 게 억울하다고? 음. 그건 그래. 내 이름은 오렌지고 신선이다. 산신령을 겸하고 있지. 혈액형은 A형이고 어쩔 때는 B형도 되니까, AB형으로 봐도 괜찮아.”

A형이랑 B형이랑 AB형은 완전히 다른 건데요. 그보다 제가 억울해하는 핀트가 빗나갔잖아요.

속으로 남자의 말을 지적하면서 겉으로는 어색하게 웃고 있자, 이번에는 남자의 뒤에 서 있던 미소녀가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아기고양이입니다. 성별은 여자이고, 생후 3개월 되었으니, 편하게 대하세요. 하지만 손님이 아닌 종업원 주제에 절 편하게 대하면 제 머리카락이 용서치 않을 겁니다.”

자, 잠깐?

“생후 3개월이요?”

“네.”

…엄마야. 이 사람 이상해. 무서워.

내가 썩어 들어가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남자가, 그러니까, 오렌지가 생긋 웃으면서 말한다.

“아, 3개월 25일 됐어.”

…정말 무섭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인가요?”

그냥 절 놀리는 거라고 말하세요.

내 말에 오렌지와 아기고양이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왜? 더 어려 보여?”

아니요. 더 어려 보일리가 없잖아요.

그냥 넘어가자. 넘어가는 거야. 여기서 더 반박하면 나만 피곤해질 꺼야. 대범하게 넘어가자. 처음부터 이상한 사람인 거 다 알았잖아. 그냥 또라이 끼의 일종이라고 생각하자.

“아, 네 하하. 더 어려보이네요.”

그런데 이러다가 나까지 미쳐버리는 건 아닐까.

내 말에 오렌지는 곰방대를 탁자에 그대로 툭툭 재를 덜어내다가 아기고양이에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았다. 물론 아기고양이의 머리카락으로.

“이게 사장을 물로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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