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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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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태양의 아들
글쓴이: 하도
작성일: 12-07-18 21:00 조회: 1,558 추천: 0 비추천: 0

약간은 더운 느낌에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떴지만 창문 밖에서 들어오는 별빛 외에 빛은 보이지 않았다.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켜 바닥에 내려서자 자동으로 불이 켜졌다.
"현재 시각 오전 여덟 시 십삼 분 오십이 초입니다. 방 안의 온도는 몇몇 도이며 습도는 몇몇 퍼센트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천장에서 기계음이 들린다. 어쩐지 익숙한 음성이었다.
"에어컨 틀어."
신경쓰지 않고 대꾸한 뒤 점점 시원해지는 공기를 마시며 방 안을 둘러본다. 방금 일어난 침대와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은 테이블, 테이블 위에 있는 세라믹으로 된 정육각형의 상자 그리고 제라늄 화분. 다가가 보니 화분은 모조였다. 눈을 돌리자 검은 창문이 있었다. 냉장고에 가득 차 있던 플라스틱 물병 중 하나를 꺼내들고 창문으로 다가간다. 창문 밖은 온통 별. 지구에서였다면 사막 한가운데에서나 볼 수 있었을 정도의 밀도로 창문을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지구 밖에서나 볼 수 있었을 정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봐도 지구였다.
머리를 쥐어뜯고 싶어졌다.

//

꽤 오래 기다려 보아도 지구가 움직이는 것은 볼 수 없었다. 하루 정도를 투자하면 자전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누군가가 상당히 공을 들인 장난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방을 나섰다. 나서자마자 어째서 이런 곳에 내가 있는 건지 기억을 떠올려보고 싶어졌지만 어쩐지 기억이 덧칠한 듯 떠오르지 않으며 심한 두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란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렸기 때문에 그만두기로 했다.
천장이 높은 복도였다. 2, 3층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복도가 상당히 조용했기에 소리가 거의 나지 않게 걷고 있는데도 발걸음을 주의하게 된다. 보이는 문을 모두 열어볼 엄두가 나지도 않을 정도로 문이 많았기 때문에 아무 문도 열지 않기로 했다. 삼십 분은 걸었을까,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가는 길이 슬슬 가물가물해질 무렵 천장에서 지직거리는 소리가 났다. 여자, 그러니까 여자애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아, 아, 들립니까? 들린다고 믿고 이야기하겠습니다. 현재, 중앙 룸에 있는 분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분들께서는 즉시 제자리에 정지한 뒤 하시던 일을 멈춰 주시기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스스로가 제 무덤을 파는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당장 그만둬요. 여기는 우주선이라니까요?"
"......"
우주선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어깨가 풀리는 것을 느꼈다. 잠시 마이크 너머에서 어쩐지 엎치락뒤치락 하는 소리가 난다. 아무래도 마이크를 내놓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곧 목소리가 다시 들렸지만 여자애의 것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이 우주선 안에 계신 분들 중에서 중앙 룸에 계시지 않은 분은 두 분이시네요. 3층 복도에 한 분, 그리고 주갑판 아래쪽 선실에 한 분. 가까이에 전화기가 있다면 들어서 0번을 눌러 주세요."
주위를 둘러보니 전화기라고 씌어진 것이 보인다. 어쩐지 자동응답기의 대사같은 말투였다고 생각하며 0번을 누른 뒤 잠시 기다리자 또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정말 목소리가 자주 바뀌네.
"여보십시오."
여보십시오는 또 뭐야.
"여보세요. 3층 복도에 있는 게 저 같습니다만."
"그렇소."
그리고는 대화가 끊겼다.
"......"
"......"
기다리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을 정도로만 기다린 후, 입을 열었다.
"혹시 그리로 가는 길을 좀."
"그럴 필요 없소. 이미 그 쪽으로 가고 있으니."
오면서 휴대전화로 받은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어쩐지 마주치기 힘든 인상의 사람일 것 같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려고 했다.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이만."
"아니, 저기."
전화가 끊어졌다.
"......"
뭐였지, 방금. 가만히 있으란 말을 들었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고 판단했다. 이 쪽으로 오고 있다는 것은 누군가 데리러 오고 있다는 의미겠지. 얼마나 지났을까, 기대어 서 있던 바로 옆의 벽에서 팅 하는 소리가 났다.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주위가 하도 조용했기에 약간 놀랐다. 으레 저런 소리가 들린 직후에 그렇듯 문이 열렸다. 문이었나? 허리 즈음에서 열린다. 화물용 엘리베이터인 것 같다. 안에서 무언가가 굴러나온다. 사람처럼 생겼는데. 저만치 굴러가서는 굉장한 연결동작으로 구르며 일어난다. 뒤돌아 서더니 이쪽으로 걸어온다. 무서워질 정도로 무표정이었다.
"어, 안녕하세요."
나보다 약간 키가 작은 소녀다. 어색함을 없애 보기 위해 인사를 해 보았지만 대꾸는 없었다. 뭐지 싶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다.
"으."
내 얼굴 여기저기를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바라보았다. 바라보았다. 계속 바라보았다. 만져 보지 않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자문하려고 했을 때 정신을 차렸다.
"저기요?"
대꾸도 없이 갑자기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찌를 듯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우주에서 길을 잃은 자를 위한 나침반이다."
라길래 자이로스코프라도 줄 줄 알았는데 받아들어 보니 단순한 사진이었다. 누구지. 여자라는 것밖에는 하나도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아서인지 원래 모르는 사람인지. 뒷면에는 모던힐 에흐만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앞에 있는 소녀와 생긴 게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이겠지. 설마 자기 사진을 이렇게 당당히 내밀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길을 잃었을 때는 그걸 보도록 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적당히 호주머니에 찔러넣고 걷기 시작한 여자, 그러니까 소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냥 타고 왔던 엘리베이터 타고 가면 안 되나? 이름을 물어봐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팡소. 팡소 트라바키아. 팡소라고 불러. 트라바키아는 너무 기니까."
무슨 말을 하나 했지만 자기소개에는 자기소개로 답하는 것이라는 것을 곧 떠올렸다.
"제 이름은."
"알아. 자케이나. 자케이나 태피스트리."
어떻게 알았나 했지만 금방 설명을 덧붙였다.
"승객 명부에 씌어져 있었어."
처음 알았지만, 그게 내 이름인 모양이다. 기타 신상명세를 떠올리려고 노력하는 건 쓸데없이 머리만 아파지는 꼴이 될 것 같았기 때문에 굳이 시도하지 않았다.
사람은 두 명이지만 발소리는 하나만 울린다. 복도는 길었다. 우주선이 보통 어느 정도 크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나다니기 귀찮을 정도로 큰 걸 보니 큰 편인 것 같은데.
"그런데 여기는 참 사람이 없네요."
"어, 뭐."
애써 시작한 대화가 끊어진다. 발은 멈추지 않는다. 다른 이야깃거리를 꺼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강박관념이 생길 무렵, 팡소가 입을 열었다.
"반말해도 돼."
뭔가 나보다 작은 녀석에게서 이런 말 듣는 것도 뭐하지만.
"그럴까."
괜찮겠지. 나 같은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익숙해 보이고. 그래서 만난 후로 죽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사진은 누구야?"
잠시 대답이 없었다. 재촉하면 안 될 것도 같았지만 사진을 받은 이상 알 권리 비스무리한 게 있다고 생각한다. 없으면 말고.
"에흐만?"
"응."
친근한 듯 부르는 걸 보니 아는 사이인가.
"글쎄. 죽은 사람은 아닐 테니까 안심해."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투다.
"나침반이라는 건 무슨 말이야?"
"그 녀석은 뭐든지 알고 있거든."
요즘 백과사전에는 얼굴도 달려 있는 건가.
"아까 일어날 때 목소리 들었어?"
"무슨 목소리?"
"천장에서 들리는 거."
아 그거.
"들었는데 왜?"
"그게 에흐만의 목소리야."
그리고 더 이상은 말이 없었다.
나는 백과사전이 살아있을 수도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

걸음을 세는 것도 그만두고 슬슬 방에서 나와 팡소를 만나기 전까지 걸은 거리 정도는 걸은 것 같다고 느꼈을 때 중앙 룸인지 하는 곳에 도착했다.
"여기야."
무언가 생각하는 얼굴로 말했다. 문이 열리자 꽤 넓은 실내가 나타났다. 카페 분위기로 꾸며진 곳이다. 얼핏 보면 휴게실 같은데 어째서 중앙 룸인 걸까.
팡소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말했다.
"여러분, 소개하겠습니다. 태피스트리 씨입니다."
실내의 인원은 나와 팡소를 제외하고 셋. 여섯 개의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팡소는 매정하게도 나를 방 안에 던져놓곤 물을 마시러 가 버렸다. 따라가는 것도 어떨까 싶어 우선 가까이 보이는 의자에 앉으려는데 팡소의 말에 가장 먼저 응답한 사람은 아까 전화를 받았던 남자였다.
"반갑소, 태피스트리 씨."
창가에 선 채 쌍안경을 든 남자에게서 방금 들었던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태피스트리 씨. 어서 와요."
흰 가운을 입고 책상에 걸터앉아 뭔가를 읽고 있던 여자가 고개를 들어 인사를 했다.
"와아- 오빠 키 크다-"
잘 해 봐야 중학생 정도라고밖에 보이지 않는 어린 여자아이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말해두지만 이 녀석은 이때부터 이상했다.
"오빠 몇 살이야? 난 열여섯 살인데."
"어, 그, 글쎄."
기억나지 않는 건 밀어두더라도 우선은 네가 등에 매고 있는 네 키만한 보온병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데. 그리고 네 키에 열여섯 살이라고? 불쌍하게도 충분한 칼슘을 섭취하지 못했구나.
"그럼 이름은? 나는 체일렛. 체일렛 두반."
"자케이나 뭐였던 것 같은데."
뭐였더라. 갑자기 살갑게 굴어도 어쩔 수 없다. 창가의 남자가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더니 체일렛의 손을 잡아끈다.
"실례했소, 태피스트리 씨. 제자의 무례를 용서하시오. 하날카 세보리진이오."
"네? 아, 자케이나 태피스트리입니다.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지는 모르겠지만.
"소개는 필요없소. 승객 명부를 봤으니."
저 애의 보호자인가. 이렇게 수상쩍은 곳에서라면 어느 정도 신경질적인 반응도 약간은 납득이 간다. 하날카 씨가 체일렛의 손을 이끌고 저쪽으로 가자 가운을 입은 여자가 다가와 웃으며 이름을 말한다.
"크루나이거 제로실입니다. 이름으로 불러 주세요. 그쪽이 마음에 들거든요."
"자케이나, 어."
물을 수소와 산소를 가지고 만들어 먹고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게 만든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며 말을 가로챘다.
"태피스트리."
"네, 바로 그거예요."
제로실 씨가 약간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곧 웃으며 다시 물어왔다.
"그런데 혹시, 테트리스 씨도 약이라던가 드시는 것 있으신가요?"
갑자기 알 수 없는 소리를 한다. 웬 약? 아니 그보다도 테트리스라니.
"약이요?"
흰 가운을 입고 있는 걸 봐선 약사인가. 직업정신이 투철하다고 해야 하나 이런 상황에서도 용케 그런 걸 물어볼 생각을 하는군.
"별 건 아니고, 유독 여기 환자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서요. 팡소 씨도 그렇고요. 무슨 약을 드시는지도 안 가르쳐 주신다니까요."
"조용."
팡소가 제지하자 제로실 씨는 장난스럽게 입을 막더니 눈웃음을 지었다.
"여튼,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네, 그러죠."
"전 그럼 읽던 게 있어서요."
자리로 돌아가겠다는 시늉을 하고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고개를 다시 돌려보니 어느새 사라진 팡소는 체일렛과 둘이서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팡소는 세보리진 씨에게 제지당하지 않았다. 남자라고 차별하는 건가.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입이 비어 있는 것 같은 세보리진 씨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별 좋아하시나 보네요?"
"왜 그렇게 생각하오?"
"창가에서 쌍안경을 들고 계시길래."
"글쎄. 여기서는 별 말고 볼 것도 없지."
세보리진 씨는 잠시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생각하고 말고 할 문제인가?
"옛날에는 그랬을지도 모르지."
"옛날이오? 그러면 지금은 어떻습니까?"
"글쎄. 잘 모르겠군. 그렇다고 확답을 할 수 없는 걸 보면, 싫어졌는지도 모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보통 그런 걸 시적이라고 하지.
"시적이시네요."
"별로. 직업병이오. 그런 식으로 별을 바라본 적은 없소."
그 말을 끝으로 세보리진 씨는 다시 관심을 창 밖으로 돌렸다. 우와, 차가워라. 손대면 붙어버릴 것 같아. 뒤에서 누가 어깨를 톡톡 두드리길래 돌아보니 다시 제로실 씨였다. 구해주러 온 건가. 제로실 씨는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 뒤 세보리진 씨로부터 충분히 거리를 둔 뒤 말했다.
"천문학자인가 봐요. 저것 말고도 엄청 큰 망원경도 있던데. 보세요, 뭐 적는 거."
확실히 그 말대로다. 노트에 뭔가를 적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뭔지 내가 알 리는 없지만.
"그런데 혹시."
왜 이 우주선에 사람이 적은지를 물어보려던 순간, 중앙 룸의 문이 다시 열렸다.
갑자기 큰 소리가 났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 주테톡 에몽거 씨를 소개합니다!"
시끄러운 소리가 나길래 뒤돌아보니 제로실 씨와 비슷한 체구의 여자가 손을 발랄하게 휙휙 휘두르고 있었다. 교복을 입고 있는데. 그 옆에는 수척해 보이는 남자가 하나. 이 사람이 주테톡 에몽거라는 사람인 것 같다.
"수고하셨습니다 타테리고 씨."
제로실 씨가 그쪽으로 다가가며 말을 건넨다.
"아뇨, 그거 말고 우라탱이라니까요."
"그래서, 이쪽은 에몽거 씨? 전 제로실이에요. 크루나이거 제로실. 잘 부탁드려요."
시원하게 우라탱이라는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에몽거라는 사람에게 인사를 건넨다. 이름이 한 번씩 오고간 뒤에는 방 안의 사람을 하나하나 소개하기 시작했다. 나한테는 왜 저렇게 소개시켜주지 않은 거지.
"마지막으로 이 분이 자케이나 태피스트리 씨."
"안녕하세요."
적당히 인사를 하자 남자가 께름칙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었다.
"아, 아, 안녕하세요, 태, 태, 태, 태피스르니 씨."
태피스르티다. 아니, 태피스트리. 유약해 보이는 남자는 인사가 끝나자마자 적당한 곳에 의자를 차지하고 앉았다. 누군가 또 어깨를 툭툭 치길래 뒤돌아보니 타테리고, 아니 우라탱이었다. 머리를 세 갈래로 묶고 있다. 제로실 씨보다는 약간 어린 것 같은데. 교복을 보면 여고생인가.
"그래서, 테이프. 넌 뭐하던 사람이야?"
그렇게 내 이름은 부르기가 힘든 이름인가. 다짜고짜 친한 척을 하길래 나도 아낌없이 친한 척을 하기로 했다.
"글쎄. 백수였던 것 같은데."
잘은 모르지만.
"같은데는 또 뭐야."
"너야말로 웬 머리가 그래?"
"내 머리가 어때서?"
우라탱이 뭔가 항의하려던 순간 방 가운데즈음에서 메마른 박수 소리가 났다.
"주목해 주세요. 모두가 모였으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제로실 씨였다. 제로실 씨는 손에 들린 종이뭉치를 들어올렸다.
"이 문서, 저한테만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되나요?"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제로실 씨는 손을 뻗어 옆에 있는 기계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곧 대형 모니터가 켜졌다. 컴퓨터였나.
"이 문서에 따르면, 우리가 타고 있는 우주선은 전장 오백팔십 미터에 높이 삼백이십 미터로 이온 추진방식을 채택하여 최고 속력은."
우주선의 전체 구조와 스펙 등등이 표시된다. 현기증이 난다. 뭐 우주선이 그렇게 크지. 하지만 하날카 씨는 별 관심이 없었는지 한 마디 했다.
"그런 이야기를 여기서 해 봤자 관심있어할 사람은 없을 거요."
나 관심 있는데.
"에, 그럼 중앙 컴퓨터로부터 알아낸 우주선 내부의 화물 재고 현황을."
컴퓨터를 조종하자 다시 화면이 바뀐다.
"그런 것도 아무래도 상관없어. 이 안에 몇 명이 있는 거지? 우리가 전부인 게 확실한가?"
팡소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로실 씨는 다시 컴퓨터를 조종해 내부인원을 확인했다.
"승객 명단에는 분명 여기 있는 사람이 전부입니다. 우주선 내부의 생체 감지 장치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컴퓨터 스크린이 분할되어 우주선 곳곳에 설치되어 있을 것이 분명한 카메라의 시선을 표시한다.
"해치가 열리고 닫히는 것까지 모두 관리되고 있기 때문에 인원에 변동이 생기면 즉각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우주란 곳은 해치가 여닫히는 것만으로 사람이 늘고 주는 편리한 공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식량과 산소는요?"
체일렛이 손을 들며 질문했다. 제로실 씨는 다시 화면을 조작했다. 화물재고 현황을 나타내는 화면으로 바뀐다.
"식료 화물 재고 현황입니다. 산소는 정화기가 작동하고 있으니 괜찮습니다. 전지로 작동하고 있으니 전지 화물에서 가져다 갈아끼워도 될 테죠."
잠시 아무도 말이 없었다. 하지만 설명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는지 제로실 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우주선은 현재 순수한 관성으로만 항해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 그게, 게, 무무, 무슨 뜻이, 이죠?"
주테톡 씨는 말을 더듬는구나.
"우주선 내부의 연료는 다 떨어진 상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방향을 바꿀 수가 없죠. 현재로서는 계산된 항로만을 따라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 이 우주선은 어디로 가고 있는데요?"
우라탱이 손을 들었다.
제로실 씨는 힘없이 웃고선 말했다.
"가장 마지막에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지금 말씀드릴게요. 이 우주선이 향하고 있는 곳은."
잠시 제로실 씨가 말을 멈췄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말하기가 힘든 것 같았다. 실내에 정적이 흘렀다. 누군가가 대신 읽어줘야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순간, 제로실 씨가 입을 열었다.
"태양입니다."
나는 어째서 내가 이 우주선에 오게 되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왜 이렇게 사람이 없는지를 궁금해했다.
당연하다. 태양으로 가는 우주선 따위에 타고 싶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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