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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기사 루이스
글쓴이: 처음
작성일: 12-07-18 17:47 조회: 1,707 추천: 0 비추천: 0

여는 글


안녕하세요. 저는 해골기사 루이스입니다. 마녀성 지하동굴에서 살고 있죠. 나이는 16살입니다. 보통의 경우 사람이 해골로 변하려면 죽어서 땅에 묻혀야 합니다만 저는 해골 상태로 멀쩡하게 돌아다닙니다. 죽음을 극복했다는 증거겠죠.

“루이스~ 루이스 어디 있어?”

날카롭고 차가운 목소리가 동굴 안을 울리네요. 마녀님께서 저를 찾는 소리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만큼은 못 들은 척 해야겠어요. 오랜만에 사람다운 사람을 만났거든요. 마녀님의 말씀은 무시하고 저는 여러분과 이야기를 더 나눠야겠습니다.

“루이스~ 빨랑 안 오면 죽여 버릴 거야~~.”

마녀님께서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지요. 마녀님이 가진 유일한 장점이랄까. 얘기는 나중으로 미도록 할게요. 가봐야해서요. 아무리 죽음을 극복한 저라도 또 다시 죽고 싶진 않으니까요.

마녀님이 계신 장소는 마녀성 1층에 자리한 식당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마녀성에 사는 온갖 괴물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즐기시곤 하지요. 요리는 항상 달팽이 괴물 얌이양께서 도맡아 합니다. 생김새는 요리 한 번 안 해본 절세 미소녀인데 요리 실력은 어렸을 때부터 요리 연습을 한 궁중 요리사 하이킥 날릴 정도이죠. 하지만 문제가 있어요. 요리 시간이 너무 길다는 점이죠. 오늘 차린 아침 식사도 아마 어제 저녁부터 준비했을 거예요. 아니면 어제 점심 때부터 준비했을 수도 있고요. 사실 얌이양께서는 요리 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느리게 처리한답니다. 보고 있으면 속이 터질 만큼으로요.

아무튼 1층으로 가기 위해서는 계단부터 올라가야 해요. 헌데 뼈다귀를 움직이는 일이 쉽지가 않네요.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하거든요. 자칫 넘어지기라도 하면 제 약하디 약한 몸은 금세 산산조각납니다. 제가 생김새는 무시무시하지만 알고 보면 그 누구보다 여리고 여린 남자라서요. 이런, 말 꺼내기 무섭게 계단을 오르다 발등뼈가 조금 부서졌어요. 조심스럽게 움직이자, 안전하게 움직이자 생각은 잔뜩 했는데. 쩝, 제가 하는 일이 다 그렇죠 뭐. 결국 이렇게 돼버렸잖아요. 그래도 이 정도는 양호한 편이에요. 늘상 벌어지는 일이죠. 길을 걷던 중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하다 하늘에 떠 있는 드래곤을 목격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랄까. 여러분도 이런 경험 다들 많으시잖아요. 네? 없다고요? 한 번도요? 없으면 말고요. 이런! 신경을 딴 데 쓰고 있다가 이번엔 오른손이 으스러졌네요. 문을 열다가 삐끗한 모양이에요. 하하 괜찮아요. 저에게는 두 개의 손이 있는 걸요. 오른손이 없으면 왼쪽 손으로 문을 열면 되잖아요.

“루이스~ 10초 셀 게~ 10초 안에 안 오면~~ 널 죽일 테야~. 10.”

성질도 급하셔라.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으셨길래 저 꼬라지가 됐을까요. 두 발로는 늦을 지 모르겠어요. 손과 발을 이용해 달려야겠네요.

“9.”

복도를 지나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오른쪽으로 꺾어서 곧장 직진하면 돼요. 그곳에 식당이 있어요. 그러나 워낙 성 안이 넓어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네요.

“8.”

갈림길에 들어섰어요. 이제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어야겠어요.

“7.”

식당 문이 보여요. 거리는 조금 떨어져 있어요.

“6.”

바로 앞에 식당 문이네요. 손을 뻗어 열면 되겠어요.

“5.”

열었어요. 기다란 식탁에 괴물들이 빼곡이 앉아 있어요. 저기 중앙에 마녀님도 보이세요.

“0.”

저는 재빨리 빈 자리에 앉았어요.

“늦었어 루이스. 말한대로 죽여주겠어.”

살벌한 말씀. 하지만 전 억울하다고요. 마녀님께서 숫자를 잘못 세셨잖아요.

“죄송합니다, 마녀님. 다시는 늦지 않을게요. 으앙~.”

울상을 지으며 가장 간절한 표정을 지어야 해요. 그래야 살 수 있어요. 해골바가지로는 표정을 짓는 게 불가능하지만 마녀님으로부터 살아남으려면 안 되는 일도 반드시 해내야 한답니다. 왜 그런 말 있잖아요. 안 되면 되게 하라. 그리고 중요한 또 한 가지. 아무리 마녀님께서 잘못한 일이라도 무조건 자기 잘못이라며 용서를 빌어야 해요. 그것이 이 으시으시한 마녀성에서 오랫동한 살아 남을 수 있는 최고의 비법입니다.

“루이스 너 죽고 싶지 않은 거야?”

“네, 마녀님 전 살고 싶어요. 이 세상에 죽고 싶은 생명체가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 제발 절 용서해주세요, 네?”

“그렇구나. 그런데 어제는 왜 그런 짓을 했을까?”

“그, 그것은... 으앙~ 잘못했어요, 마녀님. 차라리 저를 죽여주세요~ 으앙~.”

어제 일에 대해서는 다 잊은 줄 알았는데 역시 마녀님이시네요. 기억력이 좋으세요.

“됐고 모두들 어서 먹도록 해.”

저는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들로 시선을 돌렸어요. 풍성하게 차린 음식들이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네요. 스르륵 스르륵. 얌이양의 솜씨가 발휘된 음식이니까 끝내주는 맛이겠죠. 스르륵 스르륵. 뭘 먹을까. 왼쪽에 놓인 오리 훈제? 오른쪽에 놓인 칠면조 구이? 스르륵 스르륵. 아! 옆에서 들리는 이 소리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그저 옆자리에 앉은 메두사 이영씨의 머리카락 뱀들이 혀를 날름거리며 움직일 때 나는 평범한 소리랍니다. 현재 이영씨의 눈은 노릇하게 구워진 통닭을 보고 있어요. 그녀의 머리카락 뱀들은 전부 저를 쳐다보고 있고요. 뱀의 눈은 참 특이해요. 눈동자가 세로로 쫙 찢어져 있잖아요. 저는 그런 뱀들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언제봐도 그녀의 머리카락 뱀에는 적응이 안 돼요. 저 자신이 괴물이긴 하지만 뱀은 너무나 무섭잖아요.

“먹으라니까 왜 다들 안 먹고 있어? 배고플텐데 어서 먹어.”

후후 마녀님께서 우리를 유혹 하시네요. 마녀성에서 쌓은 경험이 얼마인데 이 정도로는 어림없죠. 마녀님이 하시는 말씀은 절대 곧이 곧대로 들으면 안 돼요. 그녀는 언제나 빙빙 돌려서 말씀하시니까요.

“그럼 잘 먹겠습니다.”

앗!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며 음식을 집었어요. 빛깔이 푸르스름한 털북숭이 손이 고깃덩어리를 집어 들고 있네요. 그는 제 앞자리에 앉은 늑대인간 깨갱씨예요. 큰일이네요. 그는 마녀성에 들어온지 얼마 안 돼서 마녀성의 규칙을 전혀 몰랐던 거예요. 이는 그의 잘못이 아니예요. 제 잘못이예요.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교육을 시켜놓는 건데. 저보다는 후배이나 나이는 많은 분이라서 함부로 말을 걸 수 없었거든요. 왜 그랬는지 이제와서 후회가 되네요.

“뭐야. 아직 내가 먹지도 않았는데 나보다 먼저 음식을 처먹어? 오냐 네가 그렇게 배가 고팠다 이거지? 옛다 다 처먹어라!”

마녀님께서 단단히 화가 나셨어요. 그녀가 손가락을 휘둘러요. 식탁 위에 폭풍이 몰아치더니 이윽고 회오리바람으로 변했어요. 식탁 위에 있던 음식들이 회오리바람 안으로 빨려 들어갔어요. 회오리가 움직이네요. 회오리 바람의 끝이 깨갱씨의 입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갔어요.

음식들이 차례차례 깨갱씨의 입 속으로 들어가요. 깨갱씨의 배가 점점 터질 듯 부풀어지고 있어요. 깨갱씨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해요. 얼굴은 점점 새파랗게 질려가요. 저러다 죽겠어요. 누가 좀 말려주세요.

“마녀님 그만하시죠.”

“그, 그럴까?”

휴, 다행히다. 어째서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녀님은 로즈씨의 말이라면 꼼짝을 못한답니다. 참고로 로즈씨란 마녀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 아리따운 여성이세요. 겉모습은 영락없이 인간이지만 인간이 마녀성에 있을 까닭이 없잖아요. 그래서 괴물이라고 추측은 하는데 아무리봐도 괴물은 아니고. 그렇다고 인간이라고 치자니 여기에 왜 있는지 모르겠고. 하여간 신비에 싸인 얼굴 예쁜 아가씨랍니다.

“흠! 흠! 다들 배고플 테니까 많이 먹도록 해.”

허걱, 식탁 위에 음식들이 그대로 놓여 있군요. 마녀님의 환각 마법에 제대로 당해버렸네요. 언제쯤 돼야 그녀의 마법에서 허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마녀님께서 숟가락을 들어 수프를 떠 먹으셨어요. 됐어요. 사태가 진정되었어요. 이제부터는 음식을 먹어도 괜찮아요. 근데 앞자리에 계신 깨갱씨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네요. 호되게 당했으니 그럴만 하죠. 잠시 후 그가 이 쪽 저 쪽 눈치를 살피며 음식을 먹어도 되는지 망설이고 있어요. 저는 그를 응시했어요. 곧 그와 눈빛이 마주쳤죠. 저는 손동작으로 먹는 시늉을 했어요. 그랬더니 깨갱씨께서 식사를 하시네요. 자, 이제 제 차례예요. 어디 무엇부터 먹어볼까요?

저는 음식을 집지 않았어요. 그냥 가만히 있었죠. 오른쪽 정강이뼈에 느낌이 이상해서요. 메두사 이영씨께서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그곳을 쓰다듬고 있네요. 그녀의 눈은 여전히 통닭을 향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녀의 머리카락 뱀들은 계속 저를 주시하고 있죠. 아이 예뻐라. 물론 뱀들이 아니라 이영씨의 옆얼굴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그녀는 굉장한 매력이 있는 미인이세요. 초록색 피부가 아니라면 미인대회에 출전해서 최소한 3 등 안에는 들 거라 확신할 만큼이요. 또한 허벅지가 튼실해서 그녀의 다리를 보고 있으면 건강한 암말이 연상된답니다. 그러나 그녀의 풍만한 가슴은 저 둘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죠. 그녀의 가슴은 쉽게 말해 잘 익은 수박 두 통이에요. 참으로 고맙게도 항상 가슴골이 깊게 패인 하늘하늘한 진주색 레이스를 입고 계세요. 그러나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속은 들여다보이지 않죠. 저는 그 점이 너무 아쉬워요. 왜냐하면 옷이 몸에 꽉 껴 통풍이 안 된다는 뜻이잖아요. 통풍이 여자한테 얼마나 중요한데요. 뭐, 그밖에 다른 뜻은 없어요.

흠흠, 이제 식탁 중앙에 앉아 계신 마녀님을 소개해 드릴게요. 성함이 예삐라 통상 예삐 마녀님이라고 불러요. 처음 봤을 때는 저보다 한참 어린 줄 알았어요. 조랑말의 꼬리처럼 갈색 머리를 뒤로 한데 묶고, 눈동자는 얼굴에 비해 대따 크고, 코는 작고 앙증맞으며 얼굴은 둥글둥글 둥글지요. 키는 되게 조그마해서 귀엽고 깜찍한 꼬마 아이처럼 보여요. 하지만 그녀의 정체는 에잇 삐~삐~ 하고 욕하고 싶은 빌어먹을 마녀. 그녀가 바로 이 성의 주인님이십니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루이스? 왜 그래?”

마녀님께서 반응하시네요.

“화장실에 다녀 오겠습니다.”

“푸하하하하 루이스, 넌 해골이라서 오줌따위 안 나오잖아.”

맞아요. 저는 해골이 된 뒤부터 생리현상을 겪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먹는 행위도 마찬가지예요. 저에게는 식도, 위, 창자 같은 내장기관이 없어 음식을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처지입니다. 마녀님께서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면서 제가 식사 시간에 빠지는 행동을 절대 허락하지 않으시죠. 이 염병할 마녀. 앗! 속마음이 튀어나왔네요. 부디 못 들은 척 해주세요.

“급하게 오느라 손을 안 씻고 그냥 왔지 뭐예요. 빨리 손을 씻고 오겠습니다.”

“알았어. 10초 줄게. 늦으면 죽는 거 알지? 10.”

저는 늑대처럼 자세를 잡고 식당에서 화장실 안으로 단번에 달려 갔어요. 식당 안에 화장실이 붙어 있어 금방이었죠. 저는 이영씨가 제 허벅지 안쪽에 붙여둔 조그마한 종이를 꺼냈어요. 그리고 주변을 살핀 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종이를 펼쳤어요.

[탈출 작전 보류]

어제 그 사건이 크게 작용했나보네요. 이리 될 줄 미리 짐작했지만 실망이고 실망이고 또 실망입니다.

저는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 척 하며 종이를 물에 적셨어요. 마녀성 자체는 엄청 오래 전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내부 시설물들은 현대식이라 화장실에는 세면대, 욕조, 샤워기 등이 설치돼 있지요. 부엌에 가면 냉장고, 밥통 등도 볼 수 있어요.

됐군요. 종이가 물에 젖어 완전히 사라졌어요.

저는 화장실에서 나와 일부러 물 묻은 손을 툭툭 털며 식탁의 제 자리에 가서 앉았어요. 마녀님을 비롯해 식탁에 앉은 괴물들이 분주하게 손을 놀리고 있네요.

제 옆자리인 이영씨가 닭다리를 붙잡고 통닭의 몸체에서 그것을 북 찢어냈어요. 그리고 찢어낸 닭다리를 통닭이 있던 그릇에 놓으셨어요. 그러고는 웬일인지 얌전하게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가만히 있네요. 닭다리를 찢으셨으면 드셔야 할텐데 어째서 가만히 있을까요? 괜한 질문이군요. 제가 남의 일에 신경 쓸 이유가 없죠. 저는 가느다랗고 하얀 뼈다귀 손을 뻗어 통닭 옆에 장식으로 놓여 있던 방울토마토를 집어 들려 했어요. 그런데 저를 노려보고 있던 이영씨의 머리카락 뱀들이 쉭쉭 소리를 내며 화를 내네요. 저는 움찔하며 다른 음식을 집으려고 했어요. 또 쉭쉭 소리가 났어요. 몇 번의 시도 끝에 닭다리를 잡았어요. 이영씨가 미리 분리해놓은 그 닭다리 말이예요. 이번엔 소리가 나지 않았어요. 저는 이영씨를 힐끔 쳐다보며... 헉! 이영씨의 눈과 마주쳤어요. 그녀도 저를 힐끔 쳐다보고 있었어요. 웬지 그녀의 얼굴이 발그레하게 변했다는 느낌이 드는데 저의 착각일까요?

저는 닭다리를 잡아 입 속으로 넣었어요. 그제야 이영씨께서 식사를 시작하시네요. 저는 입 속에 넣은 닭다리를 오물오물 씹었어요. 식사는 여기까지. 저는 혀가 없어 맛을 못 느끼고, 앞에서 말했다시피 내장기관이 없어 음식을 먹어봤자 소화를 못 시켜요. 그래서 씹는 행위로 식사를 대신하고 있죠. 저는 계속 음식을 씹었어요. 계속이요. 끊임없이 계속. 이러고 있으면 과거 인간이었을 때의 경험이 떠올라 웬지 먹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우 배불러. 그만 먹어야겠다.”

제가 알기로 오늘 마녀님께서는 통닭 두 마리, 돈가스 세 개, 양배추 한 통을 먹으셨어요. 저런 가엾어라. 요즘 들어 입맛이 통 없어지셨나 봐요. 평소에는 소 한 마리를 뚝딱 해치우시더니. 설마 다이어트 중이신가?

“나 내 방에 있을 테니까 나하고 얘기하고 싶은 괴물은 언제든지 찾아오도록 해.”

“네에~.”

로즈씨를 빼고, 저를 포함한 괴물들이 마녀님의 말씀에 대답했어요. 그러자 마녀님께서 짧은 발을 분주히 움직여 식당을 나가셨어요.

휴, 살 것 같다. 마녀님이 안 계신 시간은 곧 괴물들의 자유시간이죠.

“루이스.”

이영씨의 앞자리에 앉아 계신 세이렌 땡이씨께서 저한테 말을 거시네요.

“네, 땡이님.”

“땡이님이 뭐야? 나를 부를 때는 땡이라고 편하게 부르라니까.”

제가 듣기로 땡이씨는 과거 인간이었을 때의 나이가 17살이었대요. 저보다 한 살 위잖아요. 그래서 존댓말을 쓰려는데 그녀는 한사코 반대해요.

“때, 땡이야 왜?”

“옳지 옳지. 얼마나 친근해.”

어쩐지 옆자리에서 살기가 느껴지네요. 아마 이영씨의 머릿속에 과거 안 좋았던 기억이 떠올랐나봐요.

아참 땡이씨는 청록색 피부를 가진 아름다운 여자입니다. 머리카락은 목까지 내려오는 단발이고, 얼굴은 이영씨보다 아름다우시죠. 그러나 가슴이 작고, 다리는 젓가락처럼 가늘어 전체적으로 따지면 이영씨보다 한 수 아래인 느낌이에요.

“너 밥 먹고 내 방에 올 거지?”

윽. 전 그녀가 저를 싫어했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방에 가면... 으윽 얼마나 곤욕을 치러야 하는지 몰라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엄청난 소모를 하여 결국 녹초가 되고 말거든요.

“안 돼. 루이스는 오늘 내 방에 와야 해. 그렇지 루이스? 내 방에 오면 문을 잠그고 우리 제대로 뒹굴어 보자. ”

지금 말을 내뱉은 분은 이영씨의 옆자리에 앉아 계신 나비요괴 치르씨예요. 그녀는 자신이 요괴가 아니라 나비요정이라고 주장하지만 세상에 남자를 탐하는 요정 보셨어요? 어찌나 남자를 좋아하는 분인지 마녀성에서 탈출하자마자 하고 싶은 일이 글쎄 흑인 남자와... 더 이상은 생략할게요. 하여간 제정신이 아닌 분이세요.

“루이스 너 똑바로 말 해. 내 방으로 올 거야 아니면 저 음란한 치르 방으로 갈 거야? 치르방으로 가고 싶으면 그렇게 하도록 해. 대신 평생 너를 안 볼 테지만”

땡이님이 난감한 질문을 하시네요. 땡이씨의 방에 가면 몸과 정신이 힘들어 지고, 치르씨의 방에 가면 무지하게 뜨겁거든요. 온도 얘기가 아니라 치르씨는 뜨거운 여자세요. 뼈다귀 밖에 없는 저와 어떻게든 뒹굴려고 부단히 애를 쓰는 분이시죠.

겉보기에 치르씨는 꼭 인간처럼 생겼어요. 그러나 뒤에 노란색 날개가 달려 있는데다 머리카락 두 가닥이 더듬이처럼 봉긋 솟아있죠. 또한 혀가 엄청나게 길어서 어떻게 생각하면 나비요괴가 아니라 날개 달린 카멜레온 요괴 같으세요.

그러나 외모는 어떤 괴물보다 압도적이죠. 게다가 피부색은 아시아인처럼 살구색이에요. 가슴은 땡이씨와 이영씨의 중간 크기. 엉덩이는 오리 궁둥이라서 뒤에서 보면 꼭 탐스러운 배처럼 보여요.

“저런 녀석이 뭐가 좋다고. 칫! 쳇! 헷! 흥! 기분 나빠.”

땡이씨의 앞에 앉아 계신 흡혈귀 가월씨께서 말씀하셨네요. 그녀는 병자처럼 얼굴이 창백한 분이세요. 앞머리로는 이마를 가렸고, 뒷머리는 길게 허리까지 내려와 있죠. 가슴은 치르씨와 비슷. 외모는 요염한 고양이상이에요. 한때 저는 그녀를 좋아했어요. 이 성에 있는 괴물들 가운데 가장 제 이상형에 가까워서요. 하지만 그녀는 이상하게 저를 싫어하대요. 제가 잘못한 일도 없는데 말이죠. 그래서 지금은 그녀를 싫어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이상형이라 하더라도 저를 싫어하는 분한테까지 마음을 줄 필요는 없잖아요.

“빨리 말해 루이스. 너 누구 방에 갈 거야?”

“그냥 제 방에 있으면 안 될까요?”

“그 그지 같은 지하 감옥에 말이야?”

엄연히 지하 동굴이건만 치르씨께서는 그곳을 지하 감옥이라고 말씀하시네요. 아이고 서러워라.

“내 방.”

이영씨께서 말을 하셨네요. 말이 없기로 유명한 분인데 말이죠. 헌데 내 방이라니. 이 놈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군요.

“침입자 출현. 침입자 출현. 방어하라. 방어하라.”

식당 내부가 빨간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며 경고음이 들리고 있군요. 녀석들. 이번에는 본 떼를 보여주마.

“해골검 소환!”

검 손잡이에 해골 장식이 인상적인 멋진 검 한자루가 소환되었어요. 저는 검을 잡았어요. 그리고 침입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성 중앙으로 달려갑니다.





1. 반찬투정하면 해골이 돼요


저는 과거에 평범한 인간이었어요. 한빛중학교 3학년 1반 고명훈. 저의 원래 정체이죠. 그래요. 제 본명은 루이스가 아니라 고명훈이에요.

때는 아침 식사 시간. 어머니께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된장찌개 냄새가 부엌을 가득 채우고 있었어요. 저는 김치, 된장찌개, 콩자반, 시금치 등 몸에 좋다는 음식을 일체 싫어했어요. 좋아하는 음식은 햄버거, 피자, 라면 같은 인스턴트 음식. 한마디로 편식하는 청소년이었죠. 그러나 나쁜 짓은 해본 적 없어요. 남의 돈을 빼앗거나 누군가를 왕따 시키거나 하는 몹쓸 짓 말이에요. 음... 솔직히 고백하자면 엄마에게 문제집 산다고 거짓말을 쳐서 돈을 받아낸 적은 있어요. 그 돈으로 피시방에 가고 그랬죠. 그치만 그 정도는 다들 하잖아요. 나만 그러는 거 아니잖아요. 네? 뭐라고요? 나만 그런다고요? 음... 인정할게요. 저 나쁜놈이네요. 이러면 됐죠? 칫! 쳇! 헷! 흥! 엉? 내가 왜 가월씨를 따라하지?

어쨌든 제가 편식하는 아이로 자라난 탓이 온통 저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부모님께서는 외동아들인 저를 어렸을 때부터 오냐오냐 하며 키우셨어요. 제가 무슨 요구를 해도 늘 들어줬기 때문에 버릇없는 아이로 자라나고 만 거예요.

그날도 어김없이 저는 반찬투정을 했어요. 날이면 날마다 먹어야 하는 소시지가 안 보였기 때문이었어요.

“엄마 소시지 없어요?”

“명훈아 소시지 말고 된장찌개를 먹어보려무나. 된장은 암 발생을 방지시켜주고, 간기능을 향상시켜주며...”

“소시지 없으면 밥 안 먹을래요.”

“명훈아 네 몸을 보거라. 그게 어디 사람의 몰골이니?”

그때의 제 몸은 뚱뚱함을 넘어 뚜웅뚜웅했어요. 그렇지만 아무리 못마땅해도 그렇지 엄마의 입에서 사람의 몰골이라는 말이 튀어나오다니요. 지금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걱정스러웠길래 그런 심한 말까지 했을까 하며 이해를 하지만 그때는 어머니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꼈어요. 그래서 소시지를 안 주면 학교에 안 가겠다고 마구 떼를 썼죠.

“명훈아 비만은 모든 병의 근원이라잖니. 비만에 걸리면 성인병, 당뇨, 고혈압, 발기부전...”

“그만하세요!”

저는 어머니의 말씀을 잘라내고 버럭 화를 냈어요. 성인병, 당뇨, 고혈압은 크게 상관 없잖아요. 그러나 발기부전만큼은 안 돼죠. 남자라면 언제나 힘차야 하는 법이잖아요. 아침, 점심, 저녁 가리지 않고 필요할 때 바로바로 쓸 수 있도록 말이죠. 비록 언제 쓸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소시지 안 주실 거예요?”

“오늘은 소시지 말고 이 된장찌개를...”

“에잇! 이 놈의 집구석 나가 버려야지.”

저는 뚜웅뚜웅한 몸을 이끌고 식탁에서 일어났어요. 물론 어머니께서는 저를 말리려고 하셨죠. 저는 엄마보다 덩치가 커서 엄마를 옆으로 밀치고 집 밖으로 나갔어요.

30초 쯤 걸었을까. 온몸에서 땀이 나더라고요. 날씨는 또 어찌나 더운지 결국 저는 30초간의 가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어요. 힘겹게 몸을 뒤로 돌리니까 꼬마가 보였어요. 갈색 머리를 뒤로 한데 묶은 귀여운 여자 아이가 중얼중얼 뭐라고 씨부리면서 저에게 다가오더라고요.

“내 컴퓨터, 씨 드라이브, 프로그램 파일, 직박구리.”

생김새는 귀여운데 정신은 이상한 애라고 생각하며 그녀를 그냥 지나쳐 가려고 했어요.

“도구, 폴더옵션, 보기, 숨김 파일 및 폴더 표시 체크, 적용, 확인, 왕가슴 그녀.”

저는 걸음을 멈추었어요. 등골이 오싹했죠. 그녀는 정확히 제 컴퓨터 안을 꿰뚫어 보았던 거예요.

“꼬, 꼬마야 너 나를 아니?”

그때의 저는 겁 없이 그녀를 불러 세웠어요. 그랬더니 꼬마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제게 대답했죠

“루이스.”

저는 벙찐 얼굴로 말했어요.

“나는 루이스가 아닌데.”

“그래?”

“저... 근데 내 컴퓨터를... 어떻게...”

“이 거 뭐야?”

그녀가 품 속에서 꺼내든 물건은 편의점에서 파는 1800원짜리 소시지였어요. 비닐포장이 겉에 씌워져 있고, 가운데에 나무 막대가 달린 소시지 말이에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었죠.

소시지에 들뜬 저는 낯선 꼬마가 제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말았어요.

“꼬마야 그거 오빠 주려고? 나 줘라. 응? 여기 돈 줄게.”

저는 소비자가격 1800원에 인건비 200원을 보탠 2000원을 내밀었어요. 이 정도 조건이라면 꼬마나 저나 서로 이득이라고 생각했죠.

“이름이 뭐야?”

“나 고명훈인데.”

“그럼 안 줘.”

꼬마는 얄밉게도 2000원을 받지 않고 꺼낸 소시지를 품 속에 도로 넣었어요. 만약 상대가 어른이나 제 또래였다면 진작에 무시하고 지나갔을 거예요. 하지만 상대가 저보다 약하고 키가 작은 꼬마애라서 그런지 약간의 꾀를 쓰면 쉽게 소시지를 얻을 거라 판단했죠.

“어떻게 하면 오빠한테 그거 줄래?”

“루이스.”

“응?”

“이름 뭐야?”

저는 꼬마가 왜 루이스라는 이름에 집착하는지 이유를 몰랐어요. 그러나 알 필요는 없었죠. 저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소시지였으니까요.

“나 고명훈인데... 아니야 아니야 나 루이스야.”

“루이스 맞지?”

“응. 맞아. 나 루이스야. 루이스.”

저는 루이스라는 이름을 연신 외쳤어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루이스로 바뀌지는 않으니까요. 고양이가 자신을 가리켜 코끼리라고 아무리 주장해봤자 고양이는 고양이일 뿐이잖아요. 마찬가지로 제가 아무리 저를 가리켜 루이스라고 해봤자 제가 고명훈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죠. 꼬마는 소시지를 꺼내 저한테 주었어요. 2000원을 안 받고 공짜로요. 저는 제 자신의 현명함을 칭찬하며 상품을 두 눈으로 먼저 희롱했어요. 그리고 거칠게 포장을 뜯어 코로 냄새를 맡았어요. 여기까지는 맛보기. 그 다음이야말로 쾌락의 시간. 저는 소시지를 입에 넣고 마음껏 음미했죠. 편의점에서 파는 소시지는 전자렌지에 돌려서 먹는 게 정석이지만 저는 그냥 먹는 것을 더 좋아한답니다. 아, 그때 정말 맛있었는데. 차가운 소시지에서 느껴지던 고유의 맛을 여전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름이 뭐라고?”

꼬마의 질문에 소시지를 씹으며 대답했어요.

“루이스.”

그리고 정신을 잃었어요.

정신을 차렸을 때 손끝에서 차가운 나무 질감이 느껴졌어요. 저는 눈을 떴죠. 머리를 바닥에 대고 누워 있더라고요. 내가 왜 여기 있지? 하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그리고 안을 살피는데 눈이 흐릿해서 잘 안 보이더라고요. 대충 둘러보니 가구나 장식물이 없는 텅 빈 방 안이었어요. 좌우에는 벽, 앞뒤에는 각각 창문과 문이 붙어 있었죠.

저는 창문을 통해 바깥을 훑어봤어요. 끝이 보이지 않는 초록빛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었어요.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던가? 생각하며 문 앞으로 가 문고리를 잡았어요. 문고리를 열고 나가려는데 무심코 문 옆에 붙어있던 벽거울을 보았죠. 저는 거울을 들여다봤어요. 어째서인지 제 온몸이 하얗게 보였어요. 꼭 하얀색 페인트로 칠해 놓은 듯한 모습이었죠. 저는 손가락으로 두 눈을 눌러 눈의 피로를 풀려고 하다가 깜짝 놀랐어요. 손가락이 눈 속으로 푹 파고들지 뭐예요. 저는

“으악!”

하며 비명을 지르고 손을 뗐지만 고통은 전혀 없었어요. 그러다가 제 손을 자세히 살폈죠. 살갗과 근육이 없는 완전한 뼈다귀 손이더라구요.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선명한 뼈다귀 손이었어요. 저는 한바탕 크게 웃었어요. 그리고 기절했어요.

두 번째로 정신을 차렸을 때 근처에서 슉 슉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이영, 그 녀석 정신 차렸어?”

여자의 목소가 들렸죠.

“답답해라. 입 좀 열어 이영.”

방금 전 여자의 목소리였어요.

“저런 녀석을 왜 구해줘가지고. 칫! 쳇! 헷! 흥! 기분 나빠.”

다른 여자의 목소리였어요.

“술을 퍼부으면 깨어날 거야. 내가 술을 가져올게.”

또 다른 여자의 목소리였죠.

“정신이 들었구나. 그만 일어나렴.”

또 다른 여자의 목소리였어요. 그런데 이 분은 분위기가 조금 달랐어요.

저는 눈을 떴어요. 머리카락이 뱀인 초록빛 피부의 여자, 눈동자까지 청록색인 청록색 피부의 여자, 등에 날개가 달리고 두 개의 더듬이가 달린 여자. 송곳니가 큼지막한 창백한 얼굴의 여자, 그리고 아름다운 여자가 보였어요.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사람의 몰골이 아닌 그들이 저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대요. 저는 또 다시 기절했어요.

세 번째로 정신을 차렸을 때 사람의 말소리는 안 들리고 슉 슉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 소리가 어찌나 소름 끼치던지 저는 경기 일으킨 사람마냥 벌떡 일어났다가 푹식한 무언가에 얼굴이 파묻혔죠. 기분이 좋았어요. 하늘로 날아가는 기분이었어요. 그러다가 천천히 뒤로 몸을 당겼어요. 놀란 표정으로 가슴을 가리고 있는 초록빛 피부의 여자가 보였어요. 저는 석상처럼 굳었어요. 10초쯤 지났을까. 사태를 수습하려면 이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바닥에 누워 기절한 척 했어요. 그리고 한편으로 제 갈비뼈와 종아리뼈를 확인하여 해골이 됐다는 사실을 인지했어요.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어요. 반찬투정 때문에 해골로 변하다니요. 너무나 가혹한 결과잖아요.

“책임.”

음습한 여자의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어요. 그 바람에 생각을 멈추었죠. 너무나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온몸이 떨림과 동시에 추워졌어요. 저는 추위를 견디려고 몸을 웅크렸어요. 뒤에서 무언가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위험으로부터 제 자신을 지키려고 콩벌레처럼 더욱 더 몸을 웅크렸어요. 그로부터 잠시 뒤 초록빛 피부의 여자가 뒤에서 저를 꼭 껴안는 거예요.

“책임.”

그녀의 머리카락 뱀들이 얼굴 근처에 왔다갔다 하는 느낌. 정말 끔찍했어요.

“여, 여기는.. 여기는 어디죠?”

그런 상황에서 저는 용기를 냈죠. 이곳이 어디이며, 내가 왜 여기에 있으며, 어째서 내가 해골의 꼬라지가 됐는지 질문했어요. 그런데 대답이 안 들렸어요. 저는 고개를 돌려 저를 껴안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죠.

그녀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뱀들은 화가 난 듯 했지만,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어요.

“교대시간 다 됐어. 어? 이 썩을 새끼! 이영한테 뭐하는 짓이야?”

누군가가 누워있는 저를 마구 짓밟았어요. 저는

“으아아악!”

하며 비명을 질렀지만 웬걸 통증은 전혀 없었죠. 그러나 웬지 아픈 듯 꾸며야할 것 같아 무지하게 아픈 척 몸부림쳤어요.

“끄아아악. 살려주세요.”

연기가 통했는지 발길질이 뚝 끊겼어요.

“이영 괜찮아?”

이영씨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어요.

“애나 어른이나 남자는 한결 같구나. 어이 이 삐쩍 마른 후배 녀석아. 깨어났으면 당장 일어나지 못해?”

저는 번개처럼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청록색으로 뒤덮힌 여자가 보였죠. 그녀의 모습이 사람과 달라 조금 놀라긴 했지만 이영씨 때문에 면역이 생겨 심하지는 않았어요.

“난 세이렌 땡이라고 해. 혹시 노래 좋아해?”

크게 혼을 낼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하대요. 저는 대답했어요.

“좋아하는데요.”

“이영 잠깐 나가있어 줄래?”

땡이라는 분의 요청을 이영씨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어요.

“저기... 여기는 어디죠?”

저는 땡이씨에게 이영씨한테 했던 질문을 그대로 했어요.

“여기는 마녀성이야. 그건 그렇고 어떤 장르의 노래 좋아해?”

“어떻게 하면 여기에서 나갈 수 있나요?”

저는 급박했어요.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죠. 당연하잖아요. 아침을 못 먹고 집에서 나왔으니 얼마나 출출해요.

“감히 내 말을 무시 하다니. 으으 그치만 처음이니까 봐주겠어. 출입문이 저기 있는데 가볼 테야?”

저는 즉시 대답했어요.

“네.”

“따라와.”

저는 땡이씨를 따라갔어요. 뒤에서는 이영씨가 저를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어요.

넓고 넓은 복도를 지나 마녀성 중앙에 다다른 땡이씨는 손가락으로 2층 건물 높이의 커다란 문을 가리켰어요. 저는 온몸에 힘을 주고 문을 열었어요. 생각보다 문은 쉽게 열렸어요. 헌데 빛무리가 뒤덮혀 앞이 보이지 않았어요. 저는 빛무리들 속으로 걸어 들어갔어요.

“오랜만이야.”

손을 흔드는 땡이씨와 무표정한 이영씨가 보였어요.

저는 몸을 돌려 한 번 더 문 밖으로 나갔어요. 역시 땡이씨와 이영씨가 보였어요.

“또 만났네?”

저는 어리둥절해하며 다시 문 밖으로 나갔어요.

“마녀성에 온 것을 환영해.”

땡이씨가 손을 흔들며 저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어요. 그녀는 제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어요.

“꿈 깨. 벗어날 수 없으니까.”

그 말을 듣고 저는 제 머리통을 두들기며 이곳이 꿈 속인지 아닌지 확인했어요. 꿈 같더라고요. 세게 때려도 아프지 않으니까요.

“꿈이라면 어떻게 해야 깨어나죠?”

“꿈이 아니야. 어째서 꿈이 아닌지 내가 알려줄게.”

땡이씨는 싸대기를 날렸어요. 저는 깨달았죠. 아하 꿈이 아니구나.

빨갛게 부어오른 광대뼈를 부여잡고 저는 말했어요.

“여기를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없음.”

이영씨의 간결한 대답이었어요.

그때 맨 처음 정신을 차렸던 텅 빈 방 안을 떠올렸어요. 그곳에 있던 창문. 바로 그 창문을 통해서라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거라 확신했죠.

“너 지금 창문 밖으로 탈출하려고 계획하고 있지?”

땡이씨께서 제 생각을 정확히 맞히셨어요.

“어림없는 짓이야. 따라와.”

땡이씨는 제가 깨어난 그 방으로 정확히 안내해 주셨어요. 저는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바닥과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쟀어요. 뛸 만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뛰어내렸어요. 뛰었다고요. 뛰었단 말이에요.

“거 봐. 안 되지?”

땡이씨의 말이 맞았어요.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행동은 불가능했어요. 투명한 벽이 창문을 가로막고 있는 듯 했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고개는 창문 밖으로 내밀 수 있었어요.

“주인님의 허락이 없으면 이곳을 나가지 못해.”

저는 땡이씨의 말을 듣고 몹시 흥분했어요.

“그 주인이라는 분 어디에 있나요?”

“나도 몰라.”

“나가야 하는데... 나가야 하는데...”

저는 어머니가 보고 싶었어요. 아버지가 보고 싶었어요. 컴퓨터를 켜고 싶었어요. 씨 드라이브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그리고 내 컴퓨터, 프로그램 파일, 직박구리 경로를 거쳐 왕가슴 그녀 동영상을 보고 싶었어요. 저는 이 동영상을 몇 백 번이나 반복해서 봤죠. 그러나 명작은 언제봐도 재미있잖아요. 가만, 그 꼬마 녀석!

불현듯 꼬마 녀석이 떠오른 저는 그녀가 이번 사건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추측했어요.

“혹시 갈색 머리를...”

“왜? 갈색 머리를 하나로 해서 뒤로 묶고 귀여운 생김새이며 키는 작은 어린 소녀 말하는 거야?”

독심술을 익힌 걸까요? 땡이씨는 제가 할 말을 가로채서 대신 했어요.

“맞아요. 그 꼬마 지금 어디에 있나요?”

“꼬마가 아니야.”

“꼬마가 아니면요?”

“마녀.”

이영씨의 대답이었어요.

“마녀요?”

저는 세상에 마법이란 존재하지 않다고 믿었던 사람이에요. 그랬는데 눈 앞에 버젓이 괴물들이 있으니 마녀도 믿을 밖에요. 허나 궁금한 점이 생겼어요. 어째서 마녀는 아무 죄없는 저를 해골로 만들었을까요?

저는 땡이씨한테 말했어요.

“이곳에서 나가기란 불가능한가요?”

“가능해. 마녀님과 싸워 이기면 되니까.”

자신감이 마구마구 생겼어요. 꼬마의 정체가 정말로 마녀라면 나의 이 두 주먹으로, 아니 단순한 호통으로도 충분하게 이길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찾았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등에 날개 달린 여자 분이 제 팔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어요.

“에잇!”

그러더니 괴상한 고함을 지르며 땡이씨와 이영씨를 방 밖으로 밀어내고 문을 닫아 잠갔어요. 저는 어쩐지 심상치 않아 뒷걸음 쳐 벽에 등을 바싹 기댔어요.

“누구세요?”

“이봐.”

“네, 네?”

그녀의 시선이 제 온몸을 훑고 지나갔어요.

“쓸만하군. 동정이냐?”

“도, 동정...이라뇨?”

“첫경험 해봤냐고 이 자식아.”

침을 꿀꺽 삼키고, 실은 침을 꿀꺽 삼키는 척하며 대답했어요.

“어, 없는데요.”

“첫키스는?”

제 입술은 제가 잘 간수한 덕분에 아직까지 깨끗했어요. 고백하자면 여자친구를 사귄 적이 없어 깨끗할 수 밖에 없었지만요.

“없어?”

저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진실을 대답하자니 자존심이 상하잖아요.

“순진한 놈. 여자랑 사귄 적은?”

저는 거짓말을 했어요.

“세 번이요.”

“거짓말.”

속으로 뜨끔했죠.

“남자 취향은 아니지?”

저는 발끈해서 소리쳤어요.

“저는 여자에 환장하는 놈입니다!”

그리고 무안해졌죠.

“잘됐다. 나 처녀야.”

“네? 그래서요?”

“동정과 처녀가 뒹굴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

당연히 알죠. 알지만 어떻게 안다고 얘기해요.

“모르겠는데요.”

그래서 모른다고 대답했죠.

“응애 하며 아기가 생기지. 어때? 우리 아기 갖지 않을래?”

저는 입을 떡 하고 벌렸어요. 어찌나 크게 벌렸는지 턱이 빠져 손으로 턱을 올려쳐야 했죠.

“어서 앞구르기를 하자.”

“앞구르기요?”

“앞구르기를 해야 아기가 생기는 거야. 어서!”

그녀는 시범을 보이듯이 먼저 앞구르기를 했어요. 저는 따라하지 않았죠.

문이 쾅 하며 열렸어요. 열쇠를 든 땡이씨와 머리카락 뱀들이 곤두선 이영씨가 방 안으로 들어왔어요.

“치르 이 음란한 요괴야!”

치르씨라고 불린 여자가 앞구르기를 멈추고 일어섰어요. 그녀는 땡이씨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했어요.

“요괴가 아니야. 요정이다.”

치르씨는 못 봤지겠만 이영씨가 조용히 움직여 치르씨의 목덜미를 손으로 내려쳤어요. 이윽고 치르씨는 기절했죠.

“이영 네가 원한대로 저 녀석과 앞구르기를 하도록 해.”

이영씨는 부끄러워하는 표정으로 저를 껴안았어요. 그리고 강제로 앞구르기를 하는 거예요. 천장이 아래에 있고, 바닥이 위에 있고 정말 어지러웠죠.

“아 세이 앙 유 세이 탁 앙!”

그리고 옆에서는 땡이씨가 괴상한 소음을 내고 아주 미치겠더라고요.

“탁.”

이영씨가 소음에 대답하네요.

“앙!”

“탁.”

“아 세이 앙 유세이 탁 앙!”

“탁.”

“앙!”

“탁.”

여기는 대체 어디일까요? 그리고 저는 무슨 짓을 당하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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