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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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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나는 히어로가 아니라니까
글쓴이: user_d
작성일: 12-07-18 11:03 조회: 2,296 추천: 0 비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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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글쎄, 저는 히어로가 아니라니까요.”

“에이~ 이 시대의 처음이자 마지막 영웅, 후드 씨가 그렇게 말하면 저희 같은 일반인들은 누굴 믿고 살아요?”

내가 말하기가 무섭게 MC가 웃으면서 내 말을 부정했다. 유명 연예인인 그녀의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진행에 게스트도 한마디씩 덧붙이고, 방청객들은 작위적으로 웃었다.

벌써 몇 십분 째인지 모르겠다. 난데없이 특별 게스트라고 초대하고, 학교에서 공부 좀 하겠다는데 학교 앞까지 차가 마중을 나오고, 고속도로를 타고 3시간을 달려서 도착하자마자 대기실에 모셔놓고 메이크업 시키고 옷도 갈아입히고.

메이크업을 죽어라고 시키면 뭐 해, 옷은 계속 회색 집업 후드만 입히면서.

“모처럼 방송에 나오셨는데, 히어로의 능력 하나만 보여주실 수 있나요?”

그런 거 없는데.

“아, 그렇구나, 너무 위험해서 안 된다고 하시네요. 정말 아쉽네요, 그러면 후드 씨는 다음 방송에 출연 확정! 다음번에는 저희가 세트를 마련해 놓고, 시청자 여러분들께 꼭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글쎄 그런 거 없다니까.

지금 녹화하는 이 방송은 유명 연예인들이 자주 나오고 골든타임에 방송되는 인기 토크쇼. 버라이어티와 토크쇼, 둘의 느낌을 잘 살려 요즘 시청률이 높은 프로다. 그만큼 게스트도 어마어마한데, 외국 가수가 오기도 하고, 유명 배우, 요즘 활동을 하지 않는 연예인들까지 섭외하는 잘나가는 프로다.

이 프로그램에서 오늘 초대된 게스트는 영화배우 한 명, 가수 한 명, 축구선수 한 명. 그리고 히어로 한 명.

내가 그 히어로, 그레이 후드다.

이야기의 시작은, 일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 년 전, 전 세계에 괴물들이 나타나는 일이 있었다. 크기는 2미터 정도. 때로는 인간을 닮은, 때로는 맹수를 닮은, 때로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괴물들이 나타나 세계에 다발적으로 피해를 줬다.

각국 정부는 대책 위원회를 조직하고 군을 투입시켜 괴물들을 처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선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괴물들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내는 괴물들은 완벽히 없애버릴 수 없었고, 마치 자연재해처럼 걸리는 놈이 재수 없었던 상황이 되어 버렸다.

괴물들이 나타난 지 일곱 달쯤 되었을까, 어느 날 갑자기 괴물들이 자취를 감췄다. 그들의 발톱자국도 핏방울도 울음소리도 사라져버리고 세계는 평화를 되찾은 듯 했다. 그러나 평화가 찾아온 지 3일 째 되던 날, 한국의 어느 도시 한 가운데에 웬만한 빌딩만큼 거대한 괴물이 등장했다.

주변 몇 십 킬로미터를 초토화시킨 그놈의 위험도를 알았는지, 정부는 첫째 날부터 군을 개입시켜 총 공세를 퍼부었고, 다른 나라에서 지원군이 도착했다. 허나 어떤 무기로 어떤 공격을 퍼부어도 괴물은 쓰러지지 않았고, 오히려 공격을 가하던 군대가 전멸해버렸다.

정부에서는 핵미사일을 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문제를 크게 봤고, 사람들은 종말의 시작이라고 두려워했다. 그렇게 전 세계가 마지막으로 나타난 괴물, 언제부터인가 LAST라고 불린 녀석에 존재에 위험을 느끼던 때에, 히어로가 등장했다.

폐허더미가 되어버린 도시에 산책이라도 가는 것처럼 여유롭게 걸어 들어간 녀석은, 괴물을 발견하고 허공에서 대검을 끄집어 내 괴물에게 달려들었다고 한다. 군이 제지를 하고, 방송사가 헬기를 띄워 생방송을 내보낼 준비를 끝마쳤을 때에는 이미 상황은 끝나있었다. 수백 수천 조각으로 잘려 타오르는 괴물의 잔해와, 불길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회색 후드의 소년, 그 모습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다.

모두가 그 히어로의 정체를 궁금해 했고, LAST참살 이틀 만에 하나의 사진이 인터넷에 올랐다. 방송을 탔던 히어로의 모습과, 사건 한 시간 전에 옆 도시의 번화가, 그곳의 CCTV에 찍힌 회색 후드를 입은 소년의 영상.

정부 기관과 언론과 네티즌들은 단 하루 만에 그 소년을 찾아내버렸다. 히어로와 소년이 같은 옷을 입었다는 것과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세계는 소년을 단 하루 만에 히어로로 만들어버렸다.

“정말 그 사건은 말도 안 되는 사건인데요, 전투기의 공격에도 꼼짝하지 않았던 LAST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죠.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그 당시의 생방송 화면입니다.”

사람들의 눈이 뒤쪽에 설치된 대형 화면으로 쏠렸다.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죽음의 도시 한 가운데의 거대한 크레이터. 타오르는 괴물의 잔해. 그리고 작게 잡힌 사람의 모습. 카메라가 클로즈업 되면서 사람의 모습이 뚜렷해진다. 청바지에 회색 후드를 입은 우리 모두의 히어로.

그레이 후드.

“오래 된 일이지만, 그때 세계를 구한 여기 이 용감한 히어로에게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냅니다!”

박수가 쏟아진다.

글쎄, 나는 히어로가 아니라니까.

1.

“야~ 야~ 야~ 너 또 방송 탔더라? 이렇게 위대한 사람이 돼 버리면 나 같은 일반인은 황송해서 어떻게 말을 거냐.”

“시끄러.”

핀잔을 줬지만 이 녀석은 그 정도로 말을 멈출 녀석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나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내 친구를 쳐다봤다. 괜히 짜증이 났다. 내가 히어로가 돼 버린 건 이 녀석의 책임도 있다.

지금 내 옆에서 신나게 떠들고 있는 녀석은 중학생 때 알게 된 친구인 김민호. LAST참살 사건의 그날에 나는 이 녀석과 또 한 명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갔었다. 재미있어 보이는 영화를 친한 친구들과 보러 간다. 지극히 일반적이고 일반적인 일이었다. 영화를 보고, 기대하던 것 보다 재미가 없었다면서 햄버거를 먹으면서 잡담을 하고, 저녁에는 아버지 생신이라 일찍 가야 돼서 친구들에게 말을 하고 먼저 버스를 타고 돌아갔다.

내가 버스를 타고 집에 가서 샤워를 하는 동안, 뉴스에 LAST에게 접근하려는 소년이 있다고 속보가 떴다. 샤워가 끝나고 나와 옷을 갈아입는 동안에는 생방송이 보도됐고, 내가 주스를 꺼내 병째로 마신 다음 TV를 켰을 때는 한 남학생의 인터뷰가 나오고 있었다.

[저거 내 친구에요!]

그 때는 생방송이라 편집도 안 되고 그냥 방송을 타 버린 모양이지만, 며칠 뒤 방송사에서 찾아와서 날 인터뷰 했을 때도 민호는 끼어들었다.

“그 때 같이 놀다가 이 녀석이 갑자기, 가봐야 한다면서 사라져버린 겁니다. 이야~ 그때는 설마 괴물을 사냥하러 가는 건 줄 몰랐죠.”

이 신빙성 없는 증언 때문에 나는 LAST를 사냥한 히어로, 그레이 후드로 낙인 찍혀버렸다.

“다 너 때문이야 이 자식아.”

“뭐가 민호 때문인데? 뭐가?”

민호에게 이 억울함과 분노를 표출하려는데, 누군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내 분노의 질주에 간단히 브레이크를 밟아버린 이 여학생의 이름은 수진. 민호와 마찬가지로 중학교 때부터의 친구이며 그 사건이 있던 날 같이 영화를 보러 갔던 두 명 중 한 명이다.

"왜? 뭔데? 무슨 일인데?"

보다시피 이렇게 재미있는 사건을 좋아하고 활발한 캐릭터라서, 내가 히어로라는 이름을 뒤집어쓰게 된 데에도 한 몫 했다.

"늘 있는 일이지, 민호가 헛소리 하는 게 하루 이틀이야."

"아, 그렇구나."

"뭐가 늘 있는 일이고 뭐가 그렇구나야!"

"봤지?"

"응, 이해했어."

"그렇지?"

수진이는 순진하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너 히어로만 아니었으면 내가 진짜……."

민호는 어금니를 빠드득 악물고 나를 노려봤다. 열 받은 것 같지만 제까짓 게 뭘 어떻게 하겠어? 수진이가 그렇다는데. 내가 히어로라서 못 때리는 거냐, 수진이가 동의 했으니까 못 때리는 거지.

친구인 내가 보기에는 정말 안타깝게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민호 녀석은 수진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그 마음을 전하지도 못한 채 시간은 흘러 고2가 되어 버렸지만.

"너나, 나나 인생 참 고달프다."

"뭔 소리냐?"

"아니, 아무것도."

"뭔데? 뭐라고 했는데? 응?"

수진이가 눈을 반짝이면서 질문 공세를 퍼붓고, 민호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다. 아아, 안쓰러운 내 친구여.

안쓰럽기로 치자면 나도 밀리지는 않지만.

나는 가방에서 스케줄러를 꺼냈다. 히어로가 된 이후 일이 많아져서 구입한 물건이다. 하루에 할 일이 어마어마하게 많기 때문에 잘 정리해 둬야 한다. 저번 주 스케줄은 거의 지옥이었다. 나는 그 날을 회상하고 오늘 스케줄은 적기를 바라면서 오늘 날짜의 페이지를 폈다.

"이런 게 있었나?"

스케줄러 오늘의 페이지에는 [시 행사 참여 pm 2]라고 적혀 있었다. 이걸 내가 언제 적었더라. 생각해보자, 곰곰이 생각해보자. 시 행사라, 시장이 전화한 적은 없고, 비서 전화를 받은 적도 없고.

"아, 그건가."

저번 주에 한참 바쁠 때, 교장이 불러서 시에서 행사를 하니 잠깐만 참여해 달라고 했다. 정말 바빠서 그냥 네네 하고 넘어가버렸는데, 그게 이거였구나.

따악.

갑자기 누가 뒤통수를 후려쳤다. 뒤통수를 문지르면서 고개를 드는데 1교시인 수학 담당, 수학 선생님이었다. 하긴 요즘 나를 때릴 만한 사람은 이 선생님 밖에 없다. 학교의 위상을 드높였다고 교장이 띄우고 다른 교사들도 따라서 띄우고, 내가 잠을 자도 잘 한다 놀아도 잘 한다 숙제를 안 해와도 잘 한다. 무슨 연예인 같은 취급이라서 곤란하다.

하지만 딱 한 명 다른 사람이 있었으니 여기 이 수학 선생님이다. 세계의 평화를 지키고 나라에 공헌하고 학교의 위상을 드높이고 이 시의 자랑거리인 히어로를,

따악.

때릴 수 있는 단 한 사람.

"수업 시작했다."

"죄송합니다아아아."

비꼬는 거 아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정확한 발음을 할 수가 없었다. 히어로 취급을 받고 있지만 난 평균보다 떨어지는 내구도의 신체를 가진 고등학생이다. 머리를 맞으면 무지무지 아프다. 또 맞는 건 사절이라서 나는 스케줄러를 가방에 집어넣고 수학책을 꺼내고 수학공책을……

"없네?"

아무리 그래도 아침부터 뒤통수 세 대는 너무하잖아요.

"수학 선생님 너 싫어하냐?"

"모르겠다……."

나는 맛없는 급식을 깨작대면서 대답했다. 아침부터 맞아서 서러운데 오늘 따라 밥이 맛이 없다니. 그래도 참아야 한다. 내가 밥이 맛없다고 하는 순간 학교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오늘부로 잘린다. 정말 곤란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내가 하는 언행은 영향력이 장난 아니라서 늘 조심해야 한다.

"뭐 이딴 게 다 있어……."

난 진짜 히어로도 아닌데.

"넌 공부 안 해도 되잖아."

"대신에 죽을 것 같다, 누구 덕분에."

"고맙지?"

"고마워서 조기튀김으로 때려버리고 싶다."

확실히 공부는 안 해도 된다. 장학금 나오지, 나라에서 돈 나오지, 대학에서 오라고 하지, 집에서도 장한 아들이라고 하지, 외국에서 초청하지, cf찍으라고 하지, 영화화를 한다고 하지, 놀고 먹어도 굶을 걱정이 없다.

하지만 그 생활을 이어가려면 나는 죽을 때까지 녀석의 흉내를 내야한다. 하필 그날에 나랑 똑같은 옷을 입은 진짜 히어로.

"그레이 후드."

"뭐가?"

"이 이름 좀 유치한 거 같지 않냐?"

"히어로들 이름은 원래 다 유치한 거야,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메가맨."

뭔가 이상한 게 끼어 있는데.

"하긴, 다 유치하지. 유치한 이름도, 악을 물리치는 행동도, 대사도, 다 유치하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네가 그 히어로라는 게 중요한 거지."

히어로라는 게 중요한 건가.

"지금은 이게 더 중요해."

"뭔데?"

"이 조기튀김이 더럽게 먹기 힘든 거."

결국 조기튀김은 그냥 잔반통에 넣어버렸다.

똑똑똑.

"들어와라."

"실례합니다."

나는 교무실 문을 열고 조용히 들어갔다. 2시에 있는 행사 참여는 교장이 부탁한 거고 시장이 말한 일이고 이미 취소할 수 없는 약속이지만, 담임에게 허락은 맡아야 한다. 학생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물론 나는 학생보다 히어로의 비중이 더 큰 것 같지만, 그건 이 사람 앞에서는 예외다.

"또 가봐야 되냐?"

히어로를 영웅으로 대하지 않는 단 한 사람, 내 담임이자 수학 선생님.

"네, 미리 말씀드렸어야 되는데, 죄송합니다."

"가 봐라, 이제 와서 뭘 어쩌겠냐."

"감사합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나는 인사를 하고 뒤로 돌았다. 선생님의 얼굴은 찡그려져 있었다. 아무리 히어로라고 해도 제자가 날마다 학교를 빠지니 싫어하실 만도 하다.

"잠깐만."

수학 선생님이 나를 불러 세웠다. 허락도 맡았는데 무슨 일일까. 나는 앞으로 내 딛으려던 오른 발을 돌려 다시 돌아섰다. 선생님의 얼굴은 진지해보였다.

"네가 아무리 히어로라고 해도, 아직은 학생이고 내 제자다. 배워야 하는 청소년이란 말이다. 알고 있지?"

"네."

"그럼 그것만 명심하고 있으면 된다, 가 봐."

선생님의 얼굴은 이제야 웃고 있었다. 요즘 이런 교육자가 또 있을까.

교무실에서 나와 복도를 걷는 것도 힘들었다. 시선들이 모두 나에게 쏟아지는 것 같았다. 실제로 시선들은 쏟아지고 있었다. 아이돌을 보는 눈빛, 영웅을 보는 눈빛, 때로는 달갑지 않게 보는 눈빛도 있었다.

정말 나는 아무 것도 한 게 없는데.

"또 가냐? 친구 얼굴 보기 되게 힘드네."

"그러게, 또 가네."

"어쩔 수 없지, 히어로를 친구로 둔 우리가 잘못이니까. 그치?"

교실에서 가방을 싸자 민호와 수진이가 다가왔다. 이제 교실에서 내가 나갈 준비를 해도 왜 가느냐고 어딜 가느냐고 묻는 사람은 이 둘 밖에 없다.

"나도 교실에서 수업 받고 싶어."

"배가 불렀네."

"배가 불렀구나."

"야, 야, 좀 봐주라. 이 짓도 얼마나 피곤한 줄 알아?"

"몰라."

"몰라."

딱 끊어내는 듯한 둘의 말에 나는 웃었다. 민호도 따라 웃고 수진이도 같이 웃었다. 한참을 웃다가 민호가 입을 열었다.

"우리 히어로님 힘든 건 다 알지, 그냥 다녀오기나 해."

"고맙다."

"그런데, 이번에는 뭐 하러 가는 거야? 어디에? 응?"

"어디더라……."

나는 스케줄러를 꺼내 오늘 치 스케줄을 읽었다.

[시 행사 pm 2]

"이것 밖에 안 적혀 있네, 뭐 어때, 어차피 교문 밖에서 차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아무 것도 기억 안 나? 응?"

"뭐랬더라, 무슨 축제 개막식이라고 한 것 같은데, 초대가수들도 오는 것 같았고. 그 누구더라, 올해 데뷔한 6인조."

"걸그룹?"

"남성 그룹일걸."

"그럼 내가 어떻게 알아."

민호 너는 걸그룹이 아니면 기억할 가치도 없는 거냐.

"그레이즈?"

"아, 그런 이름이었던 거 같아."

내가 기억을 되살리면서 끄덕이자 수진이는 눈을 반짝였다.

"나 그레이즈 엄청 좋아하는데! 나 좀 데려가 줘!"

아예 팔에 매달려서 펄쩍펄쩍 뛰고 있다. 무겁거든요. 무겁거든요.

"수업 들어야 되잖아. 그냥 방송으로 봐."

"그치만, 응? 응?"

"가자."

민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수업은?"

"째야지."

이놈은 아무리 수진이가 가고 싶다고 했다지만 대한민국 고등학생이 가수 구경 가려고 야자도 아니고 수업을 통째로 빼다니, 정말 생각은 하고 사는 걸까. 나야 그렇다 치고 내일 혼나는 건 어쩔 건데. 아니지, 나까지 혼나는구나. 내일도 맞으라고?

가자고 하면 내가 순순히 데리고 갈 것 같았냐.

"저, 뒷 분들은?"

"친구들인데요, 행사장까지만 태워다주세요."

기사님은 좀 아니다 싶은 표정이었지만 조금 생각하다가 알았다고 했다.

죄송합니다. 한 번만 좀 넘어가주세요.

뒷좌석에 세 명이 주르륵 타게 됐다. 수진이, 나, 민호. 민호야 수진이 옆에 타고 싶었겠지만 내가 먼저 들어가고 수진이가 반대편에서 타는 바람에 어쩔 수 없게 됐다. 이건 고의로 그런 게 아니니까 노려보지 말아줘.

"험, 험."

조용한 분위기가 어색했는지, 기사님이 헛기침으로 말문을 여셨다.

"친구 분들은 오늘 도울 일이 있어서 가시는 건가요?"

"아닌데요, 수업 째고 놀러가는 건데요."

나는 바로 민호 배를 후려쳤다.

"야 임마, 그렇게 돌직구로 던지면 어떻게 해!"

"그럼 뭐라고 하냐, 있는 그대로 말한 건데?!"

민호와 내가 작게 소리 지르는 기술을 사용하면서 싸우자, 기사님은 수진에게 말을 걸었다.

"저 친구 분은 농담을 잘하네요."

"농담 아니에요, 째고 놀러가는 거예요."

너까지 왜 그러니 수진아.

"응? 사실이잖아? 거짓말은 하면 안 돼, 그치?"

"그렇게 치면 수업은 째면 안 되거든."

차는 삼사십 분을 달리고 멈췄다.

"도착했습니다."

"뒷문인데요?"

"히어로가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가면 인파 때문에 사고가 나거든요."

"아하."

정말, 무슨 유명인사 취급이냐고. 나중에 내 공항패션 같은 것도 돌아다니게 되는 건가.

기사님은 우리를 뒷문에 내려놓고 계단으로 올라가면 누가 기다리고 있을거라는 말만 남긴 채 사라져버리셨다. 나는 차가 골목을 지나서 안 보이게 되자 움직였다.

"올라가자."

"어, 응."

"응."

민호나 수진이나 이런 데 와보는 게 처음이라 그런지 긴장한 것 같았다. 나야 뭐 일주일에 두 번 씩은 다니니까. 다른 애들 피씨방 가는 것처럼 왔다갔다하지. 불쌍한 내 인생.

"후드 씨 한 분 오신다고 했었는데?"

"아, 죄송합니다. 친구들인데 구경을 하고 싶다고 해서."

"그러시면 두 분은 저기 소파에 앉아 계세요."

여전히 긴장한 둘은 고분고분 소파로 가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뭔가 속닥속닥 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늘 하던 대로 준비를 시작했다.

탈의실에서 옷 갈아입기. 어딜 가나 준비가 되어 있다. 스키니한 청바지에 하얀 티셔츠. 그걸로 갈아입고 나와서 메이크업에 머리 정리. 예전에는 동네 미용실도 세달에 한 번 갈까말까 했던 나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어우, 지겨워."

마지막으로 회색 후드. 후드를 머리에 쓰고 나서 흐트러진 머리를 또 정리한다. 이런 작업을 거치면 학생인 내가 완벽한 히어로 그레이 후드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럴듯 한데?"

"멋있다~."

"이걸 기쁘게 들어야 하나……."

나는 거울 앞에 서서 그레이 후드로서의 내 자신을 바라봤다. 영웅. 히어로. 세계를 구한 자. 절대적인 초인. 실상은 흔해빠진 학생이지만. 이 지경까지 와서는 어떤 말을 해도 대중에게는 먹히지 않는다. 정부나 언론도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그냥 날 히어로로 만든 건 아닐까.

혼란 뒤에 닥쳐올 파장을 막기 위해서 너도나도 열을 올릴 범세계적인 아이돌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알 게 뭐야."

나는 소파에 주저앉았다.

"이게 끝?"

"다 끝난 거야? 벌써? 응?"

"이제 대기하고 있다가 순서 되면 나가서 몇 마디 해주고 오면 돼."

"시시하네."

"시시해."

"정말 시시하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노래를 하겠어, 춤을 추겠어. 그냥 나가서 여기 이곳에 히어로가 왔다고 손이나 흔들어주면 되는 거지. 노래라, 그러고 보니 초대가수가 온다고 하지 않았나? 누구더라 걔들이.

"안녕하세요~ 그레이즈입니다~!"

대기실 문이 열리더니 남자 여섯 명이 들어왔다. 첫 번째 아해는 회색 후드, 두 번째 아해도 회색 후드, 여섯 명 모두 회색 후드를 입고 있다.

"그레이 후드 씨 맞으시죠?"

"아, 네, 전데요."

예전에 뉴스에서 히어로 그레이 후드를 모티브로 한 6인조 남성 그룹이 데뷔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고 이 칙칙한 회색 후드를 일곱 명이나 입을 필요는 없잖아.

"만나게 돼서 영광입니다, 저기, 사진 한 번만……."

"네, 찍어드려야죠."

"헌데 뒤에 그 분들은……?"

"친구들인데요."

"친구 분들도 같이 찍으실래요?"

물론, 이 5번 회색돌이는 아무 생각 없이 예의상 한 말일 거다. 민호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애초에 이 회색돌이들은 그냥 나하고만 사진을 찍으면 됐고, 수진이가 달려드는 상황은 예상도 못했을 거다.

"네! 찍을래요! 찍을래요!"

수진이가 달려들어서 센터에 자리를 잡고, 나도 중앙으로 붙었다. 그리고 그레이즈 멤버들이 세 명씩 옆에 서 있는 모양으로.

"죄송한데 사진 좀 찍어주세요."

"……뭐?"

표정이 곱지 않다. 눈빛이 심상치가 않다. 참아라, 김민호. 요즘 잘나가는 아이돌 쳤다가는 나도 어떻게 실드 못 쳐준다.

"민호야 찍어줘! 빨리! 응!?"

"알았어."

이놈이 단순해서 정말 다행이다.

"찍습니다. 하나, 둘."

“?!”

쾅.

민호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런 굉음이 들렸다. 뭐지? 요즘 카메라는 효과음이 왜 이렇게 임팩트가 큰 거야? 카메라 치고는 쓸데없는 성능이잖아. 이건 말도 안 되잖아. 카메라를 찍었는데 천장에서 먼지가 떨어지는 건 무슨 고성능이냐고.

"어…….?"

누군지 기억은 안나지만 누군가가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그런 소리를 냈다. 자연스럽게 나머지 시선들도 천장으로 향했다.

무너진다.

천장이 갑자기 무너져 내렸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건물이 흔들리더니 합판이 부서지고 전등이 떨어지면서 실내의 모두를 덮쳤다.

여러 명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데 잘 들리지가 않는다. 남자의 고함소리와 여자의 비명소리와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상황도 알 수 없었다. 전등은 모두 깨져버렸고, 먼지가 피어올라 누가 누구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머리를 감싸고 웅크려 내 몸에 미치는 피해를 최대한으로 줄이는 게 다였다. 굉음과 흔들림은 계속됐다.

몇 십분? 몇 분? 사실상 몇 십초 되지 않았을 시간이지만 끔찍할 정도로 길었던 시간이 지나고, 소리도 흔들림도 잦아들었다.

“……끝났나?”

“끝난 것 같다.”

내 중얼거림에 민호가 대답했다. 천천히 고개를 들고 보니 민호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우왁!”

“뭐야 임마.”

“놀랐잖아.”

“민호야, 이제 무거운데.”

민호는 분명 소파 쪽에 있었을 텐데, 그 혼란스러운 순간에서도 달려와 수진이를 감싸고 있었다. 그레이즈들도 가장 맏형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팔로 다른 사람들을 잡고 있었고. 난 뭐하는 거지.

“끝났나요?”

“네, 멈춘 것 같아요.”

웅크리고 있던 회색 후드 3번이 말했다.

“잠깐 상황을 좀 보고 올게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일어섰다. 아마도 그레이즈의 맏형. 동생들의 어깨를 짚어 안심을 시킨 후에 그는 천천히 무너진 문 쪽으로 향했다.

“바깥도 지금은 안전한 것 같아요, 이제-.”

뒷말은 들을 수 없었다. 그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제대로 파악은 되지 않지만, 내가 본대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레이저가 통째로 집어 삼켰다.’

노란빛의 광선이 번쩍 하고 지나가고, 문과 복도와 그와 건물이 통째로 썰려나가듯이 사라져버렸다. 지우개로 지워버린 것처럼. 건물의 단면도를 보여주기라도 할 것처럼.

“뭐야 저게…….”

리더가 사라졌다는 공포보다도 지금 눈앞의 상황이 더 두려운 건지, 떨리는 목소리로 누군가 말했다.

건물이 잘려나가서 훤히 보이는 운동장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있었다. 사람의 형상임에도 날개가 달려있고, 갑주를 입은 것 같은 외형에 짐승의 발톱이 달린. 이 세계를 절망으로 몰아넣었던 마지막 마왕.

LAST.

사라졌을 그것이 지금 내 눈앞에 재림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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