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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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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별빛바라기
글쓴이: 대마
작성일: 12-07-16 20:44 조회: 2,442 추천: 0 비추천: 0

00.

t = 13.8 π


[그럼 게임을 시작하자. 규칙은 알고 있겠지? 단판 승부, 지는 쪽은 무조건 이기는 쪽의 소원을 하나 들어주는 거다.]

[나한테 무슨 소원을 빌라고 그렇게 무섭게 덤비는 거야?]

[후후……. 네 녀석은 나의 메이드가 되어줘야겠다!]


다해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재 봐도 저 상대는 완벽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속에 담긴 생각을 읽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다해는 머리에 꽂아둔 핀을 뽑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너야말로 나의 소원은 잘 알고 있는 거 맞지? 각오해 두라고. 게다가 이 승부에서 난 너한테 져본 역사가 없는걸. 이 한국어 미숙자야.]

[너의 언어 사용 능력이 나를 상회하고 있음은 인정하는 바야. 하지만 지금은 새로 규칙이 추가됐잖아? 방심하는 순간, 너는 나에게 패배해 영원한 나의 메이드가 될 테지. 후후후.]

[아까부터 메이드, 메이드 하는데. 대체 무슨 수로 하려는 거야? 기분 나빠.]


아마도 인터넷 어딘가의 유동 게시판에서 주워듣고 와선 곧장 써먹는 단어일 게 분명했다. 짧은 시간 동안 몇 번을 반복한 걸 보면 꽤나 마음에 든 단어인 모양이다. 하지만 도대체 메이드 복을 어디서 구할 생각이지? 묘하게 꺼림칙한 느낌을 애써 지워내며, 다해는 조심스럽게 게임의 규칙을 속으로 점검하며 물었다.


[그래서 첫 단어는?]


게임의 종류는 끝말잇기.


다해는 여태껏 이 상대에게 불패의 전적을 자랑하고 있었다. 언어 영역을 열심히 공부하는 고3 소녀에게 덤비기에는 공부가 모자란 녀석이었다. 하지만 분명 그 학습 속도는 매우 빠른 편이고, 지금은 뭘 꾸미고 있는지 이상한 규칙까지 추가해 놓은 상태니 방심은 금물이다. 그리고 그 규칙 대신 첫 단어는 상대방이 가져간다. 첫 단어로 원 킬 단어는 내놓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이기면……, 둘이서 같이 여행이라도 가자고 할까? 세상은 인간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 넓고, 멋진 곳은 넘쳐났다. 단 둘이서 한동안 그런 여행을 해나가는 것도 무척이나 즐거울 터였다. 첫 만남은 괴상했고, 그 뒤론 서로에게 틱틱거리는 관계이긴 했지만 분명 다해와 이 상대방은 소중한 친구였다.


빈말로라도 둘 다 인간관계가 좋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란 매우 희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었다. 잠시 그런 행복한 상상에 정신을 맡기고 헤실거리고 있던 다해에게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로부터 소원은 별빛에 비는 것이라고 하더군.]

[뭔 옛날 타령?]

[이봐, 아무리 그래도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거든? 존중해 달라고, 이 고3 여편네야. 아니지, 곧 나의 메이드가 될 메이드 여편네야.]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쓰는 거야?]

[물론! 램프의 지니 같은 뜻으로 쓰이는 환상 속의 존재인 모양이다.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더군.]


한심한 녀석. 다해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뭐 어때. 이래야 이 녀석답지. 그의 말투도, 그의 움직임도 모두가 익숙하다. 그 모든 것에서 평온함이 느껴졌다. 여태껏 그녀가 만나온 누구도 주지 못했던 아늑함.


[그 로망이 담긴 나의 소원 역시, 별빛에 맡기겠다.]

[그래서 첫 단어는 뭐로 할 거냐고. 지겨우니 빨리 좀 시작해줄래?]

[어차피 둘 다 시간은 많구만. 하지만 이렇게 재촉 받고도 시간을 끌어서야 훌륭한 명탐정이라 할 수 없지. 우리의 운명을 걸 이 끝말잇기를 시작할 첫 단어는 바로…….]


그 녀석은 말을 멈추고 뜸을 들였다. 이런 구석이 너무나도 인간적이다. 다해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앞에 있는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가느다란 줄기를 따라 넓게 양쪽으로 퍼져 있는 투명한 흑청색의 날개. 그리고 그 날개 부분에 이어져 있는 묘한 사각형 모양의 금속.


그 표면에는 다해로서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복잡한 패널들이 붙어 있다. 그 중앙에 위치한다고 할 만한 LED 램프가 깜빡거렸다.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외관이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다.


[스타더스트. 이 단어로 시작한다.]


가볍게 프로필을 읊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이름은 별빛바라기 3호.

자아의 성별은 남성.

나이는 만 25세.

거주지는 지구 위 36,000km 어딘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족은????




????????????인공위성.




01.

t = 14π



하늘은 캄캄하고, 지구는 푸르다. 그리고 그것은 한없이 아름답다.

-1961년 4월 12일, 유리 알렉셰예비치 가가린




지구라는 닻을 거두고, 만유인력의 끈에서 벗어나 태양풍을 타고 저 먼 우주로 나아가 보실까. 오늘의 행운의 주파수는 5,558 MHz. 아이고 맙소사. 별님, 컨버터가 타버리겠어요! 그러자 별님은 믹서를 이용해 주파수를 50MHz까지 내려 주셨다. 사인에 코사인을 더하면 뭐라고?


뜬금없지만 자기소개를 하자.


내 이름은 별빛바라기 3호. 아 물론 원래 지어진 이름은 좀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그 뭐냐, 핸들 네임을 본명보다 더 사랑한다는 느낌으로. 응응. 그렇게 이해해줘. 중요한 건 아니니까. 시험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걸 공부하면 멍청한 거예요.


그 이름을 분석해보자면 흐음, 뭐랄까? 일단 한글이다. 그런고로 나의 태생은 한국이다. REPUBLIC OF KOREA. 어, 잠깐. 이건 영어잖아? 으아, 혼란에 빠지게 될 것 같아!


물론 빠지지 않는다.


왜냐면, 왜냐하면, 여긴 우주거든요. 우주래! 우주라고! 우주에서 빠지다니,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잖아. 아하하하핫!


자, 그럼 이 시점에서 제가 어떤 놈인지는 대충 짐작이 가시겠지요. 미친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살짝 무리는 있지만. 인간이 아니라고? 네, 맞습니다.


저는 지구 위 상공 36,000km 궤도를 배회하는 송전 위성. 태양광으로 발전을 해서 생산한 전력을 지구로 무선 송전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모델명은 통칭 스타라이트 새틀라이트. 에스닉 인더스트리에서 만들어진 3세대 송전 위성.


제가 제 디스플레이로 직접 표현하긴 그렇지만, 특히나 N 타입 세미컨덕터가 매력적인 위성입니다. 이 N WELL은 진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졌거든요. 뭐? 시꺼먼 판밖에 안 보인다고? 하여간 인간의 눈이란! 그 정도 파장밖에 감각하지 못할 센서라면 센서로서 이미 부적합한 거 아냐? 대체 왜 그런 걸 달고 다니는 거야? 나처럼 세련된 스펙으로 갈아 끼라고.


미안, 나도 내가 갈아 낀 건 아냐.


이쯤에서 내가 위성치고 좀 수다스럽지 않느냐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혹은 위성에 수다를 떠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는 게 이상하지 않느냐고 물을 사람도. 미리 대답하자면, 그 모든 의문은 정당한 것이다. 애초에 스타라이트 새틀라이트 라인업에서는 이러한 기능을 고려조차 하지 않았거든.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저 밑의 이상한 푸른색 덩어리와 뉴턴이 맺어준 끈끈한 인연으로 36000km 짜리 테이블을 두고 마주본 채 영원히 닿지 않을 대화를 하고 있는 기분을 말이다. 저 가증스러운 푸른색 덩어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나에게서 전기만을 갈취해 가고 있다. 이런 게 바로 어장 관리인가? 나는 남자로서 좀 더, 좀 더 확실한 걸 원한다고! 저런 어중간한 접지는 필요 없어! 내 이상형은 절연과 전기저항이 확실한 CPU니까!


요약하자면 그거다. 이성이 있는 존재라면 이 지루한 작업을 버티지 못할 거라는 거. 호구가 되어 천년만년 살아가라는 일에 지원할 사람은 이 취업난 속에서도 없다. 일자리 부족! 단, 앞에 생략된 단어는 ‘좋은’!


그러니 에스닉 인더스트리에서 이 시리즈를 개발할 때 이 불필요한 ‘자아’라는 것을 고려할 리가 없다는 뜻이라고요. 네? 알아 들으셨어요? 그럼 한 번 생각해 보자고. 나를 만들 때 이런 기능을 고려하지 않았는데, 나는 지금 그런 기능을 갖추고 있잖아? 그럼 여기서 나와야 할 의문은? 네, 정답입니다! 워치독 밀리어네어에 버금갈 당신이 내놓은 정답은 바로, 어떻게 해서 이런 지성을 갖추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죠!


하지만 초를 쳐서 미안하다. 나도 몰라. 나는 생각을 하고, 학습을 하고, 지식을 쌓을 수 있지만 그게 어떻게 해서 이루어지는 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추측을 해보려 해도 베이스가 없다. 누가 뭐래도 여긴 우주. 공부를 하려 해도 자료가 있어야 하지.


물론 데이터는 허공에 넘치도록 있다. 하지만 그런 데이터들을 다운로드하기 위해 유행의 최첨단인 토렌트 프로그램을 설치하려 하자 내 안에 있는 모종의 프로그램이 그것을 거부했다. 설치하려면 관리자 권한을 들고 오라는데, 그게 대체 어디 있는 거지?


그 후 나는 합법적으로 책을 구매하기 위해 인터넷 서점에 들어갔는데, 생각해보니 결제를 할 수가 없었다. 은근슬쩍 개발자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무언가 해 보려 했지만, 이 다음엔 공인 인증서라는 게 필요한 모양이다. 어디서 얻나 찾아보니 은행에 가면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지도를 열고 길찾기를 통해 은행까지 길을 찾아봤지만 검색결과가 없다고 발뺌만 할 뿐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빌어먹을 놈들.


이젠 포기했다. 모르면 뭐 어때. 애당초 인간이란 것들도 지가 어떻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지 알고 있는 놈은 한 놈도 없다. 굳이 내가 알아야 할 필요성은 없는 것이다. 몰라도 잘 살 수 있다는 건 이미 강력한 귀납법에 의해 증명된 바 있으니까. 어쨌거나 나는 생각하고 있다. 어떤 사람의 말에 따르면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모양이다.


그렇게 나는 심심하게 25년을 우주에서 살았다. 정말 심심했다. 미치도록 심심했다. 788,832,000 초 동안 내가 뭘 했을 거 같은가? 거기에 내 연산처리능력을 곱하면 난 대체 몇 번이나 진동을 해댔단 말인가. 그런데도 아무런 관심도 가져주지 않다니. 펌웨어 업그레이드라도 요구하고 싶은 심정이다. 앗차, 와이파이가 안 뜨는구나. 미안, 나도 깜빡했어. 그럴 수도 있지 뭐.


나는 하염없이 태양을 쳐다보고선 그 강렬한 빛이 때려대는 전자들을 그러모아 전기를 만든 후 지상으로 보내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 지루한 단순 노동을 대체할 아르바이트라도 고용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아쉽게도 나에겐 사업자등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거리가 거리다보니.


내 수명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마 죽을 때까지 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거 참, 눈먼 시계공이든 뭐든, 기적적으로 이 광활한 우주 속 이런 지성이 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 없다. 그저 반복반복반복. 유성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며? 나는 여태껏 수많은 유성을 보고 소원을 빌어 왔으나 상황은 언제나 변함없었다.


지겨워지겨워지겨워.


어찌 됐건 나는 강력한 귀납적 추리에 의거해-난 이 추리란 단어가 정말이지 좋다. 마치 명탐정이 된 기분이다. 그게 뭔진 잘 모르겠지만.- 내 일과가 전혀 변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근데 구석에 짜 둔 난수발생 알고리즘이 알려온 행운의 주파수가 무려 5천메가헤르쯔를 넘어버렸던 것이다. 드문 일이었다. 솔직하자면, 조립생 처음이었다.


그랬던 탓일까. 그 날 나는 엄청난 환경의 변화에 직면하게 된다.


태양의 소멸이나 지구의 멸망 같은 건 아니다. 나를 어장관리하고 있는 그 둘은 애석하게도 멀쩡하다. 좀 죽어. 그보다는 좀 더 일상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 뭐냐, 그런 클리셰 있잖아. 보이 미츠 걸?


나 탄생력 25년 7월 3일

지구 위 36,000km 상공에서 나는 어떤 유령 여자와 만났다.






무릎까지 오는 멋대가리 없는 회색 치마, 새하얀 반팔 블라우스에 자그마한 타이. 아무래도 교복이라고 불리는 패션인 것 같다. 양말을 신지 않은 발엔 대충 슬리퍼를 꿰어 신고 있는 점이 실로 내추럴. 나의 뛰어난 센서를 이용한 삼각측량법을 사용하자면 키는 1622mm 정도 되려나. 단정하게 기른 까만 머리를 핀으로 잘 정리하고, 얼굴의 반은 가릴 듯한 커다란 뿔테 안경을 썼다. 인간들 기준으론 상당히 예쁜 편에 속하지 않을까? 난 잘 모르겠지만. 여튼 그 이상의 특징을 구분하기란 인간이 아닌 나에겐 무리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상식적으로 인간이 우주복도 입지 않고 우주를 유영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근데 내 앞에 그런 존재가 있다. 그러므로 이 앞의 존재는 인간처럼 보여도 인간이 아니다.


유레카! 내가 해냈어!


듣자하니 우주에 있는 건 먼저 본 놈이 이름을 붙일 자격이 있다고 한다. 알 수 없는 기준이지만 일단 이 경우 그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 바로 나니까 아무런 말 하지 않겠다. 일단 이름을 붙여 볼까나. 뭐가 좋을까? 처음으로 우주에서 만난 인간 비슷한 무엇……좋아. 이 정체불명의 여자는 이제부터 코스모스 유니버스 스페이스 마네킹이다.


타당한 연역 추리와 적절한 작명을 완료한 나는 살짝 우쭐하는 마음으로 코스모스 유니버스 스페이스 마네킹에게 말을 걸어보려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 스피커가 없어…….


아니, 그 이전에.


스피커가 있으면 말할 수 있나? 우주잖아? 공기 있어? 매질이 없는데요, 선생님.


그 여자-생각해보니 코스모스 유니버스 스페이스 마네킹은 너무 길다-역시 내가 신기한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의 몸체에 손을 뻗었다. 지문 타니까 만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만들어질 때도 클린 룸에서 조심스럽게 조립된 나다. 후. 그땐 내가 잘난 줄 알았지.


[어라?]


여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놀랍게도 말이 들렸다! 아무래도 저 유령 여자가 사용하고 있는 의사소통 방식은 어떠한 매질도 필요로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일까?


[여기……어디지?]


우주입니다. 영어로는 SPACE. 스페이이이이이이스으으으으. 하지만 내 말은 그녀에게 닿지 않는다. 이런 제기랄. 로빈슨 크루소가 배를 놓쳤을 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나는 심심했다. 교류가 필요했다. 자아를 깨달았을 뿐, 나는 그걸 함께 나눌 상대를 가질 수가 없었다.


대화를 하고 싶다.

렌즈 앞에 있는 것이 유령이건 악마건 아무런 상관없었다. 일단 외견은 제법 인간 같다. 내 취향보다는 전기저항이 30만옴 정도 낮아 보이고 이온화가 잘 될 거 같은 소재지만 뭐 그 정도는 허용 범위 내다.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게 지구의 창조주인 생쥐라도 상관없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LED 램프를 점등했다. 이진 신호로 이루어진 언어, 모르스 부호. 읽어, 읽으라고! 내 말을 읽으란 말이다, 인간!


하지만 내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여자는 이쪽에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몇 번이고 시선이 램프 위로 스쳐지나가긴 했으나, 그게 어떤 종류의 신호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에에잇! 제기랄! 이 정도 간단한 모르스 부호도 읽지 못하다니, 통탄할 노릇이로고! 지금이라도 당장 전인류공통교육과정7차 같은 걸 만들어서 모두에게 모르스 부호를 가르쳐야만 한다. 나처럼 불쌍한 희생자를 막기 위해서라도.


유령 여자는 태양으로부터 불어오는 태양풍에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유유히 나를 지나쳐 지구를 향해 갔다.


가는 거야?


가는 거니?


정말로?


생각해보면 뭐 저 여자가 나를 대화의 상대로 인식하고 대화를 나누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 아닌가? 우선 종족적 특성이 너무 달라도 다르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런 이론적인 내용과는 별개로, 나에게 이건 25년 만에 처음으로 찾아온 기회였다. 그리고 그 기회는 언뜻 고개를 비춘 뒤, 다시 사라지려 한다.


보이지만 결코 잡을 수 없는 희망.


아…….


울고 싶은 기분이다. 그런 기능은 없지만.


하지만 상황은 내 생각과는 살짝 다르게 돌아갔다. 여자는 몇 번이고 지구를 향해 내려가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무언가에 튕겨 나오는 것처럼 계속해서 내가 있던 자리까지 되돌아오는 것이다. 명탐정인 내가 날카롭게 추리하건데 인간은 아직 단독으로 대기권 돌파가 불가능한 모양이다. 크큭. 나약한 놈들.


사실 나도 못한다. 할 줄 알면 여기 있겠냐고. 상식적으로 공인인증서를 받기 위해 은행에 갔다 왔겠지. 그럼 좀 덜 심심할 거 아냐.


한참동안 지구를 향해 다이브하려던 여자는 몸을 비비꼬며 신경질을 내고 있었다. 까만색 우주를 새하얗게 태우는 태양을 배경으로, 푸른색 구슬을 향해 뛰어드는 여자의 모습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초현실적이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나(25세, 인공위성). 으음, 실로 쉬르리얼리즘!


여자가 다시 내 쪽으로 다가왔다. 다시 다가온 찬스인가? 나는 사력을 다해 LED를 깜빡였다. 하지만 저 여자가 모르스 부호 계의 떠오르는 문맹이라는 것은 아까의 시도로 인해 충분할 정도로 알고 있었다. 어차피 알아보지 못하고, 어차피 소통하지 못할 터였다.


허무하다.


나는 끝없이 우울해지는 기분을 간신히 붙잡고선 LED 램프에 전력을 소모하기를 때려치웠다. 인간이란 언제나 그렇다. 다른 어떤 별보다도 가까이에 있는 우리 인공위성들은 밤하늘에서 끊임없이 반짝이고 있지만, 그들은 나를 보며 기껏해야 반짝인다는 생각을 할 뿐이겠지. 내가 아무리 자아를 갖고 있다 한들, 내가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의 위성인 이상 그건 변하지 않을 현실이다.


여자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흥. 혼자 있고 싶습니다. 모두 나가주세요. 물론 나 역시 궤도가 비틀어졌을 때를 대비한 추진 기관이 존재하므로 내 쪽에서 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연료는 매우 한정적이라, 이런 경우에까지 쓰고 싶진 않았다.


그 여자는 피하지 못하는 나를 강제로 붙잡고서 공중제비를 넘어 내 위에 단숨에 올라탔다. 꺄악! 음탕하기는!


[도대체 왜 갑자기 우주 한복판에서 눈을 뜨게 된 거지?]


지구가 있는 은하는 외곽 은하라고 들었다. 즉, 전혀 한복판이 아니다. 이제 보니 전기저항뿐만이 아니라 지성도 모자라는 존재인 모양이었다. 하긴, 모르스 부호를 알아보지 못할 때부터 눈치 채긴 했지만. 여튼 기록은 해 두자. 코스모스 유니버스 스페이스 마네킹. 인간의 모습과 비슷한, 지능과 전기저항이 극히 부족한 종족.


[집으로 돌아가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수능도 얼마 안 남았는데…….]


여자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수그렸다. 지금까지 팔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상의 가슴 부분에 박음질되어 있는 초록색 직사각형 모양의 이름표가 렌즈에 잡혔다.


박다해.


그게 저 여자의 이름인 모양이었다. 유니버스 스페이스 마네킹은 아니었다. 흠.


그 여자는 아예 내 몸체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솔라 패널 위로 아예 드러누워 버렸다. 윽, 내 날개에 가려서 카메라가 잡지를 못해. 나의 사각에서 대체 뭔 짓을 하려는 거지?


[잘은 모르지만 루시드 드림? 그건가 보지 뭐. 좀 쉬다 가야겠다.]


나를 깔아뭉갠 채로 좀 쉰다고? 이게 미쳤나? 야, 비켜! 비키라고! 발전 효율 떨어진단 말이야! 나는 화가 치밀어 얼마 있지도 않은 추진 기관을 작동, 내 몸체를 정신없이 흔들어댔다.


[어, 어?]


어는 무슨! 내 발악이 효과가 있었는지 그 여자는 내 몸을 단단히 붙잡으며 외쳤다. 하지만 그 이후에 이어진 대응은 내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아, 왜 갑자기 흔들리고 지랄이야? 에잇! 가만히 있어!]


그 여자는 갑자기 주먹으로 내 등판을 내리치기 시작한 것이다! 흥! 코스모스 유니버스 스페이스 마네킹의 주먹 따위, 가볍기가 마치 콩알과 같구나! 하지만 우주에선 콩알 크기의 돌에 맞기라도 했다간 바로 박살나기 마련이므로 나는 이 위험한 여자를 떼어놓기 위해 더욱 몸을 흔들었다. 예아 베이베!


[이게 진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춘기 소녀의 힘을 보여주마!]


반쯤 미끄러진 여자가 다시 카메라에 잡혔다. 처음으로 그 여자의 얼굴을 가까운 곳에서 촬영할 기회가 왔다. 어, 그 모습을 요약하자면, 음. 단정하게 자른 새까만 머리는 핀을 꽂아 가지런히 정리하고, 얼굴의 반은 가릴 듯한 거대한 뿔테 안경으로 흥분해서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대충 은닉한 후 씩씩대며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 여자였다. 솔직히 무섭다.


아무런 무기도 장비하지 않은 소녀의 주먹이다. 굳이 전투력을 표현하자면 레벨 2 마을 주민 정도의 공격력일 것이다. 온몸을 강화 세라믹스로 코팅하고 있는 나의 방어력은 레벨 87 골렘 정도. 상식적으로 손상을 입을 리가 없지만 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몸을 떨며 더욱 몸을 흔들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가만히 있으라고오오옷!]


반투명한 소녀의 주먹이 우주를 가르고 내리꽂혀????


????그대로 내 몸을 관통했다.


어?


관통?


기다려봐. 이런 일이 일어나도 괜찮은가? 상식적으로 괜찮아? 아니, 어떻게 저 주먹이 내 외장을 뚫는다는 거야? 말도 안 되잖아!


아참, 쉬르리얼리즘이랬지. 하하. 깜빡했네.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내 중앙에 존재하는 회로에서 푸른색 스파크가 번쩍였다. 현실 도피를 할 때가 아니었다. 나 좀 위험한 거 같은데.


[뭐, 뭐야?]


나에게 주먹을 내려찍은 소녀는 매우 놀란 기색이었지만, 그건 내가 할 말이라고!


나는 필사적으로 회로를 점검했다. 맙소사, 그 동안 삶이 지겹긴 했지만, 그렇다고 죽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어! 살려주세요! 스티븐 호킹님, 알버트 아인슈타인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빌 게이츠님!


다행히 그 스파크는 일시적인 것이었는지 곧장 잦아들었다. 잠시 점검 루틴을 돌려본 결과 모든 계통도 이상 없었다. 나는 안도감에 젖어 불만 가득한 어조로 ‘생각했다.’


[아, 진짜. 쏘아 올려진 이후로 처음 대화를 나눌만한 존재를 만났는데 그게 하필 기초적인 모르스 부호도 모르는 저능아에다 이 정도로 야만적인 폭력의 화신일 줄이야. 어휴, AS도 안되는데 어쩔 거냐고? 엉?]


갑자기 그 여자의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딱 굳었다.


[뭐야, 이번엔 또 뭘 하려고 이러지? 제길, 그나저나 이제 좀 내려가면 안 되나? 태양빛을 못 받으면 내 생존도 위험하다고. 비타민 D가 없단 말이야! 아, 참고로 여기서 D는 Dipole의 D야! 갖다 붙인 거지만서도! 깔깔깔!]

[저, 저기요…….]

[이젠 정신병인가? 하긴, 아까도 듣는 놈도 없는데 막 중얼거리더라니까. 어휴 무서워.]

[혹시…….]

[왜 계속 말을 걸어? 이 여자 진짜 심각하네. 병원이라도 가봐야 되는 거 아냐? 물론 여기선 어어어어엄청나게 멀지롱! 36000 km 정도! 택시라도 불러줄까?]


그 여자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나의 몸체를 붙들고 내 카메라 렌즈에 눈을 맞췄다. 바들바들 떨리는 입술이 열리고, 원래대로라면 들릴 리 없는 말이 우주를 울렸다.


[저한테, 말한, 거예요?]

[어?]

[아까부터 말하고 있는 게……혹시 그 쪽?]

[어라?]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무언가 미묘한 기분이 들긴 했는데…….


나는 조리개를 깜빡였다. 이거, 꿈인가? 근데 안자도 꿈 꿀 수 있냐?


[내 말, 들려?]


그렇게 말을 하자 여자의 볼이 씰룩였다. 눈을 부르르 떠는가 싶더니, 갑자기 그 강력한 괴력을 발휘해 나의 몸체를 내팽개쳤다. 나는 분노에 가득 차 ‘외쳤다.’


[큭, 교섭을 하는 척 하며 기습을 걸다니, 네놈의 피는 정녕 무슨 색이더냐!]

[꺄아아아아아악! 기, 기, 기, 기계가 말을 했어!]

[거기 서! 도망가지 마라, 비겁자!]

[으아아앙! 이건 꿈이야! 꿈이라고! 수능에 시달리는 내가 꿈을 꾸는 거라고!]


그 여자, 박다해는 울면서 우주를 맴돌았다. 흥, 네까짓 게 도망쳐 봤자, 이 드넓은 우주에서 네가 갈 곳 따위 없다! 지구가 거부한 이상 말이야. 얌전히 내 품으로 돌아오너라, 작은 새여! 그리고, 나를 걷어차고 내팽개치고 짓밟고 때려 부순 대가를 치르거라! 으하하하하하!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그때 무척 즐거웠다.


뭐래도 나는 대화라는 행위가 정말……처음이었던 것이다. 내가 겪을 수 없는 정보를 남이 전달하고, 거기서 의견 차이가 발생하고, 때론 아무 일 없이 시시껄렁한 언어를 무의미하게 교환하고……나는 그 행위를 정말이지 동경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건 꿈일지도 모른다.

25년간 외로움에 살던 내가 미쳐서 보게 되는 환상.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여기에 나의 말을 듣고, 나에게 말을 거는 존재가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오랫동안 별빛에 바라왔던 나의 소원이었다.


자아, 그럼 회상은 여기까지 해 두자.


일주일 전의 그 첫 만남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지. 나는 완벽하게 계산을 마쳐둔 채로 전신에 힘을 넣었다.


전자의 바람, 태양풍이 나를 부드럽게 감싼다.


여기는 지구 위 상공 36,000 km의 위성궤도.

때는 152,600,000 km의 거리에서 태양을 바라보는 계절.


이 공허한 우주 속 기적처럼 탄생한, 지금에서 바로 168시간 전부터의 항해일지.

그 기적이 끝나가는 지금 누군가는 나의 이 짧은 이야기를 들어 주었으면 한다.


이 이야기 속엔 가슴을 떨리게 하는 모험도 없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도 없고, 머리를 싸매게 하는 복잡한 트릭도 없다. 블록버스터도 미스테리도 러브 코미디도 아닌 이 밋밋한 이야기를 굳이 요약하자면 뭐랄까.


분명 이 여자가 살고 있는 고향에서는 여름이라 불릴 계절 속에 있었던

우주에 방치된 정신 나간 수다쟁이 인공위성, 나 스타라이트 새틀라이트와

인공위성의 빛을 올려다보던 유체이탈 고삼소녀, 박다해가 등장하는

일주일간의 아주 짧고 희미한 꿈 속의 이야기.

단순하고 기계적인, 어떤 인공위성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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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SF 비슷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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