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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용다방 리뉴얼 프로젝트
글쓴이: user_d
작성일: 12-07-16 01:40 조회: 2,226 추천: 0 비추천: 0

0.

“글은 잘 돼 가냐?”

달칵 하는 소리를 내며 테이블에 커피잔이 놓였다. 커피의 향에 이끌려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뭐, 늘 그렇죠?”

“대답이 늘 그렇구나.”

“아하하핫…….”

나는 멋쩍은 웃음을 흘리면서 잔을 들어 입에 가져다 댔다. 그윽한 향이 모든 신경을 타고 올라오는 이 기분은 마치,

“앗, 뜨거.”

사장님이 인상을 찌푸리는 나를 보고 웃었다.

“천천히 마셔라.”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은 더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라고 하고 돌아갔다.

잔을 내려놓고 다시 노트북 모니터를 노려봤다. 어디까지 썼더라. 주인공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아내고, 아버지를 찾아가서 담판을 지으려는데 갑자기 나타난 특수부대들에게 중상을 입고, 그때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막장이네.”

이번 건 때려치울까.

어차피 시간도 남아도니까 천천히 써야겠다. 나는 정신건강에 좋은 변명을 하고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의자에 몸을 기대고 커피 향을 맡으니 편해졌다.

작가 지망생이자 휴학생인 나는 조용히 글을 쓸 장소를 찾다가 이번 여름, 이 카페를 찾아냈다. 주택가에서도 상점가에서도 멀리 떨어진 조용한 카페.

이상하게도 이 카페는 손님이 거의 없다.

앤티크한 실내 장식에,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무엇보다도 사장님의 핸드드립 커피가 일품이다. 내부 디자인도 완벽, 바리스타의 커피도 완벽, 게다가 계산은 사장님 딸인 미소녀가 맡고 있다. 이런데도 손님이 없다는 게 이상하다.

몸을 의자에 기대고 편안한 기분으로 가게 내부를 둘러봤다. 뭐 하나 뒤질 것이 없다. 시선을 옮기다가 카운터 앞에 있는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날아오는 따뜻한 미소.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다.

점원이 예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손님이 몰릴 만도 한데, 커피가 맛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단골이 있을 법 한데, 이상하게 이 가게에는 손님이 없다.

나야 손님이라서 조용하면 좋지만, 손님이 없다는 건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곤란한 일이다. 솔직히 사장님이야 늘 여유롭게 웃으면서 지내시니까 속은 잘 모르겠다.

충분히 쉬었으니 다시 노트북을 잡았다.

다시 시작해야지.

어느새 커피도 다 마셨다. 세 시간 정도 쓴 것 같은데 내 글에는 진전이 없다. 난 세 시간 동안 뭘 한 걸까.

오늘은 글도 잘 안 써지네, 집에 가서 잠이나 자야겠다.

나는 편하게 오늘은 포기하기로 하고 노트북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하려고 한 이상 수확이 있어야 당당할 텐데. 다른 사람한테나 나한테나.

“벌써 가게? 좀 더 있다가지?”

의자가 밀리는 소리를 듣고 사장님이 물었다. 손님 하나 가는 데도 조금 더 있다가 가라고 붙잡다니, 이렇게 인성 좋고 고객감동 서비스까지 확실한 분이 운영하는 가게가 잘 안 된다는 건 고객 이전에 사람으로서 참 안쓰러운 일이다.

“오늘은 좀 피곤해서요, 일찍 들어가려고요.”

“그래? 날도 더운데 푹 쉬어라.”

“네,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세요~.”

사장님은 웃으면서 인사하고, 사장님 딸인 미소녀도 웃으며 인사했다. 물론 이름도 모르고 고객에게 대하는 직원의 인사지만 웃음과 인사는 호의가 있다면 아무리 많아도 지나침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직 밝은 오후, 정오는 아니지만 실내에서 나와 바로 하늘을 쳐다보기에는 눈이 부셨다.

눈이 밝음에 익숙해지고, 눈을 몇 번 깜박였다. 저녁식사 때라 그런가,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있었다. 저기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런 수상한 가게에서 나오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수상하겠지. 나와서 눈을 깜박거리면서 삼십초 정도 가만히 서 있었으니까.

까만 가방을 들고 있는 까만 옷의 어두운 아우라를 풍기는 이십대 남성. 유령이거나 퇴마사이거나 MIB이거나, 어쨌든 셋 다 이상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니, 이 정도 복장에 이 정도 분위기면 어느 정도 일반적인 사람이다. 그냥 좀 칙칙한 분위기의 사람은 많이 있다. 수상할 일은 없다. 나를 수상하게 본다면 그건 내가 문 앞에 서 있는 가게의 이름이 한 몫 한 것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카페의 간판을 봤다.

[용다방]

궁서체로 쓰여 있다. 궁서체 정도가 아니고 진짜 붓글씨일지도 모른다. 금빛으로 번쩍거리는 용도 그려져 있다.

용이라니, 중화요리집도 아닌데.

처음에 보고 잠깐 생각한 거지만, 어디 중국집에서 쓰던 간판을 그대로 가져다 붙인 줄 알았다. 사장님 앞에서는 차마 못 할 말이지만, 저 간판은 좀, 아니 많이 촌티난다. 요즘은 시장 깊숙이 들어가야 볼 수 있을만한 디자인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다.

다방이나 카페나 그저 차와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지만, 이렇게 까만 유리로 내부를 알 수 없는 데다, 이름 센스도 좀 그렇고 간판마저 저렇다면 수상한 업소로 오해받을 수밖에 없다. 저 간판과 이름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는 걸 사장님은 알고 있을까.

아마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워낙 특이한 사람이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겠지.

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보이지 않는 유리 너머의 그녀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냈다.

대체 사장님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이름을 정한 걸까.

[휴업]

며칠 뒤에 카페에, 용다방에 가보니 이런 종이쪽지가 문에 붙어 있었다. 다른 안내문도 없고 스카치테이프로 붙인 A4 용지 하나. 프린트 된 것도 아니고 사인펜으로 급하게 휘갈겨 쓴 것처럼 보인다.

예상은 했었지만 드디어 망한 건가. 슬슬 다른 카페를 찾아봐야 하나, 가격도 싸고 커피도 맛있고 직원도 예쁜 좋은 가게였는데. 사장님 센스만 어떻게 했어도……

“휴업.”

다시 읽어봐도 휴업이다. 어딜 봐도 훌륭한 휴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 종이쪽지를 계속 쳐다봤다.

자세히 보니 휴업이라는 글자 밑에 작게 몇 자가 더 있었다.

[커피 공부를 위해 유학을 갑니다.]

정말 특이한 사장님이다. 무슨 유학을 창업한 다음에 가냐.

“그나저나, 아쉽게 됐네. 이름하고 간판 센스만 어떻게 했으면 참 좋은 가게였는데.”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정말 아쉽게 됐다.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은 커피를 먹지 못하게 됐고,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눈치를 안 주는 공간이 없어졌고, 그 미소녀의 미소를 볼 수 없게 됐다. 대화라고는 계산할 때와 오고 갈 때 주고받는 인사뿐이었지만. 목소리도 좋았는데.

“저기, 잠깐만요.”

그래, 이런 목소리였다.

“……어라.”

나는 뒤를 돌아봤다. 까맣게 칠해진 통유리, 그 가운데에 있는 까만 문이 반쯤 열려 있고 그 틈새로 누군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사장님 딸. 용다방의 미소녀 직원.

그런데, 왜?

“저, 맞죠?”

“뭐가?”

“우리 카페 단골이잖아요.”

단골은 맞긴 한데, 내가 유일한 손님이었으니 이걸 단골이라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자주 갔으니 단골이라고 하자. 그보다 중요한 건 이게 아닌데.

“이 쪽지, 보셨죠.”

소녀는 몸은 문 뒤에 둔 채로 손만 뻗어 문에 붙은 종이를 떼어냈다. 찌직 하는 소리가 나면서 종이가 찢어졌지만 별로 상관없는 듯 했다. 나는 문에 붙은 테이프와 종이조각을 떼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아빠가 유학을 갔어요. 그제 아침에 갑자기 생각났다더니 수속 밟아서 어제 아침에. 나한테 말도 안 하고.”

꾸깃꾸깃. 소녀는 한 손으로 종이를 구겼다. 분노가 느껴진다, 분노가. 잘못 건드리면 내가 저 종이 꼴이 날지도 모르겠다. 예쁘다고 다가 아닌가 보다.

“그렇구나,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나는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최대한 상냥하게. 구겨지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제 적당히 맞장구 쳐주고, 필요하다면 딸을 두고 간 사장님을 같이 욕해주면서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상대방의 표정이 영 아니었다. 종이를 최대한 구겨서 바닥에 떨어트린 그녀는 마치 극도로 소심한 사람이 길을 물어보려는 것처럼 아랫입술을 깨물고 결의에 찬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분노가 새어나오더니, 지금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머뭇거리는 느낌이었다. 수줍은 소녀의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설마.

고백 시츄에이션인가, 이거. 자주 찾아오는 손님에게 반한 여직원이 마침내 용기를 내서 마음을 전하는 그런 피날레인가, 늘 당신을 지켜봤어요, 이제 제 마음을 전하겠어요, 그런 건가? 마침 그녀의 아버지도 없는 그런 상황-!

그럴 리가 없지.

자꾸 막장 소설만 쓰다보니까 사고방식이 막장이 됐나보다. 당분간 어디 조용한 데서 심신을 정화하고 와야겠다. 이렇게 아무런 맥락 없는 생각을 이어가고 있는데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도와주세요.”

뜬금없는 대사가 나왔다.

뜬금없지만 그녀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반쯤 열려있던 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 뒤에 있던 그녀는 가게가 휴업인데도 늘 입고 있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소녀는 두 손을 들어 맞잡더니 데려가주길 바라는 아기 고양이처럼 날 올려다봤다.

그만 둬! 눈부셔!

“아빠가 가게에 없는 이 시간이 망해가는 가게를 살릴 기회에요.”

“……에?”

이게 무슨 소리냐.

“알고 있죠? 이 가게가 왜 장사가 안 되는지.”

“그야, 이름도, 간판도, 밖에서 안이 안 보이는 구조도.”

“잘 아시네요.”

그녀가 맞잡고 있던 손을 풀고 오른손 주먹으로 왼손바닥을 탁, 내려쳤다. 방금 전에 애절하게 부탁하던 표정의 소녀랑 동일인물인가, 지금 공기가 바뀌었는데. 당장 도장을 찍으라고 하는 영업사원 같은데.

“그래서 이상한 센스의 아빠가 없을 때, 이 가게를 바꿔놓는 거예요, 손님이 많이 오는, 장사가 잘 되는 카페로 바꾸는 거예요.”

“아하.”

부녀가 카페를 하고 있지만, 사장님의 센스는 바닥이었고, 덕분에 손님도 안 오고, 딸은 그게 불만이었다. 이 사태의 원흉은 오는 손님도 쫒아낼 정도의 센스가 투영된 이름과 간판과 외부 인테리어. 그래서 사장님이 안 계신 사이에 가게를 바꿔버리자……

“이런 거야?”

“바로 그거에요.”

그녀는 잘 맞췄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왠지 공을 물어온 강아지가 된 기분이다. 별 것도 아닌데 칭찬 받고 있다.

“그쪽도 이 가게가 없어지면 곤란할 테니까, 좀 도와주세요!”

“…….”

스카우트냐.

물론 이런 가게가 사라지면 아쉽기는 하지만 곤란할 정도는 아니다. 카페는 많으니까. 나는 거절할 말을 골랐다. 거절하자. 권유와 거절은 설득력이 높은 말을 하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 설득당하면 지는 거다. 난 무슨 말을 들어도 동요하지 않고 내 의견을, 내 주장을 밝히고 거절할 테다.

“백수죠?”

아픈 곳을 찔렸다.

물론 하는 일이 없기는 하지만 휴학생이고, 작가 지망생이고, 백수다.

좋아, 인정.

“시급 4500원.”

그녀가 빙긋 웃으면서 제시했다.

돈으로 매수하려고 들다니, 너무하는 거 아니야. 아무리 하는 일이 없고 끝없는 지망생인데다가 하루 종일 시간이 남아돈다고 해도, 사실 요즘 돈이 조금 궁해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려고 하고 있다고 해도, 겨우 시급 얼마 때문에 내가 여기 있을 것 같냐고.

“할 거죠?”

참 나…… 진짜.

나는 그날부로 용다방에 취직했다.

1.

“출근했습니다.”

“왔어요?”

딸랑, 하는 종소리를 내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사장님의 딸, 현 사장 대리인 소녀가 웃으면서 나를 맞이했다. 오늘은 늘 오던 때처럼 커피향이 나지 않는다.

오늘은 용다방 출근 1일 째. 첫 출근이다.

이제 어쩌지.

사장 대리님의 얼굴을 웃는 얼굴을 보고 같이 웃어버리기는 했지만 걱정이다. 웃는다고 모든 일이 풀리는 건 아니다. 웃으면 복이 온다지만 해결은 안 된다. 현실을 직시하자.

뜬금없는 취직 제의를 냉큼 물어버렸지만 집에 가서 생각해보니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다. 카운터 보는 일을 했었다지만 내가 알기에 중학생인 그녀가 가게를 운영할 수 있는가, 손님에게 돈을 받고 팔만한 커피를 만들 수는 있는가. 그 외에도 걱정거리가 많았다.

그렇다고 고민하다가 잠을 못 잤다는 건 아니다. 푹 잤다. 푹 자고 일어나서 출근해야 된다는 생각에 일찍 일어나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용다방까지 걸어왔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가 저 소녀의 순진무구한 미소를 보니 현실이 닥쳐왔다.

여중생이랑 가게 업무를 봐야 한다는 현실이 몰려왔다.

이제 어쩌지.

“난 뭘 하면 돼?”

혼자 생각해봤자 알 수 없을 것 같아서 물어봤다.

저 따님이 다른 일을 하는 건 못 봤으니 이번에도 당연히 카운터 담당이겠지. 그렇다는 말은 내가 커피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인데. 카페 알바 해 본지가 꽤 됐는데, 할 수 있으려나. 아니, 생각해보니까 설마 바리스타 딸이 커피 만드는 방법을 하나도 모르겠어? 자기가 커피를 만들 테니 나는 잡일을 시키겠지.

“커피를 만들어야죠.”

역시, 내 예상은 화려하게 빗나갔다. 너무 화려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하지만 눈물을 꾹 삼키고 물어봤다.

“……그래?”

“그렇죠.”

“커피 만들 줄 몰라?”

“몰라요.”

총체적 난국이다. 카페 직원이, 바리스타의 딸이, 여기서 사는 사람이 커피를 만들 줄 모른다니. 아, 내가 뭘 고민하고 있지. 당연히 농담일 텐데.

“만들 줄 아는 거 있지?”

“당연히 있죠.”

“그렇지?”

“맥X 모카골드.”

이제 어쩌지.

아예 못 만드나 보다. 저 당당한 표정을 보라, 자신이 못 하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히 여기고 있지 않는가. 이 무거운 짐의 책임을 감당할 자가 누구인가. 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내가 카페 아르바이트를 해 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휴학하고 삼 개월 정도. 잘 한다 못 한다를 떠나서 기본은 할 줄 안다. 만드는 방법이 간단한 허니브레드 정도도 만들 수 있다. 나는 짧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시험 삼아서 한 잔 만들어보세요.”

따님이 자연스럽게 요구했다. 잠깐 여유 좀 가집시다. 손님 온 것도 아니고 여기가 식당도 아니고 예약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지금 당장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나.

“영업해야죠.”

응?

이게 무슨 소리냐. 영업이라니. 지금 손님이 오면 받아야 한다 그 말인가?

나는 고개를 돌려 내가 들어온 문을 쳐다봤다. close가 보였다. 그렇다면 반대쪽은 open. 내가 영어를 못하지만 open의 뜻이 ‘열다’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니까 open은 곧 가게가 열렸으며 영업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다 된 만전상태라는 것.

나는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가 팻말을 돌려놓고 왔다.

“뭐 하세요?”

“오늘은 가게 못 열어.”

“네?”

바로 며칠 전까지 영업하던 가게라서 여는 데는 지장이 없겠지만 지금 재료가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점검해 봐야 한다. 무엇보다 내가 카페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건 일 년 전. 대충은 기억하고 있지만 몇 번 연습해 봐야 한다.

“준비도 안 하고 가게를 여는 건 말이 안 되잖아.”

“그건 그렇네요.”

뭘 순순히 끄덕이는 건데.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유니폼 같은 거 있어?”

“없어요.”

그럼 지금 입고 있는 건 뭐지. 평상복이라고 해도 괜찮을 듯한 캐주얼한 디자인의, 프릴이 포인트인, 검은색과 흰색만으로 착용자의 귀여움을 더해주는 그 에이프런은 뭐지.

누군가의 오해를 살까봐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이 옷을 보러 용다방에 오던 게 아니다. 그래서 옷에 대해서 잘 아는 게 아니다. 믿어달라.

“아빠가 이거 하나만 샀거든요.”

나는 생산성 없는 대화를 그만두고 가게를 점검하기로 했다.

“커피를 만들려면, 재료가 있어야 되는데…….”

“재료는 있겠죠.”

“여긴 재료 한 일 년 치 사다 써?”

핀잔을 주자 소녀는 조금 토라진 것 같았다. 그 모습도 귀여웠으니까 나야 좋지만.

당연하지만, 원두는 종류별로 넉넉했다. 사장님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라져서, 유령선의 식당처럼 모든 준비가 완벽했다. 덕분에 아직 주문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하긴, 워낙 장사가 안 되는 곳이었으니까.

“재료는 괜찮겠고.”

숙이고 있던 허리를 펴고 뒤쪽의 선반을 보니 핸드밀이 보였다.

“기구도 다 있고, 괜찮겠네.”

잠깐만, 핸드밀? 기구?

나는 퍼뜩 뭔가가 떠올라 가게 안의 모든 기구를 찾았다. 핸드밀이 원두 종류에 맞게 네 종류. 그리고 드리퍼. 서버. 전동 그라인더. 그 외 기타등등. 나는 상황을 파악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큰일났다.”

“뭐가요?”

나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아마 아무 것도 모르는 사장 대리님이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진짜로 아무 것도 모를 줄이야. 이게 그런 건가, 회사 운영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 회장 따님. 넌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아무 것도 몰라.

나는 따님이 이해 가능할 정도로 차근차근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서 설명했다.

“내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는 했지만…….”

“했지만?”

“만드는 법을 배우기는 했지만…….”

“했지만?”

“내가 아는 건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만드는 방법뿐인데.”

“………?”

아무래도 잘 이해하지 못한 거 같다. 설명이 모자랐나. 예시를 들어서 알려주자.

“사장님이 커피 만들 때 어떻게 만들었어?”

“그 주전자로…… 따라서…….”

아무 것도 모르는 소녀는 아빠의 움직임을 재현하는 것처럼 한 손으로 주전자를 따르는 시늉을 하다가 갑작스레 굳었다. 드디어 이해한 건가. 표정이 완전히 굳어 있다. 저런 표정은 어떤 공포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다. 나는 말을 이었다.

“내가 할 줄 아는 건 머신으로 만드는 거, 그리고 여긴 핸드드립 기구밖에 없어.”

“그럼, 못 한다는 말이에요?”

“아니, 아주 못 하는 건 아니고…….”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핑계아닌 핑계를 대려고 했다.

“그런…….”

사장 대리님이 놀란 표정으로 입을 가리고 비틀거렸다.

“어?”

드르륵 드르륵 드르르르륵.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이 소리는 대학을 때려치우고 이 년째 작가 지망생인 청춘의 한이 담긴 핸드밀 소리입니다.”

드르륵 드르륵.

“그게 뭐에요?”

“일어났어?”

설마 진짜로 기절할 줄은 몰랐다.

개그맨 콤비가 진행하는 두시의 라디오 사연에 나오면 정말 재미있었을 에피소드다. 물론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었으면 정말 재미있었겠지. 난 재미없었다. 나도 놀랐거든. 게다가 바로 전에 일어났던 일이고.

갑자기 뒤로 쓰러지는 바람에 바닥에 부딪히기 전에 달려가서 캐치. 정말 기절한 걸 알고 쇼크. 그대로 공주님 안기를 해서 소파에 눕히기. 이상, 지금까지의 이야기.

나는 회상을 끝내고 신기하다는 듯이 핸드밀을 보고 있는 따님에게 설명했다.

“보시다시피 원두를 갈고 있는 중이지.”

“못 만드는 거 아니었어요?”

“전문가는 아니지만 만드는 방법 정도는 알아.”

나는 조금 자랑스럽게, 뽐내듯이 말했다. 중학생에게 나는 미적분을 풀 줄 안다고 자랑하는 느낌이었지만 아무래도 좋다. 할 줄 아는 건 사실이잖아. 그런데 왜 아무 말도 없지.

고개를 들어보니 기절했던 소녀가 감격과 눈물이 가득찬 그렁그렁한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다행이다……!”

“왜 울어!?”

“……아니에요.”

소녀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웃었다.

그렇게 기쁜 일인가, 내가 커피를 만들 줄 안다는 일이. 가게를 열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알바지만 이 아이에게는 모든 걸 걸고 기대하고 있는 거대한 프로젝트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자 일을 더 열심히 해야 될 것 같았다.

겨우 원두를 가는 건데 뭐 대단한 거 하는 것처럼 보고 있으니까 뭔가 대단한 걸 해야 할 것 같았다. 부담감이 두 배 세 배 네 배. 그렇다면, 제대로 보여주지.

필터 세팅하고, 갈아놓은 원두 넣고, 미리 식혀놓은 물을 준비.

“예전에 옆에서 보고 배운 것뿐이지만, 이 정도라면 할 수 있어. 맛은 보장 못하지만”

물을 살짝 부어서 뜸들이기.

“그런데 사장 대리님.”

“네?”

“아직 통성명도 안 했네.”

뜸들이기는 끝났고, 1차 추출이다. 물을 천천히, 붓기 시작한다. 빙글빙글, 나선 모양으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배운 대로 하자.

“그러네요, 날마다 보는 사이라서 그런가 생각도 못했어요. 이름이 뭐예요?”

“하운, 구하운이야.”

소녀는 내 이름을 되뇌는 것처럼 몇 번 중얼거렸다.

이제 2차 추출. 시간을 생각해가면서 물을 붓는다. 이걸 배울 때 들었던 말인데, 시간이나 속도나 수압이나 이런 복잡한 걸 떠나서, 커피를 마실 사람이 맛있게 느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하라고 배웠다.

“제 이름은 가비에요. 이름만 부르세요.”

왜 이름만? 자기소개 할 때는 보통 성까지 붙이지 않나?

“가비라…….”

설마 가비가 그 가비인가. 커피를 이름으로 쓴 건가. 만약 그런 거면 사장님의 커피 사랑은 정말 대단한 건데. 딸 이름을 커피라고 짓다니. 설마, 혹시, 에이, 설마?

“가만, 사장님 성함이…….”

“잠깐!”

가비가 갑자기 소리치면서 팔을 휘둘렀다.

“꺄악! 꺄악! 꺄아악!”

양 팔을 붕붕 휘두르면서 소리 지르기. 캐릭터가 너무 다양하잖아. 애원하는 표정에 협상의 대가에 붕붕이라니, 따라가기가 힘들다니까. 그냥 감정 표현을 잘 하는 걸까.

가비가 필사적으로 내 사고를 끊으려고 했지만 내 생각을 분산시키기에는 약했다. 결국 나는 사장님의 이름을 기억해내고야 말았다. 아, 이래서 말렸던 건가.

용다방 사장. 조봉환 사장님.

조봉환.

“조 사장님 딸이면 가비 이름은.”

“잠깐! 잠깐! 잠까아아안!”

“다 됐다.”

3차 추출이 끝났다. 가비의 3단 고음도 끝났다.

“그 이름은, 이름은!”

“마셔봐.”

커피를 잔에 따라서 가져갔다. 가비는 이름에 대한 건 잠시 잊고 잔을 유심히 바라봤다. 조심스럽게 잔을 들어서 향을 맡았다. 향은 괜찮다. 원래 용다방의 원두가 좋아서 그런지, 향 하나만은 좋았다.

“냄새는 좋네요.”

“맛은?”

가비가 잔을 살짝 기울여 커피를 마셨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불안하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많이 불안하다. 까놓고 말하자면 불안해 죽겠다. 마X터 X프에 나간 것 같다.

가비가 천천히 입을 뗐다.

“괜찮은 거 같아요.”

살짝 의문이 남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날 보고 생긋 웃어줬다. 나도 그녀가 내려놓은 잔을 들어 맛을 봤다.

맛없는데?

“이거 괜찮을까?”

“당연히 안 괜찮죠.”

가비는 당연한 걸 왜 묻냐는듯 날 한심하게 쳐다봤다. 아까는 괜찮다면서.

“먹을만 하다는 거였어요.”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더 연습하세요, 내일 바로 오픈할 거니까요!”

“네, 네. 조가비 사장님.”

“이름은, 이름은!”

가비가 팔을 붕붕 휘두르며 화를 냈다. 귀엽다. 기회를 잡아서 자주 놀려야겠다. 이름이 그렇게 이상한 것도 아닌데, 저렇게 부끄러워하다니. 이름이 그렇게 중요한가. 아니, 이름은 중요하다. 방금 그 사실을 깨달았다. 이름이 엄청나게 중요한 거구나. 나는 조심스럽게 그 사실을 가비에게 알려줬다.

“가비야, 여기가 커피가 맛없어서 장사가 안 된 건 아니잖아?”

“……아.”

가비도 방금 생각났나 보다, 커피가 맛없든 맛있든 여기 이름은 용다방. 수상쩍은 외관에 수상쩍은 간판에 수상쩍은 이름. 왜 장사가 잘 안 됐는가에 대한 해답.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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