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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제노사이디드 월드(Zenocided World)
글쓴이: 잭스킹
작성일: 12-07-15 22:15 조회: 2,105 추천: 0 비추천: 0


Zenocide :
제노사이드

명사(신조어):개인의 평정심이나 평화로운 성소를 대상으로 하는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파괴

어학사전(2011)







프롤로그

양옆으로 총알이 비처럼 스쳐지나가고 등 뒤에서는 돌이 산산히 부서져 가루가 되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우리가 방패삼아 숨어있는 두께 2미터짜리 콘크리트 기둥도 이렇게 일방적인 총알세례에는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는 사실쯤은 이미 알고 있다.

하아하아.”

극심한 체력소모로 지쳐있던 탓인지 호흡도 고르지 않고 몸도 생각만큼 유연하게 움직이질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내 몸보다 더욱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콜록-”

, 유리!”

정신을 잃고 내게 안겨있던 유리가 피를 토했다. 하얀 것을 넘어서 혈관이 비춰질 정도로 창백하게 질린 그녀의 안색은 시간이 다르게 그녀가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창백한 안색과는 대조적으로 블라우스를 물들인 새빨간 선혈 또한 그녀의 죽음에 현실감을 실어주었다.

"윽...!"

뒤편에서 날아든 콘크리트 파편이 오른손에 쥔 칼에 부딪혔다. 소리를 따라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자 아무것도 비춰지지 않는 무광의 새까만 칼날이 내 눈에 들어왔다. 수십, 아니 수백 명일지도 모르는 적에게 둘러싸인 절제절명의 위기. 당장 두 사람 모두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속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이 검 한 자루 뿐이다.

, 하하……. 믿고 싶진 않지만 너밖에 믿을 게 없다. 적진 한 가운데에서 체력은 고갈되었고, 기둥 너머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적 병사들. 어쩌다 반해버린 여자아이는 적의 비밀연구원이질 않나, 최악이다 최악. 내가 생각해도 정말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야.”

영화나 소설이라면 배드엔딩이 확정된 주인공의 최후 정도일까. 여기서 모든 적들을 물리치고 멋지게 히로인을 살려낸다는 선택지는 내게 주어지지 않을 것 같다.

유리…….”

조심스럽게 유리를 바닥에 눕혀놓고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몸을 추슬렀다. 점점 가까워지는 파열음으로 보아 이 콘크리트 기둥도 조만간 전부 부서질 것이 틀림없다. 지금 내가 뛰쳐나간다 하더라도 할 수 있는 거라곤 약간의 시간벌기 뿐. 운이 좋으면, 만에 하나라는 말처럼 0.1%의 기적으로 적들을 섬멸하는 데 성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실낱같은 희망보다도 남은 99.9퍼센트의 실패 가능성이 너무나도 두렵다. 목숨을 잃는 것이, 반해버린 여자아이를 잃는 것이, 아저씨의 자상한 웃음을 볼 수 없는 것이, 앞으로 맛보게 될 수많은 행복을 잃는 것이 너무나도 두렵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스스로 내던지며 살아왔어. 잃었다기 보단 나 자신이 버려왔다고 하는 편이 옳을 거야. 필요한 것은 모조리 버리고, 지키고 있던 것은 오로지 정의 뿐. 그것조차도 철없던 시절에 누구나가 꿈꾸는 정의의 히어로 같은 두루뭉술한 몽상이었지.”

아마 서로에게 마지막이 될수도 있는 유리의 모습을 보며 나는 속죄하듯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 정말로 소중한 것, 지키고 싶은 것을 찾아냈거든. 있잖아 유리. 나 말이야…… 네가 정말 좋아. 전학 첫날에 맛본 직접 만들었던 도시락도, 수업 중에 곁눈질로 보내오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눈짓도. 매일같이 보여주는 그 환한 미소도, 여지껏 이렇게까지 내 마음을 동요하게 만든 건 네가 처음이야. 네가 적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면서도, 네가 적이라는 증거가 하나 둘 나타나게 되면서도 네가 나에게 보여줬던 친절과 호의는 내게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버렸어. 그러니까 말야 유리-”

…….”

마음속에 떠오르는 말을 아무렇게나 내보내던 내게 유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방을 뒤흔드는 총소리에 거의 묻힐 뻔했지만 유리의 입술은 확실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손에 든 칼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꽂아놓은 뒤 다급히 유리의 얼굴에 귀를 가져댔다.

“-지마.”

?”

그러지 마 유성아. 누가 봐도 그거사망플래그잖아. 정말로 살아서…… 나갈 생각이 있다면 그런 약한 소리 말고, 강하고 굳센 결의의 말을 먼저 해보는 건 어때?”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짓고 있는 유리는 슬픈 건지 측은한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 죽을힘을 다해 온 몸의 힘을 쥐어짜며 해주고 있는 것이 분명한 유리의 말에 어네 창백한 얼굴을 보면 마음이 저절로 약해질 수밖에 없어라는 말 따윈 꺼낼 수도 없었다.

, 알았어.”

할 수 있던 것은 고작 눈물을 훔치며 그렇게 대답하는 정도.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른 내가 사지로 뛰어 들어가려 할 때, 유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

때마침 귓전을 때린 파열음 때문에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유리의 입술 모양만 보고도 그녀가 어떠한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 좋아.”

그것은 아마도 내가 가장 유리에게 듣고 싶었던 말 중 하나임이 확실했기에, 나는 환하게 웃으며 누워있는 유리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죽음을 앞둔 기분이 이런 것일까…….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어쨌든 나는 계속해서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를 향해 방긋 웃어주는 그녀의 기대를 도저히 배신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과거를 후회하며 방황하는 소년이 소녀를 만나 변화하는 이야기.

운명을 알지 못한 채 멈춰선 소녀가 소년을 만나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다.




1장 : 싸우는 소년은 빛나는 소녀를 만났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날. 그늘도 없는 운동장에서 새까만 복장을 한 남자가 가만히 서있었다. 남자가 정수리를 쪼갤 듯한 햇빛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이자 허리춤에 걸려있던 검집이 그 움직임에 맞춰 작게 흔들렸다. 그의 전신을 감싸고 있는 검은색 코트는 확실히 그가 속한 조직의 제복이었지만 레지스탕스 조직 전장의 날개는 이런 날씨에 발목까지 가리는 롱코트를 입게 할 정도로 융통성 없는 조직은 아니었다. 남자가 이 옷을 고집하는 이유는 문자 그대로 그의 고집 때문. 이렇게나 더위를 먹을 정도면 융통성 있게 여름옷으로 바꿔 입어도 되련만 그는 다른 옷은 안 돼하며 주변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철통같이 고집을 피우는 것이었다.

…….”

열기를 피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었지만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 같은 모래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열기 또한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태양빛과 다를 바가 없다. 남자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이 지쳐있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얼굴 전체를 덮는 흰색의 가면으로 가려져 있어 아무도 그가 어떤 상태인지 알아볼 수는 없었다. 기껏해야 무언가의 생각에 몰두한 나머지 고개를 숙인 정도로 보였을 것이다. 군대의 교관들이 자신의 표정, 특히 눈빛을 훈련병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모자를 깊게 눌러쓴다고 하지만 그 효과와 성능에 있어서는 남자가 쓰고 있는 가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터였다.

후우…….”

얼마간 고개를 숙이고 있었을까, 가면 밑의 턱 선을 따라 맺힌 투명한 땀방울이 모여 땅으로 떨어질 때 즈음 조용히 나무에만 매달려있던 매미들이 사방에서 일제히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찌이이이이이이이이-

“!!”

더위를 먹은 탓이었는지 멍하니 있던 남자는 그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았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이 무얼 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 그렇지. 기초 훈련 코스를 마친 것에 대한 마지막 축사를 끝낸 참이었나……. 나도 꽤 지쳤나본데.’

눈앞에 보이는 것은 인종도 나이도 성별도 제각각인,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열일곱 명의 예비 요원들. 살인적인 폭염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정렬해있는 이들은 모두 남자가 속해있는 레지스탕스 조직 전장의 날개의 일원이 되기 위해 이곳 폭풍사막 캠프에서 두 달째 혹독한 훈련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이들이 어지간한 특수부대 저리가라 할 정도로 뼈를 깎는 고통을 인내하며 훈련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싸워야 할 상대가 테러리스트나 무장집단 같은 평범한 인간이 아닌, 이능의 힘을 구사하는 초능력자였기 때문이다. 대인전투에 특화된 능력자의 경우 단신으로 특수부대 일개 소대를 상대로도 싸울 수 있을 정도니 실전훈련에 앞서 이들이 이렇게나 잔뜩 긴장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남자는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한 후 그들을 향해 말했다.

기다리게 했군요. 이것으로 기초 훈련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마지막 실전훈련을 도와주실 분은 능력자 랭크 트리플 나이트의 ……김진한씨 입니다. 자리를 비워야 하는 저를 대신해 잠시 후 이곳으로 오신다 하셨으므로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며 기다리시면 됩니다. 앞으로의 모든 훈련과정은 진한씨에게 일임하였으므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제가 아닌 진한씨를 통해 이야기 하도록 하십시오.”

가면 아래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그의 실루엣을 그대로 소리로 옮겨놓은 듯, 가늘고 섬세한 소년의 음색을 띄고 있었다. 남자는 필요한 말을 마치자마자 등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

남자의 말이 끝나자 훈련캠프의 운동장에는 찌르르르 울어대는 매미의 소리만이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서서히 멀어지는 등 뒤의 열일곱 명이 적지 않게 동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능력자 중에서도 트리플 등급의 능력자는 매우 드물다 못해 희귀할 정도. 이제 갓 기초훈련을 마친 그들의 입장에선 앞으로 자신들을 단련해줄 교관이 트리플 급의 능력자라는 사실이 놀랍기만 한 것인지도 몰랐다.

남자는 그들의 반응에 쓴웃음을 지으며 느긋한 걸음걸이로 운동장을 나섰다.

훈련생들에게 기초훈련을 가르치던 운동장을 지나 훈련캠프의 외곽으로 5분쯤 걸어가다 보면 녹음이 가득한 장소가 나온다. 모래먼지가 휘날릴 정도로 삭막하기 그지없는 중앙 훈련지역과는 달리 잘 가꿔진 정원처럼 보이는 이곳은 정규요원과 훈련생들의 몇 안 되는 안식처이다. 온갖 종류의 화초와 꽃들, 싱그러운 꽃내음과 아늑한 벤치가 자리한 이곳은 몇몇 여성 요원들로부터 오아시스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였다. 겨우 이삼백 미터 건너편에 오일과 화약으로 얼룩진 모래범벅의 훈련캠프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확실히 이곳이 사막의 오아시스 대접을 받는 편이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게 내 솔직한 감상이었다.

긴급한 용무가 있으니 1405분까지 숙소의 521호로……. 긴급한 용무가 있으니-”

조금 전 단말기로부터 호출 받은 내용을 입으로 되뇌며 정원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여어! 가혹한 상인씨!”

!”

어라? 그렇게 노골적으로 낭패라는 표정은 짓지 않아도 되는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싱글벙글 거리는 표정으로 다가오는 이 남자의 이름은 김진한. 조금 전 훈련생들에게 소개한 바로 그 트리플 나이트였다. 싱글부터 시작해 더블, 트리플, 쿼드라, 펜타까지의 다섯 단계로 나눠지는 능력자의 랭크시스템 상 더블 나이트인 나는 트리플인 녀석보다 랭크도 한 단계 떨어지는데다 조직 내에서의 계급도 바로 아래인 입장. 게다가 나이도 나보다 여섯 살이나 많으니 그런 점을 은근히 파고들며 윗사람 노릇을 해먹으려 하는 녀석이다. 재수없고 얄미운(그러나 도저히 맞받아칠 수 없는) 화술까지 구사하는 데에는 도가 텄기 때문에 조직 내에서 내가 진심으로 싫어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나는 스쳐 지나가는 그녀석의 어깨를 거칠게 밀어재끼며 나지막하게 으르렁댔다.

헛소리 작작 해. 가면 아래의 표정이 보일리가 없잖아. 그리고 네놈그 이름은 금지라고 했을 텐데? 내 앞에서 더 이상 옛날이야기를 들먹이지 마.”

아앗, 실수! 그랬었지 참. , 운이 좋게도 주변엔 듣는 사람도 없으니 한 번 정도는 봐주면 안 될까? 하하! 미안하다.”

멋적게 웃으며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듯 사과하는 진한. 그 모습을 보고도 부글거리는 속이 가라앉지 않는 것은 그 웃음부터 사과까지가 모조리 거짓투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늘 그랬듯 애초에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음 일부러 나를 자극하기 위해 그 이름을 쓴 것이 분명했다.

……됐어. 호출도 있는데다 왠지 모르게 피곤하니 그냥 가라. 트리플 나이트께서 납신다고 하니 훈련생들이 아주 잔뜩 긴장하더라. 아무리 경박한 너라고 해도 그들의 순수한 기대에는 재대로 부응해줘야 하지 않겠냐?”

일부러 추켜세워 주면 오오 그러냐?’ 하고 한 걸음에 달려갈 줄 알았더니 의의로 녀석은 갑자기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귀찮은 티를 역력히 표시하기 시작했다.

하아, 말이야 쉽지. 훈련생들을 상대하는 정도라면 더블 룩이나 더블 비숍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겠어? 솔직히 나정도 되면 훈련생 열댓 명이 달려들어도 문제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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