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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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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노벨리아의 편집 노트
글쓴이: 은백
작성일: 12-07-15 19:18 조회: 1,584 추천: 0 비추천: 0

Prologue : 피로 물든 데이트


“실은 나, 마법소녀가 됐어.”

“뭐?”

전조도 없이 튀어나온 핵폭탄급 발언에 이형우는 벙찐 얼굴을 하고 말았다. 때마침 빨대에 입을 대고 있었더라면 전방의 양 갈래 머리 금발 소녀에 시원한 커피 샤워를 선사할 뻔했다. 하긴 한 주를 마무리 짓는 주말 오후, 평범한 현대식 카페에서 이렇게 충격적인 고백을 듣게 되리라고 예측할 수 있는 인간은 아마 세상천지에 없을 것이다. 대자연의 풍취를 느끼려고 백두산에 등반했다가 천지 괴물을 목격한 격이다.

이형우는 세일러복 차림으로 목전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금발소녀 나빛나를 멀뚱히 주시하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마법소녀? 그 말인즉슨, ‘마법전대 피스필리아’의 대원이 됐단 말이야?”

“딩동댕! 형우가 그~렇게나 좋아하던 피스필리아의 리더, 금반디의 후계자로!”

나빛나는 카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자신과 마주보고 앉은 재벌2세에게 화사한 눈웃음을 선보였다. 하지만 분명 환희와 동경으로 채색될 줄 알았던 이형우의 눈빛은 나빛나의 예상과는 반대로 점차 의문과 근심의 늪에 빠져들고 있었다.

“보통 후계 마법소녀가 정해지면 다음 디아볼로가 나타날 때까지는 철저히 비밀에 부치는 게 원칙이잖아. 이렇게 민간인한테 막 드러내도 돼?”

“민간인?”

나빛나는 마침 기회다 싶어서 상체를 바싹 당기고 앉아 눈을 반짝였다.

“형우야, 너는 마법소녀 나빛나한테 단순히 민간인 취급 받을 남자가 아니야.”

“응? 그야…… 그렇겠지. 우린 둘도 없이 친한 친구니까.”

“그게, 실은 말이지.”

분바른 것처럼 창백하던 빛나의 뺨이 갑자기 잘 익은 홍시처럼 붉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머리 위로 퀘스천 마크를 띄우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부잣집 도련님을 면전에 두고, 그녀는 속으로 계속해서 주문을 걸었다. 침착해라. 거의 다 와간다. 이제까지 기울인 노력이 결실을 맺을 때가 왔어. 이 순간만을 위해 난 모든 사생활과 권리를 포기하고 마법소녀까지 됐다. 하지만 이것만 먹히면 남은 인생은 탄탄대로라구.

결정. 나빛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가슴 밑바닥에 몰래 숨겨둔 감정을 드러낸다.

“나, 줄곧…….”

『사랑한다, 인간들. 진심으로 말이지.』

그리고 그 고백은 예기치 않은 불청객의 참견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기계음이 뒤섞이고 심하게 뒤틀린 10대 소년의 목소리, 사람들에겐 기억에서 깨끗이 지워버리고 싶은 악몽의 하나로 자리 잡은 그 목소리가 놀랍게도 카페의 벽걸이TV 측면에 부착된 스피커에서 생생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빛나와 이형우는 물론이고 카페에서 화사한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던 손님과 종업원들의 시선이 일시에 벽걸이TV의 액정 화면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먹처럼 새까맣게 칠해진 흰자위와 샛노란 검은자위로 이루어진 섬뜩한 눈,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도 삐죽 튀어나올 만큼 기다란 송곳니, 탁한 녹발에 푸른색 피부라는 다분히 이질적인 용모의 소년이 자애롭게 미소 짓고 있었다.

사람들의 뇌리에는 더할 나위 없이 또렷이 각인된 얼굴이다. 저 자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지구상에 아무도 없다. 다만, 왜 하필 이제 와서 저 고인의 얼굴이 스크린에 부활했는지가 미스터리일 뿐이다. 카페 내의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각자 추측을 내기 시작했다.

“플레오넥시아? 저 자식은 분명히 피스필리아의 리더, 금반디의 손에 죽었는데?”

“경각심을 다시금 일깨우기 위한 특집 방송인가?”

“하지만 CG 치고는 너무 리얼하지 않아? 농담으로라도 저 녀석이 살아있을 때 순순히 방송국에 협조해줬을 리도 없고, 대역으로 쓸 만한 배우나 성우도 없잖아?”

“아니면 피스필리아의 창립자인 키드몬이 준비한 만우절 이벤트?”

“멍청아, 오늘은 5월 15일이야!”

하지만 근거도 없는 지레짐작의 홍수는 머지않아 끊겼다. 어떻게든 평화적으로 돌려 생각하려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발언이 마족눈 소년의 입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그건 지구상 70억 인류에게 내려진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이 몸께서 다시금 인간계에 모습을 드러냈나 심히 궁금하겠지. 아, 그럴 거야. 그 건방진 계집의 동귀어진 때문에 지옥으로 쫓겨 갔을 텐데, 이렇게 멀쩡히 살아서 용안을 비추는 게 쉬이 납득할 만한 상황은 아니겠지. 이해는 간다. 다만 이런 의문은,』

조금 전까지의 소란이 거짓말처럼 가라앉고 일시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이 몸께서 정말 그 동귀어진으로 죽었을 때의 이야기지.』

진정한 의미의 핵폭탄 발언이 사람들의 뒤통수를 거세게 가격했다. 다들 다리에 힘이 쭉 빠지고 꿀 먹은 벙어리가 돼서 멍만 때리고 있는 와중에, 이형우 혼자만이 분노에 겨운 한탄을 외로이 내리퍼붓고 있었다.

“제, 기랄……. 그럼 뭐야. 금반디의 희생은 개죽음이었단 거야? 뭐 저런 놈이…….”

『모처럼 자리를 내준 방송국에 감사를 표하지. 뭐, 과정에서 약간의 피를 보긴 했지만 나중에 돈으로 갚으면 되려나? 여하튼 이 자리를 빌려 대악마 플레오넥시아는 선언한다. 인간들이여, 이루고픈 소망이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나에게 빌어라. 부자가 되고 싶나? 철천지원수에게 복수를 하고 싶나? 최고의 스타가 되고 싶나? 아니면 전 세계를 자기 발 아래 두고 싶나? 그 어떤 소원이라도 상관없다. 이 몸께선 전능한 존재니까. 그리고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장소불문! 아무런 제약도 없는 풀 서비스다. 이제 위선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질 때도 됐잖아, 안 그래? 돈, 신분, 법, 남의 시선, 이런 거치적거리는 제약 때문에 차마 이루지 못하고 자기 내면에 깊이 잠자고 있는 소망을 일깨울 때다. 인간들이여, 솔직해져라. 이건 결코 죄악이 아니다. 자신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 이루고픈 소망을 억지로 외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죄악이니까!』

플레오넥시아는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속이던 뱀처럼 능글맞은 미소를 한껏 선보이더니, 이윽고 타깃을 바꾸었다.

『그리고 자칭 이 몸의 경쟁자이자 위선의 마스코트인 키드몬이여. 지금쯤 이 방송을 보고 허겁지겁 마법전대 활동에 재시동을 걸고 있겠지? 이 몸께서 죽음을 가장해서 당분간 자취를 감출 동안, 현명한 인류는 고액의 비용을 들여서까지 더 이상 마법전대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며 널 압박해왔을 거야. 하지만 ‘잔당처리’라는 명목 하에 계속 철밥통을 부여잡고 있음은 물론이고 금반디의 공백을 메우려고 새 멤버까지 들였다면서? 아마 이 사태를 예지한 네놈의 선견지명 같지는 않고, 천상의 사자 주제에 볼일이 끝났으면 얌전히 천국에 돌아나 갈 것이지 왜 굳이 인간계에 계속 발을 붙이고 있으려는 거냐? 따로 속셈이 있을 텐데? 뭐, 이 몸이 거기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거 같고. 어라. 벌써 소원 하나가 접수됐네. 꽤나 딱한 사연인걸. 큭큭큭. 심야 라디오 방송처럼 청취자 전원에게 공개하고 싶을 정도야. 그럼 슬슬 일할 시간이군. 우리 무기력하고 불쌍한 키드몬, 그리고 마법소녀들. 막을 테면 얼마든지 막아보셔. 5년 전처럼 녹록하게 당하진 않을 테니까. 크하하하핫!』

호탕한 비웃음을 대단원으로 플레오넥시아의 선전 포고는 막을 내렸다. 그리고 마치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약 5초간의 침묵이 이어지다가, 한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을 기폭제로 카페 안의 사람들은 온통 패닉 상태에 내몰리고 말았다.

“아아아아아악!”

“대악마가 돌아왔다!”

“아하이구, 맙소사! 우리 인제 죽었어!”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여기를 빠져나가겠어!”

“인마! 저 자식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데는 없다구! 정신 차려!”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던 카페 안은 개판 5분 전의 난장판으로 순식간에 탈바꿈하고 말았다. 황망하기는 형우와 빛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긴 했으나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허둥댈 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이제 어떡하지?”

“이런 젠장맞을. 빛나야, 너 마법소녀랬지? 그럼 키드몬이나 동료들한테 연락이 올 텐데?”

그때였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던가.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안절부절못하는 빛나의 목덜미에서 진홍색 루비로 만들어진 펜던트가 깜박이며 유아기 소년의 음성을 내기 시작했다. 플레오넥시아보다는 조금 더 가늘고 여성스러운 톤이었다. 그리고 나빛나와 이형우에게는 조금 더 익숙하고 친근한 목소리였다.

「나빛나. 응답해라. 나빛나?」

“키, 키드몬! 바, 바, 방금 방송 봤어? 봤어?!”

나빛나는 펜던트의 루비 코어를 마이크처럼 입에 대고 말을 더듬으면서 소리를 높였다. 입술이 사하라 사막의 모래밭처럼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반면에 키드몬은 플레오넥시아의 예상과는 달리 의외로 담담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래, 봤어. 온누리와 한아름은 즉시 현장으로 출동시켰다. 벌써 민간인 한 명이 멋도 모르고 계약을 맺는 바람에 디아볼로로 변이했거든. 너도 디아볼로의 마력 반응은 포착했겠지?」

“디아볼로의 마력 반응……?”

나빛나는 순간 가슴 한편이 뜨끔하여 쉬이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디아볼로의 마력을 탐지하는 것은 마법소녀의 기본 소양. 하루 이틀만 집중해서 연습하면 어렵지 않게 터득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하지만 나빛나는 지난주에 금반디의 후계 마법소녀로 지목된 이후로는 이쪽 방면에 일말의 신경도 쓴 적이 없었다. 그야 당연하다.

‘애초에 난 플레오넥시아가 떡하니 복귀하리라곤 상상도 못했고, 마법전대를 전적으로 동경하는 형우의 마음을 사겠다는 일념 하나로 마법소녀 자리에 지원을 했는걸! 실제 상황 대비 연습 따위는 하나도 안 했다구!’

「너도 얼른 현장으로 출동해! 나도 뒤따라갈 테니까! 빨리 누리, 아름이랑 합류하도록!」

키드몬이 그 명령을 끝으로 연락을 끊으려 하자, 빛나는 황망한 나머지 궁여지책으로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아…… 그게, 미안하지만 나도 좌표는 알겠는데 정확히 주소로 가르쳐주지 않을래? 그럼 참고해서 지름길로 더 빨리 갈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래? 그럼 너도 지금 디아볼로 녀석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쯤은 알겠지?」

“움직여? 예상 목적지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동에 위치한 공중파 방송사 S본부 근방! 하필이면 무고한 민간인이 떼거리로 몰려있는 곳이야! 얼른 변신해서 시민들을 대피시켜!」

“잠깐, 거기라면…….”

‘하하. 거짓말이겠지. 일이 이렇게까지 꼬일 리가 없잖아. 아하하하하.’

나빛나의 허탈에 찬 실소가 점차 좌절과 공포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형우가 이미 금이 가기 시작한 그녀의 멘탈에 쐐기를 박았다.

“여기 소프트 오페라 바로 맞은편이 S본부 방송국이잖아? 디아볼로가 우리 근처로 오고 있단 말이야?”

“말도 안 돼…….”

나빛나는 이 비통한 현실을 외면하고픈 마음에, 이미 난장판이 된 카페 내부에서 고개를 돌려 시선을 창밖으로 향했다. 바깥이 아직 평온하다면 약간이나마 시간이 남아있다는 안도감이 그녀를 감쌀 테고, 그렇다면 최소한 사람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킬 여유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미 노선을 벗어난 지 한참이 지난 현실의 잔인함은 그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포르쉐의 최신작이자 시중에 모습을 드러내고 채 한주가 되지 않아 스포츠카 시장을 온통 주름잡고 있는 모델 Carrera S 991. 그 중 한 대가 여의도 시내 차도 한복판에서 중앙선과 도보자를 무시하고 활보하며 깽판을 부리고 있었다. 당연히 사방에서 쉴 새 없이 클랙션이 울렸지만 전혀 들리지 않는 듯하다. 여러 측면을 고려했을 때 도저히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 모는 것 같지가 않았다. 여기서 그쳤으면 그저 플레오넥시아의 복귀 선언에 정신붕괴가 일어난 운전자의 폭주라고 여길 수 있겠으나, 이를 유심히 관찰하던 나빛나의 눈은 이미 상식의 영역을 벗어난 부분을 일찌감치 캐치해냈다.

Carrera S 991의 운전석은 텅 비어 있었다.

‘마력 추적도 필요 없겠네. 얼른 온누리, 한아름 선배에게 연락을 취하면 금방 해결……’

……될 거라는 초보 마법소녀의 안일한 판단은 금세 초전 박살나고 말았다. 독고다이 외로운 싸움개마냥 운전자도 없이 신나게 차도를 갈아엎던 스포츠카의 타깃이 전조도 없이 순식간에 바뀐 것이다. 녀석의 헤드라이트와 눈이 마주친 나빛나는 등골에 얼음 같은 한기가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설마……?’

자고로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했던가. 빛나는 그 운전자 없는 스포츠카에서 형언할 수 없는 살기를 느끼고, 우매하게도 아직 카페 안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민간인들에게 한시 빨리 도망치라는 경고를 날렸다. 아니. 본래라면 그러려고 했었다. 필시 그래야 했을 터다.

하지만 목전의 무법자 스포츠카가 곧이어 선보인, 상식을 초월한 기행에 넋이 나간 나머지 빛나는 마법소녀 본연의 임무마저 새까맣게 망각하고 말았다.

보닛과 앞문이 슬쩍 들린다 싶더니 타이어가 접히고, 측면에서 아마도 손으로 추정되는 금속체가 불쑥 튀어나왔다. 보닛은 원래 반으로 접혀있던 색종이마냥 부드럽게 펼쳐지더니 양 갈래로 나뉘어 다리가 되고 차체의 나머지 파트는 철컥대는 금속음으로 연신 고막을 긁어대면서 길쭉한 몸통으로 변이했다. 측면에서 튀어나온 팔이 땅을 짚고, 보닛이 변형한 다리가 몸통을 지탱하면서 일어나더니 녀석은 어느새 도로 한복판에서 보란 듯이 동상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짧게 요약하자면,

운전자가 없다는 걸 빼면 멀쩡했던 최신형 스포츠카가 단 10초 만에 전투형 이족보행 로봇으로 변신했다. 아동용 특촬물이나 영화가 아닌 이상 찾아보기 힘든 고난도 연출이다.

나빛나를 비롯해 이 광경을 육안으로 목격한 사람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상식의 세계와 백만 광년쯤 떨어진 듯한 이 연출은 확실히 최고의 구경거리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구경꾼의 안전이 철저히 보장돼있을 경우의 이야기다. 유감스럽게도 그 로봇은 시민들에게 단순히 시각적 오락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찾아온 어릿광대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불안한 예감은 현실로 다가왔다.

로봇은 현대식 카페 소프트 오페라에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까지 다가오더니, 손등에서 난데없이 서슬 퍼런 칼날을 꺼내들어 건물의 중앙 부분을 횡으로 베어 넘겼다. 전단응력에 매우 강한 건축 자재라는 철근 콘크리트의 캐치프레이즈가 무색해질 만큼, 건물은 순두부처럼 힘없이 썰려나갔다. 뒤이어 녀석은 고개를 반쯤 숙이더니 공포심으로 온몸이 굳어버린 시민들을 하나씩 스캔하기 시작했다. 신장만 해도 장장 5m에 달하는 거구의 로봇 앞에서 본의 아니게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만 1층 카페는 더 이상 대피소나 엄폐물의 구실을 하지 못했다. 마땅히 도망치는 게 최선이겠지만 다들 전신에 힘이 풀리고 공포감에 사로잡힌 탓에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여기서 나빛나는 책임감과 무력감이라는, 상충되는 감정을 동시에 체감하며 혼란에 휩싸였다. 그녀를 제외하면 다들 죽은 목숨이라고 좌절하는 판에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형우가 빛나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빛나야! 너 마법소녀잖아! 그럼 저 녀석이랑 싸울 수 있잖아!”

“으, 응? 그게…….”

“금반디의 후계자라면 희망의 마법소녀잖아! 가슴에 달린 그 루비 펜던트가 엘피스(Elpis), 변신 아이템 아냐! 얼른 변신해! 촌각을 다투는 이 상황에서 다른 대원이나 기다릴 거야?”

“사, 사실은……. 나, 아직 변신할 줄 몰라! 게다가 싸울 줄도…….”

“뭐?”

그때, 탄식과도 같은 형우의 외마디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종의 물체가 쉬익 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이내 불길한 섬광이 번뜩이더니 장도 크기의 칼날 하나가 무기력한 마법소녀를 붙들고 있던 19세 소년의 가슴 한복판에 붉은 분수를 만들어냈다.

“어…!”

그와 정면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있던 나빛나의 뺨에 쇠비린내 풍기는 선홍빛 액체가 가득 튀었다. 뒤이어 상상을 초월하는 통각이 엄습해오자 이형우의 동공이 눈에 띄게 수축하고 입에서는 한 말에 가까운 피가 토해졌다. 가까스로 봉변을 피한 빛나는 금세 멎을 듯한 심장을 움켜쥐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혀, 형우야!”

“나빛나……. 너…….”

단말마 치고는 길고 유언 치고는 짧아 조금 애매하지만, 뼛속 깊이 서린 분노와 실망감만큼은 확실히 읽어낼 수 있는 한 마디. 허망하게도 이형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가슴팍을 꿰뚫은 쇠붙이가 스르르 빠지고, 그 건장했던 체구는 실이 끊긴 꼭두각시 인형처럼 바닥에 힘없이 엎어지고 말았다. 그 밑으로 얕은 피 웅덩이가 고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빛나에겐 슬퍼할 여유조차 없었다. 형우를 처참히 꼬치구이로 만든 그 로봇이 본래의 목적이었던 그녀에게 시퍼런 칼날을 들이댄 것이다. 비록 얼굴은 철제 마스크로 가린 고철덩이에 지나지 않지만 그 기계형 디아볼로는 꼭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듯했다. 마치 전장에서 큰 공을 세우기 직전, 수도에서 목이 빠져라 승전보를 기다리고 있을 주군이 자신에게 어떤 상을 내릴까 기대하는 장수처럼.

마법을 쓸 줄 모르는 마법소녀는 디아볼로를 쓰러뜨리거나 무고한 인명을 구하기는커녕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도 버겁다. 이는 실전 경험이 없고 전투 이론에도 까막눈인 나빛나도 뻔히 알고 있던 사실이다. 하지만 플레오넥시아가 인간계에서 발을 뺀 시점에서 굳이 사생활까지 포기해가며 단련을 서두를 필요는 없었고, 잔당처리는 베테랑 격 선배인 온누리와 한아름이 잘 해내고 있었다. 자신은 마법전대 광팬인 재벌2세 도련님 이형우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금색으로 도배된 부자 라이프를 만끽하면 그만이었다.

마법전대 입단은 나빛나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 윤택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키드몬의 눈에 들어 합격한 것도 순전히 운이었고.

그런데, 어쩌다 사태가 이 모양 이 꼴로 치달은 거지…….

“절망의 칠흑을 밝히는 횃불의 사자여!”

나빛나는 이를 앙다물고 매직 펜던트 엘피스를 부여잡은 채,

“지금 이 자리를 빌어, 희망이란 이름으로 이 몸에 깃드소서!”

한아름에게 배운 주문대로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러보았지만

“체인지 폼!”

비정한 현실은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주지 않았다.

“우악. 이거 심한 꼴이 됐네.”

중성적인 목소리의 붉은색 단발머리 소녀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절레절레 내흔들었다. 테일코트와 검은색 레깅스 차림에 철제 권갑으로 무장한 외관만으로도 그 신분을 대략 유추해볼 수가 있다. 모 금발소녀가 절명하는 그 순간까지 절실하게 기다려 마지않은 그 동료. 이제는 건널 수 없는 강을 사이에 두고 멀찍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관계지만 말이다.

사건 현장에는 뒤늦게 투입된 경찰과 구조대원들이 쉴 틈 없이 부상자와 시체를 옮기고 있었으며, 언론 기자들이 접근 제한 구역 밖에서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종이처럼 찢겨나간 벽과 바닥, 현장으로부터 약 8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천장의 콘크리트 조각 등에서 사건의 참담함을 엿볼 수가 있다.

그런데 돼지우리처럼 엉망진창이었던 현장도 대충 정리가 다된 마당에, 유일하게 치워지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시체가 딱 하나 보였다. 거대한 날붙이에 배가 통째로 꿰뚫려 즉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 시체는 금발벽안에 세일러복 차림을 한 10대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절명하는 그 순간까지도 끝끝내 놓치지 않아 오른손에 꼭 쥐여있는 루비색 펜던트가 보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피스필리아의 돌격대장인 온누리가 가까스로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금반디의 뒤를 이은 희망의 마법소녀 나빛나는 변신조차 못하고 요단강 익스프레스 티켓을 끊은 뒤였으니까. 칼날 하나만 믿고 설치는 그 고철덩이를 초전박살내고, 천행으로 그때까지 목숨을 부지한 시민들을 지키는 정도가 온누리의 한계였다.

“어휴. 그러게 연습 좀 해두라니까. 키드몬은 무슨 속셈으로 이 녀석을 뽑은 거야?”

“제 잘못이에요. 옆에서 잘 감독했어야 했는데.”

온누리의 뒤편에서 또 다른 마법소녀가 다가와 측은한 시선을 보냈다. 곱게 푸른 청발에 포니테일, 실용적인 디자인의 하늘색 투피스 차림을 한 소녀. 다소 경박하고 호전적인 성격의 온누리에 비해서 성숙하고 얌전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착용한 장비도 청동제 버클러. 온누리가 자진해서 싸움에 앞장서는 전투요원이라면 이쪽은 후반 지원형 서포터와 구조대원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이봐, 한아름. 네 치유 마법으로 어떻게 손 쓸 수 없어?”

“누리 양. 마법은 고사하고, 설령 신의 기적이라고 한들 죽은 사람을 되살리지는 못해요.”

“그래? 쳇, 그거 안 됐네. 어차피 후계자는 구하면 그만이지만 플레오넥시아 그 자식이 돌아왔다고. 앞으로 일이 봇물 터지듯 쏟아질 텐데 공백이 길어지면 곤란하단 말이야.”

“그 일은 나중에 생각해요, 누리 양. 아무리 정의 실현을 위해 만사를 포기한 마법소녀라 한들, 목숨을 도구로 취급받을 이유까진 없어요. 그건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랍니다.”

현재 피스필리아 최고의 베테랑이자 인명 구조 전문의 마법소녀 한아름. 그녀는 온누리를 제치고 나서서 나빛나의 처참한 시체 앞까지 걸어가, 차갑게 식은 손을 꼭 잡아주었다. 뜨겁고 투명한 액체 한 방울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렀다.

“함께 명복을 빌어주도록 해요.”

“…….”

“잠시나마 우리와 운명을 함께 했던 동료. 그러나 결국 한 번의 실수를 만회하지 못한 채 시대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고 만, 가엾은 영혼에게 말이에요.”

한아름이 가뜩 멘 목을 쥐어짜서 홀로 위령제를 지낼 동안, 루비색 펜던트 엘피스는 변함없이 고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피로 물든 날이 여명과 함께 저물어간다.




Chaptor 1 : 노벨리아


최고의 진학률을 자랑하는 명문고 야자시간도 뺨칠 만한 정적이었다. 만약 측정기가 있었다면 소리 단위는 아마 마이너스를 기록했겠지. 차라리 인공조명이 켜지면서 흰색 광대 마스크를 쓴 노인네가 스크린 너머로 ‘게임을 시작하지’라며 사형선고를 내리는 편이 안심이 될 지경인데. 적어도 여기가 ‘이 세상’이라는 자각쯤은 가능할 테니까.

설상가상으로 내 전신은 중력의 끈에서 풀려나 바람에 휩쓸린 헬륨 풍선마냥 이리저리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다. 만취한 것도 아닌데 머리가 어지러운 것은 물론이고 구토까지 쏠린다. 물론 우주비행사 체험 이벤트에 지원한 적도 없다. 이걸 ‘자유’라느니 ‘신비한 체험’이라느니 떠들 종자가 있다면 참 속편한 놈이겠군. 그놈한텐 공포나 의구심, 스트레스라는 개념이 없을 거다. 꼭 감은 눈꺼풀 너머로 보이는 무광의 세계처럼 칙칙하고 우주공간 한가운데처럼 조용한데다 중력까지 없는데 숨은 쉬어지고 생존엔 지장이 없다. 직업과 지위, 종족, 성별을 막론하고 이 세계의 정체를 단박에 까발릴 수 있는 작자가 없다는데 100만원을 걸지. 100만원은 있냐고? 자신 있으니까 걸었지.

그때였다.

『그럼 그 100만원, 준비해두는 편이 좋겠네?』

현직이 독설가인지, 조롱하는 기가 다분한 말투로 응수가 돌아왔다. 내가 성대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부여하지 않는 한 침묵은 계속 되리라 여겼던 믿음이 와장창 박살나는 순간이다. 당황한 와중에도 고개를 돌려 사방을 스캔해봤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높고 가는 톤으로 미루어봐서 젊은 여성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10대라면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오고, 20대라면 얼굴 봐서 정하겠다는 한심한 생각이 끝을 맺기도 전에 일침이 돌아온다.

『정할 필요도 없지. 네가 만든 얼굴인데.』

“엥?”

엉겁결에 바보 같은 외마디로 성대의 봉인을 풀고 말았다. 웬 헛소린가 싶어서 머리 위로 물음표를 부대 단위로 띄우는데 때마침 목소리의 주인이 신비주의 콘셉트를 포기하고 찬란한 후광과 함께 외양을 드러냈다. 이건 보통 위대한 성인이나 신께서 주로 옵션으로 달고 나오는 속성인데. 혹시 하느님인가? 알라신? 조로아스터?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처음엔 눈부신 역광 때문에 실루엣만 살짝 보이다가 조금씩 본체도 밝아지면서 세세한 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찬란함은 상술했듯이 성인과 신을 방불케 했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예수나 부처는 등록금이랑 하숙비 때문에 부모님 눈치 보느라 정신없어질 예비 복학생을 상대로 100만원을 갈취하는 소인배가 아닐 텐데.

내가 하늘나라 운영비라도 바닥이 났나 오지랖 넓은 걱정을 하는 와중에, 미끈한 용안을 드러내신 그 성자께서는 한쪽 입 꼬리만 극단적으로 올리면서 멋들어진 썩소를 보이셨다. 3D 툴로 커스터마이징한 것만 같은 그 얼굴의 주인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1톤 해머로 후두부를 세게 강타당한 수준의 충격을 먹었다. 그래. 이 우주급의 정적을 신나게 때려 부순 후광의 여성은 내가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바로 이 여성의 창작자니까.

“나빛……나?”

몸소 만든 존재임에도 그 이름을 입에 담아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갑자기 천정부지로 치솟는 긴장 게이지에 온몸이 매너 모드의 휴대폰처럼 덜덜 떨리고 있다. 어느새 침샘이 파업을 하고 입 안에는 가뭄이 찾아왔다. 대뇌의 판단 능력마저 떨어진 기분이다.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 이거 뭐라고 말을 이어야할지 모르겠는데.

『내 이름은 알고 있네?』

나빛나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중얼거리면서, 마치 잘 다듬은 인도를 걷듯이 이 칠흑의 공간을 발판삼아 딛고서 뚜벅뚜벅 걸어왔다. 녀석은 이 불쾌하기 짝이 없는 무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모양이다. 왠지 분하다.

금발벽안에 트윈 테일, 작은 가슴과 세일러 교복에 니 삭스 차림이라는 츤데레 캐릭터 클리셰의 교집합이라 개성은 없지만, 막상 동일한 차원에 놓여보니 현실의 비슷한 연령대 처자들에 비하면 튀는 구석 투성이다. 2D의 평범함과 3D의 평범함 사이에는 미칠 듯한 갭이 존재한다는 걸 새삼 느낀다. 무엇보다 난 저 녀석한테 무중력 공간에서 뒷짐을 지고 멀뚱히 서 있는 재주까지 부여한 기억은 없는데.

“이름이야 당연히 알고 있지.”

난 얼떨떨한 와중에도 생각이 닿는 대로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넌 내가 쓴 소설의 주인공이잖아. 출판사에 투고한지 보름 밖에 안 지났다고.”

『그럼 나에 대해 아는 걸 간단하게 말해볼래?』

꼭 시험하는 느낌이 들어 살짝 불쾌한걸.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 인격과 육체를 손수 만들어낸 사람이다. 날 뭐로 보는 거야. 난 이 녀석을 주인공으로 삼아 집필한 습작 『마법전대 피스필리아』의 시놉시스를 기획할 적의 기억을 더듬었다.

“나빛나. 나이 19세. 천상의 사자 키드몬이 결성한 마법전대 피스필리아의 리더.”

『인트로 한번 거창하게 하네. 애당초 그리 달갑지만도 않은 직위인데 말이야.』

불만이면 막내하든지.

“원래는 머릿속에 차 좋고 돈 많은 남자랑 사귀어서 결혼까지 골인할 생각 밖에 없는 신데렐라 증후군 환자이자, 손 가는대로 남학생 건드리다가 진짜 부잣집 도련님 이형우를 보자마자 무릎을 탁 치고 붙어서는 원래 애인을 거머리 떼듯이 떨쳐냈지. 갱생이 콘셉트인 입체적 캐릭터다보니까 정립된 설정이다.”

『변명할 필요 없어. 그건 나름대로 마음에 든 캐릭터거든. 자고로 실속주의가 최고야.』

인터넷에 올렸다간 누리꾼들한테 마녀사냥당할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군.

“그리고 이형우가 마법소녀 금반디의 광팬인 걸 알고 때를 기다리다가, 그녀가 대악마 플레오넥시아와의 전투에서 죽자마자 후계자로 지원해서 운 좋게 합격.”

『그래. 여기까진 나도 아는 이야기네. 네가 애초에 나라는 캐릭터를 만들 때부터 잠재능력을 많이 준 덕분이지. 별 생각도 없이 넣은 설정, 흔해빠진 주인공 보정이잖아? 애초에 발휘할 기회도 없었지만.』

킥킥대면서 비꼬는 품이 영 마음에 안 든다. 원래 주인공은 별다른 이유 없이 강한 법이야. 캐릭터가 작가를 가르치려 들다니, 건방지다. 그리고 미처 잠재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는 후권 떡밥 때문이거든.

“하지만 넌 맘먹고 마법소녀로 활약할 생각이 애초에 없었고, 평시에 마력 조절과 전투 스킬을 단련해놓으라는 선배 격 동료 온누리의 조언도 쿨하게 무시했지. 그리고 자신이 금반디의 뒤를 이을 마법소녀로 지목됐다는 사실을 이형우에게 미리 공개해서 호감을 사려 했어. 그런데 이형우는 데이트 현장에 난입한 플레오넥시아의 부하, 디아볼로의 손에 죽고 만다. 여기서 너는 자기 자신의 나태함과 무력감에 대한 분노, 그리고 금반디 같은 마법소녀로 남아달라는 이형우의 유언으로 각성. 때마침 현장에 도착한 동료 온누리, 한아름과 협동해서 디아볼로를 쫓아내지.”

『오호, 그런 전개야?』

이상하군. 딴 사람도 아니고 주인공인 얘가 모를 리는 없는데.

“그래. 디아볼로는 잠시 자취를 감춰 잠잠해지지만 피스필리아는 중간에 쉴 새도 없이 ‘마스크 더 리퍼’라는 수수께끼의 연쇄살인 악마 수사에 착수한다. 그러다 너는 마스크 더 리퍼를 생포하는데 성공해. 하지만 그 상세한 속사정을 듣자 마음이 흔들려 놓아주지.”

『왜? 플레오넥시아의 부하인데 잡아 족쳐야지.』

그러니까 네가 살려주는 입장인데 왜 그걸 당사자인 네가 모르냐고!

“그 녀석은 금반디의 후계 마법소녀로 지원을 했다가 너한테 밀린 탓에 탈락했어. 하지만 어떤 수를 써서든 마법전대에 입단하고 싶은 나머지 플레오넥시아와 계약을 해. 여기서 미래를 보는 능력이 생기고 타락하지만 자기 신념만은 끝내 지키는데 성공해서, 장차 플레오넥시아의 부하로 변질할 인간을 찾아내서 미리 처단하고 다녔던 거지. 하지만 키드몬은 사정이야 어쨌든 다 잡은 악마를 놓아준 것에 대해 문책을 하고 널 파면하지.”

『하긴 성격이 개차반이긴 하더라. 빌어먹을 메르헨 자식.』

“그로부터 며칠 안 지나서 이형우를 죽인 그 디아볼로가 재차 등장하고 널 제외한 마법소녀 2명이 출동하지. 너도 전직 마법전대의 일원으로서 차마 구경만은 못하고 현장에 달려가. 하지만 마법소녀의 상징인 매직 아이템 엘피스를 뺏긴 시점이라 아무런 힘도 없었지. 때마침 날아온 디아볼로의 일격에 산산조각나려는 찰나, 마스크 더 리퍼가 은혜를 갚고자 나타나서 널 구해주고 나머지 대원들과 힘을 합쳐 디아볼로를 쓰러뜨린다. 넌 싸우진 않았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해서 디아볼로를 해치운 셈이고, 마스크 더 리퍼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정식으로 마법전대에 입단한다. 메데타시 메데타시. 이게 왜?”

『아아, 그래? 그게 네가 생각한 전개로구나.』

나빛나는 뭔가 더 비웃고픈지 검지와 엄지로 턱을 괴고 묘한 미소를 짓다가,

『내 팬티는 무슨 색깔?』

이딴 질문이나 하고 앉았다. 순간 숨이 턱 막히고 얼굴에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다행히 이 공간에서도 수컷으로서의 생식 능력은 여전한 모양이다. 기뻐해야하는 건지.

“야, 인마! 그 소리가 왜 여기서 나오냐?”

『내가 좋아하는 음악 장르는? 스포츠 팀은? 아이돌 그룹은?』

“……그건, 작품 전개에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안 정해놨는데.”

『그래? 하긴 캐릭터에 그만한 관심이 없었으니까 내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겠지.』

괜한 푸념이다. 캐릭터 기획할 때 발사이즈랑 혈중 백혈구 수치까지 계산해야하냐?

『그럼 이 질문에 한번 대답해볼래?』

숨을 크게 들이쉬고 잠깐 뜸을 들이다가 냉소적인 질문으로 일침을 가했다.

『네가 악을 해치울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철썩 같이 믿은 히어로가, 알고 보니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시민 A였어. 그리고 넌 그 가짜 히어로만 믿고 있다가 악당에게 죽임을 당하지. 그렇다면 가짜 히어로 품에 안겨 피를 철철 흘리고 주마등이 보이는데 ‘앞으로는 거짓말하지 말고 사람들을 잘 보살피는 영웅이 되어줘’라는 유언을 남길 수 있을까? 무슨 성자라도 되셔?』

“…….”

조금만 생각해보면 간단히 나오는 비판이지만 응수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러자 나빛나는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던 조소를 팔아먹고 표정에 그늘이 가득 지더니, 꿀 먹은 벙어리 박제가 되고 만 나를 지그시 응시하기 시작했다. 애수에 찬 눈망울이다.

『있지 말이야. 난 내가 도대체 누군지 모르겠어.』

내 습작의 주인공, 갱생의 아이콘인 금발벽안 마법소녀의 목이 갑자기 메었다.

『네가 말해준 이야기대로 갔다면 난 진짜 행복했겠네. 디아볼로도 잡고, 동료도 생기면서 키드몬한테 인정까지 받다니. 날 처음부터 나락으로 빠뜨릴 의도는 없었구나.』

“?”

잠깐만. 스톱스톱. 나락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넌 파우스트나 줄리엣이 아니야. 해피엔딩 라이트노벨의 주인공이라고. 신데렐라가 됐으면 됐지, 마지막 순간에 쓴 잔을 들이키는 건 네 역할이 결코 아니거든!

『마스크 더 리퍼……라. 나도 보고 싶다. 그게 누군지.』

“무슨 소리야? 작품 중반부부터 너희 둘은 만나게 돼있는데?”

『미, 미안해.』

빛나는 갑자기 목이 멘 정도를 넘어서 부모를 갓 잃은 아이처럼 심하게 울먹이기 시작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날 비꼬면서 몰아세운 인물이 이렇게 돌변할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스스로 만든 캐릭터지만 역시 여자란 알다가도 모를 생물이다.

『원래는 따지러 왔었어.』

그 정도 해피엔딩이면 됐지, 소설 캐릭터 주제에 배가 불렀군.

『다음 작품 주인공은 나처럼 만들지 말아줘. 부탁이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빛나는 머금은 눈물을 얇고 흰 손으로 슥 훔치더니,

『그럼 안녕, 작가님.』

백열전등 같이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후광 너머로 멀어져갔다. 잠깐만, 이게 아닌데. 모처럼 내가 집필한 소설의 주인공과 만났는데 벌써 헤어지자니 아쉽잖아. 아직 나눌 대화는 많이 남았다고. 때마침 내일이면 최종 심사 통과 여부의 발표일인데!

나는 계속해서 작아지다가 이젠 흰점으로밖에 안 보이는 나빛나를 어떻게든 부여잡으려고 무중력 공간에서 버둥거리며 손을 뻗었다. 물론 일체 소용은 없었다.

“기다려!”




“기다려!”

“어머,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니?”

“그런 뜻이 아니잖아!”

아침부터 난감한 고행이 찾아왔다. 분홍색 파자마 차림의 흑발 보브컷 처자께서 팬티바람으로 자고 있는 20대 초반의 청년에게 바싹 밀착해 입술을 포개려 하는 이 장관. ‘아니, 좋지 않은가.’라는 모 대령의 명대사로 일축하기엔 상황이 진짜 좋지 않다. 무엇보다 그 처자께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도저히 용납 받지 못할 만행을 시도 중인데,

“이 변태 누나! 브라콘! 음란녀! 부녀자!”

“후후, 난 변태, 브라콘, 음란녀, 부녀자라는 말이 싫어. 사실인데 찔리니깐. 하지만 그 욕을 하는 사람이 우리 스뉴니라면 참을 수 있단다!”

“인터넷 유행어를 멋대로 왜곡하지 마! 당장 김모 화백께 사과해!”

목젖이 튀어나와라 고성을 내질러도 본디 귓구멍의 셔터를 내린 사람에겐 소용없는 법이다. 벽과 대화하는 거랑 뭐가 달라. 더군다나 한창 화사할 나이의 처자라곤 전혀 상상치 못할 체중에 폐부까지 조여 온다. 숨이 막히는걸. 슬슬 한계다.

“아, 좀 비켜!”

“꺄응!”

그 여편네를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내 밀쳐내고 잽싸게 노트북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차피 3평 남짓한 내 방에선 딱히 도망칠 곳도 없으니 계속 부비적댈테지만 쿨하게 무시할 밖에는 도리가 없다. 이제는 심지어 상의를 젖히고 면전에 맨가슴을 들이대도 아무렇지도 않다. 이 변태 누나 때문에 성 불감증까지 걱정해야할 마당이다. 그나마 방금 전의 개꿈으로 아직은 청신호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천만다행이다. 고마워, 나빛나.

시중에 나온 지 벌써 8년이 지나 부팅부터 골골대는 노트북의 모니터를 측은하게 주시하고 있는데 또 사심 가득한 접근이 시작됐다.

“있지, 있지. 스뉴나.”

“자꾸 발음 꼴래?”

“오늘 발표니? 응? 그런 거야?”

“어, 그래.”

그새 옆에 바싹 붙어 볼이 거의 닿을 만큼 얼굴을 가까이하고는 갖가지 질문을 퍼붓는다. 다 좋은데 귀에 입김은 불어넣지 마라. 간지럽다.

“스뉴니가 군대 전역한지 얼마나 됐더라?”

“한 넉 달 됐지, 아마? 이제 복학까지 한 달밖에 안 남았으니까.”

“그럼 그동안 글만 쭉 쓴 거야?”

“틈틈이 놀기도 했지만 생산적인 일이라고 하면 그것밖엔 없네.”

모니터에 바탕화면이 표시되자 반사적으로 인터넷 익스플로러 아이콘을 더블클릭했다. 그리고 원고를 투고한 N모 사이트의 공모전 게시판에 들어가 맨 윗글을 확인했다. 오늘 중으로 최종 심사 결과가 업데이트된다고 했으니 어느 정도는 늑장을 부릴 줄 알았는데,

꿈에 이어서 뒤통수를 한 번 더 얻어맞고 말았다.

“어라? 벌써 올라왔네? 이 사람들 부지런한가보다. 아직 아침인데.”

“…….”

이것 보란 듯이 붉은 N의 사각 아이콘을 제목 뒤에 달고 나온 게시물. ‘제2기 공모전 결과 공지입니다.’라는 13음절이 내 염통을 급격히 압박해오기 시작했다. 솟아나는 기대감에 커서를 옮겨놓긴 했지만 쉬이 클릭할 수가 없다. 겪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때의 긴장감이란 번지점프나 우주비행과도 비교를 불허할 만큼 어마어마하다. 당연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법이다. READY 문구가 없는 격투게임은 없으며 범죄자한테도 집행 유예는 주잖아.

그리고 누나라고 쓰고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읽는 곁의 처자께서 일을 망쳐놓았다.

“안 보고 뭐하니? 에잇!”

“으아아악! 기다려!”

내 손등을 살포시 포개고 있던 손이 급작스레 마우스 왼쪽 버튼을 힘차게 눌렀고, 불가항력적으로 루비콘 강을 건너고 말았다. 결국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세계 4대 성인의 성함을 계속 읊으면서 전에 없던 신앙의 싹을 키워나갔다. 그렇게 10초가 지났다. 네트워크나 하드에 문제가 없는 한 페이지 전환이 완벽히 끝났을 타이밍이다. 금세라도 터지려는 염통을 어떻게든 진정시키며 실눈을 떠서 확인하려는 찰나, 천사의 목소리가 아우라처럼 내 고막을 울렸다.

“어머, 안 떨어졌네!”

“뭐? 진짜?”

올레.

누나의 호들갑이 이렇게 반갑게 들린 건 생전 처음이다. 아직 육안으로 직접 확인하진 않았지만 만감이 벅차오르며 눈시울이 뜨끈해졌다.

아마도 지극히 평범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주변에 절로 여자가 꼬이는 고등학생의 모습을 하고 계실 라노베의 신이시여. 주제에 라이트노벨 작가하겠답시고 무려 8년을 투자했습니다. 8년이요, 8년. 월수로는 96개월, 일수로는 2920일, 시간으로는 70080시간, 분으로는 4204800분, 초로는 252288000초입니다. 그간 기울인 노력이 헛되이 않게 해주려는 마지막 자비십니까? 감사합니다. 그동안 너무 힘들어서 늘어놓은 한탄만 해도 일일이 세보자면 구골플렉스나 그레이엄 수 따위는 가볍게 찜 쪄 먹을 수준일 겁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군요.

자서전에 어떻게든 우겨넣을 항목이 하나 생긴 셈인가.

아득히 떨어진 세상의 경계 너머로 낙원이 하나 보인다. 금색으로 반짝이는 가루가 하늘을 수놓고 무지개가 펼쳐진 알록달록 동산이다. 유토피아가 따로 없군. 그래, 여기가 바로 내 이상향이다. 아아, 라노베 세계에 빛이 가득해.

인기척은 전무하고 마냥 평화롭기만 한 절경 속의 지평선 근처에 푸른색 유니콘 한 마리가 우두커니 서서는 날 빤히 바라보고 있다. 주인이라면 인사를 해야지. 난 스마일 마크를 만면에 흠뻑 띄우고는 부리나케 달려가서 녀석의 팔…… 아니, 앞발을 부여잡고 말을 걸었다.

“당신이 날 통과시켜 준 거야?”

“예! 퇴고해서 다시 보내주세요!”

“하지만 이거 큰일인걸. 퇴고를 하려고 해도 뭐가 잘못인지 알 수가 없으니.”

“퇴고해서 다시 보내주세요!”

“그래. 일단은 준입선으로 통과시켜주고 편집자 한 분이라도 붙여주지 않으련?”

“그런 건 없다.”

응?

잠깐만. 웨이트. 마테. 뭐야 이거.

나는 모니터를 뚫어져라 응시하던 안구를 손으로 비비고, 비비고, 또 비볐다. 하지만 절대영도보다 냉혹한 현실은 끝끝내 내게 미소를 보여주지 않았다. 잔인하기도 하셔라.

입선작은 2작품. 준입선작 1작품. 그리고 내 작품은 그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고 은근슬쩍 ‘보류’로 처리돼있었다. 나랑 함께 대상에 올라왔던 작품 몇몇이 아예 이름을 감춘 것을 감안했을 때 탈락이 확정된 원고 제목을 예의상 보류라고 끼적인 것 같지는 않고. 스크롤을 내리니 보류로 처리된 분들은 5일 내로 전면 개작을 해서 재투고하라는 말이 꼬리말에 옵션처럼 달려있다. 무슨 벌쳐에 달린 스파이더 마인도 아니고 입선작에 딸려오는 덤 취급하는 게 썩 기분이 좋진 않은걸. 게다가 이 양반들 참 웃긴 게, 개작을 요구했으면 평가시트지라도 보내줘야 우리도 문제를 읽고 수정해나가든 할 텐데 그런 말은 일언반구도 없다. 즉 이 공지글의 취지를 요약하자면,

‘너네 작품은 붙여주자니 모자라고 그냥 내치자니 좀 아깝더라. 한번 스스로 문제를 발견해서 잘 수정하고 보내봐라. 그걸로 재능을 테스트해보고 계약할지 정하겠다. 평가지? 미안하지만 우린 입선작느님들 홍보하느라 정신이 벗다. 세상사 다 이런 거야. 하쿠나 마타타.’

“장난 치냐.”

난 빠득빠득 어금니를 갈면서 분을 삭이다가 타깃을 바꿨다.

“누나! 왜 사람 헷갈리게 만들어!”

“응? 틀린 말 아니잖아? 안 떨어진 건 사실 아냐?”

그 눈꼴신 보브컷 처자는 능청스럽게 몸을 배배 꼬며 혀 짧은 소리를 냈다. 하긴 ‘안 떨어졌다’고 했으니 분명히 거짓말은 아니지만……. 모 다크 판타지 애니메이션의 흰색 인큐베이터처럼 정작 필요한 정보만 교묘하게 살살 피해가서 애꿎은 사람한테 피해주지 말란 말이다. 진실이란 본디 있는 그대로를 전부 말하는 거라고.

하아. 다시 현실로 제정신을 돌릴 필요가 있다. 더 이상 푸념해봐야 쌀이 나오랴, 뭐가 나오랴. 출판사 측은 분명히 5일의 시간을 준다고 했다. 『마법전대 피스필리아』를 집필하는데 걸린 시간은 45일. 그 1/9에 불과한 시간을 들여 작품을 ‘전면’ 개작해야 한다. 한 마디로 주제랑 소재만 내버려두고 나머지는 아예 다시 쓰란 이야기지. 네 글자로 요약하면,

망. 했. 어. 요.

“그래도 안 떨어진 게 어디니? 아직 한 번의 찬스가 더 있잖아.”

웃지 마라. 격려하지 마라. 동정하지 마라. 가끔은 좀 부정적으로 볼 줄도 알아라. 본인 일 아니라고 옆에서 시시덕거리지 마라. 능글거리는 미소로 불난 집에 부채질하지 마라. 시간 개념 좀 찾아라. 맘에 맞는 남자친구 얼른 찾아서 꺼져라. 지극히 당연한 반응에 서운한 척하지 마라. 내가 지금 부정형 명령조를 몇 번이나 썼게?

“다섯 번!”

“틀렸다.”

“에이, 참. 누나가 매일 느끼는 건데, 스뉴니는 너무 비관적이야. 아직 공모전 첫 문턱에서 떨어진 적은 없잖아? 내가 이판에 종사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아마 10번 넘게 헤딩하고도 아직 1차 심사도 통과 못한 사람도 부지기수일 걸? 겨우 3번 투고했는데도 최종심사에 두 번이나 오른 스뉴니는 충분히 가능성이…….”

“난 꼭 될 줄 알았다고!”

괜히 흥분해서 격앙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뭐가 문제였지? 나빛나의 내적 갈등이 모자랐나? 아니면 캐릭터성? 더더욱 답이 없는 된장녀로 만들었어야 했나? 아니면 주인공이 여자라서 감정이입이 안 된 거? 마스크 더 리퍼라는 캐릭터에게 너무 암울한 성격이랑 배경만 줘서 그런가? 요새 대세라는 갭 모에라도 입혀야 하나? 서브 캐릭터인 온누리랑 한아름의 비중이 너무 모자란가? 으아아, 누나도 아침마다 침대에 쳐들어와서 성희롱 좀 그만하고 의견이나 말해봐! 누나도 내 소설 스토리 다 알잖아! 들려줘, 들려줘 하면서 아주 타령을 늘어놓던데!”

“후후, 스뉴나. 미안하지만 누나는 여자애만 나오는 작품 따위엔 관심 없단다. 테스토스테론 향기가 시큼하게 나는 작품이 좋아. ‘배드민턴의 왕자’, ‘거유기’처럼.”

“이 부녀자! 그렇게 남자가 좋으면 ‘풀보다남자’나 ‘헐크릿가든’은 왜 안 봤는데?”

“현실세계의 남자 따위 관심 없거든요? 물론 스뉴니 빼고!”

“글렀어! 시집가기는 영 글렀어!”

미래의 마누라를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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