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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릿 퍼즐
글쓴이: 김윤환
작성일: 12-07-15 12:50 조회: 2,693 추천: 0 비추천: 0

Regret Puzzle

누군가의 손에 의해 죽어간

그 소녀에게 이 게임을 바칩니다.

?

0.

소년(1)은 소녀(2)를 좋아한다.

소녀(1)은 소년(1)을 좋아한다.

소년(1)과 소년(2)와 소녀(2)는 셋이서 함께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소녀(3)은 소녀(1)과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다.

소년(2)와 소녀(1)이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때다.

소녀(3)은 소녀(2)를 문예부로 끌어들였다.

소년(1)과 소녀(1)은 고등학교 1학년 사진부에서 처음 만났다.

소년(1)과 소년(2)는 중학교 때 딱 한 번 싸웠지만, 곧 화해했다.

소녀(3)은 남몰래 소설가를 꿈꾸고 있었다.

소녀(2)는 우울증에 걸린 적이 있다.

소년(1)과 소년(2)와 소녀(2)와 소녀(1), 소녀(3)은 각각 다른 반이다.

소녀(3)과 소년(2)가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소녀(2)와 소녀(3)은 같은 교회에 다녔다.

소녀(1)과 소녀(3)은 어째서인지 고등학교 2학년 봄 이후 조금 어색해졌다.

소년(1)은 종교가 없다.

소녀(1)은 장래의 꿈이 없었다.

소년(1)과 소년(2)와 소녀(1)과 소녀(2)와 소녀(3)은 단체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소년(2)는 농구부 주장을 맡은 적이 있다.

소년(1)과 소녀(2)는 소녀(3)의 소개로 친해지게 되었다.

소녀(2)와 소녀(3)은 소녀(1)의 소개로 친해지게 되었다.

소녀(1)과 소년(2)는 농구부에서 알게 되었다.

소녀(1)은 농구부에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진부로 동아리를 옮겼다.

소녀(2)는 중학교 내내 독서부였지만 고등학교 때 문예부로 옮겼다.

소년(1)과 소년(2)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소년(2)는 한때 소녀(3)을 좋아했었다.

소녀(2)와 소녀(3)은 키스한 적이 있고, 서로에게 있어 첫 키스였다.

소년(2)는 소녀(2)와 키스한 적이 있고, 소년(2)의 첫 키스였다.

소녀(3)은 소년(1)과 성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

소녀(1)은 소년(1)에게 고백하려다 포기한 적이 있다.

소녀(2)는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지만, 실패했다.

소녀(1)은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온 뒤 심리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소녀(3)은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온 뒤 소년(1)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소녀(1)은 소년(1), 소년(2), 소녀(2), 소녀(3)중 한 명에게 살해당했다.

살해한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내라.

동료와 협력하는 것은 자유다.

기한은 일주일이다.

힌트는 매일 4개씩 추가로 지급된다. 단, 힌트를 받을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철창을 흔드는 등 탈출행위로 간주되는 행동을 할 시 사형.

기한 내에 찾아내지 못할 시 살인범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사형. 살인범에게는 자유를 내린다.

기한 내에 찾아낼 시 살인범은 사형. 살인범을 제외한 사람에게는 자유를 내린다.

거짓말은 오직 살인범에게만 허용된다. 살인범 이외의 사람이 거짓말을 할 시 사형.

남은 시간 06:23:35:07:12

1.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머리를 둘로 가르는 듯 어마어마한 두통이었다.

그 이외의 다른 감각에는 신경조차 쓰지 못한 채 한참을 뒹굴었다. 통증이 천천히 완화된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온몸이 땀에 젖고, 숨은 거칠어져 있었다. 마침내 끔찍한 고통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나자 몸에 힘이 풀려 쓰러지고 말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눕고 나서야 깨달았다.

기억이, 사라져 있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나’에 대한 것.

내가 어떤 경위를 통해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나를 이렇게 만들 만한 사람이 누군지, 하다못해 이런 상황에 처한 나를 걱정해 줄 사람이라도 있는지, 심지어 내 이름마저도 전부. 하나도 공부하지 않은 과목의 시험지를 막 펼쳐 놓았을 때처럼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나마 내가 처한 상황을 아주 현실적으로 알려준 것은 내 머리맡 책상에 있던 모니터였다.

소년(1)이니 소녀(1)이니 하는, 암호 같은 문장들이 주르륵 나열된 끝에는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전자시계가 있었다. 물론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알았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란 건지.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 사람을 데려다가 이런 일을 시켜 봤자 뭔가 나올 리가 없었다. 하지만 만약 저 안에 쓰여 있는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나는 사형이다. 죽는 것이다.

“곤란하다.”

그렇다. 곤란하다.

굳이 소리를 내어 말한 이유는, 내 자신에게 이 현실을 강제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이다. 나는 이곳에서 숨을 쉬고, 말을 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나에 대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이 머리를 가지고.

“믿어야 하나?”

물론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믿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여기에 감금되어 있는데다, 조금 전 엄청난 두통을 겪었다. 만약 그 통증이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사람’의 수작이라면, 내가 대항할 수단은 없다. 믿는가의 여부를 떠나, 우선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만 한다.

그리고.

이 상황이 전부 사실이라면, ‘살인범’은 이 공간 안에 있다. 내가 알 수 있는 곳이건, 모르는 곳이건. 그렇지 않다면 ‘살인범 이외의 사람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같은 조항이 있을 리가 없다.

“해야 할 일은?”

최종적으로 탈출. 하지만 물리적 탈출은 최후의 수단으로 삼는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위에 주어진 힌트를 짜 맞추기. 마침 1이니 2니 하며 도식적으로 나타낸 문장들이다. 논리적 사고만 있으면 어느 정도는 조합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앞으로의 생활 예측하기.

“동료를 찾는다.”

‘컴퓨터 화면의 문장들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라는 것을 전제로 한 판단이다.

아래쪽에 위치한 문장들 중 하나에, 동료와 협력하는 것은 자유라고 적혀 있었다. 즉, 동료를 만날 수 있거나 적어도 의사소통의 여지는 있다는 뜻.

그리고, 매일 지급되는 4개의 힌트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는 점.

이 대가란 것이 나에게 직접 찾아오는 것인지, 아니면 간접적인 것인지는 그때가 되어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 자신.”

내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관계로, 할 수 없이 ‘나 자신’이라는 대명사를 사용한다.

나는 고통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외의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나는 할 수 없이 다짐한다. 앞으로 나는 내 자신을 객관화한다. ‘나 자신’이라는 플레이어가 이 게임에서 이길 수 있도록 컨트롤하는 것이, 바로 내 의지와 생각.

앞으로의 생활 방향을 결정한 뒤, 우선 방 안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일어선다. 체감상으로 꽤나 좁은 방이다. 하얀 천이 덮인 매트리스는 제법 푹신하지만, 그 이외의 가구는 썩 훌륭한 상태는 아니다. 낡고 단조로운 모양의 옷장을 열어 보니, 일곱 벌의 회색 상하의, 그리고 속옷이 있었다. 친절하게도 양말까지 넣어 두었다.

장롱 옆 벽에 가로세로 30cm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문이 있다. 이 정도면 몸을 넣어 탈출할 수 있는 크기는 아니다. 자세히 보니 위에 작은 글씨로 ‘음식물 투입구’라고 적혀 있다. 때가 되면 식사는 이곳으로 나오는 걸까.

물론 식사를 하면 배설을 하게 되어 있다. 방 정면에 있는 철창문이 아닌, 책상 옆에 있는 나무 문의 손잡이를 돌리자 수세식 변기가 나타났다. 옆에는 휴지도 쌓여 있었다. 세면대와 기본적인 세면용품도 구비되어 있었다. 사람에게 터무니없는 게임을 강요하는 사람치곤 예의가 바르다. 아니, 준비성이 철저하다고 해야 하나.

책상 서랍 속에는 공책 한 권과 샤프펜슬을 제외하면 아무 것도 없었다. 책상 위 모니터는 조작을 가할 수 없었다. 마우스나 키보드 등 입력 장치 자체가 없었다. 이후에도 방을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방의 불을 켜고 끌 수 있는 전기 스위치 이외에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즉, 그가 원하는 ‘추리’ 이외의 모든 것을 배재하는 환경이라는 말이다.

방 안의 구조를 모두 파악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수수께끼를 풀어 보려는 찰나.

누군가가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안하지만 나 역시도 내가 누구인지 잘 떠오르지 않아. 다만 이곳에 들어온 이상 죽지 않고 탈출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 뿐이지.

그의 말은 내가 했던 판단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동료’라는 개념은 옆방에 수용된 사람을 뜻하는 것 같다. 그가 벽을 두드린 직후, 나는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벽을 더듬다가 작은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얼굴까지는 볼 수 없었지만 희미하게나마 목소리가 들렸다.

이 방에는 두 개의 옆면에 구멍이 각각 하나씩 있어. 이쪽 벽을 두드리기 전, 혹시 몰라 반대쪽 벽을 두드려 보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어. 그쪽에도 구멍이 하나 더 있지 않아?

“없어.”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와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파악한 직후, 다른 벽에도 이런 소통 수단이 마련되어 있는지 찾아봤지만 없었다.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 이 상황에서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여기는 가장 끝에 위치한 방이란 건가.”

현재로서는 그렇지. 나는 저절로 두 번째, 혹은 끝에서 두 번째 방에 자리한 게 되는 거고. 물론 네 말이 전부 사실이라는 가정하의 이야기지만 말이야.

그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억이 희미해진 지금에 와서는 누가 살인범인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다. 나는 사실, 내 자신이 살인범이라는 최악의 가정도 해야만 한다. 결국 아무도 신뢰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니까. 자기 자신마저도.

“모니터를 봤겠지. 거짓말을 하면 사형이야. 나는 앞으로 모르는 게 있다면 모른다고 솔직히 인정하겠어. 그쪽이 살인범이 아니라면야, 뭐 같은 생각일 거고.”

맞는 말이야.

그와 나는 제법 성격이 비슷한 것 같았다. 아니면 본래 자신의 인격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발생한 공통적 기질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 되었건, 그와 인간적 교류를 나누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모니터의 문장들을 보고 도출해 낸 건 있어?

“지금부터 하려던 차였지. 아니면 같이 해 보지 않겠어? 분명 동료와 힘을 합치는 건 자유라고 했었지.”

글쎄. 지금 이 상황에서 너를 동료라고 확신할 수 있나?

“확신이야 어쨌건, 둘이 힘을 합치면 이 암호 같은 문장들을 해독하기가 훨씬 쉬워진다는 건 틀림없지. 한 사람의 능력이 다른 사람의 능력보다 월등히 높거나 떨어지지만 않는다면야.”

그는 잠시 고민에 빠진 듯했다. 하지만 잠시 후 결정을 내렸다.

좋아. 협력해서 풀도록 하지.

“그럼 사설 따윈 집어치우고 바로 가자. 먼저 소년(1)과 소년(2), 소녀(1), (2), (3)의 관계부터 풀어 보자구.”

솔직히 말해 현재로서 ‘살인’에 관한 힌트는 거의 없다. 살해당한 소녀(1)을 제외한 다른 네 명 중 한 명이 그녀를 죽였다는 사실밖에

는.

하지만 그들의 인간관계를 엮어 나가다 보면, 살인 동기가 된 결정적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받아 가야 할 힌트들은 살인에 대한 것일 거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먼저 ‘카테고리’를 만들어 보지. 예를 들어 ‘소년(1)과 소녀(1)~’로 시작하는 문장들을 모아 놓는다던가, 하여간 같은 관계의 문장들을 추리는 거야.

확실히 그렇게 하면 보다 접근하기 쉬울 것 같았다. 실없는 칭찬으로 그의 아이디어를 추켜세운 뒤 그의 말대로 해 보았다.

[소년(1)]

소년(1)은 종교가 없다.

[소년(2)]

소년(2)는 농구부 주장을 맡은 적이 있다.

[소녀(1)]

소녀(1)은 장래의 꿈이 없었다.

소녀(1)은 농구부에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진부로 동아리를 옮겼다.

소녀(1)은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온 뒤 심리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소녀(2)]

소녀(2)는 우울증에 걸린 적이 있다.

소녀(2)는 중학교 내내 독서부였지만 고등학교 때 문예부로 옮겼다.

소녀(2)는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지만, 실패했다.

[소녀(3)]

소녀(3)은 남몰래 소설가를 꿈꾸고 있었다.

[소년(1)과 소년(2)]

소년(1)과 소년(2)는 중학교 때 딱 한 번 싸웠지만, 곧 화해했다.

소년(1)과 소년(2)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소년(1)과 소녀(1)]

소녀(1)은 소년(1)을 좋아한다.

소년(1)과 소녀(1)은 고등학교 1학년 사진부에서 처음 만났다.

소녀(1)은 소년(1)에게 고백하려다 포기한 적이 있다.

[소년(1)과 소녀(2)]

소년(1)은 소녀(2)를 좋아한다.

[소년(1)과 소녀(3)]

소녀(3)은 소년(1)과 성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

소녀(3)은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온 뒤 소년(1)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소년(2)와 소녀(1)]

소년(2)와 소녀(1)이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때다.

소녀(1)과 소년(2)는 농구부에서 알게 되었다.

[소년(2)와 소녀(2)]

소년(2)는 소녀(2)와 키스한 적이 있고, 소년(2)의 첫 키스였다.

[소년(2)와 소녀(3)]

소녀(3)과 소년(2)가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소년(2)는 한때 소녀(3)을 좋아했었다.

[소녀(1)과 소녀(3)]

소녀(3)은 소녀(1)과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다.

소녀(1)과 소녀(3)은 어째서인지 고등학교 2학년 봄 이후 조금 어색해졌다.

[소녀(2)와 소녀(3)]

소녀(3)은 소녀(2)를 문예부로 끌어들였다.

소녀(2)와 소녀(3)은 같은 교회에 다녔다.

소녀(2)와 소녀(3)은 키스한 적이 있고, 서로에게 있어 첫 키스였다.

[소년(1)과 소년(2)와 소녀(2)]

소년(1)과 소년(2)와 소녀(2)는 셋이서 함께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소년(1)과 소녀(2)와 소녀(3)]

소년(1)과 소녀(2)는 소녀(3)의 소개로 친해지게 되었다.

[소녀(1)과 소녀(2)와 소녀(3)]

소녀(2)와 소녀(3)은 소녀(1)의 소개로 친해지게 되었다.

[소년(1)과 소년(2)와 소녀(1)과 소녀(2)와 소녀(3)]

소년(1)과 소년(2)와 소녀(2)와 소녀(1), 소녀(3)은 각각 다른 반이다.

소년(1)과 소년(2)와 소녀(1)과 소녀(2)와 소녀(3)은 단체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소녀(1)은 소년(1), 소년(2), 소녀(2), 소녀(3)중 한 명에게 살해당했다.

막상 이렇게 놓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네.

“동감이야.”

도대체 이 소년소녀들은 어떤 관계였던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사람을 다른 누군가가 좋아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끼리 키스를 하고, 섹스를 하고…. 하지만 어차피 내가 알 바 아니다. 지금 이 사람들의 관계는 나에게 있어 풀어나가야 할 퍼즐에 지나지 않다.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건 소년(2)와 소녀(1)의 첫 만남이야. 중학교 때 처음 만났고, 농구부에서 알게 되었다고 했어. 소녀(1)은 얼마 되지 않아 농구부를 그만두었고. 아마 소년(2)는 그대로 농구부에 남아 주장이 되었을 거야.”

그리고 사진부에 들어간 소녀(1)은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사진부에 들어가 소년(1)과 만난 건가. 아, 하지만 다른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맞아. 소년(2)가 농구부 주장을 맡은 시기가 언제인지는 나와 있지 않아. 중학교 때 농구부를 탈퇴하거나 주장을 차지하지 못한 채 고등학교에 올라가 주장을 차지했을 수도 있어. 고등학교에서는 경우에 따라 2학년에게 주장을 맡길 때도 있으니까.”

어느 쪽이 맞는지야 뭐, 출제자만이 알겠지. 일단 두 경우 모두 기록해 놓은 뒤 앞으로 나올 분석들에 대입해 보자고.

미래는 교무실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특별활동 부서를 정해야 한단 말을 들었을 때, 천천히 고민하다가 마음에 드는 부에 들어가면 될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녀가 늑장을 부리는 사이 그녀의 친구들은 모두 각자 원하는 부에 들어가 버렸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특별활동 마감 날짜가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농구부라니…….”

급한 김에 담임선생님께 상담을 요청하자, 갓 부임한 선생님은 뜬금없이 농구부를 추천했다. 어차피 학교에서 지원을 많이 해 주는 부는 야구부와 축구부뿐이고 농구부는 인원이 널널하게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학교에 훈련 지도를 할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기껏해야 슛 연습이나 운동장 뛰기 정도가 다일 거라면서.

미래는 여학생치곤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운동부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온몸에 알이 배기는 대참사가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부서도 들어가지 않을 순 없었다. 그녀가 망설이자 담임선생님이 친절하게 덧붙였다.

‘일단 농구부에 들어간 다음, 일주일간 조정 기간이 있으니까 그때 바꿀 수도 있잖니. 다른 부에서 농구부로 옮기고 싶다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바꿀 수 있단다.’

말이야 쉽지만, 마감 기간이 이틀 남을 때까지 인원을 다 채우지 못한 부로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고민하던 미래는 결국 체육 선생님께 신청서를 내기로 했다. 어차피 중학교 특별활동은 형식에 불과하다. 또 한 학기가 지나면 희망 학생을 대상으로 부 정원과 관계없이 부서 이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고 들었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잘못된 판단이었던 것 같다.

갑작스럽게 학교에서 농구부에도 지원을 해 주자며 합의했고, 이에 따라 전문 감독 교사가 훈련 지도를 맡게 되었다. 원래 숏 컷이었던 미래의 헤어스타일을 본 감독은 ‘운동을 하기 위한 자세가 되어 있다’며 흡족해했고, 아침과 주말 훈련까지 남자 부원들과 똑같이 받게 되었다. 고된 훈련과 남자 부원들의 텃세를 받으며 미래는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지?’라며 자기 자신에게 수도 없이 질문했지만 답을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오히려 점점 훈련에 익숙해져 가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혹시 자신에게 숨겨진 재능이 있었나 싶어 황당해했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여자 아이였던 미래는 점점 다부진 체격을 갖게 되었고, ‘선머슴’이라는 별명까지 갖게 되었다. 얼마 뒤, 그녀는 농구부 감독에게 가장 신임을 받는 학생이 되어 있었다.

본인이 뜻한 바는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농구부 부원들의 텃세는 더욱 심해졌다. 미래가 주변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자가 무슨 농구를 한다는 거야?’, ‘나중에 시집이나 가겠냐?’라며 일부러 들으라는 듯 킬킬댔다. 심지어 ‘감독한테 한 번 대 준거 아냐?’라는 상스러운 소리까지 지껄여 댔다.

하지만 미래는 못 들은 척 하면서 넘겼다. 어차피 현재로서는 부를 바꿀 기회도 없는데다가, 가만히 놔두면 언젠가 어련히 알아서 그만두겠지 하는 예상 때문이었다. 불행히도 미래의 예상은 빗나갔다. 미래가 농구부에 들어간 지 한 달이 조금 안 되었을 무렵, 농구부 부원들은 미래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기로 계획했다?

…그들의 그 계획 때문은 아니었을지라도, 결국 미래는 며칠 뒤 농구부를 그만두었다. 몇몇 부원들은 학교에서 심한 징계를 받았다.

미래는 농구부를 그만둔 뒤에도 꾸준히 운동을 하며 자신을 단련했다. 혹시라도 그 부원들이 앙심을 품고 공격해 왔을 때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하지만 그러면서도, 미래는 그날 엉망진창이 되어 쓰러져 있던 자신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준 한 소년에 대해 생각했다. 2년 뒤, 그 소년은 농구부의 주장이 되었다.

그 다음.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있어?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충 정황 예측이 가능한 게 몇 개 있어. 그걸 토대로 몇 가지 맞춰 보자고. 일단 다음 다섯 문장을 봐.”

소녀(1)은 소년(1)을 좋아한다.

소녀(3)은 소녀(1)과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다.

소녀(3)은 소년(1)과 성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

소녀(1)과 소녀(3)은 어째서인지 고등학교 2학년 봄 이후 조금 어색해졌다.

소녀(3)은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온 뒤 소년(1)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서로 관련되어 있단 거야?

“현재로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마침 살해당한 사람이 소녀(1)이잖아. 섹스까지 했을 정도면 충분히 수라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럼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온 뒤’라는 건 어떻게 해석할 수 있지? 소년(1)과 소녀(3)이 성관계를 맺고, 소녀(1)에게 들켰던 때가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간 후, 혹은 그 직전이란 건가?

“아마도. 일은 그 전에 저지르고 들킨 건 그 이후의 일일 수도 있지만, 성관계라는 게 딱히 떠들고 다닐 만큼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잖아. 그 사실이 소녀(1)의 귀에 들어갔다는 건 그 둘 중 한 사람이 쓸데없이 떠들고 다닐 정도로 생각 없는 얼간이었다는 뜻이겠지. 아니면 그 자리에서 바로 들켰거나.”

민아는 온몸을 짓누르는 무게감에 인상을 쓰며 일어났다. 하지만 그 무게의 정체를 알아낸 순간 그녀는 잠시 굳을 수밖에 없었다.

“…동욱아.”

그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대답은 없었다. 깊게 잠든 것 같았다. 황급히 자신의 온몸을 살폈다. 속옷 한 장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어젯밤에 사고를 친 게 분명했다. 정확한 경위를 기억해 내기 위해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어제 저녁에, 동욱이 민아의 집에 놀러왔었다. 그들은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놀았지만, 어디까지나 같은 무리 안에서 놀았을 뿐 두 사람끼리는 그다지 친분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차피 부모님은 주말이나 되어야 들어오실 테고, 혼자서는 쓸쓸했기 때문이었다.

멍한 표정으로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그는, 민아가 커피를 내 오자마자 곧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평소 씩씩하고 남자다웠던 그의 눈물에 그녀는 당황했다. 어깨를 토닥이며 달래자 동욱은 곧 평정을 되찾았다. 그는 새빨개진 눈으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종호와 혜진이가 서로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혜진이를 좋아하는 건 너도 알지 않느냐, 종호한테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담한 적이 있는데 이럴 수 있는 거냐, 배신감이 든다…. 하지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민아는 당혹감을 느끼며 생각에 잠겼다. 종호와 혜진이가? 그녀가 알고 있는 대로라면, 혜진이가 종호를 좋아할 리가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 마음 약한 혜진이가 어떻게….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던 민아를 향해 동욱이 멋쩍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 괜히 와서 민폐만 부리고…. 근데 너한테 이런 걸 털어놓으면 진짜 편해지는 것 같아. 너 무슨 카운슬링 같은 거에 재능 있는 거 아냐?’

너한테 이런 걸 털어놓으면 진짜 편해지는 것 같아.

그 한 마디에 그녀의 이성이 끊겼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게 무슨 짓이야…….”

민아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자신이 어젯밤 동욱에게 무슨 소리를 했는지 하나하나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멱살을 틀어쥐고는 ‘내가 쓰레기통이야? 내가 언제까지 니들 사정 들어줘야 하는데? 듣는 내 심정이 어떤지는 신경 안 쓰는 거야?’ 그녀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당황하던 동욱은, 그녀가 입술로 그의 입을 막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후의 일은 누구라도 상상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확실한 건 어젯밤 그는 그녀를 원했고, 그녀도 그를 원했다는 것. 강제적인 의지가 아니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민아, 나 왔어. 오랜만에 같이 놀러 가…….”

그리고 결국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휴일을 맞아 모처럼 민아의 집에 놀러 온 미래가 그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목격하고 만 것이다.

“민아…야?”

민아는 알고 있었다.

미래가 동욱을 얼마나 좋아하고 있었는지를. 동욱이 혜진이를 좋아한단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포기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지금, 민아는 그 마음을 배신했다.

노트에 갖가지 경우의 수를 적으며 살인 동기를 추측해 나가던 중, 갑자기 모니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공포 영화에나 나올 법한 단조로운 피아노 선율. 식사가 나왔을 때 투입구에서 울려퍼지던 소리와 똑같은 것이었다. 즉 이번이 네 번째다. 누구인지 알 도리가 없는 상대방과 나는 잠시 모니터를 보고 오기로 합의했다.

나는 무심코 모니터 화면에 눈을 가져가다가 깜짝 놀랐다. 화면에 적혀 있던 문구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른 것으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힌트를 얻기 위해 대가를 받아야 한다.

다음 숫자 중 네 개를 골라라.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다.

위와 같은 문구 아래, 1부터 28까지의 숫자가 적힌 사각 버튼이 표시되어 있었다.

“제비뽑기라도 되는 건가.”

잠시 고민하다가, 어차피 ‘대가’에 관한 실마리는 전혀 주어지지 않았단 것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일단 최대한 작은 숫자들부터 눌러 보기로 했다.

1,2,3,4를 누르고 잠시 대기했다. 그러자.

대가는 주어졌다. 새로운 힌트다.

라는 문장과 함께 동그란 버튼이 하나 표시되었다. 마찬가지로 터치해 보았다.

“…응?”

맨 처음의 화면과 같은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맨 처음 화면의 문장들 중 소년이니 소녀니 하는 문장의 개수가 늘어나 있었다. 다음 네 개가 늘어난 문장들이었다.

소녀(1)이 살해당한 날은 일요일이었다.

소녀(1)은 저녁 8시에 살해당했다.

소년(1)은 소녀(1)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년(2)와 소녀(3)은 소녀(1)이 살해당하던 날 만나서 데이트를 했다.

점점 더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가고 있군 그래.

“동감이야.”

예상대로 소녀(1)이 살해당하던 날에 대한 정보들이 등장했지만, 현재로서는 그다지 추리해 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일이 있었다.

“너는 ‘대가가 주어졌다’라는 말 이후 뭐 달라진 점이 있다고 생각해?”

솔직히 모르겠어. 이대로 끝났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28개의 숫자 중 4개를 고르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숫자를 골랐다고 했다. 그 이후 일어난 일들은 나와 마찬가지다. 화면에 새로 나타난 문자들도 모두 똑같았다.

앞으로 알아 나가야 할 요소들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지금 솔직히 좀 피곤해. 우선 자고 내일 다시 이야기하지 않겠어?

“그래야겠네.”

24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밥을 먹고 배설하는 시간 이외엔 계속 머리를 쓰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더구나 적어도 이곳에는 일주일간 머물러야 한다. 체력을 충분히 비축해 놓아야 한다.

그럼 내일 아침에 보자구. 내일은 다른 쪽에도 한 번 말을 걸어 볼 생각이니까, 만약 내가 내일 대답이 없으면 그쪽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생각해 줘.

“알았어.”

그와 헤어지고 침대 위에 누웠다. 하루 종일 두뇌를 혹사시킨 탓에 잠은 금방 쏟아졌다.

하지만.

그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하지 않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왜 이 게임의 주최자는.

하필이면 소년소녀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낸 걸까?

혹시 우리들의 어떤 행동이, 그 사람들에게 모종의 영향을 주었던 건 아닐까?

나는 대답을 구하는 대신 깊이 잠들었다.

얼마 뒤, 이틀째의 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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