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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편집자를 만난 것 같다.
글쓴이: noanswer
작성일: 12-07-15 11:20 조회: 1,717 추천: 0 비추천: 0

찰칵. 편집자는 걸쇠를 돌려 방 문을 걸어잠궜다. 예비작가는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큰 위협을 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물쇠를 잠그는 단순한 동작은 생각보다 대단한 중압감으로 다가왔다. “왜 그렇게 쳐다보시죠?” “아무,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그냥 여자랑 한 방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예비작가는 말끝을 흐렸다. 편집자는 별 생각 없이 문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약간 올라간 눈매로 작가를 쳐다보았다. “이젠 저걸 열지 않는 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할 거예요. 작가님도 나가실 수 없을 거고요.” “저는 저 자물쇠를 열고 나가면 되지 않을까요?” “이 뒤로 가고 싶으면 나를 쓰러뜨리고 가라!” 웃을 타이밍이겠지? 하고 한 박자 늦게 예비작가가 피식 웃었다. 저런 식의 말을 하면서도 표정이 변하지 않는 부분이 웃을 타이밍을 어긋나게 해서, 곧 뻘쭘한 침묵이 방을 감돌았다. 편집자는 빤히 예비작가를 쳐다보며 말했다. “작가님, 손이 쉬고 있으신대요.” “네, 네?” 느닷없는 말에 예비작가는 깜짝 놀라며 자기 손을 보고, 모니터를 보았다. 모니터에는 흰 문서 화면에 커서만 깜박이고 있었다. “방이 갖혔고, 컴퓨터가 있고, 편집자가 뒤에서 지키고 있을 때, 작가님께서 하실 일을 하셔야죠.” ‘모텔방에 갖혔고, 침대도 있고, 미녀가 함께 있는 방에서 해야 할 일은 알겠는데요.’ 편집자의 말에 예비작가는 마음속으로 대꾸했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담하지는 않았다. 했다간 성희롱으로 즉결처분 당할 것 같았기 때문에, 예비작가는 모니터를 응시하며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편집자는 조금 가벼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매몰차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아무래도 출판사 입장에서는, 작가님께서 제대로 장편을 쓰실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어하니까요. 최소한 통조림을, 아, 실례. 통조림 아시죠? 통조림을 견딜 수 있을지 정도는 확인할 필요가 있고요.” “그래서 이렇게 가둬진 건가요?” “일단 1챕터의 도전 최종 합격자시니까, 열기가 가라앉기 전에 1권이 나와준다면 홍보에도 도움이 될테고요.” “홍보구나…….” “어른이니까요.” “어른이구나…….” 편집자가 간단히 끝을 맺자 예비작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편집자는 그 모습이 불만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렸다가 말했다. “어·른이니까요.” 왠지 촉촉한 그녀의 목소리에 예비작가는 뒷목이 간질거리는 걸 느끼며 편집자를 바라보았다. 편집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그러니까 손을 놀리지 말고 열심히 움직이세요. 제가 만족할 때까지는 여기서 못 나가시는거예요. 설령 밤을 새게 되더라도 말이죠.” ‘뭔가 이상한데… 분명 보통의 대사인데 왜 이렇게 위협 이상의 동요를 느끼게 되는걸까?’ 예비작가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가 이 자리에 있게된 건 출판사에서 연 조금 특이한 공모전에서의 당선 덕분이었다. 1챕터의 도전이라는, 처음 한 챕터와 기획서만 보고 작가의 가능성을 판단하겠다는 약간 무모해보이는 공모전에 적당히 제출한 글이 덜컥 입선해버린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입선은 아니고 준입선이며, 결코 당선은 아니라는 부근이 미묘하다면 미묘한 부분이었지만. 무슨 레시핀가 하는 작품과의 경합 끝에 당선은 아니지만 이건 그럴싸하니까 한번 글을 더 쓰게 시켜보자, 같은 식으로 결정난 준입선에 대해 그의 친구는 [그거, 아차상이지 아차상]하며 키득거렸다. 아차상이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예비작가는 자신이 예비작가로서 이 방 안에 있어도 되는지가 궁금했다. 보통은 혼자서 조금 생각하다가, 용돈도 벌고 괜찮겠지, 하며 그냥 생각하기를 그만두었겠지만, 지금 그의 옆에는 편집자가 있다. “저는 예비작가로서 이 방 안에 있어도 괜찮은 걸까요?” “예비작가로서가 아니라면, 제 정절을 위협하는 강간범으로서 있어보기라도 하시겠다는 건가요?” “키보드를 던질뻔했습니다.” “무선 키보드였으면 틀림없이 던졌을 자세네요.” 예비작가는 반쯤 들고있던 키보드를 다시 책상 앞에 내려놓았고, 편집자는 침대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았다. “다리, 꼬지, 말아주세요.” 예비작가는 H라인 스커트를 입고 있는 편집자의 허벅지를 곁눈질로 쳐다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편집자가 대답했다. “벌려달라고요?” “죄송합니다. 편하실 대로 있으세요. 이불 덮어드릴까요?” 말은 그렇게 했어도 예비작가는 굳이 편집자를 위해 이불을 덮어주려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편집자도 그저 농담이었는지 꼬은 다리를 풀고서 여전히 앉은 채로 입을 열었다. “제가 아는 어떤 멍청이는, 작가를 하기 위해서는 뭔가 특별하거나 뛰어난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걔에게 작가라는 직업은 직업이라기보다는 우월함을 개념적으로 모은 무언가였던 거예요.” 편집자는 입을 다물었다가 다리와 팔을 펴서 기지개를 한 뒤, 곰곰히 생각하다가 일어나서 작은 냉장고를 열어 안에 있던 생수를 꺼내 뚜껑을 열어 그대로 마셨다. 꿀꺽꿀꺽 하는 소리가 미묘하게 야릇해서 예비작가는 본인이 새로운 페티시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 아닌가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편집자는 그런 예비작가의 고민은 아랑곳하지 않고(어차피 알 수도 없다) 생수를 탁자 위에 올려둔 뒤, 예비작가에게 말했다. “손이 쉬고 계신데요.” “얘기 하던걸 기다리고 있잖습니까!”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낸 예비작가는 그런 스스로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흠칫하며 편집자를 바라보았고, 편집자는 약간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더듬더듬 말했다. “화, 화난다고 덮치면 아, 안돼요?” 예비작가의 뇌에서 뭐가 뚝 끊어졌다. “안 그런다고요!” 물론 큰 소리로 반박하고 나서 다시 스스로에게 깜짝 놀랐지만. 편집자는 혀를 차며 말했다. “안덮치는구나.” “당신 뭐야, 진짜… 영문을 모르겠어…” “나와 계약해서 글을 써주지 않을래?” “됐다고요.” 더이상 편집자에게 말려들기 싫은 기분으로 예비작가는 글쓰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계속 상대하고 있으면, 업인지 다운인지 모를 묘한 텐션에 기절해버릴 것 만 같았다. 예비작가가 치는 키보드 소리만 모텔 방 안을 건조하게 울리는 가운데, 편집자가 말했다. “전 작가는 우월함이다,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냥 작가는 작가고, 누군가는 일생의 업으로, 누군가는 그저 아르바이트로 할 수 있는 그런 직업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태도는 편집자로서는 안좋을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말을 멈추고 혀로 입술을 훔친 다음 계속 말했다. “작가님께서 그렇게 부담스럽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어요. 우리가, 글을 써서 세계를 구하자, 이러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차피 잘 써도 책, 못 써도 책인거예요. 너무 어깨에 힘을 주시면 저로서도 그건 좀 어떨까, 곤란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니까요.” “그렇습니까….” 편집자의 말을 들으며 예비작가는 그 말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다. 조금 핀트가 어긋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어찌 보면 또 그렇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다고, 예비작가는 손을 쉬지 않으면서도 조금씩 자기 생각을 점검하고 있었다. 예비작가는 딱 한 문장만 남기고 나머지를 전부 지워버렸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있는걸까?’ 물음표 옆에서 커서가 깜박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리드미컬하게 울리는 키보드 소리에 맞춰서, 예비작가는 그 밑에 대답을 놓아보았다. ‘용돈을 벌기 위해서.’ 예비작가는 키보드에서 잠시 손을 떼었다가, 흠, 하고 숨을 내쉬며 머릿속 문장 뒤에 단어를 덧붙였다. ‘용돈을 벌기 위해서(임시)’ 예비작가는 조금 후련해진 표정으로, 다시 침대에 앉아 단정치 못한 자세로 자기 발가락을 보고 있는 편집자를 향해 말했다. “조금 감사드리겠습니다. 많이는 아니고요. 역시 프로는 다르군요. 이야기가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편집자는 예비작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빙긋 웃었다. 예비작가는 그 모습을 보며 웃는건 됐으니까 제대로 앉기나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웃는 건 됐으니까 제대로 앉기나 해주세요.” “피-” “뭘 보여주고 싶은 건데요. 아냐, 됐어요. 그냥 글 쓰겠습니다.” 편집자는 자세를 바로하며 낄낄거렸다. 예비작가도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피식 웃었고, 계속 얘기했다. “전 솔직히 편집자님 말씀이 완전히 납득이 가는건 아닌데요, 그래도 무슨 말씀인지는 알았고, 어느정도는 공감하기도 합니다. 나머지는, 글쎄요, 제가 알아서 찾아볼게요. 글을 쓰는 이유같은 거.” 편집자는 예비작가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작가 티가 좀 나시네요. 그 전까지는 그냥 고등학생이었는데.” “지금도 그냥 고등학생이죠.” “슈퍼 멋있어요.” “슈퍼 멋있는 고등학생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거기다 작가시고요. 손이 놀고 있지만.” 예비작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키보드를 두들이기 시작했다. 잘 손질된 타악기같은 음색에 편집자는 약간 나른한 기분이 되었다. 잠시 예비작가의 등을 보며 갈등하던 그녀는 이윽고 결심한 듯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작가님, 저는 작가님을 믿고 좀 잘테니까 힘내주세요.” “자지 마!” 예비작가는 씩씩거리며 또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편집자는 눈을 반쯤 감은 채로 말했다. “하지만, 작가님의 손놀림이 너무 기분 좋아서…” “키보드를 치고 있었습니다!” “네, 그 소리가 너무 기분 좋아서…….” “당신 대체 무슨 페티시냐고! 키보드 타이핑 사운드 페티시야?” “아, 더 견딜 수가 없어요……!” 편집자가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풀썩 쓰러지자, 예비작가가 절규하듯 외쳤다. “완전 이상하잖습니까! 베테랑이잖아요! 프로 의식을 가지고 깨어있으세요! 통조림이 원래 작가 가둬놓고 옆에서 편집자가 자는건 아니지 않아요? 잘 모르지만! 나 지금 안에서 문 열면 되니까 갖힌 것도 아니잖아!” 편집자가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야, 저도 통조림이 뭔지 잘 몰라요…… 입사한 지 일주일 됐거든요……” “노비스 편집자네!” “예, 그래서 평소부터 작가님들께 시켜보고 싶었던 통조림을……” “그냥 그 뿐이냐고요! 나한텐 그럴싸하게 말해놨잖아!” 예비작가가 치밀어오르는 배신감에 휩싸이며 소리를 질렀지만 편집자는 아예 들리지도 않는듯 눈을 감았다. “하지만 취업 기념으로 불지옥 디아블로 잡으러 며칠을 샌 바람에 이제 더는 못 버티겠어요……” “게다가 결국 자는 건 게임 때문이야!” 편집자가 마지막 힘을 짜내어서 말했다. “부디…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그런… 멋진 글을… 완성시켜… 주세요!” “유언처럼 말씀하지 말아주세요.” 유언처럼 말을 마치고 침대에 얼굴을 박은 편집자를 보며, 예비작가는 들려줄 사람이 없는 혼잣말을 쓸쓸하게 했다. 예비작가는 한숨을 푹 쉬고, 편집자를 보던 눈을 모니터로 돌렸다. 아무래도 자신은, 이상한 편집자를 만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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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집자는 픽션입니다

그리고 아차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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