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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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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너의 꿈은 나의 월요일.
글쓴이: 아스타르트
작성일: 12-07-13 14:50 조회: 2,450 추천: 0 비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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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에 잠이 드는 학생의 마음은 어떨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 식탁에 오르기 직전의 닭 ? 도마 위의 생선 ? 조금 과장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것들 전부를 합친 공포를 뛰어 넘는다고 확신 한다.
“오빠, 일어나 !”
“어어억….”
“죽는 소리 말고 일어나라고 !”
휙 하고, 늦봄인데도 더위를 무릅쓰고 머리끝까지 덮었던 솜이불이 기세 좋게 잡아당겨졌다. 월요일 아침인데도 참 기운 좋다고 생각했다. 다만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 한 문장을 생각해 내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진짜 안되겠다. 병원 갔다 왔어 ?”
“흐어억….”
나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동생이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고개도 가로로 저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오늘 가려고 했다고….
흐려졌던 시야에 곧 동생의 얼굴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386세대 때 쓰이던 메모리 크기 2MB의 컴퓨터 부팅이 이러할까. 아니 이것 보단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겠지. 천천히 뿌옇던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하며 혈육의 얼굴이 보인다.
그러니깐 음…. 너…. 이름이….
“성아야. 안녕…. 억.”
목에 추라도 달아 놓은 듯 목소리가 축 처지고 기운이 없다.
“자, 빨리 일어나. 지각 하겠다.”
“준비…. 끝났어 ?”
오늘은 월요일이니깐.분명 웨이브를 넣은 풍성한 트윈 테일을 하고 있다. 머리 세팅에만 2시간 반을 잡아먹는 괴물 같은 헤어스타일이다. 게다가 요일을 정해 놓고 바뀌는 헤어스타일이라니. 정성을 들이는 것에도 한계가 있지.
“당연히 끝났지. 옷 갈아입고 나와 ? 밥은 해놨으니깐.”
대회를 한 달 앞둔 동아리 학생도 너보단 게으를 거라고. 으름장을 놓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기운이 없어 포기했다. 만사가 귀찮다는 것은 이런 것을 놓고 하는 말이리라.
“자, 오늘도 월요일 아침 7시에는 오빠가 좋아하는 고기라고, 고기. 빨리 나와 ~”
“고기….”
사람이란 게 참 간사하고도 신기하다. 그렇게 움직이기 싫었던 몸과 정신이 그 한 단어에 움직이게 된다.
고기. 이 얼마나 아름다운 울림인가.
“안 나오면 내가 다 먹는다 ?”
다 먹으면 혼난다.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달팽이가 최선을 다해 경주를 하듯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들이 본다면 2배 느리게 틀어놓은 비디오 같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내 최선이다.
눈을 뜨고 탁자 앞에 앉는데 까지 40분. 평소의 월요일 아침에 비하면 거의 거북이와 스포츠카 정도의 차이가 있다. 평소에는 시간 단위로 계산해야 되니깐. 한 시간 반, 두 시간. 때로는 세 시간까지. 최근에는 동생이 고기 요법을 쓰기 시작해서 시간이 많이 단축 되고는 있다. 정신이 완전히 돌아오기까지는 시간 단위가 필요하지만….

1)


“뛰어 !”
“천천히 가….”
“내가 그만 먹으라고 했지 !”
어찌 고기를 남길 수 있겠냐. 그러느니 지각이나 결석을 하고 말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등굣길을 달리고 있다. 주변에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드물게 있지만 다들 하나 같이 달리고 있다. 모두들 얼굴에는 절박함이 턱 밑에는 숨이 차올라 있는 듯 했다. 그건 나와 동생도 마찬가지였지만….
“나 더 이상 지각 못 한다고오 ! 오빠 달려 빨리 !”
나는 나의 체격, 신장, 외모까지 모두 평균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다만 월요일의 체력은 평소에 절반 이하. 그런 나에게 월요일 아침, 잠에서 깬지 2시간도 채 안된 지금 이 시점에서 달리라고 하는 건. 가혹하다 못해 잔인하다. 너 지금 네가 뭔 짓을 하고 있는지 아는 거냐. 이건 살인 미수야….
“나, 날 버리고 가라.”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은 골라지지 않는다. 솟듯이 가픈 숨이 오히려 차오른 숨을 더 몰아쉬게 만들고 있다. 여기서 더 뛰다간 산소가 뇌에 지나치게 공급되어 분명 쓰러진다. 그렇기에 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동생에게 강요하고 말았다.
“유 성아. 너는 할 만큼 했어. 그리고 이 오빠도. 할 만큼 했다. 난 여기까지야. 자 여기.”
주머니를 뒤져 대충 잡히는 것을 쥐었다.
성아의 손목을 잡아, 쥐고 있는 것을 내밀었다. 성아는 어리둥절하면서도 내가 내미는 것을 받았다. 백옥색의 그 부드러운 손으로. 이것이 그녀와 나의 마지막이 된다고 생각하니, 그 백옥색의 손에 지금까지 묻혀온 물이 나를 죄책감으로 인도했다. 미안하다. 다음 생애에도 네가 나의 동생이라면 설거지는 반드시 내가 할게….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이걸 나라고 생각하고 가져가….”
“집 열쇠는 나도 있거든 !!!”
“칫, 동전을 줄걸 그랬다.”
손에 잡히는 감촉은 열쇠의 그것이었는데, 맞았나 보다. 그것도 하필 집 열쇠. 쳇, 동전이 좀 더 그럴싸했나.
“영화 찍지 말고, 빨리 달려 오빠.”
“힘들어 죽겠다고 ! 나 무시하고 가라고 쫌 !”
동생의 장점은 오빠를 부쩍 챙긴다는 것.
그리고 동생의 단점은 오빠를 부쩍 챙긴다는 것.
“괜찮아. 사람은 이런 걸로 죽지 않아.”
“난 죽는다고….”
진짜로 누군가의 암살 기도를 받고 쓰는 캐치프레이즈라면 포인트가 정확하다 박수를 쳐주고 싶은 동생의 천진한 말에 나는 몽롱해오는 정신을 달랠 길이 없었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은 아무래도 쉬이 가라앉지 못할 것 같았다. 손목을 잡아 이끄는 동생의 그 은근한 악력을 뿌리칠 힘도 나에게는 없었다. 질질질. 엄마 손을 붙잡고 끌려가는 아이처럼 나는 억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방과 후에 봐.”
경쾌하게 성아는 손을 흔들며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타고 사라졌다. 지각은 면하지 못했다. 다만 나의 특이함 덕분에 플러스마이너스 10분 까지는 용서가 가능하다는 판결을 내려 준 학생 주임 선생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릴 뿐이다. 동반 1인 지각 면제라는, 할인권에나 쓰여 있을 법한 자비로움에 정말 감사를 드린다.
그러니깐 너도 뛸 필요가 없었다고…. 아침부터 체력 소모가 너무 심하잖아.
교실은 안타깝게도 3층의 제일 구석에 있다. 월요일이 아닌 주중에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지만, 오늘, 그러니깐 월요일에는 계단을 한 계단 오르는 것으로 지옥의 문이 열리는 것 같다.
“내가, 학생회장, 이, 되면, 반드시, 엘리베이터를, 설치, 할, 테다.”
월요일에만 작동하는 놈으로다가.
거친 호흡은, 이미 아침의 그 난리 중 소모된 체력 탓에, 턱을 지나 두성처럼 뇌를 한 바퀴 돌아 나오기 시작했다. 한 계단, 한 계단이 죽을 것 같다.
성아야. 기왕 이끌어 주는 거 날 교실 앞까지 데려가 줬으면 종 좋았겠니.
“다, 다 왔다.”
3층. 오늘 아침도 지옥의 문은 무사히 닫혔다. 또 다시 열린 것이 천국의 문이 아니라 또 다른 지옥으로 통하는 일방통행이라는 것에 절망했지만.
교실은 이미 조례가 시작되고 있었다. 지각은 아무래도 나 혼자 뿐인 것 같다. 몰래 들어갈 방법 따위 없어 보인다. 당당히 들어가자.
아주 조금씩 뒷문을 밀어본다. 행여나 지면과 문이 마찰로 인한 ‘드르륵.’ 하는 소리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지만, 좀 비굴해 보인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또 하나의 단점은.
“유 진아. 빨리 들어와 앉아.”
문이 움직인다는 거 ?
느닷없이 움직이는 문조차 감지 못할 바보 같은 선생은 아니었다. 나는 내 머릿속 담임의 데이터를 수정해야만 했다. 20대 중반의 인기 많은 여선생에서 20대 중반 민감하게 인기 많은 여선생으로.
“안녕하세요. 날씨가 좋군요.”
외국인이 ‘한국에 가면 이런 말을 해봅시다.’ 교재의 예문 1번을 듣고 반복하는 것 같은 어색한 말투에 담임은 약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정체불명의 ‘월요일 증후군’은 아직도 고칠 방도를 못 찾은거냐 ?”
와하하. 하고. 나만 빼고 교실의 아이들이 웃었다. 그래도 다행히 다들 비웃는다는 느낌은 아니다. 그저 순수하게 담임의 말이 재미있을 뿐이겠지. 그렇다고 믿고 싶다.
“하, 하하.”
그리고 나도 자리로 들어가 앉으며 어색하게나마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체질을 가진 나를 원망하기보다, 그저 조금 더 일찍 왔다면 지각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하고 안타까워했을 뿐이다.
“자, 오늘 조례는 이걸로 끝. 반장은 잠시 나 좀 보자.”
반듯하게 빗어 넘긴 올백 머리, 여선생의 상징인 검은 뿔테 안경에 길게 말 꼬리처럼 묶어 놓은 포니테일이 지나치게 잘 어울리는 우리 담임. 그녀는 그래도 나를 이해해주는 편이다.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지각하는 날도 없고, 기본 속성이 모범생인 나였기에 월요일에 한해서는 나의 행동에 자비를 두고 보는 편이고.
담임과 그 뒤를 따라 반장이 나가자, 순식간에 교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1교시까지 10분의 쉬는 시간은 ‘어제 그거 봤어 ?’ 라는 흔하디흔한 소재로 대화를 나누기에 충분하다.
“어제 그거 봤냐 ?!”
이거 보라. 이런 개성 없는 친구를 봤나.
“난 일요일엔 저녁에 아무것도 못 본다고 개학하고 벌써 40번은 얘기한 것 같은데.”
“아차. 그랬지.”
과장된 행동으로 머리를 탁 친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자기 자리도 아닌 나의 앞자리에 앉아 몸을 돌려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미안, 미안. 자. 사과의 의미로 이거.”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가 되게 반접은 종이를 내미는 놈의 손을 그냥 쳐다만 보았다. 이게 뭐냐 ? 언제나처럼 지저분한 의미로 건네주는 것 같긴 한데 매번 새롭다보니 이젠 좀 패턴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내 전화 번호. 동생 분한테 꼭 좀 전해주….”
“네가 내 매제가 될 바에야 내 동생을 철저히 독신주의로 살게 주입식 교육을 시키겠다.”
“아니, 그러지 말고….”
시답잖은 사담이 오간다. 정신이 비교적 멀쩡히 돌아 올 시간이라 이젠 슬슬 말꼬리도 잡고 싶어진다. 특히 이 녀석과 함께하는 대화라면.
“주화야 !”
“오, 아 잠시만. 얘기 좀 하고 올게.”
천연덕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난 주화는 자신을 부른 3명의 여학생으로 이루어진 그룹에 아주 자연스럽게 끼어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니깐 김주화 저 녀석의 성격은 저렇다. 어느 그룹에나 쉽게 끼어서 대화를 나누고, 거의 모든 주제로 사담을 할 수 있는 남자. 그 능력은 70대 할아버지 할머니로 이루어진 그룹에도 감쪽같이 녹아들 수 있음으로써 입증 되었다. 비교적 키도 훤칠하고 외모도 잘나서 특히나 여학생으로 이뤄진 그룹에 인기가 많다.
“정신 사나워….”
다소 가벼운 남자라 입학하고 벌써 2년이 지나도록 함께 지냈지만 내가 일요일 저녁 8시에 잠자리에 든다는 사실을 기억 못한다. 아니 사실 주화의 뇌는 남자의 데이터를 담는 것을 거부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자, 오늘도 등교 수고했어.”
“음 ? 아 땡큐.”
시야에 갑자기 들어온 캔을 받는다. ‘바다를 그대로 담은 맛.’ 이라는 미묘한 센스의 음료수 캔을 내밀 사람은 적어도 이 반에서는 한명 뿐이다.
“또, 이런 애매한 음료수를…. 센스도 참 지독하다.”
“어머, 그럼 내놔.”
“일단 준거니, 마셔는 보겠는데….”
탁, 하고. 여는 순간 밀려드는 바다의 깊은 향기가 콧속으로 밀려들었다. 마치 밀물과 썰물의 때를 놓쳐 뻘 한 복판에 놓인 뒤집어진 쪽배 위에 올라와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깐.
“야, 이거 너무 짠 냄새가 …!”
엄청 짠 냄새가 밀려온다고.
혹시 맛은 맛있나 싶어 혀를 살짝 대봤지만, 곰소 염전에서 그대로 공수해온 것 같은 진한 짠 맛이 혀끝을 자극했다. 이거 한 모금이면 일주일치 권장 나트륨은 충분히 만족시킬 것 같은 짠 맛이다.
캔을 그대로 다시 그녀에게 내밀었다.
“은영아…. 제발 이런 건 좀 마셔보고 줄래 ?”
“흐음…. 들켰네. 이번에도 주화나 줘볼까.”
“그만둬, 주화는 한 모금 크게 들이키고 양호실로 직행할 놈이야.”
허은영. 키도 평균이고 안경을 써서 그런지 외모도 튀지 않고 전체적인 외형은 수수하지만, 이래 뵈도 한국 음료수계를 평정하고 있는 대한 샤롯 기업의 회장 딸이다. 뭐, 엄청 대단한 기업이라는 거 말고는 제대로 알진 못하지만, 그런 기업 회장의 딸 치고는 상당히 수수하다. 수수하다 못해 좀 궁상맞을 때도 있다. 지금같이 따 버린 음료수는 어떻게 해서든 마시려고 하니깐. 하지만 내가 못 마시고 줘버린 음료수 같은 경우는 자기도 절대 못 마시니 주화에게 줘버리곤 한다.
“테스터 많은데 왜 날 가지고 실험하는 거냐고. 테스트 비도 안 주면서.”
“원하면 주고 ?”
그러나 가끔 튀어나오는 저 부티 나는 발언들은 그녀가 티는 안내도 부자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돈 따위 얼마든지 줄 수 있다는 저 여유 있는 표정. 부자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하긴 회장 딸이니 저런 테스트도 거치지 않은 신기한 음료수를 매번 가져오는 거겠지만.
“절대로 발매 하지마. 백프로 망한다. 요리 재료용이면 몰라.”
“…오호. 재료라.”
안경 너머로 둥근 눈이 음흉하게 반짝인다. 내 말이 힌트가 됐나 모르겠다. 아무래도 빠른 시일 내로 조미료계에 혁명적인 바다 맛 소스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힌트 고마워. 자 이건 선물.”
“아니, 이건 못 마시는 거….”
나의 목소리가 종소리에 묻힌다. 은영은 바다 맛 음료수를 나에게 넘기고, 가볍게 손을 흔들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멀리 주화도 어느새 3번째 자리를 옮긴 그룹에서 멀어져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도 월요일의 시작은 비교적 평범했다.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순 없다.
오늘은 월요일이니깐.


☆★○●


“자, 아~ 해봐.”
혀를 눌러 목구멍을 살핀다. 약간 몰려드는 구역감에, 언젠가 보았던 콧구멍을 벌리면 혀를 눌렀을 때 오는 구역감이 사라진다는 정보를 상기하고는 웃기지만 콧구멍을 크게 벌렸다.
“추하니깐 콧구멍 닫어.”
“엑.”
“목은 크게 안 부었고….”
혀를 누르던 막대를 빼고, 차트에 무엇인가를 적기 시작했다. 짧은 하이웨스트 스커트를 입고 다리를 꼬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언젠가 이렇게 얘기했더니.
‘내가 매력 있는 게 왜 위험 한거지 ?’ 라고 대답해서 이쪽이 더 곤란했던 기억이….
“약은 먹고 있지 ?”
“저기 의사 누나. 주현 누나. 그 약 말인데요….”
“안 먹고 있다…. 뭐 이렇게 얘기하진 않을 거라 믿어.”
알이 없어 도수도 없는 뿔테 안경 너머로 찌릿하고 노려보는 누나의 눈빛에 나는 주눅이 들었다. 항상 이런 식이다. 뱀 앞의 개구리처럼 나는 그녀의 앞에선 어떤 힘도 내질 못한다. 잡아먹힐 것 같은 느낌. 식은땀이 척추를 타고 흐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하, 하하. 잘 먹고 있습니다요. 물론이죠. 한 번도 쓰레기통에 버렸다거나 하지 않았어요.”
“그래야지. 만약 내가 정성을 들여 조제한 약을 버렸다면….”
누나의 말을 끝으로 한동안 진찰실에는 그녀의 펜이 종이에 스치는 소리만이 들렸다. 슥슥. 침묵이 계속 유지된다.
버렸다면 ?! 버렸다면 뭔데요 ?!
“말을 끊으니깐 더 무서운데요….”
젊은 나이에 엘리트 코스를 그대로 밟았는지 작지만 개인 병동을 가진 그녀는 확실히 환자를 보는 것에 있어서는 일류 의사와 다름없다. 다만 그 성격이 문제시 될 때는 있지만. 지금처럼 환자를 협박 비슷한 것으로 겁 줄 때도 있고. 나에게만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또, 지금처럼 다른 사람 말도 잘 안 듣고, 본인이 하고 싶은 얘기만 할 때가 많다. 대화의 주체는 나 자신이라고. 그녀의 모토상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상당한 에로사항이 꽃필 것 같다.
“내가 알려줬다시피. 매일이 똑같아. 신체 리듬부터 맥박, 심장 고동, 혈류량, 뇌파까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다 똑같아.”
“그 말씀은….”
“이럴 땐 해부가 최고긴 한데….”
“나가봐도 되나요 ?!”
“일단 마취를….”
심각하게, 볼펜을 가지고 내 몸을 도화지 삼아 이곳저곳 허공에다 긋기 시작하는데, 공포 영화 3편을 한 곳에 묶은 듯 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보험 들어 놓을 걸 그랬어….”
엉엉 하고, 울먹임이 섞인 목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허공에 내 폐 위치 쯤 동그라미를 치고 있는 그녀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실제로 눈물이 찔끔 나왔다.
“뭐, 농담이고.”
“진지하게 목소리 깔면서 농담 하지 마시라구요….”
“지금이 5시니깐.”
“사람이 말하면 듣구요….”
진찰실 한 켠에 걸린 시계를 한번 흘끗 본 주현 누나는 이내 차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의 병과 같은 이 현상에 대해 가장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사람이다. 어느덧 그녀의 눈이 진지해졌다.
하지만.
“그럼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오도록 해.”
실망한 목소리가 그대로 나에게 전달된다. 나의 이 병과 같은 증상을 고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실망. 벌써 2년이 넘게 지켜봐왔지만 고칠 방도가 보이지 않는 다는 것에 대한 실망. 그녀는 지금 스스로의 무능함에 실망하고 있는지 모른다.


‘월요일 증후군.’
먼데이 신드롬이라고 한다면 훨씬 병명처럼 보일까. 나는 벌써 몇 년 째, 의학계에서 보고 된 적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월요일에 대한 거부 반응을 내고 있다. 아무리 일요일에 일찍 자도, 자정 12시. 월요일로 바뀐 순간 몸 전체에서 거부 반응이 일어난다.
움직임의 저하, 항상 수면에 빠진 것 같은 상태, 종처럼 현실로 돌아오지 않는 정신. 잠에서 현실로의 각성 시간이 매우 길다. 남들의 수십 배. 그것도 최근 들어 괜찮아져서 3시간이다. 고칠 방도가 없다고. 대학 병원에서 내린 진단은 그러했다. ‘월요일만 참으면 되니깐….’ 같은 무책임한 대학 병원의 대응에 실망하고는 주현 누나의 개인 병원으로 옮겨 왔다.
결과는 괜찮았다. 식이 요법, 면담, 약물 치료를 병행한 끝에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월요일에 견딜 수 있게 되었다. 모두 주현 누나 덕분이다.


“다음 주에 뵐게요.”
인사를 하고, 진찰실을 벗어난다. 주현 누나가 가볍게 손을 들어 내 인사를 받아 주었지만, 나의 차트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 조용히 문을 닫았다.
역시, 좋은 사람이다. 가끔 농담이 무섭지만.
병원을 나선다. 약은 이미 집에 차이고 넘친다. 이대로 곧장 집으로 가서 혹시 모를 증후군에 대비하도록 하자.
“날씨는 좋구나….”
하늘엔 군데군데 뭉게구름도 떠 있고, 선선한 늦봄 바람에 섞여 있는 청정함은 이 신드롬으로 우울해져 있던 내 기분을 조금은 진정시켜 주었다. 그것도 잠시였지만.
집으로 향하는 마지막 육교를 건넌다. 아래로 스쳐 지나가는 차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시속 60km 제한의 좁은 4차선 도로를 속도 제한의 한계까지 맞춰 달리고 있는 듯 했다. 마치 나 혼자서 느긋함에 취해 있는 듯 했다.
‘그렇게 바쁘면 어제 가지 그랬냐.’
시답지 않은 망상 탓일까.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조금씩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단순히 내가 가진 정체불명의 병 탓인 것은 알고 있지만, 누구 탓이라도 하지 않으면 다시금 기분이 가라앉을 것 같았기 때문에. 기껏 진정되었던 기분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그녀를 만난다.
그녀를 만난다. 나는. 그곳에서.
아니, 이미 그곳에서 만났다.


“그래서, 후회 하니 ?”
환청이. 아니,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환청인가 ? 조금 메아리치듯이 들리긴 하지만, 환청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목소리다. 이것은 분명 목소리. 공기를 타고 귀에 스며든다.
“아니, 별로 후회하진 않는데.”
증후군 탓인가. 정신이 몽롱해진다. 마치 꿈같다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걷고 있던….
아니…?
내가 지금 육교를 건너고 있었나 ?
집에서 자고 있지는 않았나 ?
혹시 학교 인가 ?
아니면 아직 병원 인가 ?
모르겠다. 어째서 ? 방금까지 나는 걷고 있었는데. 지금 이 감각은 뭐지 ?
“자, 오래 생각 하지마. 아직은 받아들이기 힘들 거야.”
검은색, 재질을 알 수 없는 검은 실타래들이 온 몸을 휘감는다. 발끝부터 차근차근히 촘촘히 휘감아 온다. 그리고 천천히, 몸이 부상한다. 누군가가 잡아당기듯이 양팔과 다리를 벌리게 하면서, 공중으로 떠오른다.
시야가 떠오르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탓인가.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보인다. 나의 시야의 끝에 그녀가 걸려 있다. 나의 바로 아래에서 고개를 올려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안녕…?”
그녀의 두 눈은 초점이 흐릿했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지만,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배경과 같은 짙은 검은색의 머리칼. 하지만 어딘가 빛을 머금고 있는 듯해서 찰랑 거리는 것 같다.
무엇보다. 아름답다. 외모가, 그리고 그 어두운 분위기가.
어둡고 고고한 그녀의 입이 열린다. 침묵만이 내려앉아 있는 어두운 공간에 그녀의 부드러워 보이는 입술이 열린다.
“증후군은… 즐거워 ?”
“그럴 리가. 전혀 즐겁지 않아. 괴로워. 힘들어.”
그 병을 즐겁다고 표현할 수 없다. 장난으로라도 농담으로라도 절대. 지난 수년간 그 병 때문에 나는, 나의 인생은 남들에 비해 지나치게 쓸데없이 소비 당했다. 일요일과 월요일을 잃었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더 짧은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런 생각을 했다.
“즐거워 해….”
검은 실타래가 입을 양 옆으로 잡아당긴다. 누군가 본다면 억지로라도 웃고 있는 표정이겠지. 저항하려고 했지만, 쓸모없는 노력이었다. 억지로 당겨진 입은 마치, 내가 나의 증후군에 기뻐하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싫다. 그것이 너무 싫다.
“너 느그야.”
발음이 샌다. 볼이 양 옆으로 당겨져 있기 때문에. 하지만 꼭 물어봐야겠다. 넌 누구인지. 나의 증후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려는 너는 누구인지.
“여기는 나의 꿈. 너를 잠시 초대했어.”
몸을 감싸던, 볼을 당기던 실타래가 사라졌다. 표정이 돌아오고, 억지로 잡아 올렸던 감각도 사라진다. 팔과 다리가 자유롭게 움직인다. 나는 손목을 돌려 살짝 당기는 듯한 감각을 지우려고 했다.
“난 곧 너의 앞에 나타날 거야. 기다려. 내가 누군지. 그때가면 알 수 있으니깐.”
초점이 흐려져 있던 눈동자가 아주 잠깐, 나를 정확히 쳐다보았다. 흩어져 있던 동공이 자리 잡고, 나의 눈과 정확히 마주쳤다.
그 짙은 검정색의 동공은 왜일까. 나를 끌어당기는 듯 했다.


“하… ?!”
헛바람이 폐를 한 바퀴 휘감아 돌아 나온다. 잠시 멍하니 서 있었나 보다. 육교 위에서 바보 같이 멍 때리다니. 아무리 증후군 때문이라지만 사람 자체가 한심해 보인다.
“빨리 집에 가봐야지.”
더 밖에 있다간 월요일에 잡아먹힐 것 같다. 쓰러지더라도 집에서….
찰랑. 하고, 육교 위. 바로 옆을 스치듯 지나쳐 가는 여자에게서 어쩐지 익숙함을 느꼈다. 바로 방금까지 대화를 나눴던 것처럼.
고개를 돌려 혹시 아는 사람인가 하고 확인하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마치 꿈인 것 같았다.


☆★○●


“안녕, 실례하고 있어.”
“너, 너, 어.”
어버버- 하고. 목에 걸린 말은 채 언어가 되지 못하고 신음 소리가 되고 말았다. 턱 끝까지 차오른 그 대사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입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오빠. 병원 갔다 왔어 ?”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요리를 하던 성아가 이제 막 집으로 들어선 나를 향해 다가왔다. 가정적인 그녀의 분위기에 절로 평소처럼 오늘 저녁은 뭐냐고 물어볼 뻔 했지만.
“쟤, 쟤, 쟤는 뭐야 ?”
“응 ? 오빠 친구 아냐 ?”
내 동생은 너무도 순진했다. 나의 친구라는 말이면 돈이라도 수 십 만원 꿔 줄지도 모른다. 이런 걸 가르쳐주지 않으면 내 동생은 아무 의심 없이 사기에 걸리고 마는 순진한 아이였단 말인가…. 미약하게 현기증이 덮쳤다.
그 진짜로 일어나는 것 같은 현기증에 이마를 매만지며 말했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
식탁에 앉아 구석에 방치해둔 귤을 자연스럽게 까먹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 가족이라도 된 양 매우 자연스러웠다. 참고로 그 귤 사오고 나서 나도 아직 하나도 못 먹었다 이것아.
“오랜만이네 ?”
“20분도 안됐는데 오랜만은 무슨.”
“그건 상대적인 거야. 5분 만에 봐도 오랜만이라고 반갑다고 말할 수 있고, 1년 만에 봐도 오랜만이 아닌 것 같을 수도 있는 거라고. 넌 일반 상식에 갇혀 사는 구나 ?”
아까 육교 위에서 잠시 꿨던 꿈에서도 그랬지만. 이 여자는.
“여긴 왜 왔어.”
“말했잖아. 곧 너의 앞에 나타날 거라고.”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다. 그리고 좀 밉상이다.
“일단 앉아. 가볍게 얘기를 나눠 보고 싶은데. 괜찮지 ?”
초점이 없는 그 눈동자에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그녀와 마주보게 식탁 의자에 앉았다. 그녀가 어딜 보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두렵다. 그녀는 나와 대화하면서도 나를 보고 있지 않다. 단순히 이러한 사실의 나열인데도 그것이 실체를 가지니 두려움이 일었다.
“동생 양. 커피 한잔 부탁해도 될까 ?”
거짓말로 남의 집에 침투해서는, 집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고, 아직 나도 먹어 보지도 못한 귤을 까먹으면서, 이젠 커피까지 부탁하고 있다. 성아는 당황하면서도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무래도 진짜로 커피를 내올 생각인가 보다.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그녀의 머리카락은 바닥에 닿고 있었다. 분명 일어선다면 그 머리카락은 발뒤꿈치 정도에 머물 정도로 길겠지. 그 기나 긴 생머리는 그녀의 어두운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었다. 검고 찰랑거리는 흑발. 짙고 초점이 흐린 동공. 붉은색에 가까운 입술에, 그녀의 외모는 확실히 모나지 않아 아름다웠다.
“우선 간단히 얘기하자면….”
성아가 커피를 내오기도 전에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하려 했다. 차분히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나는 그녀가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것을 일단 막았다. 가볍게.
“일단 간단하게 통성명부터 하자. 난 유 진아야. 고양 고등학교 2학년 11반. 특기도 취미도 월요일 증후군 때문에 모두 버렸어.”
월요일 증후군이 빼앗아 간 것은 다만 시간만이 아니었다. 취미도, 특기도 모두 빼앗아갔다. 컴퓨터를 새로이 포맷해버리듯, 월요일 증후군은 내 특기와 취미를 매번 포맷했다. 다시 쌓아 올리고, 쌓아 올려도 일주일 뒤면 내가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바뀌었다. 그래서 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내 가로채듯 건네는 통성명에 그녀는 약간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의 소개를 했다.
“…좋아. 나는 가은. 서 가은. 고등학교는 자퇴했고, 지금은…. 그래 신드롬 서포터 중 한명이야.”
“신드롬 서포터 ?”
낯선 단어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혹시 외국에는 그러한 직업이 있는가 생각해 봤지만, 아무리 입으로 굴려 보아도 낯선 어감이다.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내가 신드롬 환자 중 한명이기 때문일까.
“네가 잃었던 것들.”
탁, 하고 성아는 내온 커피를 탁자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 그 막 내온 커피를 가은은 말을 하며 입에다 가져다 대었다. 작게 한 모금. 꿀꺽하고 커피가 그녀의 목을 타고 내렸다.
“모두 다시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 할래 ?”
커피가 가은의 손을 떠난다.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그녀는 그녀의 말을 마무리 지었다. 단지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내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다시 되찾는다 ? 무슨 수로 ?
“그건….”
나의 입이 열렸지만, 곧바로 가은의 입이 다시 열렸다. 절묘하게 나의 고민을 끊어버린다.
“자, 뭐 지금 바로 대답해 달라거나 깊게 고민하란 뜻은 아니야. 만약 그런 수단이 생기면 어떻게 하겠냐 이거지. 물론 네가 다시 되 찾겠다 해서 무조건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희망 고문인거지.”
그녀는 초점이 빗나간 눈으로 이곳을 쳐다보며 해맑게 웃었다. 그 해맑은 웃음마저 밉상으로 보인 것은 그 말의 내용이 너무나도 얄미웠기 때문이겠지.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야.”
“너의 대답을 들을 때까지.”
“저기 있잖아….”
물론, 내가 앓고 있는 월요일 증후군이 특이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학계에도 보고된 적도 없고, 애초에 이것을 병으로 분류해야 할지도 의문이다. 그저 ‘아 또 월요일, 학교-아니면 회사-에 가야 되네. 귀찮아.’ 이 정도의 감각도 월요일 증후군으로 치고는 하는데, 나는 인정하긴 싫지만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한 몸에까지 이상이 오는 정도일 뿐이다. 취미와 특기가 포맷 ? 그건 그저 내가 하기 싫어진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은 본래 변덕이 죽 끓듯 하니깐. 이렇게 갑자기 찾아와서 내가 이 증후군으로 잃었던 것을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해도 기쁘게 ‘와 ! 그럼 기꺼이 그렇게 할게.’ 라곤 할 수 없는 거다. 그것도 만난 지 20분도 안 되는 여자와.
“오빠, 밥 다 된 거 같은데….”
부엌에서 나와 가은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은 성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벽을 살포시 부여잡고 걱정하듯 쳐다보는 성아에게 알았다고 말해주고는 가은을 쳐다봤다. 성아의 커피가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홀짝 거리고 있다.
정말 밉상이다.
“가은이라고 했지 ? 줄 건 없고, 저녁이라도 먹고 가.”
“흐음. 그게 너의 대답 ?”
“먹고 사라지라고.”
“후회 할 텐데.”
“후회하는 건 나야. 네가 아니라.”
후후- 하고 낮게 깔린 웃음소리가 들리고, 가은은 품에서 꺼낸 유성 매직의 뚜껑을 따더니, 망설이지 않고.
“자, 이건 내 번호야.”
탁자 위에 그대로 11자리로 이루어진 숫자를 적었다. 휴대 전화라는 문명의 이기를 잘 사용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면 그녀에게 너무 실례일까. 분위기상 전자기기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실례는 아니겠지.
아니 그게 아니라. 얘가 왜이래.
“여기다 왜 적어 !”
“넓잖아.”
“넓어서 적은 거면 땅 바닥에다 적지 그랬냐.”
“그럴까 싶었는데 몸 숙이기가 귀찮아.”
“이…!”
이상하다. 만난 지는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 여자.
“너 진짜 짜증난다.”
“오 ? 나는 네가 좀 좋아지려고 하는데 ?”
정말로 대사 하나하나가 주옥같이 밉상이다.
아주 주옥 같이.
“밥 꼭 먹고 가라잉.”
꽉 깨문 이 사이로 혹시 새어나고 있는 게 살기인가 ? 살기 일거야. 너를 싫어하는 나의 마음에서 우러난 진국 같은 살기.
“내가 배가 좀 커서. 많이 먹어도 되지 ?”
받아 치듯 작게 미소 지은 얼굴로 가은이 대답했다. 한마디, 한마디 지는 법이 없다. 내 앙다문 입에서 혹시 잇몸으로 피가 새어나오지 않을까 하는 사소한 걱정을 하며, 그녀와 나 그리고 성아는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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