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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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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앱솔루트 세븐
글쓴이: 연가시파이터
작성일: 12-07-13 12:48 조회: 2,044 추천: 0 비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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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는 어느 쪽이야?

앱솔루트 세븐

Prologue

γ 8.26

“굳이 히어로와 빌런을 나눌 필요가 있을까, 닥터.”

녀석은 그렇게 말했다. 파괴된 도시. 누군가의 자택이었을, 직장이었을, 학교였을 건물들의 잔해가 뒹구는 불타버린 도시에서 그렇게 녀석은 말했다.

“여기에 서 있는 나는 빌런. 그렇게 히어로라 공인받은 당신들은 규정하지.”

녀석이 올라타 있는 것은 파워드 슈트 VS-52 모델. 세상에 단 한 기밖에 없는 히어로 전용 최신예기이다.

“하지만 그 공인 히어로조차 도시를 파괴하고, 필요하다면 악당을 제거하지. 과연 진심으로 시민을 위해 싸운다고 할 수 있을까? 신이 정한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의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정의들은 전부 일부에 의해 만들어진 거야, 닥터.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좀 더 세상을 입맛대로 굴러가게 하기 위해. 사회의 악들을 필요에 의해 정의로 규정했을 뿐이야. 실제로 당신은 아무도 지키지 못했잖아?”

그건 사실이다. 녀석이 제멋대로 떠드는 것들은 모두 나의 사상과 다를 바가 없다. 사실이다.

“무엇을 원하나, 동지여.”

“E.N.D의 신정부 수립. 쿠데타, 라고 하던가. 역사의 전례에 비교하는 것은 거부하지 않겠어. 하지만 E.N.D는 좀 더 혁신적이고 깨어있는 집단이야. 그건 당신이 제일 잘 알잖아.”

“E.N.D는.”

악의 조직. 최약이자 최대이자 최악의 빌런. 그녀의 말대로다. 그 조직을 창시한 건 나다.

“그래도 나를 방해할 생각이라면 결착을 짓자, 닥터. 당신은 이제 필요 없어.”

“그래. 분명 나는 필요 없어. 하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동료들이 있어.”

그리고 나는 슈트를 활성화시켰다. 적을 타게팅. 장비들이 모두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했다.

“나는 전설. 위대한 히어로 앱솔루트 세븐! 프로페서 D의 이름으로 악을 처단한다!”

눈앞의 적에게 뛰어들었다. 첫 번째 무기를 꺼낸다. 닿은 것을 순식간에 가루로 만드는 양자 검이다. 우선은 파워드 슈트의 약점인 관절기를 봉쇄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리고 그 순간 후두부에 강한 충격이 들어왔다.

내리꽂혔다. 피하지 못했다. 파워드 슈트의 속도는 내가 상정한 이상이었다. 내 슈트 헤드가 작동을 정지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코끼리도 누를 수 있는 압도적인 압력. 당연히 내 두개골은 그것을 1초도 버티지 못하고 박살이 났다. 시야가 점멸했다.

그렇게 나는 죽었다.

1.

β 8.15

녹아내릴 것 같은 날씨였다.

얼음은 0도를 기준으로 녹는다. 역일 수도 있다. 얼음이 녹는 온도가 0도인 것이다. 어떤 고체든 녹아내리는 온도가 있기 마련이다. 액체나 기체로 변하는 온도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체감할 수 온도야 얼음이 녹는 0도에서 감기 걸렸을 때 체온계에서 볼 수 있는 41도라는 수치 정도. 액화헬륨이나 액화티타늄을 상상해본 적이나 있는가. 전자는 만진다면 피부가 얼어붙어 달라붙고, 후자는 만진다면 손가락 째로 녹아내릴 거다. 그런 의미에서 녹아내릴 것 같은 날씨라는 표현은 사실 중의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그게 범 우주적으로 보면 의미가 있긴 있나. 인간이 -10도와 -270도를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300도와 6000도를 구분할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 녹아내릴 것 같은 날씨는 그냥 이 우주에 존재하는 날씨 중 하나라고 정의하자. 그럼 이 피부가 녹아내릴 정도로 더운 날씨도 평범한 것이 될 테니.

“그럴 리가 없는 거에요. 이렇게 더운데요?”

시민은 한 손에 봉투를 든 채 원피스를 펄럭이며 말했다. 140센티미터가 될까 말까 한 이 작은 소녀도 더위라는 걸 느낄 수는 있는 건가. 그럼 그 기관은 어디에 있는 걸까. 과학의 신비다.

우리가 걷고 있는 대로변은 한껏 가열된 아스팔트로 더 후끈했다. 서울이지만 마계촌 수준의 노후된 동네라 가로수 따위 한 그루도 없다.

“어째서! 전 세계 히어로 슈츠 공학 1인자인 내가! 왜! 이 땡볕에! 저녁 찬거리를 사러 가야만 하는 거냐!”

양손에 음식 재료가 가득한 비닐봉투를 들고 외쳐보았다. 아지랑이만이 춤추었다. 시민이 나를 질린 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 꼴사나운 아저씨인 거에요.”

“아저씨이라고! 난 아직 스물한 살이야!”

“깜찍하고 귀여운 시민의 눈에는 훌륭한 아저씨인 거에요.”

“시끄럽다. 유치원생.”

“왓.”

시민은 내 말을 무시하고 총총 달려 나갔다. 녀석은 뭔가를 주워들어 내게 보여주었다.

“반짝반짝인 거에요. 이쁘죠?”

시민이 들어 보인 것은 메탈릭한 검은색으로 빛나는 돌멩이였다. 신기하게도 반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구멍이 작아서 내 손가락에 끼우는 건 무리다. 뺏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뭐 하는 거에요! 시민이 발견했어요!”

“AuCl3이나 특이형태의 C3이나 일반 언어로 표현하면 돌멩이야. 고로 이 흑연과 외형이 비슷한 것도 돌멩이다. 즉 금전적인 가치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는 거다.”

“그러니까 한은 늘 거지깽깽이인거에요.”

“뭣. 아니, 낡은 건 내 옷과 사무실뿐이거든?!”

“그게 재산의 전부잖아요.”

“후후. 사실 내게는 세계정복조직 ‘E.N.D’를 위한 스위스의 블랙 뱅크가 있다.”

“네네. 졸개님.”

“최종보스거든?!”

그렇다. 겉으로는 성실하고 천재적인 공학도를 연기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히어로에 맞서는 빌런, 악의 조직 E.N.D의 수장인 것이다.

“우와. 망상론자, 짜증나…”

시민은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무실 앞에 도착. 당장에라도 재건축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 낡은 건물의 4층이다. 후후. 이곳은 대외용 페이크. 내 조직의 본부는 지하 깊숙한 곳에 있으니 상관없다.

“집세.”

“죄송합니다!”

약사에게서 도망쳤다. 저 약사는 1층 약국을 운영하는 괴팍한 노인네다. 내가 사무실로 위장한 건물을 제공해 주는 암묵적 동맹관계라고 할까.

“그냥 집 주인인 거에요. 한은 악덕 빚쟁이고.”

“내일이 월급날이라 그런 것뿐이거든?!”

시민을 안은 채 약사의 추적에서 벗어난다. 빠르게 계단을 올랐다. 4층에 도착하자마자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궜다.

“헉. 헉. 추적자는 도망갔나.”

“늦- 잖- 아!”

머리에 강렬한 충격이 가해졌다. 그대로 땅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친히 이 나께서 저녁을 해 주겠다고 하는데 뭘 꾸물대고 있는 거야! 벌써 오후 6시라고?!”

“크윽. 그러니까 네 주먹은 진짜 죽기 직전까지 아프다고. 희련.”

여기서는 나를 연약하고 신체능력이 낮은 남자로 오해할 수 있어서 굳이 설명한다. 나와 동갑이자 소꿉친구인 희련 녀석의 주먹은 정말 아프다. 태권도 세계대회 진출자다. 아프지 않은 쪽이 이상하다.

“아이스크림 사 온 거에요, 희련 언니!”

“잘 했어, 시민! 아이스크림은 어디에 있어?”

희련의 품에 안기는 시민. 둘은 참 사이가 좋다.

“오는 도중에 다 먹어버린 거에요!”

“잘 했어!”

시민의 머리를 쓰다듬는 희련. 역 성차별이다. 지난번에 내가 자기 푸딩을 먹었을 땐 관에 들어가기 3초 전까지 팼잖아.

“그럼 요리를 시작할까! 너는 빨리빨리 일 해! 백수 되기 싫으면.”

너무하다. 오늘은 광복절이라고. 앱솔루트 세븐도 쉬는 날이란 말이야.

그렇게 나를 닦달하고 희련은 시민과 함께 요리를 하러 주방으로 갔다. 방 세 개짜리 사무실은 카오스화 된 거실을 제외하면 주방과 침실, 화장실밖에 없다. 거실은 온갖 부품으로 가득 차 있다. 창문조차 가려버린 상태. TV 액정만을 간신히 확인할 수 있다. 부품은 모두 히어로 슈트에 관련된 것이다. 히어로 슈트 개발, 제조업체인 ‘패러독스 서포터즈’의 본사가 바로 이곳인 거다. 사원은 둘 밖에 없지만. ‘저스티스’나 ‘어메이징’같은 메이저한 단어는 이미 다른 슈트 제작사에서 가져가 버렸다. 상표등록이 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위잉, 푸슝.”

나머지 한 명의 사원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다음 슈트에 사용될 경량화소재의 샘플과 양자 검의 부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철컥. 위잉. 빵야빵야.”

두 철 덩어리가 그녀의 손에서 열심히 부딪히고 있었다. 내구도 테스트인가. 나쁠 건 없지. 역시 비산은 성실한 사원이다.

“일 리가 없잖아! 놀고 있냐 지금!”

비산은 잠깐 움찔하더니 반쯤 감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한. 언제 왔어?”

“중요한 소재로 뭘 하고 있는 거냐. 이번주까지 납품을 해야 영관위에서 지원금이 나올 거라고!”

게다가 이번 경매로 선정된 제품은 앱솔루트 세븐의 슈트에 사용될 거란 말이다. 광고 효과로 우리 회사도 잘 나갈 수 있어! 어메이징 서포터즈나 저스티스 서포터즈는 몰락할 때가 된 거지!

“…우주전쟁은 가혹합니다.”

상황극은 끝났어.

“…한. 오늘 저녁, 누가 비용을 지불했어?”

무릎을 꿇었다. 곧장 주머니에 있던 비산의 지갑을 양손에 들고 바쳤다.

“죄송합니다. 우수한 제작자님. 부디 넓은 아량으로 헤아려 주시옵소서.”

“…발이라도, 핥을래?”

“죄송합니다. 이번 월급을 멋대로 써버려서 죄송합니다.”

열심히 사과했다. 비산은 한숨을 쉬었다.

“한이 저런 걸 사 들이니까 그런 거잖아.”

그녀가 눈길을 준 곳엔 앱솔루트 세븐의 피규어가 있었다. 장이다. 유리로 둘러싸인 커다란 장. 안에 50기쯤 있는 것은 역대 앱솔루트 세븐 멤버들의 슈트 피규어이다. 어릴 때부터 모은 거라 나름 프리미엄이 붙은 것도 있다.

“저, 저건 어디까지나 일의 연장이랄까. 참고자료로써…”

“괜찮아. 한은 쓰레기니까.”

그렇게 말하고 비산은 지갑을 받아들었다. 이제 무릎을 풀어도 되려나. 비산이 적당히 컴퓨터 옆에 놓은 지갑. 그곳에서 달그락 하는 소리가 났다.

“…이건 뭐야, 한?”

일어서서 보았다. 아까 시민이 주웠던 고리 모양의 돌멩이이다. 지갑에 끼어서 딸려 나왔던 걸까.

“시민의 것이야. 그냥 내버려 둬.”

“흐응.”

그렇게 말하고 나도 자리에 앉았다. 듀얼 모니터. 화면에 표시되는 건 설계하다 만 다음 슈트의 도식도. 영관위에 올릴 서류 문서도 있다. 남들이 고등학교에 갈 때 외국의 대학에 조기진학해서 당시 스무 살이던 비산을 만나고, 팀을 결성하고, 훌륭한 공돌이가 되어 이 업계에 뛰어든 것 까지는 좋았지만 먹고 산다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머리 아프다.

몇 가지 작업을 하고 있자니 잔뜩 신이 난 희련이 저녁상을 들고 왔다.

“식사해요, 비산 언니.”

“…늘 고마워.”

“전 밥 먹을 자격도 없습니까?!”

“단것의 원한은 평생 가는 거예요, 한.”

다 같이 옹기종기 둘러앉는다. 각종 합성섬유나 플라스틱의 먼지로 가득한 사무실이지만 생활에는 지장이 없다. 비산과 희련은 소파에 앉아, 나와 시민은 각각 마룻바닥에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하는 합창. 오늘의 메뉴는 김치찌개에 계란말이, 완자 볼이다. 멸치나 조린 콩 같은 밑반찬도 가득하다. 별로 먹지도 않을 반찬을 쌓아두는 한국의 식문화는 역시 좀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밥을 한 숟가락 먹자 희련이 얼굴을 들이댔다.

“뭐, 뭐야.”

“어때? 한. 오늘 저녁은.”

으음. 솔직하게 말하자면 역시 가정적인 녀석이다. 어릴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알던 사이이지만 역시 꼼꼼하다고 할까. 지금도 대학을 다니면서 바이크 전문점인 집 일도 하고 있기도 하고. 엄마 밥 이란 느낌이라고 할까.

“후후. 이런 음식을 아직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라. 곧 E.N.D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면 전 인류가 진공 팩에 담긴 닭 가슴살을 먹게 될 테니.”

맞았다.

“좀 솔직하게 말 해주면 뇌에서 피라도 뿜는 거야?! 너 따위에게 줄 쌀은 없어!”

지금 너 때문에 머리 피부가 찢겨져나간 것 같아. 그리고 정확히는 뇌에서는 피가 안 나온다고. 감각기관이 없어서 고통도 없고.

희련 녀석은 팔짱을 꼈다.

음.

최근 은근히 느끼는 거지만 중학생 때에 비해 훌륭하게 성장했다. 아래쪽에서 보는 것도 운치가 있네.

“어딜 보고 있는 거야?”

“천장에 붙어 있는 꼭지를 보고 있다.”

“거짓말이지.”

“천장 부분만이다.”

또 맞았다.

비산이 TV를 켰다.

“아. 앱솔루트 세븐 방송인 거에요. ‘호가라다 웬’의 특별 방송인 거에요.”

“재방송이겠지.”

국가 치안을 경찰이 아닌 히어로가 대체하게 된 것은 벌써 50년 전의 이야기다. 애초에 경찰도 각자의 능력을 이용해 범죄를 막는 성향이 강했으니 시초라고 볼 수도 있겠지. 우리 인류에게 주어진 능력. 개개인마다 겹치는 일 없이 고유한 성질을 가진 초능력. 영어로는 게럴리티. 한자로는 이력. 순우리말로는 위엣힘.

뭐가 됐건, 전투에 적합한 이력을 이용해 영웅을 만드는 케이스는 드문 일은 아니다. 역사만 보아도 물질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었던 이순신 장군, 대상의 지능을 극도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세종대왕, 소리의 음역을 무한대로 늘여서 인식할 수 있었던 베토벤. 이력은 태어날 때 정해지며 아직까지 유전이나 어느 계기가 있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 하지만 능력의 종류는 정말로 다양해서, 손톱이 빨리 자란다든가 주변의 전자기기가 망가진다는 것 같은 별로 쓸모없어 보이는 이력도 있다. 전 세계의 인구가 60억이라고 했으니 60억 종류의 이력이 있겠지.

그 중 전투나 인명구조에 특화된 이력을 가진 자들이 경찰이 되었고, 곧 ‘히어로’라 불리는 집단이 생겨났다. 앱솔루트 세븐은 그 중에서도 최고다. 대한민국 최고의 히어로인 7명의 집단. 특수부대나 마찬가지다. SAT같은 특수부대도 강한 이력을 가진 히어로들로 구성되어있지만 앱솔루트 세븐은 격이 다르다. 차원이 다르다. 자체로 치안의 상징. 그야말로 최고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히어로들이 사용하는 슈트를 만드는 게 바로 나. 악의 조직 E.N.D의 수장인 닥터 사수스다.

“어머나, 참. 하필 하고 많은 히어로 중 웬의 방송이람?”

어쩐지 희련이 조금 당황한다.

“아. ‘붉은 혜성’호 타고 나와요. 완전 멋져~”

시민은 눈을 반짝이며 TV를 보고 있다. 확실히 웬은 멋지다. 전신을 붉게 물들이고 팔의 망토를 펄럭이며 거대한 할리 바이크인 붉은 혜성에 타고 있다. 앱솔루트 세븐의 셋 중 하나인 여성 멤버다.

“…지치지도 않나봐.”

비산이 국물을 홀짝이며 말했다.

“그야 아무리 최고의 팀이라도 어디까지나 현역이니까. 저 일곱 명이 동시에 투입될 작전 같은 거대한 범죄는 아직까지 없었지. 단 한 명의 참전으로도 사건 현장의 전력이 급변할 정도의 이력이야.”

정확히는 한 건 있었나.

“웬의 바이크, 시민도 타고 싶은 거예요. 소방차 같아서 반짝반짝.”

“웬 보다는 제니 쪽이 귀엽지 않아?”

희련은 뜬금없이 그렇게 말했다.

“그야 제니도 좋지만… 이미 국민 아이돌이라는 느낌이고.”

여러 가지 보안상의 문제로 다들 정체를 숨기고 있는 앱솔루트 세븐 중 유일하게 제니퍼 오를레앙은 얼굴을 공개하고 활동하고 있다. 전형적인 아이돌이다.

“실제로 실적은 웬 쪽이 훨씬 낫잖아. 히어로는 본업에 충실해야지.”

“그, 그런가? 헤에.”

어째 희련 녀석의 뺨이 살짝 붉어진 것 같다.

웬 스페셜을 보며 식사는 종료. 희련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고 나와 비산은 또 철야로 작업을 해야 할 것 같다. 시민은 소파에서 그림 동화책으로 된 어린 왕자를 봤다.

다음 날. 비산이 영관위 공개경매를 위해 구청으로 떠나고 할 일이 없어진 나는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건너편은 바이크 전문점. 희련의 집이다. 오랜만에 놀러가 볼까. 하고 푸딩을 사서 그곳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희련이 어느 남자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모양이다. 희련 녀석 열심히 미소 짓고 있다.

남자는 185센티미터 정도로 늘씬한 다리가 멋졌다. 얼굴로 보아 20대 중반 정도일까. 어쩐지 희련 녀석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멋진 스마일을 여러 번 날리더니 시계를 보았다. 그리고 희련에게 키스를 하고 정차되어있던 자신의 차를 탔다. 람보르기니다. 남자를 배웅하는 희련. 엔진소리, 크다.

차는 내 옆을 지나갔기에 희련이 날 발견한 것 같다. 녀석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리고 내게 달려왔다.

“봤어?!”

“맘에 드는 여자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친밀해질 수 있는지 잘 봤어. 좋은 도움이 됐어.”

“에. 이건 그. 으음.”

희련 녀석이 우물쭈물해한다. 이런 모습은 오랜만에 봤다.

“아, 아무튼 오해하지 마! 지금 본 건 뇌에서 지워 버려!”

“말하는 대로 할 테니 때리지만 마라.”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에. 볼 일이 있던 거 아니었어?”

“별로. 그냥 잠깐 나온 김에 들렀어.”

바이크 샵과 내 사무실 사이에 횡단보도는 없다. 멀리 빙 돌아서 갔다.

빈 사무실. 시민은 놀러 나간 모양이다. 푸딩을 테이블에 놓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런가. 남자친구인가. 누굴까. 학교 선배? 아르바이트 하는 곳 아는 오빠? 클럽에서 만났을까. 아니, 애초에 클럽을 가본 적이 없는 나는 거기서 남녀의 교류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모른다.

중학생 때의 녀석은 지금하고 별로 다를 것은 없었다. 다른 점이라면 더 작았다는 점 정도일까. 지금은 아름답게 커졌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옆집에 살아서 곧잘 같이 놀곤 했었다. 오지랖이 넓고 어쩐지 정의로 가득 찬 것 같은 녀석이었다. 수업이 재미없어서 학교를 잘 안 나갔던 나를 늘 쥐어 팼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대학생이 되었다. 고등학교가 어떻게 생긴 건지 모른다. 중학교와 별로 다를 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못 본 4년 간. 그리고 다시 만나서 지금까지 6개월. 그동안 변했던 걸까. 많은 일이 있었던 걸까. 잘 모르겠다.

“어울려 보였지.”

순간 테이블에 놓여 있는 링 모양의 검은 돌멩이가 눈에 들어왔다. 어쩐지 기분이 나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다시 앉았다. 뭘 어떻게 하려는 거야. 여기서 난동 피워봤자 나만 손해다. 회사 사무실이니까.

…어라. 나 지금 굉장히 한심해 보이는 모습 아니야?

시민이 없어서 다행이다. 아. 시민이 없구나. 즉 지금 내 꼴사나운 행동은 나 밖에 모른다는 소리다. 악설을 퍼부을 사람이 없다. 좋아. 그럼 조금만. 아주 조금만 난동을 피워볼까.

“키 크고 잘생기고 돈 많은 놈들 죽어라!”

테이블을 뒤집었다. 위에 있던 푸딩과 서류가 공중을 날았다. 좋아. 조금은 후련해졌다.

길거리로 나갔다. 동네 놀이터로 들어갔다. 그네에 걸터앉아 담배를 물었다. 그것을 빼앗아 반으로 뚝 부러뜨리는 손이 있었다.

“놀이터와 공원은 공공금연 장소인 거예요.”

시민이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민은 동네 꼬마애들하고 흙장난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좋은 때구나. 어리구나. 젊구나. 좋다, 좋아.

“한이 아빠 미소를 하고 있어요. 기분 나쁜 거예요.”

“크흑. 너 밖에 없구나, 여동생이여.”

그렇게 말하며 시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엑. 아동 성희롱으로 고소하겠어요, 한.”

“지금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졌어. 위로해줘.”

“전형적인 성폭행범의 대사네요. 위험해요, 위험해.”

시민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게다가 시민은 여동생이 아니에요. 누구의 여동생도 될 생각 없다고요.”

“수요에 제대로 응해라, 로리!”

그런데. 어라, 잠깐?

여동생이 아니었나?

“아닌데요.”

뭔가 이상한데. 잘 생각해 보았다. 확실히 나는 독자다. 외동이다. 버릇없고 배려심 부족하기로 통계결과가 나온 외동아들이란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시민을 여동생이라고 불렀을까. 녀석이 아니었나? 여동생이 있었던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고 보니.

찾고 있지 않았나.

잃어버려서.

잃어버린 것을.

“시민, 혹시 말인데.”

세계가 멸망한 것은 그 순간이었다.

굉음. 고막이 찢어질 것 같다. 귀를 틀어막았다. 눈을 감았다. 문제가 생겼다. 확실하다. 문제가 생겼다!

바닥이 흔들린다. 지면이 흔들린다. 지진? 아니다. 지구 전체가 근원부터 흔들리고 있을 정도다. 어지럽다. 구토가 나왔다. 하지만 귀를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그 섬뜩하고 소름끼치는 철의 마찰 소리. 그것이 사방을 메우고 있었다.

소리가 가라앉았다. 아직까지 이명은 남아있다. 천천히 눈을 떴다.

“어?”

순간 입에서 나온 것은 그런 얼빠진 신음뿐이었다. 어느 새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정면에는 벽이 있었다. 방금 전까지 없었던 벽이다. 검은 벽이다. 검은 철덩어리의 벽이다. 고개를 돌렸다.

좌우로 끝이 없다.

올려다보았다.

위로도 끝이 없다.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도망쳤다. 달렸다. 그때서야 뭔지 대략적인 모양을 파악할 수 있었다. 도시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땅 밑에서 솟아나듯 검은 철의 성들이 솟아나고 있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는 철의 마찰음에 묻혀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있었다. 공원, 건물, 도시. 그 모든 것이. 지반부터 통째로 흔드는 그 철의 산에 대항할 수 있는 게 있을 리가 없다. 가스관이 터졌는지 곳곳에서 폭염이 일었다.

한참을 뛰던 나는 알아챘다.

사무실로 돌아갈 수 없었다. 가는 길이, 아니. 정확히는 그 구역이 통째로 검은 철에 침범되어 있었다. 어마어마한 넓이다. 무지막지한 높이다. 가늠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면.

희련은.

내 사무실 건너편, 바이크 샵 2층에서 살고 있는 희련은.

조금 전까지 만났던 희련은.

통째로 이 철덩어리에 삼켜진 건가.

그런 생각과 동시에 내 옆에 무언가가 철푸덕, 하고 떨어졌다. 내 신발을 보았다. 싸구려. 떨이판매. 짝퉁. 붉게 물들어 있다. 떨어진 것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사람이다.

철에 휘말려 높은 곳까지 올라가게 된 건가. 그리고 떨어졌다. 몇 미터에서 떨어졌는지 가늠되지 않았다. 산산조각이 났다. 뼈고 살이고 형체를 알 수 없게 분해되어 있었다. 그것에서 흘러나온 것이 내 발 밑에 웅덩이를 만들었다.

토했다. 계속해서 토했다.

멈출 수밖에 없었다. 더 기괴한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시체조각이 꾸물꾸물 뭉치더니 결합했다. 전부는 아니다. 반만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다. 그로테스크하다. 내장을 얼굴에 붙여놓은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음새에는 검은 철이 있다.

이형이 웃었다. 무서웠다.

움직일 수 없었다.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뭔지는 하나도 모르겠다. 검은 철의 성도, 죽어버린 사람들도, 파괴된 도시도, 그리고 좀비가 된 것처럼 내게 기어오는 시체도.

대체 무슨 사건일까. 인위적인 것일까. 외계의 힘일까. 자연재해일까.

알 리가 없다. 나 같은 소시민은 그저 이렇게 죽는 거다. 사건의 진상이나 살아남은 사람들의 활약상을 보지 못하고 죽는 거다. 여기서 죽는 거다.

그렇게 포기하고 눈을 감으려던 찰나, 시체가 불타올랐다.

내 앞을 가로막는 한 사람이 있었다. 붉은 슈트. 양팔 밑으로 펄럭이는 망토.

“호가라다… 웬.”

앱솔루트 세븐이다.

이 나라 최고의 히어로가 지금 막 내 생명을 구했다.

“일어설 수 있겠어?”

그렇게 말하고 웬이 손을 내밀었다. 순간 온몸의 멈춰있던 혈액들이 순환했다. 그 손을 잡았다. 일어섰다.

“웬, 이건 대체?”

“나도 잘 몰라. 우연히 현장을 맞닥뜨렸을 뿐. 아직 죽고 싶지 않지?”

당연하다. 나는 눈물을 닦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럼 살자고.”

그렇게 말하며 웬은 뛰어나갔다. 그 뒤를 쫓았다.

아직 도시는 완전히 붕괴하지 않았다. 제 구실을 하는 길이 남아있었다. 달렸다. 달렸다. 웬의 뒤를 따라 달렸다. 검은 철의 탑의 구역에서 탈출한다면 생존할 수 있다. 적어도 이 현상이 뭔지는 알 수 있다. 무적의 히어로들이 날 지켜줄 테니까.

시체 떼는 아까 그 한 구가 아닌 모양이었다. 검은 철조각이 안에서 튀어나와있는 움직이는 시체들. 조종당하는 것 같다. 몇 구가 길을 막고 있었다.

“버스트!”

그렇게 외치며 웬은 손을 휘둘렀다. 웬의 능력은 대상을 고온으로 만드는 것. 시체가 불타오른다. 그녀는 불꽃을 직접 일으키지는 않는다. 자연발화를 시킬 뿐. 그녀가 만들 수 있는 인공적인 온도는 태양의 그것에 근접할 정도이다.

살 수 있다. 이 최고의 히어로와 함께라면 살 수 있다. 시체들을 불태우는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용감 그 자체였다.

한참을 달리자 또 다른 막다른 길. 이번엔 철의 구조물이 길을 막고 있었다. 철은 멈춰있지 않았다. 조금씩 꾸물꾸물 움직인다. 자체가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분자구조가 한쪽에서 분해되고 다른 쪽에서 재결합되는 느낌이다. 기분이 나쁘다.

“치잇. 돌아가야 하나…!”

웬이 혀를 찼다. 하지만 뒤는 어느 새 시체의 행군으로 포위되었다. 천천히 다가오는 무리들. 결국 웬은 정면 돌파를 결심했다.

“버스트…!”

철을 가열시켰다. 붉게 달아오르는 검은 철. 철은 고통스러워하듯 꿈틀거리다가 수그러들었다. 마찰음이 비명소리처럼 들렸다. 구멍이 생겼다. 한 명이 지나갈 만한 구멍이다.

“이 정도면 되겠어. 서둘러!”

뛰었다. 먼저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 웬이 구멍을 통해 들어왔다. 내가 뭔가를 목격한 건 그 순간이었다.

위쪽이었다. 철의 탑. 멈춰있지 않았다. 유동적이었다. 기분 나쁜 촉수처럼 생긴 그것. 세 개다. 구멍의 한참 위, 웬의 위를 노리고 있었다. 그것이 아까 웬이 달구었던 그 철덩어리라고 어째서인지 인식할 수 있었다.

“위험해! 빨리!”

“에?”

그렇게 외쳤고 웬은 순간 나를 올려다보았다. 웬의 손을 잡았다. 빠져나간 것은 동시였다.

웬이 공중을 날고 있었다. 정확히는, 꼬치가 되어 있었다. 철의 촉수 중 하나가 웬의 배를 관통해 있었다. 철은 장난감처럼 웬을 공중에서 붕붕 흔들었다. 다른 촉수들이 찔렀다. 웬의 두 다리가 잘려나갔다. 그리고 질렸다는 듯, 던졌다. 50미터 쯤 앞이었다.

“거…짓말.”

뛰었다. 달렸다. 그리고 웬에게 도착했다. 안아들었다.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괜찮냐고 물을 수 없었다. 괜찮을 리가 없잖아. 하반신에서 흘러나온 피가 내 옷을 적셨다. 최고의 히어로가. 최고의 능력자가. 앱솔루트 세븐이.

지금 이 순간 내 앞에서 죽었다.

웬의 마스크가 반이 깨졌다. 떨어졌다.

아아. 거짓말이다.

거짓말이다. 이런 건 거짓말이다. 갑작스럽다. 현실이 아니다.

“어째서… 희련. 네가.”

희련이 천천히 나를 바라보았다. 이미 눈에 초점이 없다. 녀석의 손이 떨렸다. 잡아주었다.

“…지금 본 건, 뇌에서, 잊어. 한.”

“어째서야! 어째서 네가 웬인거야. 어째서 네가 죽는 거야!”

최고의 히어로가. 고작 나 때문에.

“…한. 그러고 보니, 나, 아직도 몰라. 한의 능력. 부디, 도망쳐. 능력을… 써.”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부탁이야. 이대로 죽는다는 웃기지도 않는 소리는 하지 마.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희련은 죽는다. 다리가 없다. 배에 구멍이 뚫렸다. 죽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오해야. 한.”

그렇게 말하고 희련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아아.

이제 녀석은 내 저녁식사를 해 줄 수 없다.

그렇게 깨달았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보통의 이야기라면 사랑하는 이를 잃은 주인공은 강해지지 않을까. 현실에서 그딴 일은 없었다. 나는 무능력자다. 무력하다. 약하다. 꼴사납다.

하하. 능력을 사용해 도망치라니, 희련. 농담에도 정도가 없어.

나에겐 능력이 없단 말이야.

전 세계의 인구가 60억이라면, 능력은 59억 9999만 9999개가 있다.

아아. 나는 없다.

나에게는 이력이라는 것이 없다.

지구상의 인간 모두에게 있는, 역사의 모든 인물에게 있는, 그것이 없다.

살고 싶은 의지가 있느냐? 없다.

적과 맞서 싸울 투지가 있느냐? 없다.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그저 희련의 시체를 안고 우는 수밖에 없었다.

순간 내 어깨를 누군가가 잡았다.

희련이다.

괴기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만 동공은 텅 비어있다. 검다.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저항하고 도망친다면 조금은 더 살 수 있겠지.

5분? 1시간? 그 정도는 더 살 수 있을 터다.

하지만 의미는 없다.

그러니, 포기하자.

희련이 내 목을 물어뜯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나는 죽었다.

γ 8.15

“끝났다. 패배를 인정한다. 앱솔루트 세븐.”

그렇게 말하고 나는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더 이상 서 있을 힘도 없었다. E.N.D는 괴멸했다. 나 혼자서는 역부족이다. 포기하자. 세계정복의 야망은 여기서 끝났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 먼지가 섞인 매캐한 바람은 어쩐지 선선했다. 발소리. 내가 넘지 못한 그 남자는 내 위에 섰다.

“리어팰러딘. 더 세이지.”

남자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흰 갑박식 슈트. 마스크는 사이버틱한 맹수의 모양을 하고 있다. 188센티미터. 늘씬한 다리가 멋지다. 앱솔루트 세븐의 현 리더. 최고의 히어로다.

“닥터 사수스.”

남자 역시 내 이름을 불렀다. 전장에서 만나 몇 번이나 서로의 이름을 불렀을까. 나는 녀석의 세계를 파괴했고, 녀석은 그럴 때마다 나를 방해했다.

“나를 처형할 건가. 네놈들이 말하는 그 정의의 명목 하에.”

세이지는 자신의 팔에 장착된 리어 암을 작동시켰다. 작은 핵융합 원자로나 마찬가지인 대군용 무기다. 그것을 나라는 개인 한 명에게 들이댄다는 의미는 충분히 알 수 있다.

“물론이다. 너는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였어.”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죽인 것은 악인뿐이다. 나는 악인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젠 상관없지. 녀석은 쏠 거다. 그리고 이 긴 싸움은 끝난다.

“그만 둬, 세이지.”

남자의 무기를 막는 손이 있었다. 붉은 슈트.

“호가라다 웬.”

“무슨 생각이야? 웬. 빌런을 감싸다니.”

“어느 빌런도 법에 의해 심판받을 권리는 있어. 필요는 있어. 지금 처형하는 건 비겁해.”

세이지는 무기를 거뒀다.

“맘대로 해.”

웬이 나를 바라보았다. 검게 코팅되어있는 붉은 마스크. 저 마스크 안에선 어떤 눈이 나를 노려보고 있을까.

“일어나. 닥터 사수스.”

의외였다. 웬은 내게 손을 내밀었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결국은 자신이 부정하고 적대하던 것에게 동정 받는 꼴인가.

그 손을 잡았다.

사방이 흰 심문실. 이중으로 된 철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볼륨 있는 몸매에 사무적인 복장을 한 그녀는 내가 앉은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 서류를 내려놓았다.

“…닥터 사수스.”

“당신은?”

“…앱솔루트 세븐의 매니저. 비산. 매니저이지만 실질적으로 총괄자라고 봐도 괜찮아.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어.”

“그럼 비산 공주님.”

“여왕님이라고 불러.”

한 번 떠 보려고 했는데 대담한 여자다. A7의 매니저 직책 정도면 상당한 권력자인가. 그런 것 치고는 젊다. 나와 서너 살 차이밖에 안 나 보인다.

“좋아, 여왕님. 세상을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던 E.N.D의 수장인 나를 이렇게 가볍게 구속해도 괜찮은 거야?”

그렇게 말하며 나는 손에 묶인 수갑을 들어보였다. 이력을 감소시키는 특수수갑도 아니다. 평범한 범죄자에게 쓰는 그런 물건이다.

“…그다지 떠들썩해지는 않았어. 정보통제. 게다가 당신이 탈주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아.”

“호오. 사실 내게는 모든 히어로의 능력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런 게 가능했으면 E.N.D가 괴멸하진 않았겠지. 본론부터 말하겠어.”

그렇게 말하며 비산은 안경을 치켜 올려 세웠다.

“현재 A7은 1자리가 비어. 합류할 생각은 없어? 닥터.”

살짝 당황했다.

“어째서지?”

“E.N.D는 크게 세 개의 세력으로 연합한 다른 빌런들과는 달랐지. 언제나 단독행동이었으며 도도했어. 당신은 적은 인원으로 이미 빌런 조직 ‘바울’을 괴멸시켰지. 이해관계의 일치가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상층부는 판단했어.”

“이해관계가 같을 진 몰라도 가치관의 차이가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한 모양이군.”

“적의 적은 아군. 흔한 패턴이지.”

“나를 영입하며 생기는 그쪽의 이득은 뭐지?”

그렇게 물었다. 나 같은 범죄자를 최고의 치안기구에 들이는 것은 자체로도 이슈다. 문제가 된다. 뿌리가 흔들릴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감행한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할 득이 있으니까다.

비산은 말했다.

“…모든 히어로 슈트에 관한 정보를 우리에게 넘기는 것이 조건이야, 닥터.”

“거절한다.”

단칼에 말했지만 비산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라고 해도 내게 거절할 권리는 없는 거겠지?”

“A7에 영입해주는 것이 당신에 대한 최고의 대우야. 그렇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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