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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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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유성(流星)의 히어로
글쓴이: Reborn
작성일: 12-07-12 23:04 조회: 2,256 추천: 0 비추천: 0

재앙.

그 한마디로 표현가능한 지금의 상황이었다.

안드로메다 은하계 필리아 성단에 위치한 단일국가 행성 루네스(Runes).

국가의 둘도 없을 행사를 앞두고 모든 행성의 인원들이 새로운 황제의 즉위식을 축복하고 행복해야 할

루네스 행성에 137대 황제의 즉위식이 있을 날은 최악의 우주 전투 용병단 이그노란트(Ignorant)의 예기치 못한 기습공격으로 황제의 즉위식을 축하해야할 축제의 날은 루네스 행성 역사상 최악의 날로 바뀌고 말았다.

루네스의 입장으로 보면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공습(功襲)이었다.

루네스 행성엔 루네스 성인(星人)외에는 그 어떤 타 행성인의 출입도 허가치 않는 특수한 방어시스템이 존재해 수십 세기동안 타행성의 침입을 받은 역사가 없었기에 루네스 행성 방어단은 이번 이그노란트의 침공이 시기상으로 시도는 좋았으나 허사로 돌아갈 것이라 예측했다.

허나 그들의 예상을 비웃듯 이그노란트 함대는 아무런 손실 없이 루네스의 상공에 도달.

침공과 동시에 압도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의 화력을 전개해 루네스 행성 전역에 궤멸적인 손실을 입히는데 성공하게 된다.

사실상 침공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루네스는 그들의 침공이 시작됨과 동시에 대항할 수단 자체를 상실하게 된 셈이었다.

그것이 이그노란트의 공격이 개시되고 난지 불과 반나절도 안 된 일이었다.

루네스의 하늘엔 황제의 즉위식을 위해 띄워진 루네스 행성 함대들의 모습이 아닌 이그노란트의 검붉은색 함대들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고 대지에는 그들의 강하부대와 기갑부대, 자립형 전투 A.I를 탑재한 메카들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는 시민들을 상대로 살육을 자행하고 있었다.

한쪽 스크린에는 적의 침공에 대항하기 위해 싸우다 팔 다리가 잘려나가

알아들을 수도 없는 단말마를 지르는 군인들의 모습.

또 다른 스크린에는 불과 수 시간 전만해도 뛰놀며 웃고 떠들던 아이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음과 화염으로 인해 형체도 알아 볼 수 없게 돼버린 아이들의 시신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방치되어있다.

루네스 왕가의 위용과 권위를 상징하던 수도와 성채도 이그노란트 함대의 포격으로 인해 대부분이 붕괴되어 폐허가 되었다.

한 번에 보라고 해도 다 볼 수도 없을 만큼 호출 되어있는 수백 개의 전황을 담은 모습들이 함교 메인 모니터를 가득히 메우고 있었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학살.

살아있는 지옥과도 같은 풍경들… 필시 지옥이란 것이 있었으면 이와 같았을 것이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미쳐버릴 것 같은 광경들은 마치 현실성 없는 영화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장면을 붉은색의 장교복을 입은 소녀가 메인 함장 석에서 홀로 그 장면들을 멍하니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나이는 아무리 봐도 10대 후반의 모습.

그녀가 입고 있는 장교복은 흙먼지와 핏자국, 타거나 그을린 자국들이 가득했다. 머리카락은 어디서 그을리기라도 했는지 그녀의 복장과 대조되는 허리까지 오는 긴 푸른빛 머리칼은 군데군데 심하게 타들어있었고

오른쪽 어깻죽지엔 큰 자상을 입어 위험하다 싶을 정도의 출혈이 계속 되고 있었다.

가볍게 넘겨보아도 스크린 너머로 보고 있는 그 지옥과도 같은 현장을 그녀 역시 겪었을 것이란 사실은 물어볼 필요도 없는 듯 했다.

얼마나 그녀가 멍하니 함교에서 서서 메인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었을까 갑자기 함교의 후방 출입 셔터에서 쉬익-하는 소리와 함께 함교가 개방되는 소리가 들렸다.

“고작 도망친 곳이 이곳인가? 유피넬 대령. 이건 너무 뻔하디 뻔한 결과군, 나는 좀 더 재미있는 경우를 기대했는데…."

짙은 흑발의 머리를 바짝 치켜 올려 세운 남성이 그녀의 이름을 말하며 메인 함교로 발을 들여놓았다.

유피넬이라 불린 여자의 장교복에 비하면 남성의 복장은 먼지 하나 내려 앉아있지 않은 깔끔함 그 자체였다.

등 뒤에 자신을 부르는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피넬은 여전히 화면을 응시한 채 감정을 억누르는 어조로 남자에게 말했다.

“…눈앞에 보이는 광경들을 보고도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것뿐인가. 닥터 베투스 아바리티아 (Dr. Vetus avaritia)?”

베투스라 불리는 남자는 근엄한 목소리로 양팔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유피넬의 물음에 답했다.

“이것이야 말로 루네스를 위한 개혁이다. 신의 대행자라 불릴만한 기술력과 과학을 가지고도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 그들은 언젠간 행성간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 분명했다. 지금 네 눈앞에 펼쳐진 모습처럼 말이지."

유피넬은 내내 응시하고 있던 스크린에서 눈을 때고선 고개를 떨궜다.

"…역시 이 모든 일의 원흉은 당신의 소행이었군.”

원흉이라는 말에 베투스는 한껏 더 엄숙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원흉? 훗, 루네스는 그야말로 고여 있는 썩은 물이었다. 변화와 개혁을 두려워하고 무한한 자신들의 가능성을 봉해버렸지…”

베투스는 잠시 말끝을 흘리는 듯 하더니 팔을 크게 저으며 외치기 시작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란 말인가!! 원한다면 전(全) 행성을! 은하를! 우주를! 장악할 수 있는 능력을 봉인해놓고 애써 평화주의자인 척, 신의 대행자라는 타이틀에 만족하고 있는 그것이야말로 안타까운 현실 아닌가? 그런 안타까운 사실에 눈을 돌리지 못한 내가 그 썩은 물을 손수 치워줬다고 생각하네만, 말을 함부로 하는 군. 유피넬.”

베투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유피넬은 돌아서서 눈앞에 있는 상대에게 경멸하는 눈빛을 보내며 악을 질렀다.

"썩은 물? 자국에 대해 썩은 물이라는 미친 소리를 지껄이고 수억의 생명을 담보로 이 미친 짓을 자행한 베투스 네놈이야말로 썩은 물이겠지! 이그노란트에 달라붙은 기생충 같은 자가!!”

그렇게 악을 쓰고 난 후 유피넬은 감정의 폭발을 이기지 못했는지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본 베투스는 한심하다는 듯 입안에 조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루네스 왕족 공주의 신분을 버리고 최연소 군 장교 임관, 그리고 탁월한 함대 지휘능력으로 수차례의 행성 간 전투에서 승리한 루네스의 방패라 불리던 유피넬. 하지만 지금의 모습을 보자니 군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그 나이또래의 하찮은 계집으로 밖에 보이질 않는 군. 역시, 계집은 계집일 뿐이란 얘기인가….”

“베투스 네놈!”

베투스의 조롱에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이성을 잃은 유피넬은 그나마 멀쩡한 왼손으로 장교복 안주머니에서 순간이라 해도 좋을 만큼 빠른 동작으로 투척단검을 꺼냄과 동시에 혼신의 힘을 담아 베투스를 향해 투척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동작.

유피넬이 던진 단검의 궤도는 정확히 베투스의 심장을 향해 날아갔다.

함장석과 함교입구까지의 거리는 불과 10m 정도의 거리. 단검이 목표에 도달하는데 있어서 걸리는 시간은 그야말로 눈 깜짝 할 사이일 것이다. 거기다 베투스는 이렇다 할 방어태세를 갖추지도 않았다.

그렇게 유피넬의 손을 떠난 단검이 베투스를 향해 맹렬한 기세로 날아들어 칼날 끝이 목표점인 심장에 닿으려는 순간!

‘카강!’ 하고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생각 했던 것과는 다른 이질적임 음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유피넬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베투스의 가슴에 박혀야 할 칼끝이 가슴팍에 닿기도 전에 멈춰있기 때문이었다.

‘아머드 슈츠인가?! 하지만 아직 기회는 있어. 녀석의 빈틈은 여전하다!’

유피넬은 첫 기습의 실패에도 망설이지 않고 곧장 다음 행동으로 뒷 허리춤에 있는 권총 홀스터로 손을 옮겨 권총을 꺼내 듦과 동시에 베투스의 머리를 향해 조준했다.

‘슈츠의 방어가 미치지 않는 곳을 노린다면!!’

목표를 응시하는 것과 동시에 방아쇠가 당겨졌다.

한발, 한발, 그리고 또 다시 한발.

타타탕!!

속사로 발사된 탄두는 곧장 베투스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베투스는 단검을 맞을 때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방어자세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탄두가 머리에 박힐 쯤 이변이 또 다시 일어났다.

이미 두 번이나 벌어진 일에 우연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머리를 감싸고 있는 보호구는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금방 전과 같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탄두가 머리에 닿기 전에 멈춰버린 것이었다.

‘말도 안 돼! 칼이 슈츠에 막힌 건 그렇다 치더라도 저건 어떻게 된 거지?’

유피넬은 자신이 직접 보고도 눈앞에서 벌어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베투스는 정지해 있는 탄두와 칼을 느긋한 동작으로 회수하고선 살상능력을 잃어버려 쓸모없어진 탄두를 바닥에 버렸다. 적막한 함교에 땡그르르 하고 탄두가 굴러다니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기습 공격이 실패해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역력한 유피넬을 보며 베투스는 여전히 입가에 조소를 띄고는 유피넬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보아하니 지금 상황이 당황스러운가보군 유피넬. 하기야 내 능력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일 테니 적잖게 놀랐겠지….”

베투스가 손짓하자 유피넬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손에서 쥐고 있던 권총을 떨어트렸다. 그리곤 바로 이어서 전신이 마치 포박에 묶인 듯 손가락 하나도 자신의 의사대로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신체의 자유를 속박 당했다.

“큭!”

기습은 실패로 돌아갔고 상대의 능력이 정확히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 덤빌 수도 없는 노릇.

유피넬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술수를 부린 거지? 베투스 당신에겐 보고 된 어빌리티(Ability)가 없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내 능력에 한해서라면 가능하다, 뇌의 기능을 일부 제한시켜 억눌러 놓는다면 어빌리티 디텍터(Ability detecter)에도 잡히지 않을 것이고 실질적 무능력자로 표기 되겠지."

'뇌의 기능을 제한? 설마, 초상능력자란 말인가?’

초상능력자 (Paranormal capabilitor)

남들과 다른 뇌의 특수한 능력을 지닌 자로 초 현상을 구현시키는 자들을 말한다.

구현 계통의 종류가 다양하고 능력의 개방성이 무궁무진하기에 최상급 어빌리티에 속한다.

후천적인 영향보단 선천적인 영향으로 발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실질적 사용자가 많지 않다는 것도 특징 중 하나다.

"조금의 힌트 밖에 주지 않았는데 바로 정답에 도달하다니, 좋은 판단력이군."

‘!’

입 밖에 내지도 않은 말에 베투스가 대답하자 유피넬의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정답에 도달하고선 너무 놀라는 것 아닌가? 방금 전의 단검과 총격을 막아낸 것도 내 능력 덕분이라면 설명이 되겠지. 아머드 슈츠 같은 건 입을 때마다 몸에 달라붙는 느낌이 좋지 않아서 도통 입기 꺼리게 되더군."

"…점점 더 이해할 수 없군. 당신 정도의 능력자라면 군부 내에서도 더 높은 지휘를 가질 수 있을 텐데 어째서 능력을 봉인하고 있었지?"

"애초에 나에게 있어 높은 계급과 지휘는 필요치 않았다."

그 말은 베투스가 이번 작전을 실행하는데 있어 실패는 계산에 두지 않았다는 것과 같았다.

자신이 계획한 반역이 성공하게 되면 현 루네스의 지휘과 권력은 쓰레기와도 같은 것이니 구태여 권력을 얻기 위해 노력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가 몇 마디 말을 나누는 동안 베투스는 어느새 유피넬의 앞에 다가와 마지막 통보를 했다.

"발악은 여기까지인가? 어깨의 출혈을 보아하니 심각한 부상 같은데, 투항한다면 그래도 루네스 왕가 혈통에 예를 표해 육체는 보존시켜 주지."

"나라와 행성을 팔아먹은 네놈에게 목숨을 구걸 할 생각은 없다."

단호한 유피넬의 태도를 보고는 베투스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내가 한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것 같군…."

"뭐라고?"

"처음부터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죽일 생각이 없다니."

왕가 혈통을 모조리 몰살시킨 장본인의 입에서 죽일 생각이 없다는 베투스의 말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였다.

"우리의 목표는 티파렛 스피리츄얼 코어(Tifaret spiritual core)의 회수와 코어의 사용이 목적이다. 왕가의 명령에만 반응하는 코어의 사용을 위해선 마지막 남은 왕가의 혈통인 너를 이대로 죽일 순 없지."

"…그래서?"

"아직도 더 설명 해줘야하나? 좋아…."

그는 상체를 낮춰 유피넬과 눈높이를 맞추고는 광기 어린 미소를 띠며 새겨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투항한다면 최소한의 예의 표시로 자비를 베풀어 육신은 유지한 채로 코어 제어용 유기형(有機形)A.I로 만들어주마. 만약 이마저도 거절하고 투항하지 않을 경우 네년의 쓸모없는 육체는 폐기 시켜버리고 뇌만 적출해 사용해주도록하지."

그는 듣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는 숙인 몸을 일으켜 마지막 통보를 했다.

“담소는 여기까지. 자, 결정을 내려라.”

“결국 네놈은 이 행성의 밑바닥까지 긁어먹겠다는 속셈이군.”

“그 말은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다. 유피넬.”

대답을 듣기 위해 기다리는 베투스를 보며 유피넬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선 대답했다.

“…그래? 내 대답은 마찬가지야. 네놈 따위한테 목숨을 구걸하느니 이 자리에서 죽겠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미간이 씰룩거렸다.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출은 곧장 폭력으로 이어졌다.

그는 품안에 있던 회수한 단검을 꺼내 그대로 유피넬의 오른쪽 어깨에 내리꽂았다.

“아아아악!!”

이미 심각한 부상을 입은 어깨에 다시금 칼날이 박힌 덕에 어깨가 불에 데인 것처럼 타들어가는 것 같은 고통이 엄습했다.

하지만 베투스는 비명을 지르는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이어 복부를 세게 걷어찼다.

걷어차인 유피넬의 몸이 공중으로 붕 나르더니 쿠당탕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함교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제대로 된 낙법도 하지 못하고 떨어지면서 받은 충격에 유피넬은 몸을 활처럼 폈다가 이내 웅크리며 비명을 질렀다.

“크으윽…!”

하지만 베투스는 상대가 고통에 신음 하는 모습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바닥에 쓰러져 웅크리고 있는 유피넬을 향해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정말이지 어리석군… 이 몸이 베푸는 마지막의 자비를 거절하다니, 좋다. 딱 죽지 않을 정도만 괴롭혀 반송장을 만들어주지. 어차피 필요한 건 네년의 뇌니까.”

극심한 고통에 정신을 잃을 것 같았지만 이대로 있다간 베투스의 손아귀에서 망가질 것이 뻔했기에 유피넬은 풀려버린 다리로 간신히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고는 자신의 어깨에 꽂힌 단검을 이를 악물고 뽑아냈다.

“--!!!”

소리 지를 체력마저도 고갈되었으면서도 반쯤 풀린 눈으로 유피넬은 뽑아낸 단검을 역수로 움켜쥐고는 비틀거리며 베투스를 향해 칼을 겨눴다.

실로 엄청난 정신력이었다.

죽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의 출혈량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싸울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었다.

“그 투쟁심 하나만큼은 높게 사도록 하지… 하지만 투쟁심만으로도 안 된다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 몸으로 깨닫게 해주마.”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베투스는 주먹을 움켜쥐고선 유피넬에게 달려들었다.

‘이렇게 끝나고 마는 건가….’

그저 칼을 겨누는 것만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후의 발악이었기에

그녀에겐 날아오는 주먹을 피할 힘도 반격을 할 여력도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게 눈앞에 날아오는 주먹을 마주한 채 그녀는 마치 자신의 최후를 받아들이듯 두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눈을 감고 있음에도 느껴질 만한 강한 섬광이 번쩍이더니

섬광이 사라진 자리에 정체모를 흐릿한 실루엣이 나타났다.

그 실루엣은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베투스를 가로막더니 그가 내지른 주먹을 기세 좋게 튕겨냈다.

투웅!!

“큭!”

주먹을 막아내는 정도가 아니라 뻗어낸 주먹이 머리위로 튕겨져 나가는 강렬한 충격에 베투스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정체불명의 실루엣과의 거리를 벌렸다.

내내 여유로워 보이던 그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베투스가 뒤로 후퇴하자 실루엣은 점점 더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더니 최종적으론 유피넬과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의 모습으로 형체를 갖췄다.

몸 전체가 푸른빛을 머금으며 빛나는 모습은 사람처럼 보이기보단 마치 정령이 실체화 한 모습처럼 느껴졌다.

“마, 마야?(Maya)”

유피넬이 자신의 앞에서 서 있는 푸른빛 소녀의 이름을 부르자

푸른빛의 소녀 마야는 시선을 돌려 그에 응답하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유피넬. 인식 처리 지연으로 인해 늦었습니다.”

마야의 등장에 유피넬의 표정에 희망이 생긴 것과는 달리 베투스의 낯빛은 순식간에 사색으로 변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분명 베투스에게 있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만은 확실해보였다.

“ 마야? A.I 마야라고?! 아직 그랜드 오비탈(Grand orbital)의 기동은 이뤄지지 않았을 터인데!”

자신의 계획엔 없었던 인물의 등장에 베투스는 경악했다.

“그랜드 오비탈 마스터 후보의 위험을 감지, 유피넬 인피니타 루네스(Ufinel infinita runes)를 잠정적 세컨드 마스터로 인식. 티파렛 코어와의 소울 링크(Soul link)개시.”

푸른빛의 소녀 마야가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유피넬의 전신에 푸른빛이 감돌더니 그 빛은 얼마 지나지 않아 유피넬의 몸에 흡수되는 것처럼 빨려 들어갔다.

무언가의 처리가 끝난 듯 마야는 중지로 손을 튕겼다.

“세컨드 마스터로써의 인식 완료. 퍼스트 페이즈 종료, 세컨드 페이즈 생략, 최우선 목표의 생성. 위협요소의 제거를 시작합니다.”

제거라는 말과 동시에 마야가 베투스를 향해 손을 뻗쳤다.

그 순간 피키잉! 하는 소리와 함께 마야의 손끝에서 20여 줄기의 섬광이 호를 그리며 사냥감을 물어뜯으려는 짐승의 이빨처럼 사납게 날아들었다.

“이런!”

베투스는 금방의 일격이 막힌 것도 모자라 마야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인해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도 못한 채 서둘러 초상능력을 발동시켜 자신의 코앞까지 날아온 빛의 줄기에 저항하듯 양 팔을 앞으로 뻗어 방어를 시도했다.

빛의 줄기가 베투스에게 도달하는 순간, 엄청난 폭발과 함께 폭발음이 함교 전체를 뒤흔들었다.

투콰아아앙!!

폭발로 인해 함교 내 시설물들이 파괴되면서 일어난 먼지와 연기로 인해 시야가 거의 제로에 가까워지자 푸른빛의 소녀는 무언 가에게 명령하는 듯 다시금 딱하고 손가락을 튀겼다.

마치 그 명령에 반응하는 듯 함교 내에서 강한 바람이 일더니 모든 출구들이 열리면서 함교 안을 가득 메우던 먼지와 연기를 밖으로 배출시켰다.

함교 안의 자욱했던 연기와 먼지가 사라지며 점점 시야가 트이더니 베투스의 모습도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연기가 제대로 걷히지 않아 제대로 확인 할 순 없었지만 폭발의 중심지에 있던 사람이라고 치기엔 너무나도 멀쩡히 서있는 모습이었다.

“말도 안 돼! 그 정도 폭발에서도 멀쩡하다니…!”

그 폭발 속에서도 꿋꿋이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유피넬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지만 시야가 완전히 걷히고 그의 모습이 제대로 드러나자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입고 있던 장교복은 거의 넝마에 가까울 정도로 손상된 데다가 섬광을 방어하려고 뻗은 양팔은 이미 팔꿈치 부위까지 사라진 상태였다.

초상능력을 발동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피해를 막아내기는 힘들었는지 베투스는 왈칵하고 피를 토해냈다.

“크허억!!”

입에서 검붉은 핏덩이를 바닥에 토하는 것과 동시에 베투스도 기력이 다 했는지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뒤로 넘어가는 자세로 쓰러졌다.

베투스가 쓰러진 것을 확인한 마야는 등을 돌려 유피넬에게 다가가 천천히 조심스런 동작으로 그녀를 부축했다.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으, 응. 어떻게든 일어나는 거라면….”

하지만 베투스를 쓰러트리고 나서 간신히 위기를 넘기나 싶었지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계속 되지 않았다.

때 마침 폭발을 감지한 이그노란트의 병사들이 요란스럽게 폭발이 발생한 함교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쪽이다! 이곳에서 폭발이 감지됐다!”

마야는 전투태세에 임하려다 자신이 부축하고 있는 유피넬의 상처에서 심상치 않은 출혈이 계속 되는 것을 발견하고는 자리를 옮기기로 결심했다.

“이곳에 계속 있으면 위험하니 우선 제2 함교로 자리를 이동하도록 하죠.”

마야의 손끝에서 이형(異形)의 필드가 생성되더니 필드가 그 둘을 감싸는 것과 동시에 그녀들은 제2 함교로 전송되었다.

제2 함교로의 이동을 마치고 난 후 마야는 원격으로 그랜드 오비탈의 메인 시스템에 접속해 함 내의 모든 출입구를 봉쇄하는 것과 동시에 침입이 확인 된 장소는 모조리 진공상태로 만듦으로 이그노란트 병사들을 간단히 섬멸시켰다.

함 내 곳곳에 침입한 병사들은 위기를 느끼자 격벽을 파괴하기 위한 시도를 했지만 격벽이 파괴되기도 전에 호흡곤란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다.

사살 여부를 확인한 마야는 메인 시스템의 접속을 종료하고 주 관제실 시트에 누워있는 유피넬에게 다가가 그녀의 상태를 점검했다. 예상대로 오른쪽 어깨의 위험한 출혈은 계속 되고 있었다.

“심각한 상처군요. 의료용 나노 머신의 주입을 서두르죠.”

마야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유피넬은 고개를 저으며 치료를 거부했다.

“마야, 내 몸을 치료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그랜드 오비탈의 기동을…”

“애석하지만 당신의 능력으론 그랜드 오비탈을 정식 기동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티파렛 코어와의 싱크(Sync)가 끝난 왕가 혈통의 계승자라면 그랜드 오비탈을 기동할 수 있는 것 아니었어?”

그랜드 오비탈(Grand Orbital)

인체타입 유기형 A.I 마야가 관리하는 티파렛 코어를 탑재한 둥그런 원형 모양이 특징인

루네스 행성의 프로토 타입(proto type) 모선

티파렛 코어의 힘으로 인공적인 웜 홀을 발생시켜 자유로운 공간도약을 실현시킨 모선.

앞서 말한 그랜드 오비탈의 구동 요소인 티파렛 스피리츄얼 코어의 제어가 왕가 혈통에만 적용된다는 점 때문에

왕가 직속 전용이란 타이틀이 붙어있다.

“티파렛 코어와 소울링크를 개시하기 전에도 말했지만 유피넬 당신은 그랜드 오비탈의 세컨드 마스터로 인식이 완료 된 상태입니다. 그랜드 오비탈의 메인 기동엔 퍼스트 마스터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어째서? 현재 왕족의 혈통은 이그노란트의 침공으로 전부 사망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는 건! 나보다 왕족의 혈통이 강한 다른 사람이 살아남았다는 소리인거야?”

“<현재>까지는 그렇습니다.”

마야의 대답이 틀릴 리가 없었기에 자신 이외의 혈통 보유자의 생존 소식을 듣자 절망적이던 상황에서 유일한 희망을 찾은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말해줘! 구하러가야겠어.”

“지금 당장은 무리입니다.”

“내 몸 상태 때문에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직 죽진 않을 정도니까. 나보다 더욱 더 강력한 혈통이 살아남아 있다면 이 모선의 힘을 제대로 끌어낼 수 있는 그를 우선적으로 구출해내는 게 우선이야.”

자신보다 더 강력한 영혼력의 소유자가 생존해있다는 말에 유피넬은 이미 자신의 몸 상태도 잊었는지 구조 행동을 재촉하려했지만 마야는 고개를 저으며 이유를 설명했다.

“당신의 몸 상태도 문제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그게 아닙니다.”

“본질적인 이유라니?”

“그가 이 행성에 있지 않습니다.”

이 행성에 존재하지 않는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어떻게 왕가의 혈통이 루네스에 있지 않다는 거지? 그럼 행성을 떠나 대피해 있다는 건가?”

“의미가 틀립니다. 대피가 아닌 불시착이라 봐야겠죠.”

“불시착?”

불시착이란 말을 듣는 것과 동시에 유피넬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퍼즐처럼 짜 맞춰지기 시작했다.

'티파렛 코어의 퍼스트 마스터 인식 거부, 강한 영혼력을 가진 혈통의 존재, 이 행성에 존재하지 않는자, 불시착…'

몇몇의 증거들을 종합하게 되자 기억 속 한편에 접어두고 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두 번 다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었기에 유피넬에겐 입 밖으로 내기 조금 망설여지는 화제였지만 증거들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그 사건을 지목했기에 유피넬은 마음속으로 단단히 준비를 하고 용기를 내 마야에게 물었다.

“설마…플레이오넬(Pleionel)의 격침사건과 관련이 있는 거야?”

“그렇습니다.”

마야의 즉답에 유피넬은 비틀거리는 몸으로 일어나 마야의 어깨를 붙잡고 재차 확인을 시도했다.

“정말이야? 13년 전 플레이오넬 격침사건에 생존자가 있다고 말하는 거야?”

“예, 당신의 혈통 루네스 가(家)의 왕세자 유스티아 인피니타 루네스(Yustia infinita runes)의 영혼력이 코어에 감지되고 있습니다.”

생존의 기대조차 생각할 수 없었던 사람의 생존 사실을 접해서였을까? 유피넬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더니 다리가 풀려버린 듯 그대로 주저앉아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울음을 터트렸다.

“저, 정말로? 정말인거지? 오라버니께서 살아계신다는 그 말. 거짓말이 아니지?”

눈물이 범벅이 된 유피넬의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마야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유피넬의 물음에 답했다.

“사실입니다. 그동안 루네스 왕가 혈통들의 영혼력에 가려져 감지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루네스 왕가 혈통의 영혼력이 대부분 사라졌기에 일반적으론 감지하기조차 힘들 정도의 극히 미비한 정도긴 합니다만 티파렛 코어에 유스티아님의 영혼력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어도 어떻게든 생존한 상태라 판단됩니다.”

“다행이야, 흐흑… 정말 다행이야.”

대령이란 계급이 무색할 정도로 넋을 놓고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이지 그저 평범한 그 나이 또래의 여자아이와 다를 것이 없어보였다.

“마야. 오라버니가 계신 곳은 어디지?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는 거야?”

“감지되는 위치는 우리은하 태양계에 위치한 지구란 행성입니다.”

생소한 별의 이름이었다. 그것도 자신들이 위치한 안드로메다은하 넘어 있는 행성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는 거리였다.

“지구? 그곳은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 행성이지?”

“안드로메다은하 너머에 존재하는 행성으로 대략적인 거리로만 광속으로 약 220만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행성입니다. 다행인 건 이곳 루네스와 상당히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있는 행성으로 문명체의 존재도 있는 것으로 보고됩니다.”

220만 광년… 그야말로 까마득한 수치의 거리였지만 그랜드 오비탈의 공간이동이라면 220만 광년의 거리는 딱히 문제가 될 거리는 아니었다.

“어떻게 오라버니가 그렇게나 먼 곳에 있는 거지?!”

“최종 연락이 두절되기 전까지 플레이오넬은 공간이동을 위해 웜 홀을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폭발 직전 플레이오넬에 탑재된 A.I의 마지막 기록으로도 유스티아 님이 탑승한 유인 탈출기가 사출 되었다는 보고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들로 유추하자면 어디까지나 예측입니다만… 유스티아님이 타고 있는 탈출기는 폭발 직전에 플레이오넬에서 탈출에는 성공했으나 웜 홀의 경계에서 튕겨져 나가 지구란 곳에 불시착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어디까지나 예측이긴 해도 오라버니의 영혼이 감지되고 있다니 분명 살아계신다는 것은 분명하겠지.”

마야의 상황분석을 듣고 난후 유피넬은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무언가 결심한 듯 눈에 고인 눈물을 닦고는 마야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A.I 마야. 세컨드 마스터로써 묻겠어.”

“말씀하십시오.”

“세컨드 마스터의 명령 권한은 어디까지 실행 가능하지?”

“그랜드 오비탈의 전투적 기능은 대부분 제약됩니다만. 최소한의 긴급기동은 가능합니다.”

“긴급기동의 가동능력 범위는?”

“코어의 기능을 기동에만 국한시킨다면 마이크로 웜 홀의 전개도 가능합니다. 다만…”

“다만?”

“마이크로 웜 홀의 생성에 따른 코어의 에너지 소비를 계산한다면 지금 코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 보유량으론 지구까지의 거리를 생각했을 때 웜 홀을 이용한 차원 이동이 가능한 횟수는 단 ‘두 번’ 뿐입니다. 잔여 에너지양을 산출해 봤을 때 다른 행동은 <절대> 허가되지 않습니다.”

두 번이란 횟수가 제약적으로 다가오긴 했지만 문제시 될 만 한 횟수는 아니었다.

간단하게 생각하자면 지구까지 가는데 한 번, 모성 루네스까지 오는데 한 번이란 소리다.

하지만 더 이상 다른 방법을 고려할 상황도 아니기에 유피넬은 이 방법에 모든 것을 걸어야하는 상황이었다.

“두 번이라… 마야, 가능하겠어?”

“무리라고 해도 지구로 갈 생각 아니셨나요? 하지만 주의해주십시오. 앞서 말했듯 코어의 모든 에너지를 웜 홀의 생성에 쏟게 되면 아까와 같은 위급 상황이 발생 되도 제가 직접적으로 당신을 보호 할 수 없게 됩니다.”

“알겠어, 명심하도록 할게.”

“그럼, 마스터. 최종 기동에 앞서 제 부탁을 하나만 들어주시겠습니까?”

마야의 부탁이란 말에 유피넬은 그 부탁이 뭘까 궁금해졌다.

“말해봐. 무리가 안가는 선이라면 들어줄게.”

“치료를 권하는 바입니다.”

마야는 이미 피가 흥건할 정도로 젖어있는 주 관제실 좌석 밑을 가리키며 말했다.

“상처의 출혈을 계속 방치하셨다간 출혈로 인한 쇼크가 우려됩니다. 의료용 나노머신 캡슐과 에테르(Ether)를 준비하도록 하죠.”

딱! 하고 손가락을 튕기는 동시에 마야의 다른 손안에 의료용 캡슐과 에테르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용액이 남긴 병이 전송됐다.

“그럼 부탁할게.”

심각한 부상과는 달리 의료처치는 의외로 간단했다.

의료용 캡슐과 에테르라 불리는 용액을 같이 섭취하고 남은 용액의 일부를 환부에 바르는 것으로 치료를 끝마쳤다.

아프면 약을 먹고, 환부에 약을 바른다. 그야말로 기본적이면서도 심플한 치료방법이었지만 환부에서 나던 피가 멎고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효과는 즉효에 가까웠다.

“어떠신가요?”

마야의 물음에 치료를 마친 유피넬은 한결 나아졌다는 듯 오른 팔을 빙빙 돌려보며 자신의 상태를 어필했다.

“아아, 고통도 사라졌고 몸도 편해졌어. 고마워 마야.”

“별 말씀을, 하지만 무리하진 마세요. 곧 상처는 아물겠지만 출혈이 심했기에 체력의 손실을 감당하기 힘들 겁니다. 이럴 때 제대로 된 영양공급이라도 되면 좋겠지만….”

“알아, 무슨 말인지. 하지만 전시 상황에다 한시가 급한 이런 때 그런 사치를 부릴 때도 아니니까.”

“제 부탁은 이걸로 끝났습니다. 마스터 명령을.”

유피넬은 크게 숨을 몰아쉬고는 최종적으로 결심이 섰는지 마야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마야, 그랜드 오비탈의 세컨드 마스터로써 명하겠어, 지금 이 시간부로 그랜드 오비탈의 전 시스템을 긴급기동으로 전환. 도착지는 우리은하 태양계의 지구. 모든 코어의 에너지를 웜 홀의 생성에 집중시키도록.”

유피넬의 지휘에 맞춰 마야가 능숙하게 명령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랜드 오비탈. 긴급기동 모드로의 전환. 모선 주 관리 시스템을 제 1함교에서 제 2함교로의 이관(移管)설정 완료. 목표점 지구로의 최종 설정 확인. 코스 변경 없음. 코어의 전 에너지를 마이크로 웜 홀의 생성으로 전환합니다.”

코어의 기동과 함께 그랜드 오비탈의 시스템들이 활성화되고 웜 홀의 입구인 마이크로 블랙홀을 만들기 위한 공간 압축이 시작되었다.

기이이이이이잉------!!

압축률이 60%를 넘기고 있을 쯤. 폐쇄되었을 제 1함교에서의 통신이 모니터에 표시되었다.

침입한 자들의 처분은 마야 자신이 직접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1함교에서 들어온 통신에 마야는 오작동 여부를 체크했지만 수동으로 들어오는 통신의 여부를 확인하게 되자 생존자의 여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마스터, 1함교에서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연결해줘.”

통신이 수락되자마자 스피커를 찢을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크으하하하하하하!! 제법이군 유피네-엘!!”

1함교에서 통신이 들어온다고 했을 때부터 어림짐작으로 예상했던 바였지만… 모니터가 비추고 있는 상대는 베투스였다.

“크흐흐흐… 제법 기특한 짓을 했더군. 마야와의 계약을 이미 끝냈을 줄이야! 그건 내 계산 밖이었어. 아까 너무 뻔한 경우였다는 말은 취소하도록 하지. 정말이지 기상천외였다!”

“용케 죽지 않고 살아있었군 베투스.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아직 죽기엔 너무 이르다고 신이 돌려보내더군. 크하핫!!”

베투스는 물음에 엉뚱한 소리를 하고선 웃음을 멈추지 않고 떠들기 시작했다.

“근데, 지금 어딜 가시려고 하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 뭐, 대답해 줄 리 없겠지만 말야!! 흐하하하!!”

팔꿈치까지 날아간 팔로 마치 모니터를 붙잡으려는 듯 베투스는 무의식적으로 양 팔을 뻗는 동작을 취했지만 팔꿈치까지 날아간 팔을 확인하고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크크큭, 이것 참… 마야를 직접 마주친 것치곤 큰 대가를 치뤘군.”

“그게 아니라 행성을 팔아넘긴 죄겠지. 당신의 볼품없는 팔 두 짝으론 아직 죗값을 다 치루지 못했다고 생각하는데?”

“크하하하!! 좋아! 좋아! 아주 좋아!! 그 독기 품은 표정이며 말투까지 정말 좋다! 네년의 그 눈을 뽑아서 장신구로 만든다면 정말 멋진 장신구를 만들 수 있을 거 같군!! 기다려라. 내 두 팔을 가져간 대가는 절대로 싸게 먹히지 않을 테니 말이다! 흐으하하하하하하하!!!”

미쳐버린 게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의 광기를 표출하던 베투스는 자신의 초상능력으로 자신을 비추는 카메라를 부숴버렸는지 그걸로 1함교와의 통신은 두절되었다.

통신이 두절 된 후 유피넬은 베투스의 생존의 의문에 대해 마야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지? 침입이 확인 된 구간을 모조리 밀폐시켜 제압한 것이 아니었나?”

“현재 확인해 본 바로는 1함교의 폐쇄 격벽이 파손 되어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그 공격을 받고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 같군요 아마, 저희가 2함교로 전송되는 사이에 그 역시 에테르에 인한 치료를 받은 게 아닐까 예측됩니다.”

좋지 않은 그의 생존 소식에 유피넬은 곤란한 듯 엄지손가락을 깨물었다.

“1함교에서 2함교까지 오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

“함 내 전 구간에 걸쳐서 격벽을 쳐두고 2함교를 제외한 함 내 모든 자동시스템을 정지시켰습니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론 그 역시 초상능력의 자유로운 사용은 힘들 것이기에 지구까지 이동하는 동안 사실상 2함교로의 침입은 힘들 것이라 판단됩니다.”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다는 거군… 마야. 현 시점에서 기동을 중지하는 것은 무리겠지?”

“그를 상대하실 생각인가요? 전 현명하지 못한 판단이라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 말대로 마야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부상을 입었다곤 하지만 상대는 초상능력자다.

그에게 대항하려면 최소한 상대하는 사람도 그에 준하는 초상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간신히 싸움이 성립 될 상황인데다 유피넬에겐 그에게 대항 할 초상능력도, 최소한 그에게 위협이라도 될 만한 무기조차 제대로 보유하고 있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이미 마이크로 웜 홀의 생성을 위한 공간 압축도 거의 다 완료된 상황입니다. 지체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군, 마치 커다란 폭탄 하나를 껴안고 가는 셈이네.”

“마스터의 판단에 따르도록 하죠.”

여기서 기동을 중지시키면 웜 홀은 소멸 될 것이고 그 후 마야가 베투스를 제압한다하더라 해도 다시금 웜 홀을 전개해 지구에 간다한들 루네스로 돌아올 에너지가 남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무모한 작전을 시도하는 의미 자체가 사라지게 되는 셈이었다. 돌이킬 수도 없는 상황에 유피넬은 생각하기를 관두고 결심을 굳혔다.

“…명령은 바꾸지 않겠어. 마야.”

“알겠습니다, 공간 압축 완료! 마이크로 블랙홀 전개합니다!”

키유우우우웅!!

그랜드 오비탈의 중앙에서 커다란 빛의 기둥이 쏘아 올려졌다.

빛의 기둥은 루네스 상공을 꿰뚫어 어느 한 점에서 융합되듯 빨려 들어가더니 그랜드 오비탈의 크기만한 거대한 검은 구멍을 만들어냈다.

“게이트 생성 완료! 차원경계면의 건재확인! 그랜드 오비탈.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마야의 최종보고에 유피넬은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팔을 뻗으며 명령을 내렸다.

“그랜드 오비탈 테이크 오프!(take off) 웜 홀 진입 이후 그랜드 오비탈의 모든 제어권한은 마야에게 이양하겠어.”

“Yes, my master. I have all control."

명령과 동시에 그랜드 오비탈의 각 구간들이 빛나며 검은 차원의 경계면으로 흡수되듯 빨려 들어갔다.

무모하지만 루네스 행성의 존망을 건 사상 초유의 구출 작전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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