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마이페이지
 
Q&A
[공지] 노블엔진 홈페이지가 …
[꿈꾸는 전기양과 철혈의 과…
《노블엔진 2017년 4월 2차 …
[리제로 10 + 리제로피디아] …
[Re :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
 
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바보는 마법이 서투릅니다.
글쓴이: 아카토
작성일: 12-07-11 23:50 조회: 1,642 추천: 0 비추천: 0

"다음 칸에 당신의 이름을 적으시고, 다음 버튼을 눌러주세요. 다음 란에서 선택한 학교는 앞으로 1년동안 체험하게 될 곳이니 시간을 충분히 갖고 고려하시..."

"아오, 말 좀 빨리빨리 하라고!"

기계 앞에 있는 그는 쾅 하고 기계를 발로 찼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곳에서 나오는 주의문은 빨라지거나 그러진 않았고, 오히려 근처에 있는 선생님에게 눈총을 받을 뿐이었다.

'으.. 이대로 가다간 오늘 그 프로 제대로 못 보는데..'

체술의 왕도. 그가 매주 금요일마다 꼭 챙겨보는 프로그램의 이름이다. 평소에는 학교가 끝나고 여유 있게 집에 가서 샤워한 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보는 것이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지망 체험학교 결정일. 그 과정이 6교시 이후, 하교 시간에 겹쳐져 버린 건 그에게 있어 불운이었다. 그게 하필 금요일이란 사실이 그에게 어떻게 다가왔을지는 딱히 말을 안 해도 알 것이다.

"어이, 빨리 좀 해. 뒤에 기다리는 애들이 장난 아니야."

"나도 알아. 근데 이 기계가 하는 말이 도통 끝나질 않잖아!"

"...바보냐 넌. 그냥 이름 쓰고 다음 버튼 누르면 되잖냐."

"아."

그랬었구나. 그는 뒤의 급우의 말을 듣자마자 행동에 옮겼다. 도중에 이름을 잘못 쓸 뻔 했지만 다행히 자기 이름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제대로 고치고 다음으로 진행했다.

"지망하는 학교의 이름을 선택하시고, 확인 버튼을 누르세요."

이번에는 다행히 기계의 말이 빨리 끝났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는 건 아까와 비슷했다. 이번엔 그가 멈춰 서서 멍하니 기계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야, 뭐하고 있냐. 학교 이름 적으라잖아."

"아, 어.. 알았어."

그는 급우의 말에 떠밀려 어쩔 수없이 학교 이름을 적는 칸을 눌렀다. 밑에 키보드와 비슷한 화면이 새로 생겼지만 그의 손가락은 그저 허공에 떠 있을 뿐이었다.

'그 학교.. 이름이 뭐더라..?'

뒤의 친구들이 들으면 바로 뒤통수를 한 대 때려버릴 정도로 바보같은 질문을, 그는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TV프로 생각에 온 정신이 팔려있어서 순간 잊어버린 학교 이름을 기억나게 하기 위해 계속 끙끙대고 있는 그의 모습은, 뒤의 아이들의 시점에선 그저 시간 잡아먹는 뻘짓에 불과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멍청아! 빨리 안 해?! 설마 학교 이름을 까먹은 건 아니겠지?"

"그, 그럴 리가!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까지 바보는 아니라고!"

바보. 그는 그 말을 순순히 인정하고 급우에게 제대로 물어봤다면, 다음에 그런 사건이 일어날 리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바보임을 인정하기엔 너무 자존심이 강했다. 그래서 끝까지 머리를 감싸며 고생했고, 순간 뭔가 떠오른 듯 눈을 번뜩였다.

'그래! 분명 카리...카리 뭐였어!'

재빨리 화면의 키보드를 이용해 '카리'라는 단어를 쳤다. 다행히도 그 기계는 자동검색기능을 지원하는지 화면에 두 고등학교의 이름이 적혀져있었다. 이거다! 하는 마음으로 그는 첫번째 항목을 누르고 확인 버튼을 눌렀다.

"'카리안고등학교'가 맞습니까? 맞으시면 확인 버튼을, 아니시라면.."

"맞아! 맞다고! 그러니까 빨리!"

꼭 얘기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는 그렇게 외치며 확인 버튼을 강하게 눌렀다. 그러자 바로 기계 옆쪽에서 종이 한 장이 인쇄되었고, 그 종이를 가로채듯이 가져간 뒤 계단을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2분.. 좀 더 속력을 내지 않으면!'

"빠르게!"

뭔가 주문과 같은, 하지만 그저 그의 희망을 외치는 것에 불과할 뿐일지도 모르는 그 소리에 그의 발은 평소의 2배, 아니 그 이상의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늦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아까 가져온 종이를 확인했다.

'2학년 강현성, 카리안고등학교. 다음 주 월요일 오후 2시 학교 앞으로.'

물론 종이에 이렇게 적어져 있던 것은 아니지만 그의 눈은 필요한 정보만을 읽어냈고, 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질주를 계속했다. 분명 그에겐 지금 프로그램의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다음 주 월요일에 겪을 사태는 그의 머리에 들어가기엔 너무 미래의 일일테니까.


* * *


"하아.."

대형버스와도 같은, 아니 그것보다 더 큰 인원을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차량에 연갈색 단정한 단발을 한 여자가 제일 앞쪽에서 한 칸 뒤, 오른쪽 구석에 앉아 창문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그 자리는 딱히 그녀가 마음에 들어앉은 것은 아닌 듯 했다. 이미 그 뒤에는 다른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기에 어쩔 수없이 앉은 것 같았다.

'이제.. 못 보는 걸까.'

분명 그녀는 마음속으로 생각한 말일테지만 이미 그녀의 입은 그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만큼 아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아니, 그래도.. 바로 옆이잖아? 서로 얼굴 정도는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그녀의 표정은 한숨 쉴 때와 같았다. 속으로는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지만 역시 안 되겠지. 라며 머리를 한 번 쓸어 올리고 시선을 반대쪽으로 향했다.

월요일, 일주일의 시작을 알리는 날. 하지만 그녀에겐, 뭔가를 끝내는 날임에 분명했다. 지금 그녀가 타고 있는 차량은 지망 체험학교로 이동하는 버스이다. 치유와 강화 계열에 특화된 그녀의 능력은 마법학교에선 물질계, 즉 특수계의 한 종류로 정해져 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마법학교인 '카리안고등학교'로 가고 있는 중이다.

'저기서 모음 한 자만 바꾸면 그 녀석을 다시 볼 수 있을 텐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녀는 '카리안고등학교'라 써져있는 버스 앞쪽에 부착된 종이를 계속 바라보았다. 마치 원망하는 눈빛으로. 하지만 그 단어 전체에 원한이 있던 건 아니었나 보다. 유독 '안'에서의 'ㅏ'를 계속 보고 있었다.

'현성이는 역시 '카리언고등학교'를 지망했겠지. 그 녀석, 체술 바보니까.'

강현성,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에겐 기적 같은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이걸 타라는건가?"

지금 여기에 있을 리가 없는, 있어서는 안 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 쪽을 확인했다.

"...현성이야?"

"어? 민유린?"

그였다. 마음속으로 계속 못 볼 거라고 여겼던 그가 그 곳에 서 있었다. 순간 민유린이라 불린 그녀의 얼굴엔 미소가 피었지만, 이내 사라졌다. 아, 이 녀석 바보니까. 분명 적힌 글자를 착각하고 온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체념한 유린에게 현성이는 말을 걸었다.

"유린이 니가 여기는 왜 있는 거야? 여기, 체술 학교 쪽 아니었어?"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네요. 현성이 너, 버스 잘못 본 거 아니야?"

저거 봐봐. 라며 유린은 버스 창가에 붙여있는 종이를 가리켰다.

'카리안고등학교'

아까까지 증오하며 바라보던 물건을 가리키며,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여기는 '카리안고등학교'버스야. '카리언고등학교'는 저쪽 뒤편에 있다고."

어째서 그녀가 다른 학교의 버스 위치를 아느냐 하면, 그를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갔다는 건 비밀로 묻어두자. 그렇게 그녀는 생각했다.

유린의 말을 들은 현성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다시 가지고 있던 종이를 확인하더니, 버스 앞에 있던 종이와 대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끝내고 그녀를 향해 말했다.

"응, 맞잖아. '카리안고등학교'."

"응?"

그녀는 어이없어 약간 높은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현성에게 다가가 그가 갖고 있던 종이를 빼앗고, 확인했다. 그리고, 믿을 수 없어 대조했다. 하지만 같았다. 한 글자의 차이도 없이 정확하게 같았다.

"봐. 맞잖아. 나 버스 잘못 찾아올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뭐."

".....이 바보야!"

콩, 하고 유린은 현성의 머리를 최대한의 세기로 때렸다. 하지만 그는 별 타격이 없었는지 자신이 왜 맞았는지 그저 궁금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 바보인 게 분명해. 그녀는 아픈 손을 털며 그렇게 생각했다.

"왜 때리는 거야! 제대로 잘 찾아 왔다니깐 글쎄."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어째서 현성이 니가 '카리안고등학교'를 지망하는 건데!"

"응? 그야 물론, 거기 체술 전문학교로 유명한 곳이잖아?"

"....."

유린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너무나도 바보스러움에, 순진함에 말이 막혔다. 그리고는 숨을 들이쉬고 이때까지 질러본 적 없는 톤의 소리로 외쳤다.

"카리안고등학교는, 마법학교란 말이야, 이 바보야!!!!"

".......에?"


* * *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고, 봄의 기운을 조금은 갖고 있는 따뜻하지만 서늘한 바람이 그녀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창 밖을 바라보는 유린은, 이상하게도 웃음이 났다.

"도대체 이게 뭐야.. 앞에 '카리'만 붙으면 다 같은 곳인줄 알았다고..."

"그러게 잘 봤어야지. 작년까지는 그냥 우리 사이에서 카리고라고 불렀지만, 이번에 체술이랑 마법 쪽으로 나뉘었다고 선생님이 분명히 말했었잖아."

"그딴 거 몰라. 이제 나 어떡하냐아.."

자신의 바보스러움을 한탄하는 현성은 유린의 옆자리에서 낙담하고 있다. 아마 그녀는 그의 이런 모습에 웃음이 난 것일거다. 정말 바보스러우면서, 귀여운.

'못 볼 줄 알았었는데, 이렇게 될 줄이야.'

"응? 유린아, 뭐라고 했어?"

"어? 내가 뭐라고 했었나?"

그녀는 아직도 잘 모르고 있다. 자신은 마음속으로 생각할 뿐이라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입으로 중얼거린다는 버릇을. 주변 친구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카리안고등학교'라 써진 버스는 아까의 사건이 있고 나서 금방 출발했다. 일단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유린은 현성을 데리고 차에 탔고, 현성은 그저 패닉 상태에 빠져 질질 끌려왔다. 마치 시체처럼.

"그나저나 정말 큰일이네.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고."

그 날이 금요일만 아니었으면! 이라며 무릎을 치는 그를, 유린은 그저 지긋이 바라보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이대로 같은 학교에 다닌다면..'

순간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한없는 기쁨에 빠졌지만, 금방 고개를 저으며 표정을 바꿨다. 그래선 안 된다. 그는 이때까지 체술만 배워왔으니 마법학교에 잘 적응할리가 없다. 분명 그곳에 도착하면 카리언고등학교로 보내달라고 교장에게 요청하겠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또..

'헤어지는 걸까.'

"응? 헤어진다고?"

이번에는 조금 목소리가 컸는지, 현성의 귀에도 도달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당황하며 손을 뻗어 양옆으로 저어대며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얼버무렸다.

"아까부터 뭘 혼자 중얼거리는 거야. 말하고 싶은 거 있으면 제대로 말해."

"그게.. 현성아,"

이대로 그냥 마법학교에서 같이 지내지 않을래?

라고 그녀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그의 말대로 제대로 전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현성이를 좋아하지만 그건 현성이에게 있어 인생까지 고려할 중요한 문제다. 이제 와서 마법을 같이 배우자느니, 그런 안이한 소리를 할 수 없었다.

"거기 도착하면, 나도 같이 말해줄게. 실수가 있었다고."

"어, 정말? 고마워!"

결국 그녀는 끊긴 말을 자신의 진심과 반대로 이야기했다.

순진하게 기뻐하는 그를 보며, 그녀는 약간 미소가 지어졌지만, 아까와 같이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슬픈 미소에 가까웠다. 그녀의 그런 마음을 알기나 하는 건지 현성은 유린의 손을 잡고,

"역시, 친구가 있는 게 좋긴 하구나."

만면에 미소를 지은 채 그렇게 말했다. 유린은 그런 그의 표정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이 웃음은 이게 마지막이야. 라고 말을 거는 듯했다. 순간 눈물이 날 뻔한 그녀는, 급히 손을 놓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 왜 그래, 칭찬한 건데."

"....몰라, 바보야."

바보. 현성이는 정말 바보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녀는 다시 창밖의 풍경에 눈을 고정시켰다.


* * *


그 후, 대화라 부를만한 이야기는 서로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앞자리에 가까운 현성과 유린은 출입문이 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에서 내렸다.

"그럼 어떡할까. 일단 교장한테 말하러 가야겠지?"

그는 내리자마자 그녀에게 그렇게 말했다. 한시라도 빨리 체술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었겠지만 유린에겐 어떻게 들렸을까.

"아니, 일단 강당에서 학교소개 비슷한 걸 하니까 그거 끝나고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다짜고짜 찾아와서 고등학교 이름을 잘못 입력했으니 당장 여기서 떠나야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도 선생님에게 실례일 거야. 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말하니 그는 그 의견에 순순히 동의하고 같이 강당으로 향하기로 했다.

하지만 둘은, 교문을 향해 발을 한 발짝 떼자마자, 동시에 같은 문제에 도달했다.

'강당이.. 어디지?!'

보통의 중학교라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소임에 불구했지만, 이 고등학교를 너무 달랐다. 너무 넓다. 눈으로는 끝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넓었다. 마치 이 학교가 하나의 마을과 같을 정도였다.

"이, 일단, 학생들을 따라가 보자."

그녀도 당황했지만, 바보인 현성이를 먼저 챙겨야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말하며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 때 그녀는 눈치 못 챘지만, 그 행동이 그와 3년동안 같은 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만져보는, 즉, 최초의 스킨십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현성도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저 유린에게 자기 팔을 끌려간다. 그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학교 진짜 넓네. 완전 중학교랑 비교도 안 되잖아."

"그러니까. 깜짝 놀랐어. 아, 저기가 강당인가 보다!"

유린은 대각선 방향의 위쪽에 있는 큰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학생들을 배려하지 않는, 꽤 높은 위치에 있는 건물이었다. 그녀도 강당까지 가기 위해 놓여진 계단을 보며 저거 너무한 거 아니야.. 라고 말했다.

"저 정도면 무난하지 않아? 기껏해야 워밍업 정도 되겠네."

"마법 계열을 너 같은 체술 쪽과 비교하지 말아줄래? 기초 체력이 다르거든."

"그건 너희들의 몸이 너무 약한 거잖아."

마법학교에서 태연하게 마법을 사용하는 자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쉽게 하는 그의 모습. 그건 그가 이 학교에 들어갈 의사가 없다는 걸 대신해서 표명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유린은 급히 그의 입을 막고, 다른 사람이 들으면 어쩌려고, 이 바보야! 라며 크게 외쳤다.

"알았어. 미안해. 잘못했어."

"조금은 진지하게 사과하란 말이야. 도대체 너의 사과에는 진심을 찾을 수가 없어."

"나는 진심을 다해 말하는 건데.."

그런 것 치곤 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그렇게 말하며 유린은 현성의 팔을 꼬집었다. 그는 즉각 아프다는 반응을 보였다.

"으.. 진짜 니 꼬집기는 예전부터.. 아,"

그는 뭔가 생각난 듯이 유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너랑 나, 3년동안 같은 반이었구나."

"....이때까지 몰랐던 거였어?"

"응, 전혀."

"그러니까 니가 바보란 거야."

자꾸 바보라고만 하지 말라고! 라며 소리치는 그를 유린은 그저 째려보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어떻게 그런 사실까지 모를 수가 있는 거지.

"어쨌든, 이제 서로 다른 고등학교 다니게 됐으니, 헤어지게 되는 거네."

"...."

그녀가 버스에서 심각하게 하고 있던 고민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쉽게 꺼냈다. 잠시동안의 침묵. 그리고 먼저 말을 꺼낸 건 유린의 쪽이었다.

"아니야, 어차피 이건 체험학습이니까 1년만 지나면.."

1년만 지나면..?

그를 다시 볼 수 있나?

아니, 어차피 그는 체술 전문학교를 다닐 거고 나는 마법학교를 다니게 될 것인데.

그 사실을 문득 깨달은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을 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뭐야, 갑자기 침울해지고. 오늘 너, 좀 이상하다?"

그 말 그대로다. 그녀는 오늘 아침부터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3년동안의 짝사랑이 끝을 맞이하는데 기분이 좋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어쨌든 말이야... 그동안 그, 뭐냐. 여러모로 도와준 거 고마워."

"....응?"

"아니! 왠지 생각해 보니 나, 너한테 도움 받은 기억밖에 없어서. 그래서 지금이라도 이렇게 말 안하면 다른 학교에 가서도 너무 미안할 것 같아서.."

고맙다.

그가 벚꽃이 흩날리는 지금 이 길에서, 나한테 말해줬다. 고맙다고.

순간 마음속에 뭔가 뭉쳐있던 게 풀어지면서, 얼굴이 빨개지는 걸 느꼈다. 뿐만 아니라 눈물까지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버스에 있던 때와 같이 얼굴을 그의 반대쪽으로 움직여 시선을 피했다.

"...뭐야, 이것도 칭찬해 준건데. 오늘 너, 내가 뭐라고만 하면 자꾸 얼굴을 돌린다?"

".....나도.. 고마워."

"잘 안 들려. 뭐라고?"

"...나도 고마웠다고! 이 바보야!"

고맙다고 할 때까지 바보라고 하는 거냐.. 라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그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제 정말 끝나는 거구나.

3년간의 짝사랑.

현성이에 대한 내 마음도 전하지 못한 채로, 끝나게 되는 거구나.

하지만, 그녀는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고맙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이야기하다보니 거의 다 도착했네. 자, 빨리 가자."

"..그래."

이제 미련은 없어. 이걸로 정말 만족해..

유린은 작은 소리로 그 말을 계속 되뇌며 그의 손을 잡고 강당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녀의 표정은, 그리 밝은 표정이라 할 수 없었지만.


* * *


그는 강당에 들어서기 전부터 생각했다. 이 크기는 너무한 거 아니냐고.

실제로, 카리안고등학교의 강당은 수용인원 3000명을 기본으로 잡고 만든 건물이니, 보통 중학교에서 볼 수 있었던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를 느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느낌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미 그곳엔 학생이 가득했기 때문에, 웅성거림이 가득했기 때문에, 예전 강당에서 느끼는 기분과 차이가 없었다.

"우와... 무슨 야구장 뺨치는 스케일이네.."

혀를 내두를 정도다 정말. 그렇게 멍하니 구경을 하고 있는 그를, 유린이 다시 팔을 꼬집어 자신에게 집중해 달라는 의사를 표현했다. 정말 아프다니깐 글쎄,

"음.. 정해진 장소는.. 딱히 없나보네. 저쪽에 같이 서자."

"어? 알았어."

왠지 아까보다 후련한 느낌의 그녀였다. 마음속의 뭔가를 정리한 듯한, 그런. 그래도 그는 뭘 어떻게 정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린에게 끌려간 현성은, 가장 왼편 뒤쪽쯤에 자리를 잡았고, 이번엔 주변의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이렇게들 특이하나?'

중학교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스타일의 사람들이 가득했다. 아니, 오히려 그에게는 컬쳐 쇼크일 정도였다. 자신의 체격만한 여자, 만화에나 나올듯한 모범생 스타일의 남자, 거인이라 불러도 괜찮을 정도로 생긴 우직한 남자...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그는 한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거, 안 무거울까..'

약간 멀리 있어, 소녀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등에 매고 있는 거대한 대포는 현성뿐만 아니라 주변의 시선을 가로채갈 만큼의 가치가 있는 물건이었다.

도대체 정체가 뭘까, 유린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그는 또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거라 생각하고 그냥 혼자서 생각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도달한 결론은,

'....탱크의 여체화인가!?'

너무나 상쾌하게도 바보 같은 결론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내린 그 대답이 기발하다 생각해 옆의 유린에게 말하려는 찰나, 거대한 강당의 맨 앞에 위치한 교단의 자리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아, 아. 크흠."

검은색 올백머리에 깔끔한 정장. 그리고 꽤나 젊어 보이는 목소리는 웅성거리던 강당을 순식간에 조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까 그 소리는 마이크 테스트였는지, 마이크 위치를 조정하고 다시 말을 꺼냈다.

"학생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카리안고등학교의 교장. 카리안입니다."

'에에에에에엑?!'

젊어 보이는 목소리. 그건 단지 목소리가 젊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자체가 그렇게 늙어 보이지 않았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 정체가 교장이었다는 사실에 강당 전체가 술렁거렸다.

'낙하산인가?' '아니, 그래도 이 학교 이름, 예전부터 카리안고 아니었어?'

다양한 음모설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그 설의 주인공인 카리안 교장은 다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학생 여러분들께 혼란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지금 저는 단지 모습을 약간 변화시킨 것뿐이니 오해 없길 바란다고 처음에 말씀드리는 걸 잊었네요. 허허, 이래서 나이란.."

깔끔한 정장의 청년이 '이래서 나이란...'이라니, 게다가 목소리도 전혀 노인답지 않아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이해했는지, 술렁거리는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전혀 와 닿지 않는 사실이었다.

'...벼, 변신?!'

마법이란 게 그런 것도 가능했나?!

처음 들어보는 엄청난 사실에 그는 결국 바보라는 말을 듣고라서도 꼭 알아내야 겠다고 생각했고, 그대로 유린에게 물어봤다.

"응? 특수계 마법이라면 가능해. 별로 놀랄 일도 아니야."

매우 놀랐던 그와는 달리, 그녀는 차분히 이 현상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생각해보니 현성이는 특수계 아이들과는 별로 만난 적이 없는 것 같네..'

이때까지 같은 반을 하며 원소계와 소환계는 많이 봤지만, 그 외의 연금술과 특수계는 별로 보지 못했다. 애초에 그에 해당하는 인원이 별로 없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그는 신기한 현상에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본 유린은 그저 약간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에.. 이번 체험학교 시스템은 이번이 처음으로 실행되는지라, 본교도 대단히 긴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대하고 있죠. 여기 오신 대부분이 알다시피, 카리안고등학교는 옛부터 우수한 명문마법고로 소문이 나 있는..."

하지만, 흥미란 건 생기는 것도 금방이지만 없어지는 것도 순식간이다.

그 뒤로 이어지는 말에 현성은 집중하지 않고, 계속 주변을 탐색하고 있었다. 도중에 유린이 교장선생님 말씀에 집중해! 라며 한 대 쥐어박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다니게 될 학교도 아닌데 뭐. 그렇게 생각하며 열심히 주변을 관찰했다. 아까의 그 소녀도 다시 한 번 볼 겸.

"그래서 이번에 들어온 신입생들에게 본교만의 특색 있는 시스템을 체험하게 해주기 위해, 오늘부터 당장 기숙 체제에 들어갈까 생각입니다."

""네에에에에에?!""

아까와 다른 수준의 함성이 강당 전체에 울려 퍼진다. 현성은 주변을 관찰하는 데 신경을 쓰다가, 갑자기 듣게 된 큰 소리에 깜짝 놀랐다.

"으, 에? 무슨 일이야, 도대체?"

"그러니까 잘 들으랬잖아! 교장선생님이 오늘부터 기숙 체제에 들어갈 거래!"

"뭐어어어?!"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안 것 같네. 하며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는 그저 큰 소리만 냈을 뿐이지, 딱히 심각성을 이해한 건 아닌 듯했다.

"....기숙 체제가 뭐야?"

"....."

이젠 정말, 말도 안 나오는 바보스러움이다. 그녀는 그에게 약간 다가가 그의 귀를 벌리고, 그곳에다 주변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최대한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여기 기숙사에서 살게 된다는 이야기야!"

"엑, 진짜아?!"

말도 안 돼. 그런 게 어디 있어!

하루 빨리 체술학교에 가도 늦을 판에 이곳에서 살라는 거야?

"아아, 물론. 여러분들이 너무 갑작스럽지 않냐고 불만이 있을 것 같아, 본교도 그에 맞는 대안을 강구해두었습니다."

그럼 그렇지. 하며 주변의 사람들이 다시 안정을 되찾은듯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동안의 안정이었다.

"기초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품들을 기숙사 안에 준비했으니, 걱정 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따로 필요한 물건은 별도로..."

"그런 게 아니잖아!!!"

지금 이 강당에 모인 전교생, 현성과 유린을 포함한 거의 모든 학생이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아니, 안 낼 수가 없었다. 다짜고짜 오라 해놓고는 그대로 그곳에 살게 만드는 건 이미 그저 횡포 아닌가.

곳곳에서는 벌써 도망치려는 계획마저 짜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실행되기 전에 수포로 돌아갔다.

"...다들 시끄럽네요. 문을 닫아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교장의 말에 입구 쪽에 있는 메이드와 같은 차림새의 여자는 대답했고, 갖고 있던 스위치의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그 순간, 지진과 같은 땅의 울림이 일어났다.

"꺄앗!"

현성 옆에서 학교의 횡포를 멍하니 바라보던 유린은 중심을 잃어 쓰러질 뻔 했다.

"유린아!"

탁, 하고 현성의 손이 유린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는 힘으로 당겨 다시 중심을 잡게 해줬다. 이걸로 그와 그녀의 두번째 스킨쉽.

"아, 저.. 고마워. 현성아."

"어. 그나저나 도대체 무슨 일이 이렇게 막 벌어지고 있는 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 라며 그녀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앞의 녀석 때문에 마음이 심란했는데(지금은 좀 정리가 된 상태지만.), 학교마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건지.. 주변의 상황에 그녀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질 뿐이었다.

"으악, 저게 뭐야!!"

갑자기 강당의 문 쪽에서 어떤 사람의 외침이 들렸고, 현성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달려갔다. 그리고 눈앞에 일어난 현상에, 그저 할 말을 잃었다.

"......뭐야 저건."

더 이상 놀랄 힘도 남아있지 않다. 그는 그저 어이없다는 듯, 아까 그녀와 함께 들어왔던 교문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아까는 형체도 없었던 거대한 성문 같은 물건이 떡 하니 서있었다. 그것도, 하늘까지 닿을 정도로 높은.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휴문의 이용약관 개인정보보호정책
주소 : 인천광역시 부평구 평천로 132 (청천동) TEL : 032-505-2973 FAX : 032-505-2982 email : novelengine@naver.com
 
Copyright 2011 NOVEL ENGINE All rights Reserved.